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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 미술의 키워드-형이상학.
참.. 이상하다. 뭔가 아니다 싶으면서도 그 이유에 대해 정확히, 그것도 상응하는 대척점을 적확히 짚어낼 수 있는 사람이라니. 개인적인 만고강산 올해의 끝장을 보려는지, 아래 인터뷰도 많이 띵-하다.
재료를 혹사하는 작업-재료의 즉물적 언어구성, 매체순결주의... 우우.
진짜 마지막 대화마냥 교양을 쌓아야겠다는 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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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이정 블로그에서 펌
반이정: 당직하느라 피곤하겠군요?
김학량: 아, 뭐 좀
반이정: 나도 어제 인미공에서 밤샘했답니다. 일이 좀 있어서리... 아울러 학량이형. 채팅의 묘미는 바로 바로 맞받아치는 피드백 아니겠어요? 바로 바로 답을 올리는 거 잊지 마시고요.
김학량: 서툴러서
반이정: 일단 질문 갑니다. 학부를 동양화과 나오시고, 석사는 '미술사학과' 나오셨죠 아마? 석사가 미술사학과 맞나요?
김학량: 맞지. 한국미술사 전공. 좀더 정확하게는 한국근대미술사, 그 가운데서도 동양화 부분.
반이정: 아 정확히는 '한국미술사 전공(한국근대미술사)'였군요?
김학량: 음.
반이정: 흠...그럼 영양가 없는 문의지만, 지도 교수는?
김학량: 처음에는 조선후기의 지우재 정수영이라는 문인화가를 쓸려고 했는데 문헌자료가 나오질 않아 안휘준 선생님이 다른 것으로 하자고 해서, 근대로 넘어와 고암 이응노를 썼지. 지도교수는 김영나 선생님.
반이정: 아 그러셨군요? 흠...여하튼 한국 근대라고 말했는데, 형의 관심사는 사뭇 전근대로 가는 거 같군요.
김학량: 그런가? 관심사가 전근대다, 이렇게 말하기는 좀 그렇지.
반이정: 나처럼 완전 어설프지만 서양현대 쪽에 관심을 갖고 약간은 미학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에겐 여전히 '조선 후기' 쪽은 '미개척'이랍니다. 조선후기 지우재 정수영이라고 말하셨기에 물었던거지요.
김학량: 그럴 수도. 나도 서양현대와 미학은 미개척이나 마찬가지니까.
반이정: 아니 실은 나 같은 사람은 더러 조선후기니 뭐니 하는 완전 옛날 미술공부가 요새 무슨 의미 인가하는 생각도 왕왕 든답니다. 그건 반대로 생각하면 그 분야에 대한 무지에 대한 콤플렉스일 수도 있구요.
김학량: 이도 저도 아닌 셈인가? 하고 반성할 때가 많소.
반이정: 형의 그런 고백은 좀 역설이네요. 그래도 과거에도 그랬고(‘동아 갤러리’시절) 지금도 그렇고(‘서울 시립’) 형은 '서양현대'와 '미학'의 사주(?)를 많이 받는 미술을 취급하고 있지 않나요? (약간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김학량: 악! 그렇지.
반이정: 그럼 형의 옵션(겸손)을 잠시 접고 솔직히 얘기해주세요. 그럼 현대미술이론 분야에 대한 수혈은 어디서 받고 계시죠?
반이정: 비교적 노장급 작가들 주르르 모셔다가 전시 열어주는 것보다는 신진 (현대미술) 작가를 '발굴'해 온 기획자로 인식되어 있을 거 같은데, 형의 그런 겸손한 고백은 좀 모순 같아서 그렇습니다. 이론과 현장은 좀 다른 건가요?
김학량: 풍문으로 듣는다고 말해야 할 거요. 전문서를 거의 보지를 않았으니까, 거의 5-6년간.
반이정: 흠..뭐 좋습니다. 그래도 대학원에 가니 더 많이 배웠다고 느껴지던가요? 결과적으로?
김학량: 어쨌든 책을 볼 수 있고 봐야 하니까
반이정: 내 경우는 대학원 가니 커리가 형편 없더군요. 하지만 그래도 독학도 많이 하게되고, 스터디도 하게 되어서 공부하는 법을 좀 배운 거 같아요. 졸업은 하신 거죠? 했다면 논문은?
김학량: "고암 이응노의 삶과 예술: 도불 이전의 전기 그림세계(1904-58)"
반이정: 좋습니다. 학부시절은 어땠습니까? 동양화를 전공하셨는데. '저항적인 학생'은 아니었을 듯하고...
김학량: 학부시절 얘기? 별 거 없지. 내 뜻으로 미대를 온 게 아니어서 놀며 지낸 셈이지. 특히 2학년 때까지는 기숙사 친구들(특히 철학과 화학과 법학과 체육과 친구하고)하고 술로 세월 살았지.
반이정: 헌데 '내 뜻으로 미대온 게 아니다'는 구절은 선뜻 이해가 안가네요. 어느 부모가 자식을 미대 보내려고 난리쳤을 거 같진 않고.
김학량: 학력고사 끝내고 서울 와서 미술학원 다니면서도 내심 성균관대 동양철학과를 가고 싶어서 입시상담도 했다네. 4년 전액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고 그래서 얼씨구나 하고 고향 가서 아버지 허락을 받고 고등학교에 갔더니 선생님들이 난리야 - “이 늠어 시키가 무슨 소리야!” 해서 찍소리 못하고 다시 올라와 미대 시험을 쳤지 뭐. 서울대 한 명 더 넣고 싶었던 거야 학교에서는.
반이정: 떠다밀면, 가는 학생들이 당시에도 있었군요. 형처럼... ^^ 형의 팔자가 이렇듯 꼬인 것이 바로 '망할 서울대 망국병' 때문이었군요. 흠흠. 예상과는 달리 진지하게 동양화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그러며 지낸 건 아니었군요.
김학량: 2학년 마치고 군대 3년 갔다 와서 좀 '본격적으로' 학교를 다녔는데, 마침 어쩌다가 학생회일을 좀 하느라 한 학기 휴학까지 하고... 동양화 정체성 고민은 복학하고 3학년 2학기부터 했다고 할 수는 있을 것 같네
반이정: 학부시절에 뭐 특징적인 사건 같은 거 없었나요? 혹은 고민하며 보내거나. 뭐 그런 거 없어요?
김학량: 2학년 대학축전 때, 미대 아크로폴리스에서 열린 학생회 주관 집회에서 군사정권의 ‘3s’(sex, sports, screen) 정책을 비판하는 연설을 했다가 지도교수께 불려가 혼쭐 난 적이 있어. 불러 앉힌 그 자리서 내 원고를 태워버리시더군. 동기 서너 명이랑 독서모임을 만들었다가 또 교수가 훼방 놓아서 와해(?)되고. 근데 그게 문학작품 특히 소설을 읽는 모임이었거든. 아무튼 둘 이상이 모여 공론하는 건 거의 금기시되었어. 80년 계엄시절과 비슷했어.
반이정: 참 형 학번이?
김학량: 83
반이정: 좋습니다. 헌데 그 당시에는 동양화과 말고 서양화과(서울대)도 비슷한 열병을 앓았다죠. 아마?
동양화과가 문인/수묵화에 암묵적인 무게를 주고 있었다면, 서양화과는 이것 역시 교수들의 성향(taste가 뭔지!), 탓에 학생들도 비구상에 몰두하게 내몰았다고 하던데. 맞나요? 당시 목격담을 좀.
김학량: 서양화과나 동양화과나 교육과정에 대해서는 다들 불만스러워했지만, 그래도 서양화과는 보면 선후배들끼리 그림 이야기도 퍽 진중하게, 당시의 정치적 현실, 미학적 고뇌 등을 버무려, 이루어지고 있었고, 나도 그 사이에 가끔 끼어서 이야기를 거들고 했어.
반이정: 아 그런 얘기였군요.
김학량: 또 연극반이 아주 활성화되어 있어서, 방과 후에는 그네들하고도 가까이 지내면서 갑갑증을 많이 해소할 수 있었고.
반이정: 저기 관심사야 어찌되었건 대학원까지 그것도 이론으로 학교까지 바꿔가며 갔는데, 이론에 관심이 있었던 건가요? 아니면 생계를 위해서는 이론하는 편이 나을 거라 본건가요? 그리고 학교를 옮긴 이유도 물어도 될지?
김학량: 아, 3학년 이학기인가 되면서 평론을 하기로 작정했어. 그래서 미대 수업은 거의 전공필수만 듣고 나머지는 미학과하고 국문과 고고미술사학과에서 수강했다오. 실기는 하지 말라는 게 더 많아서 아주 짜증나있었고, 동양화 판에 문제가 많으니 그걸 비평해야 되겠다 생각해서 그랬고.
