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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zabel(2005-09-26 20:33:41, Hit : 1244, Vote : 290
 http://gelatinemotel.byus.net
 chapter 1 ; 최민식 사진

(
'.
한국에서 사진찍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위한 첫번째 장.   메이드 인 코리아의 사진이라 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분중 하나.   한국인과 외국인의 같은 공감대와 감상이 나오기 가장 힘든 사진.   공감대라는 것이 얼마나 토양의 영향을 많이 받으며, 자국 시민들과의 갭이 왜 흐르는 시간만큼 깊어가는가에 대한 정체를 궁금케 하는 작가.
다른 분들의 생각이 궁금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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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human-photo.com


작가노트

나는 평생을 가난한 사람들과 그들의 삶을 촬영해 왔다.
나의 사진 속에 등장한 그들은 가난하지만 따뜻하고 인간적인 순수함을 지니고 있다.
나는 나의 사진을 통해 인간적인 감정을 표현해냈으며, 그것이 순간포착으로 뒷받침되고 있다.
나의 사진 속에서 삶의 진실을 발견할 수 있도록 노력해 왔으며, 사진과 삶에 새로운 경지를 열고 차가운 비판과 따뜻한 고발성의 비판을 나타낼 수 있도록 고민 해왔다.
한 점의 사진을 말하는 것은, 그저 찍힌 사실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볼 때마다 깊이가 있어야 하며, 감동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사진작업과 인생과 예술적 포부가 하나의 조화를 이루어져 나타나 있어야 한다.
사진 작업을 할 때에는, 사진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회답을 얻고자 해야 한다.
그리고 '사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사진은 관념이 아니라 살아있는 존재임을 명심하자.

남들이 지나가는 말로「사진은 왜 하는가, 돈도 안 되는데」라고 하지만 지금까지 돈을 위한 사진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내 인생에 오직 하나의 행운이 있었다면, 이는 아마 내가 독학으로 사진에 미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겪어 왔고 아직도 나를 조롱하는 모든 불행에 대해 신에게 감사하고 싶은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나는 마치 사진만이 나를 구원해 줄 수 있다고 여겼으며, 사진이 곧 나의 삶이고, 삶이 곧 사진이 되어 왔다. 솔직히 사진은 나에게는 종교 이상이다. 내가 일생동안 찍어온 사진의 역사는 바로 나 자신의 삶의 느낌을 정직하게 전하려 한 것이다.

나의 눈은 항상 낮은 데로 향해 있으며, 나의 평생을 함께 해 온 카메라의 렌즈 또한 한없이 낮은 데로 치열하게 움직여 왔다. 목숨을 걸고 소외된 이웃만을 카메라에 담아 온 것이다. 나를 이처럼 만든 계기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1955년 일본에서 본「스타이켄」의 <인간가족> 사진집이다. 그 책은 나에 엄청난 감동을 주었고, 나는 오래 기다리던 소식이 당도한 것처럼 사진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이것이 내게 닥쳐올 일들의 희미한 서막임을 감지했다.

짓밟힌 꽃에서 풍겨나는 향기가 더 진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힘들고 소외된 인간들에게는 가진자에게서 느낄 수 없는 삶의 깊은 고뇌와 철학이 있다. 바로 그들을 주제로 10권 이상의 사진집을 발행했고, 그 속에 등장한 인간군상들에게서 가슴 저미는 삶의 향기를 느낄 수 있도록 노력했다.

나의 사진 찍기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의 존엄성과 인류 평화에 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나의 힘이 미치는 한, 우리시대에 함께 호흡하고 있는 민중전체를 사진에 담으려 하고 있다. 그리하여 후세에 내가 살아간 시대의 전체적인 사회 구조가 이러했다는 역사적 증언으로서의 기록을 남기리라 마음먹은 것이다. 이것은 사진가로서 가지는 나의 역사의식이라 생각한다. 나의 사진은 사회적 성격과 함께 철학적 성격을 띠고 있으며, 현실성과 영원성이 대립되는 양극의 세계를 하나로 통합하고 있는 것이다.

