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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쪽의 대표적은 젊은 작가중 한 부류이고, 사회를 향한 발언의 새로운 타입을 만들어 간다는 면에서도 무척 주목하고 있는(개인적인 취향과 무관하게) 작가 세명이다. 갠적인 초이스는 송상희.^_^
무튼, 정리해주신 이정님께 감사드리며 이런 식의 신선한 토론들이 좀더 넓은 저변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길 간원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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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blog.naver.com/dogstylist/40017721190
옥정호/조습/송상희 토론회 (인미공 토론 전문)
과도하게 뒷북인 건 알지만, 그래도 올리지 않는 것 보다 낫다고 판단되어 올린다. 이 자료는 지난 5월 25일 인미공에서 열린 ‘작가와의 대화’의 녹취록이다. 듣자하니 이 자료가 이미 인미공 홈피에 올려진 모양인데, 사실 지금 열어보니 당시 진행된 내용이 대부분은 충실히 전달되고는 있었지만 내 특유의 표현이나 그런 것들이 살아있질 않아서 생동감은 느껴지질 않았다. 더욱이 오타나 화자인 내가 봐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문장이 있어서 방금 대충 원고를 손을 봤다. 아래 개요에도 나오지만 토론회는 젊은 작가 옥정호/ 조습/ 송상희 셋을 하나의 키워드로 묶어 진행된 작가와의 대화였다. 한편 아래 올려진 ‘참가자’들의 대부분은 토론회에 참석하지 않은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인미공에서 작성한 공식문서이니 만큼 그대로 여기에 올린다. 아래 문서의 녹취는 인미공에서 했고, 내가 방금(2005. 9. 19 현재) 수정을 본 원고임을 밝힌다.
* 한편, ‘엮인글’(主:출처 링크를 따라가면 나옴)에 지난 토론회 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올려진 게시물을 연결 해놨다. 구경 바란다.
작가와 만나다.
옥정호, 조습, 송상희
2005. 5. 25
■ 개 요
ㅇ프로그램 : 옥정호 개인전 아티스트 토크 - 작가와 만나다
ㅇ일시 : 2005년 5월 25일 4시 - 7시
ㅇ장소 : 인사미술공간 4층 아카이브
ㅇ참가자 : 작가(옥정호, 조습, 송상희), 김장언, 윤동희(아트인컬쳐 객원기자), 이준희(월간미술 기자), 황신원(스페이스 사루비아), 김형미(마로니에미술관) ,안현주(마로니에미술관), 채은영(대안공간 풀), 신현진(쌈지), 김연주(일주아트하우스), 강수미(미술평론가),황록주, 최두은(나비), 신보슬, 문희채(루프), 이주현(루프),이추영(국립현대미술관),류한승(국립현대미술관),고승욱, 김기수,노재운, 윤제
ㅇ리더 : 반이정
ㅇ취지 : 작업에서 셀프이미지를 통해 시대적 상황을 다루는 공통점을 갖는 세 작가와 큐레이터와 기자와의 적극적인 의견 교환의 장 마련
ㅇ요약 : 먼저 반이정씨의 세 작가에 대한 간단한 발표 후에 세 작가의 작업에 대한 이야기와 궁금한 사항에 대한 질문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ㅇ발표 : 2004년 이후 사진을 매개로 하는 전도유망한 작가로 주목 받은 세 작가는 셀프이미지를 통해 시대상황을 재현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세 작가의 작업은 전 세대의 민중미술이 갖는 특징과는 다른 포스트 민중미술적 요소를 갖는다. 역사적(정치적) 책임의 부담감 없이, 역사 속에 자신을 재현하는 유희를 누리면서 과거를 되 집어 현재를 말하는 것이 그것이다.
ㅇ쟁점 :
① 세 작가를 무리하게 포스트 민중미술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묶어버릴 경우 이들의 작업 폭이 좁아질 위험성에 대한 ㅇ우려
② 작가 별 작품 성향과 작업 배경에 대한 질문.
