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터넷에서 볼때는 굉장한 기대를 가지게한 전시였던만큼, 실제로 쩜... 그랬던 사진전. 일단, 무슨 경전이름같는 네이밍에 굉장히 알레르기가 있는 것도 있지만.
굉장히 인상적인 전시이긴했지만 일단...그 구데기 드로잉을 보지 못한게 아쉽기도 했고, 무엇보다 보이는 방법에 있어 그닥 효과/집중도가 내 입장에선 느껴지지 않았던 전시. 김응수님이 형이상학에 관심이 많이 있어 보이긴 했지만, 아래 글을 읽고선 좀 우려가 되긴 한다.
오버스런 문구가 조금 보이기도하고, 많이 그쪽으로 경도된 것같다. 머, 그걸 장점으로 승화할 수도 있는 노릇이다만.
.'
)
+ + +
출처 : 감자
여락(如樂)은 1974년 경기도 안성에서 태어나 광주대학교를 거쳐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사진을 전공하였다. 개인전 '원(圓)'을 비롯하여 '젊은사진가전', '동강사진축전', '핑야오 국제사진페스티벌'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으며 제5회 사진비평상 작품부문 대상을 수상하였다.
여락은 국내 젊은 작가들 중 필자가 가장 주목하고 있는 작가이다. 그런 작가가 새로운 작품을 전시한다니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전시장에 들어서자 우선 커다란 이불솜을 설치한 것이 눈에 들어온다. 이상한 냄새가 좀 난다. 작품들을 보고 나니 작품의 크기가 들쑥날쑥한 것도 이상했고, 작품 수가 너무 적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작가에게 그 사정을 들어보니 참으로 안타깝다. 원래는 작품의 크기가 일정해야 하는데 작품의 크기에 비해 전시장소가 협소한 관계로 두 어장만 원래 크기로 전시하고 나머지는 작게 인화하여 전시해야 했으며 전시하지 못한 작품도 좀 있다는 것이다. 아쉽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작품을 둘러보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 뒤 본격적인 대화에 들어갔다.
김응수(이하 김) : 여락씨는 5회 사진비평상 사진부문 대상을 수상하셨죠. 당시 수상 사진을 보고 전 내심 상당히 놀랐습니다. ‘이 사람 이거 보통 사람 아니구나’하고 생각했었죠. 작품을 보면 작가의 역량이 어느 정도 가늠이 되는데 여락씨의 사진을 보고서는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더군요. 비평적 거리를 유지하지 못하고 작품에 압도당했던 거죠. 그랬던 만큼 다음 사진은 도대체 어떤 게 나올까 상당히 기대되었는데 전시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개인적으로 상당히 반가웠습니다.
여락(이하 여) : 제 작품을 그렇게 좋게 봐 주셨다니 감사합니다.
끔찍한 광경 속에서 느낀 감동
김 : 이번 전시작품도 지난작품 ‘원’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주제는 변함이 없지만 표현의 방식에서는 상당한 변화가 있어서 기존 사진과는 전혀 다른 사진처럼 보이는데, 이번 작품은 어떤 계기로 시작된 것인가요?
여 : 이번 작품의 발단은 저희 집에서 기르는 개 누렁이의 죽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제가 사는 곳은 안성의 시골마을인데 어느 날 어머니께서 누렁이가 없어졌다고 그러시더군요. 그래서 마을 곳곳을 찾아다녔는데 누렁이를 발견한 곳은 얼마 전 새로 생긴 4차선 도로 위였습니다. 도로가 생긴 후 마을 개들이 종종 치어 죽게 되었는데 우리 집 개도 길을 건너다 치어 죽은 것이었습니다. 개를 안고 집으로 와서 일단 창고에 놓고 보니,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되더군요. 사고가 난지 며칠이 지난지라 사체는 많이 훼손된 상태였습니다. 잠시 생각하다가 일단 제가 덥고 자는 이불솜을 뜯어 와서 덮어주었습니다. ‘이렇게 죽게 해서 미안하다. 편안하고 긴 단잠 자거라’하는 마음으로요. 나중에 와서 화장을 시켜주려고 생각했었지요. 그런 생각을 하고 일단 창고에 놓아두었는데 깜빡 며칠이 지나가 버린 겁니다. 며칠 있다가 창고에 들어가 보니 심한 악취와 함께 사체에는 구더기들이 들끓고 있었습니다. 전 거기서 강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뭐랄까... 그 충격은 끔찍한 광경을 보고 놀라는 것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것이었습니다. 전 그 광경에서 말로 표현하기 힘든 어떤 커다란 감동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김 : 그 감동을 조금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죠.
