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미디어 오늘(www.mediatoday.co.kr) - 연재 - 무대뽀의 이미지 읽기 - 슈퍼마켓이 미술관으로 옮겨왔다?
Dunpeel [2004-07-21]
조금 주제와 멀어진 기사에 대한 의견일지는 모르지만,
뒤샹과 워홀에 대한 저의 의견을 말하고 싶습니다.
정말이지 현대미술을 말함에 있어 빠지지 않는 지겨운 두 인물이죠. 그러면서도 어느 한 사람에 대해 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재학시절 난해한 뒤샹에 대해 “뒤썅”이라 말한 후, 엄청 후회한 경험이 있거든요.
흔히 뒤샹의 행위나 워홀의 작업이 현대미술을 난해하게 만드는데, 일조하였다고 말하는데,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둘의 작업에서 대중에게 멀어져 가는 현대미술의 흐름에 대한 강한 비판과 대안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심(知深)이 얕아 간단히 말하면, 뒤샹의 행위에선 미술전시공간에 대한 비판을, 워홀의 작업에선 공업화 된 생산수단에 흐름에 맞춰 나가야 할 작품의 제작방향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볼 때,
현대미술과 대중간의 간극이 멀어지는 이유는, 말 그대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전시공간과 - 관객” .... 뭐 전시 홍보 등이 간간이 중간에 놓여있다고는 해도, 여타의 대중문화의 연결 코드와 비교 하면, 정말 중간 다리라는 게 너무나 얇고 가늘기만 합니다.
적절치 않을 수도 있겠지만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A군은 콘서트를 하면 표가매진 되는 대중가수가 있습니다. 그는 노래 좋고, 노래 잘하고, 무대매너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콘서트 때면 수 시간 만에 티켓이 동이 납니다.
B군은 작품전을 하면 관람객이 많이 올까 걱정하는 작가입니다. 그는 그림 좋고, 작업 열심히 하고, 관객에 대한 배려또한 좋습니다. 하지만 그의 작품전에는 사람들이 많이 오지 않습니다.
A군과 B군의 차이가 뭘까요. 물론 비인기 종목 선택도 들 수 있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원인은 아닙니다.
제가 말하고픈 원인은 “관객이 모르기 때문”입니다.
A군의 콘서트에 온 사람들은 A군이 노래 좋고, 노래 잘하는 가수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B군의 작업이 좋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별로 없죠.
그 이유는 A군에게는 자신을 알린 앨범이라는 것이 있었고, B군에게는 그것이 없었다는 겁니다.
A군 역시도 앨범을 통한 자신의 홍보가 없었다면, 그는 S석에 모여 있는 낯익은 사람들을 바라보며, 노래를 불렀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겠죠.
미래의 팬들이 구입 시 부담되지 않는 가격에 대량생산하여 판매하는 앨범을 먼저 선보이는 것은 가수들에게 있어 당연한 것이니까요.
이러한 자신의 중간 홍보 작업은 음악계뿐만이 아닌 다양한 문화장르에 각기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고, 이뤄지고 있습니다.
미술계에도 있긴 합니다.
국내 흥행에서 실패한 영화가 해외에서 상을 받아오면 재상영되어 관객의 관심을 받듯,
해외에서 좋은 반응을 얻은 작가가 국내에 돌아와 관심을 받는 경우죠.
하지만, 관심을 받는 것은 좋아도, 미술계 관련자나 소수의 컬렉터에게 받는 관심뿐이죠.
갤러리가 작가의 홍보를 위해 최선을 다해도 대중에게 알려지지는 않습니다.
갤러리와 대중의 사이엔 다리가 없다고 봐야 할 정도로요.
저 멀리서 아무리 외쳐도 대중에게까지는 들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미술계 내엔 공인이 있어도, 대중에게 미술계의 공인은 없습니다.
이에 미술계에도 작가의 앨범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합니다.