사진가의 길을 가면서 의식주를 해결하기가 무척 힘들었다. 생활을 내팽개치고 사진만 찍으러 다니는 가장을 좋아할 리 없다. 사회 고발적 측면을 강조한 사진 때문에 유신과 군사독재 시절에는 곤욕 깨나 치렀다. 이러한 오랜 수난들은 집안을 빈털터리로 만들고 말았다.바로 그 무렵 누군가가 나에게 구원의 손길을 주었다. 나의 작가정신과 인간정신 탐구를 지켜봐 온 카톨릭 쪽에서 나의 인간가족 탐구를 지원하고 나선 것이다. 경북 왜관소재 분도 출판사의 독일인 임 세바스틴 신부가 나의 사진집 「인간」 4,5,6,7,8집 모두 도맡아 출판해 주었다. 임 신부의 경제적 지원은 시대상황 때문에 극비로 이루어 졌으며, 정신적인 격려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사진은 어떤 휴머니즘적 몫이라고 나는 항상 생각해 왔다. 나는 늘 가난한 사람을 순간 포착한다. 그것이 내 생명력의 힘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가난 속에서 행복을 느끼고 있다.
나의 사진을 들여다보면 우리가 이미 겪었던 일과 지금 겪고 있는 일, 그리고 무엇으로도 감출 수 없는 상처가 묻어난다. 나의 사진 속에는 활자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숨쉬고 있다. 나는 누구보다도 평등한 애정으로 지극히 휴머니즘적 입장에서 우리들 가슴속 깊이 무엇인가를 새겨 주려 한다.
나의 사진은 예술적 감동보다도 사회적 문제를 지닌 인간과 그들의 삶을 앵글에 담고 있다. 서민들의 사진은 지울 수 없는 우리의 영원한 삶의 전부다. 서민들에 대한 고뇌를 가진 사진가 만이 진실한 창작의 소유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 마음이 곧 사진가의 정신이다.

진정한 리얼리즘 사진가로서 나는 어떤 것에 대해서도 눈을 감을 수 없다. 사진창작은 무엇을 결과로 남기는 것인가? 사진이 사회비판을 하지 않으면 대체 무엇을 추구한다는 말인가? 나의 사진은 이러한 물음에 대답하고자 노력해왔다.
표현하고 싶은 것을 찾아 열중해 왔으며 후미진 곳을 외면할 수 없었다. 내가 가질 수 있는 훌륭한 그 특성이란 대상을 보고 본질을 찾아내는 능력이다. 인간이 머무는 곳은 나의 사진영역이며 인생 그 자체가 소재인 셈이다. 사진이 예술이든 아니든 아무래도 좋다. 사진을 감상하는 사람이 사진을 통하여 무엇인가 공감한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사진가는 그 시대에 있어야 한다. 따라서 그 시대에 있지 않게 되면 자연히 사진 적인 작품은 존재치 않을 것이 분명하다. 어디에 가더라도 같은 인간은 없으나 어디에 가더라도 인간은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꾸민 것, 느껴지지 않는 것, 가식적인 것을 부정한다. 삶에 보다 깊이 감동되면 될수록 사진작업은 더욱더 힘있는 것이 될 것이다.
"아아, 나는 지금 이곳에 살고 있다." 나는 창작할 때 이렇게 실감한다.
내 사진의 태반을 차지하는 가난한 사람들 ..... 지울 수 없는 얼굴들이다. 나의 인생을 사진에 꽉 차게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나의 사진은 생명체의 요소를 지니고 있다. 어린 시절과 청년시절의 험난한 체험이 바탕이 되어 있다. 내가 민주화를 위해 뛰어 들 때는 사진도 투쟁적이었다. 작업을 위해 나는 미쳐야 했고, 소명의식을 가지고 날마다 투쟁을 벌이는 창작의 인간으로 정립되고자 했다.

