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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zabel(2005-09-22 20:16:27, Hit : 1109, Vote : 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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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 9.22




사계청소(Clearing the Field of Fire)

프로젝트 139展

2005_0902 ▶ 2005_0925 / 월요일 휴관



옥정호_똘이장군이 타잔을 한국에 초대했다_싱글채널비디오_2005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일민미술관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5_0901_목요일_06:00pm

김영은_김지혜_오수영_옥정호_유희원_윤사비_이진준_장원석_최재훈
오픈퍼포먼스_윤사비_김영은





일민미술관
서울 종로구 세종로 139번지
Tel. 02_2020_2055
www.ilmin.org






프로젝트 139는 젊은 작가들의 다양하고 독창적인 작업을 지원하는 일민미술관의 정기 프로그램이다. 이번에는 9명의 작가들을 선정해, 그들에게 공동으로 전시의 주제와 개념을 정하고 작업하도록 기획했다. 9명의 작가들이 정한 전시 주제는 「사계청소(Clearing the Field of Fire, 射界淸掃)」이다. ‘사계청소’란 군사용어로서, 군사지역내에서 시야를 확보하여 상대를 잘 관찰하고 효과적인 사격이 가능하도록 방해물을 제거하는 군사작전을 일컫는다. ■ 일민미술관




김영은_구체적인 농담_Specific Joking_7채널 비디오 설치_2005



김지혜_지장물에 관한 이야기_사진_2005



오수영_미신인형_2005_캔버스에 아크릴 채색_116.7x91cm


사계청소(Clearing the Field of Fire, 射界淸掃) ● 군사개념에 따르면, 우리 모두를 코드(code)화 된 개인이나 단위부대라고 가정할 때, 그 개인들은 모두 자신의 섹터(sector)를 가지고 그 안에서 활동을 하며, 그러한 섹터들이 모인 어떠한 상황을 필드(field)라고 한다. 다만, 군개념과 우리 미술계가 다른 점은 군개념에서는 단위부대가 책임지는 섹터의 크기와 위치가 상급부대의 판단에 의해 정해지지만 미술계는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미술계에서 개인의 섹터는 개인이 만드는 것이며, 그것의 크기나 성격, 특히 그 섹터의 위치는 전적으로 개인의 성향이나 능력에 의해 만들어지고 책임지게 된다. 즉, 섹터라는 것은 작가의 능력이나 성향에 따라 그 성격이 달라지고, 지금의 미술계 상황에서 어떤 성격의 섹터를 구축해 가고 있는가에 따라 그 작가의 성격이 결정지어지게 되는 것이다.




유희원_부부놀이_Marriage Test Dummies_싱글채널 비디오_2005



윤사비_김영은_guest성기완_오프닝퍼포먼스



이진준_사랑은 늘 이런 법인가_벽에 조명을 이용한 빛_2005


그렇다면 이제 막 자신의 섹터를 구축하고 있는 젊은 작가들이 자신이 구축해야 할 섹터의 위치나 성격을 결정하고 그 위치에 섹터를 구축하려 할 때 그들이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무엇일까. 우선 자신이 만든 공간에 은폐, 엄폐한 후 자신의 시야를 방해하는 잔가지들을 제거해야 할 것이다. 자신은 상대를 잘 볼 수 있되, 자신의 위치는 상대에게 드러나지 않도록 잔가지들을 잘 선별해 쳐내야 하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미술계에 있어서의 ‘사계청소(Clearing the Field of Fire, 射界淸掃)’이다.




장원석_공격_Attack_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 펜, 펜슬_138.5×104cm_2005



최재훈_ilmin museum of art set_디지털 프린트, 혼합재료_138×69×20cm_2005


사계청소를 잘못하면 자신의 섹터에 매몰되어 자신이 속한 필드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자신의 섹터를 어디에 위치해야 하는지 등을 판단하는 맵핑(mapping)을 할 수가 없다. 여기서 섹터, 필드라는 개념은 공간을 기본으로 하는 개념이고, 사계청소는 공간을 인지하기 위한 시각에 관한 개념이다. 물론 우리가 시각예술을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시각적 인지만이 중요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작가로서 섹터를 구축하기위한 첫 번째 행위로 사계청소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은가? 이 전시는 우리들이 어떤 방식으로 사계를 청소했고, 혹은 하고 있으며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보는 전시라 할 수 있겠다. 전시를 보는 입장에서, 또 만든 입장에서 작업을 돌이켜 볼 수 있는 각자의 메뉴얼을 만들어보고자 한다. ■ 작가 9인 공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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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 걸음

