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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zabel(2005-08-30 21:44:03, Hit : 2077, Vote : 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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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herrie Levine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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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사회를 의지/견제하지 않은 페미니즘은 정말 불가능한 것인가.   주체 스스로 오롯이 존재하는 것이 진정 불가능한 사회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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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용의 미학" : 세리 르빈(Sherrie Levine)의 Rephotography 연구  

문호경(미술사)


I. 들어가는 말

1970년대 말부터 다양한 이론적 패러다임을 통해서 사진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 시작되었고, 특히 미국 미술계에서 『옥토버』(October)를 중심으로 활동한 이론가들은 후기구조주의의 영향을 받아 모더니즘 미술의 원칙들을 비판하고 해체하는데 있어 사진의 역할을 강조했다. 이들은 기계 복제 시대의 예술인 사진이 모더니즘 미학을 전복시킬 수 있는 매체라고 인정하였지만, 1950년-1960년대를 거치면서 사진이 모더니즘 미술로 규정되고 특히 1970년대의 미술 시장이 경제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사진을 흡수하는 과정에서 무시된 사진의 담론 구조 및 사진적 실천의 다양성과 차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였다. 이러한 미술계의 변화를 배경으로, 1980년대 초 세리 르빈(Sherrie Levine, 1947-)은 미술 관련 서적에 도판으로 실려 있는 유명한 미술가들의 사진 작품과 회화 작품을 재촬영한 '리포토그래피(rephotography)'를 제작했다. 르빈은 다른 작가들의 작품에 변형이나 가감을 전혀 하지 않고 그대로 사진을 찍은 다음 <무제 (워커 에반스를 따라서)>(1981), <무제 (클로드 모네를 따라서)>(1982)와 같이, 작품의 출전을 솔직히 드러내면서 자신의 작업으로 전시했다(도판 1).


   도판 1. <무제 (클로드 모네를 따라서)>, 1982년, 컬러 사진


이러한 그녀의 작품은 과연 미술로서 적법한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다른 이의 작품을 사진으로 다시 찍어 자신의 작품으로 제시한 르빈의 행위는 '차용(appropriation)'으로 간주된다. 차용이라는 용어는 사용되는 경우에 따라 그 의미가 바뀌지만, 일반적으로 한 명의 미술가가 다른 미술가의 작품을 새로운 맥락에 둠으로써 본래의 의미를 변화시키는 것을 뜻한다. 미술의 역사에서 차용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이루어져온 흔한 관행으로 19세기 말까지 종교적 필요, 교육, 사회적·문화적 관심, 무역 경쟁, 현존하는 미술 작품에 대한 정보 전달 등의 실용적인 목적으로 꾸준히 행해져 왔다. 20세기에 들어 차용은 새로운 동기를 바탕으로 더욱 폭넓게 사용되는데, 미술가들은 미술과 미술사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개념 및 문화적 쟁점에 관한 자신들의 의견을 표명하기 위해 차용을 이용했다. 특히 르빈이 리포토그래피를 제작하던 1980년대에 들어 차용은 시대가 요구하는 하나의 기술로 특징지어질 수 있었고,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사이의 분기점을 표시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모더니즘 미술에 대한 반발로서 1970년대 건축에서부터 시작된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은 비합리성·파편화·복합성·다원화·장식성·절충주의·아우라(aura)의 고갈·장르간의 경계 붕괴·제도권에 대한 저항 등을 특징으로 하면서 모더니즘 미술의 절대적인 가치들을 파기했는데, 이러한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에서 압도적인 방법으로 과거의 양식을 빌려 현재 상황으로 새롭게 만드는 차용이 사용되면서 차용은 시대적 징후이자 전략적 성격을 띠게 되었다.

그러므로 본고에서는 다른 이의 작품 사진을 다시 사진으로 찍어 자신의 작품으로 제시한 르빈의 리포토그래피가 단순한 표절이나 도용이 아닌 정당한 미술 작품으로 인정받는 이유와 근거들을 밝히고자 한다. 르빈이 실행한 차용의 목적과 방법을 서술하면서, 그녀의 리포토그래피가 포스트모더니즘 미술로서 지니는 특징들을 살펴보고 기존의 미술 제도에 가했던 비판적인 측면을 재평가해 보고자 한다.

II. 모더니즘 미학의 붕괴와 르빈의 리포토그래피

르빈은 위스콘신 대학교에서 사진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은 후 1977년 <아들과 연인> 연작을 전시하면서 미술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도판 2).



            도판 2. <아들과 연인>, 1976-1977년, 그래프 용지 위에 형광 템페라


데이비드 살르(David Salle), 제임스 웰링(James Welling), 맷 멀리컨(Matt Mullican) 등 캘리포니아 미술 학교(California Institute of the Arts) 출신 작가들과 만나면서 이미지를 줄이는 것에 흥미를 가지게 된 르빈은, <아들과 연인> 연작을 시작했고 이를 뉴욕 3 머서가 화랑(3 Mercer Street Gallery)에서 전시했다. <아들과 연인>은 36점의 드로잉으로, 22×28인치(55.9×71.1cm)의 커다란 그래프 용지 위에 서로 마주보거나 등을 맞대고 있는 한 쌍의 두상 실루엣이 형광 템페라로 그려져 있었다. 전직 미국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 아브라함 링컨(Abraham Lincoln), 존 F. 케네디(John F. Kennedy)의 측면이 주로 이용된 각각의 작품에서 두상들은 크기를 달리하며 짝을 이루었고 작품의 의미를 변화시키도록 의도적으로 배치되었다. 이미지들은 뚜렷하고 강렬했으며 짝지어진 방식에 따라 서로 다른 맥락에서 읽혀질 수 있었다.

1979년, 르빈은 뉴욕 소호에 있는 대안 공간인 키친(The Kitchen)에서 열린 슬라이드 쇼에서도 높이가 8피트(약 2.4m)에 이르는 거대한 실루엣 형상을 이용했다. 이 전시회는 르빈이 <아들과 연인>에서 표현하고자 했던 바를 보다 분명히 밝히려는 시도였다. 이미지들을 자유롭게 만들고자 했던 자신의 목표를 <아들과 연인>에서 달성할 수 없었다는 사실에 불만족스러워한 르빈은 드로잉을 슬라이드로 비춰 붓자국을 제거하였고, 관람객들은 작품이 시각적으로 뛰어나다는 사실 대신에 아이디어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이러한 실루엣 작업은 르빈이 <콜라주>라고 불렀던 작품으로 이어졌는데, 그녀는 잡지나 책에 실린 패션 광고와 풍경 사진을 실루엣 모양으로 오려내어 대지(臺紙) 위에 놓거나 이러한 이미지들 중 몇 개를 슬라이드 쇼에 이용했다. 또한 사진으로 복제되어 있는 다른 미술가들의 작품을 대지 위에 붙이는 작업을 선보이기도 했다.

르빈이 리포토그래피 연작에 착수한 것은 바로 이 무렵이었다. 그녀는 1981년 뉴욕 메트로 픽처스 화랑(Metro Pictures Gallery)에서 열린 개인전에서 처음으로 리포토그래피를 전시했다. 르빈은 미니멀리스트들이 기하학을 사용했던 것처럼 간단하지만 명쾌한 표상 방식을 사용하는 다른 미술가들의 작업과, 사진의 이용을 통해서 경험하게 된 경제적인 방법으로 리포토그래피에 이르렀다.

1. 독창성에 대한 공격

르빈의 <무제 (에드워드 웨스턴을 따라서)>(1981)는 에드워드 웨스턴(Edward Weston)이 자신의 셋째 아들을 찍은 흑백 사진 <닐>(1925)을,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윗킨 갤러리(the Witkin Gallery)에서 만든 포스터에 실린 웨스턴의 사진을 르빈이 재촬영한 작품이다(도판 3).


