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rtrait-pia 공상적 초상
신선주 사진설치展
2005_0831 ▶ 2005_0906

신선주_Coaster_컵받침 플레이트에 폴라로이드 이미지_3.5×3.5×0.12in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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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0831_수요일_06:00pm
갤러리 토포하우스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4번지
Tel. 02_734_7555
www.topohaus.com
아티스트 신선주의 매혹적인 사진들에는 인간성에 관한 토포그래피(topography) 그 이상이 담겨 있다. 그 사진들 속에는 성격, 문화, 인종, 연령의 외면이 내포되어 있다. 신작가는 새들이나 하늘에게는 대체로 익숙한 그런 관점으로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게 하는 사색적 시선을 제공해준다. 그러나 이들 사진의 이미지는 매우 순수한 시각적 운문이다. 개별적으로 보아도 그렇지만 신작가가 전시회에서 창조해 낸 정교한 망(grids)속에서 하나로 통합해서 볼 때에도, 그 이미지들은 머릿결, 즉 우리의 머리를 꾸며주는 머리카락의 대조적 상태, 다시 말해 꼬이거나 부드럽거나, 아니면 일직선이거나 곱슬거리거나, 혹은 숱이 많거나 적거나 하는 그러한 대조적인 면에 대하여 찬양하고 있다. 이런 말을 해도 될는지는 모르지만, 미국의 베트남전 시대를 다룬 뮤지컬 ‘헤어(Hair)’의 주제곡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떠오른다. 역시 ‘헤어(Hair)’라는 제목의 그 노랫말은 머리카락이 순응의 자유요, 표현의 근원이며 정체성이 존재하는 생기발랄한 장소임을 나타내고 있다. 정말 흔한 부분이면서도 이토록 많은 것을 발견할 수 있고 이 같은 거대함을 엿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우리의 시선을 별로 사로잡지 않았던 머리라는 곳이다. 하지만 그 곳에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우리 자신이 존재하는데, 이것을 신작가는 예리하게 접근하여 포착했다. 이러한 탐구를 통해 신작가는 자신의 주제가 매우 강렬한 것임을 상기시켜준다.

신선주_Dr. Kroah_컬러인화_90×100inch_2002

신선주_Grid Pattern Installation_컬러인화_각 30×30inch
우리의 머리칼이 오래 전부터 정체성의 팔레트로 인식되어옴에 따라, 여러 집단들은 표시 스타일, 즉 패턴을 만들어냈다. 현대 미국 흑인들이 머리칼을 꼬고 땋는 스타일은 1800년대에 도망친 노예들을 인도하기 위한 표시 및 패턴을 직접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 자신에 대한 의식, 즉 개인주의적 의식과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상기시켜 주는 것은 머리칼의 부재인 것 같다. 군대에서 신병들이 머리를 미는 관습이나 승려들이 개인적 표현을 일체 삼가고자 했던 삭발, 또는 역사적으로 전쟁 시 나치나 이와 비슷한 집단이 적군의 인간성을 말살하기 위해 단행했던 삭발 등을 떠올려 볼 때, 머리를 민다는 것은 개개인 및 그 정체성을 나타내고 개인의 유일감을 결정하는 많은 것들을 밀어내는 것이나 다름 없다. 하지만 여기 나온 것은 전부 머리로 채워진, 대부분은 머리칼에 관한 수 십장의 사진이요, 이미지이다. 그래서 신선주 작가의 사진을 보면, 아이러니한 경험을 갖게 된다. 즉 이 사진들은 진실을 밝히는 사진의 (무)능력함에 대해 나타내는 것만큼이나 외양에 대해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신작가가 찍은 인물들은 우리의 시선과 가정, 우리 나름대로 갖고 있는 주관적 예측에 무방비 상태로 열려있다.

신선주_Jacob_컬러인화_30×60inch_2002

신선주_Grace_컬러인화_8×8inch_2003
우리는 이들이 누구며, 어떻게 생겼고, 어떤 견해를 지니고 있으며,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은 무엇인지 상상하게 된다. 우리는 이들의 키가 작은지 큰지, 말랐는지 뚱뚱한지, 동성애자인지 이성애자인지, 나이가 어린지 들었는지 결정한다. 하지만 신작가가 찍은 각 인물의 이름은 우리가 알 수 없다. 간혹 사진을 보는 사람들 중 누군가가 어쩌다 알아보는 일이 생기지 않는 한, 이들의 정체성, 즉 이들이 누구인지는 사실상 알려지지 않은 상태이다. 그리고 Ethan, Nicole, Jasmine, Colin, Grace 및 기타 인물에 관하여, 전부는 아니더라도 대부분 우리가 알게 된 것들은 전적으로 우리 자신의 편견이다. 동시에 신작가는 우리를 유혹하고 조소하는 듯 하다. 그녀는 우리를 유인한 후 면전에서 문을 꽝 닫아 버리고 있다. 안 그런가? 그녀의 사진 이미지들은 통합적으로 보거나 하나의 집합체로 볼 때, 어떤 선언 공동체, 즉 우리 모두는 서로 다르지만 잘 알려진 하나의 배에 함께 타고 있으므로, 각자 다른 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같은 차원 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하나의 성명서인 것이다.

