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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zabel(2004-06-21 20:07:28, Hit : 1229, Vote : 311) 
 http://gelatinemotel.byus.net
 전시 _7.2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展


▣ 전시장소 : 갤러리 뤼미에르 (Tel. 02-517-2134)
▣ 전시일정 : 2004. 06. 25. (금) - 08. 06. (금)
▣ 후원 : 주한 프랑스 대사관

▣ 개관시간 : 10:30 - 19:00
▣ 관람요금 : 일반: 4000원, 학생(대학생 이하): 3000원,
단체할인(10명 이상): 2000원, 경로우대증 소지자 및 장애인 무료





| 전시 관련 특별세미나 안내 |

7월 3일 (토) |7월 10일 (토)
제목 앙리 카르티에-브레송과 찰나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의 결정적 순간
시간 3시 - 5시 |3시 - 5시
강사 이경홍 (경일대 사진영상학부 교수) |이경률 (사진비평가)


결정적 순간과 카이로스의 반란



사진을 찍을 때 우리는 언제나 평범하지 않는 어떤 특별한 순간을 찍으려 하고 또한 거기서 가능한 모델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포착하려 한다. 이러한 포착은 일상의 유일한 순간 다시 말해 결코 다시 재현되지 않을 다양한 순간-행위를 포착하는 시간의 단절 효과로 이해된다. 이와 같은 단절 효과를 오늘날 가장 전통적인 패러다임으로서 또한 가장 널리 알려진 사진 포착의 공리로서 “결정적 순간(The decisive moment)”이라고 한다.

그러나 원래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의 결정적 순간은 논리적으로 이해되는 시공간의 단절이 아니라, 지속되는 시간에서 야기되는 느낌의 찰라 즉 포착-순간(l'instant decisif)을 말한다. 이때 포착되는 느낌은 주체의 심층으로부터 드러나는 생성(genese)으로서 감성의 음색 즉 직감(intuition)이다. 이와 같이 포착-순간은 단순한 동작의 움직임이 아니라 감성의 지속 순간이며, 또한 시간의 단절과 공간의 한 장면을 지시하는 사건-순간(le moment decisif)과 분명한 대조를 이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진 행위의 결정적 순간을 몰래 찍는 사진과 같이 단숨에 사건의 진행 속에서 포착된 한 장면 즉 제스처의 즉각성으로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오랫동안 사건-순간이 만드는 제스처의 움직임에 익숙하여, 모든 시간적 순간들을 거의 무의식적으로 과거에서 미래로 이동하는 진행 순간으로 착각하여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브레송의 작품에서 결정적 순간은 아일랜드의 구름한 점 없는 청명한 하늘과 지극히 평화로운 시골길이 교차하는 전원 풍경이나 풀밭에서 잠자는 어느 노동자의 모습에서와 같이 오히려 전혀 움직임이 없는 그리고 전혀 사건이 없는 일상에서 발생한다.

결정적 순간은 일상에 지속되는 상황들의 교차된 순간으로 단순한 우연이 아닌 만남(생성 혹은 드러남이나 됨 devenir)의 포착이다. 원래 이러한 포착-순간은 그리스 말로 “툭케 (tukhe)”라고 하는데, 그것은 서로 다른 여러 가지 시리즈들의 일시적인 결합 즉 우리의 의식과 이성 주위를 돌고 있는 끝없는 무의미(non-sens)들의 충돌과 만남을 말한다. 바로 이러한 만남으로부터 또 다른 순간이 발생하는데, 거기서 문화적 심급의 의미가 발생하고 동시에 사건(사건-시뮬라크르)이 시작된다.

찰라 순간의 만남은 엄밀히 말해 보이지 않는 세계에 은닉된 그러나 실재(實在)로서의 “카이로스(kairos)"의 포착이다. 고대 그리스어로 카이로스는 원래 생사의 중요한 신체부위나 흉갑의 틈과 같이 시간이 아닌 결정적인 어떤 장소였다. 그러나 이 말은 “기회”라고 뜻으로 딱 알맞은 것, 적절한 때, 유리한 순간 혹은 시간상 놓쳐서는 안 될 상황적인 포획을 나타내는 어떤 결정적인 순간이 되었다. 예컨대 사냥꾼이 정확히 꽂아 넣는 순간적 솜씨, 항해사에게 험난한 항로를 간파하게 하는 기술 혹은 쏘지 않고 겨누는 있는 궁수의 순간 결정은 곧 시간의 카이로스였다.

