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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zabel(2005-01-21 14:55:21, Hit : 1262, Vote : 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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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 1.30




밤의 꿈_Dreamscape

정동석 사진展

2005_0117 ▶ 2005_0131



정동석_밤의 꿈_한지에 프린트_29×29cm_2005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이미지 속닥속닥 Vol.000719 | 정동석 사진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5_0117_월요일_05:00pm




갤러리 조선
서울 종로구 소격동 55번지
Tel. 02_723_7133
www.gallerychosun.com






네온으로 그려진 밤 풍경 ● 정동석은 짙은 수면에 잠기듯 어둠 속에 서있는 건물의 외관을 찍었다. 사실 그것이 건물인지 무엇인지 알 도리는 없다. 온통 검은 색으로 적셔진 화면에 그저 가는 선이 칼라로 머물고 있을 뿐이다. 작가는 문득 밤에 건물의 외관을 장식하고 드러내는 수단으로 설치된 네온에 주목했다. 그 네온의 구성과 조명, 색상은 밤의 풍경을 균질하고 보편적으로 마감시킨다. 대한민국의 모든 밤은 바로 이런 풍경으로 한정되어있다. 서울이나 수도권뿐만 아니라 모든 곳이 그렇다. 낮과 밤은 다르지 않지만 조명에 의해 밤은 낮과는 별도의 세계인양 다가오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명시적이며 구분과 차별이 존재하는 낮과는 다른 차원에서 밤은 존재한다. 어둠은 가시적이며 이름으로 인해 분리와 배제가 이루어지는 밝음의 세계를 덮는다. 그런 면에서 밤은 상당히 평등하고 민주적인가 하면 상처를 진정시키고 모두를 침묵으로 돌아보게 하는 내면의 시간을 유장하게 드리운다. 그래서 밤은 성찰적인가 하면 연민과 슬픔, 우울이 평화처럼 찾아오기도 한다.




정동석_밤의 꿈_한지에 프린트_29×29cm_2005



밤은 빛이 지워지고 사라진 상태다. 그래서 온통 검은 색으로 물들어있다. 검정은 단순한 색 혹은 무색이다. 그러니까 검정이란 밝고 어두운 구별을 결정하는 우리 눈의 망막 간상체가 사물에 대한 인지과정에 관하여 나타나는 색상일 뿐이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인 원색이며 우주의 섭리인 빛과 어두움의 이치를 드러내는 색이기도 하다. 인간은 가장 단순하고 익숙한 섭리, 즉 낮과 밤, 빛과 그림자를 당연하게 여긴다. 따라서 흰색, 검은 색은 색이기 이전에 우선적으로 받아들이는 세계의 얼굴, 낯빛이다. 그런가하면 검은 색은 삶을 기피하는 것, 즉 모든 긍정적인 발전을 무조건 부정하는 것을 암시하는 색상이기도 하다. 검은 색은 생명이 다하는 최후의 상황이며 부정적인 의미를 지닌다. 아울러 검은 색은 이해할 수 없는 것, 소멸하고자 하는 모든 감정을 비유하는 색상으로 이해되고 있다.




정동석_밤의 꿈_한지에 프린트_29×29cm_2005



정동석이 보여주는 한 장의 사진, 한지는 온통 짙은 검정 색으로 물들어있다. 마치 검은 먹물에 잠겼다 건져진 듯하다. 한지의 내부로 검은 색상이 스며들어 일체가 된 듯하다. 그러나 이 사진은 흑백사진이 아니다. 음영이 차이가 나거나 흐리고 진한 부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어두운 배경에 다만 네온의 선만이 지나간다. 네온을 빼면 절대적인 암흑, 구분할 수 없는 어둠이 납작하게 드리워져있을 뿐이다. 모종의 관념과 감상적인 분위기로 적셔진 흑백사진과는 달리 이 사진은 감정을 배제하고 관념성을 지운 자리에 다만 도시의 밤 풍경의 한 단면을 면도날처럼 보여준다. 캄캄한 밤, 그 어딘가에 특정 색채가 그려진 듯 직선으로 사선이나 유선형으로 자리한다. 가만 들여다보면 그것은 건물의 외관과 표면에 걸쳐놓은 네온이 발광하는 인공의 불빛이다. 인공의 불빛이 많을수록, 강렬할수록 저 먼 별빛은 자리를 감춘다. 네온의 색상은 차갑게 빛나고 그 위로 무심하게 달이 떠있기도 하다. 결국 밤이란 세계, 공간 역시 빛을 동반한 가시적 존재가 지속해서 낮을 연장하고 시간을 확장해서 우리들의 망막을 장악하는데 그것은 거대자본이나 소비와 욕망을 자극하는 건물의 외관에서 밤새 '발광'(發光)한다. 낮과 밤이라는 두 개의 세계가 나름대로 낭만적으로 존재했던 시간은 근대에 와서 달라졌다. 전기와 조명, 상업과 자본증식에 따라 밤은 낮시간의 지속으로 확장되고 생산과 소비의 동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되었다. 밤도 욕망과 유흥과 소비의 현기증 나는 순환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 것이다. 사실 오늘날 밤은 이전과는 달리 낮과 하등의 구분이 없다. 빛과 낮을 연장시켜 하루를 온통 환한 불빛과 욕망 아래 전시하는 것이 도시다. 그래서 도시는 밤에 더욱 들뜬 욕망과 환상을 조명을 통해 부여받는다. 밤에 드러나는 건물들은 조명과 네온 간판으로 더욱 세고 강한 자극을 보여준다. 연출한다. 어쩌면 밤의 풍경이 도시, 자본주의의 진정한 풍경인지도 모르겠다.