김병훈 사진展

2005_0916 ▶ 2005_1030



김병훈_흑백인화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갤러리 진선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5_0916_금요일_06:00pm

● 작가와의 대화_9월24일 / 10월22일_토요일_03:00pm




갤러리 진선
서울 종로구 팔판동 161번지
Tel. 02_723_3340






갤러리 진선의 세 번째 기획전인 김병훈 사진전 〈느린 걸음〉이 9월 16일부터 10월 30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의 제목인 〈느린 걸음〉은 대상에 대한 김병훈만의 독특한 시선을 담아내는 작업방법을 표현하는 말이다. 다른 이들은 무심코 지나치는 일상적인 대상을 김병훈은 오랜시간동안 반복적으로 관찰하고 느끼면서 산책하듯 사진을 찍고 있다. 이러한 ‘느린 걸음’과 같은 작업방법을 통해 김병훈은 대상의 솔직한 모습을 발견하고 그들의 모습을 정제된 화면 안에 담아내었다. 이번 〈느린 걸음〉展에서는 크게 ''비'', ''빛'' 그리고 ''휴식''이라는 흑백화면에 담긴 세 가지의 사진묶음이 김병훈의 짧은 기록과 함께 에세이처럼 펼쳐진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상의 본질을 포착한 김병훈의 사진과 그가 덧붙인 짧은 기록은 이 가을 여유를 찾는 관객에게 마음의 휴식과 잔잔한 여운을 전해줄 것이다.




김병훈_흑백인화


『내겐 슬픈 것들』 서문 중에서 ● 김병훈은 도시의 일상적 형상들을 찍는다. 그러니까 대체로 평범한 것들이다. 거리의 풍경, 지나는 사람, 진열장, 일상적인 기후, 나무와 햇살, 여행의 인상들, 식물의 줄기와 잎사귀 등이다. 그러나 그렇게 찍힌 사물은 작가의 사진의 프레임과 긴밀한 실존적인 관계 속으로 묶여 들어가는 동시에 그 스스로 말을 하게 하고, 그 대상이 지닌 이상한 힘에 우리의 시선을 새삼 주목시킨다. 김병훈의 사진은 정서적이고 감상적인 힘이 대상에 비해 다소 앞선다는 느낌이지만 그의 사진은 나름대로 대상을 해석하는 방식이자 장치의 일관됨을 보여준다. 사진이 사진 찍는 자와 대상 간의 긴장 관계를 보여주는 것이라면 그의 사진 역시 침묵 속에 많은 것을 함축해서 보여준다. 그는 도시의 비근한 일상 속에서, 삶에서 어떤 신비를 찾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의 사진은 그 현실에 독특한 빛을 던져준다. 도시를 이루는, 일상을 축적시키는 불협화음적인 이미지들은 사진 속에서 새로운 모습을 띤다.




김병훈_흑백인화


평범함으로부터 얻어진 이 요소들은 슬픔과 고통, 기쁨과 진부함의 원천이며, 모든 권태로움에 떨림을 낳는다. 현재의 삶의 현실과 현실 속에 숨겨진 복잡한 문제들의 뉘앙스, 모습들을 기록하는 그의 시선은 현실에 밀착되어 있다. 사색이나 몽상이 아니라 그때그때 자신의 육체와 감정에 부딪치는 순간을 기록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러니까 그의 사진은 한편으로는 외부의 충격과 긴장에서 오는 삶의 체험과, 다른 한편으로는 기억과 추억, 무의식의 부분에 축적된 비밀스런 내적인 경험 사이에 복잡하게 얽힌 망 속에서 이루어진다. 아울러 이 빠르게 변화하는 현실에 대한 특별한 입장과 연관되어 있다. 그러니까 김병훈의 사진은 바로 그러한 심리적인 의기 의식에 기반을 두고 있어 보인다. 인간의 마음보다 더 빨리 변하는 도시의 형태, 일상의 모습에서 그가 겪는 미묘한 심리적 굴곡과 위기, 강렬해지는 추억 등이 그의 사진이다. 결국 그 사진은 노스탤지어에 가깝다. 현재 그가 살고 있는 세계와 과거에 살았던 세계와의 괴리를 느끼는 데서 오는 어떤 상실감, 아픔이 사진 속에 배어 있다. 그는 모든 것을 새롭게 본다. 그래서 그는 항상 도취되어 있다. 결국 그는 고독한 산보자가 되어, 대도시라는 '인간의 사막' 속에서 관조의 즐거움에 빠져 거리를 서성거린다. 그리고 그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찾는다. 그의 눈에 비친 이 현실은 지금이라는 시간에의 의식과 연결되어 있다. 세상의 공간을 산책하는 이의 시선에 걸린 모든 풍경과 모든 느낌은 적조하다. 그는 그렇게 하염없이 걷는다. 공간 속으로, 사람들 사이로 그리고 사물과 사물의 틈 사이로… 어쩌면 그 틈으로 들어가는 일이 그의 일과 같기도 하다. 그렇게 다가오고 눈에 비치고 가슴으로 들어와 박힌 모든 존재는 결국 낯선 부재다. 김병훈은 그렇게 존재의 틈 사이로 마냥 들어간다. 들어가고 싶어한다. 사진기의 렌즈는 그 틈을 벌리고, 만들어 놓는 유일한 매개다.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경이롭고 애잔하고 슬프며 어둡고 또한 밝다. 그는 공간 속 사물과 빈번한 만남을 갖는다. 그 일이 그에게 유일한 삶의 일이다. 지난 소중한 기억을 찾아주는 매개물인 세상의 모든 것, 모든 느낌을 가능한 한 온전히 기록하고자 한다. 그것은 추억과 기억, 시간을 기억하고자,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이기도 하다.