신선주_Sarah_컬러인화_8×8inch_2003

신선주_전시관경
나이가 든 백인 남성 Conner는 뉴 에이지 라스터파리안(Rastafarian)인 Jasmine 옆에 앉아 있다. Jasmine은 Emma의 땋은, 전형적인 젊은 머릿결 위에서 쉬고 있다. 이러한 모습들은 Bailey의 불타는 듯한 머리에서 발견되는 젊음의 고뇌 오른 쪽에 나타난다. 우리는 이런 저런 가정이 맞는 것인지 결코 알 수 없으나, Conner, Jasmine, Emma, Bailey 및 기타 인물들은 현재 한 집단 공동체의 일부가 되어 있다. 신선주의 사진 이미지들은 Emmett Gowin나 David Maisel 같은 작가들의 현대 토포그래피 탐구를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사진작가들의 작품은 우리의 책무 및 세상에 대한 우리 생활 관계가 지닌 다양한 양상을 확인함으로써, 또 그리하여 하늘에서 우리가 자신의 소유감을 투사할 대지를 반영함으로써 세상과의 친밀함을 만들어 내고자 했던 반면, 신작가는 우리에게 가장 개인적이고 우리와 가장 밀접한 ‘잔디풀밭’에 주목하여 렌즈의 초점을 맞추었다. 이 풀밭을 통해 신작가는 다양한 세계 및 우리의 욕망이 지닌 모습을 하나의 통합된 개체의 일부로서, 또 동시에 따로 떨어진 개별체로서 보여주고 있다. 결국 오늘날 주목을 받고 있는 신작가의 추상성은 우리로 하여금 가장 진실한 의미에서 편견, 선입관을 버리도록 하고 있으며, 우리의 시선이 머릿결의 사각거림과 출렁임, 인간의 머리칼이라는 무성하게 우거진 덤불과 건조하고 메마른 단면을 타고 이동하도록 해 준다. ■ 아리엘 샨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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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naver.com/g_jinsun/1400145730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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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anger than...
이진향 회화展
2005_0901 ▶ 2005_0907

이진향_전시엽서_2005
초대일시_2005_0901_목요일_07:00pm
다빈치 갤러리
서울 마포구 서교동 375-23 카사플로라 빌딩 지하
Tel. 02_6409_1701
blog.naver.com/64091701
자화상- 마음으로 보는 시각의 창 ● 다친 눈의 자화상. 이진향의 작품은 다친 눈의 자화상이다 자화상을 그린다는 것은 자신의 정체에 대한 의문을 동반한다. 작가에게 있어 자화상은 면밀한 내면의 기록이다 기실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그린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일체의 가감없는 기록과 관찰속에서만 내면의 진실이 솟아오르게 된다. 지우고 싶으나 지울 수 없는 것, 감추고 싶은 나의 기록이 솟아오를 때면 괴로움으로 도망치고 싶은 충동이 마음을 미치게 만든다. 그러나 화면의 자화상으로부터 도망치는 순간 또 다른 인격이 나를 붙잡는다, 원망스럽지만 다시 보게 되는 또 다른 나의 인격- 자아의 이중경험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작가는 어렸을 때 다친 눈 때문에 한번도 제대로 된 자화상을 그려본 적이 없다. 안 다친 눈을 보고 그려서 완성한다든지 실제모습이 아닌 많이 왜곡된 자화상을 그렸다. 그러던 어느 순간 실제 모습을 응시하고 자신의 눈으로 세계를 받아드리며 반응하겠다는 자의식이 작가가 자화상을 그리게 된 동기이다.

이진향_이진향_장지에 채색_130×162cm_2004

이진향_이진향_순지에 먹_130×162cm_2005
일반적으로 눈은 한눈으로 거리감각을 한눈으로 입체적 정위를 확인하며 두 눈의 인식차로 인해 개별 사물을 인지한다 이러한 인지 속에 사물에 대한 공간감, 깊이, 시각적 인식이 가능해지고 사물에 대한 검증이 이루어진다. 두 눈이 주는 시각적 인지의 불편은 마음의 불편함으로 자라나고 세계는 온전히 나에게 다가오지 않는다. 자화상은 이러한 불편한 심리상태속에서 자아의 인격을 확인하고 또 다른 내면의 진실을 확인하려는 자아의 기록이다.

