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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이정씨가 이분 동생이었군. 화가 배준성이 남편이시고... 무슨 패밀리 구성을 보는 듯.(-_-)
재료가 미니멀한 작업에 대해 관심이 깊다.
간단한 프로세스로 간단한 의미를 견인하고 싶은 저녁.
눈앞이 너무 시끄럽다. 딕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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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자로 보기, 벽위에 수성물감, 1994
 그림자로 보기, 벽위에 수성물감, 1994
 그림자로 보기, 벽위에 수성물감, 1994
 그림자로 보기, 벽위에 칼라 시트, 1995
 그림자로 보기, 벽위에 칼라 시트, 1995
 그림자로 보기, 벽위에 칼라 시트, 1995
 그림자로 보기, 벽위에 칼라 시트, 1995
 그림자로 보기, 벽위에 칼라 시트, 1995
 그림자로 보기, 벽위에 칼라 시트, 1995
 그림자로 보기, 벽위에 칼라 시트, 1995
 그림자로 보기, 벽위에 칼라 시트, 1995
 그림자로 보기, 벽위에 칼라 시트, 비상구 등, 서랍고리, 1996
 그림자로 보기, 벽위에 칼라 시트, 비상구 등, 서랍고리, 1996
 그림자로 보기, 벽위에 칼라 시트, 비상구 등, 서랍고리, 1996
출처 : http://azuma.simspace.com/index.asp
월간 미술 2003
작가릴레이 30 Han Soo-jung
컨셉트와 노동력이 균형 잡힌 회화
김동유(이하 김): 제가 한수정 씨 작품을 처음 접한 것은 판화 작업을 선보인 첫 개인전 카탈로그를 통해서였어요. 직접 본 것은 아니었지만 아주 재치있는 사람이라 생각했어요. 그 후에 우연치 않게 그룹전을 여러 번 같이 했지만 제가 워낙 말수가 없는 편이라 대화할 기회는 별로 없었네요. 하지만 작품을 통해서 꽤 오랫동안 지켜봐 왔기 때문에 가깝게 느껴집니다.
한수정(이하 한): 처음 전시를 함께 한 것이 1994년에 가인화랑에서 배준성, 허구영 씨와의 4인전이었죠? 그 후 올해 두아트갤러리에서 열린 〈움직이는 정물전〉까지 김동유 씨와는 몇 차례 같은 전시에 참여했군요.
김: 첫 개인전은 〈가면 쓰기〉나 〈바로 보기〉와 같이 도안의 전사를 중심축으로 한 위트 넘치는 이미지의 석판화들이 무척 신선했어요. 또 친분 있는 작가와 동창 들이 각자의 감상을 적은 카탈로그도 인상적이더군요. 개인전은 몇 차례나 했죠?
한: 갤러리 현대의 윈도우갤러리나 계원조형예술대에서 한 콘테이너 박스 전시까지 포함해 횟수로는 여덟 번이나 되네요.
김: 〈코끼리 아저씨는 코가 손이래〉였나? 면천에 목탄과 물감, 실크스크린을 이용한 코끼리 그림 있었잖아요? 그 작업은 그간 한수정 씨 작품들과는 성격이 약간 다른 작품이었던 것 같은데, 그 경우를 제외하고는 시트지나 트레팔지같이 가공된 재료를 사용하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한: 재료 선택에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무언가가 생각나면 일단 그에 맞는 재료를 찾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일 뿐이죠. 재료는 제가 원하는 바를 표현하는 데 편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지 다른 의미는 없어요.