여 : 제가 감동한 이유는 아마도 그 광경에서 인간이 제어하지 못하는 생명현상과 우주의 흐름을 보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죽음 속에서 새 생명이 바글바글 피어오르고 있는 모습은 감동적인 장관으로 보였습니다. 그 광경은 제가 작업으로 보여주려는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생명의 탄생과 죽음, 거스를 수 없는 힘의 흐름과 순환이 바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김 : 사진을 보니 작업 과정이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작업실이 거의 기겁할 수준으로 변했을 것 같습니다. 작업을 하면서 병이 들거나 하지는 않았나요?
여 : 이번 작업을 하면서 사고로 죽은 수십 마리의 짐승들이 제 작업실 여기저기에 놓여져 있게 되었고 그 사체에는 구더기가 득실댔습니다. 그리고 그 사체는 촬영을 위해 완전히 부패해서 흔적만 남을 때까지 한 자리에 있게 됩니다. 또 구더기는 제 작업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재료이기 때문에 사체에 구더기가 많이 꼬이면 구더기는 따로 통에 모아두기도 했고요. 작업실은 온통 사체가 썩는 냄새로 진동했기 때문에 그 냄새를 맡고 살자니 한동안은 정말 매일 몸에서 열이 나고 몸이 후들거렸습니다. 그런데 그 냄새에 적응이 되었는지 한 달 정도 지나니 아무리 썩는 냄새를 맡아도 열이 나거나 하지는 않게 되더군요. 또 각각의 사체에서 살점을 조금씩 떼어 내는 작업을 했기 때문에 아마도 제 작업실의 풍경은 누가 봐도 범상한 풍경이 아니긴 할 겁니다.
사진작업은 결과를 위한 과정이 아니라 과정을 위한 과정
김 : 처음 여락씨의 작품을 보았을 때 참으로 놀랍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작품의 주제도 주제거니와 그 표현 또한 이제 막 시작하는 젊은 작가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락씨의 사진을 보았을 때가 2,30대 젊은 작가들의 사진에서 매너리즘을 느끼고 있을 때여서 그런지 더욱 인상이 강하게 남았는데, 단적으로 말해 여락씨의 사진이 가지고 있는 깊이와 스케일은 제가 젊은 작가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관념을 수정해야 할 정도로 큰 것이었습니다. 젊은이들이 갖고 있는 고민이나 관심들은 대개 주관이나 자아에 대한 것들, 좀 더 나아간다면 자아와 관계를 맺고 있는 환경이나 권력에 대한 것들인데, 여락씨는 좀 더 근원적인 현상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구체적인 삶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관념적이고 철학적인 주제라고 볼 수 있겠는데, 이런 주제를 택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여 : 제 사진은 관념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사유의 결과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저의 구체적인 삶의 체험 속에서 나온 것입니다. 저는 군 생활을 교도소에서 했는데 당시 사형수를 형장으로 데려가는 일이나 형 집행이 끝나고 시신을 수습하는 일도 제가 한 일중에 하나였습니다. 그 경험은 저의 사고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고,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제가 커서 처음으로 울어본 게 큰 누님이 세상을 떴을 때였는데, 그렇게 죽음과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을 격게 되면서 삶과 죽음, 탄생과 죽음을 아우르는 생명현상, 그러한 현상들을 일어나게 하는 근원적인 힘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관심의 범위가 인간을 포함한 존재일반에까지 확대되더군요. 제가 가지고 있는 화두에 평생 답을 낼 수 없을 수도 있겠지만 작업을 통해서 뭔가 조금씩 깨닫고 얻는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 작업은 결과를 위한 과정이 아니라 과정을 위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 : 가장 눈에 띄는 작업은 구더기에 물감을 묻혀 종이 위에 뿌려 만든 드로잉인데 이 아름다운 드로잉이 구더기가 꿈틀대면서 만든 흔적들이라니 놀랍기만 합니다. 또 개의 사체가 부패하면서 남긴 흔적이 배어 있는 이불솜을 그대로 전시하는데, 표현의 방식을 선택함에 있어서 전혀 제한을 두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현대 미술에서 사용하는 여러 가지 표현방식을 혼재해서 사용하는 것이 두드러져 보이는군요.