우리는 오랫동안 사진에 대하여 언제나 사건을 전달하는 기록자나 관찰자로서 대상 중심의 사유에 익숙하여 왔다. 또한 매체 사진의 절정에서 모든 사진의 메시지는 아폴론적 조화와 질서 그리고 대상 그 자체가 발하는 미적 조화로 수렴되었고, 세상을 관조하는 창(窓)으로서 그 목적론적 지향점은 관객으로의 전달에 있었다. 이와 같이 로고스(logos)의 사건-의미들이 지배하는 보이는 세상에는 언제나 한 쪽으로 치우친 편견과 획일 그리고 유일하게 소멸로 통하는 일방통행만 있을 뿐 더 이상 카이로스의 요동은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카르티에-브레송의 포착-순간은 범 우주적인 질서와 보편적 사건이 아니라, 오히려 무질서와 지극히 평범한 대상의 내면에 은닉된 생성의 발견이다. 이러한 포착은 브뤼셀에서 천막 뒤 공짜 구경꾼 사진이 암시하듯이 대상에 대한 관음증적 관조가 아니라, 주체의 경험적 상황으로부터 포착되는 내면적 느낌 즉 자신이 경험한 내적 형상의 재현에 관계한다. 그때 일상의 평범한 상황 속에 합치된 주체는 수많은 우발적 사건들과 의미들이 만드는 주름 사이에 은닉된 비밀스런 카이로스의 행렬을 볼 것이다.

예컨대 영국 조지 6세 대관식에서 관중석 밑바닥에 떨어져 자고 있는 어느 관객, 마르세이유 공원 잔디밭에서 자고 있는 노동자, 졸고 있는 바로셀로나의 과일 장수, 생-라자르 역 뒤 물웅덩이를 건너뛰는 사람 그리고 포도주를 끼고 파리 무프타르 골목 모퉁이를 돌아오는 어린 아이의 익살스런 표정 등은 더 이상 특별한 의미의 질서가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일상 그 자체에 산재된 카이로스들의 출현이다. 그리고 그때 교부되는 포착-순간은 사진가가 경험하는 수많은 상황 속에서 직감으로 미끄러지는 순간임과 동시에 의미의 비밀스런 균열 속에서 어떤 미묘한 감성의 음색(tonalite)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이러한 결정적 포착-순간들은 또한 프로이드의 무의식과 같이 어떤 “시선의 무의식”을 암시한다. 의심할 바 없이 사진은 우리의 의식 속에서 현실의 “지금 그리고 여기(hic et nunc)”를 증언하는 실증적인 투명성을 교부하고, 동시에 과거 어떤 분실이나 아쉬움의 감정을 확인하는 “존재했던 것(ca a ete)” 이상 결코 말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절대적 닮음(analogon)과 반박할 수 없는 상황은 일종의 사진-인덱스(photo-index)로서 오히려 예견치 못한 어떤 강렬한 충동이나 조짐 혹은 생리학적으로 우리가 한 번도 보지 못한 현실의 이상한 측면 즉 존재의 특이성를 누설한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것 그리고 세상을 지배하는 것, 그것은 로고스와 코스모스의 항구적인 질서가 아니라, 그 속에 은폐된 수많은 느낌의 지속들이 서로 교차되고 충돌하여 어떤 의미작용을 드러내는 생성들이다. 이는 곧 무의미의 서사시로 언제나 합리적이고 박식한 로고스에 정면으로 대립하는 위대한 카이로스들이다. 부유하는 무기표의 신호로서 카이로스는 카오스가 지배하는 지하 세계를 배회하는 어둠의 존재들이다. 그러나 현실의 무게로부터 억압된 그들은 이제 지하 세계의 어두운 장벽을 뚫고 솟아난다. 현대 영상사진으로 가는 길목에서 그리고 과학적 사고의 대척 지점에서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이 거의 “반사적 속도로 움직이는” 자신의 직감에 의해 목격한 것은 바로 이러한 거대한 카이로스의 반란이었다.

● 이경률 (사진비평가)


1) Henri Van Lier, Histoire photographique de la photographie, Les Cahiers de la photographie, Paris, 1992, p.118.
2) 장 클레르, “카이로스 : 카르티에-브레송의 작품에서 적정 순간의 개념”, 『앙리 카르티에-브레송 그는 누구인가? 』(정진국 역), 까치, 서울, 2003년, p.47.
3) Texte de Jean Clair, "Introduction a une petite metaphysique de la photo a propre de l'oeuvre d'Henri Cartier-Bresson", Henri Cartier-Bresson, Photo Poche, CNP, Paris,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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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시 : the 4th Photo Festival 사진예술| Art in Photography
▣ 일 시 : 2004년 6월 29일 - 8월 29일(총 62일간)
▣ 주 최 : 가나아트갤러리 (T. 02-720-1020)
▣ 장 소  : 가나아트센터 전관 및 가나포럼스페이스
▣ 후 원 : 박건희문화재단
▣ 협 찬 : 사진전문출판 눈빛, 타임스페이스, 도서출판 아트앤북스 FUJI
▣ 작 품 : 총 9인의 근작 70여 점
▣ 작 가 : 아타 Atta
           베른트 & 힐라 베허 Bernd & Hilla Becher
           정재규 Chong, Jae-Kyoo
           칸디다 회퍼 Candida Hofer
           고명근 Koh, Myung-Keun
           이정진 Lee, Jung-Jin
           빅 뮤니츠 Vik Muniz
           토마스 슈트루트 Thomas Struth
           히로시 수기모토 Hiroshi Sugimoto
▣ 문 의 : 가나아트갤러리 (T. 720-1020)
    