김: 제 경우에는 캔버스에 물감이라는 재료를 고집하거든요. 그래서 재료에 관심이 가나 봐요. 한수정 씨의 캔버스 그림은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한: 요즘에는 ꡐ그리고 싶다ꡑ는 생각을 많이 해요. 〈코끼리 아저씨는 코가 손이래〉도 코 부분에 사람 손가락 모양을 실크스크린으로 밀고, 나머지 부분은 물감으로 그린 작품이지만 캔버스는 아니었지요. 얼마 전 캔버스에 유화 작업을 한번 해봤어요. 〈숨은 그림〉이라는 작품인데 유화물감을 나이프로 펴 바르면서 너무 신났어요. 각기 다른 색면으로 그려진 꽃이 언뜻 봤을 때는 형태를 잘 알 수 없는 덩어리로 묶여 있지만 그것을 흑백사진으로 찍으면 명도 차이로 인해 배경보다 중심에 꽃이 확실하게 드러나도록 하는 그야말로 ꡐ숨은 그림ꡑ이죠. 그림과 사진이 쌍을 이루는 작품이에요.
김: 무엇보다 거칠게 칠해진 물감자국이 인상적이네요. 저도 그림을 그릴 때 이전에는 무조건 매끄럽게 마무리하려고 했는데 갈수록 이미지가 뭐든 순간순간 우연적으로 생기는 붓자국이 좋더라고요. 그래서인지 오늘 처음 본 이 작업에 눈길이 갔어요.
한: 작업 성향을 좀 바꾸고 싶어서 시도한 실험적인 작품인데 언젠가 다시 제대로 하고 싶어요.
김: 제가 보기에 한수정 씨의 작업은 크게 〈그림자로 보기〉와 〈라인(Line)〉으로 구분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둘은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어요. 먼저 공통점은 두 작업 모두 검은색을 사용한다는 것이고, 차이점은 그림자 작업은 시트지가 잘린 단면 때문에 좀 더 도안적으로 보이고 전시 공간을 통괄하는 면이 있다면, 라인 작업의 경우에는 드로잉적인 면이 강조되고 작업과정에 변수가 많이 생긴다는 점이에요. 또 그림자 작업은 컨셉트나 골격 자체가 중요하고 과정은 단조로운 반면, 라인 작업은 컨셉트도 중요하지만 노동력이 중요한 부분인 것 같구요. 봤을 때 금세 잊혀지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보고 나서 계속 남는 작품이 있는데, 처음 시작한 컨셉트와 작업과정이 균형을 이루는 라인 작업은 보는 사람에게 오래 남는 경우라고 생각해요. 그림자 작업은 명쾌하고 깔끔한 맛이 있다면 라인 작업은 계속해서 자극하는 잔상이 있다고 할까요.
한: 제가 보기에 그 둘의 공통점이라 하면 제가 작업한 부분과 보이는 부분이 다르다는 점 같아요. 〈그림자로 보기〉의 경우 저는 문의 그림자를 그리는데, 사람들은 문을 보잖아요. 제가 붙여 놓은 부분이 아니라 벽면을 보는 거죠. 또 〈라인〉의 경우에 저는 낱장마다 줄만 긋고 있는데 사람들은 그 아래 생긴 이미지를 보죠. 그리고 두 작업의 차이점이라면 〈그림자로 보기〉는 넓은 벽면에 최소한의 선을 그려 넣어 전체 공간을 커버할 수 있는 반면, 〈라인〉은 중첩된 각 장마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만 보이는 것은 그에 비해 매우 적다는 것이죠. 미술비평을 쓰는 제 동생이 전에 ꡒ그림자 작업은 1%를 그려서 100%를 보게 했다면, 라인 작업은 100%를 그려서 1%만 보여 준다ꡓ고 하더군요. 맞는 말인 것 같아요.
김: 〈라인〉 작업의 제작과정이 궁금합니다.
한: 뭐, 잘 아시겠지만 길이가 1cm 가량 차이 나는 여러 장의 트레팔지에 각기 다른 형태의 선을 칠한 뒤 그것들을 겹쳐서 어떤 형상을 만들어 내는 거죠. 작업하는 과정에 우선시하는 것은 아래 맺히는 형상인데, 실물 크기의 에스키스를 그려서 그것을 트레팔지에 대고 라인의 시작점을 표시한 후 그것을 따라 선을 그리면서 변형을 주지요. 중간에 선을 각기 다른 형태로 변형시키는데 어느 정도 비치는 종이를 쓰기 때문에 후에 낱장이 겹쳐지면 층과 깊이가 나타나는 것이죠.
