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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하우포토에 실린, 지성배님과 배남우님의 정주하 사진전에 대한 리뷰입니다. 회원이 아닌 고로 펌질에 대한 언질을 드릴 수 없었던 바, 말씀을 드리지 못하고 스크랩해 올 수 밖에 없음을 공지하는 바입니다. 거부의 뜻을 주시면 삭제토록 하겠습니다. ㅜ_ㅜ
개인적으로 반드시 하고 싶은 일중에 하나가, 굉장히 포지티브하고 액티브한 전시리뷰 게시판을 만드는 것입니다. 제 힘으론 당춸! 될리가 없는 일이긴 합니다만... 상상만해도 참으로 흐믓한 기분을 감출 수 없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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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배남우님의 의견(자유게시판 No.1770)에 동조하는 의미로 올립니다. 여기의 리뷰는 오로지 내 개인의 생각입니다. 생각의 다름에 대해서 의견을 교환을 하다 보면 좋은 리뷰문화가 생기나지 않을까요?
[리뷰1] 정주하 사진전 <서쪽바다> 한미사진미술관 2004. 10. 30 ~ 12. 16 - 지성배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 세상을 만든 근본 물질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또, 그 근본 물질에서 어떻게 다양한 물체와 현상들이 생겨나는가에 대해서도 사색했다. 이 문제에 대해 탈레스는 물을, 아난시만드로스는 무한자를, 아나시메내스는 공기를 근본 물질로 제시하였다. 엠페도클레스는 흙, 물, 공기, 불의 네 가지 물질이 근본 물질이며, 네 가지 근본 물질은 변하지 않고 이것들이 섞여서 여러 가지 다른 물체가 된다고 주장했다. 또한 데모크리토스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수히 많고 다양한 원자들이 모여서 갖가지 물체를 이룬다고도 했다. 그리스 자연 철학은 이런 고민을 하면서 발전해왔다. 세상은 근본 물질, 다양한 원자들의 집합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숨 쉬고 알게 모르게,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정주하는 엠페도클레스가 말한 흙, 물, 공기, 불의 네 가지 물질로 사진에 접근한다. 그 첫 번째가 흙 - <땅의 소리>였고, 두 번째 작업이 물 - <서쪽바다>이다. 땅의 소리는 흙을 근간으로 인간과 자연의 소리를 채집했다면, 이번 작업은 물을 근간으로 우리의 삶과 물의 소리를 추적해 나간 것이다.
그런데 작가는 “물”을 생각하면서 왜 서쪽바다를 택하였을까? 알고보니 작가는 짠물로 통하는 인천 태생이다. 보고 자란것이 짠물 서해였던 것이다. 우리는 어떤 지향점을 가질 때 고향을 찾고 고향의 소리에 귀 기울인다. 고향은 심성의 텃밭이기 때문이다. 정주하의 서쪽바다는 그래서 인천의 연안으로부터 태안반도, 변산반도, 목포의 인근 해안까지 미친다.
바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바다는 서로 같지만 아주 다르다.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을 감싸고 있는 바다는 남해, 동해, 서해다. 바다는 제각각 물의 흐름이 다르고 수온이 다르고 성질이 다르고 사는 생물이 다르다. 서해하면 내게 생각나는 것은 소금기다. 남도에서 태어나 어린시절을 보내다가 나 또한 인천으로 옮겨갔다. 인천은 소금기로 가득했다. 월미도가 그러했고, 영종도가 그러했고, 소래포구가 그러했다. 특히 소래포구는 염전과 새우젓 냄새로 짠물의 대명사였다.
그런데 정주하의 서쪽바다를 보면 그의 사진에서는 짠물 냄새가 별반 느껴지지 않는다. 왜일까? 작가의 의식 속에서 짠물 인천보다는 짠기가 약간 빠진 서해, 그러니까 태안, 변산반도 이남으로 거주지를 옮겨 살았던 탓이었을까?