 
           도판 3. 세리 르빈, <무제 (에드워드 웨스턴을 따라서)>, 1981년, 흑백 사진


즉 웨스턴의 작품을 다시 찍은 르빈의 리포토그래피는 웨스턴의 사진, 윗킨 갤러리의 포스터, 르빈의 작품으로 이어지는 2차의 복제 과정을 통해 완성된 것이다. 게다가 웨스턴이 찍은 사진의 오리지널 프린트가 포스터 제작에 이용되지 않고 다른 프린트, 예를 들어 웨스턴에 관한 단행본이나 전시회 카탈로그에 실린 도판이 포스터에 인쇄되었다면, 그리고 윗킨 갤러리가 찍은 첫 번째 첫 장이 아닌 다른 포스터를 르빈이 재촬영한 것이라면, 그녀의 리포토그래피는 무수한 촬영과 인화 단계를 거쳐 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언뜻 보면 웨스턴의 작품과 르빈의 작품을 구별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웨스턴의 빈티지 프린트(vintage print)를 르빈의 리포토그래피 옆에 갖다 두고 나란히 검토해 보면, 명암의 미묘한 변화, 디테일의 세심한 정도, 형태와 그림자의 선명도 및 정교함 등을 두 장의 사진 사이에서 쉽게 구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웨스턴의 작품을 즉시 알아볼 수 있는 사람들도 웨스턴의 오리지널 프린트를 직접 봐서 알고 있는 경우보다는 책이나 잡지에 복제된 이미지를 통해서 그 특징을 파악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위에서 언급한대로 웨스턴의 사진과 르빈의 사진을 비교하는 것이 두 작품의 근본적인 차이점을 말해줄 수는 없다.

르빈의 리포토그래피가 제기하는 첫 번째 문제는 미술 작품의 독창성에 관한 것이다. 르빈의 리포토그래피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이용할 수 있는 시각적 레퍼토리가 완전히 고갈되었고, 미술가들은 더 이상 독창적인 이미지를 창조해낼 수 없으며 단지 현존하는 이미지들을 재배열할 수 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즉 르빈은 미술 작품에 있어서 근본적으로 독창적인 것이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면서, 새로운 것의 창조와 유일함이 더 이상 미술 작품의 필수적인 요소가 아님을 강조한다. 이미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앤디 워홀(Andy Warhol)과 같은 미술가들은 독창성과 창의력이 물질적인 대상이 아닌 미술가의 아이디어와 행위 속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도판 4).


 
           도판 4. 마르셀 뒤샹, <샘>, 1917년, 원작은 소실


그들은 기성품도 미술 작품이 될 수 있고, 미술가의 능숙한 기술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며 물리적인 작품 그 자체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르빈의 리포토그래피는 뒤샹의 레디메이드(Readymade), 워홀의 리메이드(Remade)와 마찬가지로 미술 제작에 있어서 수공적(手工的)인 개념을 제거하고 미술가의 선택과 제시가 기성품이나 가공된 이미지를 가치 있는 미술 작품으로 만들 수 있음을 보여주면서 미술 작품의 독창성이라는 개념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다.

그러나 뒤샹의 레디메이드가 기계에 의해 대량 생산되고 대체할 수 있는 복제품들을 무관심하게 선택하여 제시한 것이라면, 르빈의 리포토그래피는 사진 산업의 확장과 사진 기술의 보급으로 현실에 대한 인간의 직접적인 경험을 대치하게 된 사진 이미지, 그 중에서도 특히 미술 작품의 '사진 복제품'을 일상적인 사물로 선택한 것이다. 이것은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이 예견했던 바인, 기계 복제 시대에 미술 작품을 경험하는 새로운 방식임에는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르빈이 웨스턴의 사진을 처음 발견했을 때, 그녀는 미술관 벽에 걸려 있는 독창적이고 유일한 미술 작품이 아니라 책과 잡지에 실린 복제품의 감상자였다. 우리들의 미술 작품 감상이 상당 부분 복제품을 통해 이루어지듯이, 르빈의 경험은 복제품에 대한 경험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주저 없이 작품을 만져볼 수 있었다. 그리고 르빈은 복제된 사진에 심미적 거리를 두지 않았고,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이를 사용했다. 따라서 르빈은 미술 작품이 시각적 숙고의 대상으로서만 존재한다는 모더니즘 미학의 필요 조건도 무시할 수 있었다. 또한 워홀이 대중의 일상적이고 친숙한 환경이 대량 생산된 상품 및 포장 이미지임을 인식하고 스스로를 기계에 비유하며 기계적인 방법인 실크스크린을 주로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색상의 대비나 표현력을 탐구하는 미술가의 인간적 개입을 리메이드에서 보여주지만, 르빈은 사진 복제품을 그대로 전사(轉寫)할 수 있는 사진 매체를 다시 이용하여 보다 더 냉정하고 몰개성적인 특징을 리포토그래피에 부여한다.

그러므로 이미 존재하고 있는 사진 이미지를 그대로 다시 찍은 르빈의 리포토그래피는, 고전 조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남성 누드 이미지를 선험(先驗)으로 여기며 사진에 담은 웨스턴의 작품이 미술 작품으로 인정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미술 작품이 되어, 모더니즘 미술 속에 내재된 '복제'라는 담론을 불러낸다. 그 결과 사진 이미지들을 숨김없이 차용하는, 말 그대로 '가져오는(take a picture)' 리포토그래피에서, 르빈이 주제로 선택한 미술 작품들을 에워싸고 있던 독창성은 위태로워진다. 즉 르빈은 사진 이미지라는 일상적인 환경을 단순히 제시하거나 다시 만드는 것도 아닌 다시 사진으로 찍는 방법을 택해, 일종의 알레고리(allegory)로서의 리포토그래피가 원작이 갖고 있는 여운과 의미를 비워내도록 한다.

2. 미술가의 죽음

르빈은 앨라배마 해일 지방에 사는 버로우 가족(Floyd and Allie May Burrough's Family)과 이들의 생활 공간을 찍은 워커 에반스(Walker Evans)의 사진을 22점의 리포토그래피로 만들었다(도판 5).