ㅇ의의 :
시대를 반영하고 비판하는 세 작가의 작업에 대한 작가의 설명을 통해 어떻게 자기만의 언어를 만들어 말하고자 하는 것을 표현하는지 알 수 있는 기회였다. 또한 미술 관련 종사자들과 작가들과의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적극적인 토론의 장이었다.
■ 진행 내용
강성은 : 저희 인사미술공간에서는 매 전시마다 소규모의 워크샵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번이 그 세 번째인데요, 작가들의 전시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쉽고 또 젊은 큐레이터나 관련분야 종사자들과의 교류를 위해 고안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여러분에 계신 인사미술공간 4층 아카이브에서 이런 프로그램을 자주 마련하고자 하오니 좋은 의견을 말씀해주시면 수용할 수 있을 경우에는 수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모신 세 작가 분들의 작업은 작품의 이미지 속에 작가 자신이 직접 등장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작가 분들의 작업이나 그 밖의 궁금한 점들 혹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교환할 수 있는 적극적인 토론의 장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럼 오늘의 토론 리더로 모신 반이정씨께서 지금부터 토론을 이끌어주시겠습니다.
반이정 : 안녕하세요. 반이정 입니다. 이번 토론의 리더 부탁을 받고 발표 내용에 대한 간단한 핸드아웃을 준비해 보았습니다. 먼저 이번 토론을 준비하기에 앞서 1989년도부터 2000년도까지의 잡지를 훑어보았습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안타까웠던 것은 젊은 작가들에 대한 기사는 보기 드물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최근 들어 세대교체가 기획계 비판계를 중심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오늘 모신 세 작가 분들은 2004년부터 사진을 매개로 하는 전도 유망한 작가들이며 세 분 모두 인사미술공간에서 개인전을 갖았다는 공통점도 있더군요. 또 앞에서 강성은씨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셀프 이미지를 통해 시대상황을 재현하는 작업을 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세 작가 분들의 약력을 간단히 소개하겠습니다.
먼저 송상희씨는 이화여자대학교 서양학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2004 부산비엔날레에 참가하기도 하는 등 1995년 첫 개인전 이후로 왕성한 활동을 보이는 작가입니다. 개인적으로 <착한 딸이 되기 위한 몸짓> 연작을 눈 여겨 보았습니다. 작가의 작업은 포스트 페미니즘의 경향을 보입니다. 피에타의 모습에 자신의 모습을 중첩시킨다거나 온몸에 양면 테잎을 붙이고 방바닥을 뒹굴며 청소하는 모습을 연출하는 작업은 종전의 페미니즘과는 방법론적으로 다르다고 봅니다.
옥정호씨는 2003년에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졸업하고 '플라잉 시티' 멤버로 활동하다 이번에 인사미술공간에서 첫 개인전을 선보인 작가입니다. 지금 보고 계신 'catch me if you can' 은 국회의사당의 꼭대기를 자신의 머리에 뒤집어 작업으로 개인적으로 애착이 가는 작품입니다. 이렇게 국적불명의 건물을 배경으로 작업을 진행한 바 있구요. 또 다른 작품을 보시면 사랑을 행위로 옮기는 장소, 즉 웨딩홀이나 모텔 같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애정 행각을 사진에 담기도 하였습니다.
