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입을 원하시는 분은 메일을 주시기 바랍니다. zabellocq@empal.com
     자물쇠
     nZ
     eZ


  zabel(2005-11-17 21:53:59, Hit : 1118, Vote : 211
 http://gelatinemotel.byus.net
 이윤진 사진

(
'.
개인적으로 가장 주목하는 국내 젊은 작가중 한명.   코멘트는 나중에.
.'
)
  + + +

















































































































































---------------------------------------------------------------------





공간을 성찰하여 숨 쉴 수 있게 하기 - 이윤진의 사진모험


농부가 땅을 갈면 그가 만든 선을 따라 홈 패인 공간이 생기고 그리하여 구획이 생기고 문명의 땅인 밭이 생기고 그 밭을 둘러싸고 길이 생기고 거기에 이름이 붙고 그게 오래 되면 역사가 되고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 평가하면 가치가 생기듯이, 사진가는 공간에 홈을 파서 이 모든 것들을 가능하게 한다. 공간은 텅 빈 듯이 보이지만 사진가의 프레임에 잡힌 공간은 프레임의 테두리가 만들어내는 선에 의해 구획이 지어지고, 프레임 속의 원근법의 투시선에 따라 공간의 성격이 규정되며, 그 속을 시선이 꽉 채우게 될 때 공간은 대단히 빡빡하고 바쁜 곳이 된다. 이 세상에 빈 공간이란 없다.

고대로부터 물리학자들은 에테르라는 가상의 물질이 공기처럼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다고 믿었다. 이 이론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나오면서 타당성을 잃었지만, 공간이 단순히 텅빈 헛것이 아니라는 인식은 분명히 있었던 것이다. 공간은 이미 시선과 역사와 물리와 전파와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공간을 점령하려는 인간의 의지는 하도 강하여, 먼 우주공간에도 인간의 담론과 그가 쏘아 보낸 희미한 전파가 가득 메아리치고 있다. 사진가는 카메라를 가지고 그 공간에 개입한다. 강력한 중력에 의해 공간이 휘듯이 사진가의 개입에 의해 공간은 휜다. 그게 우리가 보고 있는 사진적 공간이다. 브레송이 결정적 순간을 찍었다더라, 앗제가 사람 없는 파리를 찍었다더라, 베혀가 공장만 찍었다더라는 등 위대한 사진가들을 둘러싼 전설 같은 이야기들은 그가 공간을 살아나간 얘기들이다.

이윤진은 건축적 공간에 비집고 들어간다. 사실 건축적 공간은 매우 조밀한 곳이다. 건물 안에 꼭 뭐가 들어차 있어서만이 아니라, 건축물을 찍으려고 하면 대개는 찍는 방법과 접근하는 시선이 상투화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아무도 안 찍은 건축물의 공간 조차 이미 선대의 사진가들이 공간을 장악할 때 썼던 원근법이 가득 들어차 있어서 후대의 사진가가 자기만의 시선으로 빈 곳을 찾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오늘날 모든 예술이 그렇지만, 새로운 것을 창조해낸다는 것이 어려운 것은 사진적 공간에도 해당하는 문제인 것이다. 이윤진의 사진을 보고 있으면 속이 후련해지는 것은 그 공간 속에 자신 만의 공간을 짓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실내, 누구나 가 본 실내, 이미 공기의 밀도 만큼이나 빽빽한 시선의 밀도가 가득 차 있는 공간에서 자신만의 공간을 찾는다는 것은 새로운 예술의 어법을 찾는 것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물론 그녀는 엄마 치타가 사냥 하는 모습을 뒤에서 보고 사냥을 배우는 어린 치타처럼 뒤셀도르프에서 자신을 가르쳐준 베혀가 공간에 침투해 들어가는 법을 잘 보고 배웠다. 그 음덕이 오늘날 이윤진의 독특한 공간을 짓는데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자신의 사진의 계보를 작품 속에서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윤진의 사진은 투명하다고 할 수 있다. 사실 그녀의 사진에는 뒷면이 없다. 수수께끼처럼 파고 들어가서 풀어야 할 내면도, 이념도, 사상도 감추고 있지 않으며, 오히려 그런 것들을 감추는 비열한 구조에 맞서서 싸우고 있는 것이다. 그런 싸움은 어떻게 성립하는가. 그것은 사진적으로 보는 법과 연관돼 있다. 물론 그것도 공간 속에서 어떻게 보는가 하는 문제인 것이다. 공간 속에서 어떻게 보는가가 결국은 사진 속에 재현되어 있는 세계가 어떤 것인가 하는 문제와 연관되므로, 사진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모든 해석과 이 세계에 대한 이해와 지식과 감각의 형성은 다 공간의 문제로 귀착된다.