정동석_밤의 꿈_한지에 프린트_29×29cm_2005



작가는 모든 것을 지웠다. 사진은, 눈은 빛으로 가득한 세상의 이미지를 자기 눈으로 보고 드러낸다면 그는 밤을 의도적으로 택해 모든 것을 은폐시켰다. 따라서 찍힌 것은 대상이고 개별적인 존재이기 이전에, 차별과 구분, 분리와 배제 이전에 동일한 존재들로 평등하게 엉켜있다. 이것은 밤이 주는 힘이다. 낮이 잘나고 힘있고 권력적인 존재들의 과시적 장이라면 밤은 그런 차이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인위적 편재인지를 말없이 덮어버린다. 어떠한 문구나 이미지, 사람의 흔적, 그리고 밤의 풍경과 그 주변을 연상할 어떠한 정보도 없다. 모든 것은 부재하다. 있다면 조그마한 단서처럼 조심스레 놓인 선, 불빛 같은 네온의 선들만이 달랑 위치해있다. 간혹 조명이 끊어져 불빛이 감추어진 것도 있고 생략되어 있는 것도 있다. 가늘고 얇은 단속적인 선들이 짙은 암흑을, 검정의 밤을 가로지르거나 흥미로운 선의 자취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그것은 흡사 그림을 닮았다. 얼핏보면 추상적인 그림을 연상시킨다. 단서처럼 주어진 선은 상상력을 동원해 밤의 그 무진장한 만화경을 오히려 역설적으로 떠올리게 한다. 말이 무성하고 과잉의 볼거리들이 넘쳐나는 낮의 세상에서 그가 택한 말하기는, 보여주는 방식은 역설적으로 침묵과 어눌함 속에서 함축과 본질만을 간파하는 방식으로 제시된다. 아주 미미하고 정보량도 적고 최소한의 것만을 보여주지만 오히려 이런 보여주기는 더 많은 것을 상상하게 주어진 단서를 곰곰이 읽어보도록 권유하는 편이다.




정동석_밤의 꿈_한지에 프린트_29×29cm_2005



사실 밤을 찍은 대부분이 사진들은 상상과 환상을 의도적으로 들추어내거나 야릇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데 관심이 가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존의 풍경사진들이 한결같이 의미부여와 관념을 드리우면서 감상을 상투적으로 증폭시켜내는데 반해 정동석의 풍경은 늘상 그런 기대치를 저버리고 일종의 '반풍경'적 자세를 고수해왔다. 이번 밤 풍경 역시 그만의 시선과 자세로 동시대의 밤 풍경을 독특하게 보여준다.




정동석_밤의 꿈_한지에 프린트_29×29cm_2005



모든 도시의 밤은 거의 동일한 표정을 짓고 있다. 밤은 그런 면에서 평등하면서도 획일적인 풍경을 또 한 번 반복하고 연장한다. 오로지 관능과 유혹, 현혹의 불빛만이 어둠을 지배한다. 어둠 속에서 휘황하게 반짝이는 불빛과 네온간판의 문자들은 도시인을 더욱 고독한 방황, 걷잡을 수 없는 비릿한 욕망의 소요자로 만들어 버린다. 이곳의 밤은 낮과는 너무도 다른 풍경으로 돌변하는 기이한 체험을 준다. 그래서 그 불빛, 조명과 네온이 만든 선을 보노라면 슬프다. 그것만큼 비정한 도시의 추상성을 보여주는 상징도 없을 것이다. ● 교회, 모텔, 유흥가, 커다란 빌딩, 건물의 외관들은 간략하고 단순하게 그 윤곽, 형태감을 네온 선으로 부감시킨다. 선이 죽죽 내려가면서 꺾이고 다시 내려가면서 어떤 형상을 연상시키는 이 화면은 선으로만 이루어진 그림/사진이다. 도시에서의 이미지는 전파, 조명, 디지털로 이루어졌고 그것이 만든 풍경으로 자존한다. 이전의 밤 풍경이 달빛과 먼 별빛에 의지해 가까스로 드러났다면 오늘날 밤은 조명, 인공의 불빛으로 장식되어 넘친다. 그래서 밤에 그 불빛은 모든 시선의 종착점과 휴식점이자 다시 밤에만 살아나는 좀비나 드라큘라의 욕망을 도시인들에게 강제한다. 도시의 밤은 조명을 찾아다니는 드라큘라, 좀비들의 공간이다.




정동석_밤의 꿈_한지에 프린트_29×29cm_2005



네온의 조명, 밝기는 번지면서 흐려진다. 건물의 가장 바깥자리, 외곽에 붙어 서식하는 이 네온의 끈들은 건물의 높이와 규모를 알리고 증거하며 그 모든 시간 위에서 영생하고자 한다. 작가는 밤에 그 네온의 윤곽선들만을 화면에 가득 담았다. 오로지 그 불빛 띠, 조명 선만이 어둠 위에 떠있고 가로질러있다. 흰색, 파란 색, 붉은 색, 녹색의 네온 형광등은 그 둥그렇고 구부러진 몸통을 빛으로 채워 걸린다. 마치 댄 플레빈(Dan Flabin)의 작업처럼 그 조명은 주변을 따뜻하게 감싸고 번져나가면서 뜨끈한 온기로 채운다. 동시에 그것은 비정하고 서늘하다. 모서리에서 보면 그 네온은 화살표를 연상시킨다. 하늘로 솟구쳐 오르기를 염원하는 욕망의 단편들이기도 하다. 간혹 어떤 네온은 마치 모스크바의 성당이나 크렘린 건물을 닮았고 더러 이국적이고 환타지를 자극한다. 밤의 네온은 모든 이들을 낮과는 다른 미지의 세계, 환상과 낭만, 동경과 유혹으로 채워진 어떤 세계를 허영처럼 연출한다. 낮의 그 어수선하고 부산하며 정신 산란한 이미지를 감추고 선명하게 분할된 공간을 하나로 통합해버리고 낯선 존재로 탈바꿈한다. 그 변신이 가능한 것은 전적으로 조명에 의해서이다. 어떤 작품은 수직의 네온을 경계로 해서 건물의 외관에 비친 달이 두 개로 번져있다. 거기 달이 구원처럼 떠있다. 그러나 그 달은 도시인들에게 진정, 어떠한 구원을 말해줄까? ■ 박영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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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reas Gursky & Thomas Struth

2005. 2.2(수) - 2.25(목)
갤러리 현대 전관



현대사진 최고의 사진가 안드레아스 걸스키와 토마스 스트루스와 만나다.


갤러리 현대는 2005년을 맞이하는 첫 전시로 최근 현대미술에서 중요한 장르로 부각되고 있는 Contemporary 사진의 대표적인 작가, 안드레아스 걸스키(Andreas Gursky)와 토마스 스트루스(Thomas Struth)를 선보입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90년대의 걸스키와 스트루스의 대표적인 작품들은 물론 국내에서 볼 수 없었던 미공개 작품들을 선보입니다.

