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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B씨와 사진 이야기를 하다가 나온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무엇이 됐든, 억지로 뻘짓거리를 해서 작업을 한다는 비윤리성은 확연히 비난받아야한다. 뭘 위해서 멋대로 약한 자들을 찍어서 자기이름으로 발표하는가 말이다. 사진을 위해서? 씹새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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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연한 이야기지만, 쿤스트립에서 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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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하셀바흐에 설치된 파울 이젠라트(Paul Isenrath)의 작품을 소개합니다.
그런데, 잠깐만요! 어떤 작가들은 자신이 작가라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서 자연공간 속에 자신의 거대한 작품을 세워놓기도 합니다. 그런 작가에겐 동정심을 보낼 수 밖에 없지요. 어떠한 형태를 만들어서 자연공간을 더 아름답게 한다는 의도아래 이러한 일들이 종종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것은 위대한 자연의 섭리에 대해서 우리 인간의 대항이랄 수 있으며, 또한 자연의 완전성에 대해서 매우 협소한 시각을 소지한 일이랄 수도 있겠습니다.
우리는 예술에서 찾을 수 없는 자연이 스스로 창출해내는 그 독창적인 아름다움, 그것 그대로를 즐길 수 있어야 하며, 그의 가치를 깨달아야 하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 이렇게 비뚤어진 전제조건하에 그럼 작가는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자연을 침해한다고 할 수 도 있는 이러한 상황에서 자신의 작품을 자연공간에 설치할 수 있을까요?
베스터 발트의 하쎌바흐를 산책 하다 보면 자연과 어우러진 여러 작품들 사이에서도 거울같이 하늘과 그 주위를 비추는 수면이 눈에 들어옵니다. 물의 수면이 이등변 삼각형의 모양을 하고 있지만 그 수면 주위의 입체적인 기본 형태와는 조금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습니다. 물은 이 삼각형, 즉 작은 댐의 기능을 갖는 이 형태 안에 모여 평평한 수면을 이루곤, 다시 또 흘러 내려갑니다. 이 물줄기는 그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는 조그만 밭고랑 물줄기이지요. 파울 이젠라트는 두꺼운 철판을 이용해 삼각형 모양의 틀을 만들어 붙여서 땅 속에 묻었습니다. 쉬지 않고 흐르는 밭고랑 물이 그 안으로 흘러 들고, 흘러 들은 물은 삼각형 속에 잠깐 머물면서 그 주위의 다른 자연물을 비추고는 다시 밑으로 흘러 내려갑니다.
파울 이젠라트는 이렇게 자연 속에 „고이게 한 물“을 선사합니다. 이미 우리의 눈이 속아넘어가긴 했지만, 우리가 아는 자연 속에서 이 삼각형의 형태는 매우 눈에 띄게 낯설은 요소라고 하겠습니다.

물을 모으고 그렇게 함으로서 자연 속에 자연의 거울을 만들고 거기에 하늘과 구름과 그 주위의 모습들을 반사하게 하는 이 원리를 이젠라트는 자연에서 빌려왔습니다. 이렇게 이 삼각형의 거울 속에서 하늘의 파란색은 잔디의 초록과 만나고 그리고 구름의 흐름은 잔디의 그림자와 만납니다.
이렇게 이 작가, 그리고 인간, 파울 이젠라트는 이 하쎌바흐의 골짜기 속에, 이 자연스럽게 형성된 자연환경 속에 자신의 시각적으로만 포착할 수 있는 이 작품을 삽입시킨 것에 만족을 합니다. 크게 특별히 한 일이 없습니다. 눈에 그리 띄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독특합니다. 더 뭘 표현해야 할까요?
유우숙(뒤쎌도르프, 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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