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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zabel(2004-06-19 15:28:23, Hit : 2125, Vote : 497
 http://gelatinemotel.byus.net
 오아시스_첫번째_편지.hwp (67.5 KB), Download : 31
 스퀏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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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미술인에서 가져왔습니다.   지금 스퀏 진행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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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환, 김현숙) 빈 집, 이제 우리가 접수한다.



"불온한 점거! 예술적 점거! 스쾃! 목동 예술인 회관은 우리가 접수한다." 외국에 스쾃이 있다면 한국에는 오아시스 프로젝트가 있다. 이른바 예술점거 프로젝트 <오아시스>. 삭막한 도심에 "오아시스"를 만들고 있는 한국의 스쾃아티스트들. 김윤환, 김현숙 씨와 유쾌한 게시판 마라톤 인터뷰를 진행해 보았다. 사진은 4월 16일 카페시월에서 진행된 오아시스프로젝트 워크샵. 그 현장을 노순택씨가 카메라에 담았다. 맨 아래 단체사진/ 뒷줄 좌로부터 왕희정, 윤여관, 김현숙, 김윤환, 조영아, 이병한, 용해숙, 노순택. 이들의 폼나는 이야기를 들어보자.




















김준기
  편집부의 발빠른 움직임에 무릅을 꿇습니다. 텍스트가 좀 있으면 좋겠는데... 조만간 이들의 생각을 들어봐야겠습니다. 05-10  

김윤환
  참가 멤버 중 용해숙씨 이름이 빠졌네요. 05-15 *

편집부
  안녕하세요.. 이명훈 기자^^입니다. '기자'라는 명함이 아직은 어색하군요. 아시다시피 웹진<미술인>이 아직 공개오픈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미술인>이 공개되기는 할건데, 그동안 좀더 알찬 내용을 준비한다는 자세로 <오아시스 프로젝트>를 진행하시고 계신 김윤환, 김현숙씨를 초대했습니다. 안녕하세요~~~~~~(ㅋㅋ 아주 질궂은 멘트가 아닐 수 없군요. 먼저 인사를 해야겠지에...) 05-15  

이명훈
  헉! 글을 올려놓고 보니, 필명이 '편집부'로 되었네요. 다시 로그아웃! 짠~~~다시 로그인... 이제 '이명훈'이죠? 05-15  

이명훈
  네~~~ 이제 '정상적'입니다.^^* 지금 무신 수작을 하고 있는 것인지 상당히 의아해하실 분들이 혹/ 계실것 같군요. 그럼 이 수작(?)에 대해 간단히 안내말씀 드리겠습니다. <미술인>에서는 김윤환, 김현숙씨를 초대해 "오아시스 프로젝트"에 대해 좀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했습니다. 직접 인터뷰를 하거나 원고를 청탁할 수 도 있었겠지만, 온라인_웹진의 특징을 살려 게시판 댓글 기능을 이용한 인터뷰를 하기로 했답니다. ㅎㅎ 약간 생뚱하지만... 뭔가 새롭고 신선한 느낌이 강하게 오는데, 안그런가요? 어떠세요? 05-15  

이명훈
  음... 좀 우왕좌왕/산만한 멘트들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오아시스 프로젝트에 대해 알아보기 전에요...위에서 맴버 가운데 용해숙씨를 추가_수정했습니다. 그런데 제일 아래사진-단체사진을 보면 총8명 인데요...오아시스프로젝트 맴버에 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사진에 나온 얼굴의 이름을 찾아주세요... 05-15  

김윤환
  뒷줄 좌로부터 왕희정(작가, 현재 파리 1대학 박사과정), 윤여관(작가,문화행동센터 부소장), 김현숙(작가, 예술기획), 김윤환(작가, 예술기획), 조영아(작가), 이병한(심스페이스 대표), 용해숙(작가), 노순택(사진작가) 순입니다.

음... 오아시스 프로젝트는 그룹으로 묶여있는 형태가 아니며 사안별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누군가 제안을 하면 그기에 동의하는 작가들이 참여해서 만드는 구조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아시스의 취지에 공감하면 누구나 참여가능합니다. 05-16 *