김: 제 작업에서 노동력이 중요한 요소이듯이 한수정 씨의 라인 작업도 그렇군요. 그런데 몇몇 작품은 아래 겹쳐진 이미지들은 안 보이고 맨 위 표면만 보여서 아쉬웠어요. 시간의 중첩과 노동의 층이 잘 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 그러잖아도 어떤 후배가 그런 얘기를 하면서 라이트박스를 뒤에 놓으면 층이 더 잘 보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해서 그런 시도도 해봤어요. 그런데 그러면 윗부분은 깊이가 잘 드러나지만 아랫 부분에 맺힌 이미지가 검게 뭉개져 잘 안 보이더군요. 그래서 앞으로는 부분적으로만 라이트박스를 쓴다든지 각 낱장을 별개의 그림으로 떼어 보여 주고 그것들을 한데 모은 것을 함께 보여 준다든지 하는 시도들을 해볼까 합니다.
김: 특별히 검은색을 사용하는 이유가 있나요?
한: 처음에 샘플을 만들면서 별 생각 없이 검은 유성펜을 썼어요. 그 후에 하다 보니 색을 넣는 게 자신이 없기도 하고 검은색의 느낌이 좋기도 해서 쭉 한 색을 쓴 거죠 뭐. 요즘에는 작업에 터치와 농담이 생기면서 다른 색을 쓰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서 색깔이 있는 작품을 몇 점 하기도 했어요. 검은색의 번짐 때문인지 처음 봤을 때 동양화의 느낌이 난다는 말을 자주 들어요.
김: 〈라인〉 작업은 어떻게 처음 시작하게 되었나요?
한: 1993년에 금호미술관에서 있었던 전시에서 그 해가 ꡐ책의 해ꡑ라고 팸플릿을 책으로 만들자며 한 작가당 서른장의 페이지를 (책을) 카탈로그로 꾸미게 했는데, 저는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가 어릴 때 두꺼운 사전을 사면 옆면에 이름을 쓰던 게 생각나서 책을 한쪽으로 기울이면 흰 바탕에 검은 글씨, 반대쪽으로 기울이면 검은 바탕에 흰 글씨로 내 이름이 나타나게끔 찍었어요. 그런데 제본이 정확하지 않아서 실패했었죠. 그래서 이 작업을 직접 손으로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었죠. 그렇게 시작해서 지금까지 라인 작업을 하고 있네요.
김: 라인 작업이 주는 특별한 매력이 있나요?
한: 큰 작업의 경우 낱장을 일일이 펴볼 수 없기 때문에 전시장에 가서 직접 맞춰 보는데, 약간의 실수만 있어도 이미지가 어긋나 버리기 때문에 불안과 기대가 있어요. 어떠한 형태가 나오리라는 감으로 한 것이 딱 들어맞았을 때 오는 뿌듯함이 매력이죠.
김: 작은 요소들을 그려 나감으로써 하나의 큰 이미지를 완성한다는 점에서 제 그림과 비슷한 점도 있군요. 학부에서 서양화를 전공하셨는데 대학원에서 판화전공을 택한 데는 어떤 이유가 있었나요?
한: 그때는 뭘 잘 모르고 ꡐ회화를 어떻게 배우냐, 혼자 하는 거지ꡑ라는 마음에 새로운 것을 배워 보자는 생각으로 판화과를 간 거죠. 지금 생각하면 대학원은 그래서 가는 건 아닌데 싶죠. 또 당시에는 판화가 주는 노동의 매력이 있었어요. 프레스 돌리고 롤러질 하며 몸을 많이 쓰기 때문에 작업하면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 수 있으리라 생각한 거죠. 대학 다닐 때 괜히 그림 잘 안되면 캔버스만 계속 짰던 것처럼 말이에요.
김: 판화를 공부한 것이 은연중에 지금 작업에 영향을 끼칠 것도 같은데…. 라인 작업에 판화잉크를 쓰시죠?