zabel (2004-06-26 18:3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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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abel (2004-06-28 20:39:18)  
갤러리 라메르 기획 <바다. 내게로 오다> 展



갤러리 라메르에서 한 여름,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도시에서 바다를 맘껏 느낄 수 있는 전시 <바다. 내게로 오다>를 마련했습니다.



오는 7월 21일부터 개최될 이번 전시에서는 국내 내로라하는 20여 명의 사진작가들이 관조의 대상, 유희, 포름의 대상 그리고 개념의 대상 등 3가지 색으로 표현하는 바다 사진을 통해 지친 현대인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어루만져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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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제목 : <바다. 내게로 오다> 展




전시 기간 : 2004년 7월 21일~8월 1일



전시 장소 : 갤러리 라메르 3층 전관



전시 이벤트 : <라메르를 찍으세요!>



'갤러리 곳곳에 있는 ‘라메르’(단어)를 찾아 개성만점의 사진을 찍으세요' 전시 이벤트 <라메르를 찍으세요!>



▶대 상 : 전시 관람객



▶기 간 : 전시기간 中



▶접 수 : info@lamerart.com



▶방 법 : 갤러리 곳곳에 있는 ‘라메르’(단어)를 찾아 톡톡 튀는 개성만점의 사진을 찍으세요. 그리고 찍으신 사진을 해상도 72dpi 가로세로 5cm 이상 10cm 이하로 작업해서 info@lamerart로 보내주세요.



보내실 때 성함, 전화번호, 주소를 기재하시고, 작품 제목과 설명도 간단하게 적어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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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내주신 사진 중 아이디어가 톡톡 튀는 작품을 선정, 소정의 상품을 증정합니다.
zabel (2004-06-28 21:10:22)  
























































MOON SUN-HO RETROSPECTIVE



문선호 사진展


2004_0629 ▶ 2004_0829






문선호_self-portrait_흑백인화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가나아트센터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4_0629_화요일_05:00pm






가나포럼스페이스

서울 종로구 평창동 97번지

Tel. 02_720_1020








"문선호의 사진에서 주제가 되는 것은 언제나 '인간'이다. 그의 기념비문에서와 같이 작가는 정교한 사진기술, 어린아이다운 천진함으로 휴머니즘의 미의식을 실현해왔다." ● 올해로 제 4회를 맞이하는 사진전 특별기획으로 한국의 사진작가 문선호 회고전을 갖는다. 문선호는 1923년 평안남도 중화에서 태어나 동경 가와바다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수학, 해방직후 고향 미술교사로 재직하였다. 화가의 꿈을 키웠던 문선호가 사진작가의 길을 걷게 된 것은 6.25 당시 종군사진보도원이 되면서부터이다. 이를 계기로 문선호는 가난한 한국인의 삶과 천진한 아이 등 인간의 생명을 카메라로 그려내는 작가의식을 확립하였다. 1964년 제 3회 문화공보부 신인예술상 최고상, 1968년 제 16회 국전 특상 등 수많은 수상경력을 가졌으며 8권의 사진집을 발행하였다. 그는 평소 못 이룬 화가의 뜻을 사진작업으로 대신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생각은 화가들과의 폭넓고 깊은 친분관계로 드러나는데, 이를 바탕으로 '미술의 해'인 1995년, 예술의 전당 미술관에서 『한국 미술인 160인의 모습전』을 대대적으로 개최하였다. 1998년, 40년 간의 작업생활을 정리하는 『한국인: 한시대에 이름을 남긴 사람들:1958-1998』 을 기획하던 중 과로로 사망, 이제 그의 작품세계는 현대인들의 손을 통해 재인식의 대상으로 남겨졌다.