 
            도판5. 세리 르빈, <무제 (워커 에반스를 따라서)>, 1981년, 흑백 사진


작품은 농업안정국(the Farm Security Administration)에서 일하던 에반스가 1936년 여름에 휴가를 얻어 『포춘』(Fortune) 잡지에서 일하면서, 미국 남부 소작농에 관한 제임스 애이지(James Agee)의 글과 자신의 사진을 한데 묶어 출판한 『이제 유명한 사람들에게 찬사를 보내자』(Let Us Now Praise Famous Men)에 실린 사진들이었다. 르빈이 에반스의 사진을 다시 찍게 된 동기는 다름 아닌 저작권 문제 때문이었다. 웨스턴의 재산을 관리하는 변호사들은 웨스턴의 사진을 그대로 다시 찍어 새로운 프린트로 만든 르빈의 작품을 보았고, 르빈에게 저작권 위반 혐의로 고소하겠다고 협박했다. 따라서 르빈은 에반스의 사진들이 저작권 보호를 받지 않는다는 사실에 근거해서, 에반스 사진의 복제품들을 재촬영한 것이다. 또한 르빈은 러시아의 구성주의 작가인 알렉산더 로드첸코(Alexander Rodchenko)의 사진 작품을 재촬영할 수 있었는데, 이는 당시 소련과 미국간에 저작권 협약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품을 구상하고 실현시키는 자'라는 뜻의 라틴어 'auctor'에서 유래된 '저자(author)'라는 용어는 중세를 거치며 '권위(authority)'라는 말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게 되는데, 이는 세계를 신이 저술한 텍스트로 보고 그 의미를 해석해내는 권위 있는 자가 저자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러한 입장에서는 저자를 숙련된 대리인으로 여겨 작품의 의미를 고정시키고 보증해주는 인물로 파악했다. 그러나 인식 과정에서 주체가 갖는 역할에 대한 낭만주의적 발견으로 말미암아, 개개의 창조물 배후에서 생각하고 느끼는 작가의 '개성'이라는 개념이 도출되었다. 여기에서 작품의 재료를 작가 자신 속에서 찾는다는 견해가 등장하여 작가를 조금 더 작품의 중심에 놓게 되었고, 이로부터 작품을 작가의 사상과 정서가 반영된 것으로 인정하면서 작가의 천재성이나 개성을 중시하는 낭만주의적 작가관이 이루어졌다. 근대에 오면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발전이라는 틀 내에서 문학 텍스트가 갖는 상품적 가치와 법률적 소유권 문제가 발생하는데, 자신의 작품을 판권이나 이와 유사한 수단으로 보호하려는 저자들의 조직체에서 주장된 '문학적 소유권'이란 개념과 저자 개념이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면서 저자의 생산물은 재산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므로 저작권법이 작가의 재산을 보호한다는 의미에서 웨스턴의 사진들을 재촬영한 르빈의 리포토그래피는 상당히 불법적인 작품이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 낭만주의적 작가관에 대한 반론이 문학 분야에서부터 일어났고 특히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일련의 예술가 및 비평가들이 작가의 죽음을 표명하고 나섰는데, 이는 근대 철학의 기본 전제였던 자율적 총체로서의 '주체의 죽음'을 선언한 후기구조주의의 영향 때문이었다. 따라서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에서는 미술 작품을 미술가의 역사로 파악하려는 입장을 포기하고 창조적인 천재로서의 미술가의 역할보다 관람객의 능력을 우선시하게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의 「저자의 죽음」(The Death of the Author)을 각색하여 "관람객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미술가의 희생이 따른다"고 기술한 르빈은, 미술 작품이 미술가에 의해 물리적으로 창조되고 나서가 아니라 관람객에 의해 해석되고 난 후에야 완성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즉 르빈의 리포토그래피는 저자성이라는 미술가의 독점적인 권리를 부정하고, 이러한 권리가 물리적인 미술 작품의 창조자로서의 미술가와, 의미와 해석을 만들어내는 생산자로서의 관람객이라는 양쪽에 동등하게 분배될 것을 표명한다. 이는 뒤샹의 에세이 「창조적 행위」(The Creative Act)에서도 논의된 바 있는데, 그는 미술가, 작품, 관람객이 맺는 관계에 대해 설명하면서 의미를 생산하는데 있어 관람객이 차지하는 몫이란, 작품의 내적 능력을 판독하고 해석하여 작품을 외부 세계와 접촉시킴으로써 창조 행위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개별적인 미술가의 산물이었던 미술 작품이 미술가의 지배로부터 독립해야 미술은 완전해지며, 미술가와 작품사이에 있던 연결 고리가 사라진 자리를 채우는 사람이 바로 '관람객'이라는 사실을 뒤샹이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은, 텍스트의 생산 행위에 기여하는 창조적인 참여자로서 독자를 강조한 후기구조주의의 독서 행위와 일맥상통한다. 그리고 르빈은 독서 행위의 창조성과 동일한 맥락인 미술 작품 감상에 있어서 관람객의 창조성을 뒤샹과 마찬가지로 중시하고 있는 것이다. 작품의 제목 <무제 (워커 에반스를 따라서)>는 에반스가 찍은 본래의 사진과 결부되었던 애이지의 감동적인 글과는 상관없이 관람객이 폭넓은 범위의 연상을 하도록 이끈다. 이는 르빈의 다른 리포토그래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무제 (∼를 따라서)>라는 객관적인 제목을 붙임으로써, 르빈의 리포토그래피는 작품의 출전을 솔직히 밝히는 동시에 작품에 대해 어떤 특정한 최선의 해석을 강요하지 않고 관람객이 자신의 인류학적·문화적·정치적·이데올로기적·미적·심리적인 코드에 따라 작품을 해석할 수 있는 자유를 인정한다. 따라서 르빈의 사진을 보는 관람객은 올바른 해석임을 알려주는 미술가의 언어적 메시지인 제목이 구속하는 고정된 의미에서 벗어나 사진 속의 장면들을 자신이 선택한 해석과 연결시키고 미술 작품을 완성하는 창조 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

이렇듯 르빈의 리포토그래피가 강조하고 있는 점은, 작품의 저자인 미술가의 역할을 최소화하고 관람객의 역할을 중시하는 것이다. 이는 작품을 경험하는 관람객의 지위를 향상한 1960년대 미니멀리즘 조각의 연극성과 동일 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으며, 르빈의 초기작인 <아들과 연인> 및 <콜라주>에서 이어진 것이기도 하다. 젊은 여성과 함께 있는 케네디를 어떤 한 가지 의미로 읽을 수 있다면, 워싱턴과 나란히 있는 케네디의 이미지는 다른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패션 잡지에서 오려낸 대통령의 프로필은 유행에 민감하고 가정적이라는 여성의 특징이 권력을 소유한 남성의 공상을 통해서 결정되고 경험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으로 읽을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권력의 무상함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르빈의 리포토그래피는 미술 작품에서 저자가 어디에 있는지 관람객을 혼란시키면서 저자성이라는 개념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동시에, 여러 층위의 관람객이 다의적인 작품 해석을 하도록 유도한다. 작품과 관람객의 역동적인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다층적인 의미들의 상호 작용을 강조하면서, 르빈의 리포토그래피는 관람객에게 미술 작품을 완성하기를 요청한다. 즉 르빈의 리포토그래피가 추구하는 바는, "관람객의 즐길 줄 아는 능력"을 고양시키는 것이다.

III. 지배적 가치 체계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리포토그래피에 관한 재고

1. 부권(父權)의 거부

르빈의 리포토그래피에서 발견할 수 있는 공통된 특징은 그녀가 차용한 작품이 모두 남성 작가들의 것이라는 점이다. 르빈은 자신의 아버지 세대에 속하며 기존의 미술계에서 모더니즘 미술의 영웅으로 평가받고 있는 유럽과 미국의 남성 미술가들이 제작한 사진 작품과 회화 작품들을 사진으로 다시 찍었다. 그러므로 모더니즘 미술의 위대한 남성 대가들이 남긴 작품을 차용 대상으로 삼은 르빈의 리포토그래피는, 남성의 욕망을 찬양하는 문화 속에서 남성의 욕망이 낳은 산물과는 다른 이미지를 창조해내려는 여성의 어려움을 다룬 페미니즘 작품이다. 특히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반에 표현주의적인 충동을 되살리는 미술계에 반대하면서 표현주의 작품을 차용한 것은, 신표현주의 작품의 격세유전과 이에 따르는 공허함을 폭로하는데 유용한 역할을 할 수 있었다(도판 6).


  
      도판 6. 세리 르빈,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를 따라서)>, 1982년, 컬러 사진

그리고 이미 살펴보았듯이 저자라는 개념을 거부한 것도 르빈의 리포토그래피가 페미니즘 미술로 평가받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저자라는 개념은 가부장제도와 근본적으로 연결되는데, 이는 아버지가 자식을 낳아 기르듯이 저자는 작품을 기르는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르빈의 리포토그래피가 저자성을 포기하는 것은, 자기 작품의 아버지로서 갖는 창조자의 역할과 법률이 저자에게 부여한 부권을 거부함으로써 미술가의 주체성이라는 이데올로기를 해체하는 동시에 부권에 대해 도전한 행위로 인정할 수 있다. 또한 르빈이 차용한 이미지들이 모두 '타자'의 이미지라는 것도 그녀의 작품이 페미니즘적으로 평가되는 이유이다.