반이정: 음 비평에 관심을 갖고는 있었군요. 역시.
김학량: 그때 제일 좋았던 수업은 국문과의 <한국한문선독> <한국한시선독> 수업이었지. 일년짜리인데 굉장히 빡빡한 수업이었어. 또 미학과의 <동양미학> 강의도 아주 열중했는데, 일년동안 중국고대미학을 신나게 공부했지.
반이정: 형. 헌데 전공필수에서 '하지 말라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거지요?
김학량: 이를테면 좀 센티멘털하거나 저항적인 서사를 넣으면 기냥 난리가 나는 식이지 뭐. 기법에서는 채색을 멀리하고 먹만으로 하되 아껴서 할 것 등.
반이정: 음...짐작은 가지만 '그림이 딱' 그려지지 않는군. 그럼 어떤 걸 그려야 하는 거지요? (꺼꾸로 묻자!)
김학량: 그러니까 그 왜 졸업전 가보면 천편일률, 인물 몇 명, 풍경화 비슷한 거, 또 말도 안 되는 추상화 따위.
- 이론에의 관심, ‘동아’ 갤러리 시절
반이정: 당시에는 지금보다 일간지에서도 평론공모 꼭 있었잖아요?
김학량: 아하, 그건 대학원 마치고 할까? 그 정도로 미루어두고 있었지. 내가 원체 뜸을 많이 들이는 놈이거든.
반이정: 관심이 있긴했군요.
김학량: 있었지.
반이정: 좋습니다. 진도를 좀 더 나가서..... 김학량 그러면 역시 작가보다는 동아시절부터 잔뼈가 굵은 큐레이터로 인식들하고 있다고 보는데요. 꽤 오래했죠? 큐레이터를 도합 몇년?
김학량: 95년 3월부터 했으니 햇수로는 십년
반이정: 완전 베테랑이군. 우익 시위할 때, 큐레이터 유니폼 입고 대열에 합류해도 되겠네.
김학량: 숫자만 길지. 재작년까지만 해도 워낙 속세의 현안하고 거리가 먼 문제에 관심을 가졌어서, 전시기획을 해도 뭐 사람들이 별로 주의하지 않았지.
반이정: 좋습니다. 헌데 동아에는 누구 소개로 들어간건가요? 혹은 공모? 너무 비밀스러우면 답 안 해도 무방
김학량: 아, 이응노 논문 인쇄 넘겨놓고 구직하러 돌아다녔지 서울 시내 미술관 화랑을 두 달 꼬박 열심히 찾아다녔다오. 동아는 마지막에 가 본거고. 헌데 거기서 딱 걸렸지.
반이정: 동아시절 지금 사루비아의 이관훈 선생과 오래 함께했죠? 둘이선 잘 맞는 편이었나요?
김학량: 그 양반이 워낙 천성이 낙천적인데다 사람을 두루 보살피는 스타일이라 충돌할 일이 없었지
반이정: 뭐 재미난 에피소드라도 하나 알려줘요. 동아시절. '동아의 난' 포함시켜서.
김학량: 지금 생각하면 마냥 좋은 직장이었어. 돈도 넉넉히 주고(회장 부인이 관장 하니까 회사에서 터치 거의 안하지),
서류 만들 일도 없고, 회계는 경리직원이 다 해주고, 우리는 공부만 하고, 작가 만나고 놀고 그러면 됐지.
반이정: '정리 되어야할' 곳이었군. ^^
김학량: 그렇지
반이정: '넉넉히 줬다'고 하니, 궁금해지는군요. 그것도 미술계에서.
김학량: 월급도 그만하면 좋았지. 동아그룹 사원에 준하니까, 99년에 연봉으로 치면 2400쯤이었을 걸.
반이정: 햐. 많군.
김학량: 그때 성곡이 3000정도로 제일 쎘고
반이정: 증말 많이들 받으시는구나. 나는 지금 절반도 못되니...징징징 ㅜㅜ;;
김학량: 어이쿠 미안
반이정: 괜찮아요. 나는 솔직히 말해서. 급여에 대해 큰 미련이 없답니다. 그냥 매달 넣어주는 돈 고맙게 받아서 잘 쓰고 있어요. ^^;; 이럴 땐 내가 '노예근성이 있는' 사람인지, '통달해서 그리된 건지' 알 수 없다니깐. 아마도 전자(노예근성)인 듯.
반이정: 동아시절 그럼 직장이 날라가서, 타격이 크셨겠네요?
김학량: 그렇지, 당장 생계가 문제되니까.
- 큐레이터 김학량 씨
반이정: 미술관에서 '큐레이터로'로서, '기획'을 하며 지내는 게 재미있습니까?
김학량: 재미있지. 물론 한동안 공부를 안 해서 지금은 밑천이 딸린다는 생각을 하고, 곧 공부를 다시 시작할 요량이긴 하고. 학술적인 공부.
반이정: 저의 경우는 경력이 너무 짧아서 - 큐레이터로서 - 뭐라 말할 처지는 아니지만, 재미는 없는 거 같아요. 다만 좀 무사안일하달까? 그냥 맘 편하게 일 진행하며 지내는 게 좋다는 정도가 장점이라면 모를까.
김학량: 그래도 비평보다는 훨씬 재미있는 일 아니오?
반이정: 아니요. 저는 평론이 더 나아요. 글 쓰는 게, 말 하는 게 더 좋다는 거죠. 전 제가 좋은 평론가건 후진 평론가건 평론으로 미술계에 데뷔했잖아요. 어릴 적부터 글 쓰는 건 조금 했어요.
김학량: 나는 워낙 '과학'하는 재주가 없어서, 지금도 글 쓰는 입장이 '비평가'는 아니거든
반이정: 글 쓰는 입장이 비평가는 아니다?
김학량: 과학으로서의 비평.
반이정: 과학과 비평가와 무슨 상관이죠? 우리 좀 풀어서 얘기 해봐요. '객관화 시키는 능력으로서의 평론'을 말하는 건가요?
김학량: 그러니까 내 글은 비학술적인 산문, 문학적 글쓰기에 가까운 듯
반이정: 만일 그걸 말하는 거라면 제가 현재 아주 관심을 갖는 부분이네요.
대부분의 평론도 그렇지요. 헌데 학량이형. 미술평론이란 게 말이죠. 결국 소재(미술품 혹은 전시된 상황자체)를 형이상학적인 토대에서 찾아야 하기 때문에 산문적으로 흐르고, 더 정확히는 비과학적으로 흐를 수밖에 없는 거 아닐까 싶어요. 그게 제가 느끼는 제 직업에 대한 딜레마이고 고민이지만.
김학량: 그런 '토대'와 '산문적' 제스처들이 이미 '과학적' 체계를 갖추고서 세상에 덤비잖아. 그런데 나는 전시기획은 일종의 운문이라고 생각하거든. 냉철한 산문보다는 좀더 직관적이고 시적인 안목에서 솟는 어떤 통찰. 현실적․학문적 체계에 슬며시 구멍을 내어 바람 새게 하는.
반이정: 헌데 전시 기획은 넘 빤하지 않아요? 그것 역시 소재가 넘 한정되어 있고, 생산자(작가)도 빤하죠. 어떤 생산자하면 어떤 제품들이 떠오르고, 비슷한 유형별로 '수집' '선별'해서 '나열'(즉, 전시)하죠. 그거 넘 재미없다고 느껴져요. 그런 면에는 저는 '주제기획전'보다는 차라리 ‘개인전’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현재 인미공의 업무가 그래서 내겐 덜 버거운 거죠. 주로 개인전 위주니.
김학량: 기획 나름이겠지. 수집 선별 나열하는 늠도 있겠고, 반대로 엉뚱한 것들이 좌충우돌하는 방식으로 구성하는 축도 있겠고.
반이정: 그런데 아까 말한 그런 토대들이 과학적 체계를 갖고 덤빈 경우가 혹시 있나요? 나는 미술의 쳇바퀴 도는 관념주의 타령이 지겹습니다.
김학량: 이를테면 문화비평으로서의 글쓰기 경우. 그런데 관념주의 타령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부실한 관념주의, 통찰이 결여된 허빵들이 문제겠지.
반이정: 평론은 과학적으로(혹은 체계적으로) 미술현상 전체를 '총론적으로' 관조할 수 있다고 봅니다. 평론은 시장을 특별히 염려할 필요도 없지요. 하지만 기획은 '시장'을 고려해야하기 땜에 '총론'에 동의하고 있을 지라도, 거품(이게 바로 관념주의죠.)을 넣어 글을 쓰죠. 큐레이터들의 서문이 좋은 예죠.