따라서 공간의 문제는 사진에서 핵심적인 문제이며, 사진가가 아무리 공간에 관심이 없어도 공간은 악착 같이 그를 졸졸 따라다닌다. 그가 육체가 없는 전적으로 정신적인 존재라면 공간을 피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는 이미 태어날 때 육체 속에, 육체를 짊어지고 태어났으므로 공간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사진의 공간은 사진적으로 보는 방법과 연관되어 있다.

회화가 오랜 세월 동안 선원근법이 부과해온 독단적인 보는 방법(scopic regime)을 전복하려 노력했고, 그 결과로 세잔느에서부터 입체파에 이르는 반(anti) 원근법적 회화가 나왔듯이, 사진에서 보는 방법에 대한 혁신이 이루어지려면 사진적으로 보는 방법에 대한 성찰이 있어야 한다. 이론적인 성찰 뿐 아니라 작업적인 성찰 말이다. 사진 하는 사람은 초보자건 대가건 화면을 구축물로, 아주 단단한 구축물로 만들려는 충동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 그래야 보는 사람이 사진 속의 공간에 어떤 사물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게끔 하는 설득력을 가질 것이기 때문이다. 진정 실험적인 사진이라면 (왜 실험적이어야 하느냐면 예술은 가만히 있으면 썩어서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사진적으로 보는 방법에 대해 근본적인 성찰을 해야 한다. 성찰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그것은 물질의 진지한 재편성에 의해 이루어진다. 흔히 생각하듯이, 인간의 잔머리로 하는 것이 성찰이 아니다. 묵직하기만한 물질이 자리를 바꾸어서 다른 곳에 앉는 것이 성찰이다. 사진가는 사진의 프레임 속에 물질을 재배치하여 성찰을 이루어낸다. 그것을 본 머리가 그제서야 '이거 뭔가 심각한 주제가 있군'하고 깨닫는 것이 성찰의 효과이다.

이윤진은 당연히 공간 속에 들어 있는 물질의 배치를 바꿈으로써 성찰적 두뇌를 돌린다. 그녀의 사진에는 다른 사진가들이 공간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강박관념이 없다. 사진가들이 가지고 있는 강박관념이란 사진의 공간을 건축의 공간으로 만들려는 경향이다. 즉 그들은 사진공간 속에 기존의 건축물과 유사한 원리로 된 건축물을 만들어 넣겠다는 충동을 가지고 있는데, 이윤진에게는 그것이 없는 것이다. 그녀의 사진은 우리가 경험할 수 없는 공간의 창출로 나타난다. 거기에는 선원근법이 없고, 체험할 수 있는 건축적 특성도 없다. 그저 공간의 한 파편일 뿐이다. 건축사진이라면 당연히 지켜야 하는 수직선이나 소실점도 없다. 사실 수직선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화면구성에는 수직선이 필요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책상 모서리를 찍었다면 거기에는 당연히 수직선이 나와야 한다. 그러나 이윤진은 교묘하게 그것을 피하고 있다. 마치 그 책상에는 수직선이라는 차원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이. 그 결과로 이윤진이 구축하는 공간은 직선이 하나도 없다는 프랭크 게리의 빌바오 구겐하임 정도는 아니더라도 선들이 뒤틀려서 건축물에 대한 지각을 헛갈리게 하는 렘 콜하스를 어느 정도는 닮았다고 할 수 있다.