르빈이 최초로 차용한 이미지는 여성용 잡지에서 가져온 모성 이미지, 즉 자연의 역할로서의 여성 이미지였다. 그리고나서 그녀는 안드레아 파이닝거(Andreas Feininger)와 엘리엇 포터(Eliot Porter)가 찍은 풍경 사진을, 그 다음에는 웨스턴의 아들 사진, 에반스의 대공황기 사진을 차용한다. 프란츠 마르크(Franz Marc)의 동물이 있는 목가적 풍경과 에곤 실레(Egon Schiele)의 광기 어린 자화상 역시 르빈이 차용한 이미지이다(도판 7).

  
             도판 7. 세리 르빈, <무제 (엘리엇 포터를 따라서)>, 1981년, 컬러 사진


여성, 자연, 어린 아이, 가난, 정신이상자 등의 이미지들은 모두 지배 문화 밖에 존재해 왔고, 문화는 이러한 이미지를 타자로 만들어 왔다. 그러므로 르빈이 차용한 주제들은 모두 문화적인 표상들을 통해서만 접근할 수 있는 타자라는 일관성을 갖는다.

이상과 같은 몇 가지 이유로 인해 르빈의 리포토그래피는 기존의 권위, 소유권, 남성 중심의 미술계에 대한 도전으로 비춰졌다. 하지만 그녀가 남성 작가들만을 자신의 차용 대상으로 삼는 것은 심리학적인 차원에서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남성 작가들의 작품만을 재촬영하는 르빈의 리포토그래피는 "그의 옷을 입어 보고" "영웅들처럼 차려 입고 싶은" 복장도착적인 동일시나 "거머쥐고 파악하는" 남근 선망으로 비난받을 소지가 다분히 있다. 그리고 자신이 '사랑'하고 '존경'하는 오직 유명한 남성 미술가의 작품만을 차용하는 르빈의 행위가 여성성이라는 '가면(masquerade)'은 아닌지 재고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는 조앙 리비에르(Joan Riviere)의 '가면으로서의 여성성(Womanliness as a Masquerade)'이라는 개념과 연결시켜 고찰할 수 있는 문제이다.

리비에르는 전문직에 종사하는 여성 환자들을 상담하면서 그들이 공적인 일을 하고 난 후에 자신들이 부적절한 일을 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걱정으로 불안해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리비에르는, 여성 환자들이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 확신을 갖고자 '재보증(reassurance)'을 얻으려는 욕구에 사로잡혀 자신의 일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남성들의 주목이나 칭찬을 받고자 하는 심리 상태에 놓이게 되고, 그러한 남성들이 대부분 아버지와 같은 인물(father-figures)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리비에르는 이와 같은 여성의 불안을, 외디푸스 컴플렉스(Oedipus Complex)가 만족스럽게 해결되지 못했기 때문에 나타난 증상이라고 설명하면서, 그러한 여성이 남성들에게 추파를 보내거나 교태를 부리는 강제적인 충동은 지적인 일을 하고 난 후에 아버지와 같은 인물들이 행할 것으로 예상되는 보복을 피하기 위한 무의식적인 노력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외디푸스 컴플렉스 시기에 여자 아이와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아버지에 대한 적의가 발생한다. 원초적 장면에서 아버지는 모유와 여자 아이가 잃어버린 것들을 가져가고, 어머니에게 페니스를 또는 페니스를 대신하는 아이들을 준다. 그러므로 여자 아이는 아버지가 가지고 있거나 가져간 모든 것을 빼앗아야 한다. 젖가슴에 대한 식인적인 관계가 페니스로 전이되어, 아버지는 거세되고 어머니처럼 힘없는 존재로 강등된다. 또한 어머니의 죽음과 어머니를 파괴했다는 것에 대한 아버지의 복수가 예상되므로 아버지를 진정시켜야 한다. 따라서 아버지가 가할 보복이 무서워 자신을 성적 제물로 바쳐 아버지를 달래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회유는 아버지를 위해 여성적인 모습의 가면을 쓰고 그에 대한 자신의 사랑과 결백함을 보여줌으로써 이루어지고, 실제 생활에서 이와 같은 여성의 가면은 성공적으로 보여져 많은 남성들이 유혹되고 호의를 보여줌으로써 여성은 재보증의 형태인 사랑이나 인정을 받게 된다. 즉 여성성이란 남성성을 가지고 있음을 감추는 동시에 여성이 남성성을 가진 것이 발각되었을 때 예상되는 보복을 피하고 면죄를 구하기 위한 가면인 것이다.

그러므로 르빈의 리포토그래피에 있어, 비록 그녀가 명망 높은 남성 작가들을 직접적으로 유혹하고 그들에게 교태부리는 것은 아니지만 남성 중심적인 미술계에서 자신의 입지를 구축하고자 그들에 대한 사랑과 존경이라는 가면을 쓰고 이미 미술사에서 검증 받은 그들의 이름과 작품을 자신이 원하는 인정을 위해 리포토그래피에 이용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남성 미술가들의 작품만을 차용하는 르빈의 리포토그래피가 한편으로는 부권에 대한 도전으로 비칠 수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아버지의 자리에 대한 욕망에서 비롯된 가면일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남성 위주의 미술 평가 체제를 그대로 받아들여 이에 단순히 편승한 것이 아닌가라는 비판을 할 수 있다. 또한 리비에르의 환자가 자신이 아버지와 같은 인물들과 같지 않다는 사실을 못마땅하게 여기며 그들의 판단이나 비평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거부하려고 했던 것과 비슷하게 르빈 자신도 남성들이 자신을 대변하는 것에 피곤해 하며 진력이 난다고까지 말했지만, 르빈이 주로 남성 이론가들의 지지를 받으며 명성을 쌓았다는 사실에도 주목해야 할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제한된 논의로 르빈의 리포토그래피가 지니는 페미니즘 미술로서의 가치를 평가절하하기에는 다소 무리일 수 있다. 하지만 기존의 미술계에서 확고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남성 미술가의 작품만을 차용하는 그녀의 행위에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내재되어 있을 이러한 심리적인 측면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의 리포토그래피는 한 비평가의 지적처럼, "자신의 이름이 워커 에반스의 이름처럼 결코 신비롭게 될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한 불쾌함을 표현하는데 가장 효과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2. 미술관 제도에 관한 비판

전술한 바와 같이 모더니즘 미술의 신조들을 파기한 르빈의 리포토그래피는, 예술 사진이라는 고유의 미학을 주장하기 위해서 모더니즘의 형식주의 기준들을 그대로 받아들여 바깥 세상과 철저하게 맺고 있는 관계로부터 자신을 떼어내야만 했던 모더니즘 사진과의 결별이자 미술관 제도에 대한 비판적인 실천으로 간주해야 한다. 1950년-1960년대의 사진사가들과 큐레이터들이 사진 이미지의 자율성을 강조하고 사진의 규준 및 기술적·시각적 특성들을 새롭게 정의하면서 사진을 모더니즘 미술로 평가하고 고급 미술계로 흡수한 것은, 사진의 응용적인 측면과 사진이 야기하는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이슈들을 무시한 일종의 권위주의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사진의 입장 변화에 대해 리처드 프린스(Richard Prince)의 광고 이미지 차용, 베허 부부(Bernd and Hilla Becher)의 산업 구조물들을 다룬 유형학적인 사진, 여성의 자아가 사회적으로 만들어지고 고정되는 과정을 보여준 신디 셔먼(Cindy Sherman), 인형을 이용하여 무의식의 세계를 드러낸 로리 시몬스(Laurie Simmons), 사진과 텍스트를 병치시켜 새롭고 전복적인 의미를 창조한 바바라 크루거(Barbara Kruger), 대중 문화 속에서 대상과 상품으로 제시되는 여성 이미지에 침투해 있는 이데올로기를 파헤친 비키 알렉산더(Vikky Alexander)와 실비아 콜보우스키(Silvia Kolbowski) 등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말까지의 포스트모더니즘 사진가들은 관심사·의도·형식에 있어서 서로 다르다고 할지라도,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의 일반적인 흐름과 일치를 보이며 모더니즘적인 미술 형식으로서 예술 사진이 취했던 태도에 직접적으로 도전했다(도판 8).