한: 네(웃음). 특별한 영향이랄 것은 없어요. 처음에 아크릴을 쓰려고 했다가 종이가 우는 단점이 있어서 기름이 섞인 판화잉크를 쓰게 됐는데 냄새가 좀 심해요.
김: 작품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나요.
한: 〈그림자로 보기〉의 경우에는 1994년 배준성 씨가 기획한 〈hidden in space〉라는 전시에서 그 당시 한창 유행하던 요란한 테크놀러지 아트 사이에서 우리는 쉽게 눈에 띄지 않는 작품을 해보자는 데 뜻을 모아 친한 동료 작가들끼리 모여 전시를 했어요. 그때 무슨 작업을 할까 고민하다가 방에 있는데 우연히 흰 벽지에 하얀 문이 눈에 들어왔어요. 그리고 어릴 적에 책표지에 음영만으로 써 넣었던 글씨가 생각났구요. 그래서 그 전시에서 선보인 것이 반투명 시트지를 벽에 붙여 만든 그림자로 된 문이었어요. 〈라인〉도 그랬고 보통 그렇게 전시를 앞두고 작품 구상을 하는 편이죠.
김: 〈그림자로 보기〉는 시트지를 붙여 만든 작품만 봤었는데, 오늘 작품 사진들을 살펴보니 붓으로 그린 것도 있던데 제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개인적으로 그 작업이 더 마음에 들더군요.
한: 폴란드에서 열린 전시였는데 달리 그리면서 덧칠하거나 고칠 수 있는 유동적인 면 때문에 작업을 하면서 무척 재미있었어요. 벽에 직접 그림을 그리면 전시 후에 벽을 다시 칠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우리 나라 화랑에서는 쉽게 허락하지 않더군요. 시트지를 붙이는 그림자 작업도 처음에는 시트지위에 문 전체를 그리고 그림자 부분만을 오려 사용하고 나머지는 다 버렸었는데 (그림자 선 부분만을 칼로 그리고 나머지를 떼어내다가) 나중에는 두께를 다르게 자른 얇은 시트지로 벽에 드로잉하듯 그림자를 붙여가다 보니 훨씬 재미있고 재료도 적게 들어서 괜찮았어요. 또 편평한 벽면보다 일부분이 튀어나오거나 들어간 특이한 공간이 더 흥미로웠어요. 그룹전을 하면 다른 작가들이 모두 꺼리는 공간이 제게는 딱 맞았던 거죠. 그런 점에서 그림자 작업은 라인 작업보다는 훨씬 편했어요.
김: 작품에서 보이는 개인의 성품이라는 게 있는데, 한수정 씨의 작품을 보면 냉정하고 이지적인 면이 강한 것 같아요. 그래서 사람 대하는 걸 워낙 두려워하는 저로서는 대화하기가 꺼려졌던 것도 같아요. 실제로는 굉장히 털털한 것 같아요. 〈그림자로 보기〉 같이 똑 떨어지는 겉모습 뒤에 〈숨은 그림〉 같이 서글서글한 성격이 숨어 있다고 할까요?
한: 사실 지금 성격이 많이 바뀌었어요. 어릴 때는 아주 내성적이어서 학년 올라갈 때마다 자기 소개 시간이면 다리가 떨리고 나가서는 이름만 말하고 내려오는 그런 아이였어요. 중고등학교 들어가서 성격이 조금씩 외향적으로 바뀌긴 했지만 지금도 낯선 사람들 있는 자리는 꺼리고 그래요. 학교 강의 가기 전날에는 스트레스 무척 받죠.
김: 저보다 더 할까요. 부부가 함께 작업을 하니까 어떤 좋은 점이나 불편한 점이 있나요?