안드레아 걸스키(Andreas Gursky)는 1955년생으로 유명한 상업사진작가의 아들로 뒤셀도르프에서 출생하여 스트루스와 마찬가지로 오토 슈타이너트(Otto Steinert)와 뒤셀도르프 아카데미의 베른드 베허(Bernd Becher) 교수에게 수학한 작가입니다. 그의 사진에는 낭만주의 혹은 사실주의 화가의 풍성한 색감과 세밀한 기법이 담겨져 있고 독특한 원근법은 화려한 장식적 패턴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현대사회 속 단면을 역동적인 이미지와 스펙터클한 파노라마 형식으로 표현하기 위하여 운동 경기장, 증권거래소, 미술관, 관광지 등의 현대사회의 일상 공간을 이미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에 갤러리 현대에서 전시되는 작품들 중에는 2001년 뉴욕 MoMA 개인전에 전시되었던 대표적인 작품 99cent 와 Stock Exchange 가 전시되고 처음으로 공개하는 Klitschko, Prada III는 소비사회의 공간성을 표현한 작가의 거대한 스케일을 느끼실 수 있습니다.

토마스 스트루스(Thomas Struth)는 1954년 독일 태생으로 게르하르드 리히터와 함께 뒤셀도르프 아카데미의 사진의 거장 베른드 베허(Bernd Becher) 교수에게 수학한 작가입니다. 그의 작품은 이미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New York), Dallas Museum of Art(Texas), National Museum of Modern Art(Kyoto) 등 세계 유수 미술관에서 전시 및 소장되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갤러리 현대에서 전시되는 스트루스의 작품들 중 Museum Series는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대표 시리즈로 National Museum of Art, Tokyo와 Pargamon Museum 2는 문화적 메카인 미술관 내부를 거대하고 웅장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시리즈에서는 미술관 또는 특정한 공간을 배경으로 하여 유명한 예술작품을 관람하는 사람들의 표정을 체계적으로 탐구하고 세밀하게 묘사하여 페인팅에서 표현되듯이 인물의 표정들을 하나하나 담아내고 있습니다.그 밖에 Portrait Series와 Paradise Series 등 작가의 다양한 작품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이번 갤러리 현대 전시 를 통해 세계적으로 독일 Contemporary 사진의 영향력을 극대화하며 사진계의 양대산맥을 이루는 두 작가의 마스터 피스들을 직접 경험하실 수 있는 기회가 되시기 바랍니다.

* 전시 문의사항 및 자료요청은 02)737-2504~5, mail@galleryhyundai.com으로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www.galleryhyunda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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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믈렛입니다!!_Je suis l’hommelette!!

노진아 개인展

2005_0128 ▶ 2005_0304 / 설연휴 휴관



노진아_나는 오믈렛입니다!!_혼합매체_인터렉티브 가변설치_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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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0128_금요일_06:00pm

후원_한국문화예술진흥원




대안공간 루프
서울 마포구 서교동 333-3 지하
Tel. 02_3141_1377
www.galleryloop.com






“인간(l'Homme)은 알 껍질이 깨어지면서 만들어진 것이며, 오믈렛(l’Hommelette!!)이다.”_Jacques Laqan 1966 ● 노진아의 작업은 늘 포스트휴먼적인 소재로 인간과 기계 사이의 긴장감을 다루어 왔다. 후기 산업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의 생활과 소통 방식이 과학적 메커니즘을 따르게 되는 현상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녀가 지금까지 주목하며 작품에서 표상하고자 한 바가 그러한 징후들의 속성에 관한 것이었다면, 이번 개인전의 작업 『Je suis l’hommelette!!』에서는 인간과 기계의 관계를 보다 본질적인 측면에서 고찰하고 있다.




노진아_나는 오믈렛입니다!!_혼합매체_인터렉티브 가변설치_2005



노진아_나는 오믈렛입니다!!_혼합매체_인터렉티브 가변설치_2005


현대사회의 소시민은 인터넷과 컴퓨터가 제공하는 가상현실의 소통방식에 익숙해져 있다. 가상현실이 제안하는 삶의 방식을 따라 우리는 지역과 시간의 제한을 넘어, 다량의 지식을 손쉽게 주고받고, 보다 많은 관계를 설정할 수 있으며, 그러한 인터페이스가 발전할수록 더욱 편리해질 것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노진아는 지난 개인전의 작업 「타이핑 하세요, 나는 말을 할테니」(2004)에서 인간이 되고 싶은, 인간을 닮은 사이보그와의 대화를 통해, 기계화 되어가는 인간의 소통 방식을 재고할 기회를 주었다. 또한 「아직도 그 피아노를 치나요?」(2002)나, 「너무나 적극적으로 수동적인」(2004)과 같은 작업은 그러한 소통 시스템이 얼마나 부자연스럽고 제한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를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나 노진아는 현대사회의 새로운 인터페이스에 대한 표면적인 재현에서 그치지 않았다. 이번 전시의 출품작 「Je suis l’hommelette!!」에서 그녀는 인간의 소통과 행동양식을 규정하는 기계적 상호작용 방식을 주체의 형성이라는 보다 본질적인 맥락에서 짚어보고자 한다.




노진아_나는 오믈렛입니다!!_혼합매체_인터렉티브 가변설치_2005



노진아_나는 오믈렛입니다!!_혼합매체_인터렉티브 가변설치_2005


두 개의 방에 설치된 「Je suis l’hommelette!!」은 인간과 사이보그를 라캉의 거울단계에 동시에 위치시키는 작업이다. 한쪽 방에는 인간의 가장 예민한 감각기관인 눈을 깨고 태어난 사이보그가, 인간이 되는 환상을 꿈꾸고 있다. 관객이 다가서면 사이보그는 꿈꾸기를 멈추고 관객을 응시하기 시작한다. 다른 방에는 사이보그의 시야에 잡힌 대상이 투사되는데, 관객은 사이보그의 자아가 되어 그 앞에 마련된 키보드로 반대편 방의 관객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 한쪽 방에만 관객이 있을 경우, 사이보그는 관객에게 자신이 아직 자아가 형성되지 않았음을 호소하거나, 자신의 자아가 되어주기를 재촉한다. 이 모든 상호작용은 갓 태어난 사이보그가 타자로서의 인간을 바라보며 자신의 주체를 형성하고, 관객은 사이보그의 자아가 되어 그 시각을 공유하거나, 타자가 된 채 주체의 형성에 참여하는 과정을 표상한다. 「Je suis l’hommelette!!」은 작품과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인간과 기계가 서로를 주체와 타자로 인식하는 것을 가능케 하거나, 적어도 그러한 거울 단계를 적나라하게 재현 하는 작업이다.




