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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zabel(2005-10-26 17:18:45, Hit : 1450, Vote : 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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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urgen Klauke

"나는 나의 예술로 세계를 바꾸지는 못할 겁니다. 하지만 내가 그 변혁의 의지를 분명하게 표현하는 한, 나는 적어도 그것에 아주 작은 도움은 줄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나에게 중요한 건 사진이라는 매체가 아니라 아이디어 그 자체입니다. 다시 말해 사진 자체에 관심이 있다기보다는 내 생각,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림을 필름 위에 내뱉는 매체로서 사진에 관심이 있을 뿐입니다."- Jurgen Klauke
(
'.
luker님 덕분에 알게된 작가입니다.   그림파일을 어렵사리 찾아 넣었다는, 그래도.   정확히 어떤 작업인지는 알기가 쫌.   또한 푸긴했는데 윈도우즈 폰트 문제인지, ?가 몬 말인지 몰겠어요.ㅜㅜ
굉장히 흥미가 생기는 작가인데 좀더 알려주심 감사하겠습니다.   포털에서 텍스트를 가져오긴 했는데 많이 부족하군요.   정확한지도 자신이 없지만서도.
.'
)
  + + +







Steigerungsph?omen, 1980









Selbstbildnis mit Skelett, 1983









Selbst, 1972









Partial view of the exhibition at Galer? Helga de Alvear, Madrid









Masculin/Feminin I, 1974









Hoffnungstr?er, 2003









Heimspiel, 1990








Heimspiel, 1990









Heimspiel, 1990









Heimspiel, 1990









Heimspiel, 1999









Heimspiel, 1990









Gem?sverfassung #7, 1996









Gem?sverfassung #6, 1996









Gem?sverfassung #5, 1996









Gem?sverfassung #4, 1996









Gem?sverfassung #3, 1996









Gem?sverfassung #2, 1996









Gem?sverfassung #1, 1996









Gem?sverfassung, 1996









Animalische Tische, 2001









D?merattacke, 1990









Desasteri?es Ich, 1996









Erlebnisdichte, 1990









From 'Boddys', 1970









From Desastr?es Ich, 2003









20세기 초반 추상회화가 예견했던 재현의 위기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추상회화의 위기를 불러왔다. 《이젤화의 위기》(1948)에서 클레멘트 그린버그가 지적했던 것처럼, 20세기 미술의 야망에 비해 평면회화가 그릴 수 있는 미래는 불투명하기만 했다.
이러한 위기의 탈출구로 등장한 것이 바로 추상회화의 '행위' 자체로의 확대/팽창이다. 그 팽창 과정은 여러 단계를 거치는데 '캔버스 위에서의 행위', '캔버스 앞에서의 행위', 그리고 '캔버스 대신 사진이나 필름으로 저장되는 행위' 등이 바로 그것이다. 행위미술, 해프닝, 플럭서스, 멀티미디어, 인터미디어, 퍼포먼스, 신체미술, 그리고 행위연극 등은 이러한 추상회화의 팽창 경로를 설명해 주는 미술사적 개념들이다. 이는 더 이상 평면 위에 머물기를 거부하고, 새로운 표현수단/공간을 찾아 나섰던 현대미술의 모험의 산물이기도 하다.
누보 리얼리즘이나 팝 아트 작가들이 실제 사물들을 평면 위로 끌어들임으로써 그 탐험의 시작을 알리자, 미술의 근본적인 변혁을 실천한 건 다름 아닌 우리 몸이었다. 몸이 곧 그림이 되었고, 몸이 바로 재현(의 위기)의 장소가 되었다. 이브 클랭은 인간의 몸을 붓으로 삼았고, 귄터 브루스는 신체를 캔버스로 이용했다. 몸이 회화세계에 입성하면서 미술과 현실의 개념은 커다란 변혁을 겪는다. 특히 아브라모비치, 아콘치, 바니, 버든, 길버트와 조지, 만초니, 무어맨, 모리무라, 모리스, 노먼, 오노, 레이, 로젠바흐 등은 자신의 몸을 표현의 도구로 삼으면서, 매체로서 신체의 가능성을 확장시킨다.
위르겐 클라우케 또한 누구보다 자주 그리고 충실하게 자신의 몸을 소재로 삼고 있다. 이에 대한 그의 말을 들어보자. "나중에야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그것이 매우 큰 즐거움을 주고 있다는 사실 외에도 나의 현존이 바로 최고의 가치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이미지를 강화시키고, 그것을 전달하고, 또한 내가 그 이미지에 자주 참여하면서, 나는 더 이상 수용자의 존재가 줬던 이전의 중요성에 지배당하지 않게 되었다. 나는 곧 이미지의 대상이자 재료다. 나는 그 속에서 하나의 개인으로 사라질 뿐이다." 클라우케에게 몸이라는 것은 "더 이상 거추장스러운 짐이 아니라 차원 높은 감각 기관이며, 체험의 객체요 주체"인 것이다.


