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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6-21 18:20:10, Hit : 1046, Vote : 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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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론] s e l c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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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대한 개인의 술회는, 대부분 재미있는 법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업은 아니지만 자세의 측면에서 어느 정도 레벨은 잡아드려야할 분.   첫 번째 사진이 깊게 느껴진다.   방향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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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www.fotoful.net



최봉림이 말하는 최봉림
최봉림

 

1989년 봄 서른 살에 사진작가가 되고 싶었다. 소설을 본격적으로 써볼까도 생각했지만 불문학을 포기한 마당에 문학을 더 이상 하고 싶지는 않았다. 글쓰기와 문학적 사유는 자의식의 과잉, 상처받기 쉬운 자존심에 더욱 생채기를 냈고, 조급한 감성은 사진에서 안식을 구하려했다. 두렵기도 했던 것 같다. 변변한 카메라도 없었고 제대로 사진 찍는 법도 몰랐다. 그리고 어느 가족도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래도 허망한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문학보다는 바깥 현실을 바라보는 사진이 나을 거라고 확신했다. 초라하고 밋밋한 의식으로 풍요롭게 빛나는 보들레르 Baudelaire와 랭보 Rimbaud를 읽느니, 밖을 바라보며 사진으로 외부현실을 채집하기로 작심했다. 보잘 것 없는 제 속을 들여다보며 고통 받는 문학보다는 나의 바깥을 응시하는 사진이 좋아 보였다.

서울 달동네 1990
상도동, Gelatin-silver print
해가 지고 있었다. 한 노인이 쓰레기를 소각하고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그의 실루엣은 희극적이었고 근처에 있는 낡은 승용차는 생뚱맞아 보였다.
봉천동, C-Print
넓은 공터에서 아이들이 커다란 불놀이를 하고 있었다. 몇몇은 불길을 뛰어넘으며 겁 없는 용기를 뽐냈고, 겁먹은 아이들은 그들을 경탄의 눈으로 바라봤다. 슬리퍼를 신은 뒷모습의 아이는 분명 짱이리라.   
봉천동, Gelatin-silver print.
비좁은 골목길에서 소녀들이 놀고 있었다. 사진을 찍으려 하자 깔깔거리며 몸을 숨겼다.

촬영과 암실 장비를 대충 구비한 후, 거의 매일 상도동과 봉천동 일대의 달동네를 돌아 다녔다. 카메라 하나에는 컬러 필름을 넣고, 또 다른 카메라에는 흑백 필름을 장전하고 낯선 빈민촌을 이리저리 배회했다. 가장들이 일터로 떠나고, 아이들이 학교로 간 달동네는 화사하게 적막했고, 집안에 남은 아낙네들과 어린아이들은 카메라 가방을 둘러 맨 나를 은근히 경계했다. 학교를 파한 아이들은 여기 저기 몰려다니며 놀았고 셔터를 누르는 나를 신기한 듯 바라봤다. 한 2년 동안 그 달동네를 쉬지 않고 기웃거렸다. 자아를 향하지 않는 의식, 바깥만을 살피는 시선, 노출과 초점에 실패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자의식의 과잉, 병약한 감수성을 치유하는 듯했다. 달동네의 표정과 움직임, 그리고 그곳의 하찮은 사건이 카메라를 둘러 맨 나의 모든 관심사였다. 나를 보지 않는 나에 만족했다. 나를 보지 않게 하는 사진이 좋았다. 얽히고설킨 골목길과 전선줄, 갑자기 튀어나오는 일상의 스펙터클과 돌연히 사라지는 떠들썩함, 꾸밈없는 그들의 표정과 저 멀리까지 펼쳐지는 풍경은 언제나 지루하지 않았다. 그리고 밤이면 암실로 변한 공부방에서 필름 현상과 허접한 프린트를 했다.