노진아_나는 오믈렛입니다!!_혼합매체_인터렉티브 가변설치_2005



노진아_나는 오믈렛입니다!!_혼합매체_인터렉티브 가변설치_2005


「Je suis l’hommelette!!」과 상호작용하면서 사이보그가 인간적인 주체를 형성하려는 부질없는 과정에 아무런 감흥이 없는 관객이라면, 그는 자신이 기계적 주체가 되어간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지각하지 못하는 이일 것이다. 작품 속 사이보그의 부질없는 노력은 인간이 주체를 형성하는 첫 번째 과정인 거울 단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것은 둘 다 태생적으로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려는 욕망에 지나지 않지만 동시에 주체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을 형성하는 과정인 것이다. 오늘날 기술력의 한계로 말미암아 사이보그가 인간화 되는 것은 불가능할 수도 있지만, 인간은 실재로 가상세계의 장치와 소통방식을 거울삼아 주체를 형성하고 있다. 인터넷과 컴퓨터의 기계적 소통방식은 인간에게 편리함을 안겨줌과 동시에 우리의 생활양상에 같은 만큼의 규율과 통제를 생산한다. 푸코의 권력 담론을 부정할 수 없다면, 뉴미디어에 기반하는 권력이 현대인의 주체를 생산하는 데에 일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재차 각성할 수 있을 것이다.




노진아_나는 오믈렛입니다!!_혼합매체_인터렉티브 가변설치_2005



노진아_나는 오믈렛입니다!!_혼합매체_인터렉티브 가변설치_2005


노진아는 기계적인 것들, 가상의 것들에 대해 중립적인 가치판단을 내리고 있지는 않다. 작업 노트의 "...촉각적인 것들을 발견하며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무언가를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한다는 언급이나, 데뷔 후 뉴미디어 작업 전반의 서정적이면서도 우울한 공포를 연출한다는 사실이 그녀의 태도를 대변한다. 그러나 그녀는 새로운 미디어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가진 보수주의자가 아니다. 오히려 누구보다 컴퓨터와 인터넷, 그리고 기계적 장치를 가장 잘 이해하고 그것을 활용할 줄 아는 이가 노진아이다. 그녀의 작업에서 인간 대 인간의 전인격적 소통에 대한 휴머니즘적 향수가 묻어나는 것은 동시대의 병적 현상을 가장 예민하게 지각하는 예술가로서의 고통을 숨길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이 기계적 체제를 추종할 때의 징후적 속성을 다루던 노진아는 이번 작업에서 보다 깊이 있는 본질로 접근했다. 다음 작업에서는 기술적 소통방식에 대한 그녀의 뛰어난 통찰력이 담론과 내러티브적 형식을 넘어, 보다 직관적으로 뉴미디어와 인간 사이의 주체 형성 과정을 그려주기를 기대해 본다. ■ 이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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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암도_碧巖圖 2001-2004

유현민 사진展

2005_0126 ▶ 2005_0206



유현민_벽암도(碧巖圖) 2001-2004_흑백인화_20×29cm_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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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0126_수요일_05:00pm




금산갤러리
서울 종로구 소격동 66번지
Tel. 02_735_6317
www.keumsan.org






유현민의 ‘벽암도(碧巖圖)’ 작업은 안산시 풍도(豊島)에 있는 바위들을 2001~2004년까지 4년간 탐색-연구하며 촬영해 온 사진작업이다. ‘해가 뜰 무렵’이나 ‘해가 질 무렵’에 주로 촬영하는데, 이미지 대상과의 거리간격은 1m정도이다. 그 이유는 대상의 실체를 최대한 그대로 포착하기 위함이며, 바위에 담긴 내러티브를 동반하기 위함이다. 풍도를 작업대상으로 삼은 것은 우연히 발견된 풍도가 어릴 적 놀았던 강경(江景)의 독바위, 옥녀봉(玉女峰)과 흡사한 체취에 끌렸음이고, 특히 자연환경에 의해 만들어진 풍도 바위의 모습들에서 마치 고고학자의 입장처럼 무한한 형상들을 발견할 수 있는 가능성에서였다.




유현민_벽암도(碧巖圖) 2001-2004_흑백인화_20×29cm_2003


풍도를 4년 동안 두루 탐색 후 이 섬의 바위 형상을 대략 세가지 형태로 나누었다고 한다. ● 첫째, ‘상징적 풍경’을 들 수 있다. 이는 주로 직선, 곡선 등의 불규칙한 선들의 교차로 사실적인 형태라기보다는 여러 가지 형상들이 공존하여 추상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마치 산수화 풍경의 부분적인 형태의 모습 같다. ● 둘째, ‘인물/동물 풍경’으로 주로 사람 초상과 개의 모습들이 많이 있다. 어떤 모습은 사람인 듯 동물 같기도 한 이중적인 모습도 있고, 사색하는 모습, 묵시적인 모습 등 사람이나 동물들의 다양한 표정들이?주를 이룬다. 자연 속에 온갖 세상사를 겪은 사람들의 표정을 박제한 듯하다. ● 셋째, ‘자연적 풍경’인데, 이는 이 풍도 역사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 같다. 시간과 공간의 압축, 어떤 자연적-일반적 풍경을 압축한 느낌이다. ● 유현민의 작업은 사물의 외형적 풍경을 쫓아가는 것이 아닌 에피소드적인 삶을 살아가듯?그 사물을 응시하여 살피고 말을 건네며 함께 지난한 세월을 보내는 가운데 축적된 자신의 인식을 담아낸다. 그러니까 대상을 ‘조사-발견-관찰-분석-실험-검증’이라는 과정을 거쳐서 작업하는데, 이러한 방식을 스스로 ‘비평적 다큐멘타리’라 칭한다. ■ 금산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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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장아래 약졸없다