여 : 사진으로 작업을 시작을 했고 주된 표현방식이 사진이긴 하지만 주제를 표현하기에 적절한 매체와 효과적인 방법이 있다면 그때그때 표현의 적절성에 따라서 매체의 활용과 표현방식에 변화를 주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학부시절부터 현대미술에 관심이 꽤 있는 편이었고 요즘도 괜찮은 전시가 있으면 전시장을 종종 찾아가곤 합니다.
생성과 소멸의 순환, 원
김 : 작년의 전시주제와 올해의 전시주제는 똑같이 ‘원’입니다. 작년에 보여주었던 사진은 말 그대로 ‘원’의 형상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었죠. 올해는 작년보다 은유적이고 확장된 방식으로 ‘원’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가령, 같은 장소가 계절에 따라 변하는 모습은 계절의 순환, 즉 시간적인 ‘원’을 보여주고 있죠. 이번 사진에서 시간의 흐름은 상당히 중요한 것인데, 이러한 시간의 흐름을 담고자 하는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 : 제 작품은 그러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탄생한 것이니만큼 시간이 만들어내는 우연 또한 작품의 일부입니다. 이번 사진작업을 처음 착수할 때만 하더라도 작품의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지 정확하게 예상하지 못한 상태로 출발했습니다. 작업을 하는 도중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을 통해서 제가 느끼고 얻는 것도 많았고요. 죽은 짐승들을 묻어준 나무 주변의 환경들도 제가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변했습니다. 구더기들이 열에 민감한 반응을 한다는 것도 밤에 조명을 켜놓고 작업을 하면서 알게 된 것인데, 이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나중에는 구더기들의 움직임을 어느 정도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조절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뭇가지가 뻗어가듯 한 방향으로만 구더기들이 기어가게 할 수가 있었지요. 작업의 결과물이나 작업의 방향은 처음에 어느 정도 생각하고 시작하지만 작업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우연적인 요소들은 처음에 생각했던 방향을 틀게 만들거나 전혀 새로운 가지를 치게 만드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김 : ‘원’이 함의하고 있는 의미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저 개인적으로 ‘원’은 근원적이고 원초적인 힘의 표상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작품이 함의 하고 있는 주제의 스케일이나 표현의 대담함에서 제가 느낀 것은 아마도 칸트가 '판단력 비판'에서 말하고 있는 ‘숭고함’일 것인데, 이러한 숭고함의 체험은 거대한 추상표현주의 회화나 색면파 회화에서나 간혹 맛볼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사진에서 이러한 느낌을 받기란 참으로 드문 일인데 이제 시작하는 단계에 있는 작가에게서 이런 이미지를 볼 수 있다는 것에 상당히 기쁘고도 놀랐습니다.
여 : 너무 좋게 봐주셨네요. ‘원’은 하나의 개체, 혹은 수많은 개체, 혹은 개체들을 넘어서 개체들을 포괄하는 무정형의 힘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떤 상태를 표상한 것이라기보다는 ‘원’이라는 형태를 통해서 시시각각 변화하는 상태 그 자체, 혹은 흐름들과 순환을 형상화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겠죠. 이러한 시도가 결코 성공적이지는 못한 것이라는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불가능한 시도입니다. 왜냐하면 하나의 이미지는 하나의 상태만을 보여줄 수 있을 뿐 흐름을 보여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또 흐름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대상과 마찬가지로 관객도 이미 흐름 속에 존재하는 것이죠. 흐름은 객관화될 수 없는 것이고, 보는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본질적으로 흐름은 체험의 영역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보여주기 위해 있는 전시공간에 결과물인 작품을 걸어 보여준다는 것은 무정형의 힘의 흐름을 형상화한다는 시도와 더불어 아이러니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관객이 흐름을 체험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요. 이러한 체험을 위해서는 사진 뿐 아니라 비디오나 퍼포먼스 같은 것을 같이 시도해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제 작품에서는 ‘순환’과 ‘흐름’이 중요한 요소를 차지하고 있는데 시간의 흐름을 담을 수 있는 비디오는 이러한 부분을 표현하는 데에 있어 꽤 유용한 방식이 될 것이고, ‘흐름’에 참여하고 체험하는 방식으로는 퍼포먼스가 적합하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중에 이 모든 것을 같이 할 수 있는 전시공간이 주어진다면 꼭 시도하고픈 욕심이 있습니다.