사진에 관한 기본을 익히면 프랑스로 가기로 했었다. 프랑스에서 한 3-4년 작가수업을 하면 사진작가로 먹고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립 미술학교 사진과에 2학년으로 들어갔다. 배울 것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별 흥미가 없었다. 동료학생들은 어렸고, 수업은 많았고, 졸업의 대가는 적어보였다. 6개월 다니다 그만 두었다. 명성 있는 국립 미술학교로 옮기고 위해 입학에 필요한 포트폴리오 작업을 시작했다. 우선 독창적이고 싶었다. 파리에서 본 전시회 작품들과 구별되는 새로운 작업형식을 갖고 싶었다. 그런데 새로운 작업형식을 암시한 인물은 사진작가가 아니라 오귀스트 로댕 A. Rodin이었다. 로댕의 <지옥의 문>의 상단부에는 <생각하는 사람>의 미니어처가 삽입되었고, 그의 <성당>은 동일한 오른손의 복제 결합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나의 석고 틀에서 브론즈의 기술 복제을 활용한 로댕은 새로운 사진작업을 모색하는 나에게 일종의 계시였다. 조각가의 유명한 몇몇 작품들이 브론즈 작업의 복제성을 이용한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를 입학을 위한 사진작업에 응용했다.

Photographic Reconstruction
Pencil, Selenium toned gelatin-silver print on Museum board, 148×101.6 cm, 2005.
파리 맨홀들의 형상은 너무나 다양했다. 약 한달 동안 그것들을 찍었다. 길 가던 사람들이 멈춰 서서 나를 바라보고 말을 건네기도 했다. 먼 훗날, 맨홀들이 박물관에 보존된다면, 후세들은 그 용도와 형상의 의미에 대해 많은 질문을 할 듯싶었다. 마치 오늘날 피라미드 속의 상형문자들의 뜻과 형상을 연구하듯이 말이다.
Selenium toned
gelatin-silver print,
22.5x32cm, circa 1992.
‘manhole’이라는 영어단어는 나에게 man과 hole의 합성어로 읽혔다. 인간이 추락하는 구멍, 인간이 빠지는 웅덩이로 말이다. 절망에 빠진 인간의 구덩이, 그 속에서 절규하는 인간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했다. 눈 먼 한 아이가 절망의 울음을 토하고 있다. 뭉크 E. Munch의 <절규>처럼...

Chinese ink, Pencil,
Selenium toned
gelatin-silver print
on Museum board,
148×101.6cm, 2005.
베르사이유 궁의 정원에는 수많은 동상들이 있고, 겨울에는 습기가 스미는 것을 막기 위해 월동 보호막으로 포장된다. 그 형상은 마치 세속적 감각을 잊어버린 수도승 같았다. 종종 부러진 발가락, 손이 삐져나온 동상들도 있었다. 침묵으로도 감출 수 없는 삶의 상처처럼, 눈을 감아도 떠오르는 고통의 상흔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통렬한 비극의 조각상을 건축했다.   


파리의 맨홀들을 닥치는 대로 찍어 이를 피라미드로 재구성했고, 흥미로운 이미지는 단 하나의 독립된 사진으로 만들었다. 동일한 이미지들로 다른 피라미드를 만들기도 했다. 사실 로댕의 브론즈 작업은 사진 작업과 유사한 메커니즘 속에 있다. 우선 브론즈 작업의 원형 석고형은 사진 찍혀진 필름처럼 무한한 기술복제를 가능하게 한다. 하나의 석고형이 동일한 브론즈 작품들을 만들어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 장의 필름은 무수한  프린트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차이점도 존재한다. 브론즈 작업은 복제의 크기를 변환시킬 수는 없다. 다시 말해 브론즈의 원형 석고형은 동일한 크기의 복제만을 반복할 수 있을 뿐이다. <지옥의 문>의 예가 보여주듯이, 이 작품에 삽입된 <생각하는 사람>은 우리가 알고 있는 <생각하는 사람>의 소형 미니어처다. 대형 <생각하는 사람>과는 별도로 제작된 소형 <생각하는 사람>의 석고형에서 청동으로 떠낸 것이다. 그러나 사진은 프린트의 사이즈를 상황에 따라 자유자재로 변화시킬 수 있다. 즉 사진은 하나의 ‘원본’ 필름으로 소형, 대형의 복제 프린트를 자유롭게 행사할 수 있다. 로댕을 본 따 나는 동일한 네거티브 필름의 사진을 상이한 작업에 활용했고, 로댕처럼 동일한 이미지를 단일한 사진으로 혹은 재구성된 작품의 일부분으로 사용했다. 그러나 그 포트폴리오는 무용지물이 되었다. 들어가고자 한 국립학교에서는 포트폴리오를 반려했다. 학부, 대학원에서 미술교육을 전혀 받지 않았기 때문에 편입학 자격이 없다는 것이었다. 너무 난감하여 근처 공원에서 한동안 멍청히 앉아 있었다. 다른 국립미술학교도 그러한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사립학교는 가기 싫었고 그렇다고 한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그래서 미술사학과에서 사진역사를 공부하기로 했다.