조습씨는 2001년 경원대학교 대학원 회화과 졸업을 하고 2001년 인사미술공간에서 첫 개인전을 연 이후 꽤 오랜 공백기를 갖고 이번 대안공간 풀에서 2회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작년 송상희씨와 부산 비엔날레 참여하기도 했지요. 조습씨는 누구도 할 수 없었던 자신을 박해(?)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요, 패러디와 알레고리를 써먹는 것에 능한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세 작가 모두 작년 초부터 사진을 매개로 하는 전도유망한 작가로 주목 받기 시작하였습니다. 뒤늦게 발굴된 경우라고 할 수 있는데요. 앞서 말씀 것처럼 인미공에서 개인전을 거친 작가들이기도 하고 이들의 작업이 포스트 민중미술로 통칭되는 특징도 있어요. 자신이 작업에 직접 참여한다는 나르시스트적 요소가 부각되는 작업을 한다는 공통점도 있구요. 순수회화 영역에서 '사진'으로 작업의 매체를 전이한 것도 공통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인 얘기를 잠깐 하고싶은데요. 연전에 조습씨의 작업에 참여했을 때 동료작가들이 공동 작업처럼 참여하는 걸 보며 '민중미술의 변형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세 작가 분들은 연출과 편집술로 과거를 현재화합니다. 이는 과거를 되 집어 현재를 말함으로써, 현실을 직설법으로 전달할 때 관람객이 느끼는 부담감을 덜어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선배 세대와 비교해 볼 때 역사적으로 책임이나 부담감이 적은 세대인 만큼 재현에서도 진지함이 곧잘 누락되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 같은 성향은 송상희씨의[국립극장], 조습씨의 [습이를 살려내라], 옥정호씨의 개인적 출품작들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민중미술은 군중을 응집시키기에 용이한 이미지가 차용됩니다. 이한열씨가 최루탄 파편에 맞아 동료의 부착을 받는 모습이 담긴 실제 저널사진과 비교했을 때 최민화의 [그대 뜬눈으로]는 작업 공간을 노동자와 학생으로 양분된 구획을 보여줍니다. 지금 보시는 작품은 94년도 최병수의 [한열이를 살려내라]를 패러디 한 조습의 [습이를 살려내라]입니다. 여기서 선배세대와 후배세대 간의 재현 방식의 차이를 드러나는거죠.
선배 세대 민중미술의 특징은 공동작업에 있습니다. 또한 작업복 차림의 노동자와 열사로 분한 노동자가 등장하고 굉장히 진부하고 도식화된 이미지가 주를 이루는 게 특징이지요. 반면 후배 세대는 그 작업 방식에서 차이를 보입니다. 예를 들어 작년 인미공에서 선보인 송상희의 [국립극장]을 보면 저격범에 대한 관심보다는 그 후 왜곡된 역사에 대해 풍자에 주목을 합니다. 사실 '민중미술'이라는 용어부터가 어감상 굉장히 센 게 사실이거든요. 의미론적인 부담감을 알레고리를 통해 경감시키는 것이 후배 세대들이 만들어낸 포스트 민중미술의 효과라면 효과이죠. 현안을 위해 과거를 차용하고 변모된 정치 환경과 수용자의 입맛을 고려하여 직격탄보다는 연막탄을 날리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냉소보다는 향수를 개량하여 요즘 세태를 얘기하는 것은 2003년도 이후의 쟁점으로 부각되었습니다. 한때 유행했던 후일담류와는 방법론적으로 큰 차이를 갖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민중미술초기 작가들은 후배들의 이런 모습을 '가볍다'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으나 그것은 당연한 오해에서 비롯된 거라고 봅니다. 박영균씨의 [86학번 김대리]나 선배세대 최민화씨의 작업은 형식이 희생된 탄탄치 못한 즉흥적인 작업인 것이 사실이지요. 한편 조습의 김현희 사건 패러디 작업에서 처럼 지나간 현대사의 한 장면을 작가의 지인들을 불러다가 재탕하며, 그 시절의 거품 낀 정치성 완화하는 작업과는 분명 거리감이 있다는 거지요. 이들은 역사적 무게감으로부터 탈피하기 위해 자아도취적 셀프포트레이츠라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또 초창기 작업에는 일반화된 풍경을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재현하다가, 후반기 작업에서는 특수한 역사적 사건의 주인공으로 자신을 변모 시키고 있습니다. 이는 거대한 역사로부터 자아를 되돌려 받는 것이며 응집력이 떨어지는 자아가 역사를 통해 응집력을 갖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셀프 이미지가 등장하게 된 배경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또한 이들의 작업은 과거 청산에 완벽히 성공하지 못한 세대의 미진하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의미로 갖습니다.