이름 없는 서민의 표정이나 모습에서 생생한 친밀감을 느낀다. 인간을 주제로 하는 까닭은 사진이 사람과 사람을 잇게 해서 인간적인 조화를 이루게 하는 것이다.
나는 사진을 통하여 좀 더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어 휴머니즘적인 정의사회를 만들어 보려는 신념뿐이다. 아마 앞으로도 그렇게 나의 길을 걸어 갈 것이다. 그것이 외로운 길일지라도......

어떻게 '내 의무를 다하면서 그들을 위하여 창작을 계속해 나갈 수 있을까?'를 항상 생각하고, 허튼 수작으로 시간을 낭비할 수 없게 하는 절대적인 빛이 있다고 자부하며, 가난한 그들과 함께 살다가 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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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홈페이지 제작팀이 사이트제작에 관련된 취재를 위해 최선생님을 만나 뵌 것은 2001년 겨울
어느 날이었다.
그때까지 제작팀원의 대다수는 사진이나 TV를 통해서가 아닌 실제 최선생님과의 대면은 없었던
상태였다.

어느 동네에나 있을법한 좁고, 평범하고, 특별할 것 없는 골목을 구비구비 지나쳐 그 골목만큼이나 평범하고 낡은 집에 도착했다.
처음 뵙는 최선생님께 인사를 드리고 그렇게 우리가 안내된 곳은 최선생님의 서재였다. 그 곳엔 온통 벽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빽빽하게 책이 들어차 있었다. 벽의 책장은 물론이고 마땅한 자리를 찾지 못한 책들은 바닥까지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방대한 양의 책과 LP판이 보관되어 있었다. 언뜻 느끼기엔 사진작가의 서재보다는 어느 소설가의 서재쯤이 더 편하게 연상되는 느낌이었다.   모두가 자리를 잡자 최선생님은 직접 과일이며 따뜻한 차를 내오셨다.

그리고는 최선생님과 홈페이지 제작팀의 취재 및 사이트에 올려질 작품을 선별하는 회의가 시작되었다.
"선생님의 사진은 인물사진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제작팀원 중 일원의 질문에 최선생님은 대답을 이었다.
"본질에 들어가서는 결국 인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회의 모든 중심이 인간의 문제이며 제 사진은 인간의 평화, 빈곤의 추방이 목적입니다.
비숍(Wernet Bischof), 유진 스미스(Eugene Smith) 그리고 최근의 살가도(Sebastiao Salgado)와 같은 작가들도 모두 인간사회에 대한 비판을 중심으로 하고 있죠.
풍경사진 조류사진, 누드사진은 팔리는 사진이지만 다큐멘터리 사진은 저널을 통해 발표하여 알리고 함께 느끼는 것을 목적으로 하죠.
물론 국내의 경우 이러한 사진을 발표할 수 있는 책이 너무나 빈곤합니다. 그리고 힘들게 발간한다 하더라고 팔리지를 않고요.
그러다 보니 다른 나라의 작품을 가져 다 쓰게 되고…
이렇게 되니 자연히 국내 다큐멘터리 작가들의 성장이 어려워지게 됩니다."

내가 이전까지 지녔던 최선생님에 대한 선입견 중 하나는 그토록 고집스럽게 사진을 찍어오신 걸로 봐서 대단한 자기만의 프라이드와 프로페셔널한 기질로 무장되어 있을거라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최선생님은 자신의 사진이 단지 '인간의 평화와 빈곤의 추방'이 목적이라 대답했다.   그리고 최선생님의 이야기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능성 있는 젋은 다큐사진가들이 사장되어 가고 좋은 사진이 있지만 알릴 수 있는 매체가 너무도 부족한 현실에 대한 비판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져 갔다.
나 또한 선생님의 이야기들은 듣고서야 알게 된 사실들이었지만.. 년간 수십개에 이르는 사진 공모전이 치뤄지고, 각종 광고이미지들이 도배되며, 세계적인 사진 기자재 소비국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제대로된 사진저널리즘 매체 하나 없다는 사실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인 듯 싶다.
또한 이러한 현실 속에서 사진을 해온 선생님은 스스로 생각해도 참 신기할 따름이라 하신다.