김학량: 아하. 다 그런가? 나는 이번 민정기 선생 전시에 즈음한 백지숙의 서문은 기가 막히던데.
반이정: 그리고 문화비평적으로, 혹은 유물론적으로 미술을 보게 되면 '각론'보다는 '총론'을 정리하는 쪽으로 가게 된답니다. 제 경우 그렇다는 얘기. 그럴 경우, 총론에 올인하면, 각론(즉 작품 하나 하나, 혹은 전시 하나하나)에 대해 별로 할 얘기가 없어져요.
김학량: 그렇더군. 이해하겠네. 그 입장. 그 처지. 그 형국. 그런데 나는 암만해도 작업의 속살이 궁금하고, 더듬어보면 총론보다는 그 속살이 좋거든. 총론 입장에서 보면 개뿔도 아닐, ‘놀라운 세부’들이 있거든. 나는 기획자로서 기획의 에로티시즘을 좀 제대로 구현해보고 싶어, 꿈이야.
반이정: 저는 대개의 미술품이 '시대착오적'이라고 보거든요. 심지어 공모로 당선된 젊은 작가들까지. 그러다보니, 저의 어떤 '문화예술에 대한 총론적 입장'에 입각해서 그들을 보면, 좀 딱해 보인다는 겁니다. 개중에 가물에 콩 나듯 발견하는 보석은 너무 적어요.
형은 그래도 아무튼 기획이 재미있단 말이죠? 소재가 늘 한정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반이정: 개인적으로 청계천 전시(서울시립미술관 기획전)은 아주 좋았다고 봅니다. 시의적절하기도 했고. '청계천' + '미술전시' 하면 딱 떠오르는 그림들이 그려져요. 그러고 나서 전시장 가면 역시나 그런 게 와있어요. 작가부터 작품까지.
물론 뛰어난 것도 보입니다. 예상 못한 배종헌 같은 작업은 전 좋더군요. 이런 회의감은 너무 '전공자'적 입장일까요?
김학량: 아무래도 서울시 정책현안이 맞물려있는 기획이어서 1/3 정도의 한계는 가지고 출발했지 뭐.
반이정: 전시 오프닝 뒤풀이에서 '술에 취해서인지' 형이 우는 걸 봤어요. 솔직히 왜 울었수? 쌓인 게 많았나요?
김학량: 작가들한테 못할 짓 한 듯해서. 성의를 다하지 못해서.
반이정: 쳇 머야. 지금 순정만화 써요?
김학량: 충분히 대화하지 못한 채 서류 챙기기에 급급해서.
반이정: 그건 전시 준비기간이 넘 짧아서 그런거고...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잖아요?
김학량: 길게 준비할 수 없는 시스템이거든. 길어야 6개월
반이정: 전 말이죠. 더러는 이런 겁니다. 미술에게 그런 걸 요구하는 것 자체가 '매체'적으로 힘들긴 하지만 청계천 전을 좋다고 본건, 그게 정치적으로 시의적절했기 땜이에요. 단시일 내에 해야 한다고 봐요.
- 작가 김씨
반이정: 그럼 작업 얘기 잠시 해보죠. 연전에 보다 갤러리 개인전. 두고두고 생각해도 미술을 막 시작했던 나에겐 멋진 전시였어요. 전부터 그런 기획을 생각하고 있었던가요? 즉 창작욕이 있었더랬나요?
김학량: 동아를 그만두기 직전이지. 99년 5월에 해고되었고, 그 전시는 98년 12월말이었으니
반이정: '해고' 였나요?
김학량: 정리해고, 그 유명한.
김학량: 아무튼 작업하기로 작정한 건 88년, "십년 뒤에 개인전 하겠다"
반이정: 88년~!! 깍~!!! 그래도 느지막이 실행에 옮기긴 했군요?
김학량: 작업하기로 작정한 이유는, 안하고 죽으면 죽는 순간에 너무 열 받을 거 같애서
반이정: 나는 “내 나이 35에 영화배우 한다.”가 인생의 기획이었는데, 그게 바로 올해임. 실행 못했음.
김학량: 허 잘 할 것 같은데. 나도 가끔 영화에 까메오라나 뭐라나, 그거 좀 해보고 싶더구만.
반이정: 아 그래요? 뜻밖이네! 낯을 디게 가릴 줄 알았는데.
김학량: 가려도 하고 싶은 건 하고 싶거든
반이정: 내가 공부는 97년부터 했지만, '공식적인 미술계 입문'은 2002년 후반이랍니다. 꽤 신참인 셈이죠.
김학량: 와 신참이네.
반이정: 그렇죠. 데뷔가 생각보다 되게 늦어요.
김학량: 고속출세인가?
반이정: 미술계에 등단한지 꼭 만 2년째 되는 셈이죠. 고속출세라뇨? 그런 사람이, 연봉이 이리도 적을까? 미술계에 어디 글쟁이를 위한 '시장'이 있기나 한가요?
김학량: 반응이 괜찮아.
반이정: 나는 여러모로 부족한 사람이어서요. 진짜루.
김학량: 나는 아까 그대가 말한 '총체적' 관점이 부족하거든
반이정: 다시 보다 갤러리 전시 이야기나 하죠. 실은 나는 형의 그런 개인전이 퍽 샘나 하고 있었던거 같아요. 이론도 하면서 작가도 하는데, 적어도 내 안목으론 꽤 독창적인 작업들이었기 땜에. 이론도 하면서 작가도 하는게 원래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미술인의 상이었거든요. 내가 괜히 안규철, 홍명섭을 선망했던 게 아니랍니다.
김학량: 허? 아하
반이정: 지금은 약간 그 분들에 대한 입장이 달라지긴했지만.
반이정: 이거 자꾸 '허 아하만 할꺼유? 엉?
김학량: 안하지.
반이정: <보다 개인전>에 대해 좀 더 얘기해보죠? 그거 동양화에 대한 기존 인식에 한방 먹인 전시인데, 스스로 어떻게 자평하시는지?
김학량: 한방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나름으로는 자부심이 있긴 했지 뭐.
반이정: 일단 기획자가 그렇게 야물딱지게 작품을 내놔서 다들 놀랐을 거라고 봐요. 내심 부럽기도 했을테고 나처럼 시샘을 한 사람들도 꽤 있었을 듯.
김학량: '이미지의 권력'을 바야흐로 해체하고, 저, 지식인들의 인문적-형이상학적 제스처에 시달리는 풀들을 제자리로 돌려주고 싶기도 했고
반이정: 흠..멋진 표현이군. 혹시 팔린 작업은 있나요?
김학량: 그때 두 점은 팔고 너덧 점은 다른 작가들 작품하고 바꾸기도 하고.
반이정: 아 글쿤요. 성공적이네 나름대로?
김학량: 희한하더군. 예상 못했거든
반이정: 이후에도 사진 위에 그걸 뭐라고 하더라, 동양화에서 글쓰는 거? “내가 난을 안친지 몇 년되었는데...”로 시작하는...
김학량: 화제(畵題)라고 함
반이정: 나는 좌우간 그 '부작란' 작업을 수업시간이랑 특강 때 매번 써먹는데, 사람들 반응이 장난 아니게 좋답니다,
반이정:
그 사진위에 화제하고 빨간색 네임펜으로 도장 찍는 거 그건 또 모라고 하더라? 그렇게 제작한다는 발상 자체가 놀라워요. 아직 작품 몇 점 소장하고 있는거죠? 나도 직접 해볼까도 생각해봤음.
김학량: 있지. 그림 그리고 나서 화제 써 넣고 날짜 써넣고 싸인 하고 도장 찍는 거 통틀어서 '낙관(落款)'한다고 하지.
반이정: 여하간 형의 개인전과 연관시켜 생각해볼 때, 적어도 이제 동양화라고 불리우는 제작방식은 변해야하는 게 타당하죠. 물리적인 제작방식도 그렇고 비물리적인 인식방법도 그렇고. 진부한 지적이지만....
김학량: 헌데 정작 동양화 판에서는 거의 신경도 안 써요
반이정: 그렇겠죠. 그게 정통동양화판의 생명줄일텐데, 그걸 누구 '인정'하고 싶겠어요?
반이정: 마치 '신이 없는 걸 빤히 알면서도' 신의 존재를 극구 주중하는 개신교 목사랑 같죠. 아마 그 넘들 신의존재없는걸 스스로 더 잘 알걸?
