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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syvenus(2005-09-14 20:50:51, Hit : 926, Vote : 210
 사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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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일간 다른 도시에서 손님이 오셨기 때문에 모니터 앞에 부재중.죄송












자벨님의 진지한 답변 잘 읽었습니다. 반박의 진원을  짚어내려는 포커스보다는 그에 먼저, 자벨님의 글 전반을 제가 깊이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기를 노력하며 진지하게 읽어보고 또 생각했고 그에 따르는 제 답변이란 어떤  공격용 '비난'이 아닌 진지하고 적확한 답변이자 또 껴안을 수 있는 생각의 표현인 것이어야 할까 고민했습니다.자벨님이 위에 답변속에서 발견케 되는-삿대질 비난 폭압스레 등의 표현들은 어쨌거나 그러한 모티브를 제공케 된  저를 반성하게 합니다. 죄송합니다.


전 가끔 자벨님께 전화를 드립니다. 밤이 새도록 공박은 고사하고 초저녁에 만나 술한잔도 못 기울이는 상황에서 자벨님의 퉁박들과 텍스트와 철학들이 마찬가지로 저를 때때로 상처하게 하며 그것이 아마 자벨님의 참 맥락은 아닐 것이라는 믿음에서 또 제가 제기했던 문제'들의 불완전한 전달이 오해하는 해석을 초래할수도 있다는 일말의 근심에서, 그런 작지만 결국 이는 현재의 상황에서 허락된 서로 철학의 교류의 방법일수밖에 없다는 전제하에서 이를 확인하고 설득하고 둘이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안부를 묻고 싶은 전화에 숨은 또 하나의 기대도 될 것입니다.

칠린스키라는 교수를 만나서 처음 몇 번 제 그동안의 한국에서의 작업들을 보여주고 이런 저런 대화를 주고 받다가 그러더군요, 지난 주내내 당신 작업을 생각했어요(그는 항상 존칭 Sie로 말합니다) 그러다가 옹천역에서 있었던 대형 폭팔사고보도를 접하고 나면서부터는 당신의 사진들이 떠올라 잠을 잘 수가 없었다고 말하면서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냐고 그 답지 않게 좀 막연한 물음을 제게 던지던 군요.저는 '사건'에 촛점을 맞춰 대화를 풀어나가고자 했고 그것은 재현과 리얼리티에 대한 순진한 착각에 빠져있었던 제가 택한 '기억에 의존하고''언어의 환원과 질(들뢰즈)책'으로 사진을 수식하는 교육받은 방법, 강요하는 전술, 신화에 의존하고 또한 허사를 空이라 부르지 않고 신에 의지하고 또한 그 자신을 신에 귀속시키는 거의 자동적인 반사半死였습니다. 당신은 한계(die Grenze)를 보고 있어요 당신은 한계를 보고있어요 당신은 한계를 보고 있어요 이 말은 그 후 내내 제 화두로 머리에 박혀 떠나가질 않았고 나는 이 단어를 제한,경계 등의 의미로 해석하나 이 단어가 위치한 특이한 맥락과 역사와 상황을 파악하기엔 부족이 많[았...(을 것이다)]고 비트겐슈타인이 말하는 die Grenze 푀르스터가 말하는 die Grenze 랭보가 말하는 die Grenze...어떤 출처에 기생해보아도 그 한계란 풀이될 수 없는 명징하게 앎삶을 수 없는 의미였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말은 제 사진에 대한 경험해보지 못한 최악의 지독한 비판이자 최고의 찬사였기 때문이며 ㄴㅏ(the man who write now)는 ㄴㅏ( I ) 가 처한 제한을 관찰할 수 없고 또 진술할 수 없기 때문이며 그것은 오직 ㄴㅏ(der sich  jetzt schreibt)가 독일어로 명명하고 있는 ㄴㅏich 로 소환되어 그 ㄴㅏ(the man who write now를 진술할때에 즉 ㄴㅏ( i )가 혼연일체(ㄴㅏI +ㄴㅏthe man who write now+n, ㄴㅏ) 의 신화를 의심하고 불화할 때만이 해독되고 '발굴'되어 지는'나의 살던 고향'이었고 그-ㄴㅏ(the man who write now)가 포획한 ㄴㅏ( I )가 마침내 다른 언어의 목소리로 말하는 최초의 저항 경계의 부각, 제한의 확인 -메타적 말하기의 일종의 출발,폭탄이었습니다.      

