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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다시 한번. 사람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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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이미지프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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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 : 이시가와 마오(포토저널리스트)
장 소 : 일본 오키나와
참 석 : 국수용, 신동필
* 편집자 주 :
2002년 한국의 사진가들이 일본 오키나와에서 활동하고 있는 다큐멘터리 사진가이자 포토저널리스트인 이시가와 마오를 만났다. 이시가와 마오는
오랫동안 오키나와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을 기록했으며 그로 인해 발생한 사회 내부의 문제에 천착해 왔다. 국수용씨는 돌아오자마자 인터뷰 내용을
이미지프레스에 기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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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가와 마오는 현재 암 투병 중이다. 그러나 항암제를 거부하고 있다. 항암제를 투여하면
백혈구가 파괴돼 체력이 떨어져 사진작업을 계속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2년 전 신장암 선고를 받았고 이어 직장암 수술로 인공항문을 배꼽 옆에
달았다. 의사는 5년 이상 생존을 보장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의사는 5% 생존율의 항암제 투여를 권했다. 그러나 이시가와 마오는 5%의
생존율보다 죽음으로 가는 사진작업을 택했다. 1972년 오키나와에는 오키나와의 일본반환협정 반대운동이 일었다. 당시 고3인 이시가와 마오는
집회와 데모에 참석했고 거기서 화염에 휩싸여 죽어 가는 기동대원을 목격했다. 그 충격으로 폭력이 아닌 다른 방식의 운동으로 사진을 택했다.
그리고 줄곧 오키나와의 사진만 찍고 있다. 미군 기지촌을 찍을 때는 호스테스로 살았고 포구의 노동자를 찍을 땐 노동자의 연인으로
살았다. "나는 오키나와에서 태어나 교육받고, 지금도 오키나와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오키나와의 미군기지 문제에 뛰어드는 것은
숙명이다. 하지만 나는 기지 그 자체보다도 기지주변에 모여든 수많은 사람들 -미군병사나, 거리의 사람들, 기지종업원(군속)들-속에서 인간드라마를
뒤쫓고 있다. 내가 생각한 캐치프레이즈는 '추하지만 아름다운 사람의 일생, 나는 사람이 좋다'이다. 인간은 모두 선과 악, 추함과 아름다움,
앞면과 뒷면의 양면을 가지고 있다. 아름다운 것만 있는 사람은 없다. 또한 추한 것만 있는 사람도 없다. '악당'이라고 불리는 사람도 그 사람의
가족이나 친구들에게는 무척 좋은 사람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입장에서 사람을 바라볼 것인가라고 생각한다. 나는 인간의 추한 면도 아름다운 면도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다. 그리고 이해하고 싶다고 생각하며 항상 취재에 임한다. 만약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사람은 더 이상 찍지 않을
것이다." 『사진집 오키나와SOUL 중에서』 원래 오키나와는 류구(琉球)왕국이라는 독립국이었으나 1609년 일본이 정복하였다. 그 후
메이지유신 때 오키나와현이 되었고 1945년 태평양전쟁 후 미국령이었다가 1972년 일본에 반환되었다. 지금도 섬 대부분에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오키나와 역시 우리와 비슷하게 미국과 조약한 행정협정법(SOFA)의 문제를 안고 있다. 이시가와 마오의 사진은 단순한 오키나와의 기록이
아니다. 오키나와를 향한 한 여전사의 뜨거운 사랑이야기다.
▣ 이시가와
마오(石川眞生) 이시가와 마오는 1953년 일본의 오키나와현 출생으로 동경의 "WORKSHOP사진학교"에서 처음 사진을
공부했다. 특히 토우마츠 쇼메이에게서 사진을 배우고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이후 오키나와로 돌아와 지난 30년 동안 미군기지촌을 비롯해서
해상자위대, 포구의 노동자, 전통연극등을 기록했고 사진집으로 출판했다. 현재 오키나와타임즈, 류큐신보등 일본의 각종언론에 사진과 글을 기고하는
포토저널리스트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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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오키나와는 수많은 미군병사가 저지르는 범죄와 미군기지로 인한 피해가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미군과 교류하며 친해지는 우치난츄(오키나와 사람)들도 있다. 친척 중에는 미군과 결혼한 사람도 있고 미군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사람도
있다. 오키나와 사람들은 무조건 미군을 싫어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미군들은 모든 오키나와인에게 미움을 받고 있나"라고 질문하면 젊은 미
해병대 군인은 "나는 그렇지 않다. '양키고우 홈'이 아니고, '노모어 아메리칸 베이시스'다"라고 대답한다. 오키나와에 군대는 필요 없다.
하지만 병사들과 어떻게 어울리느냐는 중요하다. 오키나와 기지의 문제는 사람과 사람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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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장기에 대한 논쟁이 아니다. 나는 "일장기로 당신을 표현해 주십시오. 그리고 나에게 일본인을
보여주십시오"라고 이야기했다. 나는 1993년부터 99년까지, 100명의 일본인이 일장기와 함께 한 포츄레이트를 촬영했다. 1987년의 오키나와
국체의 소프트볼 대회장에 걸린 일장기를 불태운 치바나 쇼우이치씨를 시작으로 재일 조선인, 차별 받는 부락민, 우익, 아이누인 그리고 전국의
야마톤츄(본토사람) 등을 촬영했다. 취재 중인 1999년 8월에 국기, 국가 법안이 입안했다. 우찌난추(오키나와 사람)에게 "일본인이란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바로 여기에 표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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