문선호_김환기_흑백인화_50.3×49.5cm_1958





문선호_천경자_흑백인화_50.3×49.5cm_1975





문선호_문신_흑백인화_40×60cm_1975





문선호_장욱진_흑백인화_100×66.6cm_1975





문선호_비오는 날_흑백인화_40×60cm_1972





문선호_하교길_흑백인화_67×100cm_1962





문선호_눈싸움_흑백인화_67×100cm_1962



가나아트에서 열리는 본 전시는 2004년 사진영상전의 특별전으로 마련한 것이다. ● 그의 대표작들은 두 측면으로 이루어져 공개되는데, 1층은 그의 초기 대표작 '군동', '하교길' 뿐만 아니라 세계를 여행하며 가난하고 어려운 삶의 모습을 순수한 사랑과 구원의 염원으로 기록한 작품들로 구성된다. 이 같은 사진작은 작가의 생애 동안 끊임없이 추구해 온 인간-삶에 대한 통찰을 보여줄 것이다. 2층에서는 문선호가 기록한 한국인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한다. 특별히 그가 존경하며 사랑했던, 한국화단을 일구어낸 미술가들의 얼굴로 전시장을 채운다. 사진작가로서, 한국 최초로 미술가들의 작업세계를 작품화시킨 문선호의 선각자적 시선은 한국 화단의 기록자로서의 사진가 문선호의 또 다른 면모를 살필 수 있게 할 것이다. ■ 가나아트센터



zabel (2004-06-28 21:19:33)  





진실과 허구



예술의전당 기획 제3회 해외청년작가展


2004_0701 ▶ 2004_0711






이정아_situation_디지털 프린트_80×60cm_2002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제3회 해외청년작가전 『진실과 허구』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4_0630_수요일_05:00pm



김희수_박향숙_이정아_장정연_주리아_최희선_허미회_황은옥


개관시간_11:00am-08:00pm / 매표마감 07:30pm / 평일, 주말 동일

관람요금_일반 2,000원 / 중고생 이하 1,000원 / 10인 이상 단체 50% 할인



전시설명

전시기간 중 매일_03:00pm_제4전시실


작가와의 대화

2004_0703_토요일_04:00pm_박향숙/이정아/허미회_제4전시실

2004_0707_수요일_04:00pm_주리아/최희선_제4전시실

2004_0710_토요일_04:00pm_장정연/황은옥_제4전시실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4전시실

서울 서초구 남부순환로 2406(서초동 700)

Tel. 02_580_1523








『해외청년작가전』은 세계 각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의 젊은 작가들의 작품들을 통해 각국 현지의 문화와 접목된 한국미술의 새롭고 다양한 모습을 조명하고 젊은 작가들이 각국의 문화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수용하여 표출하는 지를 통해 한국미술의 비전을 제시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올해로 3회를 맞는 이번 전시에는 프랑스, 스위스, 독일, 미국, 일본 등에서 활동하는 8명의 작가들이 초대된다. 참여작가는 최희선, 허미회, 황인옥(이상 프랑스), 장정연(스위스), 이정아(독일), 김희수, 주리아(이상 미국), 박향숙(일본)이다. ■ 예술의전당






허미회_또 다른 나의 상자_혼합매체_가변크기_2003





박향숙_친구Ⅱ_캔버스에 유채, 파스텔_5365.1cm_2002



미술작품에서의 진실과 허구 ● "왜 미술작품을 보는가"라는 질문을 혹자로부터 받는다면 어떻게 질문에 답할 수 있을까. 우리는 평소 작품을 보면서 알게 모르게 작품을 사회 현상이나 관습에 연계시키기도 하고 다른 사물을 연상하기도 한다. 필자는 이러한 점에서 다음과 같은 답을 생각해본다. "미술작품을 감상한다는 것은 작품을 통해 평소 우리가 가졌던 가치관을 확인하고 또 소홀히 했거나 간과했던 일상의 원리를 이해함으로써 우리 자신의 삶의 질을 높이는 일이다. 여기에 정서 발달과 상상력을 고양하는 부수 효과도 무시할 수 없는 가치다."[이에 대해 논쟁의 여지는 있을 수 있으나 여기서는 기술 목적상 다른 의견은 제외키로 한다.] 이러한 생각은 작품감상이 작품과 현실간에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전제로 한 것이다. 본 글에서는 작품이 현실과 끊임없이 연결되어 작품 이미지가 진실인지 허구인지 일반에게 궁금증을 자아낼 수 있다고 보고 진실과 허구가 작품상에서 어떤 특성이 있으며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밝혀 작품 감상의 올바른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