김 : ‘원’은 작품의 크기가 상당한 편입니다. 이번 전시사진은 그다지 큰 편은 아니지만 이전에 전시했던 ‘원’은 스케일이 상당했죠. 여락씨의 작품에서 작품의 크기는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왜냐하면 작품의 크기가 주제의 형상화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작품이 크지 않았다면 제가 여락씨의 사진에서 느꼈던 감흥을 느끼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여 : 작년에 전시했던 ‘원’은 작업을 하다보니 크게 할 수 밖에 없더군요. 여러 장의 사진이 붙어서 하나의 작품이 되는 것들도 있다 보니 결과적으로 작품이 대단히 커졌습니다. 사실 전시장의 높이가 허락했다면 좀 더 크게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원’은 하나의 우주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런 의미전달을 위해서는 작품이 작아서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죠. 우주는 개체를 뛰어넘는 것으로 모든 개체를 아우르는 포괄적인 세계이기도 하지만 하나하나의 개체도 하나의 우주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우주는 사실 하나와 여럿이라 나누어 말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주는 하나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여럿이기도 합니다. 간혹 내 안에서 세상이 춤추기를 바라기도 하지만 결국 저는 세상의 흐름 속에서 흘러가는 존재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이런 생각들이 작품화되다 보니까 하나하나의 다양한 작은 원들이 모여 하나의 커다란 사진을 이루게 되는 경우가 생기게 된 것이지요.
날것 그대로를 전시하는 이유
김 : 개인적으로 얼마 전에 뵈었을 때 이번 전시에 들어갈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나눈 적이 있었죠. 그 당시 계획으로는 사체가 부패하면서 남긴 흔적이 있는 이불솜을 여러 장 설치하려고 했던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한 장만 걸게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전시장소가 협소해서 어쩔 수 없는 것이었겠죠. 어쨌거나 가공을 하거나 틀을 만들지 않고 사체의 흔적이 있는 천을 그대로 전시하게 되면 거기서 나는 냄새가 지독할 것 같은데, 냄새를 제거하지 않고 그대로 전시하는 것이 가능할지 의문이었습니다. 다행이 이번 전시공간에서는 별다른 처리 없이 전시하는 것이 허용 되었는데, 이렇게 지독한 냄새가 배어있는 것을 그대로 전시하고자 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여: 저는 이불솜에 남아 있는 사체의 흔적 못지않게 썩은 냄새 또한 작품에서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냄새는 관람가로 하여금 좀 더 적극적으로 작품을 체험할 수 있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이 좋지 않은 냄새이니 불쾌한 체험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만, 불쾌한 체험을 통해서 또 다른 뭔가를 느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원래 썩으면 냄새가 나는 법입니다. 그 냄새를 인위적으로 빼버린다면 대상의 진정성을 살리는 데에 효과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김 : 여락씨의 말을 들으니 요셉 보이스의 ‘지방의자’라는 작품이 생각나는군요. 요셉 보이스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공군 조종사로 있었는데 1943년 겨울에 러시아 군의 총격을 받아 비행기가 크림 반도에 추락하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그때 몽골리안 계통 타타르인들이 거의 죽어가는 요셉 보이스를 발견하고 동물성 지방을 몸에 바른 후 펠트로 싸서 자신들의 마을로 데려가 간호했죠. 거의 죽다 살아난 요셉 보이스는 이 경험으로 인해 예술가가 되었습니다. ‘지방의자’라는 작품은 주방의자와 동물성 지방으로 만든 작품인데 지방냄새가 정말 고약합니다. 하지만 요셉 보이스에게 그 냄새는 자신의 목숨을 구한 생명의 냄새이겠지요. 그래서 고약한 냄새가 나는 지방을 사용한 작품을 그대로 전시하였습니다. 아마도 뭔가 아름다운 것을 보리라 기대하고 전시장을 찾은 사람들은 그 냄새에 꽤나 당황했을 겁니다. 하지만 예술이 뭐겠어요? 넓은 거실에 걸만한 멋진 그림이나 사진이 예술이겠어요? 오히려 지독한 냄새가 작품에 예술성을 부여했다고 말한다면 제가 오바하는 것일까요?