김병훈_흑백인화


작가는 하염없이 걷는다. 그에게 이 보행은 일종의 「보행 명상」이다. 육체를 스스로 짊어지고 공간 속으로, 세상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세상의 고요에 사물과 인간들은 비로소 소음을 낸다. 그것들은 자신의 존재를 또한 그렇게 슬프게 반사한다. 눈이 부시다. 햇살은 그 상처난 몸을 더듬는다. 거기 그 육체의 적나라한 나신이 슬며시, 불현듯 부감된다. 그러니까 빛이 부재하다면 존재는 사라진다. 그래서 그는 그런 빛들을 안타깝게 추적한다. 서울 공간 곳곳을 산책하고 그렇게 해서 눈에 걸려든 사물들을 찍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반복해서 찍는다. 그 사물의 피부에는 동심과 추억이 묻어 있다. 그는 사물을 보면서 기억에 머문 채 살고 있다. 그 기억을 담고 있는 거리, 상점의 쇼윈도우, 낡은 책의 표지, 나무와 햇살 등 어떤 순간의 기억을 반복하여 상기시키는 매체들이 그가 찍는 대상들이다. 기억을 유지하기 위하여 작동하는 시선과 촬영, 그리고 그렇게 해서 찍힌 사진은 기억하는 물질인 두뇌의 보완물이다. 그는 오랜 시간 동안 일정한 공간을 반복해서 산책하면서 그것의 소멸을, 변화를, 그것도 급변하는 상들을 기록해 왔다. 그에게 변화란 낯섬과 안타까움, 그리고 일종의 변질이고 죽음이다. 그것들은 그에게 슬픈 감정을 부풀려준다. 슬픔을 기록하는 것, 지나간 것들을 상기하는 것, 기억과 향수를 기록하는 것이 이미지였다면 그의 사진 역시 그러한 욕망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김병훈_흑백인화


김병훈은 일기와 같은 사진을 찍는다. 그는 텍스트가 있는 사진을 찍고, 자신의 하루하루를, 매일의 산책을, 특정한 공간에서 만난 사물들과 사람의 피부를 찍는다. 무엇보다도 그는 그렇게 거닐면서 자연스레 추억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모든 사물들을 찍고 있다. 그것은 일상이 되었다. 그래서 그가 찍은 사진은 지극히 안락하고 또한 편하다. 현재의 시간을 살고 있지만 현재를 과거로 끌어들이던 자성에 의해 자신을 둘러싼 다른 삶을 정지된 기억의 선으로, 그 죽음의 선으로 끌어들인다. 그것은 과거의 집착에 따른 희생물들이다. 하지만 기억으로 정지하는 시간은 단지 멈추게 하고픈 순간들, 아름다운 추억의 순간만은 아니다. 반대로 지울 수 없는 강한 사건들, 대개는 상처로 기록되는 사건들 역시 기억의 형식으로 우리의 현재 속에 머물며, 우리의 신체 속에 남는다. 트라우마(Trauma), 그것은 감당하기엔 너무도 고통스러운 의식에 지워진, 그러나 결코 지워지지 않은 채 무의식의 영역에 살아남아 있는 과거다. 그것은 집착의 다른 형태다. 끔찍한 강도의 기억말이다. 아주 작은 자극만으로도 되살아나는 가슴아픈 상처들, 그 상처들을 오히려 더 찾아나서고 있다. 우리들 인간은 살면서 그렇게 지워지지 않는 기억에서 자유롭지 않은 상처를 지니고 있다. 모두가 불현듯 과거의 시간, 멈추어진 시간의 자성 속에 갇혀 있는 것이다.