그러한 앨범 제작 방법을 전 워홀의 작업에서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앨범이 히트한다면, 전시라는 콘서트에 많은 사람들이 오겠죠.
그가 그림 좋고, 작업 열심히 하고, 관객에 대한 배려또한 좋다는 것을 대중이 알테니까요.
뒤샹의 행위가 이용한 미술관이 가진 이미지가 현재까지 변화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 이미지가 더 악화되어 발전 되 가고 있다고 봅니다.
이에 잠시 나와 자신을 알릴 수 있는 앨범을 만들고, 이를 통해 팬을 확보한 후,
미술관에서 콘서트를 가져봄은 어떨까 합니다.
무대뽀 [2004-07-22]
Dunpeel님의 글을 읽고...
Dunpeel님의 뒤샹과 워홀에 대한 콘멘트 잘 읽었습니다
"뒤샹의 행위에선 미술전시공간에 대한 비판을, 워홀의 작업에선 공업화 된 생산수단에 흐름에 맞춰 나가야 할 작품의 제작방향을 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뒤샹의 <샘>의 경우는 '소변기'가 작품으로 변용되어 미술관의 전시공간에 당당하게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는데
이 점은 Dunpeel님께서 말하신 "미술전시공간에 대한 비판"으로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허나, 다른 한편으로 뒤샹의 <샘>은 미술전시공간, 즉 미술관의 입지를 더욱 곤고히 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고 저는 봅니다
한 마디로 일상품이 미술관의 문턱을 넘어 전시장에 전시되면 무엇이든 '작품'으로 변용된다는 것입니다
(그 극단적인 사례가 위에서 제가 언급한 기욤의 <새로운 슈퍼마켓>이 아닐까 싶습니다)

기욤의 [새로운 슈퍼마켓](Guillaume Bijl Neuer Supermarkt,Austellungsansicht, 1990/2002)
따라서 뒤샹의 <샘>은 미술관의 위력(?)을 반증하는 것이 되는 셈이죠
뒤샹 이후 미술관 혹은 미술제도에 대한 비판적 작품들은 왕성한 자본주의의 식욕(?)에 벗어날 수 없다는 딜레마에 빠져버렸습니다
근데 바로 그 점을 깨닫고 오히려 자본주의 '식욕'을 더욱 부추키는 작품이 다름아닌 워홀의 작품이라고 저는 봅니다
바로 그런 까닭에 저는 Dunpeel님께서 말하신 아래의 진술에 동의합니다
"흔히 뒤샹의 행위나 워홀의 작업이 현대미술을 난해하게 만드는데, 일조하였다고 말하는데,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둘의 작업에서 대중에게 멀어져 가는 현대미술의 흐름에 대한 강한 비판과 대안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
논의에서 벗어나는 말일 것 같은데, 뒤샹의 <샘>은 1917년 작품이 '아니었습니다'
뒤샹의 <샘>이 출품된 독립 미술가 협회전은 '어떤 예술가이든 6달러의 참가비만 내면 누구나 자신의 작품을 전시'
할 수 있는 전시였습니다
허나 뒤샹의 <샘>은 전시 보이코트를 당함으로써 독립 미술가 협회전의 전제는 무의미한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원래 독립 미술가 협회전에는 '심사위원'은 없고 단지 '전시위원'만 있었습니다.
그러나 뒤샹의 <샘>을 보이코트함으로써
그 '전시위원'들은 '심사위원'들이 된 셈이죠)
물론 당시 그 사건(?)은 <맹인>지에 기사화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뒤샹의 <샘>은 당시 작품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뒤샹의 <샘>이 분실되고 복제된 시기를 1964년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그 1964년은 워홀의 <브릴로 박스>가 전시되었던 해입니다)
그리고 뒤샹의 <샘>을 비롯 뒤샹의 레디-메이드을 모조리 복제하여 유럽에서 거대한 순회전을 가졌던 시기도 1964년입니다
이런 정황을 볼때 1917년 당시 뒤샹의 <샘>은 작품이 아니었지만 1964년 당시 뒤샹의 <샘>이 작품으로 인정되었음을 알려줍니다
***
Dunpeel님께서 대중과 예술의 중간다리 역할로 들었던 A군(음악가)과 B군(미술가)을 사례, 참신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근데 이런 의문점이 들더군요
말씀하신 음악의 '앨범'이 미술에서 어떤 형식으로 나타날 수 있을까?