그녀의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녀의 시선은 우리가 실내에 있을 때 취하지 않는 어정쩡한 높이에 놓여 있는 경우가 많다. 사실 그런 시선의 높이와 위치를 우리가 전혀 취해보지 않은 것은 아닐 것이다. 단지 공간을 살아가는데 별로 유용하지 않기 때문에 잊어버렸거나 포기해 버린 시선일 뿐이다. 우리의 시선은 문이나 책상 위의 사물, 창문 등 공간 속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에만 초점을 맞추도록 훈련돼 있다.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는 것은 참으로 어려울 뿐 아니라 이 세상 살아가는데 불편하다. 사무실의 사무원이 창틀의 부분만 보고 있다거나, 책상 위에 놓인 중요한 서류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그 모서리를 이루는 목재들의 각도와 거칠은 질감에만 관심이 있다면 회사는 참으로 난감할 것이다. 이윤진의 사진의 세계가 그런 난감한 세계다. 그녀의 어떤 사진은 어린애의 눈높이에서 찍은 것도 있는데, 어른의 눈높이는 너무나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공간에 대한 성찰이 단순히 공간을 잇는 선으로만 되어 있다고 하면 등본서류처럼 참 무미건조하고 삭막할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공간에는 색도 있다. 이윤진의 사진은 매우 정교하게 콘트롤된 색채로 되어 있는데, 그렇다고 눈에 확 띄는 튀는 색깔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공간을 채우고 있는 것은 시선 만이 아니라 색채라는 인식 때문에 그녀는 자신 만의 공간을 자신만의 색채로 채우기 위해 섬세하게 콘트롤된 색을 구현해 넣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묵직하게 가라앉은 중간색이다. 그녀의 사진에서는 종이의 흰색 마저 무거워 보인다.

아무 생각 없는 빈 종이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한다는 인상은 있지만, 모든 배우들에게 비중 있는 연기를 시키고 싶어 하는 감독처럼, 그녀는 자신의 사진 속의 어떤 디테일도 무의미하게 지나가게 내버려두지 않는 욕심을 가지고 있다. 사진가는 관념이나 언어로 성찰하는 것이 아니라 재료를 통하여 성찰하며, 사진가에게 주어져 있는 재료는 시선의 질서와 공간의 구성을 통해 성찰하기 때문이다. 성찰 얘기를 하니까 너무 딱딱해지고 말았는데, 결국 중요한 것은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찾는 것이 아닐까? 우리의 눈도, 두뇌도, 카메라도 숨을 쉬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윤진의 사진이 빽빽한 공간에 틈을 만들어 우리를 숨 쉴 수 있게 해준다면 더없이 고마울 것이다.

- 이영준<테크놀로지 비평가>





* zabel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5-11-22 19:39)
* zabel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6-01-17 21:10)



lurker (2005-11-21 10:25:52)  
...이윤진은 건축적 공간에 비집고 들어간다. 사실 건축적 공간은 매우 조밀한 곳이다. 건물 안에 꼭 뭐가 들어차 있어서만이 아니라, 건축물을 찍으려고 하면 대개는 찍는 방법과 접근하는 시선이 상투화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제가 보는한 이 윤진의 작업이 보여주는 것은 건축적 공간이 아닌 익명의 사람이 살고있는 공간입니다. 그녀의 작업은 건축에 의해 마련된 텅빈 공간(space)인 방(room)에 채워진 즉, 어떤 개인의 생활 장소(place, topos, interior)이기 때문입니다. 건물이 나오면 건축사진이고 인물이 나오면 인물 사진으로 보는 것이 오히려 상투적인 사진보기의 예로 보여지는 군요. 인물이 없는 인물사진일 수도 있는 그녀의 사진을 이런 상투적인 시선으로 보아선 이 윤진은 물론이고, 이런 사진의 원류인 칸디다 회퍼(Candida Höfer)와 토마스 데만트(thomas demand)의 작업을 애초 출발 할 수 없게 만들지요. 일본 말중에 혼네(本音, 사적인 현실, 속마음)와 다떼마에(建前, 겉, 공적인 현실, 겉치레)라는 두단어가 있는데 이것이 건축의 용어에서 나왔다는 것은 건축에서도 공간개념을 공과 사, 안과 밖, 그리고 공간과 장소로 구별하고 있다는 겁니다. 즉, 기표와 기의가 있는 공간말입니다.

