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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zabel(2005-05-23 21:19:57, Hit : 2386, Vote : 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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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규철 인터뷰








백기영: 먼저, 선생님께서는 현실과 발언 동인으로 80년대 민중미술을 몸소 체험하셨는데요. 민중미술을 통해 현장에서 작가로 활동하는 있는 작가들과 비교해 볼 때, 선생님의 작업은 개념적이고 관념적으로 보입니다. 민중미술과 결별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안규철: 이쪽이냐 저쪽이냐가 아직도 그렇게 중요한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거리가 생긴 것은 분명하지요. 그러나 민중미술을 뭐라고 규정하느냐에 따라서 제가 결별을 한 것인지 민중미술이 저를 떠난 것인지가 달라질 것입니다. 사회와 예술의 진보를 지향한 다양한 작가들의 연대로서 현발에 참여했지만, 그것은 어떤 고정된 양식적 스타일을 가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양식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어떤 태도, 말하자면 사회와 미술의 주도적인 흐름에 이의를 제기하고 비판적 거리를 취하는 태도였다고 할 때, 제가 지금 그런 태도와 결별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현실을 말하고 세상에 개입하는 방식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지요. 현실에는 당장의 시사적 현실만 있는 것이 아니라, 더 근본적인 인간의 조건이라는 현실도 있는 것인데, 후자에 대한 관심을 관념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백기영: 선생님께서 독일 유학 당시 제작한 테이블보 위에 수놓은 물고기 작업은 우연히 독일의 대학도서관에서 카타로그를 뒤지다가 보게 되었습니다. “Deutsche Studenten stellen sich aus" 라는 독일 대학미술제 같은 전시에 출품하셨던 것으로 아는데, 저는 그 작품을 보면서 아주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시각적으로는 개념적인 것 같았지만, 동시에 매우 시적인 정서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죠. 이 작품을 제작하면서 주안점으로 삼았던 정서가 있다면 어떤 것이었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안규철: <먼곳의 물>이라는 제목을 붙인 그 작품은 90년대 초에 제 작업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된 작품입니다. 그 당시 저는 제 작업이 항상 무겁고 우울하기만 하다는 점을 돌이켜보게 되었는데, 미햐 울만이라는 이스라엘 출신의 교수 한분이 어느날 제게 이런 얘기를 한 기억이 납니다. 세상이 부조리하고 고통스럽다고 해서 사람이 늘 울면서만 살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그때까지의 작업이 슬픔이나 분노와 같은 감정을 그대로 작품에 드러내려 해왔다면, 그 무렵부터 감정을 절제하는 방식으로 옮겨갔다고 할 수 있지요. 작업은 내 감정과 생각들을 그냥 쏟아내는 배설구가 아니라는 것, 지당한 말씀으로 가득 찬 훈계 대신에 침묵과 차가운 농담 혹은 질문이 더 강력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작업의 형식에 대한 고려가 이때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작업에는 여러가지 생각들이 작용했는데, 그중 하나는 베를린 장벽의 붕괴 이후 현실사회주의가 시장경제체제로 급속히 이행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느꼈던 상실감이었습니다. 그 상황을 한 무리의 붉은 물고기 떼가 한쪽의 물그릇을 떠나 다른 쪽으로 이동하는 모습으로 담아보려 했었지요. 다른 한편으로는 미술과 현실, 이미지(물고기)와 실재(유리그릇 속의 물) 사이의 절망적인 단절에 대한 생각이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 수놓은 실의 점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가상의 물고기들이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현실의 물을 그리워 하는 불가능한 꿈에 관한 생각 말입니다. 이런 점에서 여전히 어떤 상황을 묘사하고 서술하는 초기작업의 방식이 남아있었지만, 이야기를 설명적으로 작품의 전면에 내놓지 않았던 점에서 다른 시도였습니다. 소박하고 집요한 손 작업으로 만들어진, 평화롭고 예쁘기까지 한 식탁보만이 관객 앞에 놓여질 뿐이지요. 그 작품이 시적인 정서를 담고 있다면 아마도 이런 절제된 슬픔 또는 그리움, 세상에 대한 연민의 시선과 관계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백기영: 선생님의 작업을 독일의 개념주의로 획일화 시켜 이해하는 분들이 있는 것 같은데, 저는 오히려  독일식 개념미술(서구의 개념미술)과 구별하는 몇 가지 요소들에 대해 말씀을 나누고 싶은데요. 선생님의 작업은 때로 개념미술로 보기엔 지나치게 상징적인 요소들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개념미술은 미학적 특성상 수렴하는(reduzierende)성향이 있다고 보는데, 선생님 작업의 상징적인 요소들은 수렴적인 요소에서 나타나는 차가움의 정서보다는 비교적 따뜻한 온기를 내포하고 있는 독특한 정서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예술(Kunst)"라는 글자가 써진 문이라든가(이 문안으로는 들어 갈 수 없죠) 날개가 달린 가방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 사물과 드로잉들을 보면, 저는 마그리트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선생님의 작업은 개념적 이라기보다는 초현실주의적으로 읽힙니다. 