음악 '컨서트'를 '전시회'에 비유한다면 '앨범'은 '도록'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만약 그렇다면, 미술계의 도록은 앨범과는 달리 전시와 맞물려 있다는 차이를 넘어서야만 하는 과제를 지니게 됩니다
그럼 미술계는 음악의 '앨범'으로 어떤 형식을 창출해 낼 수 있을까요?
"미래의 팬들이 구입 시 부담되지 않는 가격에 대량생산하여 판매하는" 미술계 '앨범'은 무엇이 될 수 있을까요?
Dunpeel님께서는 "그러한 앨범 제작 방법을 전 워홀의 작업에서 볼 수 있다고 생각"하셨습니다
특히 워홀의 작품들 중에서 대량생산에 관련되는 작품이겠지요
허나 워홀의 작품들 중에 '대량생산이라고 불리는 작품은 사실 산업계의 '대량생산'과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워홀의 <브릴로 박스>는 기계로 대량생산된 것이 아니라 전통적인 방법, 즉 손으로 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일종의 대량생산으로 볼 수 있는 판화의 경우도 워홀은 교묘하게 약간의 차이를 두고 찍었습니다)
이후 워홀의 대량생산에 주목한 일련의 작가들이 있습니다 허나 그들의 작품들도 한결같이 산업계의 '대량생산'으로까지 확장시키지는 못했습니다.
물론 그들도 산업계의 대량생산을 타킷으로 삼고자 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산업계의 대량생산을 그대로 차용하지 않은/못한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저의 개인적인 생각에 의하면 아직 '미술작품'은 대량생산할 수 있는 처지(상황)에 아직 놓여져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제가 주목하고 있는 부분, 즉 제가 특히 '리빙 퍼니처'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Dunpeel님께서 말씀하셨던
"미래의 팬들이 구입 시 부담되지 않는 가격에 대량생산하여 판매하는" 작품의 출현입니다
바로 그 점 때문에 미술계와 공예계 사이에 위치한다고 할 수 있는 일종의 '아뜨 벼룩시장'에 제가 주목하는 것이지요
(지난 '아뜨 벼룩시장'에 관련된 연재에서 저는 그 '아뜨 벼룩시장'을 일종의 '리빙 퍼니처'로 읽었습니다)
Dunpeel님께서 이미 파악하셨겠지만 제가 퍼블릭 퍼니처와 리빙 퍼니처를 언급하기 위해 단토의 '예술의 종말'을 언급했던 것이었습니다
Dunpeel [2004-07-23]
무대뽀 선생님 먼저 좋은 답변(지적)에 감사드립니다. (꾸벅)

이동욱 [dolphin safe] 혼합재료 깡통 10×10×5cm 2003
이 작품을 보면서 완성작이 아닌 일반 캔을 판매하여, 관람객이 직접 캔을 따보는 순간 그 안에 담기 작가의 세계를 보여주는 시도는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남았다.
물론 ‘도록’이 ‘음악의 앨범’과 같은 역할을 하진 못합니다. 하지만, 미술에서의 앨범제작에 있어 빠져서는 안 될 것이 또한 ‘도록’입니다.
제가 말하고픈 미술에서의 앨범은 한정된 수량 내에서 만들어지는 축소된 형태의 작업입니다.
