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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zabel(2005-06-27 15:32:26, Hit : 1144, Vote : 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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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na Bar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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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그레에 관한 글은 읽은 만했는데, 이건 쩜-_-;   구래도 자료 삼아^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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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레니엄 크래커 상자,1983]
부유한 미국 상류집안에서 태어난 티나 바니(Tina Barney)는 가족과 친구들이 겪는 관례와 풍습을 면밀한 관찰자로써 20년 동안 그녀의 가족과 친한 친구들의 모습을 연대기적으로 찍어오고 있다. 뉴잉글랜드의 부유한 가정 출신인 바니는 자신이 잘 아는 사람들의 결혼, 졸업, 생일 그리고 칵테일 파티와 같은 일상생활과 속에서 오는 평범한 긴장에 관심을 갖는다. 형식은 스냅사진으로 객관적으로 기록한 다큐멘터리처럼 보인다. 다큐멘터리 사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을 바탕으로 한 ‘진실’일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사진을 전통적인 다큐멘터리 사진으로 볼 수 없는 점이 있다. 왜냐하면, 그녀의 사진은 현실에서 벌어진 것이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 연출을 통해서 만들어진 사진이기 때문이다. 연출을 가미한 사진에 어떻게 사실에 대한 신빙성을 부여할 수 있겠는가 ? 그런데 이 ‘사실’이라는 것 ‘진실’이라는 것은 촬영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과 진실은 유사함 개념이지만 결코 동일한 것은 아니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사진으로 찍었다고 해서 모두다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진실의 담론은 어디 까지나 사진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진에 진실성을 부여하는 사회적인 코드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 마리나의 방,1987]
1970년대 중반 35mm카메라로 사진을 시작한 바니는 1980년대 초반 4 x 5 inch 카메라로 전환하여 대형 컬러사진을 선보이면서 섬세한 세부묘사와 풍부한 색채로 완벽한 구성을 보여준다. 대형카메라는 스냅사진을 찍기에 매우 불편한 도구다. 35mm 필름처럼 연속 촬영이 가능한 것도 아니고, 몸체가 무거워 기동성이 떨어진다. 무엇보다 사진을 찍기 위해 소요되는 시간이 길어지므로 이사이 인물들은 카메라를 의식하게 되고 부자연스럽게 행동하기가 쉽다.
즉, 소위 말하는 ‘결정적인 순간’을 포착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 것이다. 바니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결정적 순간에서 나오는 완벽한 자연스러움이 아니라 어딘가 어색하고 인위적인 꾸밈이 있는 것처럼 인물들의 행위의 몸 짖을 담고 싶었던 것이다.
여기에 대형필름이 묘사해 내는 세부적인 디테일 과 현실감 있는 묘사능력을 최대한 살려서 실제상황처럼 보이기를 바랬다. 즉, 그녀의 사진이 꾸며지고 조작된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크게 확대된 이미지가 하도 명징하고 세밀해서 조작처럼 안보이고 실제상황처럼 보이는 데서 오는 미묘한 느낌을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느낌은 관객으로 하여금 더욱더 엿보기의 심리를 자극하고, 바니의 가족과 친구들 생활을 바라보는 관찰자가 되게 한다.
비록 그녀의 사진이 평범한 가족 사진의 외양을 띠고 있지만, 바니의 대형 이미지들은 자신의 가족과 그가 속한 가족이나 사회집단의 사람들을 배우처럼 등장시켜 면밀하게 계획된 자세를 취하도록 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녀의 사진 속에 등장하는 사건들은 극적인 상황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연출된 허구적인 장면이다. 그러나 이것은 상류사회의 일상적인 생활상을 보여주기 위한 고도로 계산된 장치이다. 그렇다고 해서 바니는 적극적으로 판단의 입장을 취하기 보다 다큐멘터리의 직접성과 개념적 사진의 구성적인 측면을 결합한 사진들을 통해 대부분 감춰져 왔던 생활 양식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이와 같은 일상에 관한 주제의식으로 작업한 경향은 197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70년대 미국 현대사진에서 매우 중요한 이슈로 '가정과 가족, 일상적인 주변에 대한 관심'을 들 수 있다. 전통적인 가족의 개념이 이혼과 이주의 증가에 따라 해체되기 시작하고, 대안적인 가족구성이 제안됨에 따라 '일상과 주변'에 대해 많은 사진작가들이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전의 사진이 결정적인 순간이나 장엄한 풍경, 완결된 형식미 등을 추구하였던 반면, 여기에 속하는 작가들은 자신의 주변, 산업화로 개발되거나 황폐해진 환경, 가족, 일상적인 삶 등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일상적인 주변으로 관심을 돌리고 있다.
일상에 관한 사진가 들의 관심은 80-90년대로 그대로 이어져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그러나 90년대 접어들어 현대사진에서 흥미로운 경향은 현실에서 존재하는 대상을 사실적으로 포착된 이미지와 작가가 어느 정도 연출한 이미지가 동시에 공존 하는 사진 작품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티나 바니를 비롯해 래리 설탄(Larry Sultan), 제프 월(Jeff Wall)이나 필립-로르카 디코르시아(Phillip-Lorca di Corcia)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른바 ‘포스트리얼리즘 사진(Post-Realism Photo)’이라는 새로운 경향이 확산되고 있다.