토론에 앞서 작가분들게 이메일로 '작업에서 어떻게 자기 동일시화 되는가'를 물었습니다. 송상희씨는 “그것은 작가 개인에게 남겨진 근대성의 트라우마에 대한 자기 치유일 수도 있으며 어쩌면 정신분열적 자기 상태에 대한 고백과 그 내부에서 작동하는 환상과 욕망을 드러내는 것일지도 모른다.”라는 김장언씨의 말을 인용해서 자아동일시라고 하였고, 옥정호씨는 작업 환경이 열악해서 자신이 직접 참여하게 되었으며 이를 통해 ‘작가가’ 직접적으로 희화된 상대를 공격하고 있다는, 좀더 강한 느낌을 주고 관객 입장에서는 작업 속에 희화된 작가를 조롱하게 되므로 웃길 수 있으니까 무거운 이야기도 쉽게 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바로 이것이 선배 세대와의 차이가 아닌가 합니다. 조습씨는 저에게 답을 안 해주셔서 도록에 실렸던 "망가진 모습을 통해 모더니즘의 신화화된 작가주의를 벗어나다" 라는 심광현씨의 말을 빌려왔습니다.^^
이것으로 제가 준비한 발표 내용은 마치겠습니다.
이번 토론이 셀프 이미지라는 공통점을 갖는 작가들을 모신 자리이니만큼 작가들이 생각하는 셀프 이미지에 대한 의견을 들어볼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일각에서는 셀프 이미지라는 것 하나로 너무 일반화해서 묶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었지만 공통적인 부분을 엮어서 만들어내는 것이 이론이고 큐레이터나 비평가의 입장에서는 그런 시각으로 보는 것도 한 방법인 점을 양해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럼 셀프 이미지에 대한 입장을 송상희씨부터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송상희 :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겠죠. 첫째는 내가 저 사람이라면 무엇을 생각할까를 생각합니다. 이것은 어려서 부터의 습관으로부터 비롯되지 않았나 생각하는데요. 드라마를 보거나 영화를 보면 여주인공의 삶에서 보여지는 비장미에 같은 것에 대한 욕망에서부터 뿌리 내려진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착한 딸> 연작의 경우 사진의 모델이 될 만한 마땅한 사람이 없었고 제 얘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에 제가 직접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세번째는 자아도취적 성향을 투영한 것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반이정 : 역사적 인물 중에서도 화려하게 등장하는 인물보다 비극적 인물에 대한 동일시라는 말씀이시죠?
송상희 : 그렇다고 할 수 있겠죠.
반이정 : 송상희씨의 작업을 보면 영웅화될 만한 인물은 보이지 않습니다. 저는 세 작가 모두 비장미로 자신을 투영하고 있다고 보는데요.
송상희 : 과거의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할 때 검열 때문에 망설이는 부분도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반이정 : 조습씨는 작업에 자신을 등장시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조습 : 처음 작업을 했을 때는 사진의 증명성이나 사실성을 위해 직접 등장하였습니다. 그러다보니 개인이 갖고있는 일상의 모습이 다른 곳의 사건에 투영되는 것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고 작가가 배우가 되면서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작업에 제가 등장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반이정 : 옥정호씨, 망가진 모습을 통해 무거운 이야기를 쉽게 할 수 있다는 말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해주시겠습니까? 또 이번 작업과 예전 작업에서 자신이 등장하는 이유에 변화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옥정호 : 처음에는 작업할 때 현장의 열악한 점 때문에 제가 직접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스텝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또 제 자신이 하는 것이 더 편했습니다. 그렇게 작업이 지속되다 보니 제가 보이지 않는 작업에 만족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직접 할 경우 표정캐치가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반면, 필름 소모가 많다는 단점을 갖기도 합니다. 자신의 얼굴을 보면서 느끼는 만족감일 수도 있고 스스로가 생각하고 액션을 취할 경우에 더 직접적으로 더 세게 전달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음식을 할 때 조미료를 치면 맛이 더 사는 경우와 같다고 할 수 있겠죠. 매 작업마다 제가 등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현장의 상황에 따라 다른 이가 등장할 수 도 있고 경우에 따라 다릅니다.