한: 배준성 씨와는 대학 동기라서 워낙 오랜 시간을 붙어 있었기 때문에 이제는 불편한 점은 별로 없어요. 대학교 졸업하면서부터 같은 작업실을 썼지만 서로의 작업에 대해서 근본적인 간섭은 하지 않는 편이에요. 단지 작업을 하다 보면 ꡐ여기서 멈춰도 좋을까ꡑ하는 객관적인 눈이 필요할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 옆에서 말해 주는 사람이 취향이 비슷한 게 좋은데 그런 면에서 배준성 씨와는 좋아하는 작가나 작품 성향이 비슷해서 편해요. 안 좋은 점이 있다면 작업실을 같이 쓰다 보니 서로 물건들이 뒤섞여 나중에 찾으려면 한참 걸린다는 정도?
김: 요즘에는 어떤 작업에 특히 관심이 가나요?
한: 유화나 파스텔로 인물을 그리고 싶어요. 학생들 그림을 봐주다 보면 내가 이걸 하면 이렇게 할 텐데 하는 생각이 들잖아요. 가만히 보면 제가 아이들에게 항상 똑같이 지적하는 요소가 있더라고요. 아이들은 각자 개성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질 않죠. 그래서 제가 직접 그려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나 봐요.
김: 지금도 작업실에서 미대입시생을 지도하는데 작업에 방해가 되지는 않나요?
한: 물론 시간적으로야 그럴 수 있겠지만 오히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제가 많이 배워요. 옛날에는 미대입시 하면 천편일률적인 형식이 있었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아요. 예고나 미대에서 학생들에게 다양한 재료와 대상을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을 원하기 때문에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제 자신이 진지해지고 스스로 즐기게 돼요. 그러면서 한동안 잠잠했던 그리기에 대한 욕구가 발동한 것 같아요.
김: 한수정 씨 작업은 계속 발전할 가능성이 커요. 지금까지도 아주 잘 해왔구요. 전시 계획은 있나요?
한: 당장은 없고 내년에 친한 작가들끼리 각자의 스타일대로 옷을 만들어 선보이는 전시가 하나 있는데 저는 제 라인 작업을 옷에 응용하여 치맛단과 소매에 레이스를 층층이 달고 이미지를 넣어서 윗부분은 줄무늬인데 아랫단에 가면 어떤 이미지가 맺혀 있는 그런 옷을 만들어 볼까 해요. 종이가 아닌 옷감이어서 느낌이 새로울 것 같아요. 그리고 그 후에는 베를린에서 2인전이 잡혀 있어요.
김: 바쁘시네요. 모두 잘 되길 바랍니다. 저희가 작가릴레이의 마지막을 장식하게 되어 기분 좋군요. 또 봅시다!
♣ 99년경에, 누나의 부탁으로 작성한, 도록에 들어갈 간단한 소개 글인데, 미술관 사정으로 인해, 출판 되지 못했고, 대신 누나에게 생일을 맞이하여, 생일선물(미대 공예과 학생이 제작한 작품)과 더불어 몇마디 써봤다.
누나에게 쓰는 편지: "누나 언제까지 표면적인 작가로 머물거야?"1)
요구사항대로만 충실히 이행하자면, 애초 이 글은, 내가 작년 누나 개인전 팜플렛을 위해 써뒀던 글에서 작품의 요지를 집약시킬 대목만 골라 A4용지 1장 반 분량으로 짜집기해서, 넘겨주면 그만이었어. 맞지? 그럴 경우, 이 글은 이 전시를 위해서이기 보단, 그간 누나의 작업내용을 갈무리해주는 성격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는 거지. 근데 작년 누나 개인전 관련, 5장 분량의 내 글 요지는 굳이 1장 반 분량을 채울 필요조차 없다는 걸 누나도 곰곰이 생각해보면 동의하리라 믿어. 누나도 알다시피, 나는 그때 이렇게 썼기 때문이지. '누나는, 작업에서 1% 보여주고, 99% 숨긴다.' 이게 전부라면 전부였잖아?. 아 또 '99%엔 누나가 숨어있다.'라고 덧붙였지. 그런데 이 글을 쓰면서, 추가된 생각이 떠오르기도 했거니와, '노출된 1%와 은폐된 99%'라는 알쏭달쏭하고 잘난 체하는 표현에 대한 최소한의 양해는 해야 안 되겠나 싶었어. 그러자면 1장 반이 걸릴 것도 같군.