"선생님의 홈페이지를 통해 선생님의 사진을 공식적으로 처음 공개하게 되었는데요 느낌이 어떠신지요?"
"나는 인터넷을 잘 몰라요, 해보지도 않았고, 본적도 없으니…." (일동 웃음)
실제로 최선생님의 집엔 그 흔한 컴퓨터는 말 할 것도 없이 운전면허, 휴대폰도 없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짧은 대답을 끝으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최근 인터넷을 중심으로 하여 사진에 관심이 많은 아마츄어들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카메라도 많이 보급되었구요. 사진을 취미로 하거나 관심이 많은 순수 아마츄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오늘날 사진은 하나의 상식입니다. 우리의 경우 정서가 많이 매말라 가고 있습니다. 대학강단에 섰을 때에도 그걸 많이 느꼈구요.
사진을 통해 우리의 정서도 쌓아 갈 수 있고 멋진 취미생활도 될 수 있지요. 그리고 독학으로도 열심히만 한다면 예술이 될 수도 있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시작하는 것 같아요. 사진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인생을 누릴 수가 있는 거죠.
최근엔 배우기 쉬운 기본적인 기능만 배운다면 누구나 쉽게 사진을 찍을 수가 있어요. 무료강의나 배울 수 있는 기회도 늘었구요.
문제는 무엇보다 흥미를 가져야 한다는 거죠.
사진뿐만이 아니라 모든 것이 스스로 재미를 느끼고 진정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면 되질 않는거죠.
사진은 대단한 매력이 있어요. 누구든지 쉽게 할 수 있고…
접근 방법이 다른 장르의 예술에 비해 아주 친숙하다는 잇점이 있죠.
자신의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배울 수 있어요."

"오랜시간 촬영을 하시면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들려 주시겠습니까?"
"에피소드라면 많죠. 첫째로 워낙에 여기저기 많이 걸어다니니까요.
하루에 이만보, 삼만보는 보통이구요, 여기서 삼량진까지도 걸어간다니까요.
그냥 걸어가라면 누가 걸어가겠어요. 사진찍으면서 가는거니 걷는거죠.
요즘은 좀 덜하지만 60년 이전에는 간첩신고가 상당히 많았어요.
자갈치, 서울 남대문, 역전, 동대문 시장에서 빈민들을 촬영하다 보면 수상하게 여기고 신고하는 일이 많았어요. 그러면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조서를 받기도 하죠.
요즘에야 전화만 해보면 되지만 예전에 강원도에선 세네 시간동안 붙잡혀 있기도 했어요.
줄잡아 간첩으로 오인 받고 신고 당한 것이 100번은 되니까요. 멱살도 잡히고… 허허..
군사정권 때에도 고초가 특히 많았죠. 예전엔 삼청교육대 명단에까지 올랐으니까요.
다행히 인원이 다 채워져서 면할 수 있었지만요…"

젊은 내게는 생소한 이야기이지만 과거 강압적 정권의 관점에서 본다면 최선생님의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의 사진은 결코 달가울 리 없는 사진이었을 게다. 모두가 마냥 잘 살고 행복한 모습인양 포장되길 강요 당하던 때에 그런 사진이 환영 받을 리 만무했을 테니 말이다.
한번은 선생께서 독일 전시회 때 전시했던 사진이 어떤 이유에서 인지 이북으로 넘어갔고(스파이들에 의해 몰래 촬영되었을 거라고 그냥 추측할 따름이다.) 그 사진이 다시금 서울의 정보기관으로 넘어가 그 곳까지 불리어 간 일도 있었다고 한다.
그 밖에도 강압적인 정권 시절 최선생님과 그 주변의 많은 이들이 겪은 고통이란 끝이 없는 듯 했다.
젊었던 시절 6.25에 참전하여 훈장까지 받았던 (실제로 취재도중 6.25참전 때 받은 화랑무공훈장을 우리에게 자랑스런 얼굴로 내보여 주시기도 했다.) 분이 또 어느 순간엔 국가 이적자로 내몰리기도 한 것이다.
우리 취재팀은 '인간의 평화와 빈곤의 추방'을 위해 사진을 찍는다는 한 예술가의 순수함이 또 다른 이들에게는 이처럼 사상이나 이념의 도구로 이용되고, 또 그로 인해 수많은 고초를 겪어야만 했음이 너무도 안타깝게 느껴졌다.
그저 여러곳을 떠돌며 겪은 흥미로운 에피소드 정도를 들어볼 요량으로 던진 물음임에도 최선생님이 들려준 에피소드는 단지 이야기거리 임을 벗어나 우리 모두가 되새김질 해야만 할 아픈 현실로 다가 왔다.