전지인_함혜경展

2005_0128 ▶ 2005_0211



전지인-함혜경_용장아래 약졸없다_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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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0128_금요일_06:00pm




희망갤러리
서울 마포구 서교동 358-80번지
Tel. 02_337_8837






번역의 반역 ● 모든 번역은 오역이다. 한 커뮤니티의 언어를 다른 언어로 치환하는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맥락의 간극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원안텍스트를 선택한 후 작업을 시작한다는 공통점을 가진 함혜경과 전지인은 언어가 아니라 이미지텍스트를 번역한다. 이들의 번역작업에서 오역은 의도적인 것이어서 차라리 '번안'에 가깝다. 이들은 극대화된 오역을 즐긴다. ● 세계 유수의 미술대학이 참여한 사립미술대학 연맹(AIAS)에서 대상을 받음으로서 참신함을 인정받은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에서 함혜경은 직접 수집한 60년대 미국풍경엽서들을 놓고 전형적 헐리웃 버디무비로 텍스트를 짜냈다. 60년대 미국풍경이 서구화된 동양의 22살 처녀에 의해 헐리웃식 버디무비 이야기로 버무려 지면서 이작품은 이데올로기를 군데 군데 건드리는 동시에 소녀적 감수성이 베어있는 탄탄하고 매력적인 '영화'로 재탄생 한다. 미국에 가보지도 않은 동양 처녀의 내러티브는 능청스럽다. 능청스럼은 여유에서 나온다. 여유는 서구화과정에서 무차별 헐리웃 영화의 세례를 받음으로서 구축된 무시할 수 없는 옥시덴탈리즘을 기반으로 한다. 희한한 것은 미국에 가보거나 그렇지 않은 모든 사람들 에게 이 작업은 묘한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이다. ●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이 드라마틱한 버디무비에 대한 메타적 표현이라면 '사데빵'은 다큐멘터리에 대한 해석이다. 오랜만에 보는 파리의 친구와 그곳의 프랑스 친구들이 함께 여행을 하는 시퀀스를 거두절미 하고 떼어 와서는 (역시 능청스럽게) 전혀 엉뚱한 한국어 캡션을 첨가한 것이다. 기승전결까지 갖추고 있어 마치 잘 짜여진 헐리웃 영화 같은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에 비한다면 '사데빵'은 프랑스 영화처럼 헐렁헐렁하다. 화면속의 엉뚱한 캡션이 기실 사실이라고 한들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은 그렇고 그래 보이는 헐렁한 여행 비디오 클립은 그러나 프랑스어와 전혀 다른 한글 캡션의 간극사이 어딘가로 해석되지 않는 미스테리한 구멍 속으로 관객을 유인하는데 성공한다.




함혜경_마음은 외로운 사냥꾼_단채널비디오_00:07:00_2004_still


함혜경이 지적인 영민함으로 무장(실제 작가는 별로 그렇게 보이지 않지만)한 채 어느 정도 분명한 원본텍스트를 놓고 국제적 번역작업을 생산한다면 전지인은 상대적으로 불분명한 국내용 텍스트를 몸으로 체득한 감각으로 번역한다. 그런데 그가 번역하는 국내 이미지 텍스트는 우리 자신들조차도 잘 해독되지 않는다. 지하철에서 우연히 발견한 노숙자(정신질환이 있어 보이는)를 촬영한 이미지를 변조(반복)하여 우리 앞에 던져 놓은 '나가는 곳'이라는 작품은 노숙자의 코믹한 동작과 알 수 없는 슬픔이 한 겹에 붙어 있어 분리할 수 없을 것 같은 이상한 작품이다. 그 이상함은 그러나 우연히 발견한 노숙자를 낮선 이미지의 소재로 단순히 이용한 대상화된 거리감을 넘어선다. 정신질환자는 정상인과 달리 기억을 시간 순서대로 조합하지 못한다고 한다. 빠르게 움직이는 수많은 인파 속의 황량한 지하철역에서 출구를 반복적으로 지시하는 노숙자의 반복적인 동작은 시간과 공간이 순서대로 조합되지 못한 서울의 기억 그리고 그것의 위기감을 불러일으킨다. ● 이런 전지인의 코드는 '이영자씨는 4단지 안에 살았다'라는 작품에서 다코드화 되어 발전 되었다. 뽕나무골에서 급속도로 변화되어 20년 만에 대규모 중산층 아파트 단지가 되어 버린 잠실, 그곳의 가장 오래된 아파트에 작가는 관심을 갖고 다큐멘터리적 영상을 제작했다. 이영자라는 이름의 실제 거주자와의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카메라는 롯데월드 테마마크와 아파트 단지 풍경 등을 훑는다. 전지인의 작업이 매력적인 이유는 롯데월드의 시물라크라와 획일화된 아파트 단지, 서울의 시간과 공간의 기억 같은데 정박되지 않는 '모호함'에 있다. 아주 천천히 줌아웃 되는 아파트 창문과 사인판 그리고 느린 편집은 오히려 영자씨의 언어적 내러티브에 이미지가 종속되어 힘을 잃게 되는 것을 막는데 성공하고 그녀의 기억과 표준화된 아파트 풍경이 지속적으로 충돌하여 제3의 모호함을 창출해 내도록 고안되어 있는 것이다.




전지인_나가는 곳_단채널비디오_00:02:40_2004_still



전지인_이영자씨는 잠실 4단지에 살았다_단채널비디오_00:05:00_2002_still


이 두 젊은 작가의 작품들을 보노라면 20대 초반의 작품이라는 사실이 실로 믿어지지 않는다. 더욱이 이젤 앞에서 유화로 누드를 열심히 그리던 20대 초반의 나의 경험과 사고를 이들의 그것과 수평으로 비교를 한다면 격세지감을 느낄 따름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진지함에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표현 감각까지 갖춘 이 두 명의 작가들의 반역이 어떤 식으로 발전될지 지켜볼 일이다. ■ 홍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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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아래 서성이다.



갤러리 상 기획 천성명 조각.설치展

2005_0108 ▶ 2005_0204



천성명_달빛 아래 서성이다-달의 그림자에 서다_혼합매체 가변설치_2004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이미지 속닥속닥 Vol.031114b | 천성명 조각展으로 갑니다.