장정연_희망의 아아치_캔버스에 유채_200×140cm_2004





주리아_헤드라이트에 붙잡힌 사슴_캔버스에 아크릴 채색_137.2×101.6 cm_2003



미술작품은 진실한 것인가 ● "미술작품은 사회를 반영하는 거울이다"라는 말이 있다. 실제로 미술의 역사를 보면 이 말에 수긍할 수 있다. 작품 주제는 말할 것도 없고 그 표현 형식에서도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흐름을 읽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미술 작품이 현실과 깊은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에 대해 회화의 자율성을 주창한 모더니즘 미술, 특히 '텅빈 캔버스'를 내세우며 이견을 제시하는 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미지를 배제한 작품도 바로 재현 미술에 대한 거부와 저항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미술사적으로도 극히 짧은 기간의 운동이었다는 점에서 이러한 반례는 설득력이 약하다. 여전히 일반인들은 작품 감상의 취미를 재현 미술에서 찾는 것을 선호한다. 이러한 이유에서인지 작가들도 현실에서의 다양한 주제와 소재를 작품에 끌어들여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하는데 열과 성을 다한다. 따라서 재현 미술이 실제 사물이나 사회적 관습과 모종의 관계를 갖고 있음이 인정된다. 이는 관람객이 그림을 볼 때 그림의 원재료인 실제 사물 혹은 그와 유사한 사물을 연상하거나 추측한다는 점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작품과 현실과의 관계를 놓고 부지불식간에 불거지는 것이 바로 이미지의 진실성[여기서의 진실성은 실재를 재현하는 관점에서의 진실성을 말하는 것으로 실재와 대립되는 진짜, 가짜 개념이 아니다.]에 대한 문제다. 혹자는 이에 대해 사실을 제대로 보도해야 하는 대중매체와 달리, 미술작품은 그 자체로 완성된 구조체이므로 현실세계와는 별개로 보아야 하며 감상자들 역시 이 점에 더 주목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작품 자체가 표현성을 가지고 있어서 그것이 우리에게 여러 가지 느낌을 전달하는데, 이때 작품이미지가 자연스럽게 현실과 연계되어 그 진실성 여부에 관심을 갖게 한다는 점이다. 사실 우리는 대상이 동일한 이미지라도 그것이 참이면 더 많은 관심과 흥미를 갖는 경향이 있다. ● 그렇다면 실상 작품 이미지에서 진실함을 느끼는 경우는 언제인가. 작품 감상 시에 어떤 것은 참이고 어떤 것은 거짓이라고 이미지 그 자체는 설명하지 않는다. 이럴 경우 감상자에게 그 판단이 돌아가는데, 이때 일반은 작품 이미지의 진실성 여부를 현실 대상과 작품 속 대상간의 닮음 관계에 역점을 두고 본다. 이는 닮음 관계가 진실성 여부
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장은 다음의 사례를 통해 설득력을 갖는다. 어떤 사람의 초상화가 그 사람을 닮지 않았다면 그 누구도 그 초상화가 진실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 이처럼 어떤 대상을 재현한다는 것은 그 대상이 있음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우리는 대상이 없는 재현 미술을 보기도 한다. 신화ㆍ전설에서 나오는 신과 도깨비, 외뿔의 말 등을 대상으로 한 회화작품이 그것이다. 우리는 이들을 그린 것도 미술작품으로 인정한다는 점에서 결국 재현이라는 것은 실존하는 대상이 없어도 재현이 될 수 있음을 말해준다. 이러한 차원에서 재현은 닮음과는 상관없는 개념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우리는 재현이 실제대상이 있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 두 가지를 구분해서 보아야 할 것이다. 여기서 대상이 있는 경우는 진실로, 그렇지 않은 경우는 허구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추리해서 이를 구분 지울 수 있을까? ● 만약 우리가 그 이미지에 대한 경험이나 그것에 준하는 지식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의 진실여부를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어떤 사건을 명백하게 입증할 만한 것, 즉 제목과 같이 지표 역할을 하는 것을 통해 진실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전자의 경우는 미적 경험상 일부에 해당되기 때문에 큰 효과를 보기 어렵다. 후자의 경우에도 제목과 같은 지표에 의존해야만 하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이미지는 그에 따른 텍스트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마크 로스킬, 데이비드 캐리어,『시각이미지의 참과 거짓』, 이계숙 역, 눈빛, 1996, pp. 184-186 참조.] 일례로 우리가 실제로 본 적이 없는 '철수'의 그림은 작가가 날씬하게 표현하든 뚱뚱하게 표현하든 그 제목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최희선_사막 또는 설탕_설탕, 형광등, 합판, 설치, 사진_250×300×300cm_2003_부분