김학량: 여기저기서 한 얘기지만, 동양화의 매력을 알아보는 사람도 다 바깥 사람들이야. 다른 매체를 쓰는 사람들. 오일페인팅이나 비디오, 사진, 조각가까지...
반이정: 그 사람들이 '동양화'의 매력을 안다고요? 거기서 말하는 동양화란 '정통' 아니면 '퓨전'?
김학량: 간송미술관 같은 데 전시 같이 가보면 재미있어. 말하자면 정통입장에서 교과서적으로 해독하는 거 말고, 보고 즐기고 미학을 생산하는 따위.
반이정: 저는 간송에는 가본적이 아예 없답니다 '재미있는 전통 동양화'를 본다는 건 무얼 의미하죠? 어렵죠?
김학량: 이를테면 겸재 정선의 그림을 자기 작업의 수준과 맥락에서 보고 즐기는 일.
반이정: 요즘 전통동양화 제작 말고, 예전 게 좋다는 얘긴가요? 시대적으로 볼 때도?
김학량: 아니, 따로 취급할 수 있다는 거지.
반이정: 여하간 ‘보다’ 이후에도 개인전을 몇 차례 열었죠?
김학량: 사진전 한 번, 수묵화 한 번,
반이정: 지난 (아무도 주목하지 못하고 끝난) 정미소 3인전 에서도 느낀 건데, 형은 관심이 바로 2004년 현재 동양화가 '이렇게' 존재할 수 있다. 현실가능하게 . 이렇게 말하는 거 같아요.
김학량: 꼭 동양화에 저항하기로 작정하고 작업하는 건 아니고, 아무래도 거기 출신이니까, 또 그 문제에 예민하니까 그런 거 같으오.
반이정: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생활 속에 서 동양화의 구획과 정신(?)을 찾아낸다고나 할까. 가령 타워펠리스을 동양화의 괴석과 비교한 것의 경우가 그렇죠. "현대의 동양화적 괴석은 이거다."라는 명쾌한 해석이 참 독창적이란 말이죠. 넘 띄어주는 건가...? -_-;;
김학량: 싫지는 않지만 너무 띄우는 거 같은데?
반이정: 독창적. 이건 동양화 말고, 다른 분야에서도 늘 요구되는 건데, 제가 보기엔 만성정체 되어있는 분야일수록 사실은 틈새시장이 있어요. “그게 미술계에선 어찌 보면 동양화이고, 김학량은 그 시장을 잘 파고든 사람인거다.”라는 게 반이정 생각인거죠.
김학량: 틈새시장, 그 말 맞어.
김학량: 그것도 안 보고 한 세기를 허송했으니..
반이정: 사실 모든 성공하는 사람들, 이름을 남기는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의 관성 때문에 '관행'이 되어버린 어떤 '인식'을 틈새시장을 찾아 '독창적이게' 해석해 버리는 경우라고 보거등요.
김학량: 되새기겠음.
반이정: 그런 면에서 보면 반이정도 참 예술간데.
김학량: '가'지.
반이정: 시대를 넘 앞질렀어.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 - 틈새시장 공략
반이정: 오랜 이론가(큐레이터) 생활이 형의 작품들에 발상을 줬는지요?
김학량: 아니, 거의,
반이정: 아 그래요? 본래 잘 낫다 이거지?~!!!
김학량: 구경 많이 한 덕은 볼지 몰라도. 본래 두리번 거리고 이거저거 되새김질하는 버릇이 있어서, 그 부작란 풀 작업도 거의 우연히 나온 거거든.
반이정: 나는 요새 형 작업 같은 경향을 서양의 미니멀리즘과는 좀 다른 의미에서 미술의 '최소주의'라고 봅니다.
김학량: 최소, 혹은 가벼움이라?
반이정: 소재도 최소, 행위도 최소, 결과물도 최소,
내용도 최소!
김학량: 무겁게 할 틈이 없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가끔 해.
반이정: 그래서 좋아요.
김학량: 할 줄도 모르지만.
반이정: 약간은 다른 차원이지만, 김을, 김태헌도 저는 최소주의자라고 봐요. 물론 그 양반들은 최소주의면서도 작업은 엄청 쏟아내지만, 특히 김을.
김학량: 어떤 친구는 내 작업에 숭고가 없다고도 하더군.
반이정: 숭고를 따지는 사람이 어찌 '최소주의'를 이해하랴. 즉 제가 정의하는 최소주의는 ‘거품’을 뺀 겁니다. 소재, 주제, 재료 모두.
김학량: 그리고 무언가 예술을 포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를 무시한다는 축도 있고.
반이정: 종전에 예술을 포장했던 어떤 '정형화된' 장치를 걷어냈기 때문에, 예술판의 물갈이를 한거죠. 그걸 못보는 거예요. 다른 사람들은. 그 방법론으로 '최대주의' 나 '거대담론'이 아니라, "이거 뭐야. 그냥 이렇게 간단하게 가면 안되는거야?"라고 단순하게 받아치는거죠. 그게 바로 뭐다? 최소주의다.
김학량: 알겠군. 그런 태도는 내가 갖고 있지 뭐.
반이정: 제가 말하는 최소주의는 사실 천재부정, 모더니즘의 도그마 부정 등이 포함되는 '정치적 입장' 이지요.
- 현실 참여의 문제에 관하여
반이정: 형은 어찌되었건, 현실참여에 '아주 적극적이진 않지만' 관심을 표명하고 있는 사람 같은데, 그동안 어떤 일들을 했나요?
김학량: 일이라면, , 일단 참여연대 회원 같은 거? 새사회연대 고문 정도?
반이정: 누구 1인시위하는 거 옆에서 이너뷰 비슷한 거 하던데? 헌데 실제로 '참여'도 많이 하나요?
김학량: 그리고 뭐 과거사규명 관련 단체에 기부금 꼬박 내는 거.
반이정: 내가 생각하는 김학량은, 역시 예술가 입니다.
김학량: 참여는 거의 못하지 뭐
반이정: 과연 내 추측이 맞다니깐. 작업 보면 알 수 있어요. ^^;;
김학량: 간혹 큰 집회할 때 나가는 거
반이정: 약간의 기부금은 누구나 내죠.(아 오해 없길 바래요. 지금 잘하고 계십니다.). 형이나 나도, 결국 부채감을 느낀다는 걸 어쩌면 유일한 위안으로 삼고 있는지도 몰라요. "나는 이게 문제라는 걸 다른 애들보다 많이 느껴. 그래서 이렇게 작지만 참여하지."라고 말이죠. 그리고 집회도 나가고, 특정단체에 꼬박 기부금도 내죠. ^^;; 헌데, 그건 약간의 선비정신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다소는 위선적인.
반이정: 여하간 논의가 약간 벗어났는데, 현실에 미술인들이 어떤 식으로 참여해야한다고 보나요?
김학량: 참여 문제는 정말 곤혹스러워. 아무튼 미술 가지고 현실을 즉각 개선하는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이고, 에둘러 말하면 야릇하고 빼딱한 정치경제적 상상력이나 후줄근한 욕정에 짓눌려 딱딱하게 발기한 거시기를 지게작대기로 기냥 내리쳐버리는 ‘곧음’, 그게 중요하고, 작업보다도 애들 키우는 입장에서는 아이들이 현실의 됨됨이와 짜임새를 옳게 더듬을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
반이정: 음 외피적인 관찰 결과만을 두고 말하면 말이죠.
알다시피 저는 비교적 인사도 잘하고, 친절한사람이지만, ^^;; 피아가 분명한 사람이랍니다. 나이 고하를 안 따지죠. 한번 수틀리면 아는 체도 안하고, 흥분 한번하면-그런 경우가 적어서 그맇지만- 막 화내고 그래요. 헌데 형은 현실참여적이기엔 넘 무난한 대인관계를 갖고 있지 않나요? 오랜 조직생활 탓인지 성품 탓인지? 그게 형의 현실참여를 가로막진 않는지?
김학량: 현실참여를 가로막는 건 너무 진중한 성격 탓이거나, 겁쟁이여서지 뭐.
반이정: 하긴 미술인으로서, 현실참여는 바로 '전시장'안에서 존재론적으로 정해진 거 같기도 합니다.
김학량: 효과에 회의하기도 하는 것 같애.
반이정: 전시장에서 파장은 적더라도, 현안에 맞물린 전시를 하는 걸로 ‘참여요구’를 대신하는 거 아닐까요?
반이정: 지난 대학로 근처의 무슨 전시더라...있잖아요? 거 왜 신문지 위에 물감으로 대충대충 듬성듬성 칠해서 전시한거.