반이정 : 개인적으로 웨딩홀 작업 같은 경우, 작가가 등장하지 않아서 오히려 좋았다고 봅니다. 세 작가는 앞으로의 진행될 작업에 있어서도 셀프 이미지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저는 봅니다. 이것은 자칫하면 후에 약간의 아클레스건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송상희씨는 작업에 드러나는 모습이 평소의 모습과 상반되는 거 같아요. 저는 송상희씨 작품을 대할 때 마다 평소 작가가 해소하지 못한 어떤 것을 관철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짐작도 해보기도 합니다. 조습씨는 오바가 잘 먹히는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평소의 모습과 상반되지 않는 리얼리티가 그래도 투영되어서 그런 것이 아닐지..^^ 옥정호씨는 과장을 자제하면서 위트를 섞는 기술이 뛰어난 작업을 선보입니다.
여기 국립현대미술관 큐레이터, 류한승씨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선배세대와 세 작가의 차이가 있다면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류한승 : 세 분의 경우 시작의 단계에서는 선배 세대의 민중미술과는 완전히 다르다고 봅니다. 이 세 작가를 무리하게 포스트 민중미술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묶어버릴 경우 이들의 작업 폭이 좁아질 위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반이정 : 그럼 토론 주최자이신 강성은씨의 생각은 어떠신지?
강성은 : 저는 비디오나 사진 매체를 통한 작가 중 자기 이미지를 차용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셀프 이미지를 사용하는 작가에 대한 전시를 고안하게 된 것입니다. 셀프 이미지는 시대를 대변하는 정체성으로서의 나르시시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조습씨의 경우 인미공 초반에 전시하였는데요. 작업에서 극대화된 자신이 드러나는 듯해서 사회에 대한 맺힌 말들을 하고 싶었나? 라고 생각했어요. 그 당시에는 조습씨를 소심하게 보아서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조습씨는 시대상황의 모순을 읽어내는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송상희씨는 자기 자신이 과거인물과 동일시된다는 것에 이 시대의 여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작업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옥정호씨는 최근 기획된 전시라 기억에 많이 남는데요. 사진이든 영상이든 거기에 자신이 등장하는 것에 대한 만족감이 저에게도 다가와서 인상 깊었습니다. 그래서 관람객이 더 즐거운 것이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반이정 : 월간미술 이번 호에 옥정호전 리뷰를 쓴 윤제씨의 의견을 듣고 싶은데요.
윤제 : 우선 이번 자리가 작가들과의 워크샵 문화구축하고 담론 형성을 할 수 있는 장이 될 수 있어서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세 분의 셀프 이미지는 혼자 놀기의 전도된 방식이 아닌가 생각해보았습니다. 전에는 체제에서 강요되는 작업이었다면 지금은 셀프 이미지로서 스스로를 조절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말이죠. 예전에 비해 생각하는 자기 중심을 찾는다는 것이 명랑함이나 가벼움이 있지만 위치감은 무시할 수 없다고 봅니다. 전의 민중미술을 이원론적으로 분리하여 세 작가를 포스트 민중미술로 묶어버리면 작가분들이 갖는 넓은 범위의 중심이나 위치감을 좁힌다고 생각합니다. 나르시시즘의 측면에서 얘기해보면, 낸시랭 같은 경우 욕망이나 방향성을 추구한다면 이 분들은 자신의 상황에 대해서 생각하고 이것을 나르시시즘과 연계 시켜나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옥정호 : 포스트 민중미술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 마다 솔직히 오해 받는다는 느낌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무거운 얘기를 무겁게 하면 지루하고 뻔한 얘기가 됩니다. 선배 세대들은 투사라기 보다 부담감 때문에 유희적인 작업을 제어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조금 편해지기 위해 셀프 이미지를 이용하여 가볍게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반이정 : 세 작가분들의 작업에는 시대상황에 대한 얘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민중미술의 성향을 갖는다고 보았고 그러나 그 방법이 민미협작가나 선배 민중미술 작가들과 다르기 때문에 제가 한 지적이었습니다.