몸, 성, 그리고 자기정체성
1970년대 자신의 몸을 소재로 삼아 퍼포먼스를 펼치면서 독일에서 신체미술의 가능성을 열었던 클라우케는 당시 이른바 아방가르드 미술을 선도했던 미술가로 평가받고 있다. 아이덴티티와 섹슈얼리티의 문제가 당시에는 논쟁의 대상으로 무르익기 전이었기에 그의 질문이 평범한 관중에게는 하나의 도전이었다. 21세기 문화환경에서 '몸'과 '성'은 더 이상 실험적인 소재가 아니다. 하지만 클라우케의 작품이 아방가르드의 범주에 속하는 것은 20세기 후반 몸에 대한 낯가림 덕분이었을 것이다. 그의 작업이 수년 후 성 역할의 조건에 대한 논쟁, 즉 젠더(gender) 논의를 예견했다는 사실은 미술문화의 사회적 영향력을 보여 주는 중요한 대목이다.
앞서 말한 1970년 이후 나타난 재현의 위기는 일군의 미술가들에 의해 신체의 위기로, 또한 젠더의 위기로 변형/해석되는데, 그 중에서도 클라우케와 그보다 5년 이후 신디 셔먼의 활동은 결정적이다. 몸은 이들의 작업을 통해 회화나 조각을 위한 단순한 소재나 구성요소라는 객체의 입장에서 벗어나 자기정체성이라는 근본적인 문제의 주체가 된다.
몸이 예술의 도구로 등장하자 몸은 곧 재현의 도구로 변신한다. 클라우케는 성을 재현하는 도구로서의 몸에 대해 비판의 질문을 던진다. 그는 몸이라는 도구를 통해, 몸이라는 표상을 통해, 몸이 무엇을 재현하는지에 대해 묻는다. 몸이 주체가 소유한 성을 완전하게 혹은 올바르게 재현해 내지 못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는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다. 성(sex)과 성의 자기정체성(gender)은 어떤 관계를 갖는가? 성의 범주는 어떻게 구성되는가? 언어를 통해, 사회화를 통해, 권력의 논의를 통해? 클라우케의 퍼포먼스와 사진 타블로 연작은 이러한 성의 정체성, 몸의 정치학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을 제공한다. 그러나 회화의 재현능력이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있다면, 몸의 재현능력도 검토되어야 할 문제다. 재현의 위기가 곧 위기의 재현을 말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회고전 기자회견장에서 ZKM의 바이벨이 만난 클라우케
2001년 3월 22일, 독일에서 최초로 열린 위르겐 클라우케의 대형 회고전을 위한 기자회견장. 본(Bonn) 미술전시관에서 열린 이 회고전은 클라우케의 사진작품에 초점을 두었다. 회견장은 유럽뿐만 아니라 세계 전역에서 모여든 기자들로 가득 찼고, 회견석에는 ZKM(미디어 미술중앙연구소)의 페터 바이벨과 본 미술전시관의 야콥 벤첼, 그리고 함부르크 미술관의 우베 슈네데가 함께 자리했다. 형식적인 인사말이 오간 후에 클라우케와 바이벨은 회화와 사진에 대한 지난 논쟁을 다시 끄집어낸다.
"지난 1970∼80년대 독일에서 이른바 '스캔들 미술가'로 불렸던 클라우케가 제시해 온 주요 테마는 첫째 '몸', 둘째 '성(性)', 마지막으로 '자기정체성'으로 요약해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그가 매체로서 사진의 가능성을 어떻게 이용하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카메라는 클라우케에게 있어서 화가의 눈과 비교될 수 있습니다. 붓과 물감 대신 카메라와 빛으로 대체된 미디어를 통해 그는 사물과 대화를 시도합니다."(바이벨)
"근간 사진의 모더니즘에 관한 얘기를 하는데, 나에게 그림에 관심을 갖게 해준 건 회화가 아니라 사진이었습니다. 그리고 사진과 회화의 유사성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 저는 회화적인 사진은 부정합니다. 저는 회화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회화적인 사진이야말로 정말 키치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저에게 사진 자체가 절대적인 의미가 있는 건 아니고, 단지 제가 가지고 있는 생각, 그 생각에 대한 표상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사진이라는 말입니다."(클라우케)
"저는 그저 회화와 사진이 어떤 점에서 비슷한가에 관해서 말씀드린 것뿐입니다. 회화적인 사진을 키치라고 비유하셨는데, 그렇다면 1980년을 전후로 하여 당신의 사진작업에 등장하는 키치적 대상물에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바이벨)
"그 대상물들이 제 작업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질 때 저는 키치적인 물건을 수용합니다. 회화적인 사진이 키치라는 것과, 제 작품에서 키치가 등장하는 것은 구분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부정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사진의 회화성이니까요."(클라우케)