김병훈_흑백인화


모든 사진에는 덧없이 흘러가 버리는 순간에 대한 집착으로서 「지금, 여기」의 일회적 현존에 대한 지극한 관심, 강박적 집착 같은 것들이 스며들어 있기도 하다. 그가 찍은 사진에는 시간의 흔적, 시간의 개입이 들어 있다. 모든 생명체들, 사물과 세계는 시간의 지배를 받는다. 어쩌면 인간은 시간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고자, 시간의 힘을 막고자 이미지를 고안했는지 모르겠다. 이미지를 빌어 비로소 시간의 입김이 범접하지 못할 정지와 영구성을 만들었다. 이미지는 인간의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 시간의 위력에 대항하기 위해 고안한 장치다. 사진은 그런 장치, 기능을 가장 구체화시킨 매체다. 모든 사물과 세계를 네모꼴의 세계에 가두어 사물을, 시간과 공간을 정지시키고 공간적, 시간적 단절을 보여준다. 시간의 지배로부터 일시적으로 풀려난 세계가 사진 속의 세계다. 작가는 97년부터 최근까지 찍은 사진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그것들 모두는 침착하게 조율된 흑백사진들이고, 우리네 일상의 비근한 사물과 풍경들이다. 이렇다 할 긴장감이나 극적 고조감은 납작하게 눌려진 채 다만 감상적이고 낭만적인 분위기만이 슬쩍 융기되어 있어 보인다. 적조함과 향수, 고독이 배어 있는 사진의 전형성 역시 엿보인다. 사진은 근원적으로 침묵이지만 그의 사진은 그런 고독감에 깊숙이 잠겨 있다.




김병훈_흑백인화


그는 또한 사진의 소재를 가까운 곳에서, 소박한 데서 찾는다. 그리고 아쉬워하면서 뒤돌아 본 것을 찍는다고 한다. 그는 늘상 그런 아쉬움, 상실감, 안타까움의 시선으로 대상을 바라본다. 사진가가 찍어내는 것은 대상이라기보다는 어쩌면 자기 자신, 자아일 것이다. 피사체를 빌어 스스로를 투사하는 것, 다시 말해 사진가는 의미를 추구하기보다는 스스로를 무의식적으로 복제한다. 이미 자신의 현실의 한 부분을 선택해서 사진에 담는다는 행위에는 의미부여가 들어가 있으며, 무엇인가를 본다는 것은 스스로의 삶에 의미있는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어떤 현상을 의미있게 보고 이를 사진으로 담는다는 것은 그러한 현상이 거기 있기보다는 그러한 현상이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사진가는 스스로가 주목하여 형상화시킨 내용을 타자와 공유하고자 그의 사진을 공개한다. 의미와 문맥 속으로 보는 이의 시선과 마음을 초대한다. 말을 건네고 말을 기다리는 것이다. 보는 이의 감정과 사고를 요구한다. 그래서, 한 장의 사진은 외부세계를 드러내는 것이라기보다는 스스로의 내부세계를 드러내는 것에 가깝다. 사진은 단순히 대상을 드러내고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물, 사물과 사물 혹은 환경과의 관계를, 그리고 그 관계성을 주목시킨다. 그의 사진 역시 그런 미묘한 관계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것은 명료하지 않다. 은밀한가 하면 모호하기도 하고 선명한 것 같으면서도 애매하다. 메를로 퐁티가 멋지게 말했듯이 “표현이란 마치 어느 누구도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지를 알 수 없는 안개 속으로 내딛는 걸음과 같은 것”이다. 그가 찍은 대상은 늘상 자신이 이전에 보았던 것, 만났던 것이 지금은 변화되어 다시 자신 앞에 존재한 것들이다. 그것은 분명 자신의 기억 저편에 자리한 것들이다. 이 경우 기억이란 단지 과거에 관한 것이 아니라, 현재의 시제를 갖는다. 그것은 멈추어선 현재, 과거로 돌아가기를 거부하며 지워지길 거부하는 현재, 그러니까 변이를 멈춘 현재적 삶이며, 멈추어선 삶의 시제다. 여기서 기억이란 주어진 어떤 삶, 혹은 현재라고 불리는 어떤 하나의 점을 멈추게 하는 의지의 형식이다. 그는 지난 시절, 시간에 보았던 사물들의 기억을 다시 확인한다. 혹은 사라지고 없어진 자리에서 그 이전의 자취를 떠올린다. 지난 시간이 기억 속에 자리한 사물들은 자기 동일성, 정체성을 유지시켜 주는 매개다. 동일성·정체성은 현재의 삶을 멈추어선 시간성 속에 붙들어 맴으로써 지워지지 않는 기억의 형식으로 변환시키는 고정의 형식이며, 멈추어선 삶을 당연한 현재성의 시제 속에 고정하고 유지하는 재생산의 형식이다. 망각이라는 만행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혹은 망각으로부터 소중한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우리는 사진의 기념이라는 방식의 보충행위를 한다. 그것은 무의식적인 의지의 영역인 기억과 망각의 문제를 의식으로, 표면으로 떠올리기 위한 의식적 상기행위가 사진을 찍는 일, 그것을 앨범의 갈피 속에 가두는 일, 수시로 꺼내 보는 일이다. 사진은 과거를 현재로 불러낸다. 하지만 그것이 수행하는 것은 정확하게는 과거의 사건에 다시금 현재를 연결시키고, 다른 곳으로 흘러가고 있는 현재를 과거의 그 방향으로 되돌리려는 안쓰러운 노력일 뿐이다. ■ 박영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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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극_a liminal space