조습 : 셀프 이미지 논의를 그만했으면 하는데요. 세 명의 작가들이 작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시대에 대한 어떤 이야기인지 어떻게 미세하게 진행되는지를 포스트 민중미술이라는 범위에서 말고 그런 방향에 대해서 논의했으면 합니다.
김현진 : 조습씨께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사실 알레고리 보다는 상징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얘기하려고하는 것은 파시즘에 함몰된 개인성에 대한 것이 아닌가요? 그런데 제가 보기에반대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고 생각되는데요, 연극성을 보여주는 작업이기 때문에 현실로 넘어오지 못하는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반이정 : 용어상 큰 오해가 있다고 판단되어 제가 좀 나서고 싶군요. 상징과 알레고리는 엄연히 다른 개념입니다. 예를 들어 십자가 하면, 그것은 기독교를 연상시키는 약속이죠. 그건 상징입니다. 하지만, 예를 들어 80년대 개봉한 올리버 스톤의 <플래툰>에서 반스 상사가 베트남 반군의 총에 맞아 두 팔을 벌리며 죽는 유명한 슬로우 모션씬이 있죠? 그건 어떤 고정된 의미를 생산하는 상징이 아니라, 예수의 십자가형을 연상시키면서 21세기 가장 불운한 전쟁에서 속죄양으로 죽어가는 어느 이름없는 군인의 희생을 드러내는 겁니다. 여기에는 기독교의 어떤 면모를 가져오긴 하지만, 종교적 의미를 갖진 않지요. 이건 알레고리이지요. 따라서 조습씨의 작업을 닫힌 개념인 상징으로 규정하는 건 적합하지 않아요. 알레고리가 맞습니다.
김현진 : 그렇게 따지면 알레고리가 아닌 것이 있겠습니까? 그런 넓은 이야기를 작가의 작업에 적용해서 얘기를 하자면 더 다음 층위의 이야기를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얘기하고자 하는 주제가 설득력은 있지만 상징적인 작업방식에 가까워서 힘을 잃는다고 생각해서 작가의 생각이 궁금했습니다. 작업이 연극적이고 상징적입니다. 그래서 작업이 표면이 머물어 버리는 상황이 되는 것 같다는 것이 제 의견입니다.
반이정 : 저는 예전의 것과 요즘의 것을 같이 말하기 때문에 알레고리라는 단어를 사용했던 것이었습니다. 조습씨 질문에 답해주시죠.
조습 : 질문을 간단히 말씀해주시겠습니까?
김현진 : 사진자체가 연극적이라는 것에는 동의하시죠?
조습 : 네
김현진 : 그러면 연극성이 갖는 측면과 조습씨가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 괴리감이 있는 것 아닌가요? 현실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데 연극성이 갖는 일루젼을 통해 이야기 하는 것은 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조습 : 말씀하신 연극성은 의도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번 전시의 디스플레이도 연극적인 요소에서 오는 극대화된 효과를 노린 것 이고요. 한국의 역사 속에 내재된 코미디적인 요소는 무대 위에 올라가야 더 적합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그 이유입니다.
