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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zabel(2004-09-06 14:36:20, Hit : 1078, Vote : 287) 
 http://gelatinemotel.byus.net
 Eugene Richa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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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당했다는 사람은 없었다. 밖에서는 나에게 내가 사람들을 이용했다고들 하지만 그에 대해 답할 길이 없다."
오오...역쉬! 액기스들은 다르다니깡.   사람이 사람을 사진 찍으면서 원론적인 해답을 얻는다는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다시 확인.   기쁘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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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blog.naver.com/obrady00

* 편집자 주 : 이 글은 97년 다큐네트 주최의 '워싱턴 포토저널리즘 워크샵'에서 기록된 내용입니다. 국내에서 유진 리차드에 대한 높은 지명도에 비해 알려진 정보가 부족해 원고를 다듬어 새로 싣게 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유진 리차드는 1944년 메사추세스에서 태어났다. 노스이스트대학과 메사추세스공대에서 사진을 공부했다. 특히 그는 마이너 화이트 아래에서 수업을 받았다. 73년 <조그만 위안 또는 놀라움-알칸사스의 삼각주>를 출판했다. 74년 이후, 그는 프리랜서 사진가로서 <라이프>, <뉴욕타임스 매거진>, <게오> 등의 잡지사를 통해 사진을 발표했다. 79년부터 최근까지 매그넘 멤버로 활동했다. 지금까지 9권의 책을 냈고, 구겐하임상과 코닥상, 올해의 매거진 사진상, 캐논 포토그래퍼상 등을 수상했다. 그는 사진 인류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이며 다큐멘터리 사진가이다. 그는 최근 비디오저널리트로 활동 중이며, 그의 작품 <그날은 왔다>(USA /2000 /26min/Beta/Color/Documentary)가 전주국제영화제에 초청되기도 했다.





그는 25년간 사진작가로 일해왔다. 대학을 다니던 시절에는 베트남반전데모가 극심하던 때 였다. 그 역시 이 시위에 참여했고 체포됐다. 그는 시위대의 주요 인물로 많은 탄압을 받았다. 그는 데모를 주도한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고 수감되었다. 정부는 그에게 형을 삭감하는 대신 빈민들을 위한 사회봉사명령을 내렸다.

그가 처음 사진가로서 일을 시작했던 곳은 알칸사스의 작은 도시였다. 그는 이곳의 작은 신문사에서 사진기자로 일했다. 그는 이곳에서 가난한 흑인 농부들을 찍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사진의 실무를 배웠다고 한다. 취재원들에게 접근하고 그들과 친숙해지는 과정이었다. 중산층의 백인이었지만 그가 만난 사람들은 모두 흑인들이었다. 그는 개인적으로 당시에 찍었던 <묘지를 파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죽음과 유머가 섞여 있는 삶의 복잡성을 표현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는 알칸사스를 떠나야 했다. 그의 몸이 엉망이 되었기 때문이다. 흑인들을 우호적으로 다룬 그의 기사 때문에 KKK단이 신문사로 몰려와 폭력을 휘둘렀다. 그는 집으로 돌아와 자신의 주변을 찍기 시작했다. 이웃을 방문해 지금까지 모르던 사람들을 차분히 촬영했다.
직업이 없었기 때문에 그에게는 시간이 많았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당신 사진의 앵글이 이상하다"고 이야기한다. 이런 질문에 그는 양로원의 할머니를 촬영한 사진을 예로 든다. 할머니의 얼굴은 우측의 구석에 극단적으로 위치하고 있고 딸의 편지가 왼쪽에 걸려있다. "딸의 사진과 편지에는 '사랑해요'라고 쓰여 있었다. 그 딸은 2년 전에 그 곳에 왔었다. 할머니의 현재 상태를 표현하는 방법이다."

그는 젊은 시절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도로시라는 여성 저널리스트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그들은 함께 살았다. 도로시는 유방암에 걸려 있었다. 둘은 유방암에 대한 사진스토리를 제작했다. 도로시는 그에게 협력을 했다. 몇 년 후 그 둘의 생활은 정리되었다. 도로시는 결국 암으로 죽었다. 그에게는 유방암에 대한 완성된 사진스토리만이 남았다.