'다른 작가들의 작업에 대해 제가 퉁박이 심한 것은, 그것 자체로서 나 자신에게 경고의 역활이 가능하기때문입니다'는 말씀은 퉁박을 통해 나를 단속한다는 의미로 해석하게 합니다. 형법 법률 사법射法이 생산하는 죄가 바로 법의 퉁박이며 제재이며 또한 배제입니다.텍스트는 실로 아무말이 없으며 이를 해석으로서 부르는 우리는 법이 공평하지도 해석과 적용이 객관적일 수도 없다는 상식을 은연중에 소지하고 있지만 법의 권위앞에 잊기를 명령받게 되죠  죄조차도 착각이라는 佛家의 마치'뜬 구름 잡는 듯한 소리'를 빌려오지 않더라도 전근대와 근대 탈근대조차도 주인으로서 맞이하고 누려보고 앓아보지 못했던 코리안으로서는 도망갈 구멍이 많고 좋다 싫다 어떻다등의 입장이 불분명하며 자동적인 '나 자신에게'경고를 수행할 조의 식민적 근성의 언어-태도가 몸에 박혀온 것이 사실입니다. 문제는 '나'의 작업이 면제되기 위해 '다른 작가들'이라는 재물을 필요로 한다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진보를 믿는 모더니스트들의 한계이자 자기기만이었고 그 '희생'의 필연적 함수에 타자를 밀어넣은 '본국'이 타'종 속'국에 심어놓은 위대한 습관이었습니다. 식민근성 및 습관의 주된 징후로는 '저 놈'을 고발하여 나의 충성을 입증하며 이중구속의 계약속에서 끊임없는 '고발'의 질책속에서 자신의 종속적 정체성(아이러니,하지만 그건 영어)을 획득받는 다는 것입니다. 차학경의 어머니는 '사람의 마음은 땅덩어리의 크기에 결정된다'고 말씀하시지만 내 아들의 아버지는 '사람 인식세계의 한계는 땅덩이 위 경계들에 지대하게 영감받는다'라고 하실 것입니다. 물론 자벨님은 '경고의 역활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셨습니다. 다소 말장난 같지만 역활이 경고를 가능하게 하고 있다는 것을 고민해보신 적이 있으실지요 '경고라는 역활'이 자동경고의 내면화를 가장 효율적으로 달성한다는 발견은 비록 교회종이 울릴때마다 눈치는 오래전부터 까고는 있었으나 결국 세네갈의 자각이 아니라 푸랑스의 반성에서야 공표된 한 복음이었습니다.

저는 저 위에 위에 '우리가 본인의 작업을 반성하지 않고선 과연 분투한 작업들 하지만 침묵하고 서 있는 작업들을 강간할 수 있는 권리와 능력(안목)이란 없습니다.'썼는데 자벨님의 대답은  '물론 개인 작업의 반성은 언제나 뒤따라야 하지만 그 반성을 꼭 언어로 짜집어야 한다는 법칙이 있는 것은 아니고, 더군다나 타인에 대한 비평이 자신의 무반성에 기인한다고 보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라고 적고 계십니다. 혹시 자벨님은 반성이란 말을 너무 도식적으로 이해하고 계신 것은 아닌지요 퉁박은 짧고 경솔할 수도 있지만 작업들이 분투의 산물이며 침묵하고 있다고 표현하는 까닭은 작업에 대한 제 기본적인 존중이며 이 존중이  제게 짧은 시야와 입맛과 고민으로는 보지 못하고 놓치고 마는 층위가 항상 존재할 수 밖에 없다고 해주는 충고입니다. 자벨님의 '퉁박'이란 표현은 재밌지만 남의 작업에 대한 너무나 잦은 퉁박이 '꼭 언어로 짜집어'지고 있다는 상황을 볼 때 '스스로 많은 노트를 남기는 부류는 분명 아니라고 수차 언급' 하시는 것은 코메디입니다.하지만 웃음이 나오지 않는 까닭은 어쩔 수 없이 작업에 대한 복수일 수 밖에는 없는 그 '퉁박'이 혹시 자벨님이 느끼시는 작업이,에 이미 받았던 낙인과 퉁박에서 배운 동작은 아니실런지요 이 부분을 매우 조심스럽게 쓰고 있습니다만 지난 예를 들어, 팔 월 이 천 사 년 이라는 제목으로 게시된 제 사진에 대해  '되게 샤한 느낌. 좋다. 요즘은 노출 오버된 사진보면 정액같이 보여'라는 말씀은 좋다.라고 적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몹시 불쾌했던 대답으로서 전화를 드릴 때마다 '너는 말이야 니 사진보다  니 글들을 사람들이 더 좋아하는 것 같애'라는 말씀과 더불어 자벨님이 상상하시는(만약 한다면) 것보다 훨씬 많은 인내를 필요로 하는 비아냥 식의 말투로 거꾸로 저는 자벨님의 사진을 보면 자벨님의 근황을 궁금해하고 걱정하는 바탕에서 그 사진들을 오랫동안 고민하게 하는 사진으로 품고다닙니다 혹시 자벨님은 사진앞에 너무 빨리 경솔하게 퉁박을, 낙인을 찍어버리고 계신 건 아닌지요   자벨님은 '저조차도 타인의 비난에 대해 피하거나 변명할 의사는 분명 없다는 것을 밝힙니다'라고 하시지만 호출하고 심판앞에 세우는 <'상처를 무서워하는 논객은 있을 수 없으며'>비난이 아니라 그것이 어쩌면 걱정때문에 아무말도 못하고 있는 질문표들일 수도 있다는 것을 한 번 더 염두에 두어보시길 바랍니다.자벨님은 타인의 비난에 몹시 예민하고 경직되어 어떤 일말의 충고를 드릴 때마다 주저 되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팔 월 이 천 사 년'당시에 갔던 한국이 얼마나 덥고 힘들었으며 개인적으로 견디기 어렵고 고통스러웠는가를 아는 자벨님께서 그때의 사진에 '되게 샤한 느낌. 좋다. 요즘은 노출 오버된 사진보면 정액같이 보여'라고 대뜸 대꾸하시는 것은  단지 경솔이라고 이해해야 합니까 면전에서 그건 가능치 않았을 것입니다.난 격할 수 밖에 없이 발을 먼저 날렸을 테니까요. 그리고 줄곧 이루어진 대화들에서 자벨님의 비겁과 도망치고 눈치보는 등의 동작을 보게 된 것의 사례를 일일이 들기란 좀 피곤하군요 자벨님의 그건 그게  라는 변호들에 다시 무진장한 노력과 시간을 들여 대답해 드려야 하기 때문이죠 자벨님은 헤헤 그게 뭘 그런 것 가지고 식으로 일상생활 처럼 웃으실 수도 있겠지만 난 그런 미소를 믿지 않습니다. 그건 당신 자신까지 매도해 온  거짓화해 이니까요      