송상희 : 말씀 중에 죄송하지만, 작업에서 셀프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포스트 민중미술로 묶는 것도 무리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반이정 : 용어에 대한 굉장한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포스트 민중미술을 민중미술이 갖는 시대적 변화라고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시대를 반영하는 것에 대한 얘기, 바로 그 점에서 제가 포스트 민중미술이라고 하는 것 입니다. 조습씨, 작업에 대해 계속 얘기해주십시오.
조습 : 초기의 작업은 주체적인 인간이 비주체적인 모습으로 살 수 밖에 없는 모습들을 찾는 것 이었습니다. 그 이후의 작업은 인간의 폭력성에 관련된 것 이었고 이번에는 비주체적으로 살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사건을 재현하였습니다. 그 사건들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생각해보게 하고 싶었습니다. 연극적인 한국 사회를 한 무대에 끌어올리고자 했습니다. 한 사진 마다 마다가 갖는 의미는 없습니다. 그것들은 하나하나가 다 모였을 때 의미가 부여될 수 있는 것이죠. 미스터리, 시대의 배고픔, 가난, 제3자의 입장에서 본 전쟁 이와 같은 것들을 잡아내가는 작업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현진 : 그럼, 사진의 사이즈 선정 기준은 무엇이었죠?
조습 : 전시 공간에 적합한 사이즈였습니다. 제가 다루는17개의 사건이 그 사이즈로 전시되는 것이 적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반이정 : 치밀한 계획에 의한 것이로군요.^^ 저는 이번 전시에서 보인 날조된 이미지와 텍스트를 같은 크기로 출력해서 병렬했다는 점이 재미있었습니다.
김현진 : 과도한 과장성이 가져오는 비판이란 것이 있습니다. 조습씨의 작품 사진 사이즈로 인해 시리즈가 갖는 내러티브를 상실하지 않았나 싶어서 질문 드렸습니다.
조습 : 제가 체질적으로 과도한 사진에 대한 혐오가 있습니다.
반이정 : 송상희씨도 작업에 대해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셀프 이미지를 통해 시대적 상황을 다루는 작업들에 대해서 듣고 싶습니다.
송상희 : 제 작업 중에는 셀프 이미지 이외의 작업들도 있습니다. 제가 작업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는 흘러가지 않고 우리 안에 점령하고 있는 기억에 대한 것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습 : 기억에 대한 것이나 사건을 채택하는 기준과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송상희 : 여성주의적 시각을 가져야겠다고 생각은 이번에 하게 되었습니다. 다루는 사건이나 기억들은 사건 자체가 아닌 상황이 갖는 뉘앙스적인 것이 크죠. 사건이라고 하기보다는 상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반이정 : 여성주의와 연관성에 대해서 그리고 전세대의 페미니즘과의 차이점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송상희 : 구분을 한다면 전세대는 '나'를 생각했다고 할 수 있겠죠. 내 느낌이나 자아 안의 의미를 다루었습니다. 저는 저와 밖의 세상이 부딪히는 단면들, 외부와 만나는 면들을 다루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이정 : 저는 전 세대 작가들과 송상희씨의 작업이 많이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데요?
이아무개 : 적극적인 페미니스트들은 직접적인 참여가 있었습니다. 반면 송상희씨는 직접적인 메시지보다는 사회 안의 나에 대한 초점을 둔다고 할 수 있는 것이죠.
반이정 : 방법론적인 문제는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용어 안에 가두지 말고 생각하셨으면 합니다.
강성은 : 페미니즘의 초창기에는 여성의 몸에 대한 표현을 통해 자아를 표현하였습니다. 여성 주체로서의 자신을 표현한 것이죠. 송상희씨의 작업은 자기와 상대가 만나는 지점, 인격형성에 영향을 미쳤던 외부의 사건들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것이 그 차이점이라는 것이죠, 송상희씨?