이 짧은 대화에서 우리는 사진이라는 매체에 대한 클라우케의 시각을 확인할 수 있다. 모더니즘에서 포스트모더니즘 미술로 이행하는 과정에 사진의 역할은 결정적이었다. 페터 바이벨은 이 과정을 '기호론적 전환'이라고 부르는데, 비판적 포스트모더니즘의 비물질성이 클래식 모던의 물질성을 대체했다는 이유에서다. 물질적 현상이 비물질적인 개념에 자리를 내주고, 대상의 생산 대신 기호의 생산에 무게중심을 두면서 사진이 담당해야 했던 과제는 막중할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이러한 의미에서 클라우케는 직접적인 실재에 안주하는 대신 매체에 의해 소통되는 실재, 즉 카메라에 던져진 실재의 장면을 재구성하면서 앞서 말한 재현의 위기에 대처한다. 그는 사진이라는 매체의 도움으로 재현의 문제, 예술과 현실의 관계 그리고 세계의 개념을 다시 정의하려 한다. 그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나는 나의 예술로 세계를 바꾸지는 못할 겁니다. 하지만 내가 그 변혁의 의지를 분명하게 표현하는 한, 나는 적어도 그것에 아주 작은 도움은 줄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나에게 중요한 건 사진이라는 매체가 아니라 아이디어 그 자체입니다. 다시 말해 사진 자체에 관심이 있다기보다는 내 생각,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림을 필름 위에 내뱉는 매체로서 사진에 관심이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클라우케의 사진은 몸이 남긴 행위의 연장이며, 그의 몸은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언어에 지나지 않는다. 독일에서 아직 사진이 독립적인 예술장르로 인정받지 못했을 당시, 그가 사진의 신분상승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는 사실 그에게는 부수적인 의미만 있을 뿐이다. 그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생각을 중심으로 퍼포먼스와 사진이라는, 예술장르를 넘나드는 그의 탄력 있는 자세가 더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에게서 사진과 퍼포먼스는 어떤 관계를 갖는가. 그의 대답은 이렇다. "퍼포먼스라고 말할 때, 현장에서 관중 앞에서 치르는 퍼포먼스와 카메라 앞에서 연출된 행위가 분명히 구분돼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개념에 큰 혼돈이 옵니다. 카메라 앞에서 연출된 행위는 그저 시간과 함께 한 장의 그림으로 남을 뿐이에요. 따라서 퍼포먼스를 촬영한 사진들은 어디까지나 행위 자체의 기록이요 산물이죠." 사진은 처음부터 그에게 정보의 저장소 혹은 행위의 기록도구 이상은 아니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캔버스라는 평면에서의 탈출을 재현의 위기의 돌파구로 찾았던 선배들의 노력은 인화지라는 또 다른 평면에 부딪히게 된다. 위기는 완전히 극복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는 방법의 한계이지 예술의 한계는 아닐 것이다.