위의 글처럼 자벨님의 '사랑은 이해를 바탕으로 합니다. 글이 없다고 생각자체를 문제 삼는 것은 폭력이 아닐까 싶군요.님의 말씀을 잘 알겠습니다. 게시물은 닫겠으며 죄송하단 사죄를 이제야 문제된 늦게서야 남깁니다.또한 님의 토씨 하나를 두번다시 게시판에 언급하지 않겠음을 사과와 더불어 명심하는 바이며, 언급 자체가 곡해로 트랜스 가능한 구조에 대해 근원적으로 참회함을 명심하는 바이다.'라는 글을 사과라고 받아들이기는 어렵습니다. 저는 당신의 말투와 감정이 들리지 말하는 내용이 와 닿진 않습니다. 그래서 '사죄를 드렸음에도 그것을 쉽게 "삐짐"이라고 폭압스레 판단하는 님의 말씀은 또다시 상처가 됩니다.'라는 대답은 또다시 황당합니다. '괴념치 않은 것에 대한 본인의 잘못을 깊이 통감하는 바'라는 대목에서도 여전히 비아냥을 느낀다면 저의 착각입니까  


저는 요즘 돈이 없고 힘들고 비자문제고민도 많고 그래서 가능성 몇 개가 있는데 ....'그런 전공을 한국에서 무슨 전공으로 정확히 부르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니 그거 미학과나 철학과에서 그냥 같이 다루고 있나'식으로 말씀드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자벨님의 관심사는 물론 항상 제 힘든 처지의 사는 얘기들이 아니라 새로운 정보들에 쏠려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문제가 된 전공명을 마치 ''그거 아직 한국에 없는 데 내가'식으로 해석하신 건 분명히 자벨님이셨습니다. 저는 그 전공명을 말씀드리면서 제 사는 얘기 멈추고 난 좀 한국에 그런 쪽의 고민들이 많이 필요한 것 같애'식으로 말씀드렸습니다. 자벨님의 전공에 대한 해석도 제가 했다는 말들도 좀 솔직하게 말해서 너무 모르시면서 말하기 위해 얼버무리며 노력하고 계신 건 아닌 가 생각하게 됩니다. 이런 글 쓰기에 이중으로 기운이 새어나감을 느끼게 되는 까닭은 아직 힘들어 하는 사는 얘기와 문제들을 개선하지 못한채 이런 황당한 호출과 증언과 변호에 출두해야 하는 현실입니다. 저는 사랑이라는 말보다 기본적인 의리라는 것이 이토록 지저분하게 느껴지고 잔인하다는 느낌을 받음에도 인내해야만 하는 것인가를 회의하게 합니다.  