여 : 얼마 안 되는 기간이긴 하지만 그간 작품 활동을 하면서 ‘내가 하는 이 작업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이며, 작품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을 해왔습니다. 제 작업은 상처처럼 마음속에 깊게 남아 있는 체험의 자국들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작업의 과정 또한 구체적인 삶의 연속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분히 실존적인 의미를 띠고 있습니다. 저의 체험과 생각을 효과적으로 형상화시킬 수 있는 것이라면 저 스스로 만족스러운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어떤 미감을 자극할 수 있는지, 장식적인 것으로 적합한지, 대중들의 취향에 부합하는 것인지, 미술 시장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는 작품을 만들 때 고려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런 것보다 중요한 건 표현의 적절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천천히 간다는 것의 중요성
김 : 누군가 우스개 소리로 우리나라에서 이름이 좀 알려진 작가치고 부자집 아들 아닌 사람 없다고 그러더군요. 그만큼 순수 사진으로 먹고 살기가 힘들다는 이야기겠죠. 여락씨도 현실적인 고민을 많이 했을 거라 생각이 되는데... 어떻습니까?
여 : 사실 그게 참 중요한 문제지요. 생계유지정도는 해야 되는데 제 사진은 제가 생각해도 대중적인 취향과는 좀 어울리지 않는 것 같고. 얼마 전에는 어머니께서 ‘죽은 개만 찍어서 뭐가 되겠냐’고 하시더군요. 농사해서 어렵게 공부시켜놨더니 죽은 개만 찍고 있으니 부모님이 보시기에는 제가 하는 일이 답답하게 생각되신 거지요. 그나마 시골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 다행인 것 같아요. 시골에서 살면 절박한 현실적인 문제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거든요. 생활의 리듬이 도시에 비해서 상당히 길고 완만하니까요. 또 제가 도시에 살았다면 이런 작업을 지속적으로 해 나갈 수 있었을지도 의문이에요. 제가 마음을 조급하게 갖지 않고 천천히 해나가는 것도 제가 사는 곳이 시골이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김 : 천천히 간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거지요. 그리고 어려운 것이고요. 요즘엔 자신의 마음속에 뭐가 고이고 쌓일 때까지 기다릴 시간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저 스스로도 그런 것 같고요.
여 : 예전에는 다른 사람의 글이나 작품을 보면서 자극을 많이 받기도 하고 작품에 대한 아이디어도 떠올려보고 했지만 요즘에는 혼자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 많아졌고, 그런 시간이 아주 중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얼마 전부터는 제가 살면서 문득 문득 느끼는 것이라든가 작품에 대한 아이디어나 방향 같은 것을 글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올 해만 해도 제가 쓴 노트가 네 권이 되더군요. 이렇게 생각을 정리해 나가는 것을 통해서 얻는 것이 참 많습니다.
김 : 여락씨는 가장 기대되는 젊은 작가 중 한 명입니다. 여락씨의 작품은 해외에서 상당히 호감을 갖을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됩니다. 동양적인 세계관, 커다란 스케일, 독특한 표현방식, 어느 문화권에서도 공감할 수 있는 근원적인 주제와 작품의 깊이 등 여락씨의 작품은 세계무대에서 환영받을 만한 요소를 고루 갖추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계속 정진하시길 바라겠고, 좋은 소식 있길 바라겠습니다.
여 :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대화를 마친 후 전시장의 한 면을 차지하고 있는 설치작품 앞에서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라스코 동굴벽화를 연상케 하는 이 짐승의 썩은 흔적은 한 마리 짐승의 흔적이 아니라 기나긴 시간의 퇴적물처럼 보였다. 라스코 동굴벽화를 발견한 사람들이 느낀 감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2만 년 전의 이미지 앞에서 그들이 느낀 감동은 벽화가 놀랍도록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는 사실이나 당시의 생활상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에 있지 않을 것이다. 그들을 감동시킨 것은 아마도 상상할 수도 없이 긴 시간의 무게가 아니었을까? 영겁의 시간을 아로새긴 근원적 이미지가 있을까 싶다마는 여기 여락의 작품에서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 거대한 시간의 입김이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이런 작품을 만날 때 가장 기분이 좋다. 작품 앞에서 글과 말이 한없이 초라해지고 옹색해지는 그러한 작품. 앞으로 여락의 행보가 어떻게 될지 자못 궁금하다.
● 대담 및 정리 / 김응수 (사진비평 객원편집위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