김학량: 수묵화 전시 ‘고도갤러리’에서
반이정: 기억도 안나는군. ^^ 나는 미술이 비단 정치현실이 아니라 하더라도 살아가는 현안에 대해 긴장을 놓치지 않는다면, 굳이 힘겨워 할 필욘 없다고 정리하고 싶어요. ‘고도’ 전시에 출품된 작품이 약간 그랬던 거 같아요. 소극적인 미술의 참여를 보여주되 작품의 조형성은 확보하는. 미술이라는 매체 자체가 밖을 향해 열려있질 못하잖아요? 속성상.
김학량: 그렇군. 임옥상은 열잖아. 광주 봐봐. 매향리서 주운 폭탄 손질해서 카페 탁자하고 의자하고 그러잖아.
반이정: 어떻게 생각해요 임옥상에 대해?
김학량: 헤헤. 나 보고 '작가주의자'냐? 묻길래, '그렇다면 난 작가주의잡니다' 대답했고, 그 뒤론 한번도 안 만났지 서로.
반이정: 전에 저도 함 만난 적이 있는데 사람을 좀 막대하는 거 같아서 좀 불쾌했어요. 헌데 인간이야 어찌되었건 미술을 현실에 맞게 제대로 하는 사람 같아요.
김학량: 문화연대 발족하면서 '문화행동21'인가 같이 하자고 해서 안한다 했더니 그러더라고.
반이정: 폭탄손질해서 탁자 의자 만든 게 문제라고 보시는 건가요?
김학량: 문제라고까지 봐야할지는 모르지만 개그 하는 거 같아서..
반이정: 나는 임옥상도 충분히 심미적 작가주의자 같은데. 왜 ‘작가주의’냐고 묻고 그럴까?
김학량: 아마 그 양반은 작가주의를 모더니스트하고 동일시하는 것 같더라고
반이정: 글쵸. 좀더 정확히는 형식주의를 작가주의로 이해한 듯 하군요. 여하간 인간적으로 대단히 권력지향적인 사람이란 면에서 정이 안가요. 하지만 대단히 솔직하고 기업가적인 사람이에요.
김학량: 맞어
* 여기서 부터는 둘째 날의 새로운 채팅이다.
- 김학량의 작업에 관하여
반이정: 개인전의 ‘부작란’에 적혀있는 '화제'의 요지는 뭐였죠? (물론 나는 대충 알고 있지만, 독자를 위해서) 네임펜으로 대충 대충 썼던데.
김학량: 뭐냐면, 사군자 등등 온갖 식물에 인문적 상상력을 덧씌워 즐기고 귀감삼고 한 작태가 우스워서 그 식물들을 무명(無名, 無明)의 본래 상태로 돌려보내서 제맘껏 한 생 즐기게 했으면 좋겠다, 그런 투였지. 그 과거의 상상력은 어쨌든 '의미 있는' 것이었는데, 문제는 요즘 애들도 그걸 아무 반성도 하지 않고 베껴댄다는 거지.
반이정: 예. 그럼 예전 사람들은 '어떤 반성'을 하고 베끼거나 창작했나요? 잘 모르고 하는 소린데, 동양화는 이미 그 자체로 '정형화된 옷'을 끼워 입고 있다는 생각을 왕왕 합니다. 준법이니, 뭐니 해서 그림 그리는 방법론이 있지 않나요? 가령 난을 쳐도 방법이 있잖아요? 실물을 그대로 묘사하는 식은 아니지 않나요?
김학량: 아 그런 정형화된 옷은 어느 정도 벗어버렸다고 봐도 되고,
반이정: 그래요?
김학량: 요즘은 옛 방식으로 사군자 치고 준법 지키고 하는 일은 거의 보기 힘들지
반이정: 나는 그 그림이 정형화된 머리 속의 오브제-그것도 목에 잔뜩 힘을 준-들이 실은 현실에도 도처에 널려있는, 뭐 그런 풍경에 대한 직시로 이해했거든요.
김학량: 문제는 과거 문인들이 ...엉? 내 그 '부작난' 사진이?
반이정: 형의 부작란 사진이.
반이정: 콘크리트에 박혀있는 철근이나, 설원에 피어난(?) 잡초 같은...거 말이죠.
김학량: 그렇긴 하지
반이정: 그리고 역설적으로는 그렇듯 형의 관찰(혹은 발견)에서 처럼, 잡초나 철근같이 무모한 것들의 처지는 작금 동양화가 처한 처지랑도 비슷하다고도 이해했고.
김학량: 아무튼 요지는 과거 문인들 놀던 인문적 상상력과 태도를 고대로 '베끼고 있'다는 점을 비판하고 싶었다는 것.
반이정: 사실 형의 작업은 과거의 문인화를 '현지화' 시킨 거였다고 봤기에 난 좋게 본겁니다. 뭐든 '현지화' 되지 않고, '~인 척' 하는 건 뽀록나게 되어 있잖아요.
김학량: 아, 내 생각에도 내 그 작업들이 서로 상반된 지점을 갖고 있지.
반이정: 정리하자면....1. 과거의 동양화 정신의 현재적 승화(거창하군) 2. 소재로 사용된 매체(사진, 콘크리트, 철근)등이 현대적인 매체라는 데에서 '현대화에 직면한 동양화'의 처지를 보여주고. 3. 또 역설적으로 볼품없는 현실에 널린 오브제들을 통해,, 동양화의 길잃은 현실을 비판하는. 이렇게 3개 정도가 내가 김학량의 부작란 시리즈를 바라보는 반이정의 독해방법이죠.
김학량: 손질해야 하겠지만, 1번하고 3번은 공감해
반이정: 2번은 방금 떠올린 거임. 왜 2번 같은 생각을 했나하면. 아무리 형이 동양미술이론을 했어도, 마네 모네의 인상주의가 모더니즘의 시초로 불리는 연유에대해서는 대충 알거요. 맞죠?
김학량: 어
반이정: 마네의 모더니티에 관해 환원주의적 형식주의자들의 태도와는 달리 바라보는 해석도 존재하죠. 그것이 뭐냐면, 알다시피, 제가 2번에서 지적한 것처럼, 마네의 그림이 현대인들의 풍경과 매체를 반영하고 있다는 거죠. 혹은 그림이 현대성(모더니티)의 정신을 구현하고 있다는 해석이죠. T. J. Clake이 그런 해석을 했잖아요. 위의 내가 갑자기 말한 2번의 경우가 이런 전례를 좀 응용해본 겁니다.
김학량: 아 조금 공감하겠군
반이정: 왜냐면, 보통의 부작란(요즘 그려지는)에는 '현대성'의 흔적이나 현대의 매체가 개입하지 않죠. 하지만 김학량의 부작란 시리즈는 매체 자체를 현대적인 걸 쓰죠. 이 부분은 '현지화'와 연결되어 반복되니, 이 정도로 할게요.
김학량: 아무튼 현대적 매체로 난을 '다시' 치겠다는 생각은 거의 해보지 않았어. 콘크리트에 박힌 철근을 난으로 본 것은 그것-그 이름도 못 얻어가진 미물- 들에게도 아주 매력적인 품격이 있을 수 있다는 것 정도.
반이정: 흠.... 역시 '선비정신'이 충만하시군. ^^;;
김학량: 요지는 1. 사군자류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인문적 상상력의 더께를 걷어내고, 눈을 좀 씻고서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세상을 보아야 하겠다는 것. 난초라는 풀이 요즘 세태에서도 얼마나 불쌍한 건가. 전시장 가보면 동서양 온갖 난들이, 그것도 유전자 조작된 꼴로다가 거 무슨 '똥폼'과 '금권'과 '친분' 등등 온갖 것을 '대리'하는 '보충물'로서 불쌍하게 놓여 있잖아. 대개는 전시 끝나고 얼마 안 가 버려지기 일쑤고. 그랬을 때 거기 그 풀들한테 덧씌워져 있는 인문적(인공적) 상상력은 얼마나 추한 것인가.
반이정: 내 생각이랑 크게 안 다르네요.
김학량: 그리고, 과거 문인들 경우엔 그 계급적 토대를 잠시 눈감아준다면, 자연의 생태에 자신의 입지를 투영하여 좆나게 반성하는 미덕이라도 있었거든. 그게 껍데기만 살아서 20세기 아이들한테 그대로 '전승'되어 알맹이 쏙 빠진 채 겨우 '헛기침' 정도로 전락해버린 거지. 지금 동양화판에서도 죽으라고 '자연, 우주, 도..' 운운하는 소리 떠돌잖아. .
반이정: 나는 잘은 모르는데, 동양화과의 그 지랄같은 관념론은 좀 신물이 나게 합니다.