황은옥_# 1_비디오_00:01:10_2001_still



재현 대상에 대한 지향과 믿음 ● 따라서 진실과 허구를 제대로 구분하고 작품을 본다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진실과 허구간의 구별이 작품감상에서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다음을 통해 이를 생각해 보자.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신화 혹은 전설과 같은 허구의 경우는 모두 진실치 못한 것인데 왜 우리에게 정서적인 영향을 미칠까? 그리고 비실재적인 허구의 대상들이 묘사된 그림을 왜 진지하게 보고 받아들일까? 이에 대해 미국의 철학자 단토(Arthur C. Danto)는 "실제 존재하지 않는 경우라도 그 대상에 대해 믿음을 갖고 지향하면 그것으로 그 대상의 존재가 성립될 수 있다"[단토는 재현을 두 가지로 구분했다. "하나는 재현의 내용을 뜻하는 '재현의 내적 의미(an internal sense of representation)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의 모방을 지시하는 것을 말하는 '재현의 외적 의미(an external sense of representation)'이다." 단토는 따르면, 전자는 '그림'의 개념으로 닮음의 관계가 성립되며 내용에 관한 인식이 요구되는 반면에 후자는 닮음과는 상관이 없는 어떤 것이 어떤 것이라도 재현할 수 있다. Arthur C. Danto, The Transfiguration of the Commonplace: A Philosophy of Art(Cambridge, Mass: Harvard University Press, 1981), p. 17; 오종환, "재현과 허구의 관계에 대한 고찰: 회화적 재현을 중심으로", 미학 22, 1997, p. 130에서 재인용.]고 주장했다. 이는 결국 그것이 진실이든 허구이든 그 재현 대상을 지향해서 그 의미와 가치를 가질 수 있다면 그 대상의 존재 의의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단토의 주장을 통해 우리는 허구적인 작품에서 어떤 이유로 정서적, 이성적 영향을 받는지에 대해 이해를 구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다른 시각매체인 사진의 경우는 어떠한가. 회화가 실존하는 것이든 아니든 지간에 대상에, 믿음을 통한, 지향적인 관계를 갖는 반면, 사진은 실제의 대상이 반드시 존재해야만 하는 인과적 관계를 갖는다. 예를 들어 경아의 어머니를 찍은 '어머니'란 제목의 사진이 있다면 사진에 있는 경아의 어머니는 반드시 존재하거나 존재했어야 한다. 이러한 이유에서 우리는 사진을 가장 진실된 것으로 본다. 이에 비해 경아의 어머니를 그린 '어머니'란 제목의 그림이 있다면 경아의 어머니가 존재하든 하지 않든지 간에 전형적인 어머니상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결국

사진은 현실을 그 근간으로 하므로 현실이 없으면 사진은 존재할 수 없다는 얘기다. ● 그러나 사진은 현실을 근본으로 하지만 어떤 사진의 이미지는 우리가 알고 있는 대상 이미지가 아닐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대상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만을 기억하는 반면 사진은 사진작가가 갖고 있는 대상에 대한 개념과 해석에 따라, 사물을 작가 임의의 각도와 범위에서 촬영했기 때문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사진가는 사진의 진실성을 이용하여 실제 대상을 자신의 의도에 따라 연출을 하기도 하고 변형, 왜곡시켜 비사실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보여주기도 한다. 이런 경우의 사진은 진실성을 상실했다고 볼 수 있다. ● 따라서 사진은 비록 현실로부터 벗어날 수 없으나 작가의 의도에 따라 작가 임의의 의미와 해석이 담긴 '다시 만들어진 현실'을 담을 수 있는 것이다. 색이 주변에 어떤 색이 놓이느냐에 따라 달리 보이듯 사진 역시 같은 대상이라도 어떤 작가가 어떤 문화와 가치관에 의거해서 찍었느냐에 따라 달리 보인다. 이러한 점에서 사진은 그림에서의 허구와 같은 맥락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대상의 존재 유무를 떠나 그 대상을 지각하고 표상하는 차원에서 유사성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미술작품에서 보여지는 그 시각 이미지에 대해 단토가 말한 재현 대상에 대한 '믿음'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이를 통해 올바른 작품 감상이 가능해 진다.