  

    도판 8. 리처드 프린스,무제,1977-78

즉 이들은 예술 사진의 심미적인 자기지시성(self-referentiality)을 거부하고 사진 이미지들이 갖는 함축적인 의미가 독특한 기호 체계와 사회적 효과를 구성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면서, 사진의 표상 구조를 검토하고 모더니즘 미학이 받들고 있는 독창성·유일성·작가주체성·아우라와 같은 개념들을 흔들어 놓았다.

특히 르빈의 리포토그래피처럼 차용이라는 전략을 이용한 사진 작업들은 "사진이란 언제나 하나의 표상이며 이미 보여져 왔던(always-already-seen) 것"임을 강조하였고, 사진적 실천에 미치는 물질적·제도적·이데올로기적인 영향들이야말로 사진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여기면서 정보·기록·증거·도해·복제 등 예술 사진 이외의 영역에서 사진을 지켜왔던 다양한 담론들에 관해 상기시켰다. 그리고 이러한 작업은 미술관이 받아들이게 되는 사진적 실천의 이질성(heterogeneity)과 미술관 작품들의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배열을 방해하는 이종성(hybridity)을 지적하면서, 미술 작품의 독창성과 진정성은 미술관에 의해 두서 없이 만들어지며 미술가의 주체적인 표현이란 미적 실천들이 구축하는 하나의 효과이지 원천이나 보증서가 아니라는 사실을 주목하게 만들었다. 그러므로 르빈의 리포토그래피는 모더니즘의 형식주의 관점에 따라 재규정되고 재분배된 사진이 갖는 편협성을 폭로하면서, 미술 작품의 완전무결함과 자율성을 뒷받침하는 개념들 그리고 이를 전제 조건으로 삼고 있는 미술관 제도를 위협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르빈의 리포토그래피가 미술 제도에 대해 취했던 비판적이고 전복적인 능력이 여전히 유효한지는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우선 그녀의 작업에 대해 끊임없이 제기되는 문제는, 다른 미술가의 작품을 '그대로 다시' 사진으로 찍음으로써 오히려 원작의 가치를 공고히 하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다(도판 9).

 

 도판 9. 세리 르빈, <압셍트>, 1995년, 은판 사진


원작의 이미지가 충실하게 복제된 르빈의 사진은 완벽한 미니어처가 되어 관람객에게 면밀한 주의를 요구하면서 원작에 대한 감정적인 경험을 되살려준다. 그러므로 르빈의 복제품들이 원작에 대한 정보 전달이라는 임무를 통해 원작의 가격을 더 올리지는 않았는지, 원작과 복사품을 보는 감식안을 세련되게 훈련시키면서 여전히 아우라를 갖고 있는 원작의 진정성을 지지한 것은 아닌가 등의 의문이 생긴다. 다시 말해 르빈의 리포토그래피가 걸작으로 인정받는 작품의 수를 증가시키고 그 위신을 높였다는 지적을 할 수 있다. 또한 컬렉션의 빈 부분을 채우기 위해 과거에 미술 차용이 실행되었고 판매 가능한 주요 작품의 부족이 낳은 수요를 마이크 비들로(Mike Bidlo)의 작품들이 충족시켰듯이, 르빈의 리포토그래피가 미술품 수집가들을 유혹하면서 쉽게 살 수 없는 값비싼 원작들을 흉내낸 습작이나 대체물로 사용되는 것은 아닌가라는 질문이 잇따른다(도판 10).

  

도판 10. 마이크 비들로, <폴록의 제1번, 1948>, 1983년, 캔버스 위에 에나멜 및 알루미늄 물감

누구라도 자기가 좋아하는 만큼 원작을 많이 가지고 있을 수는 없기 때문에 종종 사람들은 원작이 도판으로 축소되어 묶여 있는 복제품의 형태인 화집을 고르는데, 이때 원작가보다 르빈을 더 좋아하면서 오히려 르빈의 책을 택하게 된다. 왜냐하면 "르빈의 책으로 한 명의 미술가 대신에 두 명의 미술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제기되는 문제가, 르빈이 공격하고자 했던 미술관 제도로의 투항이다. 이와 같은 아이러니는, 자신의 희망이 미술관 미술을 만드는 것이었다고 표명한 르빈의 진술에서 확실히 드러난다.

나는 작품을 상품이 아닌 다른 것으로 만들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내 작품이 팔리기까지 시간이 걸리겠지만 마지막에는 컬렉션과 미술관에 있게 되기를 나는 늘 바래왔다.

어떤 행위를 비판하기 위해서 비난받고 있는 바로 그 행위에 참여해야 하고, 공격하려는 체제 자체에 의존해야 한다는 '이중 요법(double agents)'이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에서 흔히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내부에서의 비평이 부정하려고 주장하는 것을 은밀하게 이용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한때 비판적 실천으로 간주되었던 르빈의 리포토그래피와 같은 포스트모더니즘 사진이 하나의 양식이 되어 미술관이라는 제도적인 담론에 길들여지고 상품화되는 현상에 대해, 솔로몬 고도는 "미적 상품으로 복귀되는 것에 저항하는 것을 특별히 계산하지 않는 비판적 실천은, 미술가의 의도나 처음의 효과와 상관없이 이러한 과정에 굴복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물론 이와 같은 문제는 르빈의 사진 차용 작품뿐만 아니라 차용을 전략으로 삼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 미술가들 모두의 딜레마일 것이다. 1980년대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차용이라는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전략을 이용한 미술가들은 '다시 틀지우기(re-framing)'라는 환원적인 실행을 통해 표상의 내용을 물리적인 맥락 차원에서 단순하게 바꾸는 차용이 문화적인 비평으로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르빈의 작품은 "개성이라는 스펙터클의 구축에 반대하여 시종일관 자신의 위치를 결정"하는 프레임이자 진행 과정으로 작동하면서 제도적인 틀로서의 미술계를 설명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비판적인 잠재력을 보유했던 미술가들의 차용 전략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독창적인 작품이 되어 미술 작품의 상품적 지위를 확립하고 강화하는 미술관 제도에 편입해 버렸고, '다원주의'라는 이름 하에 모든 미술 작품이 독특하고 독창적이라고 여겨지게 되면서 르빈이 독창적이지 않다는 이론가들의 반복된 주장은 오히려 그녀를 독창적인 미술가로 바꾸어 버렸다. 따라서 "차용 전략이 포스트모던 문화의 기술적인 징표였지만, 한때 비판적 역할을 해내는 것으로 이해되었던 차용의 기능은 점점 더 희미해졌고 정당화되기 어려워졌다"는 지적을 불가피하게 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르빈이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는 리포토그래피가 초기에는 재미있고 파괴적이었지만 본래의 비판적인 효과를 많이 잃어버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자주 들린다. 마사 로슬러(Martha Rosler)는 르빈의 작품을 예로 들면서 직접적인 사회 분석을 하지 않는 차용 작품은 또 하나의 이미지를 생산하는 것일 뿐 아무런 대안을 제공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애이미 랭킨(Aimee Rankin)은 차용 미술을 광고가 재차용하는 현상에 주목하면서, 르빈의 작품과 같은 다시 틀지우기라는 반복적이고 보복적인 제스처가 표상들이 가지는 강력한 이데올로기적인 효과들을 충분히 붕괴시킬 수 없다고 비판한다. 물론 르빈이 미술 제도에 의해 어느 정도 잠식되었다고 하더라도, 앞서 살펴보았듯이 독창적이고 유일한 미술 작품과 개성적인 미술가의 창조성이라는 모더니즘 신조에 대해 도전했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르빈의 사진 작업에 관한 논의가 하나의 아카데믹한 이론으로 정착되고 그녀의 리포토그래피가 미술관과 화랑에서 판매하는 하나의 상품으로 되었을 때, 르빈의 작품이 자리매김되고 수용되는 방식의 전환은 "고급 미술 생산의 틀 내에서 작동하는 비판적 실천에 늘 따라다니는 어려움과 모순"을 증명한다는 사실도 반드시 상기하고 있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미술 제도의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활동하는 르빈의 리포토그래피가 순응인지 투쟁인지는 계속해서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V. 맺는말