이명훈
  반갑습니다. 드뎌 오셨군요. 먼저 이름을 찾아줘서 고맙습니다.
그러니깐..오아시스 프로젝트 팀은 '해처모여!'식 프로젝트팀이군요. 이런 식이라면 일단 어떤 제안이든지 감성적 호소력과 논리적 설득력이 겸비되어야 겠군요. 그쵸? 아무래도 뭔가에 끌려야 참여를 할 것이고...더욱이 자발적인 참여-다시말해 제발로 찾아아 "같이 해보겠다"하지 않는 이상은 이 프로젝트가 어려워 질 테니깐요...
그럼 오아시스프로젝트 팀의 주동자는 사안별로 달라진다는 말씀인가요? 제가 알기로는 김윤환, 김현숙씨로 부터 오아시스프로젝트가 제안되고 시작되었다고 알고 있는데요...김윤환씨도 경우에 따라서는 참여를 못하실 수도 있겠네요. 그런가요? 05-16 *

이명훈
  진행 편이상... 두번째 질문을 드립니다. 아주 뻔한 질문인데요... 누군가 <오아시스프로젝트>가 뭐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답할 수 있을까요? 지금까지 오아시스프로젝트에 관한 설명자료는 김현숙씨께서 주로 쓰셨는데요.... 김윤환씨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05-16 *

이명훈
  첫번째 질문에 대한 답이 좀 뻔할 것 같아...'네'라고 답할 것 같은데..그쵸?
그럼 질문을 좀 바꿔보겠습니다. 그럼 첫번째 오아시스프로젝트는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제가 알기로 목동 예총빌딩을 점거한다는 것이었는데....맞지요?
(무신 취조하는 것 같은데....^^) 그런데...현재까지 예총빌딩을 점거하지 못했는데.... 대신 4월 16일 카페시월을 점거했단 말이죠.... 05-16 *

김마담
  안녕하세요. 파리의 김마담입니다. 오아시스 프로젝트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좀 나중에 쓰도록 하지요. 짧지 않은 얘기고, 할 얘기도 많고.. 해서요. 일단 지금은 저도 여기 들어왔다는 것을 알리는 차원에서 글을 남깁니다.

목동에서 지어지다가 만 것은 예총회관이 아니고 정확한 명칭은 목동 예술인회관입니다. 오아시스 프로젝트가 목동 예술인회관에 대한 문제제기로 부터 시작되긴 했지만, 그곳을 점거해서 사용하는 것만을 목표로 하진 않습니다.

현실적으로 그곳은 53퍼센트 정도 공사가 진행되었기 때문에 껍데기만 있고, 안의 내용은 아무것도 없는 콘크리트 덩어리 이기 때문에 실제로 점거를 해서 작가들이 작업을 하기에는 여러가지 어려움들이 예상됩니다.

그러나, 그 장소가 갖는 상징성등이 오아시스 프로젝트에서 한번 판을 벌려볼만 하다는 판단이 들어서, 올 5월 말에 일단의 깜짝 점거, 숨바꼭질이 있을 예정입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김윤환씨로부터 자세한 이야기를 듣는 것이 좋을 꺼 같습니다. 05-17 *

이명훈
  Bonjour Madame!^^ 파리와 한국이 연결되었군요....오~ 놀라워라^^. 잘 지내시죠?
오아시스프로젝트에 대해서 할 얘기가 정말 많을 것 같습니다. 제가 독자들에게 프로젝트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지난 좌담회 자료 가운데 김현숙님의 <왜 예술점거인가?>라는 텍스트를 젊은 발언꼭지에 올렸는데요...허락도 없이요^^ 어떠 세요? 괜찮습니까? ㅎㅎㅎ 먼저 허락을 받고 올렸어야 하는데...죄송합니다. (독자여러분들은 그 텍스트를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05-17  

편집부
  글의 삭제 또는 수정기능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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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에서는 수정은 어렵고 삭제만 가능합니다. 좀 불편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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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수정은 어떻게 하냐구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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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글은 복사할 필요가 없겠죠..
아무쪼록 이용하는 데 유용한 정보가 되셨길 바랍니다. 그럼 휘리릭~~~ 05-17  

김윤환
  두번째 질문에 대한 답글은 김현숙씨가 우선 쓰기로 하고요...

저는 5월 26일 있을 숨박꼭질에 대해 글을 올리겠습니다. 이 글은 관계자?들만 알고 있었던 내용일텐데요. 대략 이렇습니다.

이 이야기를 하자면 2월달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답니다.

일단의 예술가들이 2월에 모의 작당하여 3월 초에 목동 예술인회관을 몰래 들어가서 작업실로 쓸 계획으로 디데이를 잡았었죠. 거사일을 불과 이틀 앞두고 유령나올 듯한 그곳(5년이상 방치되어 있었음)에 홀로~ 도를 닦는 도인(나 홀로 수위)이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여 고민하던 중. 너무 심심하여 득도의 경지까지 이르렀을 그 도인을 방해하여 혹시라도 경칠까봐 일단 거사를 취소하기에 이릅니다.