개념적인 것과 초현실주의적인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는데, 이를 구분하는 것이 좀 필요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안규철: 개념주의가 미술의 본질을 물건이 아니라 개념, 즉 생각이라고 보는 입장이라면, 역시 생각을 미술의 중심에 두고 있는 저는 당연히 개념주의 작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 작업은 세상과 삶에 대해서 제가 갖는 느낌과 생각들을 사물의 형상을 빌어서 저 나름의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마도 제가 여전히 손으로 물건을 만드는 일에 의미를 두고 있다는 점 때문에 이런 차이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제 작품은 생각을 담는 그릇인 동시에 손의 온기와 노동의 흔적이 남는 물건의 성격을 띤다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이것은 저라는 작가의 아우라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아니라 오히려 그런 아우라를 지워가는 과정이라는 점을 간과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저는 제 필적이 남아있는 ‘예술작품’을 만드는데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손의 노동을 통해서 조형적 디자인이 제거된 중성적인 기호로서의 사물을 만드는 일에,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와 외부세계(또는 머리와 손, 나의 의도와 재료)가 만나면서 일어나는, 머리만으로는 예측불가능한 사고의 확장 현상들에 관심이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뒤샹 보다는 마그리트나 브로타스 같은 사람의 계보에 저를 연결시키게 되는 것 아닌가 합니다. 이것이 절충적인 태도라면 머리와 손이 동시에 있는 사람의 운명도 절충적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백기영: 같은 원리로 바닥이 없는 방은 아주 간결하고 수렴된(reduziert) 상태에서 손톱하나 들어가지 않을 것 같은 완벽한 미니멀 조각을 보는 것 같은 쾌감을 유발 시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저는 위와 아래가 뒤 바뀌고 꿈속에 빠져 든 듯한 초현실적 상황을 떠올립니다. 아니 어떻게 보면 공중에 붕 떠 있는 집을 생각하는 시적 상상에 잠기게 됩니다. 선생님 작업에 있어서 이러한 상황설정은 관람자에게 어떤 충격을 유발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안규철: 제 집이 구기동 북한산 자락에 있는데 북악산과 인왕산 사이로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는 전망이 좋은 편입니다. 어느날 아무 생각 없이 그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가 문득 지구가 정지해있는 것이 아니라 돌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내가 거대한 움직이는 공 위에 붙어서 같이 움직이고 있는 작은 벌레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느낀 적이 있습니다. 실내에 앉아있는 내가 저 멀리 보이는 남산 타워 꼭대기와, 북악산 나뭇잎사귀들과 같이 한 덩어리로 움직이고 있다는 아찔한 느낌 말입니다. 단단한 벽돌과 콘크리트로 이루어져 있는 세상이 갑자기 공중에 떠있는 비행기처럼 기우뚱하는 느낌이었죠. 미셸 투르니에였던가, 어느 글에서 이 비슷한 경험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만, 그 현기증의 경험이 이 작품에 반영된 것 같습니다.
  얘기가 나온 김에 덧붙이자면, 이 작업을 구성하는 또 다른 중요한 요소는 벽의 절반과 바닥이 없어진 상태입니다. 주택에서 아파트로, 아파트에서 원룸으로 주거양식이 바뀌면서 집의 본질적인 요소였던 땅이니 가족관계니 하는 것들이 하나씩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지금의 유전공학이 섹스나 사랑 없이도 인간을 만들어내는 것과 마찬가지의 경향입니다. 이런 상태를 더 과장해서 이래도 삶이 과연 온전하다고 믿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려는 것이 이 작업의 의도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백기영: 49개의 방에 들어서면 저는 선생님의 작업이 비록 현대 공업 생산물(문짝)의 조합을 통해 제작되었지만, 내용적으로는 매우 우화적이거나 신화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악한 용을 죽이고 돌아오는 남편에게 붉은 실을 주어 미궁에서 돌아 올 수 있도록 도왔지만, 결국에는 아드리아네의 실을 찾지 못해 미궁에 빠져버리게 된다는 그리스 신화의 <아드리아네의 실 이야기>는 문짝들로 이루어진 미궁의 방안에서 관람자들이 느낄 수 있는 혼돈입니다.
이 혼돈은 아드리아네의 붉은 실을 잃어버리고 어디로 나가야 할지를 몰라 방황하는 현대인을 상징하는 예로 종종 사용되곤 하죠. 이렇듯 문은 우리를 어디론가 인도하는 인도자 역할을 하지만, 들어서게만 할 수 있을 뿐 나가야 하는 길은 관람자 스스로의 몫이 되는 것 인 것 같아요. 선생님의 작업에서 이런 신화 혹은 문학적 배경을 연관시켜 이해하는 데에 불편함은 없으신지요?