아무튼, 그는 낮은 앵글로 들끓는 바다를 보여주기도 하고, 물 빠진 갯벌의 스산한 양식장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는 <땅의 소리>에서 경배하듯 무릎을 꿇고 땅 속에서 피어오르는 작물들의 소리를 들려 주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경배의 몸짓으로 다가가서 애끓는 바다의 수많은 표정을 보여주고 있다.
땅의 소리가 땅을 딛고 사는 사람의 소리였듯이, 서쪽바다 안에는 바다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업이 담겨져 있다. 바다로 뻗어있는 저 튼실한 밧줄을 보라. 물 위에서 둥둥 유영하는 뱃전을 보라. 양식장의 그물을 보라. 또한 바다의 신호등, 뻘 속에 깊숙이 묻힌 깃발을 보라. 바다는 곧 삶의 밭인 것이다.
사실 나는, 정주하 사진전 <서쪽바다>를 보러 가면서 내심 걱정을 했었다. 이유는 청담동의 뤼미에르 갤러리에서 <적 스터지스 사진전>을 먼저 보았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적 스터지스의 사진을 보면서 왜 우리나라의 작가들이 세계적이지 못한 가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결론은 아주 간단하다. 작가라는 사람들이 기본적인 것을 소화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인화를 완벽하게 해냈다고 해서 그리 감탄할 일이 아니다. 그것은 작가의 기본적 소양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절로 감탄한다. 인화를 잘 했다고 말이다. 소설을 쓰는 사람은 당연히 소설을 잘 써야 하고, 사진을 하는 사람은 당연히 사진을 잘 만들어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주변에 웅성거리고 북적거리기는 작가는 많지만, 정작 좋은 질의 작품을 생산하는 작가층이 엷다는 것은 그래서 다 알만한 사실이 되어버렸다.
<서쪽바다>에 대한 나의 우려는 다행스럽게도 기우로 끝났다. 나는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꼬투리 잡을만한 것을 샅샅이 뒤졌다. 그러나 예상 외로 찾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고백하건대, 복도 쪽에 걸린 사진에서 한 건의 흠집을 발견했다. 그리고 미세한 톤을 잡지 못한 것이 두 서너 점 보였고, 전시장에 비해 작품의 수가 많다는 것이 눈에 거슬렸다. 그리고 가장 작가가 고민했던 물에 대한 의미가 바다로 향한 것에 대한 의문을 거둘 수 없다. 일상적으로 우리가 말하는 물은 소금기를 담고 있는 물이 아닌, 우물을 파서 두레박으로 걷어 올린 달짝지근하고도 시원한 물의 기억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정주하는 “사진인화는 사진가에게 신이 내린 형벌”이라고 말했다. 맞는 말 같다. 사진가는 그 형벌을 감수해야만 한다. 그 고통을 감내해야만 한 점의 인화물, 최종적인 작품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갈수록 디지털화 돼가고 있지만, 아날로그의 힘은 바로 그런 것이다. 고통을 감수하고서라도 자기의 표현을 한다는 것, 미세한 톤과의 끊임없는 싸움을 한다는 것, 디지털적인 셋팅이 아닌 온 가슴으로 내 안의 것을 품어내서 하나의 작품을 완성한다는 것이다. 그 고통을 견디는 자 만이 손으로 해낼 수 있는 사진작품의 미학을 21세기에 펼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ps) 얼마전에 최민식 선생님의 사진전을 봤다. 나는 최민식 선생님을 매우 존경하다. 어떻게 그런 에너지가 나올까 경도되기도 한다. 살아가는 동안 동시대의 인간에 대한 탐구를 할 수 있다는 것, 얼마나 경이로운가. 하지만 전시장에 들어서서 “시절이 그랬고 환경이 그랬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야”로 되돌아온다. 우리는 물론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최민식 선생님의 인간에 대한 애착은 전시 프린트물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동년배의 일본 사진가들을 보라. 확연히 다른 것이 무엇인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글: 지성배 2004.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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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하 사진전, <서쪽바다> - 배남우
언젠가부터 한미라는 공간이 전시 보다, 사진집에 대한 갈증을 조금이나마 해소시킬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시간은 흘러흘러 2005년을 향해 가지만, 여전히 기반이 단단하게 다져져 있는 소수 중견 작가들의 그다지 새로울것 없는 자리 지키기 정도의 전시가 열리는 곳이라는 편견 아닌 편견을 가지게 된 곳이기도 하다.