김희수_작업실 전경_2004



상상과 허구 ● 우리는 작품 감상시에 나타나는 다양한 현상들을 수동적으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탐색하면서 본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작품에서 보여주는 것 이상의 것을 볼 수 있다. 이때 상상력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비사실적인 재현미술을 볼 때 더욱 그러하다. 상상은 규범적이고 직관적이어서 닮음 관계를 통해 발휘된다. 상상하기를 허용하는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일례로 산이 있는 작품을 보면 산을 상상하지 바다를 상상하지 않는다. 이러한 상상은 앞서 언급된 믿음과 연계되어 확장된다. 왜냐하면 어떤 대상을 상상할 때 그 대상에 대한 믿음이 자연스럽게 섞이고 그 믿음에서 야기되는 추리로 최초 상상 이상의 상상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작품에 집중할 수 있는 것도 이러한 믿음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재차 확인할 수 있다.[서민석, "조각작품 감상에서의 본질적 요건들", 예술의전당 학예논문집, 예술의전당, 2003, pp, 147-149. 앞서 단토의 말을 빌어 그것이 허구적인 것일지라도 그 대상에 대해 믿음을 가지면 그 대상이 성립될 수 있다고 확인한 바 있다.] 어찌 보면 상상을 통해 작품을 본다는 것은 그 자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감상자가 그 작품을 해석해서 받아들인 감상자만의 '내적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다. 이때 작품을 보고 상상한다는 것은 일종의 또 다른 '허구화'인 것이다. 또한 허구는 '새로움(novelty)'을 창출한다. 이는 허구가 모순과 불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현실과 지속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잘 짜여진 새로운 구조를 가지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허구는 진실에서 오는 '생생함'과 상상에서 오는 '새로움'을 갖는 특성이 있다. 따라서 허구는 예술창작과 감상에 중요한 요건이 되는 것이다. ● 이제까지의 논의에서 미술작품에서의 진실과 허구는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동전의 표리와도 같이 공존하면서 상보관계를 갖는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진실성은 관객이 살아있는 현실의 가치와 철학이 숨쉬는 작품을 선호한다는 점에서, 허구성은 모순적이지만 상상력을 자극하고 현실에 동화될 수 있는 다양한 주제와 소재를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그 필요성이 인정되었다. 또한 작품에서 진실과 허구를 구분하는 것이 사실상 어려울 뿐만 아니라 큰 의미가 없으며 오히려 실제적으로 재현 대상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되는 대상 지향을 통해 올바?
?
감상이 이루어질 수 있음을 살펴보았다. 이때 진실과 허구는 끊임없이 상호 작용하여 양자의 경계를 허무는, 또 다른 진실 혹은 허구의 새로움을 야기한다. 이제부터 우리는 지금까지의 논의를 바탕으로 글 서두에서 혹자가 우리에게 질문했던 "왜 미술작품을 보는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서 작품을 감상해 보는 것은 어떤가. ■ 서민석



참고문헌 ● 마크 로스킬, 데이비드 캐리어.『시각 이미지의 참과 거짓』. 이계숙 역. 눈빛, 1996. / 넬슨 굿맨. 『예술의 언어들』. 김혜숙ㆍ김혜련 역. 이화여대출판부, 2002. / R. Scruton, "Photography and Representation", Arguing about Art, eds. Alex Neil and Aaron Ridley. New York: McGraw-Hill, Inc, 1995. / Julian Hochberg, "The representation of things and people." in Art, Perception, and Reality. Baltimore and London: the Johns Hopkins Univ, 1972. / 오종환, "재현과 허구의 관계에 대한 고찰: 회화적 재현을 중심으로", 미학 22, 1997, / 서민석, "조각작품 감상에서의 본질적 요건들", 예술의전당 학예논문집, 예술의전당, 2003,




zabel (2004-06-28 21:22:28)  





‘行旅-머뭄 없는 머뭄(住無住心)’


박종갑 수묵展


2004_0630 ▶ 2004_0718 / 월요일 휴관





박종갑_行旅_종이에 수묵_2004_부분






초대일시_2004_0630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평일_11:00am~07:00pm / 토.일요일_11:00am~06:00pm







갤러리 정미소

서울 종로구 동숭동199-17 객석B/D 2F

Tel. 02_743_5378








행려(行旅)의 꿈-순수영혼의 인생길 ● 박종갑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영혼의 이미지들은 보이지 않는 영(靈)의 세계를 탐색하고 마주하는 시각적 대화이다 영의 세계에서 만난 혼들은 상처받은 중음신(重陰神)의 모습이라기보다는 투명한 영혼들이다. 이 투명한 영혼에 마주선 독자는 마음의 거울에 비치는 작용에 따라 반응한다. 고요히 말을 걸기도 하고 쓸쓸하고, 낯설고 부유(浮游)하는 영혼의 모습은 우리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마음의 일부이자 낯선 세계 속을 유영하는 또 다른 실재인 것이다.