본고에서는 르빈의 리포토그래피가 포스트모더니즘 미술로서 지니는 가치들을 재조명해 보았다. 르빈은 리포토그래피를 통해 모더니즘 미학이 붕괴된 상황을 시의적절하게 보여주었고, '거대 서사'로서의 지배적 미술 체계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는 동시에 그에 따른 모순을 드러내기도 했다. 초기에는 전복적인 태도를 취했던 일련의 포스트모더니즘 사진들이 또 하나의 독창적인 미술 작품이 되어 예술 사진과 동일한 장소에서 전시되고 동일한 방식으로 받아들여질 때, 과연 제도적인 조건과 상황에 대해 계속해서 적절히 대응할 수 있을지 답하는 것은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면에서 이러한 르빈의 리포토그래피가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의 위기를 증언하고 있는, 즉 차용 미학의 도덕적 타락이자 생물학적 쇠퇴의 징후로 보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포스트모더니즘 미술 '이후의' 미술에 관한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이 시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의 종말을 판단하는 기준을 무엇으로 삼고 이를 토대로 어떤 처방을 내릴 수 있을지 이야기하는 것은 아직 불충분하다. 게다가 르빈이 지금까지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작가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더욱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현재 포스트모더니즘의 위기가 도래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긍정하는 바이다. 하지만 시대적 징후이자 전략적 성격을 띠었던 차용 미술의 계속되는 홍수 속에서, 그밖의 다양한 전술을 사용하면서 아직도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는 수많은 미술 작품들을 대하면서, 아울러 모더니즘 미술의 상품 가치가 꾸준히 상승하는 것을 바라보면서 어떠한 대안이 모색될 수 있을지는 우리 모두가 고민해야 하는 점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와 같은 위태로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변함없는 것은 르빈의 리포토그래피가 모더니즘 미술의 전통적이고 신성한 개념들을 무너뜨리면서 포스트모더니즘 미술로서 힘을 발휘했으며, 여전히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이라는 담론 내에서 이야기될 때 그 의미를 획득할 수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주

1) 르빈은 이러한 자신의 사진 작품을 '사진 작업(photographic work)', '이중 사진(double-photography)
' 또는 우리말로 번역하면 '사진'이라는 동일한 뜻을 가지는 '포토그래피(photography)', '포토그래프(photograph)', '픽처(picture)'로 표현하고 있으며, 그녀의 사진 작품에 대해 설명할 때 미술사가 및 미술평론가들은 도판을 '재촬영한다(rephotograph)'는 의미에서 '리포토그래피', '리포토그래프(rephotograph)' , '리프로덕션(reproduction)', '카피(copy)' 등의 용어를 사용한다. 본고에서는 이와 같은 용어들 중에서 '사진술', '사진 촬영' 등 기술적이고 행위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리포토그래피'를 사용하기로 한다.

2) 프레드릭 제임슨(Fredric Jameson)은 차용이라는 용어 대신에 '패스티쉬(pastiche)'를, 린다 허천(Linda Hutcheon)은 '패러디(parody)'를 사용한다. 제임슨은, 모더니스트들의 개별적인 언어와 특이한 스타일을 조롱할 수 있는 기준인 언어적 규범의 가능성이 사라지고 단지 스타일상의 다양함과 이질성만 남게 되는 상황에서, 그리고 '주체의 죽음'으로 인해 미술가와 작가들이 더 이상 독특하고 새로운 개인적 세계와 스타일을 만들어 낼 수 없을 때, 패스티쉬가 등장한다고 주장했다: Fredric Jameson, "Postmodernism and Consumer Society", Hal Foster(ed.), The Anti-Aesthetic: Essays on Postmodern Culture (New York: The New Press, 1998), pp. 111-125. 반면에 허천은 패러디가 대상을 일단 정착시킨 다음 아이러니컬하게 만드는 이중적인 과정을 통해 현재의 재현물이 어떻게 해서 과거의 재현물들로부터 유래되었는지, 그리고 과거와 현재의 연속성과 차이로부터 어떤 이데올로기적 결과가 파생되는지를 보여준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패러디는 예술 작품에 필연적으로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며, 재현의 '정치성'을 전면에 드러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물론 패러디라는 용어가 아직까지도 위트나 풍자와 같은 18세기적 개념들에 오염되어 있다는 사실을 허천 자신도 인정하고 있다: 린다 허천 지음, 장성희 옮김, 『포스트모더니즘의 이론과 전략』, 현대미학사, 1998년, pp. 155-197.

3) 당시 뉴욕 시립 대학교(the City University of New York)의 대학원생이었던 더글러스 크림프(Douglas Crimp)는, <아들과 연인>에서 감명을 받아 이 작품을 자신이 기획하고 있던 전시회 <픽처스>(Pictures)에 포함하기로 결정한다. 크림프는 다양하게 병치된 진부한 이미지들이 "암살에서부터 간통에 이르기까지 전개되는 시나리오"를 구성한다고 전시회 카탈로그에 썼다: Douglas Crimp, "Pictures", Pictures (New York: Artists Space, September 24-October 29, 1977), pp. 16-18. 그는 르빈의 작품과 <픽처스>에 참여시키기로 결정했던 트로이 브라운투크(Troy Brauntuch), 잭 골드스테인(Jack Goldstein), 로버트 롱고(Robert Longo), 필립 스미스(Philip Smith)의 작품에서 새로운 경향의 미술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1970년대에 등장한 비디오 아트와 퍼포먼스 미술에서 발전된 것이었다. 이들은 신문·잡지·영화·TV에서 가져온 이미지들을 사용하여 구상 미술처럼 보이는 작업을 하고 있었지만, 미디어 속에서 어떤 것의 이미지로 한정되는 것으로부터 이미지를 분리하여 다른 가능성들을 창조하면서 의도된 의미로부터 이미지들을 해방시켰다. <픽처스>는 1980년대 미술을 알리는 서곡이자 포스트모더니즘 미술 전시회의 출발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Gerald Marzorati, "Art in the (Re)making", Artnews, vol. 85 (May 1986), pp. 95-96.

