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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하디 뻔하다고 까지.
말할만한 글이다. 좋은 글을 만들어내는 것이 어렵단 걸 모르는바는 아니지만,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아는 내용을 어렵고 곤란한 단어로 풀어낼 필요가 있을까. 여기에 이 글을 남기는 이유는 박영숙이라는 사람의 평론을 기록해 둔다. 라는 의미도 있겠지만,
과도한 비약과 은유/환유같은 단어로 범벅된 형용들이 결국 어떤 효과로 자멸하는 가도 눈여겨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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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사진에 숨은 이데올로기
글 : 박영숙 - 페미니스트 사진작가 (실제로 게시물에 적힌 단어이다. 난 솔직히 페미니스트란 단어를 쓰는 것이 정말로 여성스스로에게 불리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이 사진에서 보이는 흑인여인의 풍만함은 온 지구의 아기에게 생명의 양식으로, 사랑을 희구하는 이들에게는 ‘여신’으로 다가와 이 세상을 ‘상생구원(相生救援)’하려는 의지로 읽힌다. 그 풍성한 젖가슴에 흰 피부의 아기가 양껏 배를 채우고 있다.
그 한순간을 포착한 이미지가 내 눈을 끌어당긴다.
그 흰 피부의 아기는 검은 피부의 여인 손에 안전하게 안겨서 편안해 보인다.
천국 같은 안락함이다.
그 모습에 불신은 없었다.
광고는 이 시대가 요구하는 철학적 담론을 생산한다. 고고한 철학을 어찌 속물 성 광고에 대비시키느냐고 야단을 맞을 것 같지만 나는 ‘철학 같은 광고’에 대해 여러분과 이야기 나누고 싶다. 우리 시대는 아직도 정치, 경제, 산업, 문화, 교육의 양태가 이성 중심적 가치체계로 흐르고 있다. 그런데 이 사회가 조금씩 변하는 조짐을 베네통 광고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이성 중심적 체계가 해체된 듯한 문화현상들을 그 광고에서 느낄 수 있기에 나는 그 광고를 즐긴다. 이 시대의 철학을 이끌고 있다는 좀 과장된 평가를 베네통에 부여하는 것은 결코 아부가 아니다. 색채가 화려하기로 유명한 베네통 상품, 그 광고는 상품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나는 사실 신문을 구독하지 않아 오늘날 미디어의 광고 현황을 비평할 자격은 없다고 여기지만 가끔 보는 TV에서 좋은 광고를 보면 그 파급효과가 얼마나 클 지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베네통 광고 ‘United Colors of Benetton’이라는 문자와 함께 보여 주는 그 다양한 광고 이미지는 나를 완벽하게 충족을 시킨다. 언제부터인가 베네통 광고 이미지는 나를 경악하게 했다. “이것은 광고가 아니다. 고급예술(Fine Art)이다. 아니 이 시대 철학이 감당할 담론을 광고가 생산하고 광고가 소통시키고 있다”고, 나는 늘 감탄했다. 그 이미지들은 우리의 고정된 인식공간을 해체하고 새롭게 재구성하고 있다.
붉은 스웨터 밑의 검은 피부, 여인의 얼굴은 보이지 않고 상반신 젖가슴의 검은 젖꼭지만 확대되어 보인다. 그 풍만함은 온 지구의 아기에게 생명의 양식으로, 사랑을 희구하는 이들에게는 ‘여신’으로 다가와 이 세상을 ‘상생구원(相生救援)’하려는 의지로 읽힌다. 그 풍성한 젖가슴에 흰 피부의 아기가 양껏 배를 채우고 있다. 그 한순간을 포착한 이미지가 내 눈을 끌어당긴다. 그 흰 피부의 아기는 검은 피부의 여인 손에 안전하게 안겨서 편안해 보인다. 천국 같은 안락함이다. 그 모습에 불신은 없었다.