유정현 회화, 설치展

2005_0913 ▶ 2005_0927



유정현_breath-32_캔버스에 아크릴 채색_60×50cm_2005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갤러리 아트사이드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5_0913_화요일_06:00pm




갤러리 아트사이드
서울 종로구 관훈동 171번지
Tel. 02_928_1020
www.artside.net






유정현의 네 번째 개인전, '간극(a liminal space)' ● 비트겐슈타인은 그의 저서 '논리 철학 논고(Tractatus Logico-Philosophicus)'에서 "이제껏 철학적 문제에 대해 기술해왔던 대부분의 전제들과 물음들은 틀리지 않다. 다만 무의미한(senseless) 것이 문제다. 우리는 이러한 물음에 대해 전혀 대답할 길이 없다. 다만 무의미함에 대해서만큼은 이야기할 수 있다"고 말한다. 철학이 파악하려고 하는 수많은 물음 중에, 특히 우리의 의식 나아가 시대의 의식에 대해 물음을 던질 때, 그 무의미함은 더욱 절실해진다. ● 우리의 의식은 상당히 명증한 것이어서 외부세계에 대한 객관적 판단이 가능하다. 이 객관적 판단에 힘입어 우리는 화성을 탐사하는가 하면, 나노 세계로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수 만가지 동식물의 식생을 구분해 낸다. 그러나 거울이 외부의 모든 것을 비추어주지만 자기의 모습은 비추지 못하는 운명인 것처럼, 우리 역시 외부의 모든 것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지만 정작 자기 자신은 무엇인지, 나아가 자기가 살고 있는 시대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 수가 없는 운명을 타고났다. 따라서 니체는 우리의 "의식(conscious)"은 명료한 것이지만 우리와 우리 시대에 관해서 만큼은 "동물적 의식(animal conscious)"에 불과하다고 말하며, 헤겔은 "우리는 시대의 어린이이다"라고 하고, 소설가 막스 프리시(Max Fricsh)는 소설 '슈틸러(Stiller)'에서 "한 인간이 살아야만 하는 그 시대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나는 이 물음에 대해 도통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말하자면 내게 격앙과도 같았다"고 회고한다.