갤러리 상
서울 종로구 인사동 159번지
Tel. 02_730_0030






달빛 아래 서성이다. ● 이곳은 어디인가? / 숲? 회색선. 굵은 빗줄기? 마디! 좁은 틈? 일어나야 한다. 일어나고 싶다. ● 나는 대나무 숲에 누워있다. 엎드려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저 위에 떠 있었는데. 내 날개가 어떻게 된 거지? 등의 통증 때문에 도저히 움직여지질 않는다. 설마 나의 날개가 부러진 것은 아니겠지. 내가 만든 것 중에 가장 견고하고 가장 아름다운 날개였는데. 깃털이 통통하게 보이도록 바람도 많이 넣었는데. 절대 부러질 리 없어. 다만 욕심을 좀 부렸던 탓에 조금 무거웠었지만. 그래 내 몸보다도 조금 더 컸었지. 그래야 멀리 올라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으니까. 다시 움직여보자. 이렇게 누워 있을 수는 없어.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거지?




천성명_달빛 아래 서성이다-달의 그림자에 서다_혼합매체 가변설치_2004


지독한 악몽이었다. 내가 알고 있던 소녀였는데. 골목을 자기 집 앞마당처럼 뛰어다니면서도, 빨갛게 얼굴이 상기되어도, 해질 때까지 집에 들어가지 않고 함께 놀던 아이였는데. ● 어른이 되면서 세상이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 거인의 손이 내 손모가지를 붙잡고 등을 거칠게 떠미는 것이었다. 가끔 내 머릿속까지 들어와서 뇌의 어떤 부분을 자기 맘대로 손보고 나가기도 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원래의 내 생각을 도둑질 해가기도 했다. 어느새 난 많은 사람과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일을 하고 있었고 내가 왜, 무엇 때문에 그러고 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학교를 가고 군대를 가고 돈을 벌었다. ● 그러다 어느 날 그 꿈을 꾸게 된 것이다. 한동안 만날 수 없었던 그 소녀의 꿈을. 긴 머리에 키가 자라고 가슴이 봉긋해 졌지만 난 한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은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횅한 눈망울만큼이나 무섭게 온몸이 파이처럼 조각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울음이 나오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으면서 그녀의 몸을 원래대로 돌려놓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너무 심하게 흩어져 있는 몸 조각을 맞추느라고 무척 힘이 들었다. 머리와 가슴을 잇는 목의 일부분은 거의 찾지 못하는 줄 알았다. 멀리 내팽개쳐진 다리를 보는 순간 참았던 눈물이 왈칵 솟았다. 어릴 적부터 즐겨 신던 줄무늬 양말이었다. 그녀는 줄무늬 양말을 신었고 나는 줄무늬 티셔츠를 즐겨 입었었다. 눈을 감겨주고 싶었는데 눈꺼풀이 내려지질 않는다. 무엇을 보고 싶었던 걸까. 난 어릴 적에 꽃잎 따기 하며 놀았던 노란 국화꽃잎을 그녀에게 뿌려주었다. 아름다워 보였다. 꽃잎 속에 누운 그녀가. ● 난 꿈 인줄 알면서도 서럽게 울었다. 마치, 내가 눈감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하면 그녀가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뜨며 웃을 것 같았다. 그래서 눈을 끔벅거리며 계속 읊었다. 옛날에 그랬던 것처럼. 무궁화꽃이피었습니다... 무궁화꽃이피었습니다... 무궁화꽃이피었습니다...




천성명_달빛 아래 서성이다-무거운 숲에 서다_혼합매체 가변설치_2004



천성명_달빛 아래 서성이다-무거운 숲에 서다_혼합매체 가변설치_2004


그 꿈 이후로 난 만들기 시작했다. 내가 있는 곳이 어딘지 모르고 내가 누구인지도 몰랐다. 그래서 그걸 알 수 있도록 밝게 비추고 싶었다. 처음에는 내가 만들고자 하는 그것이 무언지 정확히 알지 못해서 그냥 빛나는 것을 만들었다. 작게 만들었더니 별처럼 보였다. 이제 커다래진 그것은 달처럼 보였다. ● 나는 내가 만든 달, 정확히는 달처럼 보이는 것이 좋았다. 알 수 없는 거인이 나를 찾아 낼 수 없는 유일한 곳이라고 생각했다. 훤히 밝은 달 속에 있으면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 곳이라면 조각난 그녀가 국화꽃잎을 털고 일어설지도 모른다. ● 나는 그 밝게 빛나는 것이 달이라고 믿기로 했다. 그리고 그 달을 향해 가보기로 했다. 그렇게 나의 움직임을 시작했다. 매일, 매일, 매 순간 노력을 하며 그곳으로 가려고 했다. 그런데 나는 계속 움직이고 있었는데 멈추어 있기도 했다. 나중에는 앞으로 가려는 것인지 뒤로 가려는 것인지 구분이 되질 않았다. 앞으로 가면 앞에서 가로 막는 것이 있었다. 뒤로 가면 뒤에서 가로막는 것이 있었다. 앞으로 뒤로 앞으로 뒤로.... 수 백 번, 수 천 번을 움직이고 나서야 내가 나아가지 못하는 이유가 가로막은 그 무엇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어떤 것을 타고 있었는데, 그것은 아직 꼬마였을 때 타고 놀던 장난감말 이었다. 나는 이제 어른이 되었고, 그 말을 타고 갈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멀리 뒤쪽에는 흰 깃발을 든 누군가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그곳으로 가려고 했던 걸까? 아니면 그곳으로부터 온 것일까? ● 이런 방법으로는 아무래도 목적지까지 다다르는 것이 어려울 것 같았다. 좀 더 강하고 효과적인 것이 필요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날아가서 그곳에 도착할 수 있도록. 나는 열심히 날개를 만들기 시작했다. 날개를 만들면서 그 조그만 장난감말로 어딘가를 가려했던 내가 한심하게 생각되었다. 이제라도 착각에서 벗어난 것에 대해 잠시 감사하기도 했다. 처음에 만든 날개는 내 몸에 잘 붙어있지도 못했다. 재봉이 서툴러 좌우가 비대칭인 경우도 있었다. 높은 곳에서 떨어져서 발목이 부러지기도 했다. 언제부터 날기를 시도했는지 날짜는 기억나지 않았다. 이번이 아마 333번째 쯤 되는 것 같다. ● 이번에는 성공할 것 같았다. 날개의 성능이 믿을만했기 때문이다. 나는 바람을 가르며 올라갔다. 여전히 어두웠지만 내가 있었던 곳 보다는 밝아지는 것이라고 확신했다. 달에 가까워지는 것이니 당연하지 않은가. 드디어 달에 다다르기 50미터 정도 남은 지점에 어렴풋이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혹시 나보다 앞서가고 있는 누구인지도 모른다. 경쟁심은 일어나지 않았다. 혼자가 아니라는 반가움에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 했다. 좀 더 가까이 다가서니 그는 나와는 다른 방법으로 여기까지 와 있는 듯 했다. 특별한 기계장치인가? 그는 높다란 의자에 앉아있었고 한쪽 손을 커다란 양동이를 향해 떨어뜨리고 있었다. 희미한 가운데 살펴보니 기다란 두 귀에 두 쪽으로 갈라진 발을 가진 그는 토끼처럼 보였다. 달에 살고 있는 토끼가 이야기속의 전설이 아니라 사실이었던가. 왠지 가슴이 쿵쾅거렸다. 내 볼을 한바탕 꼬집어 보고나서 자세히 살펴보는데 그의 늘어진 팔뚝에서 무언가 똑 똑 떨어지고 있었다. 푸른색 액체. 손목을 절단한 가느다란 상처에서 흐르고 있는 것은 양동이를 파랗게 채운 그의 체액이었다.