송상희 : 네, 바로 그겁니다.^^
반이정 : 옥정호씨 작업에 대한 얘기를 들을 순서가 되었습니다. 플라잉 시티 시절에 옥정호씨는 도시주의에 대해 얘기해왔습니다. 시대에의 참여에 있어 그 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이 있겠습니까?
옥정호 : 플라잉 시티 시절에는 그 처음이 내용 없이 하는 작업에 대한 혐오감에 의해서 비롯되었습니다. 플라잉 시티 작업 얘기는 잘 안 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지금의 작업과 다르기 때문인데요, 그 시절에는 그 안에서 내 스타일을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에 답답함이 있었습니다.
강성은 : 옥정호씨의 작업은 우리시대에 가득찬 이미지들이 보입니다. 이번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해주셨으면 합니다.
옥정호 : 플라잉시티 시절, 작업의 동기가 '화가 남'이라는 것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번 이순신 장군 작업은 이순신 장군이 친숙한 심볼로 자리잡은 것에 대한 '화남'이 그 동기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물고 늘어지는 것에도 화가 났구요. 제 작업은 블랙코미디가 아닌 코미디입니다.
반이정 : '화남'이 작업의 모티베이션이 되는 것은 일반적인 얘기구요. 왜 화가 나셨나요? 우상화가 지겨우신 건가요?
옥정호 : 쉽게 말해서 세뇌시키는 이미지들에 대한 담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송상희 : 그럼, 간단히 말해서 이순신이라 지겨운 건가요? 아니면 그냥 지겨운 건가요?
조습 : '화남'이무엇에서 시작되었는지가 궁금했습니다. 관점이 있다면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옥정호 : 어느 순간에 꼴 보기 싫은 것들을 얘기하고 싶습니다.
송상희 : 우상화된 것들을 더 세뇌시킨 것에 대한 화란 말씀인가요?
반이정 : 이순신에 대한 반복적인 세뇌와 과장에 대한 '화남' 아닌가요?
옥정호 : 권력구조 내에서 길들이기 위한 우상화, 사회의 스펙터클의 짬뽕이 화가 났다고 하면 이해하시겠습니까? 애물단지 같은 것이 되어 버린 현실과 그런 이미지들을 반복적으로 차용하는 것에 대한 '화'라고 할 수 있겠죠.
반이정 : 기본적으로 상황에 대해 화가 나서 모티베이션되는 것은 세 작가의 공통점인 셈이네요.
송상희 : 저는 화를 피하는 편입니다. '화남'에 대한 자세를 물어보고 싶어서 질문 드렸던 것입니다.
반이정 : 윤제씨 하실 말씀 있으신가요?
윤제 :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우리 모두에 대한 질문이라고 봅니다. 세 작가의 작업을 큰 카테고리 안에서 본다면 저항적인 예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거부할 수 있고 밀어낼 수 있는 것에 대한 모티브를 잡아내고 코미디, 과장, 쇼, 연극, 섬세함, 예민함 같은 것들로 표현하는 낯선 언어들이 작업에 사용되는 것이 세 작가 분들의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작가들을 어떻게 수용해야 하는가를 생각해봐야 한다고 봅니다.
강성은 : 포스트 민중미술에 대한 얘기 전에 시대를 반영하고 비판하는 방식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저는 여기 계신 작가 분들이 자기만의 언어를 만들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잘 표현하였다고 봅니다. 앞으로 이 작가 분들이 어떻게 진화시킬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가 됩니다.
반이정 : 혹시 미진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시면 식사하면서 더 얘기 나누도록 하죠. 저에게는 이번 토론이 새로운 사실과 재확인을 할 수 있어서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이런 자리가 활성화되길 바랍니다. 저는 작가들이 자신의 얘기를 날카롭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세 작가 분들은 그런 점에서 적극적으로 말씀해주셔서 감사 드리면서 오늘 토론은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ban E jung
http://dogstylis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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