이진향_이진향_순지에 채색_130×162cm_2005

이진향_이진향_장지에 채색_130×162cm_2004
보색대비- 색채를 통한 내면 감정 ● 이진향의 작품에서 주의해서 보아야할 것은 색조이다 붉은 색의 바탕위에 청회색의 자화상이라든지 노란 연두빛에 검은 보라의 색채 또는 연 하늘에 붉은 자화상들은 정확한 보색의 대비속에 강렬한 시각적 충격으로 다가온다. 우선 장지와 한지의 흡수력에 다양한 색감을 연출하며 화면을 흡수하며 발산한다. 흡수하며 발산한다는 것은 먹의 적절한 조절속에서 색조들은 강렬한 보색이면서 침작한 색감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색의 일정한 균형을 맟추고 먹을 가미함으로써 흔들리지 않은 감정의 균형을 색채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스며들 듯 분사하는 보색의 대비는 자화상이 뿜고 있는 시선의 힘과 더불어 독특한 공간감을 연출하고 있다.

이진향_이진향_장지에 채색_91×116cm_2004
화장에 감추어졌던 내면의 감정은 놀람 원망 두려움 어이없슴 무거움 등의 감정이 무표정한 얼굴의 정형성 위에 다양한 색감으로 전개되어 나타난다. 화장으로 자신을 가렸던 것은 외적인 인격의 가면, 이진향의 페르소나이지만 자화상을 통해 나타난 또 다른 인격은 다양한 색감의 감정표현속에 가리지 않은 자아를 드러낸다.

이진향_전시관경_2004
실제적인 그리고 담담한 세상응시 ● 이진향의 인물 자화상은 전면적 자화상의 얼굴을 대상에게 투여하기 보다는 적절한 색감을 가함으로써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내면의 감정과 시선을 적절하게 담고 있다. 색은 마음을 담고 눈은 세상을 응시한다. 작가의 인물자화상은 개인의 상처와 고통을 담고 절망과 희망이 교차한 채 현실을 부정하지도 긍정하지도 않으면서 담담히 세상을 응시하고 있다.
재료나 기법은 유지하면서 현실의 주제를 투사시킨 이진향의 작업은 먹의 적절한 조절속에 보색의 대비를 통한 감정의 발산, 대상을 받아들고 발설하는 시선의 힘, 자신의 대면하는 주제의식을 작품속에 투사하고 있다. ■ 류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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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ndscape
the 5th Photo Festival Views & Vision
2005_0826 ▶ 2005_1002

풍경 LANDSCAPE Views&Vision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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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0826_금요일_05:00pm
김도균_노부요시 아라키_니콜라스 휴즈_로미 아키튜브
로드니 그레이엄_마이크 페리_미와 야나기_박경택_박형근
박홍천_백승우_사이먼 놀포크_쇼인 카지_올라 콜마이넨
특별전시_피카소 Picasso by Andre Villers
2005_0826_금요일 ▶ 2005_0920_화요일_가나아트센터
피카소 사진 50여점 전시
가나아트갤러리
서울 종로구 평창동 97번지
Tel. 02_720_1020
www.ganaart.com
국내외 7개국, 작가 14인의 풍경 사진 및 영상 70여 점 전시 ● 『풍경 LANDSCAPE Views&Vision』展에서는 전통적으로 사진의 가장 주요한 장르였던 “풍경”을 대전제로 한 현대 사진 및 영상 70여 점을 본다. 김도균, 박경택, 박형근, 박홍천, 백승우를 비롯, 로미 아키튜브Romy Achituv, 노부요시 아라키Nobuyoshi Araki, 로드니 그레이엄Rodney Graham, 니콜라스 휴즈Nicholas Hughes, 시요인 카지Syoin Kajii, 올라 콜마이넨Ola Kolehmainen, 사이먼 널포크Simon Norfolk, 야나기 미와Yanaki Miwa, 마이크 페리Mike Perry 등 영국, 캐나다, 폴란드, 나이지리아, 이스라엘과 한국, 일본 등 국내외 7개국으로부터의 작가 14인의 사진 및 영상 70여 점이 선보이며, 현대의 변화하는 환경과 미술의 흐름 속에서 풍경 사진의 단면을 짚어보는 자리이다.