안규철: 오히려 제 작품이 그런 다양한 읽기를 유발하는 장치가 되기를 바랍니다. 제가 제공한 것은 가로세로 7줄씩, 49개의 똑같은 방들과 그것들 사이를 연결하는 112개의 문짝으로 이루어진, 아주 단순명료한 공간입니다. 이 공간은 말만 들어도 누구나 머리 속으로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이지만, 그것을 직접 체험하게 될 때 관객은 마치 숲 속에 들어선 것처럼 복잡한 혼돈을 느끼고 각자가 다르게 그 공간을 읽게 됩니다. 그것을 백기영 선생처럼 미로로 체험할 수도 있고, 심리적인 고문장치로, 전면적 파악이 불가능한 판옵티콘의 정반대 상황으로, 놀이터로, 반복되는 일상의 축도로, 분열적인 자아의 상징으로, 또는 역사의 종말 이후 디스토피아의 세계를 표현한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들은 모두 유효하며 여기서 오독(誤讀)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백기영: 선생님의 작업에서 또 한 가지  느끼게 되는 중요한 사실은, 작가의 작업행위는 어떤 특정한 상황을 구성하거나 텍스트를 배치하는 일련의 과정처럼, 관람자에게 긴장감을 유발시킨다는 것입니다. 관람자는 작품 앞에 서서 이 텍스트들을 하나씩 읽어가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되지요. 이 사물들은 심광현의 표현처럼 일종의 <조각극장>처럼, 어떤 상연을 위한 준비를 이미 마친 상태입니다. 아니 어쩌면 상연 중에 있습니다. 관람자는 이 상연에 초대된 또 하나의 배우입니다. “이제는 당신차례입니다!”하고 관람자를 유혹하지만, 대다수 공연에 초대된 소극적 관람자들은 이 진지한 물음에 무엇으로 답해야 할지 몰라 어색하게 서 있다가 돌아서 버리고 맙니다. 예를 들면 “49개의 방“ 같은 작품 앞에서 관람자는 당혹감을 느낍니다. 문들로 이루어진 49개의 방 중, 어떤 방으로 먼저 들어서야 할지 관람자는 결정하게 됩니다. 다음 방에 들어서면 또 다시 사방으로 둘러싸인 문들을 마주하게 되고 관람자는 차례로 문을 따라 들어갑니다. 어찌 보면, 선생님의 작업은 이 49개의 방에서처럼, 관람자의 호기심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아가게 하는 과정과도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서 관람자는 작가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만나게 되는 것이죠. 작가가 사라진 무대위에서 관람자와 선생님의 사물들 간의 놀이를 관람하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 듣고 싶습니다.

안규철: 말씀하신 것처럼 관객이 작가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49개의 방>에서 관객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잠시 당황스러워 하지만, 대체로 그 안에서 삶, 길, 과거 현재 미래, 닫힘과 열림, 정지와 이동과 같은 키워드들을 연상하면서 그것을 자신의 과거의 경험들에 연결지어 나름대로 읽는 것으로 보입니다. 명료한 하나의 대상 앞에서(속에서) 수백 수천 가지 의미작용이 일어나는 것이 제게는 매우 흥미롭고 창조적인 과정이라고 여겨집니다.
  문짝과 기둥들은 제가 직접 만들었지만 실제로 제가 만든 것은 문짝과 기둥이라는 물건이 아니라 그것들로 이루어지는 특별한 모양의 빈 공간입니다. 전시가 끝나 문들이 철거되면 이 공간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각인되어 비물질의 상태로 존재하게 될 것입니다. 그 공간을 체험하고 읽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전적으로 관객의 몫이지요. 이런 과정을 통해 수동적으로 작가의 메시지를 수신하는 수용자로서의 관객이 능동적인 해석자가 되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공간에서 작가는 빠져있어야 합니다. 어떤 분은 거기에 작가의 메시지들을 배치할 것을 기대하기도 했지만,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침묵할 필요가 있습니다.
  <49개의 방>을 구상할 때 제게 결정적이었던 요소는, 그것이 관객에게 둘 중 하나의 선택을 요구한다는 것, 문을 열고 새로운 공간으로 나아가거나 닫힌 문 앞에 머물거나 하는 양자택일을 요구한다는 것, 다시 말해서 지금 이대로 있을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공간으로 나아갈 것인가를 질문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해서 지금의 삶을 돌아보고 지금과는 다른 세상을 꿈꾸게 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예술이 가진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백기영: “사고하는 미술행위”가 주는 남다른 매력 때문에 선생님의 작업은 전시를 보고나서도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게 합니다. 미술인회의 자유게시판에서도 홍명섭 선생님과 더불어 안규철 선생님의 작업에 대한 논의가 있었는데, 한국의 개념미술이 그 독자적인 자리매김을 하기 위해서는 두 분 같은 선배작가들에 대한 논의가 더 지속되어야 하리라고 봅니다. 질문에 답해주신 선생님께 감사드리며, 미술에 대한 지속되는 화두를 제시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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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디지털 미술관 http://www.kbs.co.kr/korea/sisa/dm/index.html 2004.5.23 방송

