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정말로 이제는, 에지간한 미술품보다 광고가 훨 크리에이티브해 보인다.
미술이 거대자본과 빠구리 뜨고 있는 동안 또 다른 자본의 서자인 광고의
목소리는, 더욱 현실계를 증빙해내고 있다. 더불어, 대중과의 소통을 절대의 목표로
삼는 광고의 좌표자체는, 관객에 대한 오만한 작가들의 위치와 윤리성을 다시금 추정케
한다. .' ) + + + 출처 : 디자인하우스
올해도 38℃를 넘나드는 지중해의 열기 속에 52회 칸 국제광고제가 열렸다. 한국이 얻어낸 사자상은 작년에 이어 아쉽게도 사이버 부문
금상(영화 <달콤한 인생> 웹사이트) 하나에 그쳤다. 칸은 변화하고 있었다. 그리고 2005년 칸의 크리에이티브는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카테고리의 구분조차 모호하게 만드는 새로운 미디어들의 물결, 그리고 2004년 출품작의 키워드였던 ‘단순 명료한 메시지’에 ‘심미적
아름다움’까지 갖춘 프레스 광고들. 빛나는 크리에이티브에 기본기까지 재정비한 2005, 칸의 현장을
살펴본다.
예술작품이 된 광고
<
A>> 1~3. 손가락(Fingers), 심장(Heart), 성대(Vocal
Cords). 프랑스 EMI의 음반 불법 복제 반대 캠페인 시리즈. 프레스 부문 그랑프리를 수상한 작품으로 키스 리차드,
조 코커, 이기 팝 등 누구나 동경하는 아티스트들의 노고와 열정을 ‘위대함은 쉽게 얻을 수 없다’는 카피와 함께 하드코어 음악적인 아트워크로
표현했다. 암암리에 ‘그 가수의 음악을 사랑하는 팬이라면’ 합리화될 수 있었던 불법 복제는 이 광고를 봄으로써 양심을 질책하게 한다. 부정의
논리와 협박이 아닌 ‘긍정의 힘’을 과시한 것이다. TBWA 파리의 출품작.
“이제는 우리도 긍정의
힘을 발휘할 때” 글/안해익, 제일기획 CD, 인쇄,옥외광고 부문 심사위원
뉴미디어의 물결 더 이상 ‘정형화된 4대 매체의 틀 속에 어떤 아이디어를 넣을까?’ 의 고민이 아니라 ‘어떤 새로운 미디어를 시도할까?’가
크리에이터의 현명함으로 비쳐지는, 즉 미디어 그 자체의 발견이 크리에이티브의 출발이 되는 시대가 오고 있다. 우리는 최근 소비자를
‘니즈(needs)’라는 단어 대신 ‘소비자 인사이트’라고 말한다. 이것은 광고 크리에이티브의 역할이 요즘 소비자들의 숨겨진, 또는 표현되지
않았던 새로운 잠재욕구를 찾아내는 내비게이터임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번 칸의 심사 과정에서 “원더풀
인사이트!”라는 칭찬을 수시로 들을 수 있었으며, 더욱 관심을 끈 것은 그들은 ‘미디어 인사이트’라는 표현을 수시로 사용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소비자 인사이트를 어떻게 표출시킬 것인가의 고민이 바로 미디어 인사이트라는 말을 더불어 사용케 한 것이다.
본래로 돌아가는 인쇄매체 지난 십여 년 전부터, 뉴미디어와 사이버미디어가 등장한 최근까지 인쇄광고는 전성기를 누려왔다. 광고의 홍수 속에서
돌출되어야 한다는 특명으로 인쇄광고 크리에이티브 역시도 재미와 쇼맨십을 발휘하는 것에서 예외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미 인쇄광고가 출발할
때 지녔던 이성매체로서의 가치를 벗어난 것이었다. 그러나 올해 칸에서 인쇄매체는 방황하며 후회하고 있었다. 지난 수년간 급부상해온 뉴미디어의
파격적인 퍼포먼스와 쇼맨십의 규모를 보면서 인쇄매체는 이제까지의 외도와 쾌락의 추구는 자신의 본무대를 망각한 초라한 외출이었음을 반성,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만이 생존이라는 것을 처절하게 느끼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이성적이며 지적인 매체, 가장 아름다운 심미적 시각매체로서 본연의
모습을 다시 되찾으려 애쓰고 있었다.
‘긍정의 힘’을 보여 준 화법 칸은 광고 ‘크리에이티브의 본질’을 가장 잘 지켜 오고 있는 광고제다. 그 본질은 매년 부진한 수상 실적을
보이는 우리나라의 크리에이터들에게 특별히 간과되고 있는 것이어서 더욱 중요한 시사점을 지닌다. 바로 크리에이티브 ‘화법(話法)’에 대한
무관심이다. 심사 과정에서도 한국의 출품작들은 선진 광고들처럼 화법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지 못했다. 필름 부문 혼다의 퍼스트 디젤 엔진
캠페인은 ‘긍정적 미움(Positive Hate)’이라는 테마를 선보였다. 그들은 베를린 장벽을 허물던 기록 테이프에서 ‘싫음의 새로운
인사이트’를 발견했다고 한다. 당시 해머로 벽을 허물던 사람들의 행위는 분명 증오에서 기인한 것이지만 오히려 그들의 얼굴엔 커다란 환희의 미소가
가득했으며 그것은 바로 즐거운 미움(joyful hate)이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더 나은 것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있을 때에는 기존
것이 아무리 증오스럽다 하더라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며 심지어 즐거울(joyful) 수도 있다는,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인사이트를
발견한 것이었다. 그 광고의 파장은 큰 것이었으며 재미있는 일화도 낳았다. 갱생의 의지를 가지려는 길거리의 마약 중독자들에겐 그 광고의 화법이
압력과 협박의 코드가 아닌 희망과 긍정의 코드였다는 점에서 특별히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고 한다.

 1, 2.
뉴튼, 처칠. 싱가포르의 성공회 복지회(Anaglican Welfare Council)를 위한 잡지광고.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을 특별 취급하지 말라. 이 광고는 중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튼, 영국의 정치가 윈스턴 처칠 등 우리가 알고 있는 위인들은 미쳤거나
정상이 아닌 사람들이었다고 말한다. 그들의 혼란스러운 정신세계를 어지러운 손글씨와 붓터치로 하나의 아트워크로 표현했다. 오길비 앤드
마더(Ogilvy & Mather)의 출품작. 프레스 부문 은상을 수상했다.
 3,4.
두려움(Fear), 공포영화(Horror) 남아프리카 애드콕 인그램(Adcock Ingram)의 ‘최후의 심판 살충제’
신문광고. TBWA 요하네스버그에서 출품한 것으로 프레스 부문 은상을 수상했다. 피해자인 곤충에게는 살충제가 등장하는 영화는 공포영화가 될
정도로 무서운 존재라는 것을 재미있는 일러스트레이션으로 그려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