'이러저러한 것에 대해 수정을 바란단 정도면 가당할 일이라고 봅니다.'라는 자벨님의 말씀은 나의 말처럼 폭로된 그 황당한 있지도 않은 전공명에 대한 여러 언급들이 얼마나 황당하고 이를 언급했다는 하는 그 본인이 느꼈을 스트레스와 짜증을 고려해보기 보다는 ' "한국에 정확한 전공명이 없을 것"이란 말은 분명 제가 만든 말이 아니며, 수화길 통해 온 음성이었습니다. 어디에서 잘못된 것인지요. '라는 말씀등을 통해 다시 한 번 본인 자신만을 방어하기 위해 혐의를 상대방에게 씌운채 추궁하신다는 느낌을 받게 합니다 저 라는 아뒤가 어떤 논점으로 글을 쓰고 있는 자가 아니라 토론하고 있는 자가 아니라 이런 모욕과 매도 해명에 호출받아야 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본인 스스로를 질타하게 하는 군요 저는 처음부터 대상화 되버린 채 제 고민들도 사는 얘기들도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구경꾼들 앞에 말 서커스 하고 있는 광대의 기분이 드는 군요 그렇다면 광대가 어떤 이유로 사랑도 정도 의리도, 아니 기본적인 철학의 교류도 하려치 않는 사장의 여정에 동반해 있는지 묻고 싶군요 저는 그래서 조회수들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벨님 , 이런 제 말들을 제가 고민하고 쓰고 있는 시간의 십분의 일의 시간과 정성이라도 기울여서 읽고 계신지요  저는 마치 망명처럼 한국을 떠나왔고 자벨님은 한국은 개좆같으니 절대 오지 말라고 하시지만 인천공항의 활주로 보면서 이 개씨발 좆같은 나라 내가 다시 안 온다 이 개같은 나라 난 다시 안 온다 이 개같은 나라 난 다시 안 온다 며 외치며 침뱉고 곧 울어버린 건 단 한 명 자벨님 얼굴이 떠올라서 였습니다. 한국이 정말 개같은 나라일 뿐이라면 어떻게 거기에 내 동료를 놔두고 떠날 수 있을까 라는 분열이 저를 미친자처럼 흐느끼게 했고 내가 고향을 떠나 다시 고향을 발견하고 붙잡게 하고 잊지 않게 하는 근원이었습니다.하지만 어쩌면 자벨님의 한국이 내가 사는 한국보다 더 먼 괴상한 나라이며 당신의 개좆이 나보다 더 깊은 두 눈에 쳐박혀 자신과 영토를 보는 시야를 멀게 해 버린 건 아닌지요

'고향이라구? 개나 물어가라구 할걸'이라는 당신의 말이 떠오릅니다. 밤을 세워 버렸습니다.이런 처참한 기분을 동료라고 나 혼자 믿고 있는 자 앞에서 아직도 참아야 하는 까닭은 그런 것은 없었고 모두들 그런 말을 하면 이제는 웃기 때문이지요 나는 관객들 앞에서 웃음거리가 된 채 주변을 둘러보지만 내 동료 나한테 유일한 가족이자 유일한 힘이자 위안인 그는 보이지 않지요 나는 저 멀리 옥상에서 망원렌즈로 피곤하고 괴로운 표정의 나를 찍고 있는  자가 내 동료가 아닐 거라고 믿어왔어요 삼십여년후의 달력 작업에 넣을 사진을 찍고 있는 그에게 난 얼굴을 찡그려 줘요 하지만 나는 이런 곤혹스런 모델의 자세를 유지함이 내게 작업을 시작하게 했으며 힘들 때마다 나를 붙잡아준 선배들의 그것이 아니며 어떤 곤경에도 내가 유쾌함을 잃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작업하는 사람이란 것이 내가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다 무엇이었던가 하는 의식으로 나는 좀 멍하다가 강이나 산이나 보러 가다가 내가 가난한 부모를 가진 것을 원망함이 얼마나 부끄러운 투정이며 내가 내 앞의 현실에 맺힌 허상들에 힘을 잃어가는 것이 그러면서 동료를 껴안아주지 못하는 것이 또 얼마나 못난 재량이며 맨날 티격태격 하나 나아져온 그래도 동료 말이라고 생각해보며 나아져 온 그와 나 였다는 것을 되새기면서  산책이나 가서 쓴 술이나 마셔볼 것이다.