개념미술[conceptual art, 槪念美術]  미니멀 아트(minimal art) 이후에 대두한 현대미술의 경향 http://100.naver.com/100.php?where=100&id=6184

http://blogfiles.naver.net/data2/2004/3/21/46/040320_01.jpg

http://blog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blog&query=%BE%C8%B1%D4%C3%B6

http://www.gallerykids.com/technote/read.cgi?board=today&y_number=166&nnew=2

http://www.rodingallery.org/rodingallery/rodin/exhibition/ahnkyuchul/images/simg1.jpg
모자Hat 1994/2004, 1200x380cm, 시트지, 모자 color sheet, felt hat

다섯 컷의 패턴을 반복하여 벽화로 구현한 이 작품은 두 사람이 만나 악수를 나누고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잡아먹는 기이한 내용을 담고 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은 만화적 상상력의 산물로서 허황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약육강식의 살벌한 인간관계에 대한 사유가 있다. 함께 전시되는 모자는 잡아 먹힌 사람이 떨어뜨린 것으로 간주되며 이는 이야기와 물증 사이의 진실 여부를 묻는 또 다른 화두가 된다.


http://www.rodingallery.org/rodingallery/rodin/exhibition/ahnkyuchul/images/simg2.jpg
그 남자의 가방 The man's suitcase 1993, 드로잉: 각30x50cm 11점, 가방: 60x100x11cm
종이에 연필, 나무에 라커, 학고재 소장
pencil on paper, lacquer on wood,
collection of Hakgojae

11점의 드로잉과 그에 상응하는 글, 그리고 날개모양의 가방으로 구성되는 이 작품은 알 수 없는 남자가 맡기고 간 가방 속에 정말 날개가 들어있는가를 묻는 우화적 상상력으로 가득 찬 작품이다. 허구와 실제 사이의 대응관계를 섬세하게 드러낼 뿐만 아니라, 미술과 문학의 접목을 통해 우리의 시각영역을 눈에 보이지 않는 상상세계 속으로 확장한다.



http://www.rodingallery.org/rodingallery/rodin/exhibition/ahnkyuchul/images/simg8.jpg
상자속으로 사라진 사람
Man who disappeared into the box
1998/2004, 드로잉: 22.5x32cm 13점,
상자: 65x50x41cm 3개, 천: 지름 150cm, 길이 1000cm, 종이에 연필, 나무에 라커, 천 pencil on paper, lacquer on wood, cloth

드로잉을 곁들인 13장의 텍스트에는 눈앞에 놓인 작은 상자를 통해 현실세계로부터 도피하는 방법이 자세히 적혀있다. 3개의 상자에는 현실과 현실 바깥을 이어주는 통로인양 긴 헝겊 터널이 각각 연결된다. 이 작품 역시 시각적 증거물에 의존하는 우리의 문화구조를 드러내는 측면이 있지만, 현대인의 현실탈주욕구를 만화적인 방식으로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http://www.rodingallery.org/rodingallery/rodin/exhibition/ahnkyuchul/images/simg4.jpg
흔들리지 않는 방
Unshakable room
2003/2004, 660x570x380cm, 나무 wood

바닥없는 삶을 사는 우리들의 무의식적 공포를 구현한 방으로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삶의 기물들을 각목으로 엮어서 단단히 묶어두고 있다. 흔들림에 대한 저항은 불안전한 현실에 대한 강박증을 반영하며 공황장애를 유발하는 우리사회의 안전 불감증에 대한 역설적인 비판이다. 반면 이 작품은 소멸에 저항하려는 인간의 오랜 욕구를 재현한 것으로도 볼 수 있는데 비극적이며 동시에 희극적이기도 한 이 욕망에 작가는 연민의 시선을 보낸다

http://www.rodingallery.org/rodingallery/rodin/exhibition/ahnkyuchul/images/simg5.jpg
바닥없는 방
Bottomless room
2004, 540x360x122cm, 나무, 복합재료
plywood, various material

독신자용 원룸 아파트의 설계도를 인터넷에서 다운받아 지은 집으로 창문, 환기구, 싱크대, 세면대 등 실재의 공간이 그대로 재현되었지만 허리 아래의 벽과 바닥은 결여돼 있다. 현대인의 뿌리내리지 못하는 삶을 직접적으로 표현함과 동시에, 우리시대의 미적 취향의 기준으로 제시된 똑 같은 아파트 구조가 결혼식장이나 장례식장처럼 삶이 스쳐 지나갈 뿐, 머물지 못하는 곳은 아닌지 묻고 있다.

http://www.rodingallery.org/rodingallery/rodin/exhibition/ahnkyuchul/images/simg6.jpg
112개의 문이 있는 방
Room with 112 doors
2003-2004, 760x760x230cm, 나무, 금속
wood, matal