축소된 형태의 작업은, 일상 공간에 놓고 시판될 수 있는 작업의 형태, 일반적 운송 방법으로 배송이 가능한 작품이지, 하나의 작품을 축소한 작업은 아닙니다.
그것은 지적하셨다 시피 공예와 같은 형태일수도 있겠고, 보다 창의적인 참여를 요구하는 형태일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생활 속에서 접해왔던 익숙한 형태로 작업이 포장 되어야 된다는 겁니다.
포장되어진 작업엔 전시도록에 들어가는 작가와 작품설명, 그리고 일상 제품의 매뉴얼의 형태가 합쳐진 도록이 함께 동봉됩니다. (당연 작품 또한, 제품의 성격을 갖게 됩니다.)
전시도록의 작품과 작가에 대한 설명은 구입자가 작업을 바라 볼 수 있는 배경지식을 만들어주고, 박스와 매뉴얼은 그 제품을 보증 받을 수 있는 근거이자, 동봉된 작품을 활용할 수 있는 안내서 역할을 합니다.

(최우람의 헤드킷/ 실재 제작되지는 않았다. 작품과 작가에 대한 설명에 이와 같은 매뉴얼이 함께 동봉되어 일반 조립킷과 같은 형식으로 작품이 판매된다면 많은 판매와 작가로서의 홍보를 거둘 수 있지 않았을까? 완성된 작품을 만들기 위한 재미도 함께 한다.)
이러한 중간단계 형태의 작품에 대해 생각하게 된 원인은 “미술에서의 앨범” 을 통해 보다 대중에게 다가가자이며, 동시에 “미래의 팬들이 구입 시 부담되지 않는 가격”을 통한 실질적인 작품의 판매입니다.
전 현재 일반적인 작가가 1-2년에 걸친 긴 시간동안 작품을 준비하여, 대여한 공간에 일주일가량 작업을 공개하여, 1-2년에 대한 시간과 노력의 보상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10원짜리의 가치는 하락하는데, 백날 땅 파도 10원짜리 하나 보기 어려운 것은 똑같습니다.
이런 모양새라면, 유구한 역사의 오랜 전통을 계승할 것인지, 살짝 굽히고 새롭게 시작할 것인지를 판단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실질적인 작품 판매를 위한 비즈니스 제안입니다.
낮은 가격은,
일백만원의 작품을 판매할 것인지, 이만원대의 작품 50점을 판매할 것인지의 선택이죠.
위의 것은 단지 등식일 뿐이지, 포장에 드는 비용을 계산한다면 50점 이상을 판매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작가는 자신의 작업을 구매욕을 만들 수 있도록 매혹적으로 포장해야 합니다. (이러한 역할을 갤러리가 도와주면 금상첨화겠지만...)
그렇기에 전 여기서 ‘음악의 앨범’과도 비슷하다 라고 보게 되었습니다.
성공한 대중가수를 보면, 신인시절 10의 9할 정도를 상업적인 코드로 할애하다, 점차 앨범이 성공하고 가수로서의 입지를 다질수록 앨범에 자신이 원하는 음악에 대한 공간을 할애해 나가 듯이요. 또한 콘서트를 통해 앨범으로서 보여주지 못한 것을 보여주게 되죠.

일반 완구류로 판매되고 노호혼.
태양열에 의해 머리를 좌우로 움직이는 노호혼은, 보는 이들에게 행복을 주기 위해 만들어 졌다고 한다. 제품으로서 만났다는 것이 내내 아쉬운 제품이었다. 제품과 작품의 차이가....
무대뽀 선생님이 말씀하다시피, 제가 말하고픈 형태의 작품제작에 근접한 작업은 있어왔습니다.
저 역시도 간간이 아트벼룩시장에 들러보면, 상품개발에 노력하는 이들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것이 몇 가지 빠졌더군요.