장명훈 병신아 세상 투정하는 건 개나 소도 할 수 있는 짓이야 작업하는 사람이 다른 게 뭐냐 한국에서 만나면 나를 패라 반말한 거 너를 절망하게 했다는 거 버르장머리 없는 거 난 한 번 너한테 후련하게 맞아봤음 좋겠다 동료의 부탁이다 한참 패놓고 소주나 한 잔 사라 그럼 나도 면전앞에서 따질께 형도 시발 좆갔았던 거 다 말할께 대신 너가 독일에 오면 어디 으슥한 데서 맞깡한 번 까자 너 내 사진 함부로 말하지마 좆도 너는 프린트만 보냐 너 아직도 사진은 외모로 하는 거라고 생각하냐 너가 시발 나이가 몇 살인데 아직도 외모만 보냐 너 형이니까 맞짱까도 내가 질 만큼만 너 때릴께 너 시발 이은주 얘기할때도 죽음에 대해 함부로 떠드는 데 시발 너 동갑이면 죽었어 개새끼야 내가 시발 성격이 그닥 좋은 새끼가 아닌 데 존나 오래 참고 있으니까 그리고 한국사진 그거 말야 시발 내가 한국에서 그럼 딸딸이쳤다는 소리야 그럼 너 시발 너네 집도 없고 아빠도 없고 엄마도 없는 게 뭔지 알아 너 독일 한 번 와라 시발 한판붙자 내가 너 살 집구해놓고 라면 쌀 반찬 다 사놀께 짐 풀어놓고 한 판 붙자 시발 맞짱 한 번 까보자 나 쌓인 거 졸라 많어 내가 시발 좆밥이라서 가만 있는 줄 알어 너네 시발 조회만 하고 말도 없는 씹쌔끼들 좆밥이냐 씹세들아 니들 시발 내 형 누나 뻘이지 다 덤벼 씹쌔들아 니들 명훈이 눈치 보느라 암말도 안 하는 거 알아 니들은 명훈이 돕는 게 아니라 망치는 거야 개새끼들아 다 덤벼 한판붙고나서 한잔하자 내가 시발 사랑때문에 이지랄 하는 거지 나 할 일 지금 졸라 많은 데 이러고 있는 거 알어 나 걱정도 졸라 많고 돈 문제 비자 문제 졸라 심각해 나 시발 인제 울음도 안 나와 씹쎄들아 야이 개새끼들아 니들은 집도 있고 직장도 있는데 난 백수야 시발 놈들아 내가 니들한테 송금하라고 말은 못 해도 마음으로라도 좀 같이 응원하고 그러자 시발 입다물고 숫자만 올리면 이게 뭐야 니들 시발 뭘 무서워해 장명훈 너 똑똑히 들어라 너가 형이고 또 멀리 떨어져 있어서 봐주는 거다 다음에 만나면 만나서 작업부터 까자 시발 세상 원망하고 투정하는 스케일 좀 부끄러워 해라 니 작업 보면 다 나와 씹쎄야 외모가 아니라고 내가 시발 몇 년동안 말하냐 너 교회가고 선생님하고 그러면서부터 졸라 많이 약해지고 변했어 옛날에 너 사진에서 번뜩이던 변두리 힘이 안 나오고 투정 원망 질투 들이 튀어나와 너 니 사진보고 사람들 반응이 없어서 시발 니가 사진에 퉁박하는 거지 난 그래도 니가 내 말 다 들어준 줄 알아 그럴 때마다 난 고마워 나 맞을 거 각오하고 썼다 난 세상에서 중요한 게 작업이랑 동료랑 마누라 밖에 없어 시발놈아 어깨 쫙피고 힘내 씹쎄끼야 넌 동갑이었으면 시발 엣날에 죽었어 너 시발 형이야 너가 쓰러지면 나도 쓰러져 씹쎄끼야 정신차려 시발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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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abel (2005-09-19 23:4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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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한 짧게 하는 것이 소통을 좀더 명징히 할 수 있을 것같습니다. 일단 먼저 할말.
재원님이 독일행을 결심한 순간부터 실상 오늘의 일은 예견되었다 봅니다. 서로의 지평이 완전 이격된 생활이 몇년이나 지속되었는데 순탄히 각개의 커뮤니케이션이 제대로 작동될순 없겠다 봅니다. 더불어 전술하신대로 라면, 그 날의 통화에서 서로 나눈 이야기 자체/주장하는 바를 서로 오해하고 있음도 분명하군요. 그렇다면 혐의나 느낌으로서 현상황을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정확한 팩트만을 다루어서 어떤 부분이 서로 다르게 알고 있는지부터 짚어 나가야할 것입니다. 상대가 아니라고 생각한단 것만으로, 그에게 혐의/추궁을 느낀다 말함은 적절치 않다고 봅니다. 서로 다른 내용을 접함으로 느껴얄 것은 모욕이 아니라 순탄한 대화에의 의지가 아닐까요.