그래. 우선 누나를 여태까지 버틸 수 있게끔 해준 건, 되든 안되든 누나만의 '스타일'이 대충은 먹힌 탓으로 보는 건 어떨까? 크게 틀린 추측은 아닐꺼야. 요컨대, 우리가 어떤 (잘 나가는)작가을 연상하는데 필요한 건, 그가 구축해 논 스타일 때문일 꺼야. 진부한 비유지만, 폴록은 그린버그의 칭찬에 힘입어 막무가내로 '뿌려대기'만 했지. 그걸 나같이 이론 공부하는 놈들은 미술사책을 통해, 폴록의 '뿌리기 그림' 이네 '드리핑'이네하며, 폴록과 연루시켜 고정불변한 사실로 받아들여버리지. 후발주자가 더 근사한 취지로 뿌려댄 들, 우리는 여전히 '폴록=뿌리기'라는 낯익은 공식을 포기하지 않을 건 너무도 뻔해. 폴록은 드리핑 dripping이란 일반명사를 고유명사로 만들어놨기 때문에, 남이 따라하면 그건 표절이 되는거지. 그건 폴록 '스타일'인 거지. 폴록 꺼라구! 좌우간 그는 성공했잖아! 좋아 멀리까지 갈 필요도 없겠어. 그런 식으로 알려진 사람 은 여기도 너무 많잖아. 가까이는 김용익은 '땡땡이', 김춘수는 (이제는, 별로 안 수상한)'혀', 또 지칠 법도 하건만 물방울만 그려대는 사람도 있지? 좌우간, 우린 자기 스타일에 성공한 그들을 기억하고 부러워해. 나도 그 사람들 작업 더러 좋아하거든. 그 사람들 그 '스타일'덕에, 명망도 얻고, 그림값도 제법 받는 모양이더라구.
그래 누나는 '돈 안되는 스타일'의 주인이지만, 아무튼 스타일을 만들었어. 그것도 믿음직한 스타일을. 간명하고 순발력있는 발상을 장난끼있지만 대담한 작업으로 옮겨오는 데에서, 자신감이 보여서 좋아. 그리고, 정직해 보여.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작든 크든 계속 머무르지 않고 작업이 변하고 있다는 점이 그 신뢰감을 무디지 않게 지켜주고 있는 거야. 그래 우리가 도인을 자처하지 않는 이상 우린 계속 길을 떠나야만 해. 그게 고단하고 불안한 선택이지만 말이야... 그리고 누나는 대략 두서너 번 길을 떠난 것 같아. 또 그게 누나한텐 '스타일'을 만들어줬지. '그림자'와 '라인'이 여태까지 누나 작업의 견인차였지만, 진정한 스타일은 일전에도 말했듯이 '숨기 hidden'야. 그리고 지금 막 떠오른 생각인데, 그 '숨기'라는 누나 작업이, '표면'위에 의존하기 때문에 더 힘을 실어주는 거야. 누나 스타일에 대해 다시 얘기를 해야겠어. 좀 지겹지만, 그게 싫건 좋건 오늘 내 본분이니깐.
라인작업의 출발은 93년 금호 갤러리,[기호, 언어, 책, 예술]展의 정식 출품작이 아닌, 팜플렛 단면에서 처음 시도됐으니, 햇수로만 7년째. 그간 우여곡절도 있었지? 두툼한 팜플렛 단면의 한 꼭지에서 야무지게 출발했건만, 가장 최근 98년 개인전에선 혼자서는 설치는커녕, 들고 이동하기조차 힘에 부칠 만큼 작업 규모가 커졌고, 제작 공정도 부피에 정비례, 낱장 하나 하나와 전체와의 관계를 고민해야만 하는 번거로움, 그리고 조금은 까다로운 계산도 필요로 했잖아. 규모가 커진 만큼 종이 위로 '떠오르는 이미지'의 성격도 바뀌었지? 작년 팜플렛 글에서도 적었지만, 95년 갤러리 아트 빔의 [국제복사미술제]에서 처음 내 걸린, 거의 첫 번째 '공식' 라인 작품 이후, 몇몇 전시에서 누나의 라인 작업들은 Xerox(95년 복사미술제), Game Same Amen(96년 로고스 파토스), Do Not Touch(96년 1회 도시와 영상전)와 같은, 전부 문자조합에 연연해왔어. 그런데, 여기서 내 생각을 말하면 이래. 문자란 좀 달리 말하면, 경직된 수직선과 수평선들이 약정된 질서에 준하여 만들어낸 좀 '딱딱한 그림'정도로 볼 수 있을 거야. 따라서 문자가 의미전달로서의 제 기능을 상실했을 때, 누나작업 속 문자들은 일개 '그림'에 불과 했던거야. 누나는 애초에 문자를 문자로 대접하지 않은 거라구.