김도균_F.A-3_컬러인화_120×150cm_2003

박경택_the Plant Nation_컬러인화_67×200cm_컬러인화_2004
풍경사진의 어제와 오늘 ● 최초의 사진이자 풍경사진인 니엡스Joseph-Nic?phore Ni?pce 의 「창문에서 본 조망, 1826」과 다게르Louis Jacques-Mand? Daguerre 의 「탕플르 거리 풍경, 1838」을 통해 알 수 있는 바처럼 풍경 사진의 역사는 사진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다. 이후 미국에서의 지질, 지형학을 위한 사진과 1930년대 안젤 아담스Ansel Adams, 현실에 대해 발언하는 보도사진과 예술로서의 사진의 경향 등을 거치면서 발전해 왔는데, 이제 어떻게 가장 현실과 가까운 상VIEW 을 잡아내는가 하는 최초의 고민을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환경 뿐 아니라 산업화, 도시화로 변화한 우리의 환경, 그리고 이를 통해 미학적 문제 뿐 아니라 개인적 환타지나 경제, 사회, 정치적 문제에 대한 발언까지 담아내는 작가의 다양한 의도들을 보여주고 있다. 즉, 사진예술의 약진과 기술의 확산 등으로 오늘날 풍경 사진은 단편적으로 눈에 비친 단순한 순간의 리얼리티를 잡아내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내적 감성을 표출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자리매김하였다. ● 새로운 미디어에 대한 집약적인 관심으로 전환하고 있는 현대미술. 그 전환점에서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현대사진은 다양한 표현 가능성과 시각의 확장을 통해 단순한 기록의 매체가 아니라 새로운 현대미술의 요체로서 자리 잡고 있는 가운데, 이제 풍경 사진은 렌즈를 통해 외적 환경VIEW을 담아내는 것 뿐 아니라 작가들의 내적 발언VISION을 드러내는 무대와도 같다. 이제 어떠한 것도 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그 안에서 펼쳐지는 풍경은 실제든 혹은 연출된 것이든 우리가 처한 환경이며 우리를 둘러싼 환경의 산물이다.

박형근_Untitled-3_컬러인화_100×125cm_컬러인화_2003

박홍천_Seoul II_컬러인화_403.5×311cm_2001-2003_세부
21세기 풍경 사진 : 카메라 렌즈를 통한 외적 시각VIEWS과 이를 매개로 표출하는 내적 발언VISION의 방법들 ● 설경이나 바닷가, 하늘 등 자연의 풍경을 잡아 낭만주의적 전통을 이은 신비화 대상으로서의 자연을 보여주는 마이크 페리, 니콜라스 휴즈, 노부요시 아라키, 쇼인 카지와 로미 아키튜브, 변화한 우리의 도시, 산업 환경 속에서 색채와 속도 등 현대적 조형감각과 미감을 잡아내는 올라 콜마이넨, 김도균, 박경택과 박홍천, 정치적 힘겨루기에 의한 희생지의 폐허 속 아름다움을 잡아내는 사이먼 놀포크, 그리고 만들어진, 혹은 조작된 풍경으로 현대사회 및 개인적 환타지에 대해 발언하거나 사진을 통해 본다는 것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 제기를 하는 야나기 미와, 박형근, 백승우와 로드니 그레이엄 등에 이르기까지 이번 전시를 통해서는 풍경이라는 주제 하에 14인의 작가들의 각기 다른 풍경에 대한 다양한 시각VIEW 과 발언VISION 을 접할 수 있다. ● 이번 전시는 세계 규모의 기획전 및 아트페어, 미술품 경매시장에서 점점 그 입지를 넓혀가고 있는 사진예술의 매력을 실감할 수 있는 자리이다. 한 때 붐이라 할 만큼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던 사진예술은 이제 다양한 매력을 선보이며 본격적으로 안정적 궤도에 진입하고 있는 양상이다. 이러한 흐름의 바탕에 있는 국내외 실력파 중진 사진작가들의 매혹적인 사진 세계를 경험하는 자리이다. ● 더불어 해외 거주 젊은 한국 사진작가들의 작업에 주목한다. 김도균, 백승우, 박형근 등 바탕에 어릴 적부터 경험한 한국의 풍경을 깔고 외국에서 체류 및 공부하며 체득한 서구 사진의 이론 및 전통과 만난 이들은 특수한 환경 속에서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작가들의 작업은 하나의 흥미로운 풍경의 영역을 구성해내고 있으며, 우리는 그들의 작업에서 하나의 새로운 풍경 사진의 영역을 발견한다.