천성명_달빛 아래 서성이다-무거운 숲에 서다_혼합매체 가변설치_2004



천성명_달빛 아래 서성이다-무거운 숲에 서다_혼합매체 가변설치_2004



천성명_달빛 아래 서성이다-무거운 숲에 서다_혼합매체 가변설치_2004


그는 거의 죽어가고 있었다. 그의 파란 눈은 나의 사랑스런 달을 뒤에 두고 점점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꺼져가는 푸른빛은 나의 달마저도 어둠 속으로 삼켜버리는 것 같았다. 그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 ?무궁화 꽃이 피었.......?/ 왠지 그의 얼굴이 낯설지 않았다. / 아! 토끼의 귀를 가진 그는 나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 그리고 나서 곧, 날개는 내 등짝을 부서트리며 아래로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멀리 날 수 있을 만큼 큰 날개였지만, 내겐 너무 무거운 날개였던 것이다. ●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나는 혼자 말하고 혼자 대답하며 지냈다. 나 자신에게 안부를 묻기도 하고 내일은 더 나아질꺼라며 한 쪽 눈을 찡긋이 감아 보기도 했었다. 남과는 다른 내 모습을 들킬세라 그렇지 않은 척, 짐짓 그들과 비슷한 행동을 하기도 했다. 이런 어릿광대 같은 모습이 역겨울 정도로 괴롭긴 했지만 조금만 참기로 했다. 비록 내가 만든 것이지만, 당당하고 순수해 보이는 빛나는 달에 다다를 그 때까지만. 그리고 이제 그것을 누가 만들었는지는 상관이 없었다. ● 정신을 차려야 하는데 점점 의식은 혼미해지는 것 같다. 대나무 숲이 장대비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만약 저 위에 아무것도 없다면 그냥 내려오면 될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나 자신과 이야기하는 것도 그만두면 된다고 생각했다. 재미는 없었지만 모두가 사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 안전해 보인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이 모든 일은 산산이 부서진 그녀의 꿈을 꾸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멍한 눈망울 속에서 잃어버린 나를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대책 없이 추락해버리면 안되는데... ● 그녀가 나를 보고 있다. 더 이상 어떤 출구도 찾을 수 없다. 내가 만든 가짜 달빛은 이제 공허한 구멍처럼 보인다.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이 그녀를 적신다. 그녀가 나의 눈물 속으로 잠긴다. 나의 눈물이 그녀를 돌이킨 것일까? 나의 절망이 그녀를 불러온 것일까? 그러나 나는 이제 힘이 없다. ● 이번에는 내가 그녀를 보고 있다. 그녀는 날개도 없는데 내 머리 위로 멋지게 날고 있다. 아름다운 그녀의 몸이 나를 이끄는 것 같다. 그녀의 몸을 타고 흐르는 물이 나에게도 떨어져 내린다. 그녀가 가는 곳으로 나도 가고 싶다.




천성명_달빛 아래 서성이다-달의 그림자에 서다_혼합매체 가변설치_2004



천성명_달빛 아래 서성이다-달의 그림자에 서다_혼합매체 가변설치_2004



천성명_달빛 아래 서성이다-달의 그림자에 서다_혼합매체 가변설치_2004


천성명. 달빛 아래 서성이기를 선택하다. ● 의지를 상실한 안면의 표정이며, 비정상적인 신체구조를 가진 인물들. 우스꽝스러운 어릿광대와 토끼머리띠. 편집증처럼 반복되는 행위들. 이러한 것이 줄곧 그의 작품을 이루는 요소들이다. 일대일 대입하듯이 요소들이 가진 상징을 풀어가려는 시도는 작품의 묘미를 놓치게 할 것 같다. 작가 자신도 자신이 만들어낸 인물과 상황에 ?왜??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는 그가 토해낸 것들을 되새겨 봄으로써 자신에 대해, 자아에 대해 발견하려 한다. 그리고 그 질문에 모두를 초청하고자 한다. ● 천성명은 작품에 대하여 언급하는 대목에서 ?경계에 있다?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그가 이야기 하는 경계란 무엇인가. 회색빛, 어른도 아이도 아닌 신체, 무섭기도 하고 우습기도 한 캐릭터로 대변되는 애매한 영역인 경계란 무엇인가. ● 이번 전시는 독백 모노드라마의 형식을 띠고 있다. 작가 자신을 전면에 등장시키며 실존의 문제를 풀어보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현실적이기도 하고 존재론적이기도 한 그의 질문은 폭넓은 스펙트럼으로 펼쳐 질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다. ● 작품은 매우 어둡다. 별빛이나 달빛 따위를 끌어들여 꿈과 희망을 뒤쫓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처량한 인물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볼수록 깊은 절망을 넘어 무기력의 나락으로 침잠하게 된다. 차라리 달빛과 별빛으로 상징되는 희망은 그곳에 닿을 수 없는 인물의 절망을 부각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잔인한 덫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 나는 작가가 작품을 통하여 그토록 고립과 절망에 집중하는 이유를 발견하고자 노력하였다. 그 어둠이 가진 의미를 밝히고 싶었다. 사실, 그 다층적인 의미는 앞의 글 「달빛 아래 서성이다」처럼 또 하나의 우화로써만 적절히 표현될 것 같았다.