힘든 처지의 사는 이야기는 님뿐만이 아니라 세상 어느 누구의 경우에도 전 관심이 없습니다. 힘든 말들을 저어하는 제 성향을 재원님도 잘 알고 있지 않나요. 자신의 하는 일에 대한 밀도 깊은 언어가 아니라, 자신의 처지를 토로함이 각개에게 어떤 이로움이 있는지 전 알지 못합니다. 또한 제가 하는 말이 어떤 경우에도, 적확한 해답이 되길 원한 적은 한번도 없었음을 말씀드립니다. 틀린 해답/오독을 타파하는 것이 제 삶이 목표임을 모르셨던가요. 내 삶은 항상 "너무 모르기떄문에 얼버무리고 노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타인의 입장에서 무지한 사람이 함부로 발설하는 것에 대한 사죄였는데 아직도 그것을 비아냥이라고만 보고 느끼는 대로만 말함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더불어 드리는 질문, 제가 하는 말이 님에게 기꺼울 정도로 말투와 감정이 와 닿으려면 어떻게 해야는 가요. 이역만리 떨어진 사람의 감정을 헤아릴 능력이 없음에 대한 대안이, 전 없군요. 또한 상대와의 진전된 대화를 위한 노력에 회의와 인내란 단어까지 써야한다면 분명 그것은 사랑/의리는 아닐 것입니다.

또한 다른 좌표의 두 사람이 이야기할때 가장 우선되야는 것중에 하나가 서로가 "다르다"는 전제하이어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자신의 공부 타이틀을 잘못 일컬은 죄로인해 조회수를 근거로 타인이 자신을 광대로 여길 것이란 재원님을, 제가 아는 한도에선 상상이 힘듬니다. 아뭏든 전공명을 함부로 말씀드린 것에 대해선 재차 깊이 사죄드리겠고요. 정말로 당신이 나를 사진을 하는 동료로 인식하고 있다면, 적어도 서로의 이견/오독에 관한 해결의지가 분명하리라 봅니다. 더불어, 그것에 대한 맹렬한 비난에 덧해서 상대의 잘못에 대한 준엄한 지적과 해법이 동반되어야하지 않을까요.

타인의 작업을 경고으로서 게시판에 기록해 놓는 행위가 어떻게 다른 작가를 제물삼는 일인지 전 알지 못합니다. 말장난이 문제가 아니라 외부의 어떤 것을 가늠함으로 스스로를 타진함은 단지 방법의 문제뿐이잖을까요. "제물"이라는 단어를 쓸 정도로 그 게시물들이 나의 철학에 근거하고 있진 않고 있지만, 만약 이런 가벼운 반응들이 불쾌하시다면 저로서도 어쩔 순 없군요. 외부가 경고로 작동할 정도로 나 자신을 나약하게 다스리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 지랄하고 있음은, 재원님께서 더 잘 알듯 싶습니다. 저의 학습방법이 님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혹은 작업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의 선이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를 비난하는 일이야말로 수긍하기 힘들고요. 또한 "자벨님은 타인의 비난에 몹시 예민하고 경직되어"다는 말이야 말로 가장 근거가 없어 보이는 군요. 비난에 대해 다시 질의하고 발언의 진원을 찾는 일이 걱정되어 비난을 하지 않겠다면, 그야말로 동료로서의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타인의 퉁박에 대한 이유를 분명히 밝혔음에도, 그것이 자신의 노트에 다름 아니며 심지어 "작업에 대한 복수"라고 까지 표현하는 것은 매우 심한 오바이며 억지가 아닐까요.