네 면이 모두 여닫을 수 있는 문으로 구성된 49개의 방은 폐소공포증을 불러일으킬 만큼 여러 겹으로 중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침입에 무방비로 노출된 방이다. 끊임없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할 수 밖에 없는 공간은 네트웍에 연결되어 감시하고 감시당하면서도 파편화된 관계만을 유지할 뿐, 전체를 조망할 수 없는 현대사회를 의미한다. 또는 완성과 변화를 상징하는 7 또는 49란 숫자의 상징성으로부터 인생에 대한 사유를 이끌어 낼 수도 있겠다

http://www.rodingallery.org/rodingallery/rodin/exhibition/ahnkyuchul/images/simg3.jpg
슬럼프 드로잉
Drawings against artist's slump
2003/2004, 38x59cm
종이에 먼지, 머리카락, 빵가루, 접착제 등
various material on paper

작가로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슬럼프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제안된 이 드로잉들은 작가의 삶의 흔적으로 구성된다. 머리카락, 먼지, 매일 아침 먹는 토스트 부스러기 등등. 유일하게 요구되는 테크닉이라면 단순반복행위를 지속할 수 있는 인내심 정도인데, 그것은 기네스북에 등재되기 위해 기이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의 행위와 크게 다르지 않다. 현대미술 창작행위의 의미를 묻는 작품이다.

http://www.rodingallery.org/rodingallery/rodin/exhibition/ahnkyuchul/images/simg3_1.jpg
http://www.rodingallery.org/rodingallery/rodin/exhibition/ahnkyuchul/images/simg7_1.jpg http://www.rodingallery.org/rodingallery/rodin/exhibition/ahnkyuchul/images/simg7_2.jpg http://www.rodingallery.org/rodingallery/rodin/exhibition/ahnkyuchul/images/simg7_3.jpg
소품 연작
Maquettes
2003-2004, 높이 15~25cm, 나무, 시멘트, 금속
various material

작가의 조형적 아이디어를 살펴볼 수 있는 코너. 과장되거나 비논리적인 상태로 표현된 사물들은 현실 속에 잠재된 폭력이나 모순, 또는 우리의 욕망을 드러내지만 그 전달의 방법은 만화적 상상력에 의존해 있어서 지극히 가볍고 유쾌하다. 그의 관념 속 세상사는 불안정하여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것인데 이에 대해 저항하는 인간의 비극적이며 동시에 희극적인 운명을 사물로 표현한다.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OD&office_id=036&article_id=0000005165   2004.05.13  http://imgnews.naver.com/image/036/2004/05/13/021015000120040513509_49_5.jpg
이번 전시에 선보인 안규철씨의 <바닥없는 방 designtimesp=5095>(2004)은 원룸을 재현해 천장에 매단 작품으로 현대인의 부유하는 삶을 표현했다

http://www.archious.com/forum/forum_view.asp?jn=7702&file=20040201101404.anc&id=1404

2004년도 첫 기획전시로 미술이 시각의 영역을 넘어 문학과 사상의 세계로 확장하는데 기여해 온 조각가 안규철의 작품세계를 조망한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사진과 조각, 드로잉과 글쓰기 작업을 통해 한국의 개념적인 미술을 주도해온 안규철은 현실에 대한 비판정신과 수공적 조형성, 그리고 언어의 개념성 등 공존시키기 어려운 요소들을 성공적으로 결합하여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해 온 작가이다. 보는 것을 절제하는 대신 지적인 연상 작용을 이끌어 내는 그의 작업은 시각적 일루전을 최소화한 사물과 정교한 언어를 결합하여 현실사회의 모순과 전도된 가치를 드러내 왔다.

<49개의 방>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신작들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작가의 관심사와 특성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관객의 신체와 개별적인 상상력을 개입시켜 다양한 읽기를 유도하는 작품들이다. 일상기물이 아니라 현실 속의 실제 공간을 본뜬 방들은 일종의 가상현실이 되고 관객은 물리적인 공간을 직접 체험하면서 작가가 제시한 현실과 자신의 현실을 중첩시켜 볼 수 있다. 뿌리내리지 못하는 현대인의 삶이나(<바닥없는 방 designtimesp=5100>) 불안정한 삶을 얽어매두려는 욕망(<흔들리지 않는 방 designtimesp=5101>), 그리고 입구이자 출구이며 희망이자허상인 문들(<112개의 문이 있는방>)을 통해 삶의 모순을 표현한 공간은 그 표면적인 의미 위에 관객의 사적인 의미들이 덧붙여질 여지를 남겨둔 열린 프로젝트가 된다.

더불어 우화라는 문학적인 방식으로 미술영역의 확장을 시도한 1990년대의 작품 세 점을 신작과 함께 전시함으로써 부재不在에 대한 화두를 지금의 시점에서 다시 새롭게 해석하는 기회를 갖는다.