천성명_달빛 아래 서성이다-달의 그림자에 서다_혼합매체 가변설치_2004



천성명_달빛 아래 서성이다-달의 그림자에 서다_혼합매체 가변설치_2004


작품 속에는 자신이 맡은 임무에 충실한 인물들이 있다. 반복적인 행동을 보이는 인물들은 작가의 주요 개인전마다 등장하는 주인공들이다. 한쪽 발을 끄떡거리며 자신이 만들어낸 환상을 지켜보는 사람. 나아가고 나아가지만 여전히 같은 자리를 맴도는 사람. 끝없이 날개를 만들고 또 만드는 사람. 이렇게 반복적인 행동을 계속해야만 하는 인물은 자신이 하는 행위에 대한 자각을 상실한 채로 존재한다. 인물은 운명의 주인이 되지 못한다. 도대체 그의 선택이란 존재하는 것인가. 반복되는 하나 하나의 행위가 그의 선택이라면 그것은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을 만큼의 에너지를 가진 것일까. ● 도약을 선택하는 또 다른 인물들은 그 도약의 결과로 처참히 쓰러진다. 그의 도약은 다만, 자신의 나약함을 좀 더 철저히 발견하도록 하는 섣부른 욕망에 불과한 것처럼 보인다. 아니면, 도약에의 의지가 단지 착각이나 오만이었던 것이라고 가르치는 양 인물들을 짓뭉개고 만다. 인물의 도약은 회색빛 현실을 박차고 성취하고픈 꿈과 같다. 「광대, 별을 따다」의 제목을 가졌던 첫 번째 개인전에서 그 꿈은 물 위에 떠있는 별로 상징되었다. 이번에는 토끼가 살고 있다던, 달의 이미지로 대체되었다. 꿈은 별에서 달로 바뀌었지만, 지난번의 실패를 통해 조금도 진화하지 않은 채 또다시 광대의 눈물을 재물로 받는다. 환상속의 토끼마저도 공허한 달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여 그만 자살에 이른다. 제 날개에 짓눌려 추락한 비행사처럼. ● 이렇게 인물들은 운명과 의지, 꿈과 현실사이를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한다. 통합되지 못한 삶의 요소는 작품속의 인물로 하여금 끊임없이 양극단을 오가게 한다. 정지하지도 나아가지도 못하게, 꿈을 꾸고 꿈에 다다르려하지만 다시 광대 같은 우스꽝스러운 껍질만 남은 자아를 대면하도록 하면서. 작품이 가진 비극은 이러한 부조리가 반복된다는 데에 있다. 그것은 개인전 5회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표현되는 우울의 반복에까지 확장된다. 지루한 절망의 반복이다. ● 이것은 작가로 살아내야 하는 현실과 작가로 존재해야겠다는 꿈의 부조화가 빚어내는 잔인성에서 기인하기도 한다. 성인의 얼굴과 아이의 신체를 가진 인물은 작가가 품고 있는 꿈이 불안정하며 어리석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의 소산으로 보인다. 현실은 꿈을 조롱한다. 창작과 발표에 몰두할수록-작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이기도 한-, 삶은 무섭고 냉혹하며 기약 없다. 창의적인 작품을 연모하는 사회를 어린아이처럼 믿어버리는 작가는 어느 날 초라한 광대의 모습으로 발견된다. 그러나, 이것은 누구도 범인이 아닌 미궁과 같은 사건으로 결말을 맺는다. 눈물 흘리는 꿈꾸던 자. ● 가만히 보면 인생자체도 이러한 반복의 연속이다. 슬픔은 어느새 기쁨의 자리를 빼앗고 희망은 절망 앞에 그 꼬리를 감춘다. 물론, 또 다시 시작되고 계속 진행된다. 이 둘은 상대가 없으면 존재하지 못하는 상호보완의 관계라는 것을 확인하기까지에 이른다. 밤과 낮이 교차하고 삶과 죽음이 오고가는 현상에 대해 부정하고픈 몸부림이 우울과 절망이라는 옷을 입히게 되는 이유가 아닐까. 모순은 삶의 원리라는 것을 반복적인 체험을 통해 확인하게 된 것 아닐까.




천성명_달빛 아래 서성이다-달의 그림자에 서다_혼합매체 가변설치_2004



천성명_달빛 아래 서성이다-달의 그림자에 서다_혼합매체 가변설치_2004


모순이라는 원리가 삶의 진정한 원동력이라는 사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를 기대하는 것. 그 조화를 결론으로 도출하기를 소망하는 마음은 그리 쉽게 현실화되지 못한다. 작가는 그러기에는 존재의 복잡성과 무거움이 너무 크다고 말하는 것 같다. 다만, 격언처럼 주어지는 희망의 당위성을 순순히 받아들이기보다 지루한 어둠 속에서의 헤맴을 단호히 선택하는 작가의 행보에 기대를 거는 수밖에 없다. 그가 스스로 선택하는 과정을 통해 발견하게 되는 삶의 의미가 참된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미 그 과정 속에 그가 찾고 있는 것이 존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작품으로 드러나고 있는 인간미와 진실함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작품은 슬픔의 정서를 지니더라도 공허한 삶을 잠시 위로해주는 값싼 대리만족으로 그치지 않는다. 작품의 어둠이 가슴을 싸늘하게 하는 피로함보다는 정적과 가라앉음으로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비록, 눈물 흘리는 광대를 비추는 비정한 달일지언정 그 빛 앞에서 쉽게 뒤돌아서지 못하게 하는 힘도 거기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작품속의 그가 흘린 눈물이 다시 그를 소생시킬 수 있는 생명수로 순환되듯이. ■ 신혜영





zabel (2005-01-28 14:06:42)  
홍대 갤러리들의 약진이 시작되는 것인가....0_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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