유정현_A liminal space_혼합재료_가변설치_2005


유정현은 자기와 시대에 있어서 만큼은 이토록 "어린이"와 같고 심지어 "동물적"인 우리의 의식과 시대에 대해 결코 "무의미하지" 않은 진지한 물음을 던지며 성찰의 빛을 화폭에 불어넣는다. 우리는 정말로 우리가 무엇이며, 나아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무엇인지 명확한 답을 얻을 수 없다. 다만 그것에 대한 아련한 느낌들을 품고 살아갈 뿐이다. 이 아련한 느낌을 어떤 이는 "아우라"라고 하며, "삶의 형식"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 유정현의 회화에는 이러한 느낌들이 고스란히 용해되어있다. 빠르게 진행되는 사회, 그 속에서 펼쳐지는 그 많은 편린들, 명확한 경계와 구분도 없는 것 같은 정체성의 문제, 그러나 이와 반대로 사람들 사이에서 더욱 깊어만 가는 골, 바로 우리의 의식의 간극에 대한 염려들이 용해되어있다. 반복되면서도 얼룩지듯 흘러내려 서로가 서로를 불명료하게 만드는 모습은 바로 우리 모습에 대한 표상이다. 알록달록한 의복을 입은 아이는 세계의 그 모든 구성원이 불가사의하다는 듯 지그시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떨구고 있다. 이는 앞서 언급된 "시대의 어린이"와 그 맥을 함께한다. 우리의 의식은 자연계에서 아름다움을 향유한다 해도 유정현의 작품 '정체(station)'에서와 볼 수 있듯이 정체되어있으며, 또한 '얼굴(face)'에서와 같이 인간계에서 서로 자유롭게 소통한다 해도 편안히 체류하지 못한 채 유영해버리고 만다.




유정현_face-2_캔버스에 아크릴 채색_110×100cm_2005


삶에는 그러나 두 가지가 있다. 바로 내부자로서의 삶과 외부자로서의 삶이 그것이다. 내부자로서의 삶이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다. 이 삶은 생생한 경험을 누릴 수 있되, 그 본질을 파악할 수 없는 막연한 삶이다. 외부자로서의 삶이란 이미 흘러서 지나가버린 시간의 삶에 대해 관찰하는 삶이다. 따라서 내부자로서 우리는 우리의 삶의 의미를 모르지만 생생한 삶을 살아간다. 이 삶이 시간이 흘러 이미 과거가 되었을 때, 이 삶은 미래의 사람들에 의해 의미를 수여 받게 된다. 유정현은 우리의 삶을 포괄적으로 파악할 미래의 사람들에게, 우리가 현재의 의미를 모르기 때문에 겪었던 수많은 "불안"과 "무력"과 불쾌"와 "조소"를, 미리 보여주는 것 같다.




유정현_green_캔버스에 아크릴 채색_53×65cm_2005



유정현_breath-33_캔버스에 아크릴 채색_60×50cm_2005


1층에 진열되어있는 '숨결(breath)' 연작과 2층에 띠를 이루 듯 배치되어있는 '얼굴(face)' 연작은 바로 "우리는 무엇인가"라는 물음과 "이 시대는 무엇인가"라는 물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은 무엇인가"라는 물음 등에 그 어떠한 기저도 확보할 수 없는 우리의 운명을 잘 표현하고 있다. 우리는 때때로 가녀리며 때때로 거친 숨결로 매 순간을 살아간다. 서로 얼굴을 맞대며 살아가되, 삶의 의미에 대해서 파편적인 이해만 있을 뿐이다. 즉 이 작품들 속에 나오는 아이들, 즉 우리의 진정한 모습은 건실한 손과 발로 확고부동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눈을 감고 고개를 떨구며 한없이 부유하고 있다. 3층에 등장하는 설치작품 '간극(a liminal space)'은 이번 전시회를 포괄적으로 설명해주는 거대한 은유이다. 유정현이 상정하는, 의복이란 삶과 문화, 사회와 그 지위를 총괄하는 은유이다. 영어로 벽돌이라는 뜻 외에 무언가를 가로막는다는 뜻을 지닌 '블록(block)'은 의복을 가리기도 하며 드러내기도 한다. 이 은폐와 노정의 순환이 바로 유정현이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우리 삶의 모습이다. ● 앞서 비트겐슈타인이 제기한 철학의 문제는 논리의 그릇됨이 아니라, 무의미함 내지 감각의 결여(senseless)였다. 그리고 누군가 "이제는 철학이 사유하는 예술이건 예술이 감각으로 표현해내는 철학이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을 때, 유정현의 예술세계는 바로 "감각으로 표현해내는 철학"이자, 철학의 "무의미함'을 "의미 있는" 감각의 매체로 승격시키는 성찰의 깊이이다. ■ 이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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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x&Match

이수연 드로잉展

2005_0922 ▶ 2005_1019



이수연_Fun City_홀로그래피_40×65cm_2005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쌤쌤쌈지회관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5_0922_목요일_04:30pm




홍대앞 쌤쌤쌈지회관
서울 마포구 창전동 436-7번지 성산빌딩 지하1층
Tel. 02_3142_8571






이번 쌤쌤쌈지회관에서 하는 전시는 제목 그대로 『Mix&Match』이다. 기존의 갤러리에서 전시할 때에는 어떠한 테마를 기준으로 비슷한 그림들과 소재를 통일하여 전시장을 가득 메우고 있으며, 주제에 맞춰 작품에 대한 고민을 풀어 나가려는 노력이 여기저기에 묻어나기도 하고, 그것에 대한 과중한 깊이와 의무는 다른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나또한 벗어난 적이 거의 없었다.