연속과 반복을 통한 두꺼운 체험
클라우케가 즐기는 소재는 신체 외에 '책상', '의자', '지팡이', '모자', '양동이' 등의 사물과 그것들을 이용한 '있다', '앉다', '서다', '뜬다', '움직이다', '뒤집히다', '사라지다', '없다' 등의 상황이다. 자신의 생각을 연출하기 위해 위에 열거한 사물들은 자신의 실질적 기능에서 해방되어 단지 기호로서의 의미만 가질 뿐이며, 이 기호를 통해 인간과 세계의 존재론적 범주인 '있다'에서 '없다'까지의 상황들이 펼쳐진다. 그 자신의 말처럼, "이와 같은 사물과 기호는 공간을 차지하지 않는 무공간의 공간에 떠 있거나 그저 머물러 있을 뿐이다."
이 과정에서 연속촬영기법과 시리즈 형식은 그의 작품세계에서 큰 자리를 차지한다. 모자가 겹쳐 있고, 책상이 겹쳐 있고, 지팡이도 겹쳐 있고, 사람마저 겹쳐 있다. 이 '겹쳐 있음'은 한 장의 사진으로 해결되지 않고, 두 장, 석 장, 나아가 수십 장의 사진에서 반복됨으로써 성공적인 결말을 본다. 클라우케에게서 낱장으로 된 사진작품을 발견하기 쉽지 않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주지하듯 시리즈 작업은 일찍이 인상주의 화가들, 특히 모네가 애호했던 예술형식이다. 아침의 성당, 비오는 날의 성당, 밝은 날의 성당, 오후 세 시의 성당 등 모네는 똑같은 성당을 무려 오십여 차례나 그려댔다. 이러한 시리즈 작업은 이후 세잔, 몬드리안, 앨버스, 스텔라를 거쳐 앤디 워홀에 이르기까지 모던 아트의 전통적 형식을 이루는데, 이는 한 평면 위에 갇힌 '보기'의 가능성을 다른 차원으로 연장시키려는 노력에서 비롯된다. 그 결과 여러 가지 관점에서 관찰된 한 대상물의 연속배열을 통해 '순간적 보기'와 '동시적 보기'가 한 공간에서 가동된다. 다시 말해, 시간으로 나누어진 부분들이 반복이라는 시리즈 형식을 통해 통일된 공간 안에 수렴되는 것이다. 애초의 표상은 전체에서 결정되기 마련이다. 클라우케는 '책상과 의자', '몸과 사진', '나타나다와 사라지다', '있다와 없다' 등의 이중성을 연속과 반복이라는 방법으로 조화시킨다. 이로써 관객은 예상치 못한 두꺼운 체험을 얻게 된다.
혹자는 그의 사진작품을 두고 '정신적 그림(Mentales Bild)'이라 부른다. 그의 작업이 철학적이고 시적으로 보인다는 점 때문이다. 이에 대해 클라우케는, "정신적 그림이라… 그리 나쁘게 들리지는 않는군요. 하지만 그건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약간 달라요… 내가 사진 속에 담고 싶은 건 여기 지금의 이 상태, 바로 여기에 있음 그 자체 혹은 이전도 아니고 이후도 아닌 바로 지금 이 순간이에요. 내 생각을 단순히 환영으로 남기려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단지 우리 자신의 '여기 있음'의 이 순간, 이 상태가 사진 안에서 흔들리면서 머물 수 있도록 할뿐이에요… 나는 그저 내가 생각하고 느낀 것, 내가 지각한 것을 저장하면서, 반면 내가 겪은 체험, 인상, 사건으로부터 적당한 거리를 두는 '내적인 그림(Inneres Bild)'을 출발점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것은 저 끝까지 가라앉아서 사라지는 순간, 바로 그 순간에 떠오른답니다."
클라우케가 독일의 대중미술(U-Kunst)을 고급미술(E-Kunst)의 위치로 끌어올리는 데 결정적인 구실을 했다는 의미에서, 미술사는 그를 아방가르드 작가로 부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 작가가 회고전을 치르게 될 때쯤이면, 왕년에 지녔던 실험정신과 아방가르드라는 이름은 그 빛을 잃게 마련이다.
모든 작가가, 혹은 모든 시대가 전위에 설 필요는 없다. 하지만 시간이라는 권력 아래 시들 저항정신이라면 차라리 후방에 선 긴장감이 더 신선할지 모른다. 쉰 여덟이라는 나이가 감당할 수 있는 신선도는 얼마만큼일까. 당대에 누렸던 영향력만으로 그 신선도를 지키기엔 이미 시대가 너무 앞서 있는지도 모른다. 한 노장의 회고전을 지켜보며, 지난 시절 전위에 섰던 예술가들의 이름을 떠올려 본다.


위르겐 클라우케는 1943년 독일 클리딩에서 태어났다. 퍼포먼스, 사진, 드로잉, 비디오 등이 그의 주요 표현 수단이다. 대표적인 전시로는 본과 루체른에서 열린 〈지루함의 형식화〉(1981), 바덴바덴과 뒤셀도르프에서 열린 〈일요일의 노이로제〉(1992)를 비롯, 파리와 바르셀로나 등지에서 열린 〈파멸하는 나〉(2000/2001) 등의 여러 전시가 있다. 제6회와 제8회 카셀 도큐멘타에 참여했으며, 현재 쾰른 미디어 미술 전문학교의 예술사진 담당교수로 재직중이다. 1997년 도쿄에서 회고전을 연 이후, 독일에서는 처음으로 2001년 3월 23일부터 독일 본(Bonn) 미술전시관에서 대형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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