흑과 백의 대비는 다양한 개념, 다양한 의미의 기호체계 갖고 있다. 서양의 백인들을 생각하게 만드는가 하면, 이성 중심의 철학체계를 세운 남성들을, 자기들만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착각하며 쓸모 없는 이데올로기를 생산해낸 엘리트들을, 유색인종들을 차별해온 역사를, 근대의 식민지 전쟁, 오늘의 무역 전쟁, 그리고 아직도 소수자를 소외시키는 제도들, 아침 TV뉴스가 보여 주는 다양한 테러 등등. 그 흑과 백으로 대비된 이 광고 이미지는 그 모든 역사적 사실을 읽게 하며 또 그 모든 개념을 전복하려 한다. 이 한 컷의 광고 이미지는 자유와 평등을, 인종화합을, 전쟁과 테러를 사랑과 화해로, 자연친화적 지구 환경을 생각하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미지는 몸의 언어다. 이미지는 문자같이 공부해야 소통할 수 있는 도구가 아니라, 눈의 경험을 통해 생리적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각언어다. 인간의 심리구조까지 소통시키는 이미지는 수용과 기억에 미치는 기능과 효과도 크다. 베네통의 광고 이미지들은 그래서 이성적 논리가 아닌 우리의 감성체계에 깊이 박혀 눈만 감아도 다시 보여 몸에 반응을 일으킨다. 베네통의 광고 이미지들은 함축, 상징, 은유, 환유, 패러디 등 순수예술의 코드를 초월해 버린다. 이 광고들은 광고의 속성인 상품대상물을 확실하게 소외시키는 혁명을 감행했다. 순수예술이나 그 시대의 진보적 철학이 추구하는 개념이 당시 사회가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일 때, 직설법이 아닌 간접적 표현 형식으로 함축, 상징, 은유, 환유, 패러디하면서 그 시대 사람들에게 말해서는 안 되는 그 말들을 소통시켰다. 그런데 베네통은 그 은밀하게 해야 할 진보적 담론들을 과감하게 발설하고, 공표하며, 맹렬하게 소통시키고 있다. 자유, 평등, 인종화합, 전쟁, 테러, 에이즈, 환경, 그리고 사형수에 대한 다양한 논의를 몸으로 느끼고 마음으로 생각하기를 요구하고 있다. 우리 시대가 고민하고 또 꼭 감당해야 할 메가톤급 주제들을 퍼뜨리면서…. 광고이면서도 광고의 속성을 배제한 베네통의 기업철학은 아이러니하게도 자본주의에 도전하며, 제국주의적 세계구조조차 해체하라고 요구하는 듯하다.
지역·인종·세대를 넘어서
이탈리아 트레비소 폰자노 지방에서 루치아노 베네통이 형제들과 의류사업을 시작한 1955년, 그들은 가난을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동생인 줄리아노의 뜨개질 솜씨와 그녀가 선택한 화려한 색상, 그리고 전통적 생산방식을 뛰어 넘어 값싸게 생산할 수 있는 ‘후염 가공’ 기술을 도입하여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고 한다. 침착한 색채가 주류를 이루던 스웨터 업계의 고정관념을 깨는 화려한 색상과 대담한 색 대비는 의류업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고 모든 예상을 뒤엎었다.
1980년대 초 루치아노 베네통과 다혈질의 이탈리아 패션사진가 올리비에르 토스카니가 서로 반해 화합했다. 토스카니는 사회적 사건 이미지들을 들추어 소비자들을 자극하는 새로운 시각 메시지를 생산했다. 그의 작업에는 많은 비판이 따랐다. “사회적 문제점을 제기한다는 미명하에 인간의 감정을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건드려 돈을 번다”고. 그러나 토스카니는 결코 자신의 광고 기획이 상업적인 목적만을 갖는 것이 아니라고 역설하며 “나는 내 견해를 피력하게 도와주는 베네통에 감사하고, 또한 베네통은 그 광고로 대기업으로 성장한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사회에서 돌려받은 대가일 뿐이다”고 항변했다.
나는 토스카니의 이 항변이 우리 대중에게 주는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보여 주는 이 대안적 개념들을 우리가 수용해야만 내일에 희망이 있다고 토스카니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옷을 사고, 벨트를 사며, 멋있는 스웨터를 입고 유혹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지역, 어떤 인종, 어떤 세대든, 차별하지 말라고 호소하며, 다양한 밝은 색상이 누구에게나 잘 어울린다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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