그는 <뉴욕타임스매거진>의 요청을 받고 아프리카의 모기로 인해 눈이 먼 사람들을 취재하기도 했고, 중국 청도의 농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취재하기도 했다. 그는 또 미국을 여행하면서 많은 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이 사진들은 매거진에 실리기 힘든 사진들이었다. 그는 "미국에서는 쉽게 사용할 수 없는 사진들이 많다"고 이야기한다. 예를 들면 "너무 뚱뚱한 사람이 나와도 실릴 수 없고, 흑인이 등장하면 잡지가 안 팔린다"고 한다. "동성애 부부와 아이가 등장해도 안 된다. 미국인들은 세계를 보는 눈이 그리 넓지 않은 듯 하다"고 한다. 그는 한 잡지사로부터 호스피스(죽어 가는 사람들을 간호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어 줄 것을 요청 받았다. 유진 리차드는 그 제의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잡지사는 그에게 작업이 끝나면 사진집으로 출판을 해주겠다고 다시 제의했다. 그는 호스피스에 대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가족들에게 "이 기록은 출판되어 많은 사람들이 당신들의 심정을 공감하게 될 것이다"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결국 출판사는 이 사진이야기의 출판을 거절했다. 현실의 고통은 독자들이 선호하지 않으리라는 것이 그들의 대답이었다. 결국 취재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이 실망하고 말았다.

유진 리차드가 세계적인 다큐멘터리작가인 동시에 저널리스트로 명성을 얻기까지는 그의 사진집 <코카인 트루, 코카인 블루>의 영향이 크다. 그가 코카인 문제를 시작한 것은 "많은 흑인들이 잡지에 눈이 가린 채 나오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는 "그들이 모두 범죄자처럼 보였다"다고 이야기한다. "이들이 어떻게 마약중독자가 되어 가는지 보여 주고 싶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최근에 나이지리아를 취재했다. 내전도 없고 기아도 없는 평화로운 농촌 마을에 관한 것이다. 또한 네브라스카의 작은 도시에 관한 사진 취재를 마쳤다. 그는 이 이야기들을 마무리짓기 위해 조용히 글을 쓰고 있다.





인터뷰

▷ 당신은 편집자와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

때때로 이들과의 관계에서 스스로 놀랄 때가 있다. 편집자들이 원하는 사진은 내가 찍은 사진과 전혀 다를 때가 있다. 아이를 찍는다면 편집자들은 아름답고 천진난만한 사진을 원한다. 버릇없는 아이들이 아니다. 그래서 그들과의 관계는 매우 어렵다. 거의 만족한 적이 없다. 그렇다고 내가 그것들을 표현하지 못해서는 아니다. 내가 저널리스트로 현장에 있으면서 느끼는 것을 단지 그들은 신문이나 잡지에 나왔던 비슷한 이미지라고 생각해 버린다. 예를 들면 나는 폭동 당시 한국인들이 LA에 많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미국인들 역시 폭동 당시에 한국인들이 미국에 많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편집인들은 단지 폭동에 대한 새로운 사진을 원했다. 그들에게 한국인들이 어떻게 되었냐는 관심이 없었다.

다큐멘터리는 과거를 기록한다. 사람, 일, 장소 등을 기록하고 더 나아가 사진가로서 그러한 일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현 세대의 저널리스트는 현장에 나가서 진실성을 전달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당신들의 사진이 다큐멘터리로서의 의미는 다를 수 있다. 코카인 사진을 찍을 때 단지 마약문제에 대해 기록되기를 원했지만 찍고 나서는 어떤 사람들은 시대를 기록한 것이라고 했다. 어려운 것이지만 결정적인 것은 사진가가 표출하려 했던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 당신은 어떻게 취재대상을 찾아내고 그들에게 접근하는가?

그것은 시간의 문제이다. 내 방법은 늘 비슷하다. 하루 밖에 시간이 없다면 급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시간이 있다면 천천히 진행하는 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 사진에 표현하는 것이 있다면 그 것이 좋은 방법이다. 망원렌즈는 좋아하지 않는데 그것을 쓸 때마다 취재대상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듯 하고 마음이 편치 않다.