Andre Villers_피카소_흑백인화_1955
특별전 『피카소 PICASSO by Andr? Villers, 2005. 8. 26 - 9. 20 가나아트센터』 ● 또한 특별전으로 1950년대 현대미술의 거장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와의 만남으로 카메라를 배우고 작가의 길로 들어섰던 앙드레 빌레Andr? Villers 가 찍은 피카소 사진 50여 점을 전시한다. 작업실에 있는 모습에서 아주 사적인 순간까지 1950년대부터 피카소와 함께 하며 거장의 다양한 순간순간을 잡아낸 그의 사진을 통해 거장 피카소의 예술가로서 뿐 아니라 인간으로서 매우 흥미로운 면면을 발견할 수 있다. 이미 수차례 세계 유수의 미술관 및 갤러리에서는 전시한 바 있는 작가의 유명한 사진 컬렉션으로 서울에서 처음 공개하는 자리이다.



Romy Achituv_Oriental Landscapes ; River, Mountain, Self-Portrait_컬러인화_1998-2002

Syoin Kajii_Nami_컬러인화
■ 풍경 LANDSCAPE Views&Vision展 작가 소개

Nobuyoshi Araki_Untitled from Skyscapes_흑백인화_60×90cm_1999-2001
노부요시 아라키 ● 1960년대부터 도시와 성, 일상과 허구, 욕망과 감성, 매우 다른 종류의 사람과 사물들과 같은 주제를 다룬 “ ‘I' photographs"를 통해 독자적인 자신만의 영역을 열기 시작했던 노부요시 아라키. 그의 사진들은 도쿄의 끊임없이 변화하는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데, 남자와 여자, 하늘과 꽃, 누드, 천국과 지옥, 좁은 통로, 닫힌 방, 당대 사회의 표면과 그 이면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의 일상적인 것과 대조적인 속성들을 표현하고 있다. 이는 흑백 사진과 칼라로 대조적으로 표현되는데, 서로 다른 종류의 시공간이 하나로 합쳐져 하나가 되면서 삶과 죽음의 생생한 대조를 보여준다. 이러한 사진들은 아라키 자신의 삶의 기록이자 동시대 일본 사회의 초상으로 읽혀진다. 이번 전시를 통해 보여주는 하늘은 이러한 의미에서 작가의 기억 속에 소멸과 죽음을 상징하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Rodney Graham_Oak Tree Bluff_흑백인화_76.2×99.6cm_1993-2000
로드니 그레이엄 ● 광활한 자연을 품에 안은 캐나다에서 태어나 계속 작업하는 작가에게 자연은 항상 다루기 쉬운 주제가 된다. 또한 밴쿠버는 특히 자연과 도시가 공존하는 곳으로 개념적인 사진 혹은 필름 작업들이 많이 소개되는 곳인데, 경제원리에 따라 변형되어 가는 도시를 바라보며 잃어버린 것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떠올리게 하는 자신이 경험한 이러한 풍경을 한 그루의 나무와 대비시켜 화면에 담고 있다.
음악, 조각, 설치, 영상 등 다양한 매체를 사용하는 그의 나무를 대상으로 한 작업들은 1980년대를 전후로 10여 년간 몰두한 결과물들인데, 찬란한 빛을 담은 캐나다의 위대한 풍경화 전통에 반하여 주로 밤의 빛을 실험하면서 나무들을 촬영하였다. 마치 오래된 사진관의 사진기 속에 거꾸로 담겨진 가족의 이미지들처럼 흑백의 프레임 속에 거꾸로 선 한 그루의 참나무는 관람자로 하여금 명확한 의미와는 거리가 먼, 보이는 상태에서 그 자체로 의미가 생성되는 것으로 사람들이 사실이라고 믿는 것에 대한 다른 제안을 하면서 완벽하게 이중적인 의미를 드러내고 있다.

Ola Kolehmainen_Untitled_Nr10_컬러인화, 디아섹_180×247cm_2005
올라 콜마이넨 ● 콜마이넨의 사진은 건축과 상당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 그의 사진의 주제는 동시대 유럽의 건물들로 회사 빌딩, 미술관, 아파트, 쇼핑 아케이드, 지하철 역 등의 익명성을 다룬다. 기존의 전문 사진가들이 택하는 전형적인 방식, 즉 건축물을 그대로 보도하는 방식을 따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빌딩의 기본적인 윤곽, 건축물의 시각적인 기록과 관련된 것들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대신 그는 건물이 가지는 지형학적인 구조에 주목한다. 그것은 건물에 삽입된 계단과 난간, 유리로 싼 스틸 구조물들, 연속된 시멘트 모듈, 빌딩 천정의 격자들과 같이 건물과 관련해서 나타난 일정한 패턴이나 리듬감 있는 요소들이다. 이렇게 탄생한 화면은 건축물에 존재하는 미학, 즉 형식적인 측면 가운데 특히 추상적인 형태에 예리하게 초점을 맞춘 결과로서 그의 작품이 20세기 추상미술에 분명히 그 기원을 두고 있음을 밝혀낸다. 그가 선택한 대상, 즉 건물의 세부적 특질과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은 분명 미니멀리즘이 극대화된 것으로 그는 최소한의 형태, 색, 재료를 가지고 시각적, 심리적, 지적인 효과를 얻으려했던 미니멀리스트이다. 또한 항상 대상, 건물의 파사드를 정면으로 클로즈업해서 찍는데, 엄격하게 정면에 포커스를 맞추고 화면의 모든 부분에 균등하게 초점을 둔 이미지는 건축물의 현존성, 거대함을 강조한다.