이미지에 대한 독해는 개별 관객의 상황이나 의식에 좌우될 수 밖에 없습니다. 영화나 연극과 달리, 순간 보여지는 전시물들의 인상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관람하는 각개 사람들의 상황을 고려치 않고, 자신의 사진을 잘못 읽음만을 탓할 수 있을까요. 이천사년에 한국에서 그 사진을 보여주었다면 아마도 재원님의 말씀대로 그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서로 완전 다른 시간을 경영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상대 감상에 대한 발길질은 백프로 가당하진 않다고 봅니다. 님께서 진정으로 제 말을 경솔로서 받아 들이셨다면, 깊이 사과드리겠습니다. 진심입니다. 하지만 말씀대로 "어떤 일말의 충고를 드릴 때마다 주저 되는 게 사실" "사례를 일일이 들기란 좀 피곤하군요"같은 발언은 거푸 말씀하시는 동료로서의 행동에는 분명 어긋나 보입니다. 전 지금 웃고 있지 않으며, 적확한 사실을 제시하지 않는 "당신 자신까지 매도해 온 거짓화해"같은 지탄은 받아들일 수 없음도 분명히 합니다. 대체 거의 아무도 발언하지 않는 게시판에서 내가 왜 눈치를 본단 말입니까?

말씀대로 자신 작업에 대한 반성의 프로세스는 좀더 갈고 다듬을 필요는 분명한 것이며 그것에 대한 올바름도 항상 숙고해얄 것입니다. 그것에 대해선 뒈지기전까지 힘들게 이어나가야 겠지요. 하지만 저는 동료의 어려움만을 듣고 있기엔 그에 관한 알레르기가 너무 심각하고, 작업에 대한 구체적인 반성을 아무도(나와 재원님을 포함한 모두) 하지 않는 게시판에서 -본인의 자아비판이 없으며 다른 작업에 대해서만 언급한단 것이- 비난 가능하게 되는 분명한 팩트를, 재원님께 다시 한번 요구하는 바입니다. 더불어 님께서 심각한 사생활 침해라고 보시는 제 잘못에 대한 사과/비난과 너무 동떨어진 주제에 대해선, 확실한 이유없이 개진하지는 않으셨음 합니다. 한가지를 끝내고 다음으로 넘어가시는게 어떠할런지요.

그리고, 전 발언하지 않는 객체에 대해선 완전히 관심이 없습니다. 조회수가 존재를 증빙하는 것이 아니듯, 스스로 말하지 않는 사람은 인간과 무관하다고 생각하고 있음을 말씀드리는 바입니다. 또한 한국에 내가 있는 것은 재원님이 나를 두고 와서가 아니라, 내가 선택한 곳이기때문입니다. 우리가 원했던 것들중에 하나가 개같은 나라이기도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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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rker (2005-09-20 22:55:48)  
아.. 정말 오래간만의로 그 인입니다. 문안 올립니다. 이 놈의 젤라틴 모텔엔 언제나 한번 시원한 바람이 불까요? 두분의 애정의 문제는 꼭 환절기 마다 찾아오는 인풀렌자이군요. 아무튼 싸울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거 부럽습니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부동산 얘기를 하며 대화합하는 이유는 뭐 일까요?

한달전 한국엘 갔었는데요. 내내 쭉 느낀것이 나를 분류를 하자면 내가 사람보단 나무에 더 가까와 지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전라도 구례를 돌아 군산의 휘형청 대형 횟집에 앉아 망가진 아름다운 땅들과 바다를 바라보며 목이 메이는 역설을 발행하며, 그 쾌적한 피부와 불쾌한 망막은 하나의 몸뚱아리 안에서 뜨겁게 분열되고 있었습니다. 마치 때때로 현대미술관 안에서의 육체의 경험처럼...


<---위의 쌍방상황에 관한 비트겐슈타인의 견해

612. 나는 내가 타자와 '싸우게' 될 거라고 하였다. ---그러나 나는 도대체 그에게 근거들을 주지는 못할 것인가? 물론 줄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어디까지 가겠는가? 근거들의 끝에는 설득이 있다.(선교사들이 원주민을 개종시킬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생각해 보라.)
psyvenus (2005-09-21 03:46:23)
.










































































난 환잔데 친구가 자꾸 면회하잖다
나한테 바라는 엄마나 친구보면 역겹다 툭까놓고 하는 새끼들보다
나는 툭까놓고 하는 새끼들보다 돈에 더 굶주렸다 나 거리의 고문관들 안 보이고
누가 돈 얘기하면 솔깃하다 그쌔끼들은 톡까놓고 하니까 안 미운데 난 눈치보면서 하니까 존나 비참하다 내 영은 감옥에 갇힌 늙인인데 청년은 아직 단식투쟁한다
심신통일 쟁취하여 영적자유 앞당기자 앞당기자
가끔 머리가 이상해서 걱정된다 면회객만 자꾸오고 출소날 기다리는데 날짜를 가먹었다 사회는 자유롭다 나 과거가 너무 무겁다 세상보다 더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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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rker (2005-09-21 05:13:27)  

!!!!! !!!!!