그럴듯한 사진역사 연구계획서로 지도교수를 설득시켜 박사준비과정 (D.E.A)에 어려움 없이 입학은 했지만, 미술사 과목 한 번 들어본 적 없고 미술이론 책 한 권 읽어본 적 없는 문외한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한 교수의 미술사 강의는 바사리 Vasari (1511-1574)로 시작됐는데, 나는 노트에 ‘Basari’로 적을 정도였다. 어디 그 뿐이었겠는가? 어떻게 이미지를 해독하고 분석해야 할지 1년간의 박사준비과정이 끝나가도 감을 잡지 못했다. 밤잠을 설쳐가며 부랴부랴 논문을 썼지만 통과에 실패했다. 그때 지도교수 하신 말씀, “작가생활을 하는 것이 좋겠다.” 술을 퍼마시고 인생을 한탄했다. 파리 10대학에서 또 다시 박사준비과정을 시작했다. 논문 작성법을 숙고하고 숙고했다. 이미지를 분석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고민했다. 1년 후 논문 지도교수 하신 말씀, “놀랍다.”

지도교수께서 제네바 대학으로 옮겨가신 바람에 파리 1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게 되었다. 심리적으로 시간적으로 조금 여유가 생겨 사진작업을 틈틈이 해나갔다. 입학 포트폴리오를 위해 입안했던 작업방식을 계속했다. 깔끔하게 그리고 견고하게 사진들을 붙여보려 이런 저런 접착제, 이런 저런 방법을 시도했지만 영 신통하질 못했다. 96년부터 박사논문을 쓰기 시작하면서 사진작업은 완전히 손을 떠났다. <<손의 초상과 사진>>이란 논문에 시달려 사진 찍을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리고 박사학위를 목전에 두니 작가에 대한 열망은 식어만 갔다. 98년 12월에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귀국했다. 그리하여 사진이론 강의하는 최봉림, 사진 평론하는 최봉림이 되었다. 강의는 언제나 주당 20여 시간, 책도 2권 쓰고 번역도 2권 하고, 이런 저런 학술논문도 쓰고 잡문도 썼다. 사진 전시기획도 5번이나 했다. 몸은 피곤하고 시간에 쫓겼지만 언제나 경제적 생활은 어려웠다. 무리한 강의는 학문의 열정을 서서히 소진시켰고, 청탁원고는 글쓰기의 자발성을 서서히 탈진시켰다. 책읽기와 글쓰기의 욕망이 메마른 자리에서 또다시 사진작업에 대한 욕구가 생겨났다.

8년여 만에 프랑스에서 이삿짐으로 부쳤던 암실장비 박스를 뜯었다. 중형, 대형 카메라도 구입했다. 사진 평론가로서 보다는 작가로서 다시 살아보고 싶었다. 사실 마음이 편칠 않았다. 평론가로서 쌓아온 입지를 위험에 빠뜨리는 것 같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작가로서의 성공 가능성에 스스로 의구심을 가졌다. 그러나 사촌형님의 도움으로 작업실을 마련했을 때,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고 마음을 굳혔다. 그즈음 유근택 씨의 인터뷰 기사를 읽었는데, 그의 작업실의 좌우명이, “일하라, 노예처럼 일하라”였다. 감명 받고 되뇌었다. “그래 노예처럼 일하자.” 물론 노예처럼 일하지는 못했지만 회사원만큼은 일한 것 같다. 최소한 ‘9 to 5’는 사진작업을 하고 장비와 작업실을 매만졌다. 대형 카메라에 적응해 나갔고, 암실장비를 개선하면서 좋은 프린트를 얻으려 노력했다. 누가 뭐래도 흑백 프린트에 관한 한, 잘 한다는 조건 하에서, 전통적인 암실 프린트의 우위는 분명하다. 계조도도 훨씬 풍부하며, 젤라틴이 도포된 견고한 종이의 질감과 그 보존성을 디지털 프린트는 아직 따라올 수 없다.