그 후 울분을 삭이고 있던 차에 까페 시월이 헐린다는 말을 듣고, 화풀이성? 점거연습을 추진하기로 하였습니다. 여기까지가 4월 16일 1일 워크샵에 얽힌 뒷스토리였습니다.

그리하여 4월 29일은 약 20여명이 모인자리에서 "한국 사회에서 예술점거 가능한가?"라는 야한 제목으로 좌담회를 가졌었더랬습니다. 누구도 이 질문에 대해 "한국사회에서 예술점거 가능하다!" 라고 딱부러지게 대답한 이는 없었습니다만, 오아시스 프로젝트를 바라보는 눈빛이 '기대반, 호기심반'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제 2, 제 3의 장소를 추천받기에 이르렀습니다. 추천하는 이도 옆집 순이가 아니고 미술판에 힘좀 쓴다 하는 사람들의 입에서 말이지요. 그동안 알게 모르게 추천받은 곳이 5군데가 넘어갑니다. 05-17 *

김윤환
  ~계속 이어서...

만나는 분마다 불법?을 부축이고 등을 떠미는 이런 얄굳은-_-;; 상황에서, 이 참에 우선 등더리에 있는 때라도 밀어가면서 호심탐탐 진짜 '때'를 노려야할 것 같아 숨박꼭질이라는 놀이를 들고 나온 것입니다.

뭔 이야긴가 하면 간단히 말해 "놀면서 염탐한다"는 것이지요.
좀더 구체적으로-

숨박꼭질 놀이는, 옛날부터 동네에서 즐기던 놀이로써 공동체의식도 함양하고 자기 동네 구석구석도 자연스럽게 알게되는 유익한 놀이입니다.

5월 26일, 석가탄신일과 가정의 달을 맞아 "예술가족을 위한 깜짝놀이-숨박꼭질"을 준비하였습니다. 놀이방법은, 예술가들의 놀이터인 '0술인 회관'의 개(?)구멍으로 들어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얼음땡><다방구 놀이> 등의 놀이를 하다가 그기를 지키는 수위아저씨와 만나면 아저씨와 함께 숨박꼭질을 즐기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이번 놀이의 목적은 '5월을 모조리 기념하고 예술가족들의 오락과 점거공간탐색'을 목적으로 여러마리 토끼를 마구잡이 할 것입니다.

아참! 부대행사로 예술가들의 '영역표시' 놀이도 있습니다. 숨박꼭질을 하다가 짬을 내서 각자의 튀는 아이디어로 '영역표시'하시면 됩니다.

~라는 내용으로 관계자?들에게 멜 보냈던 내용입니다. (혹, 이멜을 받지 못하셨다면 절 탓하지 마시고 이멜주소 알려주세요.앞으로는 보내드릴께요^^)

오늘은 여기까지... 05-17 *

이명훈
  하하하! 재미있군요....님의 이야기가 무척 재밉습니다. 아...저도 5월 26일 한다는 숙박꼭질 관련한 메일을 받았습니다. 숨박꼭질...이야기나와서 생각이 납니다. 제 어릴적에 숨박꼭질은 확실히 동네에서 큰 놀이판이었습니다. 거의 모든 동네애들이 참가했죠...한 30명...그렇게 때거지로 하니깐 장난아니었죠... ㅎㅎㅎ 그건 그렇고요...오아시스 프로젝트의 시작에 대해 질문을 그리고 싶습니다. 그러니깐...오아시스 프로젝트의 배경은 스쾃이라고 알고 있는데요... 이 스쾃이란 것이 사비나 <작업실리포트>전 김현숙씨의 스쾃 영상기록을 통해 일반에 처음 소개된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오아시스 프로젝트의 출발를 작업실 리포트전이라고 말해도 되는 것인지요? 많은 사람들이 그 전시에서 작업실 문제라든지 스쾃에 대해 관심을 보인 것으로 알고있는데요....아! 그리고 이건 좀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질문이 될지도 모르겟는데...한국미술에서 점거예술운동을 이야기할때, 페미니스트 그룹인 입김이 벌인 종묘점거프로젝트<아방궁>이 있었잖습니까? <아방궁>과 <오아시스>의 연관성과 차별성에 대해 생각해 보신 것이 있는지요? 05-18 *