__candida hoefer







__ thomas demand








...이윤진의 사진을 보고 있으면 속이 후련해지는 것은 그 공간 속에 자신 만의 공간을 짓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실내, 누구나 가 본 실내, 이미 공기의 밀도 만큼이나 빽빽한 시선의 밀도가 가득 차 있는 공간에서 자신만의 공간을 찾는다는 것은 새로운 예술의 어법을 찾는 것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만일 이 작업이 새로운 예술의 어법을 찾는것 만큼이나 어렵다는 자기 공간을 찾기에 성공했다면 그것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알려야 하는 것이 건강한 비평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그녀는 엄마 치타가 사냥 하는 모습을 뒤에서 보고 사냥을 배우는 어린 치타처럼 뒤셀도르프에서 자신을 가르쳐준 베혀가 공간에 침투해 들어가는 법을 잘 보고 배웠다. 그 음덕이 오늘날 이윤진의 독특한 공간을 짓는데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눈물 납니다. ㅠ.ㅠ


...자신의 사진의 계보를 작품 속에서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윤진의 사진은 투명하다고 할 수 있다. 사실 그녀의 사진에는 뒷면이 없다...

% 자신의 사진에 계보를 보여주었으면 그것이 뒷면이지 그럼 앞면인가요? 그리고 뭐가 투명하다는 건지. 그럼 자신의 길을 개척한 계보없는 대부분의 작가들의 작업은 불투명하겠군요. 그리고 계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국악 한마당에서도 요즘은 자주 들어 보지 못하는 단어 이군요. 설마 현대 예술을 전승의 의미로 생각하지는 않겠지요.


...그녀의 사진에는 수수께끼처럼 파고 들어가서 풀어야 할 내면도, 이념도, 사상도 감추고 있지 않으며, 오히려 그런 것들을 감추는 비열한 구조에 맞서서 싸우고 있는 것이다...

% 없는거와 싸우는 것은 다릅니다. 그리고 있는거와 감추는 것도 또한 다릅니다. 비열한 구조란 말은 도대체 무슨 맥락인지 스스로 수수께끼를 내시며 한없이 감추고있는... 애초 작업에 없는 것이라면 언급을 안하던지 아니면 없다고 하면 되지 뭐 그것들과 맞서 싸운다고 하시니..선험에 대한 얘기인지.. 바꾸어 말하자면; 조 용필의 노래엔 수수께끼처럼 파고 들어가서 풀어야 할 내면도, 이념도, 사상도 감추고 있지 않으며, 오히려 그런 것들을 감추는 비열한 구조에 맞서서 싸우고 있는 것이다...
"이 윤진의 사진엔 [ ]도 [ ]도 감추고 있지 않다. 그런 비열한 감추기의 구조와 오히려 싸우고 있는 거다." 위의 괄호안엔 대부분의 개념이 들어 갈 수 있다.. 그럼 그 [ ]와 이윤진이 싸운다는 겁니까? 스펀지놀이 의 "열여라 지식" 같군요.


...그런 싸움은 어떻게 성립하는가. 그것은 사진적으로 보는 법과 연관돼 있다. 물론 그것도 공간 속에서 어떻게 보는가 하는 문제인 것이다. 공간 속에서 어떻게 보는가가 결국은 사진 속에 재현되어 있는 세계가 어떤 것인가 하는 문제와 연관되므로, 사진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모든 해석과 이 세계에 대한 이해와 지식과 감각의 형성은 다 공간의 문제로 귀착된다...

% 싸움이라니요..사진적으로 보는 법이라는 것이 있기나 합니까? 음악적으로 음악을 듣는 법이 있기나 하나요? 무슨 책제목 같군요.. "누구나 10분 읽으면 작곡 할 수 있다" .. 무슨 행동주의자들의 전략도 아니구... 무서운 환원주의입니다. 모든것이 공간의 문제로 귀착하다니... 그럼 시간은 뭐고 빛은 뭐고 언어는 혹은 역사는 뭔지, 도대체 공간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이해를 하시고 사진의 공간을 말씀하시는지... 사진에서 공간의 문제는 장소의 문제도 포함합니다. 공간만이 아닙니다. 공간과 장소의 구별없이는 건축사진과 이 윤진의 사진을 볼 수 없으리라 생각 합니다. 위에서도 얘기 했지만 방(공간)과 안방(장소), 건물(공간)과 집(장소)은 엄연히 틀립니다. 도대체 저 사진안에 보이는 그 방의 주인들의 소품들은 안 보시는지... 그리고 그 소품들이 놓여 있는 가구와 공간의 모소리와 창틀들 서양의 것들에 종종보이는 100원 짜리 동전, 간장종지 등등 ...그 재료들이 바로 건축공간을 개인의 장소(침실과 거실)로 만드는 것입니다. "공간은 이미 시선과 역사와 물리와 전파와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라고 보이지 않는 것들을 거론하며 실제 보이는 존재하는 눈앞의 대상은 보지 않으시는지..