“파는 제품 같다는 이미지가 약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파는 제품 같다는 이미지”가 단지 공업화에 의한 대량생산품에서 볼 수 있는 깔끔한 마무리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트벼룩시장의 판매 작품들은 수공예적인 상품과 작품의 중간 이미지를 갖고 있고, 거의가 일상 생활품에 작가의 이미지를 담는데서 멈추고 있습니다.
일상 생활품에 작가의 이미지를 담는 것 또한, 하나의 방법일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작품으로의 설명과 작품으로서의 보증성을 더해 포장된 완성작을 판매하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남더군요.
이것은 또한, 깔끔한 마무리를 보여주는 아트상품과는 다릅니다.
상품에 작품의 이미지를 옮겨 넣는 것과는 다릅니다.
상품 자체가 작품이어야 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판매하는 ‘데미안허스트의 Painting set’이 작가의 이름값이 구매욕을 만든다는 단점을 빼곤, 제가 생각하는 ‘미술에서의 앨범’ 에 가깝습니다.

데미안 허스트의 Painting set
데미안 허스트의 Painting set 의 완성작만을 봤을 뿐이라, 구성품을 정확히는 알지 못합니다. 들은 바로는 이 제품을 구입하면(작가의 이름 때문에 꽤 비싼 가격) 안에 붓과 물감 캔버스가 있는데, 캔버스에는 데미안 허스트가 넣은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고, 구입한 관람객은 자신이 직접 원하는 컬러로 원안에 색칠을 해나가 작품을 완성하는 형태입니다.
일반 숍의 판매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구입자에 참여하는 재미를 만들어 학창시절 놓았던 붓을 다시금 쥐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제품성 작품은 분명 일반 아트상품과는 다르다고 봅니다.
‘미술에서의 앨범’은 무엇일까에 대해 제가 구두 상으로나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것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이러한 생각의 실현을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작가가 얼마나 대중의 구입욕구를 끌어낼 수 있는 매력적 아이템으로 작품을 포장 할 수 있느냐 입니다.
무대뽀 [2004-07-23]
Dunpeel님의 좋은 제안에 감사드립니다. 꾸뻑!^^
Dunpeel님께서 미술에서의 '앨범'이라는 사례로 들었던 데미안 허스트의 Painting Set을 보고 왜 Dunpeel님께서 워홀을 언급하셨는지 나름대로 감이 잡혔습니다
혹 오바일지는 모르겠으나 데미안 허스트의 Painting Set은 워홀의 (1962)를 극단적으로 몰고간 형태라고 생각됩니다

오른쪽 : Andy Warhol "Do it Yourself(Narzisse)" 1962. 종이 위에 연필과 색연필
왼쪽 : Andy Warhol "Do it Yourself(Flowers)" 1962. 캔버스에 판화, 아크릴
아시다시피 워홀의 는 판화로 찍은 그림판에 설명서에 적혀있는 색의 번호를 보고 그림판에 적혀있는 번호대로 색칠을 하는 일종의 '색칠(그림)판'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물론 워홀은 기존 '색칠판'처럼 특정한 규칙을 따르지는 않았습니다
만약 워홀이 기존 '색칠판'처럼 번호의 색을 따라 각각의 칸을 색으로 채우는 형식을 취했다면 말 그대로 '누구나 예술가이다'라는 슬러건을 내걸 수 있겠지요
그 점에 주목한 작업이 바로 데미안 허스트의 Painting Set이 아닐까,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말씀하신대로 데미안 허스트는 그림판에 원을 그려놓고 구입자에게 데미안 허스트가 원하는 색이 아닌 구입자가 원하는 색을 칠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그 역시 관객을 '기계'로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아마 이 점은 '우리가 모두 예술가이다'가 동시에 '예술가는 그 누구도 아니다'란 뒤집기를 경계한 최후의 전략이 아닐까, 싶습니다)
말씀하신대로 데미안 허스트의 Painting Set은 "분명 일반 아트상품과는 다르다"고 저 역시 봅니다
그리고 그의 작품은 "일반 숍의 판매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구입자에 참여하는 재미를 만들어 학창시절 놓았던 붓을 다시금 쥐게 만들고 있다"
는 구체적인 '미술의 대중화'를 실천하는 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의 작품은 Dunpeel님께서 제안하신 미술의 '앨범' 사례에 근접해 있다고 봅니다
덧붙여 말씀하신 작품과 동봉되는 도록은 '도록'이라기보다 오히려 '리플레'에 가깝다고 생각됩니다
작가 약력 및 작품 이미지(들) 그리고 간략한 작품'설명서'(텍스트) 당근 그 작품의 제목, 재료, 크기, 제작년도 등을 기술한 리플렛 말이죠.(물론 이 리플렛에는 '작품 보증서'도 첨부되어야 할 것 같네요)
흥미있는 그리고 유용한 또한 구체적인 Dunpeel님의 제안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꾸뻑!^^
Dunpeel (2004-07-23 17:46:20)
선생님의 답글을 읽고 선생님이 제게 주문하셨던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영 (2004-07-23 22:38:05)
몇달만에 여길 들어왔는데 오늘날짜로 내사진이 오른것이 우습소..