이명훈
  아..그리고 김윤환씨의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깜박 놓쳤는데요... 저의 두번째 질문말입니다. 오아시스프로젝트에 대한 김윤환씨의 정의를 들어보고 싶은데요..김현숙씨의 정의말구요..물론 많은 부분 생각을 같이 하시겠지만..그래도 좀 다른 부분이 있다면 말씀을 해주시죠. 만약 오아시스프로젝트라는 것을 전혀 모르는 누군가가 김윤환씨를 붙들고 "오아시스 프로젝트가 뭐예요?"라고 물었다고 칩시다. 그럴 경우 김윤환씨는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05-18 *

김현숙
  약간 이야기가 뒷북이 될수도 있는 거 같습니다. 그치만 대략 오아시스 프로젝트에 대한 저의 생각을 적어 보았습니다. <아방궁>과 <오아시스>의 연관성과 차별성에 대해서는 좀거 같이 생각해 봐야 할꺼 같습니다만, <아방궁>은 제가 프랑스에 있을 때 일어난 일이어서, 자세히 내막을 알지는 못하지만, 즐겁고, 의미깊은 프로젝트였다고 생각합니다. <아방궁>도 오아시스와 점거로 예술적 의견을 전달한다 라는 면에서는 공통점이 있는 거 같습니다.

그러면,,, 오아시스에 대해서..

오아시스 프로젝트는 ‘함께 꾸는 꿈’이라 생각합니다.
도심의 방치되어 있는 공간을 예술가들이 아름답게 사용하고자 하는 그런 ‘바램’을 준비하는 프로젝트라고 할수 있죠.

점점 더 도시는 거대화, 거대자본화 되어가는데, 이 도시속에서 예술가들은 그러한 속도와 반비례로 작업실을, 예술창작과 표현을 위한 공간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예술창작실은 예술가 개인의 ‘자본의 유무’애 따라 그 존재가 결정되는게 한국사회입니다. 집주인이 월세를 올려버리면 예술가는 떠나고 밀려나야 합니다. 제가 아는 어떤 판화가분은 싼 가격에 작업실을 구했는데, 그 판화가가 그곳을 깨끗이 정돈하고, 기둥들에는 조각도 하고 하니까 집주인이 집세를 올렸답니다. 그래서 나가야 할 판이라는 얘기를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나마도, 일단의 보증금과 월세를 낼수 있을 만한 경제적 상황이 허락되는 작가에 대해서만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는 집의 한켠에서 작업을 하거나, 그저 머릿속으로 작품을 구상하거나 간단한 스케치정도 밖에 할수 없겠죠. 현실화 되지 못하는 작품구상은 우리가 마시는 소주잔 속에 녹아듭니다.

미술이라는 예술장르는 그 특성상 일정한 넓이의 공간을 필요로 하게 되는데, 그 ‘공간’을 마련하는 것을 그저 예술가 개인의 부 에 사회가 맡겨둔 결과입니다.

물론 몇 개의 국공립 레지던스 프로그램이 있고, 또 진행중이긴 하지만, 그 숫자면에서도 턱없이 부족할뿐더러, 공간운영의 경직성은 실제 레지던시 예술가들의 창의성을 숨막히게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예술가들은 함께 어울려서, 서로 교류하는 속에서 새로운 예술에 대한 가능성이 열린다고 생각합니다. 예술가들이 장르를 뛰어넘어 미학적 교류를 하고, 지역사회에 예술로써 바람직한 일을 할 때, 우리의 예술문화의 지평이 넓어지리라 생각합니다. 예술의 대중화에 대해서 여러해 전부터 많이들 이야기하고 있지만, 진정한 의미로 접근하고 있는 정책은 아직 부실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여러 사회전반적인 상황속에서 오아시스 프로젝트는 시작되었다고 할수 있습니다. 무엇보다고 ‘자율적으로 창작할수 있는 권리’를 이제 예술가들이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나섰다고 할수 있습니다.
다들 마음속으로만 꾸었던 파편적이고 개인적이었던 꿈을 조금씩 모아간다는데 의의가 있다고 할수 있겠죠.

다양한 장르의 예술이 경계없이 소통하고, 새로운 예술의 가능성을 실험하고, 예술가들의 자율적인 공간운영으로, 예술문화의 새로운 전형을 만들어 가며, 예술이 살아있는 날 것인 그 상태로 시민, 지역사회와 소통하는 즐거운 공간을 만들고자 하는 ‘바램’이 오아시스 프로젝트라고 할수 있습니다. 05-18 *

김윤환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서...
작년 봄께인가,,, 아직 파리에 거주할 때 였지요.

당시 저는 이동해 다니는 작업실을 구상하고 있었고,
김현숙은 스쾃에 대한 논문초기구상을 하던 때 였습니다.
음- 고민은 그렇게 시작되었는데요.