"선생님께선 제일 처음 사진을 시작하시게 된 계기가 어떻게 되시는지요?"
다음 질문이 이어졌다.
"일본에 갔을 때였죠. Family of Men (인간가족전, 1955년, 에드워드 스트라이켄) 전시회를 보게 되었어요.
이걸 보고 감명을 받아 일본에서 헌 카메라를 구입해 사진을 시작하게 되었죠. 그리고 2년 후 귀국을 해서 본격적으로 사진을 시작하게 되었죠."

최선생님은 대답에 이어 책장의 책들 가운데 한 권을 뽑아 오셨다.
'Family of Men'이었다. 그리고 책장을 하나하나 넘겨가며 사진들을 소상히 설명해 주셨다.
한 눈에 선생께서 특별한 애정을 가진 사진들임이 느껴졌다.

"이 사진들을 접하고 감동을 받은 나머지 일본에서 헌카메라를 구입해 처음 사진을 찍기 시작했죠.
그리고 2년 후 귀국을 함과 동시에 본격젹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죠. 지금 생각하면 가난한 사람들에 소재를 맞춘 것은 내 자신도 어려서 가난을 겪었지 때문에 이러한 사진을 찍고 싶단 생각을 했던 것이겠죠.
내가 만일 부잣집 아들로 태어났더라면 이런 전시회나 책엔 관심도 갖지 않았겠지요, 깨끗한 것만 보려 들었을 테죠."

"선생님께서도 좋아하는 다른 작가가 있으시리라 생각됩니다. 개인적으로 어느 작가의 사진을 좋아하시는지요?"

"워너 비숍, 세바스티앙 살가도, 유진스미스, 카슈 등의 몇몇 작가를 좋아합니다."

최선생님은 또다시 책장으로 다가가서 살가도, 비숍, 카슈 등의 사진집을 뽑아오셔서 선생께서 인상깊었던 사진들을 하나하나 설명해 주셨다.

"사진하는 사람들이라면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의 사진집을 구입해 철저하게 공부할 줄 알아야 해요."

대략의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최선생님은 젊은 우리들에게 '보람있고 열심히 살기 위해 지금부터 고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진솔한 충고도 아끼지 않으셨다.
취재를 하는 동안에도 최선생님께선 어린 우리들에게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일관되게 존칭을 사용하셨다. 오히려 우리들이 불편해 '말씀을 낮춰 주세요'라고 몇 번이나 부탁 드렸지만 전부터 최선생님과 친분이 있는 문진우 선생님을 제외한 우리들에게는 끝까지 말씀을 낮추지 않으셨다. (당시 취재 중이던 제작팀원은 문선생님을 빼곤 모두 대학생의 신분이었다.)
지금도 낮 시간에는 촬영 때문에 댁을 비우신다는 최민식선생님…
사실 나는 다른 이들로부터 최선생님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
'이제 그만하면 없는 사람들 사진은 그만 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 '이제 우리나라도 풍요로운 환경이 되었으니 풍요로운 사람들을 기록해야 하지 않겠느냐', '우리나라에 헐벗은 사람이 없으니 이제는 인도까지 넘어가서 사진을 하는 것 아니겠느냐' 하는…
하지만 감히 장담하건데 (비록 내가 그 분을 실제로 뵌 것이 단 한번뿐이라고 해도 이것만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내가 만난 최민식이라는 사진 작가는 이 지구상에 단 한사람의 굶주린 이가 남아 있다면 틀림없이 그를 찍고 있을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 세상 어딘가에 굶주리고 고통을 겪고 있는 마지막 한 사람이 사라지는 순간까지 결코 셔터 누르는 일을 멈출 이가 아니라는 것이다.