이수연_Seiren Eye[1]_홀로그래피, 깃털_30×98cm_2004



이수연_Garden_디지털프린트_95×115cm_2004



이수연_Growing up Alice_홀로그래피_56×57cm_2005


그렇다고 이번 쌤쌤쌈지회관에서 하는 전시가 고민의 흔적이 전혀 없는 작업들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기존 갤러리에서는 주제나 소재를 거의 몇 가지로 통일해 작업했으나, 이번에는 사회의 다양한 변화와 요구?를 적용하여 주제, 소재의 굴레에서 탈피하도록 나름대로 반영했다. 그동안 심각하지 않고 무거운 분위기가 아닌 작업들을 만들어왔던 나이기도 하지만, 좀 더 평소에 하고 싶었던 자유로운 내용들과 소재들로 연출했다. 더불어 작업한 작품들을 쌤쌤쌈지회관의 아담한 공간에 가지런히 디스플레이 하여 다양한 볼거리로 만들어 보았다.




이수연_Untitle_캔버스에 아크릴 채색,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탈_16×22.5cm×2_2005



이수연_Untitle_벨벳에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탈_65×52cm_2005



이수연_Untitle-2_벨벳에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탈_65×52cm_2005


평소 갤러리에서 전시할 때마다 가끔 더 편하고 자유스러운 분위기를 만들고픈 마음이 굴뚝 같았으나 별로 그런 기회는 없었다. 정해진 소재나 주제를 염두에 두지않고 작가의 개성을 작은 공간에 다양한 작품으로 연출하고픈 마음은 항상 갖고 있었는데, 이번 쌤쌤쌈지회관에서의 전시는 나에게 즐거운 추억이 될 것 같아 기분좋게 작업을 할 수 있었다. 이번 전시는 다양한 소재를 한자리에 모아놓은 전시라고 생각해 주면 좋겠다. 3D Lenticular(Holography),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탈을 이용한 벨벳 작업, Lithograph, 페인팅 작품, 캐릭터 티셔츠등의 작업은 쌤쌤쌈지회관을 더욱 즐겁고 유쾌한 분위기로 만들어 줄 것이다. ■ 이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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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과 거짓말

2005 Group plusminus 기획展

2005_0922 ▶ 2005_1010



강연희_Puzzle_영상설치_2005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스타일 큐브 잔다리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5_0922_목요일_05:00pm

강연희_김민정_김태희_김화슬_민혜원_박병연_박상미_박은선_안소현
윤경미_윤정원_이고운_이지연_장유정_조재영_차경화_최재원_최종운





스타일 큐브 잔다리
서울 마포구 서교동 358-121 2층
Tel. 02_323_4155






이번 전시는 18명의 여성들의 비밀과 거짓말에 관한 이야기로 스스로를 감추고자하는 ‘비밀’과 그것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감추는 장치로서의‘거짓말’이라는 주제로 접근한다. 젊은 여성작가들이 간직해 온 비밀과 거짓말을 엿 볼 수 있다. 일상의 문제들이 관계 속에서 일어났다가 관계 속에서 회복되는 가운데 일어나는 비밀과 거짓말에 대한 다양한 양상을 18명의 젊은 작가들의 신선한 시선을 담아 입체, 평면, 영상, 설치로 자유롭게 연출된다.




김민정_the sense of reality into the composition of the imagination_장지에 채색, 실크스크린, 전사기법_2005



김태희_캔버스의 뒷면_캔버스에 아크릴_116×91cm_2005



김화슬_단서 찾기_혼합재료_가변설치_2005



민혜원_정면_장지에 채색, 바느질_54×45cm_2005



박병연_분홍수건_지점토와 분채_110×100cm_2005


보통사람들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많은 일들을 접하게 된다. 그 안에서는 크던, 작던 간에 숨길 수밖에 없는 비밀과 본의 아닌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 말하는 본인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이 경우 의식적인 거짓말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의식적인 거짓말을 전제로 한다.) 성인의 거짓말은 그 동기가 복잡하지만 때로는 거짓말도 하나의 방편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 도덕적인 평가가 반드시 똑같은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그 원인은 명예심이나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는 욕망에서 하는 경우가 많다.