모든 사람들이 친구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우선 그들에게 사진을 찍기 위해 왔다고 밝힌다. 어떤 사람은 흔쾌히 친구가 되기도 한다. 그들과 많은 이야기를 하고 인터뷰를 하기도 한다. 그리고 사진을 찍지 않은 채 그들에게 집이나 직장에 함께 가지고 제의한다. 그들이 나를 잊었을 때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그 때 사진이 잘 나온다. 대충 그 과정은 만나서 악수하고, 말하고, 커피도 한잔하고 나면 약 2시간 정도 흐르게 된다. 코카인에 대한 사진도 그와 비슷하다. 이때는 약 3주가 지난 후였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고 그들은 자신의 처지를 이야기하고 싶어했다. 그들은 어떤 때는 나의 존재를 잊기도 했다. 그것은 믿음이 필요했다. 모든 상황에는 그들만의 문화가 있기 때문에 나는 그것들을 깨뜨리기 않기 위해 노력했다. 예를 들면 내가 아프리카에 맹인들을 취재하러 갔을 때 그들은 무슬림 이었다. 그들은 남녀간의 접촉이 많은 편이 아니었다. 내가 다시 그곳으로 같다면 남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만일 강제로 사진을 찍겠다면 몇 장은 건지겠지만 다시는 그곳으로 갈 수 없다.

▷ 당신은 다큐멘터리사진가로 경제적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

잡지사에서 요청이 있으면 하고 그렇지 않으면 글을 많이 쓰는 편이다. 이렇게 워크샵을 하기도 한다.(그는 이번 워크샵이 사진을 시작한 후 3번째라고 한다.) 나는 사진을 많이 팔지 못하는 편이다. 최근 들어 보조금이나 기금을 타는 행운을 얻기도 했지만 그것이 큰 도움을 주는 것은 아니다. 별로 기대를 하지도 않는다. 돈이 많으면 돈을 많이 쓰게 된다. 가족이 내 생활을 이해하고 보살펴 주는 것은 행운이다. 그러한 것이 없다면 나는 창조성을 잃고 말 것이다. 부인에게 감사하고 있다.(믿을만한 관계자의 이야기로는 그의 1년 수입이 3만 달러 내외라고 한다.)

▷ 코카인에 대한 시진을 찍을 때 어떤 점이 어려웠나?

나의 사진에는 중화기를 들고 있는 사람이 있다. 나는 그 사람을 취재하면서 처음 보았다. 아마도 그는 내가 그곳에서 취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 했다. 그는 나에게 자신의 사진을 찍어줄 수 있겠느냐고 제안했다. 그는 아마도 사진이 공개되어 경찰과 맞붙어볼 심산인 듯 했다. 그는 경찰과 싸워서 영웅처럼 죽고싶어 했다. 그는 내 사진집에서 유일하게 경찰에 체포되었고 지금은 감옥에서 형을 받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사진집을 보고 나에게 마약을 했냐고 묻곤 한다. 실제로 취재 중 어려웠던 것은 사람들이 나에게 마약을 권한 것이다. 실제로 나는 10년 전 크랙을 해보았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하며 거절했다. 사실 마약을 거절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진짜 어려웠던 것은 어린 창녀들이었다. 그녀들은 상처받았고 나에게 친근감을 보였을 때 뿌리치는 일은 어려웠다. 더욱이 그녀들이 마음에 들었을 때는 참기 힘들었다. 일하는 것 때문에 그러한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고통이었다. 끊임없이 스스로 일을 하고 있다고 자각해야만 했다.





▷ 코카인에서처럼 사진집이 출판되면서 취재원이 공개되어 문제가 된 것은 없었나?

그러한 일은 없었다. 오히려 긍정적인 반응이 몇몇 있었는데, 마약 사용을 중지한 것이다. 책표지에 나온 여인은 책을 받아보고 울었다고 한다. 자신의 비참한 모습 때문이었다. 그녀와 그녀의 남자친구는 마약을 끊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나 하면, 나는 내 아들과 크리스마스날 가난한 사람들을 방문하고자 했다. 그날 나는 카드를 받았는데 그 안에는 20달러가 들어 있었다. 아들에게 주는 돈이었다. 그 카드에는 마약을 끊은 것에 대해 감사하고 있었다. 이 카드는 바로 표지에 나왔던 여인이었고 그녀는 지금 웨이트리스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은 교육적인 측면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 당신은 소외된 사람들을 찍으면서 그들을 이용한다는 생각을 해보지는 않았는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오직 그 사진에 나오는 사람들이다. 나는 사진을 찍고 나서 사람들에게 프린트를 보여주거나 출판된 잡지를 보고 준다.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몇몇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았다. 코카인을 찍으면서 만났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 역시 이 사진이 진실을 표현했다고 했다. 그것이 이용했느냐, 아니냐는 질문에 대한 해답이다. 이용당했다는 사람은 없었다. 밖에서는 나에게 내가 사람들을 이용했다고들 하지만 그에 대해 답할 길이 없다.