작가 약력
안규철(安奎哲)   현 대학교수, 현 조각가
1955    서울 생
1977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졸업
1995    슈투트가르트 국립미술학교 학부 및 연구과정 졸업
현 재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부교수

주요 개인전
1992    스페이스샘터화랑, 서울
1996    사물들의 사이, 아트스페이스서울 / 학고재, 서울
1999    사소한 사건, 아트선재미술관, 경주

주요 단체전
1985    현실과 발언, 그림마당 민, 서울
1987    문제작가작품전, 서울미술관, 서울
1993    태평양을 건너서, 퀸즈미술관, 뉴욕
1995    싹, 선재미술관, 서울
1997    그리기와 쓰기, 한림미술관, 대전
1998    미디어와 사이트 : 부산시립미술관 개관기념전, 부산
2000    디자인 혹은 예술, 디자인미술관, 서울
2002    접속(광주비엔날레 2002 프로젝트 4), 광주 컨테이너, 미술회관, 서울
2003    미술 속의 만화, 만화 속의 미술, 이화여대박물관,
           서울 크로싱즈 2003(한국이민1백주년기념전), 하와이대학갤러리, 호놀룰루

2004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 조교수

http://www.kcaf.or.kr/art500/ahnkyuchul/biography.htm
안규철은 90년대초 이래로 일상오브제와 언어를 중심적인 매체로 하는 작업을 발표해온 미술가이다. 개념적인 사고와 형식적인 완결성을 추구하는 작업태도로 인해 우리나라 미술계 내에서 통상 개념미술 계열의 작가로 분류되지만, 특별히 하나의 양식으로는 묶을 수 없는 다양한 작품세계가 병행하는 작가적 양상을 보여준다. 작품에 등장하는 재료 역시 전통적인 조각재료보다는 천, 금속, 나무, 석고 등 일상세계의 잡다한 재료를 동원하고 있는데, 이는 특정한 재료와 기법을 토대로 하기보다 작업의 아이디어에 따라 적합한 재료를 그때그때 찾아서 수용하는 작업방식에서 생겨나는 결과라 할 수 있다. 서울미대 조소과 출신인 그의 조각가로서의 경력은 미술잡지 기자 생활과 '현실과 발언'을 비롯한 80년대 정치적 미술에의 참여, 그리고 뒤늦게 떠난 독일 유학생활 등 다채롭고 이질적인 경험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특히 기자생활과 유학생활에서 습관화된 글쓰기와 인문학적 관심, 그리고 기존미술의 지배적인 흐름에 대한 비판적 거리두기는 그의 작품세계에 독특한 성격을 부여해왔다

http://www.kcaf.or.kr/art500/ahnkyuchul/reviews1_5.htm
주시하는 것은 기호라기보다 기호 작용인 것이다. 그것의 구조 또는 기능이 그의 주된 관심사인데, 그것을 환기시키기 위해 그는 기호의 모순을 노출시킨다. 우선 그는 그 존 재 자체가 기성품과 예술품의 사이라는 애매한 지점에 있는 기호를 만들어낸다. 뒤샹과는 달리 일상품을 장인과 같이 공들여 만듦으로써 익명적 사물의 외양을 띤 개성적 예술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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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작가를 위한 다섯개의 질문_2 199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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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많은 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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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곳의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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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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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차피 상상을 먹고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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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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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_1/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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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들의 집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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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리버의 정원_2/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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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사건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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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사건_4/1999


http://www.arteshop.co.kr/member/bbs/exhibnews/list.asp?pos=11&run=_final&code=287&page=1&step=0&parent_file=list.asp
사회적 모순을 우화적, 만화적 감수성으로 공간화한 설치작품과 모형 연작, 드로잉등 8점이 출품된다.

그의 작품은 현실에 대한 비판의지가 뚜렷하고 수공 작업이 중시된다. 또한 미술에 문학적 요소를 받아들여 오브제와 텍스트의 결합을 추구한 것도 특징이다.

전시장 입구에 설치된 벽지를 연상시키는 '모자'는 정장차림의 두 사람이 만나서 악수하고 돌연 한 사람이 나머지 한사람을 잡아먹는 다섯 컷의 흑백 그림을 반복하고있다. 식인행위를 묘사한 이 작품은 약육강식의 살벌한 인간관계를 희극적인 상황으로 반전시킨다. 그림에서는 잡아먹힌 사람이 쓰고있던 모자가 땅에 떨어지는데 그의 모자로 추정되는 모자가 물증으로 벽감속에 전시된다.

'그 남자의 가방'은 11점의 드로잉과 글, 날개 모양의 가방으로 구성된다. 알 수 없는 남자가 맡기고 간 가방에 관한 이야기를 믿을 것인지 말 것인지 질문하는 작품이다.

'상자속으로 사라진 사람'에서는 드로잉을 곁들인 13장의 지시문이 헝겊 터널로 이어진 작은 상자를 통해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사라지는 방법"을 알려준다.