박상미_light - 光 視_사진인화, 한지에 수묵_152×122cm_2005



박은선_비밀의 방_실리콘 고무, 혼합재료_100×100×200cm_2005



안소현_2000년 겨울_설치, 석고, 필름_2005



윤경미_이것은 트릭이다!!!_거울에 디지털 프린트와 드로잉 콜라주_42×165cm_2005



윤정원_그들의 사랑은 특별했다._잡지, 콜라주, 랩_2005



이고운_수수께끼 드로잉_스티커_가변크기_2005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대상들이 모두 긍정적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비밀이 빛 가운데로 막 나오려 한다는 위기감을 느낀다. 그것은 곧 불안과 두려움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밖으로 나올 때 그 비밀이 가져다줄 위험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게 때문이다. 비밀이 되어버린 그것. 현실대처 능력의 문제, 적절하게 반응하지 못한 자기 자신에게 벌어진 사건을 원만하게 처리할 수 없었다는 점과 그로 인해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비밀을 감추기 위한 거짓말로 인해 또 다른 거짓말이 생겨나고 드러나기 전까지 그 거짓말은 계속해서 연결된다.




이지연_기억 속을 걷다 -기억을 그리다 中_영상_2005



장유정_The Red Carpet_천, 옷장, 옷걸이_120×210×1300cm_2005



조재영_당신의 가방_투명비닐, 석고, 곰팡이_34×26×13㎝_2005



차경화_Lookism_옷, 옷걸이, 액자, 빨래줄, 혼합매체_가변설치_2005



최재원_달콤한 해프닝_보석함, 거울, 사진_40×30×21cm_2005



최종운_비공개_한지에 혼합기법_가변크기_2005


비밀은 스스로 만들어 내고 스스로 감추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다. 여기에 거짓말은 드러내어지는 표현을 의미하는데 결국, 거짓말은 비밀을 감추기 위해 포장되어지는 수단이 되는 것이다. 그 수단은 개개인의 상황과 위치, 경험에 따라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다. ■ Group plusminus




(2005-09-26 10:03:19)  
지난 일요일에 김병훈의 사진을 보고 왔는데, 좀 실망을 했다는...
전에 웹에서 그의 동물원 사진들을 보고 상당히 깊은 인상을 받았는데 이번에 전시된 사진을 보면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프린트는 좋은데, 사진 자체로는 별로였다는... 사진들도 긴 시간동안 찍은것들중에 이번 전시를 위해서 한번에 프린트된게 아니고 개별적으로 인화된것을 선별한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음...

여하튼 김병훈씨의 사진을 좀 더 큰 전시에서 다시금 좋은 사진들을 봤으면 좋겠다...
zabel (2005-09-26 13:42:53)  
위와 같은 인상을 저도 받았지만 그것보단,
마인드의 정체에서 비롯된 문제가 아닐까 하는. 산책이 그리운 이유에서 단 한걸음도 변한게 없단 거죠. 반복도 전략이고 작가가 매번 다르게 이야기해야는 건 아니지만 중층적인 두터움을 가지지 못하고 줄곧 같은 음율만 읇어대는 건 영 아니라 보여진다는.
반복은 그것이 겹쳐진 무게감만큼의 구축된 가치를 가져야 한다고 봐요. 같은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 공통된 다름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일.
뭏든, 35mm 프린트는 한국최고.


434   Jurgen Klauke  zabel 2005/10/26 1450 377
433   Philip-Lorca diCorcia  zabel 2005/10/23 1629 303
432   Bettina Rheims  zabel 2005/10/23 1363 443
431   Mitch Epstein  zabel 2005/10/20 1169 287
430   sarah moon  zabel 2005/10/20 1232 246
429   Walker Evans  zabel 2005/10/17 2417 546
428   김상길 사진 _1999  zabel 2005/10/13 1088 221
427   조용준 사진  zabel 2005/10/13 1088 317
426   [펌]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인터뷰  zabel 2005/10/13 1064 320
425   [링크] ART FORUM ACCIDENT!! [2]  lurker 2005/10/05 3216 553
424   BORIS IGNATOVICH  zabel 2005/10/02 1112 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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