...따라서 공간의 문제는 사진에서 핵심적인 문제이며, 사진가가 아무리 공간에 관심이 없어도 공간은 악착 같이 그를 졸졸 따라다닌다...

% 공간은 사진의 문제가 아니라 기본적인 주어진 것 입니다. 색과 빛은 회화의 핵심문제인가요? 글씨는 시의 핵심 문제 인가요? 악착같이 따라다니는 것은 공간이 아니라 작가 입니다. 그러기에 작가라는 소리를 듣는 겁니다. 그것은 물리학자에게도 마찬가지임. 그리고 힘빠지는 것은, "숨쉬기는 인간의 핵심문제이다"라는 식의 명제가 왜 필요한지 모르겠군요.


...그가 육체가 없는 전적으로 정신적인 존재라면 공간을 피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는 이미 태어날 때 육체 속에, 육체를 짊어지고 태어났으므로 공간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사진의 공간은 사진적으로 보는 방법과 연관되어 있다...

%공간을 피하는 유일한 방법은 공간이라는 개념을 모르는 것이 방법입니다. 위의 글에 전체적으로 장소(topos)라는 개념이 빠져있는 것도 그러한 이유입니다. 도대체 사진적으로 보는 방법이 무엇인가요?


...회화가 오랜 세월 동안 선원근법이 부과해온 독단적인 보는 방법(scopic regime)을 전복하려 노력했고, 그 결과로 세잔느에서부터 입체파에 이르는 반(anti) 원근법적 회화가 나왔듯이, 사진에서 보는 방법에 대한 혁신이 이루어지려면 사진적으로 보는 방법에 대한 성찰이 있어야 한다. 이론적인 성찰 뿐 아니라 작업적인 성찰 말이다. 사진 하는 사람은 초보자건 대가건 화면을 구축물로, 아주 단단한 구축물로 만들려는 충동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 그래야 보는 사람이 사진 속의 공간에 어떤 사물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게끔 하는 설득력을 가질 것이기 때문이다. 진정 실험적인 사진이라면 (왜 실험적이어야 하느냐면 예술은 가만히 있으면 썩어서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사진적으로 보는 방법에 대해 근본적인 성찰을 해야 한다. 성찰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그것은 물질의 진지한 재편성에 의해 이루어진다. 흔히 생각하듯이, 인간의 잔머리로 하는 것이 성찰이 아니다. 묵직하기만한 물질이 자리를 바꾸어서 다른 곳에 앉는 것이 성찰이다. 사진가는 사진의 프레임 속에 물질을 재배치하여 성찰을 이루어낸다. 그것을 본 머리가 그제서야 '이거 뭔가 심각한 주제가 있군'하고 깨닫는 것이 성찰의 효과이다...

%진정 모더니스트입니다. 무엇인가(여기선 보는방법)에 대한 믿음을 강조하며 그 무엇인가에 대한 성찰은 없으십니다. 끝까지 사진적으로 보는 방법에 대한 설명은 없군요. 결국엔 성찰이라는 말로 애매한 형이상학을...성찰에 대한것, 실험에 대한것, 썩는 거에 대한것 모두 1:1 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 군요.