11월 어느날, 정주하의 서쪽바다를 보러 한미에 갔다.
전시를 보면서 가장 먼저 느꼈던 점은, 지금까지 이곳에서 보아왔던 전시 중에서 작품 수가 가장 많은것 같은 느낌이었다. 얼마전 김광수는 작가와의 대화 시간을 통해, 작가라면 자신이 전시를 하는 공간에 대하여 치밀하게 고민을 해야하며 최종적인 디스플레이도 머릿속으로 완성을 해 놓아야 한다는 얘기를 한적이 있다. 나 역시 그 말에 전적으로 동감하는데, 개인적으로 한미에서 열리는 이번 정주하 전시는 공간이 넉넉하게 수용할 수 있는 것을 벗어나, 포화 직전의 상태에 있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우리나라 삼면의 바다가 주는 느낌은 모두 다르기는 하지만..) "바다"라는 공간은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무한함이 있기에, 그것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그리고 감상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호흡" 이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처음으로 그의 실제 전시를 본 나로서는(도감전을 제외하고..) 다닥다닥 붙어 있는 프레임들, 작은 사진에서 큰 사진으로, 그리고 큰 사진에서 다시 작은 사진으로 넘어가는 하나하나의 작은 순간들 속에서 내 호흡을 어떻게 가다듬어 이 흐름을 쫓아 나아가야 할까..? 하는 고민과 마주치는 시간이 많았다.
"흙, 물, 불, 바람" 4개의 소재중에서 흙과 물을 먼저 이야기하고, 불과 바람을 나중에 이야기함은 설득력이 있는 이야기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즉 흙과 물처럼 손으로 만질 수 있고 눈으로 볼 수 있는 질감과 형태를 가진 요소에서, 불에 이르면 감각과 형태의 경계가 허물어지기 시작하고 결국 형태가 사라지고 아스라한 감각만 남게되는 바람으로 마무리됨은, 우리들의 삶과 닮은 것이 아닐까?
하지만 표현 방법에 있어서, 이전 시리즈였던 땅의 소리에서는 극도로 낮은 앵글이 사진에 힘을 주었던 반면에, 서쪽바다에서의 로우 앵글은 비교적 파도가 얕은 서해의 특성을 살릴 수 있는 장점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땅의 소리와 같은 힘을 발휘하는 데에는 실패했다는 기분이 든다. 어쩌면 이것은 "땅"과 "바다"라는 공간은 저 마다의 특성이 있는 공간이기 때문에, 똑같은 눈높이로 바라보았을때에 드러나는 오차일지도... 특히 바다를 바라보는 눈높이의 변화가 전체적인 시리즈 속에서 논리적인 흐름에 따르기 보다는, 작가 스스로 그때 그때마다 바다를 바라보는 감성의 불규칙적인 변화에 따르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 부분에서 이전의 "땅의 소리"와 "서쪽 바다"의 거리가 벌어진다고 보는데 전작인 땅의 소리에서는, 땅의 눈높이와 땅을 일구는 인물이 병치되면서 땅과 그 땅을 거쳐간 사람들의 소리없는 외침과 아픔이 설득력있게 전달되었던 반면, 서쪽 바다에서는 서해를 찾으면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평이한 대상들이 작가의 뿌리에 대한 향수를 되내이는것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본다. 대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갑작스런 태도 변화는, 그래서 남아 있는 불과 바람을 어떻게 풀어낼지 궁금하게끔 한다. 어쩌면 대상에 대한 이런 태도는 가장 마지막, 모든 이야기가 정리되는 시점에 나와야 하는건 아닌지...
한번더 김광수를 언급하면, 그는 이번 자신의 전시를 설명하면서 8년전의 구름 사진은 "수직적" 이었고, 8년이 지난 지금의 구름 사진은 "수평적" 이라고 표현했다. 내가 느끼기에 "수직적" 이라함은 보는 이의 심리적인 상태가 안정되어 있지 못하고 불안한 상태를 의미하고, "수평적" 이라함은 좌,우로 넒게 펼쳐져 있기에 편안하고 안정적인 심리 상태를 의미한다고 보는데, 이에 대해 그에게 질문을 했더니, 김광수는 이렇게 답했었다.