'바닥없는 방'은 허리 아래 벽과 바닥이 없이 천장에 매달려있는 방을 재현한다. 바닥없는(bottomless) 삶, 뿌리 박히지 못하고 부유하는 삶, 이곳에서 저곳으로 떠돌며 임시로 사는 삶을 의미한다.

'112개의 문이 있는 방'은 이 문들이 만든 49개의 작은 공간들로 구획된 방이다. 가로로 7개의 문, 세로로 7개의 문이 늘어서 각 방마다 사면이 모두 여닫을 수 있는 문으로 구성된다.

닫혔음에도 불구하고 열려있는 공간으로, 타인의 발자국 소리에 귀 기울이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야하는 이 공간은 네트워크에 걸려 혼자가 되는 것이 불가능한 현대인의 삶을 보여준다.

실제 공간을 본뜬 이 작품들은 일종의 가상현실이 되며 관람객은 신체적인 경험을 통해 작가가 제시한 현실과 자신의 현실을 중첩시키게된다.

13일 오후 2시에는 작가와의 대화가 마련돼있고 전시작품 '그 남자의 가방'에 대한 이야기를 관람객 스스로 만들어내는 관람객 참여프로그램도 진행된다.자료출처-연합뉴스/김은주 기자

http://www.cna.info/menu5/2004/0309_1.htm
<안규철-49개의 방 designtimesp=5181>설치 작품 6점과 드로잉, 모형 시리즈로 구성되는데 사회적 모순을 우화적, 만화적 감수성으로 공간화 해 온 작가의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심도 있게 조명한다
<49개의방>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선보이는 신작들은 작가의 관심사와 특성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관객들의 보다 실제적인 신체의 경험을 유도하는 일종의 가상현실을 제시한다. 뿌리내리지 못하는 현대인의 삶이나 불안정한 삶을 얽어매 두려는 욕망, 그리고 입구이자 출구이며 희망이자 허상인 문들을 통해 삶의 모순을 표현한 공간은 관객들의 참여를 통해 의미가 확장되는 열린 프로젝트이다. 더불어 우화라는 문학적인 방식으로 미술영역의 범주를 넓히고 1990년대의 작품들은 부재에 대한 화두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전시는 크게 두 구룹으로 이루어지는데, 첫번째는 텍스트와 오브제를 결합한 형식의 구작 3점이고, 다른 하나는 주로 변형된 방을 소재로 한 3개의 신작 설치작업이다. 두 번째 그룹은 신작 설치작ㅇ버으로 세 개의 방으로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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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eraldbiz.com/SITE/data/html_dir/2004/03/09/200403090001.asp 현대인의 방랑적 삶 축약한 '블랙 유머' 과거 화제 전시작 세편도 나란히 출품' 제 작업을... 로댕갤러리에서 전시 중인 조각가 안규철(49)의 '49개의 방'은 다양한 체험공간으로...제 작업을 일반적으로 '개념미술이다, 어려운 미술이다'라고 얘기하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관객과의 소통을많이 생각했습니다. 나는 내작업을 만화라고 생각하는데왜 어렵다고 하는지, 그런 문제를 관객들이 공간을 체험함으로써 풀어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태평로 로댕갤러리에서 전시 중인 조각가 안규철(49)의 '49개의 방'은 다양한 체험공간으로 구성돼있다.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원룸과 112개의 문으로 구성된 49개의 방, 작가가 제시해 놓은 지시문에 따라 행동하면 상자 속으로 사라질 수있는 유체이동 공간 등 일상적인 공간을새롭게 재해석한 위트와 사유의 깊이를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5년 만에 갖는 개인전에서 작가는 종래 작업형태인 보이는 것의 실상과 허상의 형상화에서 나아가 일상의 실제공간을 다소 비틀어 옮겨 놓는 방식으로 일상 속의 부조리함을 슬며시 보여준다.

작가의 신작 설치 '바닥없는 방' '흔들리지 않는방' '49개의 방'은 현대인의 삶을 축약적으로 제시한다.

'바닥없는 방'은 전형적인 원룸에서 바닥 반쪽을드러낸 구조다. 방과 욕실, 부엌으로 구성된 생활의공간이지만 밑바닥은 드러나 있는 불안정한 형태다. 바닥이 없는 삶, 뿌리박히지 못하고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겨 가는 임시적인 삶의 형태를 보여준다.

'흔들리지 않는 방'도 있다. 온통 각목으로 가로세로 지으며 못질해둔 방이다. 현대인의 불안과 강박심리의 표현이다.

'49개의 방'은 49개의 작은 공간들로 구획된 방이다. 사면이 모두 문짝으로 구성돼 모두 여닫을 수있는 닫힌 공간이면서 열린공간이다. 하나의 공간을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네트워크에 연결돼 끊임없이 간섭당하는 삶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는 과거 화제가 됐던 텍스트와 오브제를 결합한 작품 세 편도 함께 선보인다.

'그 남자의 가방' '상자속으로 사라진 사람' '모자'등은 보는 것과 믿음의 실상 및 허상을 예리하게 집어낸 블랙 유머다.