...그녀의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녀의 시선은 우리가 실내에 있을 때 취하지 않는 어정쩡한 높이에 놓여 있는 경우가 많다. 사실 그런 시선의 높이와 위치를 우리가 전혀 취해보지 않은 것은 아닐 것이다. 단지 공간을 살아가는데 별로 유용하지 않기 때문에 잊어버렸거나 포기해 버린 시선일 뿐이다. 우리의 시선은 문이나 책상 위의 사물, 창문 등 공간 속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에만 초점을 맞추도록 훈련돼 있다.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는 것은 참으로 어려울 뿐 아니라 이 세상 살아가는데 불편하다. 사무실의 사무원이 창틀의 부분만 보고 있다거나, 책상 위에 놓인 중요한 서류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그 모서리를 이루는 목재들의 각도와 거칠은 질감에만 관심이 있다면 회사는 참으로 난감할 것이다. 이윤진의 사진의 세계가 그런 난감한 세계다. 그녀의 어떤 사진은 어린애의 눈높이에서 찍은 것도 있는데, 어른의 눈높이는 너무나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 윤진의 사진을 사진적으로 보는 방법이라면 저도 제대로 난감하군요. 어른의 눈높이가 재미없다는 말 어디서 본듯한 눈높이 교욱의 광고 명언입니다.


...공간에 대한 성찰이 단순히 공간을 잇는 선으로만 되어 있다고 하면 등본서류처럼 참 무미건조하고 삭막할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공간에는 색도 있다. 이윤진의 사진은 매우 정교하게 콘트롤된 색채로 되어 있는데, 그렇다고 눈에 확 띄는 튀는 색깔이 있는 것은 아니다...

%결국 언제나 찾아오는 칼라와 프린트 이야기...


단지, 공간을 채우고 있는 것은 시선 만이 아니라 색채라는 인식 때문에 그녀는 자신 만의 공간을 자신만의 색채로 채우기 위해 섬세하게 콘트롤된 색을 구현해 넣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묵직하게 가라앉은 중간색이다. 그녀의 사진에서는 종이의 흰색 마저 무거워 보인다.

%음.. 침묵..


아무 생각 없는 빈 종이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한다는 인상은 있지만, 모든 배우들에게 비중 있는 연기를 시키고 싶어 하는 감독처럼, 그녀는 자신의 사진 속의 어떤 디테일도 무의미하게 지나가게 내버려두지 않는 욕심을 가지고 있다. 사진가는 관념이나 언어로 성찰하는 것이 아니라 재료를 통하여 성찰하며, 사진가에게 주어져 있는 재료는 시선의 질서와 공간의 구성을 통해 성찰하기 때문이다. 성찰 얘기를 하니까 너무 딱딱해지고 말았는데, 결국 중요한 것은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찾는 것이 아닐까? 우리의 눈도, 두뇌도, 카메라도 숨을 쉬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윤진의 사진이 빽빽한 공간에 틈을 만들어 우리를 숨 쉴 수 있게 해준다면 더없이 고마울 것이다.

- 이영준<테크놀로지 비평가>


%정말 심하군요. 솔직한 심정입니다. 살짝 화날뻔한. 이런 평들이 사진 혹은 이론을 꿈꾸는 젊은 이들의 머리 속에 각인 될까 걱정됩니다. 이 윤진의 작업을 옹호하는 것도 절대아니며 솔직히 작업또한 저에겐 흥미없으나 이런 글들로 요상하게 도장찍혀지는 것들이 안타까와 댓글을 올려 봅니다. 어디까지나 작가도 이 텍스트엔 공동책임이라고 생각 합니다.
zabel (2005-11-22 19:39:11)  
.
.
.
재청이요. ㅠ_ㅠ:!!!!!!!!!!!!!!!!!!!!!!!!!!!!!!!!! 별 인정하곤 싶지않지만, 적확한 이상함을 적기 힘든 관계로 포기-_-하고 사진밑에 필사만 해놓았었는데 이렇게 세세히 글/이미지까지 올려주시면서 명명백백 드러내 주신 것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더불어 제 불학무식을 자책하면셔.
사실 이런 텍스트가 일궈낸 책임의 90%는 작가가 져야한다고 봅니다. 이런 텍스트를 전시 소개글과 같이 넣어버린 인물이 작가 본인일테니까요. 물론 여러 역학관계에 의해 그리 되었겠지만, 스스로가 사진의 비평에 대한 문제성을 알고 있었다면 한없이 무책임한 짓이었겠단.
일전에 메신저로 전시 비평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만, 그들의 "우리만 되는겨"식의 글질이야 언젠가 뽀샤지게 되잖을까란. 제가 이윤진 사진을 주목하고 있는 이유는 정물 사진에 대한 관심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사진을 이야기하는 윗 평자와 같은 기묘하면서 부정확한 언설들이 흥미롭기때문입니다. 물건너에서 학습이 그대로 우러나는 작업을 이야기한다는 일에 있어 어떤 주의가 필요한지를 생각케도 하고요. 말씀대로 공간이 단지 보는 것만의 문제 혹은 보는 일이 공간에서만 가능하지 않음을, 또한 삶/육체가 타물성과 어떤 연계로서 자리하는가에 대한 문제는 다시금 깊이 생각해얀다 봅니다.
.
.
.
lurker (2005-11-25 08:15:50)  
//10000 FEET님 이곳 [날것]은 모든 것을 수용한다고 저 위의 공지에 써있습니다. 그러나 >대화투의 실명거론<은 넷상이 아닌 둘이 직접 만나서 님 말대로 커피한잔하며 하시면 더 좋지 않을까요?