[▲ 마리나와 지퍼, 1997]
90년대 포스트리얼리즘 사진은 디스플레이적인 장식성, 연극적인 제스처, 영화적 미장센(mise-en-scene) 수법이 포스트리얼리즘 사진의 전형으로 자리잡았다. 그래서 사진은 인위적으로 연출된 영화의 한 장면 혹은 진행중인 연극의 단막극처럼 보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사실적인 다큐멘터리 사진으로 오인 하다가 면밀이 관찰하면, 가공된 이미지임을 알아차리게 된다.
바니는 대형카메라와 삼각대를 가지고 사진을 찍기 때문에 그녀의 사진이 몰래 찍은 진짜 스냅사진이라는 가능성은 전혀 없다. 때문에 그녀의 사진에는 인위적인 부자연스러움이 있다. 바로 이러한 요소가 묘하게도 그녀의 사진에 초 현실적인 분위기를 감돌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사진이 우리에게 익숙한 일상을 다루었다는 점과 스냅사진이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꾸며지지 않은 현실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현실과 비현실의 이중의 감성적인 작용은 그녀의 사진 앞에선 우리에게 익숙한 일상적인 삶의 모습이 어느 순간 매우 낯설게 느껴지게 되는 것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바니의 작품은 다큐멘터리 양식과 허구적인 무대장치 사이에서 중도적인 위치를 차지 한다. 때문에 그의 사진은 사실의 기록인 동시에 연출이라는 이중적인 의미를 모두 갖게 된다. 즉, 그의 작품에는 한결같이 지나치게 현실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해서 노골적으로 연출된 듯한 느낌을 주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매우 흥미롭게 다가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녀의 작업 속에는 실재와 재현, 현실과 가상, 진짜와 가짜라는 명확한 이분법적 구별을 불필요하게 만든다.
말하자면 현실에 없는 허구적인 상황을 작가가 연출해서 촬영 했음에도 불구하고 다큐멘터리 수법으로 촬영되어지고 동시에 이것이 사진이라는 매체에 의해서 기록된 것이라는 점이 거짓된 허구처럼 보이지 않는 다는 점이다. 즉 허구적인 이야기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숨기고 들어내지 않는 사진 이미지의 속성을 잘 보여주고 있는 그의 작품은 사진의 본질적인 미학적인 문제를 자연스럽게 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즉, 그녀의 사진은 사진 재현에 관한 객관성의 신화, 정확성과 투명성의 신화들에 도전하는 비판적인 실천이 되는 셈이다.

[▲ 졸업, 1984]
사진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현실이라고 믿게 되는 그녀의 사진 앞에서 그러나 사실은 연출되고 꾸며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오는 허무함은 또 무엇인가? 이것은 그 동안 사진에 대해서 우리가 절대적으로 현실과 동일시 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는 증거가 된다. 사진 앞에서 우리는 지나치게 맹목적으로 현실과 동일시 했다. 사진은 곧 사실이고 진실을 담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사진이야 말로 그 어떤 매체보다도 증거의 산물로 쓰여지지 않았던가! 하지만 사진은 처음부터 진실을 담기 위한 적당한 매체가 아니었다. 사진은 현실의 한 순간의 단면이요, 현실의 문맥으로부터 절단된 파편적인 이미지이다. 사진은 한 때 존재 했던 순간의 존재론적인 증거의 지표는 될 수 있으나, 진실이라는 의미는 아무것도 보장 해주지 못한다. 그것은 사진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진이 객관적인 사실을 담보 해주는 사회적인 정의에 의해서 만들어진 ‘의미론적’인 것이다. 피에르 브로디외의 말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사진은 완전한 허구만은 아니다. 어차피 사진을 만든다는 것은 작가의 선택적 행위가 있게 된다. 아무리 연출을 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주제를 선택하고 앵글, 프래이밍, 조명, 순간적인 포착, 최종적인 사진의 선택은 결국 일종의 연출의식이 들어가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연출을 했느냐 안 했느냐는 사실상 무의미 하다. 촬영당시에 사람들에게 약간의 각본을 주고 연기를 하도록 시킨다고 해서 그녀의 사진을 완전한 허구라고 부르기는 곤란 하다. 실제로 그녀의 사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전문적인 배우가 아니라 바니가 오랫동안 잘 알고 지내던 가족들과 친구들이다. 그러므로 바니 자신이 경험한 일상적인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행위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인데, 그녀는 자신의 주제 의식을 위해서 보다 적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친구들에게 이러저러한 연기를 주문한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등장 인물들 스스로가 자발적인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삶 그 자체가 일종의 연극 행위인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자 우리가 관광지에서 기념 촬영하는 것이 아무런 연출 없이 사실 그대로를 기록한 것이라고 보는가? 각종 기념식 날(결혼식, 아이 백일, 졸업식 등)사진을 찍는 행위는 또 어떠한가. 사진을 찍기 위해서 옷 매무새를 고치는 행위는 연출이 아닌가? 바니의 사진에서 우리는 라캉의 말처럼 ‘타자의 욕망’에 의해 자신을 주체로 오인 하면서 정체성을 확립 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하게 된다.
글_ 이영욱 (연변대학교 예술대학 사진과 교수 rxli@ybu.edu.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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