4) Jeanne Siegel, "The Anxiety of Influence - Head On: A Conversation between Sherrie Levine and Jeanne Siegel", Sherrie Levine (Z rich: Kunsthalle Z rich, November 3, 1991-January 5, 1992; M nster: Westf lisches Landesmuseum f r Kunst und Kulturgeschichte M nster-Landschaftsverband Westfalen-Lippe, February 2-March 29, 1992; Malm : Rooseum-Center for Contemporary Art, April 11-May 31, 1992; Paris: H tel des arts, June 23-August 9, 1992), p. 14. 사진 재촬영이라는 방법을 르빈이 처음 사용한 것은 아니었다. 리처드 프린스(Richard Prince)는 1970년대 후반에 리포토그래피에 관계했던 미술가이다. 그는 잡지에 실린 상업 광고들을 재촬영하여 만든 사진 조각들을 분리하고 확대시켜 화랑 벽면 위에 나열했다. 담배 광고, 값비싼 시계, 아른거리며 빛나는 위스키 로고 등 사진 속에 있는 디테일의 환각적인 특질은, 상품 물신이라는 개념을 구체적이고 가시적으로 만들었다. 르빈은 1979년경 뉴욕에서 프린스를 만나 알고 지낸다.

5) Catherine Moschou Abrams, History of Art Appropriation and the Appropriated Art Works of Sherrie Levine (New York University, Ph. D. Dissertation, 1991), p. 85.

6) 르빈의 초기 작업에서 뒤샹적인 레디메이드를 발견할 수 있다. 1977년에 그녀는 3 머서 가 상점(3 Mercer Street Store)이라는 한 대안 공간에서 <구두 세일>(Shoe Sale)을 했다. 르빈은 산호세(San Jose)에 있는 중고 상점에서 어린이 구두 75켤레를 사들였는데, 남성용 구두처럼 생긴 장식 없이 평범한 작은 크기의 구두였다. 르빈은 길게 늘어진 구두끈으로 묶여 있던 반짝이는 검은 색 가죽 구두를 이 주 연속 주말동안 한 켤레당 2달러씩 받고 모두 팔아버렸다.

7) 르빈은 책이나 잡지에 실려 있는 도판을 골라 재촬영하면서 그러한 도판들을 '유령의 유령(ghosts of ghosts)'이라고 불렀는데, 원작 - 원작의 복제품 - 도판의 관계에서 보면 도판이 '제3위'였기 때문이다. 즉 르빈은 자신이 찾아낸 도판이 원작을 찍은 필름이나 사진으로부터 이미 몇 차례에 걸쳐 복제되어 옮겨진 것이라는 사실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Jeanne Siegel, "After Sherrie Levine", Arts Magazine, vol. 59 (Summer 1985), p. 141.

8) 1982년 5월의 어느 일요일 저녁, 르빈은 작고 화가인 디미트리 메리노프(Dimitri Merinoff)의 스튜디오에서 <프란츠 마르크를 따라서>(After Franz Marc)를 선보이기도 했는데, 이는 프란츠 마르크(Franz Marc)가 그린 말 그림들의 복제품 여섯 점을 액자에 끼운 작품이었다: Dieter Schwarz, "Sherrie Levine", Sherrie Levine (Vienna: Galerie N chst St. Stephan, 1988), pp. 27-28, p. 32.

9) Douglas Crimp, "The Photographic Activity of Postmodernism", October, no. 15 (Winter 1980): reprinted in Douglas Crimp, On the Museum's Ruins (Cambridge, Massachusetts, London, England: The MIT Press, 1997), pp. 118-119; Rosalind E. Krauss, "The Originality of the Avant-Garde", October, no. 18 (Fall 1981): reprinted in The Originality of the Avant-Garde and Other Modernist Myths (Cambridge, Massachusetts, London, England: The MIT Press, 1999), pp. 151-170.

10) Craig Owens, "The Allegorical Impulse: Toward a Theory of Postmodernism", October, no. 12 (Spring 1980), pp. 67-86: reprinted in Brian Wallis(ed.), Art After Modernism: Rethinking Representation (New York: The New Museum of Contemporary Art, 1984), p. 205, p. 223.

11) Marzorati, Ibid., p. 97.

12) 박인기 편역, 『작가란 무엇인가』, 지식산업사, 1997년, pp. 2-3. 가장 유명한 개성 이론은 게오르그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의 개성 이론으로, 이는 프랑스와 독일의 저작권 체계에 큰 영향을 미쳤고 19세기에 미국에서 발생한 저작권 소송을 해결하는데 기준을 제시해 주었다. 특히 시각 예술에서 인간의 독창성에 관한 헤겔의 견해는, 정신적 활동의 최고 영역에 종교 및 철학과 함께 예술을 두는 '절대 정신(der absolute Geist)'이라는 그의 미학 체계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헤겔은 절대 정신이 인간의 내적 정신에 의해 영감을 받은 예술 작품을 통해서 드러난다고 믿었다: Louise Harmon, The Appropriation of Photographic Images in Works of Art: Legal and Aesthetic Issues Inherent in the Conflict between Modernism and Postmodernism (Columbia University, Ph. D. Dissertation, 1998), pp. 124-127.

13) 레이먼드 윌리엄스, 「저자와 참여」, 박인기 편역, 『작가란 무엇인가』, 지식산업사, 1997년, p. 188.

14) Sherrie Levine, "Five Comments", Brian Wallis(ed.), Blasted Allegories: An Anthology of Writings by Contemporary Artists (New York: The New Museum of Contemporary Art; Cambridge, Massachusetts, London, England: The MIT Press, 1993), p. 92.

15) Marcel Duchamp, "The Creative Act", Michel Sanouillet and Elmer Peterson(eds.), The Writings of Marcel Duchamp (New York: Da Capo Press, 1989; Originally published in Salt Seller: The Writings of Marcel Duchamp,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73), pp. 139-140.

16) 르빈이 다시 찍은 엘리엇 포터(Eliot Porter)의 사진도, 원래는 1962년판(版) 헨리 데이비드 서로우(Henri David Thoreau, 1817-1862)의 저서 『황무지에서 세상의 보존이 이루어지는가』(In Wildness Is the Preservation of the World)에 나오는 시 한편을 도해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작품이다: Abrams, Ibid., p. 89.

17) Ibid., p. 102.

18) Siegel, "The Anxiety of Influence - Head On: A Conversation between Sherrie Levine and Jeanne Siegel", p. 14.

19) Dan Cameron, "Absence and Allure: Sherrie Levine's Recent Work", Arts Magazine, December 1983, p. 86.

20) Marzorati, Ibid., pp. 96-97; Paul Taylor, "Sherrie Levine Plays with Paul Taylor", Flash Art, no. 135 (Summer 1987), p. 55.

21) Abigail Solomon-Godeau, "Winning the Game When the Rules Have Been Changed: Art Photography and Postmodernism", Screen, vol. 25 (November/December 1984), pp. 91-92.

22) Craig Owens, "The Discourse of Others: Feminists and Postmodernism", Hal Foster(ed.), The Anti-Aesthetic: Essays on Postmodern Culture (New York: The New Press, 1998), p. 73.

23) Craig Owens, "Sherrie Levine at A & M Artworks", Art in America, Summer 1982, p. 148.

24) "…… Schiele always seemed to be the ultimate male expressionist, the ultimate bohemian, so I thought it would be amusing to try on his clothes, as it were.": Paul Taylor, Ibid., p. 57(Paul Taylor와의 대화, 강조는 필자의 것임).

25) "…… The "pleasure gap" which seems to hover between the original and its Levine-ization is…… the urge to dress up like your heroes in homage to them.": Cameron, Ibid., p. 87(강조는 필자의 것임).