zabel (2005-09-21 14:14:37)  
상처와 고통은 치유되는 것도 아니고, 무슨 발광을 해도 그 원인들은 없어지지 않는다. 도피나 위로라는 것도 그 단어를 읽는 동안만이고, 혜성이 떨어져 몰살하지 않는한 죽음이란 것도 해결과는 거리가 멀다.
소중한 것을 끝까지 지키고, 정말로 하고 싶은 짓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것. 내 경운, 그거면 된다. 나의 마음과 행동. 누구에게나 있는 성역이다. - ismism
psyvenus (2005-09-21 20:14:34)
君不見 黃河之水天上來 奔流到海不復回
君不見 高堂明鏡悲白髮 朝如靑絲暮成雪
人生得意須盡歡 莫使金樽空對月
天生我材必有用 千金散盡還復來
烹羊宰牛且爲樂 會須一飮三百杯
岑夫子 丹丘生 進酒君莫停
與君歌一曲 請君爲我傾耳聽
鐘鼓饌玉不足貴 但願長醉不用醒
古來聖賢皆寂寞 惟有飮者留其名
陳王昔時宴平樂 斗酒十千恣歡謔
主人何爲言少錢 徑須沽取對君酌
五花馬 千金?
呼兒將出換美酒 與爾同銷萬古愁









그대, 보지 않았는가
황하의 강물이 하늘에서 내려와 콸콸 흘러 바다에 이르러 다시 돌아가지 못함을

그대, 보지 않았는가
멋진 저택에서 거울에 비친 백발을 탄식하나니, 아침에 푸른 실 같던 머리카락이 저녁녘 흰눈이 내렸구나!

인생에서 뜻을 얻었으면 모름지기 즐기기를 다할지니
금술동이를 부질없이 달빛 아래 두지 말고 어서 가져오게나

하늘이 나를 낼 적엔 재능이 반드시 쓸 곳이 있었겠지
천금의 돈도 다 쓰고 나면 다시 돌아오게 마련이니 뭐 아끼려 드는가?

양을 삶고 소도 잡아 즐겨보세
모르긴 해도 한 번 마시면 삼백 잔은 해야지

잠선생, 단구 선생
그대들 술잔 들길 멈추지 말게나

내 그대들 위해 노래 한 곡 뽑을테니
그대들은 나를 위해 귀를 기울여 주게

좋은 음악 좋은 음식도 귀히 여길 것이 못되니
다만 원하는 것은 오래 취해 깨어나지 않는 것

예로부터 성인이나 현인은 모두 쓸쓸하였으나
오직 술마시는 자만이 그 이름을 남겼지

진왕은 옛날 평락관에서 잔치할 적에
한 말에 만 냥짜리 술도 실컷 마시며 즐겼다네

주인은 어찌해서 돈이 없다 하는가?
내 즉시 그대들에게 술을 사다 권하겠네

오색 빛나는 말 천금이나 되는 가죽옷도

아이를 불러 나가서 술과 바꾸어 오게 해서
그대와 더불어 영원한 이 근심을 녹여보세나










將進酒, 이백
























.
psyvenus (2005-09-22 05:45:33)
target=_blank>http://www.howphoto.net/bbs/view.php?id=cafe_b&page=1&sn1=&divpage=1&sn=off&ss=on&sc=off&keyword=%B0%ED%C0%DC&select_arrange=hit&desc=asc&no=364&type=board
















자벨님 당황스런 마음으로 묻습니다.제가 오래전 모 사이트에 조용하게 올렸던 게시물을 오늘에서야 다시 전혀 엉뚱한 곳에서 실려져있음을 대면하게 되었는데, 평론가 진동선씨께서 친절한 조언까지 곁들여 주셨군요. 이에 대한 해명을 부탁드립니다. 아울러 해당 게시물의 조속한 삭제를 요구합니다.
zabel (2005-09-22 13:39:33)  
재원님께서 유학간지 얼마 안된 시점에서 전화 통화로, 님의 글/사진에 대한 다른 사람의 생각을 알고 싶단 이야길 한적이 있습니다. 하여, 프리첼에 공개로 올려진 글중 하나를 다른 곳에 올려도 괜찮겠냔 양해를 구한 적이 있었지요.
윗 게시물을 게시 날짜는 원래 2001년 말에서 2002년 초쯤으로 기억되는데 하우포토가 리뉴얼 되면서 게시날자도 바뀌었고 삭제권한도 저한테 있진 않습니다.
하우포토 관리자에게 삭제토록 말씀드렸으니 조만간 조치가 있을 것입니다. 오래된 일이지만 불쾌하셨다면 용서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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