"저도 잘은 모르겠는데, 제 나이가(40대 후반) 그렇게 만드는것 같아요.."
흐르는 세월 앞에서는 장사 없다고, 요즈음 중견을 바라보는 사진가/평론가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세상에 대한 관조 혹은 내가 그동안 쳐왔던 울타리의 높이를 낮추는 것이었다. 정주하의 서쪽 바다도 나에게는 김광수의 구름과 비슷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잔잔한 서해 바다에 고즈넉하게 떠 있는 고깃배들처럼... "동고서저"의 지형을 언급하며, 서해에 갯벌이 있는 것은, 동쪽의 높은 곳으로부터 시작하여 서쪽으로 흐르면서 점점 검게 변해가는 그 물줄기를 정화해 주는 것이라고, 그래서 서해는 아픔을 간직한 곳이라는 작가의 노트와는 별개로, 프레임 속의 서쪽바다에서는 그러한 아픔을 느낄 수 없었던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지성배 :: 좋은 글입니다. 하나의 이미지로부터 작가를 추론하는 관찰력이 돋보입니다. 그런데 너무 조심스럽게 쓰려한 것 같군요. 젊음은 과감한 것!!! [2004/12/20]
이기철 :: 서쪽바다
바다.
다시 바다로 돌아왔다.
바다에 연해 있는 도시에서 태어나 성장한 나는 젊은 시절 그 도시를
떠나려 먼 여행을 하였다. 본디 정신에는 고향이 없는 법.
누가 태어난 곳을 ‘정신의 고향’ 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게 떠났던 바다다.
바다는 내게 근본적이다. 나는 언제나 그곳에서 마음을 얻으며,
바람과 사람과 하늘을 함께 만난다.
저 멀리 수평선이 끊임없이 다가오고, 때로 격노하는 변화는 내게
근본을 돌아보는 여유를 준다.
이곳과 저 먼 어느 곳을 연결해 주는 바다는 그래서 둥글다.
바다는 땅과 하늘의 사이이며, 이곳과 저곳의 사이이며,
공기를 머금고도 공기를 일궈낸다.
더욱이 이곳 서쪽의 바다는 우리에게는 희망이자 희망이다.
동이 높고 서가 낮은 우리의 땅은 모든 오물을 서쪽으로 털어 내고,
그래서 서쪽의 바다는 정화의 의무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또, 검은빛의 갯벌은 그 정화함의 전위이며, 자양분이 넘치는
벌의 의미가 다시 우리에게 자양으로 다가온다.
모든 것을 담아서 재생하는 바다는 내게 있어서 사진이다.
무엇을 바라보고 의식에 담아 다시금 생명을 부여해 보고자 하는
나의 사진 작업은 분명 그 자체가 바다다.
물론 땅이기도 하고, 바람이기도 하고,
또 불이기도 하다.
지금은 바다다.