사실 디지털 사진에 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 새로운 것에 흥미를 못 느끼는 까닭도 있지만, 왠지 이 신기술은 촉각의 물질성이 결여되어 보인다. 디지털 사진은 손으로 확인할 수 있는 필름도 없고, 현상하고 인화지와 약품을 만지는 암실작업의 장인적 기예도 없다. 프로그램을 다루고 조작하는 디지털 기술 능력은 왠지 추상적으로 느껴진다. 게다가 나는  실제 현실이 펼치는 기이한 연출, 뜻밖의 구성이 디지털 사진의 무한한 상상력과 허구적 연출보다 더 그럴듯하고, 더 흥미롭다고 믿고 있다.

사진을 찍는 기쁨은 전혀 예기치 않았고, 나의 상상력으로서는 감히 꿈꾸지 못했던 광경을 이 별 볼일 없는 현실 속에서 만난다는 것이다. 혹은 어렴풋이 예감했고, 기대했던 장면을 내가 원하는 빛의 조건 속에서, 분위기 속에서 조우할 때 비롯된다. 이를 놓치지 않는 촬영의 기술, 그리고 가슴 조아리며 찍던 그 장면을 재현해내는 프린트 기술, 이것이 나는 사진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스튜디오에서 장면을 인위적으로 연출하기보다는, 혹은 기발한 발상과 예술에 대한 관념을 의도적으로 시각화하는 개념사진보다는 발품을 팔면서 우연히 만나는 현실의 포착을 사진의 본령으로 삼는다. 개념에 의거하여 사진을 찍기 보다는, 실제로 존재했던 혹은 존재하는 대상들과 장면들에 의거하여 작업의 소재/주제를 정한다. 실제 현실이 어떤 발상을 부르고 그 발상을 실현해 주기를 기대한다.  

다시 사진작업을 시작하면서 느끼는 불만과 불안은 사진촬영에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듯하다. 많이 돌아다니고 많이 찍어야 하는데,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없다. 쓰기 싫은 잡문도 써야 하고, 생활을 위해서는 시들해진 강의도 계속 해야 하고, 그리고 날이 차면 술도 마셔야 하기 때문이다. 성에 차지 않는 작업량이 못마땅하지만, 그래도 작업을 하면 행복하다. 마침표를 찍은 글은 언제나 찜찜하지만, 마무리한 작업은 기이한 만족감, 기쁨을 안겨준다. 아마도 이 허망한 자기도취, 자기환상 때문에 가난한 시인도 시를 버리지 못하고, 재능 없는 화가도 계속 그림을 그릴 것이다.

The Waste Land

일산, C-print, 2003.
눈이 녹지 않은 화사한 아침이었다. 장난감 자동차가 한적한 길 가장자리에 매달려 있었다. 누군가가 불구가 된 질주의 욕망을, 추락 직전의 삶을 멋지게 형상화했다고 생각했다. 차를 멈추고 대형 카메라를 꺼냈다.
일산, C-Print, 2004.
도시의 폐허 속에서 목련이 눈부시게 빛났다. 불모의 땅에서 갱생과 신생의 환희를 꿈꾸는 욕망처럼 피어올랐다. 저 생명의 뿌리는 죽어도 죽지 않을 것이다.

하나도 마무리하지 못한 채, 더디게 몇몇 사진계획을 진행하고 있다. 그 중 하나는 <The Waste Land>이다. 전적으로 엘리엇 T.S. Eliot의 <황무지>에 의거한 작업이다. 무대가 지금, 이곳일 뿐이며, 글 대신 사진일 뿐이다.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꽃피우며, 기억과 욕망을 뒤섞으며, 무뎌진 뿌리를 봄비로 휘저을” “잔인한 4월”의 도래를 기대하지 않으면서, 희열을 잃어버리고 초월을 꿈꾸지 못하는 불모의 삶, 황폐한 사랑으로 불임이 된 현실을 채집하고 있다. 또 다른 하나는 <현대미술처럼 Like a Contemporary Art> 시리즈로, 몇몇 현대작가들의 작업을 패러디, 재해석하면서 현대미술의 상황을 반성하는 작업이다. 현대미술의 주요 양상들을 비근한 일상의 현실, 다시 말해 비예술적 공간에서 재발견하고 재조명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 기예 없는 예술과 파격적인 컨셉 예술의 한계 상황을 사진적 현실로써 질문하고 추궁하고자 한다. 누군가 이렇게 따져 묻는 듯하다. “당신, 현대미술의 적이지?”