26) 하워드 싱거맨(Howard Singerman)은, 오웬이 르빈의 차용 이미지의 특징을 설명하면서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의 표현을 빌어 사용한 "거머쥐고 파악하도록(laying hold and grasping)" 몰아대는 충동이야말로 남근 선망으로 연결되는 지점이라고 평했다: Howard Singerman, "Seeing Sherrie Levine", October, no. 67 (Winter 1994), pp. 98-99.

27) "…… I appropriate only the great modern male masters, and I choose only works that I love and value.", Janet Malcolm, "Profiles: A Girl of the Zeitgeist, Part II", The New Yorker, October 27, 1986, p. 61(Janet Malcolm과의 대화, 강조는 필자의 것임): Irving Sandler, Art of the Postmodern Era: from the Late 1960s to the Early 1990s (New York: IconEditions, 1996), p. 422에서 재인용.

28) Joan Riviere, "Womanliness as a Masquerade", The International Journal of Psychoanalysis(IJPA), vol. 10 (1929): reprinted in Victor Burgin, James Donald, and Cora Kaplan(eds.), Formations of Fantasy (London and New York: Methuen, 1986), pp. 35-44. 조앙 리비에르(본명은 Joan Verrall)는 런던 정신분석학회(London Psycho-Analytical Society)를 설립한 정신분석학자 어니스트 존스(Ernest Jones)와 함께 1916년부터 1920년까지 분석에 참여했고, 1919년부터는 독립적으로 환자를 상담했다. 1921년에 존스는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에게 분석 대상이자 독일어 번역가로 리비에르를 추천했고, 이후 리비에르는 멜라니 클라인(Melanie Klein)을 만나 어린이 발달 분석을 도우면서 비전문정신분석가로 활동했다: Stephen Heath, "Joan Riviere and the Masquerade", Victor Burgin, James Donald, and Cora Kaplan(eds.), Formations of Fantasy (London and New York: Methuen, 1986), pp. 45-46.

29) Riviere, Ibid., pp. 35-39.

30) Ibid., pp. 40-42. 리비에르는, 페니스보다 젖가슴을 강조한 멜라니 클라인의 이론을 바탕으로 이와 같은 반응들의 기원이 구강기(oral stage)의 식인적이고 가학적인(oral-biting sadism) 단계에 나타나는 부모에 대한 반응에 있다고 주장했다. 클라인은 남성과 여성 모두 욕망의 대상이 어머니의 좌절된 젖가슴으로부터 아버지의 페니스로 이동한다고 설명한다. 그녀는 아버지가 욕망의 대상이자 경쟁자가 되는 외디푸스 컴플렉스가 프로이트가 주장했던 남근기(phallic stage)보다 앞선 시기인, 어머니의 젖가슴과 관계를 맺고 있는 후기 구강기에 시작되는 것으로 보았다. 페니스를 지닌 어머니라는 환상이 아버지의 페니스를 갖고 있는 어머니의 몸에 대한 환상의 일부를 이루며, 여자 아이의 경우 어머니의 젖가슴을 원하고 탐내다가 다음에는 아버지의 페니스와 아버지의 아기를 갖고 싶어하는데, 이것이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갈등을 가져와 여자 아이의 환상과 불안을 지배하게 된다는 것이다. 어머니의 신체 안에 아버지의 페니스가 있다고 상상했던 여자 아이가 부모를 조금 더 구분되는 대상으로 인식함에 따라, 아버지는 단순히 어머니의 부속물로서가 아니라 독립된 존재로서 원하는 대상이 되며, 이후 보다 남근기적인 외디푸스 컴플렉스가 전개된다. 즉 여자 아이는 아버지를 인식하게 됨으로써, 아버지의 페니스가 어머니를 소유하고 조종하며 공격하는 또는 어머니를 복원시킬 수 있는 힘을 주는 도구라고 생각하고 이를 탐하게 된다: 한나 시걸, 이재훈 옮김, 『멜라니 클라인: 멜라니 클라인의 정신분석학』, 한국심리치료연구소, 1999, pp. 48-68.

31) Marzorati, Ibid., p. 97.

32) Carter Ratcliff, "Art & Resentment", Art in America, Summer 1982, p. 13.

33) Crimp, "The Photographic Activity of Postmodernism", pp. 117-118.

34) Douglas Crimp, "Photographs at the End of Modernism", On the Museum's Ruins (Cambridge, Massachusetts, London, England: The MIT Press, 1997), p. 16. 크림프는 본질적으로 바깥 세상을 언급하는 사진을 미술관이 받아들이는 그 순간부터 모더니즘은 붕괴되고 포스트모더니즘이 출현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1960년대 초반에 로버트 라우센버그(Robert Rauschenberg)가 제작한 실크스크린 작품들에서 나타난 회화와 사진의 제휴야말로 모더니즘 회화의 순수성과 자율성을 파괴하였고, 예술 사진 이외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사진적 실천의 이질성을 미술관 안에서 보여준 것이라고 「미술관의 폐허에 관하여」라는 글에서 강조한 바 있다: Douglas Crimp, "On the Museum's Ruin", October, no. 13 (Summer 1980): reprinted in Douglas Crimp, On the Museum's Ruins (Cambridge, Massachusetts, London, England: The MIT Press, 1997), pp. 44-64.

35) Eleanor Heartney, "Appropriation and the Loss of Authenticity", New Art Examiner, vol. 12 (March 1985), p. 28.

36) Cameron, Ibid., p. 87.

37) Siegel, "After Sherrie Levine", p. 143.

38) Paula Marincola, "Stock Situations/Reasonable Facsimiles", Image Scavengers: Photography (Institute of Contemporary Art, University of Pennsylvania, December 8, 1982-January 30, 1983), p. 26.

39) Abigail Solomon-Godeau, "Living with Contradictions: Critical Practices in the Age of Supply-Side Aesthetics", Carol Squiers(ed.), The Critical Image (Seattle: Bay Press, 1990), p. 72.

40) Benjamin H. D. Buchloh, "Allegorical Procedures: Appropriation and Montage in Contemporary Art", Artforum, September 1982, p. 52. 부클로는 이 글에서, 미술 작품의 틀지우기에 대한 검토의 시작을 마이클 애셔(Michael Asher), 마르셀 브로타스(Marcel Broodthaers), 다니엘 뷔렝(Daniel Buren), 댄 그래험(Dan Graham), 한스 하케(Hans Haacke), 로렌스 웨이너(Lawrence Weiner) 등의 작품에서 발견하고 있다.

41) Solomon-Godeau, Ibid., p. 66.

42) Martha Rosler, "Notes on Quotes", Wedge 3 (1982), p. 72: reprinted in "In, Around, and Afterthoughts(on Documentary Photography)", Richard Bolton(ed.), The Contest of Meaning: Critical Histories of Photography (Cambridge, Massachusetts: The MIT Press, 1999), pp. 330-331.

43) Aimee Rankin, "Difference and Deference", Screen, vol. 28 (Winter 1987), pp. 97-98. 이러한 문제에 관해, 엘리노어 허트니(Eleanor Heartney)는 모든 것을 흡수해버리는 포스트모던 문화의 수용력이야말로 차용이라는 전술을 하나의 공허한 게임으로 만들어버렸다고 주장하면서, 차용이 제시한 허무주의적인 의제는 빠져나갈 길을 전혀 가르쳐주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그녀는 모더니즘의 연속적인 비전에 맹목적으로 집착하는 것에 대해 도전하는 것을 차용의 능력으로 인정하지만, 적절한 대안을 내놓는데 실패했다는 점을 차용의 단점이라고 결론내린다: Heartney, Ibid., p. 30.

44) Solomon-Godeau, Ibid., p.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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