"이 작품은 어쩌구 저쩌구를 함축하고 있으며...살아가면서 느낀...어쩌구 저쩌구를 담고 싶어서요." 따위의 작가노트를 누나는 좀 가장 가당찮다고 생각하잖아. 그 점이 나랑 같지. 누나는 깊이보단 표면의 가치를 십분 활용하는 사람이니깐. 그러니 문자를 그림 대역(代役)시키는데 주저하지 않지. 쉽게 말해서 "이 작품은 무엇을 함축하고" 가 아니라, "이렇게 하면 재밌을 것 같아서"로 시작하는 작가노트라야 누나다운 거지. '회화의 본질이 표면이네 어쨌네'하는 모더니스트의 해묵은 고집은 집어치우더라도, 표면을 공략한 누나의 출발선은 무난했어. 물론 누나의 표면은 걔네 들이 말하는 표면과는 좀 다르지. 어떻게? 누나 작업은 두 측면의 표면을 동반시킨다고 봐야 할거야. 평평한 면으로서의 표면 surface이기도 하거니와, "그 논의는 너무 표면적인 것 같지 않아요?"에서의 표면 superficial을 말이야. 벽에 납작하게 눌어붙은 검은 띠들(그림자 작업)과 층층이 겹쳐진 수 십장의 낱장들 중에 가장 바깥쪽 종이들만이 만들어낸 이미지들(라인 작업)이 전자에 해당하는 표면 surface이라면, 이미지를 대역한 '의미없는' 문자들의 장난/남용(라인 작업)이나, 있지도 않은 문짝과 전선줄의 일루젼을 만들어내서, 관객희롱에 일조하는 따위(그림자 작업)는 후자로서의 표면 superficial이겠지. ( 그러고보면, 회화의 본질은 여전히 평면이 아니라, 평면을 빙자한 일루젼이 아닐까? )
그 중에서 누나는 후자로서의 표면에 보다 근친한 작가인 거야. 그래. 누나는 진정 표면적인 작가인 거지! (표면surface에 천착해서, 표면적superficial작업을 하는 표면적 작가.) 그리고 우리 우매한 관객들은 표면적인 작가 한수정이 보여준 표면적인 그림을 그저 표면적으로만 보고 '아 그런가 보다~.'하면서 진정 표면적인 관객으로서 거듭나야 하는 거라구! 근데 대개들 그게 잘 안되는 모양이야. 작업 앞에 서면 어디서 줏어 들었는지, 프랑스 현대철학에서나 나오는 '자기가 해놓고도 무슨 말인지 모를' 용어로 중무장해야만, 뭐 기상천외한 걸 읽어낼 수 있다고 굳게들 믿는 모양이야. 그래서 보통의 표면적인 작업들조차 대단히 들 심각하게 진땀 뺀다구. 그 결과, 아무 것도 얻지 못하거나 완전히 오역해 버리지. 그리곤 작가들의 '스타일'에 무한한 열등감만 느낀 채 돌아서거나, 되지도 않을 해석을 해낸 자신의 오독력에 흐뭇해한다는 거 아니야?! 정말 미술이 할 수 있는 게, 이 정도밖에 없는 걸까? 이런 오역과 소통마비 외엔 달리 방법이 없는 거냐고? 아니면 나 혼자 헤매는 건 아닐까? 누나. 나는 이 공부를 계속해야하는 건 지 어지러울 때가 너무 많아.