Simon Norfolk_North Gate of Baghdad-Baghdad Series_컬러인화_101.6×127cm_2003
사이먼 놀포크 ● 위대한 문명화, 그러나 그것은 영원할 수 없으며 이로써 인간은 영원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 신에 대한 두려움 혹은 경외의 감정을 갖는다. 그러나 놀포크는 신의 권력이 아닌 현대 살상 무기들이 가진 힘에 대한 두려움을 화면에 담고 있다. 그가 담아내는 자연은 시간과 공간에 따른 변화를 그대로 허락하는, 시간의 층위가 그대로 드러나는 장소이다. 그것이 자연에 의한 것이든, 아프가니스탄 시리즈와 같이 전쟁 혹은 현대적 무기들에 관한 것이든. 문명 이전의 자연, 그 위대함이 사라진 현재의 풍경을 거울처럼 비추고 있다. 그의 작품은 인간의 역사 특히 재해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서정적으로 담긴 풍경이다.

Miwa Yanaki_B3F_컬러인화
미와 야나기 ● 엘리베이터 걸 시리즈에서 야나기는 모델들에게 동일한 복장을 입히고 그룹을 지어서 일렬로 서게 하든가, 다같이 바닥에 앉게 하는 등 동작을 지시한다. 작품에 담긴 직선과 곡선, 정지와 움직임 등은 모두 작가에 의해 절대적으로 통제된 것들이다. 처음 살아있는 조각과 같은 작업의 형태로 이러한 엘리베이터 걸의 장면을 실제로 만들었던 그가 사진으로 옮기게 된 것도 실제의 상황에서는 이러한 정지 상태를 작가 스스로 완벽하게 통제하기 어렵다는 것을 확인하였기 때문이다. 모두 같은 색으로 맞춘 모자와 신발, 공허한 웃음 등은 일본 사회의 상업성에 비판을 가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본의 젊은 여성들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자기 자신을 구분지으려는 의도로 독특한 스타일을 고집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그룹에 속하길 소망하는 특이한 성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관람객들은 그녀의 작품 속 소녀들에게서 인조인간 같은, 마치 유리상자에 진열된 것 같은 느낌을 받을 것인데, 그렇기 때문에 그녀의 작품은 삶으로부터의 분리를 강조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으며, 단지 풍경의 일부로서 존재하거나 자신들의 정체성을 빼앗긴 듯한, 그런 환경에서 여성들이 느낄 법한 고립감이나 압박감을 비춘 것으로 평가된다. 실제로 모두 다른 개성을 지녔을 소녀들은 화면 속에서 모두 동일해 보인다. 엘리베이터 걸은 디지털 카메라로 실제의 이미지들을 촬영하고 편집하기도 하지만, 컴퓨터로 제작, 편집한 사진 구성도 복합적으로 사용한 이미지 합성의 결과이다.

백승우_Real World_디지털 프린트_121×168cm_2004
백승우 ● 백승우의 사진에는 「Real World」라는 제목이 붙여져 있다. 뉴욕 맨하탄의 고층빌딩을 멀리서 조망한 풍경은 매우 익숙한 것이지만 화면 앞을 가로질러 가는 것이 다름 아닌 이순신의 거북선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나면 작품이 시간과 공간이 제멋대로 조합된 「Unreal World」라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백승우는 흔히 사람들이 사진에 담아갈만한 장소를 그대로 찍기를 거부한다. 그의 큰 화면은 아인스월드(AiinsWorld), 곧 그의 의도대로 구성된 미니어처 공원을 2차원의 평면에 구획한 것으로 사진찍기 위해 지정된 장소가 아닌 다른 지점에 카메라를 위치시키고 의도적으로 낯선 풍경이 중첩되는 장면을 촬영한다. 마치 전경, 중경, 후경이 한 폭에 펼쳐진 동양화처럼 서로 다른 풍경을 단계적으로 드러내는데, 이를 통해 우리가 속한 현실세계의 표피성에 대해서 발언하고자 한다.