진정으로 적은 아닌 듯하다. 크리스토 Christo, 리차드 롱 Richard Long, 로버트 스미드슨 Robert Smithson을 많이 좋아하기 때문이다. 다만 얼치기 작가들이 현대미술계에서 대담한 잔꾀를 부리는 상황을 염두에 둘 뿐이다. 현대미술의 적이라기보다는 대담하게 술수를 치는 범용한 현대작가들을 부러워하면서 싫어하는 사람 정도가 맞지 않을까 싶다. 따라서 현대미술에 콤플렉스를 가진 자가 아닐까 싶다. 또 20여 시간의 강의가 기다리는 3월이 오기 전에 <서울 달동네 1990>을 제대로 프린트하고 싶은데 어찌될지 모르겠다. 이만 글을 줄이자.

Like a Christo
일산, C-print, 2003.
허름한 공장의 창고는 비닐천막으로 입구를 가리고 있었다. 정갈하게 짜깁기한 부분들이 보였고, 중앙의 상단부는 약간 헤벌어져 있었다. 무엇을 만드는 공장인지, 무엇을 쌓아둔 창고인지 알 수 없었다. 랩핑한 대상을 알 수 없는 크리스토의 초기 작업들이 순간 머리를 스쳤다.
파주, C-print, 2004.
뜨거운 여름 오후였다. 커다란 건축현장이 눈에 들어왔다, 초록의 논밭과 파랗게 빛나는 비닐 더미 그리고 그것을 에워싼 펜스의 조화는 크리스토의 작업만큼이나 멋졌다.  

최봉림
한국외국어대학교 불어과와 서울대학교 인문대학원 불문학과를 졸업했다. 파리 제10대학에서 박사 준비 과정 D.E.A.을 마쳤고, 파리 제1대학 미술사학과에서 <<손의 초상과 사진 Portraits de mains dans la photographie>>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여러 대학의 사진학과, 미술사학과에서 사진 이론을 강의하고 있으며, 사진 평론가, 작가, 전시 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다. 번역서로는 로잘린드 크라우스 R. Krauss의 『사진, 인덱스, 현대미술』(궁리, 2003)이 있으며, 저서로는 『에드워드 슈타이켄, 성공 신화의 셔터를 누르다』(디자인하우스, 2000),『세계사진사 32장면, 1826~1955』(디자인하우스, 2003)이 있다.  2006년 갤러리 선 컨템포러리 (서울)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전시기획으로는 『삶의 시간, 시간의 얼굴』, (서울 토탈미술관, 2001), 『다큐먼트 : 사진아카이브의 지형도』, (서울시립미술관, 2004), 『상업사진의 변천사』, (한미사진미술관, 2005), 『서울 국제사진페스티발』, (관훈갤러리, 토포하우스, 2006) 등이 있다.



<월간미술>(2007년 3월)에 게재











655   write no.2   2007/10/03 961 233
654   Richard Billingham   2007/10/01 1419 330
653   write no.1   2007/09/01 1181 201
652   Philipp Horak   2007/08/27 894 195
651   [interview] 기계인간의 웃음   2007/08/22 837 190
650   박지혁 사진   2007/07/19 1039 200
649   김지양 사진 [2]   2007/07/19 1037 202
648   민성식 그림   2007/07/18 1216 421
647   shine gong   2007/07/06 1136 426
646   phillip toledano [2]   2007/06/29 977 210
645   Rebecca Horn   2007/06/25 1997 459
  [평론] s e l c a   2007/06/21 1046 421
643   Abelardo Morell   2007/06/09 973 221
642   Bernar Venet   2007/05/17 1370 341
641   산티아고 시에라(Santiago Sierra)   2007/05/14 7953 1636
640   Karl Blossfeldt   2007/05/14 1048 239
639   Paul Strand [2]   2007/05/05 914 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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