김학량: 그렇다면 과거 사군자나 소나무 등등, 지식인들로부터 '귀한 품격'을 지닌 것이라고 칭송받으며 뭇 인간이 본받을 품성을 지닌 고매한 자연으로 추앙되던 것들 대신(왜냐, 우린 이미 그 범우주적 상상력을 잃어버렸거든), 눈밭에 잡초의 그, 한 평생 다한 뒤 주검으로 그 허연 눈밭에 오롯하게 자신의 죽음을 표현하는 자태가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또 폐기된 콘크리트 속 철근은 어떠한가. 공사장에 나뒹구는 콘크리트 덩어리가 내가 보기에는 가장 아름다운 '수석'이기도 하거든. 한겨울 섬진강을 걸으며 강 기슭에 죽은 채 꼿꼿이 서서 물끄러미 강 흐르는 소리를 귀열고 듣고 섰던 그 마른 풀들의 자태는 또 얼마나 눈물겨운 것이던지.. 뭐, 그런 반성. 너무 센치멘탈하네. 예전에 어느, 내가 존경하는 후배가 그랬지: "형은 너무 센치멘탈해."
반이정: 머야 이거. 레디컬 크리티컬 할줄 알았더니, 센티멘탈에서 유발된 작업들이었잖아? 지지를 당장 철회해야겠군.
김학량: 그런 감수성이 깔려있다는 거지. 아니, 내가 크리티컬 측면을 애써 부각시키지 않았든지, 말 자체를 쎈치하게 해서 그렇지.
반이정: 그럼 작업 얘기 좀더 보강해볼까요? 전에 배준성과 2인전 한 거 괜찮았던 거 같은데, 특히 배준성이 사과껍질 갖고 한 게 나는 요즘 '비닐 옷 시리즈' 보다 훨 낫습니다. 심각하지 않으면서도 폐부를 찌르는. 게다가 그런 서양화작가가 형 같은 동양화 작가(이런 구분 자체를 싫어할테지만, 편의상)과 비슷한 논점을 갖고 작업한 게 좋았다고 보는데, 형은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그 전시를. 그리고 왜 지금은 서로 교류가 없죠?
김학량: 아, 배씨의 그 그림 보고 탄성을 질렀지.
반이정: 그래요? 그렇게 답하면 넘 싱겁고. 좀 더 이유 보강해주세용~~~
김학량: 배씨 작업도 모티프가 난초(동양화)라 그렇지 실은 사물과 이미지 사이에 개입하는 착각, 착시, 오해, 그리고 그것들이 회화가 되는 과정에 대한 비평이 아닐까 해서 좋~아하지. 관객과 화면 사이의 거리 문제도 적당히 재미있게 개입되고.
반이정: 따라서... 2인전은 꽤 '적절한 조합'이었군요? 그쵸? 그럼 요새도 배씨와 교류가 있나요? 왜 요샌 없죠?
김학량: 교류나마나 나는 보고 싶어도 그이가 워낙 거시기한지 바쁜지..통 보기 힘들어 그렇지
반이정: 그렇군요. 교류의 가능성이 없진 않네요. 나도 갠적으로 지난 2인전 참 좋았습니다.
김학량: 고맙소
반이정: 그 후 있었던 형의 개인전 전에도 얘기했던 거 같은데, 대단히 슬렁슬렁한 드로잉전인 것이 마치 '김을의 동양화 판' 을 보는 듯했는데 이런 평은 좀 듣기 싫은가요?
김학량: 상관없는데 무슨 전시?
반이정: 형의 대학로 ‘고도 갤러리’ 개인전 = 김을의 ‘갤러리 피쉬’ 드로잉전
반이정: 혹은 김태헌 개인전과 비교되어도 무방. 작업에 임하는 태도 면에서 비슷하다는 얘기임.
김학량: 뭐, 좋지 뭐,..
반이정: 적절한 비유가 맞다는 얘긴감요?
김학량: 음
반이정: 김을, 김태헌 의 태도에 동감하는 면이 많으실테죠?
김학량: 많습니다.
김학량: 그런데 비평가들은 뭔가 쎄고 '큰' 것을 원하더군.
반이정: 그래요?
김학량: 인제는 예전 같은 대형화면을 보고 싶다는 식으루다.
반이정: 그래도 김을, 김태헌은 그 방면(슬렁슬렁 드로잉하는 것)에 나름 의미 있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보는데요.
김학량: 나도 그렇게 보고 있소
반이정: 그런데 누가 그런(쎄고 큰 걸 요구하는) 소릴?
김학량: [아트 인 컬쳐] 라운드테이블 있잖아, 거기서 본 듯
반이정: 김을, 김태헌은 일부러 '최소주의'를 택한 건데, 영 엉뚱하게 해석해버리네. 해석이라기보단 '희망'해버리네.
김학량: 엉뚱한 해석이라기보다, 아, 그렇지! 희망!
반이정: 저는 김을, 김태헌, 혹은 김학량 이 3김씨의 시대가 말해주는 정치적 메시지는 매체적으로, 소재적으로, 주제적으로 '최소주의'를 지향할 수밖에 없는, 혹은 지향하는 것이 최선일 수 있는 작금의 회화계를 말해준다는 점이라고 보고 있는데요.
김학량: ...
반이정: 그런데, 회화적 역량을 축적해서 대형화면으로 이야기할 때다? 글쎄.
김학량: 내가 크게 할 수 없는 이유는, 크게 할 수 없기 때문이라오. 클 필요가 없고, 헌데 어떤 이들은 메시지의 볼륨(소리크기)가 작은 화면 때문에 웅얼거린다고 느끼는 것 같애.
반이정: "크게 할 수 없다"는 진술은 can not 이라는 양해일 수도 있지만, need not 일수도 있지 않을까요? 가령 부작란 같은 메시지를 머 하러 100호 넘게 만듭니까? 오밀조밀하니깐 좋은 건데.
김학량: 그런 거지요
반이정: 여하간 알겠구요.
김학량: 을이나 태헌도 그렇고.
반이정: 지난 <시국선언전> 애프터 때 형이 이런 말을했다고 하더군요. “언젠가는 김을 선생이랑 목수가 되려고 했다.” 라고. 맞나요?
김학량: 하하
반이정: 게다가 목격담에 따르면 형은 ‘동아’시절에도 퇴근 시간에 홀로 남아 뭔가 두드려 만드는 일에 몰두했다죠? 그때부터 싹이 보였군요.
김학량: 아니, 내 취미가 가구 만드는 거라, 먹고 살 방편삼아 같이 가구점 하면 어떨까, 혼자 공상해본 거 뿐이오.
반이정: 그럼 그건 '공상'으로 받아들일께요. 그 이상은아닌...
김학량: 요즘은 시간이 안 나서 통 그 지랄 못하고 있지
반이정: 형은 가구점 할 사람 같진 않소. 원체 선비시니...^^
김학량: ㅋㅋㅋㅋ
반이정: 전에 형 개인전 때 보니깐, 시립미술관 브로셔 위에 드로잉 하는 둥, 혹은 미술관 찾아온 식구들 사진 갖고 작업하는 둥, 자신의 직장을 둘러싸고 목격하고 관찰하는 것들을 작업으로 옮기더군요. 빠듯한 직장생활에서 소재를 '일상'에서 찾은 결과겠죠?
김학량: 찾은 게 아니라, '보여서' 기록한 거지. 그걸 나중에 인문화하고
- 새로운 동양화 주의
반이정: 새로운 동양화 실험하는 작가들 어떻게 생각하는지? 가령 박병춘, 임택 같은...유근택도 넣으려면 넣을 수있는.
김학량: 글쎄, 한 두 해 전에 유근택씨한테는 "좀 쉬어가며 작업하지요?"한 적이 있고, 박병춘씨는 지금 생각하면 그 사람도 좀 쉬어가며 해야 해. 임택은 한동안 이런저런 실험을 계속하면 좋겠고. 유-박씨는 너무 부지런해서. 헌데 최근 유씨는 좋아보이데 훨씬. 작년 쯤부턴가 무언가에 개안(開眼)하고 있는 듯한 조짐이 보여.
반이정: 그렇게 추상적인 수사 말고 구체적으로
김학량: 서둘러 꼬집자면 유씨는 그동안 중노동에 의지해온 셈이 아닌가 해. 세상을 보는 시각도 너무 잔잔하고, 그림 안에 매몰되어 있는 거 같애, 마치 일상의 잔편을 가지고 끄적끄적 일기 적어나가는 태도 외에, 세상사와 적극적으로 , '산문적'으루다가 부닥치고 삐지고 하는 구석이 드물잖아.
반이정: 박씨는?