정주하... [2004/12/21]
이기철 :: 위 선언과 그간 웹상으로 본 이미지들은 제겐 정직하지 않은 "텅 빈 충만"으로 다가옵니다. [2004/12/21]
youkki(유키) :: 리뷰글을 아주 차분히, 조심스럽게, 지겹지 않을 만큼 논리력을 가져가며, 풀었다고 저도 생각합니다.솔직히 저도, 정주하교수님의 서쪽바다에 대해서 전시리뷰를 쓰고 싶엇읍니다만, 포기를 했죠. 이좁은 바닥에서 튀는것은 위험하고, 표적이 될 수 있으며 시비의대상이 될 수 있는 위험과 감정을 소비해야 하는 쓸데없는 언쟁에 휘말릴 여지가 다분하기 때문 이었기 때문 입니다.그러나 남우님과 승배님은 성숙하게도, 남의 의견에 토를 달거나, 말꼬리를 물지 않으시는 상대를 존중하시고 판단은 보시는 분들 각자에게 판단을 맞기는 성숙한 대화가 인상적이고 하우식구들이 모델링으로 삼으셨어면 합니다.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맞다, 그러다가 아닌 나의 의견은 이러합니다. 저의 의견은 이러 합니다.고 작성하시고 나면 읽는 분들 개개인 각자 알아서 판단하는 한탬포 느린 대화법을 추천하는 바이며, 제가 리뷰를 쓰지 못한것은 주지하시다 시피 승배님의 스승이 정주하교수님이 시고 , 하우의 좌장이신 진동선 선생님과는 절친하시고, 이런 저런 연유로 상당히 어려웠고 또 저또한 정교수님께 많은 가르침을 받음을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이기에 어려웠고, 승배님의 말씀처럼,젊음은 과감함것은 사실이지만....여하튼 리뷰의 좋은점은 기행문에 가깝기에 그렇게 논리적점에 억매일 필요가 지나치게 없어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감정이나 주관적인 관점을 실어도 무방하기에 좀 더 과감해도 되지 않나 쉽기도하고....아뭏튼 남우님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는 봐 이며,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리뷰 스타일의 글쓰기는 신현림씨의 자기감정적 인간적 관점의 글 쓰기를 좋아하는 편입니다.이유느 사진을 꼭 사진으로만 해석 할려고 하지않는 인간주의적 ,자연주의적 시각을 선호합니다.화이팅 ! [2004/12/22]
youkki(유키) :: 죄송합니다 .기행문이 아니고 감상문으로 정정합니다.^^* [2004/12/22]
배남우 :: 지난 송년회때, 진선생님께서는 "아는 사람일수록 상처받기를 두려워하면 안된다."고 하셨습니다. 아무런 얘기 없이 조용히 넘어가는것이 당사자한테는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는 것이죠. 내 생각을 솔직하고 일목요연하게 잘 전달할 수 있고, 그런 얘기를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좋은 의견 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2004/12/22]
지성배 :: "상처"를 견디고 나면 큰 힘이 된다고 저는 믿습니다. 저는 솔직히 두려움이 많은 편입니다. 어떨때는 타인의 사소한 말 한마디가 비수가 되어 제 가슴에 꽂히면 끙끙 앓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래가진 않습니다. 살아야하니까요. 우리 사회는 상대방의 다양한 관점을 무시하는 경향이 많이 있다고 봅니다. 나와 다르면 틀린 것이고, 기분 나쁜 것이고, 상종하기 싫은 것입니다. 저도 저의 생각과 다른, 타인의 의견을 수용하는데 많이 인색했었습니다. 그러나 고쳐가려합니다. <리뷰>는 감상문이 맞습니다. 그러나 제대로된 <리뷰>는 자기의 논점을 명확히 전달하는데 있다고 봅니다. 저는 이곳 하우포토에 글을 쓰는 것이 한편으론 부담스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견뎌보려합니다. 배남우씨! 다음 달에는 한국작가 한 분과 외국 작가 한 분(1월에 국내에서 전시중인 분들 중)을 선정하여 리뷰를 올리면 어떨까요? [2004/12/23]
배남우 :: 오..~ 좋은 방법이네요. ^^ 막연하게 누군가의 전시를 보고 글을 쓰기 보다는, 미리 전시일정부터 챙기고, 관련 자료를 찾아본 뒤에 전시를 보고, 다시 돌아와 정리하여 글을 올리면 좀 더 짜임새 있는 글이 될것 같아요. 아울러 즐거운 성탄절 보내시길 바랍니다... ^^ [2004/12/23]
박영무 :: 이런 글들을 올리시는 여러분들 부럽습니다.
감상이든 평이든 이곳은 사진에 관한 자기의 글을 쓰는 곳이라 생각합니다.
주관적일 수도, 상대를 깍아 내릴 수도 있겟지요.
그러나 객관적이면 더 좋겠지만...... 저는 아직 용기와 공부가 부족해서 여러분들이 부러울 따름입니다.
저도 팍 팍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은 있으나, 맘데로 안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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