사진찍는다고 특별히 핑스색이 칠해진 붓을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허스트의 Painting set은 허스트가 인쇄해놓은 동그라미에 원하는색을 칠한다기보다는 동그라미와 그안에 번호가 함께 인쇄되어있어 허스트의 의도되로 색을 칠하도록 의도되어져 있어요.
물론 지 마음대로 칠할수도 있지만 물감을 칠하려하는 순간에는 괜히 내 의도보다는 허스트의 의도대로 손이 가더라구요.
이 작품은 99개의 동그라미가 인쇄된 캔버스 1개, 물감99개, 하얀색붓 99개가 스티로폼에 끼워진채로 허스트분위기가 물씬나는 종이상자에 담겨져 포장된채 판매하는 작품입니다. (에디션은 400개정도 되는걸로 기억되고 종이상자색은 파란색과 빨간색 두가지임)
직접보시면 알겠지만 이 작품은 캔버스의 천과 나무는 굉장히 질낮은 싸구려이며 캔버스천을 꽉 안잡아당겼는지 상당히 많이 울어 있답니다.
하지만 귀엽게도 캔버스 뒷면에는 허스트씨의 싸인이 있어요.
물론 파란색 인쇄로요,,,
Dunpeel (2004-07-24 00:15:23)
오늘 아라리오 갤러리에 전화해 물어보니, 당신이 색칠한 제품만 있는 것 같더이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온 것이오? 내 알기론 어제까지 러시아 어딘가에 있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무대뽀 (2004-08-01 18:04:22)
허걱!
김영님의 리플을 읽고
- 허스트의 Painting set은 허스트가 인쇄해놓은 동그라미에 원하는색을 칠한다기보다는 동그라미와 그안에 번호가 함께 인쇄되어있어 허스트의 의도되로 색을 칠하도록 의도되어져 있어요 -
제가 잘못 알았음을 알겠되었슴다
꾸뻑!^^
그럼 데미안 허스트는 관객을 '기계'로 만들고 있는 셈이네요
제가 괄호 안에서 중얼거렸듯이
아마 이 점은 '우리가 모두 예술가이다'가 동시에 '예술가는 그 누구도 아니다'란 뒤집기 전략이 아닐까, 싶습니다
Dunpeel (2004-08-01 23:31:28)
데미안허스트의 의도 & 의미만을 놓고 본 것이 아닌, 제가 생각하는 하나의 모델로서 보았기에, 특별히 제가 쓴 내용에 수정을 하진 않았습니다.
뒤늦게나마 직접 페인팅을 한 분의 자세한 설명이 뒷받침되어 다행이네요.
죄송합니다.
무대뽀 (2004-08-02 18:37:40)
이미지가 보충이 되니 훨 좋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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