Mike Perry_#17_컬러인화_152×177.8cm_2001-2003
마이크 페리 ● 어떤 특별한 중요성이나 구분될 만한 특징 없는 수많은 물결이 끝없이 고요하게 밀려드는 해변시리즈(Beach Series)에는 구름 혹은 뿌연 안개, 짝을 이룬 조약돌, 작은 바위들이 모두 회색 또는 황토 빛(Ochre)을 띠고 있을 뿐이다. 언뜻 아무런 것도 보여주거나 이야기해주는 것이 없는 듯한 고요한 바다와 하늘, 돌 가운데서 페리는 볼 만한 가치를 발견한다. 영국의 남부 해안을 따라 운전하면서 동이 틀 무렵, 가는 비가 내리는 오후 한 때 마주하는 해안의 풍경은 권위적인 어떤 순간이나 장소가 아닌 그 자체로 표현적인 자연이다. 하나 하나의 그리드로 통제가 된, 수평의 패널에 꽉 찬 해안의 이미지는(하나 하나의 그리드로 통제가 되어) 풍경 사진의 목적이 반드시 하나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닐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시리즈로 반복되는 하나의 주제뿐 아니라 동일한 그리드를 반복하는 형식을 가진 그의 해변시리즈는 엄격한 구성 틀에 맞춰진 추상회화를 떠올리기도 한다. 페리는 특히 중성색의 미묘함을 보이는 어느 순간의 바다를 담기 위해 색조(hue)나 색 대비(contrast)에 있어서 어떤 컴퓨터 조작도 가하지 않고 가능한 객관적으로 묘사하기위해 애쓴다. 이러한 그의 작업은 해변의 사실적 풍경을 담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시각적인 경험과 정서적 측면 모두에 있어서 명상이 가능한, 추상회화와 동일한 언어로 관객과 소통한다.

Nicholas Hughes_Untitled_Snowscape series_컬러인화_25.4×30.5cm_2004
니콜라스 휴즈 ● 휴즈의 작업은 인간이 거주하는 세계와 자연이 여전히 그 자체로 그 소유를 주장하는 곳 사이의 공간을 실험한다. 이 중간 지점에서 인간의 영혼의 존재와 그것의 자연과의 관계를 탐험하려고 애쓴다. 그의 한없는 지평선에 대한 명상은 결코 낭만적인 것에 대한 지각은 아니다. 그 이유는 그에게 있어서 자연은 끝없이 거대하고 빠르게 소실되는(사라지는) 신비로운 것이기 때문이다. 경계, 광야, 그리고 표면들에 초점을 맞추면서 그는 한계의 존재를 인식하고 자연과 인류 모두를 위한 미래를 명상한다. 그의 작품은 런던 지하철의 ‘플랫폼’ 프로젝트에 선정되어 보여지기도 하였다. ■ 가나아트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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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tal Theater Alice
공감각적 중장비 총체극
2005_0907 ▶ 2005_0914

Total Theater Alice-공감각적 중장비 총체극_포스터_2005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Total Theater Alice-공감각적 중장비 총체극 홈페이지로 갑니다.
공연일시_2005_0907_수요일~0914_수요일_09:00pm
기획 및 연출_김은영_홍성민
안무_김현진_서현석 / 음악_바람곶(박우재_신현식_이아람_주보라) / 의상_홍서연
출연_곽재원_구본주_김나리_김지은_김현정_신강수_오창익_유지나_윤보애_이동윤_정동환 외 다수
후원_계원조형예술대학_한국문화예술진흥원_MINI(BMW)
협찬_대안공간 LOOP_쌈지길_LADY 트랜스젠더 클럽
영상작품의 차용을 허락해준 김범님에게 감사합니다
토탈 씨어터 앨리스 : 또 다른 발견 ● 영화와 연극을 나누는 차이에 대해서 여러 가지 관점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 중 본질적인 것 한 가지는 다음과 같다 : 영화는 상상의 재현을 '지연된' 공간 속에서 다루는 반면 연극은 그것을 '지금, 여기'에서 현실화한다. 영화는 수많은 작은 분리된 기호들의 통조림 속에 꿈을 주입한 뒤에 그것을 이음매 없는 장치로 조합해지만 연극은 기호들을 한데 모아 완벽하게 새로운 현실을 생산하는데 소진한다. 그러므로 항상 동일한 가공의 시간을 무한히 반복해서 보여주는 영화 대신 우리가 연극에서 만나는 것은 매번 현실의 시간이 마법처럼 새롭게 변형되는 '이 곳'의 예외성, 즉 무대의 초월적 '지금'이다.