▷ 당신은 어떤 카메라테크닉을 가지고 있는가?

나는 별다른 카메라테크닉을 가지고 있지 않다. 장비 역시 간단하다. 카메라가 크면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게 된다. 나는 때때로 카메라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잊고 빌딩에서 떨어뜨리기도 하고, 차에 부딪혀 깨뜨리기도 한다. 지금은 올림푸스에서 나온 사진기를 쓰고 있다. 크기도 작고 소리도 작다. 리와인드 소리가 요란한 카메라는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소리를 내는 것은 정말 싫다. 나이가 들면서 포커스를 맞추기 위해 오토포커스가 필요해 졌다. 프레쉬는 비비타를 사용하다. 프레쉬에는 카드를 끼우고 천장에 바운스를 한다. 필름은 트라이-엑스를 사용하는데 이유는 넓은 관용도 때문이다. 사소한 실수를 용서한다.





▷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사진가는 누구인가?

나는 예전 사진가들을 좋아한다. 그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고, 나 역시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들은 유진 스미스, 로버트 프랭크, 루이스 하인이다. 이들은 아마도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진 사진가들이지만 가장 미국을 사랑한 사람들일 것이다.

▷ 당신의 인생에 영향을 미친 사람은 누구인가?

지금까지 만난 여성들이다. 지금은 아마도 내 아들일 것이다. 내가 실직했을 때 만난 도로시는 나를 이해해주었고 많은 도움을 주었다. 지금은 직업도 있고 먹고 살만하고, 내 인생을 이해해 주는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다.

▷ 당신은 포토스토리를 만들면서 기승전결의 구조를 가지고 작업하는가?

그렇다. 하지만 늘 변한다. 첫날 취재에 대한 아웃라인을 만들어 본다. 하지만 노트는 계속 수정되고 이야기는 변해간다. 때때로 프로젝트가 완성될 무렵에는 뒤로 물러서서 만들어진 이야기를 보면서 절망하곤 한다. 언제나 빠뜨린 것이 있기 때문이다. 가장 필요한 사진이 없는 것이다. 어떤 때는 이야기가 끝날 무렵에야 전개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발견한다. 이때마다 편집자에게 어떻게 거짓말을 할까 고민하는 것도 익숙해진다. 코카인에 대한 사진을 요청했던 라이프의 편집자는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물어왔다. 나는 3주 동안 전혀 사진을 찍지 못한 상태였다. 하지만 나는 아주 잘 진행되어가고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 1주일만 있으면 끝난다고도 했다.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아마도 그 일은 중단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편집자는 내 사정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편집자의 역할이다.

▷ 당신이 사진을 촬영할 때 사용하는 노하우를 공개해 달라?

사람들은 브레송이 순간적인 찰나를 포착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의 사진은 기다림의 결과이다. 예를 들어 사진을 촬영할 때 단렌즈를 가지고 움직이지 않은 채 손목만을 이용해서 앞에 있는 피사체를 한롤 모두 찍어보라. 프레임 가득 피사체가 들어올 수도 있고 피사체와 주변의 환경이 들어 올 수도 있다. 수많은 앵글로 만들어진 사진을 밀착해 보라. 그러면 당신은 얼마나 창조적으로 사진을 찍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사진가가 된 후 나는 사람들을 보면 그의 뒷사람, 오른쪽, 왼쪽사람을 재빨리 볼 수 있었다. 사진은 결코 우연히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피사체가 가진 감정을 읽을 수 있어야 하고, 빛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환경이 어떤 의미를 뜻하는지 알아야 한다. 브레송의 사진은 우연이 아닌 시간의 투자와 노력에 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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