최선생님이 지금껏 찍어온 오래전 우리들의 모습들은 오히려 젊은 우리들에게 더더욱 가치로운 모습으로 다가오는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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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abel (2005-10-20 13:15:40)  
호불호의 문제를 따진다면 좋아할;수밖에 없는 분이지만, 그렇기에 좀더 완전한 작업으로서 자리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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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주리는 것이 고통에 다름 아니라는 선입견부터 바꿔야지 않을까란 생각. 하층민의 삶을 이미지화하고 싶다면 그들에게 자신의 사진을 어떻게 보여야 하는가를 깊게 괴념해야하지 않을까. 더불어 내가 만든 그들의 이미지를 어떻게 유통함에 대한 윤리의 단락도 유념해야함을. 사진의 방법이야 다양하고 그것의 해석들도 수갈래의 단초가 있겠으나, 자신의 사진이 말하는 바는 만든 이가 똑똑히 목도해야할 터. 작가가 저작물의 모든 파장에 대해 책임질 순 없겠지만 자신이 애정을 가지고 촬영했다는 대상들이 드러나는 지표들에 대해서도, 역으로 피사체들이 애정을 가질 수 있을런지. 더불어 세계 평화를 이런 사진들이 어떻게 구현가능한지에 대한 분명한 코멘트도 필수일 것이다. 진정으로 사진을 아낀다면, 남의 가난을 팔아 유명해 졌다는 자기 딸아이의 비난을 이겨내야지 않겠는가.

또한 사진을 보는 사람들 개별에 대한 측면도 함께 고려해야한다는. 외국의 평자들이 본다면(아마도) 시선의 따뜻함이나 서구의 접근과는 다른 신선함의 가치를 높게 보겠지만, 반도 사람들이 그 사진에 대해 같은 감상을 가질린 만무하지 않겠는가. 딱히 사진이 아니어도 이미지의 신선함이 중요한 지점일 수밖에 없다면 한국인들의 반응은 어쩔 수 없는 문제라 본다. 소외/가난에 대한 작가의 개념이 모호해 보이는 것도 가슴 아프다. 보여주는 것만으로 작가 존위의 문제가 모두 해결되지는 않을테니. "역사적 증언"으로서의 사진이어야 한다면 "낮은 데"만을 바라봄에 대한 이유가 선명해야 한다.
인도 사람들이 왜 소외된 자들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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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rker (2005-10-20 21:02:51)  
"남의 가난을 팔아 유명해 졌다"는 딸의 폭로는 가히 슬프기만 하군요. belloq, arbus, lang ..등등, 또한 이 딸의 명제에서 벗어날 수 없으리라 봅니다.

"인간평화와 빈곤의 추방" 이라는 지금은 낡은 죽은 촌스런 표어를 아직도 자신 작업의 삶의 구도로 서슴없이 얘기 하는 모습은 진정 현장을 냄새 맡는자 천사(메신저)의 모습입니다.그에게 있어서 가난은 국가와 정치와 이념을 초월한 정말 배고픔 그 자체입니다. 그는 한국인을 찍은 것이 아닌 배고픈 인간입니다. 그의 말 "어디에 가더라도 같은 인간은 없으나 어디에 가더라도 인간은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처럼 그는 한국인이 아닌 인류라는 큰 집합 안에서 움직였다고 생각됩니다. 언제나 악은 선(우리가 말하는)에 의해 생산됩니다. 종교는 있지도 않은 마귀를 생산해 자신의 신성함을 이념은 적을 그러나 그의 사진엔 적도 마귀도 없습니다. 그는 어느 종교인보다 투명하고 촌스러우며 순진합니다.

숲을 지키려면 우선 그 곳의 나무를 베어 움막을 짓고 살지 않아야 할까요? 그 또한 가난하기를 바라는 우리의 객관의 관찰자적 스페탁클한 인간극장식의 신화 윤리가 미운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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