김학량: 박씨의 경우에도 비슷.
반이정: 그리고 넘 부지런해서, '쉬지 않고 작업하면' 그게 뭐가 문젠가요? 좋은 거 아닌가요?
김학량: 모든 틈을 바로 종이를 맞대고 씨름하는 데에 투자하다보면 세상이 지워져버리기 십상이잖아
반이정: '쉬지 않고 작업'하는 게 어설픈 작업을 양산한다고 믿으시나요? 혹시?
김학량: 어설프다기보다 근시안이 된다는 이야기지 뭐. 그런 점은 작가노트를 읽어보면 나타나잖아
반이정: 그래요?
김학량: ...
반이정: 젊은 작가들의 실험이 어디까지 진행되리라 보시나요? 그냥 '장르 간 구분이 ' 사라지는 순간을 하염없이 지향하겠죠? 물론 별로 가능해보이진 않지만.
김학량: 지필묵을 고수하는 한 기왕 동서고금에서 나온 주제를 탈피하기는 쉽잖겠지. 일단 조만간 매체비평적인 작업이 더 쏟아질 것이고, 이를테면 박윤영씨 같은.
반이정: 이를 테면 박윤영 같은.
김학량: 그러니까 지필묵이 갖고 있던 온갖 역사적 맥락을 재검토하고 빈틈에다가 한 방씩 먹이는 작업이 한동안 나올 수밖에 없다는 말이고. 그건 유씨나 박씨도 어디선가 한몫 거들고 있지만, 더 좁히면 나 같은 경우,또 박윤영 같은 경우,, 하하하하하하하
반이정: 박윤영에 대해 좀 더 보강 설명 부탁. 나도 그 작업 재밌게 봤습니다. 그 친구도 나이가 나랑 비슷할거에요.
김학량: 그 사람은 지필묵 역사의 빈틈을 꽤 눈치채고 있는 것 같고, 최신 이슈에도 퍽 민감한 것 같고,
반이정: 지난 전시에서 그 사람 형이 발탁한거요?
김학량: 아니, 그 사람은 이은주씨 주제에 속했지. 거 왜, 생리대를 엮어 화포를 삼고 거기다 몽유도원도 모티프를 곁들여 한 작업 죽이잖아?
반이정: 알아. 나도 좋았대두요. 자꾸 남 얘기하지만, 한명만 더. 젊은 동양화가 김정욱은 어때요?
김학량: 김씨는 그 얼굴들을 왜 그리 오래 반복하는지 모르겠어. 별로 비평적인 지점이 없어 보이는데.
김학량: 예전 '팥쥐들의 행진'류의 전시기획이라면 몰라도
반이정: 아 그런가요? 그래도 조형적으로 근사하잖아요. 딥따 큰 얼굴!
김학량: 김씨의 그 얼굴작업이야말로 200호짜리로 한 방 빵하고 끝. 하면 좋겠던데
반이정: 그래요? 넘 유형화 비교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고낙범의 얼굴연작도 하나말고 여러 개가 모여서 시원하던데요.
김학량: 그건 동감
반이정: 단색으로 얼굴만 열라게 그려서. 그것의 동양화적 변형으로 보면 넘 밋밋한 평가일까요?
김학량: 밋밋
반이정: 글쿤요.
김학량: 혹시 매체의 존재론적 한계가 아닐까?
반이정: 여하간 형은 동양화를 실험적으로 하면서도, 뭔가 '기존 동양화의 어법'에 문제 제기를 하는 축을 지지하는 것 같네요.
김학량: 그렇습네다
반이정: 나는 일단 동양화를 잘 모릅니다. 하지만 기존 판에 박힌 동양화를 보다가, 화면 가득, 동양화의 필법으로 서구식 얼굴을 대빵 크게 그리니깐, 시원한 구석이 있던데요.
반이정: 그것 자체로 뭔가를 말하지 않아도 오히려 다행이기도 하구요.
김학량: 내가 거시기했던 건 그 조형은 좋은데 반복을 너무 한다는 것
반이정: 너무 했나요? 나는 근자에 좀 봐서. 갤러리피시에서 보기 전에는 그렇게 큼지막한 얼굴작업을 본 기억은 없어서리.
김학량: 마치 권순철 선생님이 20년 동안 그 얼굴을 요즘도 보여주시는 것과도...
반이정: 그건 좀 지겹죠. 권순철 얼굴 연작. 여하간 알았습니다.
김학량: 요약하면 나는 신진들 중에 박윤영을 제일 지지함
반이정: 그 정도에요? 미모에 비례한 지지같군. -_-;;
김학량: 얼핏 기억 안 나는군. 헌데 배상륜처럼 유희하는 작업도 일단 눈여겨보고 있다오
반이정: 포럼에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 내가 포럼에이 필자여서 물어보는 게 아님. 포럼 사이트에 대한 외부의 시각이 궁금함.)
김학량: 오늘 보니까 무슨 보수꼴통들이 '안보정화제' 운운하면서 진보들하고 사이버 논전을 적극 벌인다고 집합했더구만. 포럼에이는 나한테는 그런 일종의 정화제라고 봄. 출발지점에서는 창작에 대한 실질적이고 비평적인 논의가 전혀 축적되지 않은 우리 미술판에 작가-비평가-기획자가 적극적으로 논의공간을 제안했다는 점, 높이 사지 않을 수 없고,
반이정: 좀 우려해야할 점도 지적 요망.
김학량: 우려할 점은 별로 없음. 이견을 가진 사람들이, 포럼에이에 저항하거나 이견을 적극적으로 표현할 매체를 만들어 반응하면 되겠지.
반이정: 넘 남 비판을 안 하려 드는 건 아니에요? 좀 팍팍 비판해보지. 일각에서는 포럼에이 사람들의 '집단화'에 대한 지적도 있었는데, 그런 점은 ?
김학량: 사실은 비판할 준거를 내가 갖지 않아서지.
김학량: 집단화라니?
반이정: 이를테면 포럼에이라는 것 자체가 자기 쪽 사람들(혹은 현실 참여계열, 공공미술계열)을 지지하거나, 하는 뭐 그런 지적들에 대해서는?
김학량: 무슨 집단화? 에이 그 정도 가지고 무슨 집단화... 집단적으루다 무슨 이익을 도모하는 것도 아니고 비평적 시각을 제출하는 것뿐인데.
반이정: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 잊어버리기 전에 작업 얘기 하나만 더. 정미소 전시 전에 말했듯이 좋았습니다. 특히 3명의 작가가 특별히 벽면에 대한 구분 없이 (있긴 있었지만), 뒤섞여서 깔끔하게 작업한 게 좋았던 거 같아요. 그 전시에 대한 자평 바랍니다.
김학량: 나는 동양화의 전통 화제를 대중매체 이미지로 전유․비평하는 작업, 고정민은 글로벌기업들의 상표를 풍경요소로서 전용하여 재배치하고, 오동권은 나와 고정민이 벌여놓은 ‘풍경’ 사이사이에 문득문득 한마디씩을 무심하게 배치하여 엉뚱한 활기가 감돌게 했지. 전시장 전체가 동양화의 대관산수양식을 연상시켰고, 산수 안에 관객은 노닐다 갔던 것. 전시 끝나고 그 산수는 흔적도 없이 벽 안에 묻혔던 것.
그런데 제일 아쉬운 것은 오프라인 홍보를 거의 안했더니 손님이 거의 없었다는 점.
반이정: 그건 좀 집고 넘어갔으면 하는데, 미술인들은 왜 이리도 홍보에 무감할까요? 정말 아무도 안보고 가도, 전시 커리어만 생기면 된다고 생각하는 건지, 홍보에 너무 무감각해요. 형의 전시도 포함해서.
김학량: 받아들이고, 아무튼, 정미소에서 동양화 문제를 가지고 기획전하자 해서, 거기 도록에도 썼지만 동양화판의 무감각증에 대한 비평이고자 했음. 아무튼 동양화 문제 관련 기획을 동양화가만 가지고는 안 된다고 평소 생각해서, 전공이 전혀 다른 두 사람을 끌어들여 셋이 했지
반이정: 다른 두 분은 서양화과 출신인 모양이군요?
김학량: 미술원 조형예술과 출신
반이정: 이왕 작가 겸 기획자인데, 아니 더 정확히는 기획자에 무게가 많이 가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좀 더 글로써 승부할 생각은 없는지요? (없을 거라 생각되지만 -_-;
김학량: 아니, 있어요. 조만간 박사과정에 들어갈 계획이고, 6-7년 공부 안 한거 만회하면서 한국현대미술사를 비평할 생각이오.
