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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으로 가는 사진가의 등 뒤에 대고 빡센 주문이 너무 많군요 아마 우리들이 그를 메신저로 보낸 뒤 그의 사진들을 통해 보고싶은게 많은 것 같은데 당신은 그에게 격려를 선물했습니까 돈을 지불했습니까 현장에서 그가 분노하지 않고 있음이 가난한 사람들을 찍기 위해 또한 정치적이기거나 이데올로기적이기 보다 한 사람의 사진가여야 했음을 끊임없이 의식하고 있는 시선은 근대화속에 좌파라 불리던 사람들도 우파라 불리던 사람들도 book과 남과 또 남과 남Otherness과의 공격적 언술과 관 철 하려는 권력에의 의지속에 내팽개쳐버린 자기사명과 윤리가 아닐까요
나는 저 사진속에 굶주리는 것이 고통에 다름 아니라는 선입견을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그들을 하층민으로 정의 하고 있는 것은 바로 자벨님이 최초로 적고 있는 낙인이며 그들의 이미지. 피사체들이.라는 타자화가 가리키고 있는 분리가 더 도발적인 선긋기로 보입니다. 세계 평화를 이런 사진들이 어떻게 구현가능한지에 대해 분명한 코멘트를 그에게 떠넘기기 보다 수많은 코멘트들과 말씀들이 세계의 재앙들을 격렬하게 싹키운 휘발처였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더 의미있을 듯이 보입니다. 세계 평화는 헛소리입이다.
서구가 최민식씨의 사진을 볼 때 시선의 따뜻함과 신선함을 느낄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그들이 어떻게 볼까를 고민하고 있는 것은 그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자들일 뿐일 것입니다. 나는 한국인들을 반도 사람들이라 부르는 열등감을 꼬집기보다 자부심을 가지고 평가하는 우리들의 사진가를 대등한 위치에서 서구에게 소개할 수 없는 뿌리깊은 주변자의식과 그들의 텍스트를 빌리다 자기스스로가 타자화한 식민지백성의 자괴적 근성을 안타까와 하고 있습니다. 대체 낮은데는 어디입니까 자벨님, 루커님, 이승재님,수령님, 정은님, 정은님,수령님,이승재님,루커님,자벨님
최민식씨의 인터뷰에서 볼 수 있 듯 우리는 우리의 모습을 응시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근대는 우리에게 멈춤없는 격렬한 극장들의 연속이 아니었는가 생각하게 됩니다. 일본 사진가인 구와바라 시세이처럼 긴장감 흐르는 유신독재의 내부와 미군정을 넘나들며 촬영할 수 없었던 한국 사진가는 부산을 중심으로 사진가이면서 그들과 함께 살다가 죽는 것이 대체 무엇인가 질문하며 "아아, 나는 지금 이곳에 살고 있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최민식이라는 한국사진가에 의해 비로소 후미진 곳으로부터 드러나 찍혀지고 있는 최초의 한국사람들을 보고 있다라고 그를 소개할 겁니다.
아직까지 예술가들이 무명속에서 세계평화와 구원의 개헛소리를 위해 신앙화조장을 위한 거대호화극장을 꾸미고 있을 무렵, 교회가 주의 파워와 온갖 현혹에 사로잡히게 만들 하나님의 공간이 되기 위해 예술가들이 극장장식에 투입되던 그 시기쯤 아마도 목사님은 거룩하고 엄숙한 목소리로 우리 선배들을 불러놓고 말했을 것입니다.
저들에게 너희들의 그림을 어떻게 보여야하는 지를 깊이 괴념해야 한다 더불어 너희들이 만든 주님의 이미지를 어떻게 거룩하게 보여야만 하는 윤리의 단락도 유념해야 한다 너희들의 그림이 말하는 바는 주님께서 너희들에게 준 능력이지 너희들께 아니야 자신의 그림이 말하는 바는 너희들 신앙으로 똑 똑 히 목도할 터 세계 평화 할렐루야!!
* zabel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6-01-17 21: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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