박종갑_行旅_종이에 수묵_2004





박종갑_行旅_종이에 수묵_2004





박종갑_行旅_종이에 수묵_2004





박종갑_行旅_종이에 수묵_2004



비가시적 영혼과의 대화 ● 혼과 나와 그림자를 삼분하는 이 세계는 보이지 않는 영을 형상적 틀(수묵의 번짐과 음영)로 시각화하면서 영혼과의 대화를 준비하고 있다. 화면 곳곳에서 나타나는 영혼은 상처받은 타자의 분신이면서 상처를 공감하는 내면의 어른거림이기도 하다. ● 외롭고 눈물 짖게 만드는 영혼의 실재는 자아의 감정과 욕망이 겹친 불안과 번민의 자화상이다. 이 번민은 내면에 형성된 에고의 분출이면서 집착과 분별에 시달리는 인간중생의 투영이지만 분별을 넘어서 초탈한 영혼이 되고자하는 수행과 성찰의 염원을 담고 있다. ● 화면에 비치는 영의 실체는 투명한 영혼을 바라보는 독자에게 묻는다. 나는 왜 왔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






박종갑_行旅-사막에서..._종이에 수묵_2004





박종갑_行旅-사막에서..._종이에 수묵_2004 / 박종갑_行旅-사막에서..._종이에 수묵_2004





박종갑_行旅-사막에서..._종이에 수묵_2004



행려의 풍경 ● 행려의 풍경은 교차 반복되는 영혼과 인생길에서 세계의 근원을 찾으려는 순례의 여정이다. 이 순례의 여정을 함께 하는 마음이라는 복잡한 실체는 내면의 상처와 본능을 드러내면서 천변만화한다. 이 상처와 본능을 의식의 표면위로 부상시켜서 예술행위로 옮겨놓는 것, 이 상처와 본능의 의미들을 성찰하는 것, 이 억압된 내면의 장애를 제거하고 마음의 평화를 구하는 것, 이것이 행려의 풍경에서 터득한 지혜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세계의 내외면을 탐색하는 여정인 것이다.






박종갑_行旅-‘사리부도’_종이에 수묵_2004 / 박종갑_行旅-‘야경’_종이에 수묵_2004





박종갑_行旅-‘後後’_종이에 수묵_2004



원초적 풍경이 펼쳐진 사막(사막에서)이라는 시공간은 광막한 우주와 인간존재의 한계를 느끼기에 충분한 곳이다. 진리의 설법을 구하기 위해 천축국으로 가는 혜초의 길처럼 건조하고 목마른 고행이 함께 하는 이 길은 너무도 고통스러워 영혼도 증발해버릴 것 같은 풍경이다. 진리의 길은 멀고 험하며 영혼의 동경은 강렬하다. ● 「숲-인적이 드문 길」, 「대숲에서 만나다」 등의 작품은 낫선 공간에서의 체험과 느낌이 드러나 있다. 인적이 드문 숲에서 만나는 풍경은 영활하고 생동적이면서 신비적인 영성을 느끼게 함과 동시에 낯설고 생경하다. 이 낯설음은 이 풍경을 바라보는 존재의 범속함이 만든 것이고 잃어버린 영성의 드러난 풍경이다. 대나무 숲은 낯설게 대면하는 인간들의 관계에 대한 은유적 장치이다.






박종갑_行旅-‘빙의’_종이에 수묵_2004





박종갑_行旅-‘빙의’1/2/3_종이에 수묵_2004



「탈각(脫却)」, 「야경」, 「후후(後後)」 등의 작품에서는 도시와 주변의 밤풍경 속에 빙의(憑依)된 영혼들의 혼무가 펼쳐진 풍경들이다. 어둠 속 쇼윈도우의 창에서 어른거리는 도시의 야경(夜景)은 죽어있는 신성처럼 빛을 발하고 있지만 개별영혼이 혼재된 꿈을 꾸는 거주지이다. ● 지표면에 깔린 그림자와 그 그림자 속의 나는 영혼거주에 대한 의식투영의 반영이고 탈각된 영혼을 만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다.






박종갑_行旅-‘脫却’2_종이에 수묵_2004





박종갑_行旅-‘脫却’1_종이에 수묵_2004



박종갑의 작품에서 만나는 행려의 꿈은 비가시적 영혼과 대화하려는 존재의 꿈이다. 불완전한 존재의 욕망인 집착과 분별을 넘어 순수투명한 초월적 영혼을 만나려는 행려의 여정인 것이다. ■ 류철하



angra (2004-06-29 09:48:50)
방병상 전시회는 정말로 그 사람이 다음 작가상을 탈만한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럽더군... 정말로 전시한 작품들로만 다음 작가상을 탔다면, 아마 다음 작가상도 눈먼돈인게 분명함.
zabel (2004-07-01 14:04:57)  
원래...다음은 작품심사를 한다음에...그사람이 제작한 그 이후 작업으로 이듬해 전시를 하기때문에 정확히 그작업으로 작가상을 탔다고 할 순 없지만...주변에서 방병상을 두고 말을 들어보면...솔직히.
참...불쌍하신 분임...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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