반이정: 아니~!!
김학량: 센치멘탈한 글도 계속 하고, 이른바 과학적인 비평도
- 이론 공부 재무장 채비
반이정: 앞으로 하시고 싶은 일은? 아까 말한 건 기억나지만, 그래도 좀 더 '연구계획서'를 구체적으로 나열해주세용!
김학량: 문화연구 시각에서 한국근현대미술사 공부하기. 전시기획을 튼튼하게 하기 위한 토양도 될 테고.
반이정: 기대하기 전에 지금 생각중인 '한국현대 미술'의 키워드가 있다면 뭘까요?
김학량: 형이상학
반이정: 흠냐. 왜 갑자기 찬물 끼얹는 형이상학이람?
김학량: 근현대문학이 '고통'이었다면 그것의 저 먼 대척점에 미술의 형이상학이 있었던 것. 물론 80년대 전후한 미술의 '고통'이 있었지만, 그 형이상학이라는 거품을 재평가하고 비판해야 미술사가 좀 번듯해질 것.
반이정: 진부한 질문 하나: 시립미술관 있으면서 꼭 기획해보고 싶은 거? 혹은 앞으로의 계획.
김학량: 올 봄 '다큐먼트'에 이어 후속작으로 '기록' 문제를 계속 탐구하기. 특히 회화에서.
- 김씨의 추천 작가, 비추천 작가
반이정: 기획자 김학량이 요즘 주목하고 있는 작가 5명만 구분 없이 나열해줄 수 있는지요? 선정 이유도 함께!
김학량: 으악!
반이정: 선정 이유가 없으면 묻는 이유가 필요가 없죠. 이게 뭐 주부잡지도 아니고.
김학량: 회화만 얘기하지. 김지원, 김을, 김태헌, 박진화. 이 삼 김씨의 그림은 중생의 환희와 절망, 고통을 그것의 심연에서부터 자신의 가슴 그윽한 곳까지 이어내는 마음새가 살아있어. 그래서 그림이 곧 명백한 하나의 육신이지. 관념주의나 개념의 유희 이전에 육신을 가졌고, 성찰적 안목 또한 그윽하고. 특히 박진화는 보기 드문 무당이 아닌가 하는데, 어떻게 들릴지 몰라도 그의 그림은 씻김굿이야. 둥실거리는 파도를 꼭 닮은 전라남도 남부 땅을 거닐며 거기 바람에 몸 실어본 적이 있는가. 남쪽바다 한낮의 눈부신 초현실을 육신으로 겪어본 적 있는가. 박진화는 우리 근현대문학에 깔린 ‘고통’을 드물게 육화하고 있다고 느낀다오.
그리고 이제 같은 작가도 한껏 기대하고. 흠모하는 작가는 꽤 있지: 배종○, 정주○, 배영○, 고승○, 송상○, 전용○, 박찬○, 정서○, 김주○, 김수○, 김명○, 김기○, 장윤○, 김연○, ○○○ ○○○ 등등. 늘 그 사람들 행태를 엿보면서 배우지. 최근 광주비엔날레 갔다가 윤남홍이라는 수묵화가를 만났는데, 서울 거보다 쎄데. 언제 한 번 소개하지.
반이정: 그럼 나다운 질문 하나 마저 던지죠. 싫어하는 미술인 있죠?
김학량: 하하하 유형이 있지
반이정: 꼭 실명을 거론할 수 없다면, 대충 어떤 부류의 사람인지, 유형을 알려주세용.
김학량: 큰 거 좋아하는 사람들
김학량: 재료를 혹사시키는 사람들
반이정: 재료를 혹사시킨다라...흠............ 김학량이군. ^_-;; 멀정한 콘크리트랑 철근을 사진촬영해서 혹사시킴.
김학량: ㅋㅋ
김학량: 재료를 혹사시키는 작가가 제일 싫어. 자신의 작업개념이 재료가 품고 있는 즉물적 언어구성력(이상한가? 이를테면 재료자체가 이미 인문적 상상력을 앞질러가는 경우가 있잖아. 임옥상 선생이 매향리 불발탄 주워다가 광주비엔날레 카페의 오브제로 ‘사역’시키는 경우, 불발탄은 이미 임 선생의 메시지를 달가워하지 않는 걸로 보이더라고)에 한없이 처지는 줄도 모르고 자기 ‘메쎄지’를 너무 쎄게 갖다 붙이는 버릇을 가진 사람들이 꽤 있지. 조각 같은 경우에 기계에 너무 의존해서, 전시장에서조차 그 생짜 기계굉음이 왱~왱~ 하며 가슴을 갉아내리는 경우, 이미 조형 자체가 나한테는 먹히지 않더라고.
지겹게 하는 얘기지만 지필묵을 매체로 작업하는 사람들이 정체성, 자연, 도, 우주, 자아 같은 수사를 거의 맹목적으로 활용하는 폐습은 제발 버렸으면 좋겠어. 물론 지금 대학 동양화과를 직장 삼고 있는 사람들이 제대로 가르쳐야 할 문제지만. 그 사람들의 매체순결주의는 꼭 유럽미국에 출몰하는 백색우월주의 같애.
반이정: 흔히 하듯 '김학량이 말하는 김학량'?
김학량: 으~. 게을러. 느리고. 무슨 일을 하든 뜸을 많이 들여야 해. 주변에서들 다그치잖아, 그러면 더 안 해. 또 소심하고 결단력 없지. 계약직 공무원을 쳐주는지는 몰라도 ‘전공노’에 속시원히 가담하지 못하는 것도 그렇고, 미술관 개혁하자고 목 내놓고 뎀비지 못하고 비실거리고 있는 꼴도 서글프고(나이 사십 줄에 들어서야 내가 ‘목구멍-포도청-역사’나 쓰고 앉았다는 걸 깨달았으니까. 요 며칠, 한국근현대사를 개관하면서 다시 정신을 좀 차렸는데, 식민지시대와 6-70년대에 내가 성인으로 살았으면 어떻게 처신했을꼬 계속 되뇌이며 반성, 또 반성 했다오. 나는 어땠을까? 모르겠어. 아무래도 난 비겁한 놈인 것 같애.
아무튼 나, 특히 내 행동과 내 글에 자욱하게 깔려있는 센치멘탈리즘을 조금은 걷어내고 싶은데, 그러자면 내가 존경하는 어느 후배(박아무개)가 7-8년 전 나한테 요구했던 것처럼 ‘교양’을 쌓아야 돼. 교양. 당분간은 ‘지식’(문화비평적 교양)을 통해서 세상 헤아리는 안목을 넓히는 작업을 해야 돼(거봐, 행동보다 지식을 먼저 얘기하잖아. 아마 나는 식민지시대 사람이었으면 민족주의 관점을 가진 실력양성론자였을 거야. 그러다 중일전쟁 이후에는 아마 변절했을지도 모르지. 그리고는 운 좋게 살아남아 해방정국에 가서는 최남선처럼 약간 변명 섞어 죄과를 인정하고는 은거하겠지).
- 잡스러운, 하지만 열라 궁금한 질문과 답
반이정: 실은 좀 예민하고, 센세이셔널한 질문을 막 던지고 싶엇지만 참았다. 그래도.... 하나 던져보면. 교수되고 싶진 않으신지요? 답하세요. -_-;;
김학량: 좋지
반이정: 좋아요?
김학량: 동양화과 실기교수. 생각 있다오.
반이정: 박사과정을 고려중인 걸 보니, 고려하고 있긴 한 모양이군요.
김학량: 교육문제가 제일 심각하거든'
반이정: 잘 될 거라고 봐요.
김학량: 소개줌해주. 서울대 동양화과 지금 뽑던데
반이정: 헌데, 동양화라는 매체에 형이 투신한들, 큰 변화가 가능할까요? 형의 안정적 직장 확보 이외의....?
김학량: 교육주체가 바뀌어야 해. 교육도 교육이지만 대화하고 소통하는 방식을 바꾸어야 해. 대학에는 대화가 없잖아. 억압과 굴종, 아니면 탈영뿐이잖아.
김학량: 이번 채팅하면서 느낀 건데, 평소 나 스스로 자문자답하는 버릇을 키우기로 했다오
반이정: 아 그래요? 좋은 버릇이네요.
반이정: 나는 자문자답 및 공상을 오랫동안 해 와서 이게 아주 생활이랍니다.
반이정: 좌우간 이틀동안 채팅하느라 수고하셨고, 담 주나 언제 포장마차 함 가자구요.
김학량: 합시다!
반이정: 예 그럼 들어가세요. 나도 좀 있다 퇴근할 듯
김학량: 끝
반이정: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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