Total Theater Alice-공감각적 중장비 총체극_리허설뷰_2005

Total Theater Alice-공감각적 중장비 총체극_리허설뷰_2005

Total Theater Alice-공감각적 중장비 총체극_리허설뷰_2005
이러한 연극적 공간의 독자성은 때로는 현실을 재현하는 리얼리즘 서사 속에서 관습적 상징처럼 다루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연극이 서사의 전달에만 충실할 경우 제도적 흔적으로만 간주될 수도 있지만, 역시 그것의 본령을 가장 극대화하여 드러내는 것은 연극이 현실로부터 가장 낯선 곳으로 이주해 갈 때, 기호들의 완전히 새로운 잠재성을 드러낼 때이다. 이러한 연극의 역사를 우리는 서커스와 잔혹극, 초현실주의 혹은 구성주의의 다양한 시도들, 레이몽 루셀(Raymond Roussel)에서 로버트 윌슨(Robert Wilson)에 이르는 현대연극의 탈-언어적 노력들 속에서 발견한다. 이들이 상상하는 세계에 대한 가장 적절한 참조는 세계의 무한성, 즉 모든 가능한 세계들의 존재를 주장한 16세기의 철학자 지오르다노 브루노에게서나 혹은 "세계는 일어나는 모든 것"이라고 주장한 비트겐슈타인에게서 찾아질 수 있을 것이다.

Total Theater Alice-공감각적 중장비 총체극_리허설뷰_2005

Total Theater Alice-공감각적 중장비 총체극_리허설뷰_2005

르네 마그리뜨_위협적인 암살자(The Menaced Assassin)
세계의 잠재성은 어느 때고 그것의 머리를 든다. 그것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은 동일성의 동굴 안으로 항상 떨어지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바깥'이라고 부르는 곳으로부터 들어오며 우리가 그것의 공고함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현실'이라고 부르는 세계의 근저를 변형시킨다. 20세기 전체를 통틀어 가장 놀라운 예술형식을 거론하자면, 그것은 바로 이러한 세계의 양태를 다루기 시작했던 초현실주의이다. '초현실'은 예술적 양식(style)이 아니라 세계의 양태(mode of the World)다. 레이몽 루셀은 이것을 관찰할 필요성에 대해 언급하면서 20세기 연극에, 푸코의 표현을 빌면, '의미관계'(signification)가 아닌 '유사성'(resemblance)에 근거하는 재현의 공간을 복원시켰다. 그것은 언어가 세계로부터 분리된 상호-참조적인 네트워크가 아니라 사물들과 직접 교호하는 자발적이고 개방적인 구조로 진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의미는 불안정하지만 빛을 일으키며, 모호하지만 강렬한 사유를 생산하고, 세계의 장소들로부터 떠올라 먼 거리를 가까운 관계들로 대체해 나간다.

Total Theater Alice-공감각적 중장비 총체극_리허설뷰_2005

Total Theater Alice-공감각적 중장비 총체극_리허설뷰_2005
'컬트 로보틱스'에 이어 김은영과 함께 '앨리스'를 선보이는 홍성민은 이러한 유사관계의 현존을 전혀 용납하지 않는 우리의 현실 속에서 매우 놀라운 존재감을 불러일으킨다. 마그리트의 회화와 대중매체의 약품광고 캐릭터,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와 트랜스젠더(앨리스)가 갑자기 굳건한 근친성의 장(場) 안에 모여드는 것은 사실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광경이 아니다. 게다가 무대는 '쌈지길' 내부의 나선형 램프(ramp)로, 관객들은 전통적 연극에서라면 자신들이 바라보아야 할 곳으로부터 '객석'이 위치하는 곳을 바라보아야만 한다. '컬트 로보틱스'에서도 적용된 이러한 원칙 -무대와 객석의 전도(顚倒)-은 이 연극이 갖는 의식적 구조의 얼개에 해당하는데, 홍성민이 주장하는 '공감각적 디졸브' 즉 언어의 의미->이미지->사운드->냄새 등의 전이를 통해 시각중심에서 '감각의 민주화'를 이루어 내기 위한 장치로 활용하기 위함일 것이다. ● 관객들은 이 연극이 재현하는 현실을 이해하기보다는 '발견'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예술이 보여주는 것은 '가까운' 것도, '이해하기 쉬운' 것도, '친숙한' 것도 아닌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보여주는 것은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거나 인식하려고 하지 않는 세계의 '양태'다. 관객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바로 그런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납득할 수 있는 '자질'이다. ■ 유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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