가스실 안의 방독면을 쓰고있는 자의 감추어진 목소리는 사단장의 언어(원근법의 시선)보다 공포입니다.

전에도 여기서도 이러한 문제로 무의미한 말들과 설득들이 있었고 님이 말한 위계는 바로 계급의 위상뿐만이 아닌 은폐된자와 비은폐된자의 불균등한 시선에서도 시작됩니다. 님 스스로도 관찰되어지는 세계와 분리된 관찰자의 역활을 꿈꾸시나요? 그런한 관찰자 뒤엔 언제나 납작한 뒤통수와 또 다른 주름진 우주가 보입니다.
10000 FEET (2005-11-25 08:34:40)  
어허 인정사정이 없으시군요 그런데 맞는말입니다.나중엔 실명까놓고 서로 공평하게 엉기고 풀리는 '토지위의 ''날' 것'을 기대해봅니다.
lurker (2005-11-25 21:24:48)  
어허 감사하구려!!
이놈의 넷상의 아이디는 왠지 글쓰기의 콘돔같습니다.
10000 FEET (2005-11-26 00:48:08)
전 콘돔을 끼면 무감각한 롱타임 .:강쇠가 되버립니다. 길게 뻗고 둠든하나 뭔가 이건 아닌,, 예전에 루커님께서 실명을 걸고 언사를 펼치는 자에 대한 기본적인 리스펙트와 어쩔 수 없이 콘돔뒤에 숨은 자.:가 선점하는 유리한 역학에 대해서 말씀하신 부분에 대해서 공감합니다. 여기 사이비 너스 아니 10000 FEET의 실명모르는 자 있습니까 이런, 콘돔도 보여주지 않는 자위족들이 숨소리를 고르는 군요 블랙커피마시는 투로 갈 땐 저부터 콘돔 벗고 절정오르렵니다 겨울불어오는 독일계절에 서면 분위기가 아니라 생존욕을 자극하는 서늘함이 있다


519   타향살이 [1]  열정적야심가 2005/12/02 823 202
518   슈퍼스타 [2]  lurker 2005/12/01 889 248
517   문의 [8]  열정적 야심가 2005/12/01 835 199
516   [디지탈이미지]플레이보이 [1]  lurker 2005/11/28 989 243
515   [essay] 이 사 하 기 [2]  10000 FEET 2005/11/28 755 182
514   [아스키아트]뽀르노 [5]  lurker 2005/11/25 965 227
  이윤진 사진 [6]  zabel 2005/11/17 1118 211
512     [re] 이윤진 사진   2007/02/14 766 256
511   [넷아트]안 수연 [1]  lurker 2005/11/19 873 194
510   [번역글] 1. 상호작용(Interactivity)의 ... [9]  lurker 2005/11/16 1676 493
509   [sms] password >2 [5]  _______ 2005/11/15 707 159
508   [링크]넷문학 [2]  lurker 2005/11/12 809 193
507   hello, world!  lurker 2005/11/08 881 189
506     스테로이드 [1]  zabel 2005/11/09 857 215
505   고민 [10]  정은 2005/11/07 814 165
504   [essay] Praise of Distance [4]  psyvenus 2005/11/04 703 142
503   [퍼온것] [7]  이승재 2005/10/28 923 210

[1][2][3][4][5][6][7][8][9] 10 ..[40] [다음 10개]
 

Copyright 1999-2022 Zeroboard / skin by zero
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