이참에 애당초 이 글의 취지였던, 누나의 '노출된 1%와 은폐된 99%'에 관해 좀더 구체적으로 말해볼까? 그게 원래 취지였지 아마? 벌써 대충 얘기는 됐다고 봐. 누나는 누나만의 스타일을 축조해준 '그림자'와 '라인'을 통해, 표면적 작가임을 천명한 거지. 그리고 작년에 전술했듯이 '그림자'와 '라인'은 철두철미 시각효과에 매달려있고, '역설적 유사'라는 동일한 스타일을 공유하고 있다고 나는 결론 내렸지. 그에 관한 해설은 부족하나마 작년 팜플렛 글에 실었어. 편의상 그 부분만 갈무리해서 아래에 옮겨 볼게. (이렇게 한들 이 글을 누가 끝까지 읽기나 할까?)
"그림자의 경우, 재료인 칼라 시트는 작품전체의 물리적 부피로 따지자면 1%안팎이다. 1%로 전체(100%)보여주는 것이 그림자 작업의 미덕이다. 99%의 여백에는 누나가 '숨어있다.' 반면, 라인은 다르다. 수 십장의 낱장들의 전체 중 각각의 단면--전체 면으로 봤을 때 이것도 1%수준이다.--들이 모여 작품을 구성하고 나머지 99%는 '보여진' 작품 뒤에 '숨겨졌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1%만 보여주기다. 따라서 그림자와 라인의 공통분모는 숨어버린 99%. 여기에도 역시 누나가 '숨어있다.'"
그런 이유로 나는 그림자와 라인이 '(작가의)숨기'라는 스타일로 우겨넣을 단서를 찾아본 거지. 그럼 누나는 숨어서 뭐하는 거지? 내 딴엔 누나가 '숨어서' 어렵게 보는데에 익숙한(!) 사람들을 숨어서 냉소하거나, 아니면 누나 식으로 "아 쟤네들은 저렇게 보는구나."하면서 엿본다고 풀이한 거였지. 걔네들은 보여지는 1%안에서 뭔가를 찾아 헤매는데, 실은 작품전체를 지탱해주는 안보이는 99%엔 엉뚱하게도 '전혀 안 진지한' 누나가 숨어있잖아.
누나. 걔네들이 내 말을 믿어줄까?
1999.6.11
동생. 69 2)
추신1.: 자꾸, 작업 이렇게 헷갈리게 하면, 나 다신 누나 글 안 쓰고야 말거야! 아니 못 쓰고야 말거야!
추신2.: 근데, 요샌 누나처럼 '심각하게 따지지 말자.'는 식으로 배 째는 작업하는 젊은 작가들도 제법 있는 것 같아. 이제 슬슬 포맷을 바꿔보지 그래?
1) 부탁 받고, 글을 쓰다가 짜증이 났다. 그렇게 쓸 생각은 애초에 없었지만, "작가 아무개의 최근작은.."으로 시작하는 대개의 팜플렛 글에 질려있었고, 크게 다를 건 없지만, 편지형식으로 쓰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일주일에도 몇 번의 이메일을 보내건만, 여태 누나한테 편지를 쓴 적이 한번도 없었다. 아니 딱히 쓸 꺼리가 없기도 했다. 참고로, 시인 유하가 신해철의 '나에게 쓰는 편지'라는 노래를 패러디한 적이 있는데,, 누나는 다시, 그걸 패러디 '유하에게 쓰는 편지'란 작업을 했었다. 그래서 이번에 내가 누나에게 쓴다.
2) 한수정 동생이다. 서울대 대학원에서 미술이론을 전공 중이다. feedback: 69xx@hitel.net
출처 :
http://dogstylist.com/
딴지 기사 : http://www.ddanzi.com/ddanziilbo/56/56cu_990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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