'모자'는 벽지를 연상시키는 패턴화로 구성돼 있다. 패턴을 이루는 작은 그림은 5개의 컷으로 구성돼 있다.

중절모를 쓴 신사 두 분이 만나 악수하지만 이내한 사람이 다른 한쪽을 잡아먹는 엽기적인 모습이다. 서로 안면이 있는 사람들이지만 약육강식의 생존논리에 의해 처참하게 먹고 먹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사건은 실제 일어난 것인가. 먹힌 남자의모자가 증거물로 제시돼 있다. 박물관 유리상자에 들어있는 모자는 역사적 유물처럼 이 일이 실제인 양 받아들이게 한다.장난감 같은 작가의 소품들도 전시돼 있다.

지구를 구하러온 구급차, 황금운석, 50개의 다리가 있는 책상…. 만화적인 형태로 현대인의 삶의 조건과 존재를 엮어내는 상상의 밑그림들이다.



http://www.fnnews.com/online_image/2004/0309/0310_19_01.jpg [작가&작품 안규철 ‘49개의 방’展] ‘희망과 허상’의 역설 http://www.fnnews.com/html/fnview/2004/0309/091972209414111140.html 나무 막대기 수백개가 어지럽게 꽂혀 있는 흔들리지 않는 방,침대와 의자 등이 허공에 달려 있다.

공중에 매달려 바닥이 없는 방,살짝 벽을 건드리면 무너질 듯 흔들린다.

112개의 문이 달린 49개의 방,사방이 온통 門인 이 방은 마치 미로같이 연결되어 있다.

이 방들은 개념적 미술가 안규철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의 ‘49개의 방’展에서 볼 수 있는 기이한 방들이다.

‘49개의 방’ 전시회 제목부터 눈길을 끈다.

‘7은 일주일 또는 7음표 등을 의미하며 변화와 생성의 숫자’라고 작가는 말한다.7곱하기 7은 49다 그래서 ‘49개의 방’인가. 작가의 나이도 49세다.

작가 안규철씨가 보여주는 방들은 결코 소유할 수 없는 공간이다.

그는 그것을 “현대사회에서 ‘감시 당하는 문화’의 축약적 표현”이라고 했다.

작가는 “자본과 경제가 지배하는 현실 속에서 미술의 역할에 대해 회의한다.미술을 통해서 세상의 지배적인 힘과 경쟁하려 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래서 그는 ‘세상의 불투명 한 것, 말할 수 없는 것, 모르는 것의 존재들을 인정해야 했고 나 자신의 본능과 직관을 믿어야 했다’고 독백하면서 일상에 대한 비판,흔들리는 현실을 설치미술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현대미술계에 끊임없이 새로운 논의를 부추겨 왔다.

어떤 면에서 정통 미술계의 이방인일 수도 있는 그는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뚜렷하다.개념적인 작업속에서 현실의 부조리와 폭력을 드러내는 일에 몰두해 왔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근작들은 그의 오브제와 언어작업을 통해 폭넓은 연상작용을 이끌어 낸다.

설치작업으로 보여주는 기이한 방들은 불구가 된 방들이다. 이는 ‘자기 흔적’이 없이 사는 현대인들의 허상같은 삶을 얘기한다.

작품 ‘모자’는 재치 있는 역설을 통해 인간관계의 희극적인 상황을 보여준다.

‘상자속으로 사라진 사람’은 시간과 개념중 어느 것을 선택할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한없이 제기한다.현대인의 현실 탈출 욕구를 다룬 작품이다.천으로 만든 긴 통로를 따라 상자 속으로 들어간 뒤 뚜껑을 닫으면 마치 마술처럼 사라져 버릴 수 있다고 관객의 호기심을 부추긴다.

최근작 3점은 이번 전시의 핵심으로 ‘방들의 메시지’가 가득하다.

‘바닥없는 방’에서는 임시적인 삶,기억도 남길 수 없는 삶의 공간속에서 불안한 흔들림을 느낄 수 있다.

‘흔들리지 않는 방’은 욕망의 덩어리를 가득 묶어 둔 방이다. 인간의 강박적인 위기감을 드러낸다.

이 전시의 하일라이트인 ‘112개의 문이 있는 방’ 인간은 결코 혼자가 될 수 없다는 암시와 끊임없이 간섭 당하고 간섭하는 파편화된 인간관계를 상징하고 있다.

“네트워크에 걸려 있지만 결코 전체를 파악할 수 없는 현대인의 삶”이며 문은 곧 “입구이자 출구이며 희망이자 허상”을 상징한다.

작가는 현실의 허상과 욕망,길의 실종과 허무를 담은 가상현실을 통해 인간의 삶의 의미를 강하게 확장하고 있다.

이번 전시기간중에 작가와의 대화(13일 오후 2시),관람객 참여 프로그램 등이 준비돼 있어 작가의 미술세계를 함께 해석하며 체험 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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