그 해 여름에는 우연한 기회에 프랑스 친구의 소개로 방문했었던 알터나시옹이라는
스쾃은 적어도 우리가 꿈꾸던 공간에 가까와 보였습니다.

김현숙과 저는 각자 작업했었던 색깔있는? 퍼포먼스 영상들을 작업실 멤버들에게
소개하면서 넌지시 궁둥이를 내밀었더니 받아 주더군요.
아마도 그들눈에 우리가 '한통속'으로 보였나 봅니다.

휘리릭~ 무대는 바뀌어 사비나 미술관. 작업실 리포터전 벌어졌습니다.
이 전시가 말이죠,,,
사실 이슈가 되기에는 뭔가 많이 부족하지않나 하시는 분들 많았거든요.
근데 김준기 그 인간 무서번 인간입니다.
열라 뽐뿌질하더니 화제꺼리로 띄워 놓았습니다.
그 덕분에 스쾃! 쫌 알려졌거든요^^

그리고 아방궁과 오아시스의 관계에 대한 거 말인데요...
종묘점거프로젝트<아방궁> 하면 저는 떠오르는 게
'시아버지 앞에서 며느리가 노골적으로 방귀 뀌기',
'대감마님 터래기 다 뽑아버리는 겁나는 아낙'이 생각납니다.
금기를 넘는 것! 은 행동주의 미학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한국사회의 금기에 대한 선 넘기는 저희 오아시스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열댓명의 젊은 예술가들이 '예술원'을 점거한다고 상상해보면 말이지요.
숭고하고 권위있는 어르신들에 대해 경로당 노인 취급을 해버린단 말이지요.
이런 경우가 아방궁 프로젝트의 모방품 정도는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 개인적으로 <아방궁>프로젝트 스타일을 아주 좋아합니다.

단지 오아시스가 다른 점이라면,
오아시스는 점거 공간에 대한 구체적인 운영프로그램을 제시하여
예술가들이 그 공간을 사용해야 되겠다는 의지가 강렬하다고 할 수 있죠.
아직 점거공간에 대한 이렇다 할 프로그램은 마련되지 않고 있습니다만
조만간 나오리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 오아시스에 대한 김현숙씨의 의견을 들으시고도
굳이 저의 의견을 듣겠다는 저의?가 혹시 분열주의?
호호호;; 농담입니다. 저희가 사실은 부부 사기단이라서 말이죠...^^
제 바로 앞에 김현숙씨가 방대?하게 설명해 놓았기 땜에 오아시스의 정의에 대해서는 중복을 피하기 위해 말을 아끼겠습니다요.

단지 한마디만 한다면, 김현숙씨는 오아시스를 '함께꾸는 꿈'이라고 표현했는데
저는 '기존문화판 졸라 흔들기'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그럼 오늘은 이만,,, 05-19 *

이명훈
  먼저 예술가들의 작업공간 문제에 대해 말씀을 하셨는데요...국공립 레지던시 프로그램과 비교했을때 오아시스프로젝트는 예술가들의 창작공간의 문제를 국가나 공공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 스스로 성취하고 운영하는 '예술가 자활운동'정도로 해석되는 데요...물론 그 과정에서 예술에 대한 공공의 관심과 책임문제도 자연스레 이슈화 되는 것이겠죠...그러나 여기에서 문제의 핵심은 예술이 지나치게 국가나 공공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정도 그러한 유형과 거리를 유지하면서 자생력을 길러야 한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한마디로 예술자치특별구역 같은 그림이 그려지는데요...왜 영화나 소설에서 그러한 공간에 대한 묘사들이 있었지 않습니까? 그 예로써 생각나는 것이 있다면....이외수의 소설 <들개>가 생각이 나는데요... 폐교에 몇몇의 화가들이 공동생활을 하면서 작업을 하지요.. 이외수의 소설에서는 마치 예술가나 예술의 본질이 집개가 아닌 길들여지지 않은 들개의 속성에 비유해서 강한 인상을 남겼는데요...(제 기억이 맞다면요^^) 그렇다면...오아시스 프로젝트는 들개와 비슷한, 시스템에 대한 저항의식을 담고 있는 것인가요?
달리말하면 오아시스프로젝트는 반제도 또는 비제도적인 프로젝트인가?라는 질문이 생깁니다. 이 질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제도와의 타협이나 절충은 없나요? 05-19 *

이명훈
  아...그리고 <아방궁>과 <오아시스>의 비교에 대해서는 언제 별도의 좌담이나 토론의 장이 마련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여성소수자분과에 <아방궁>을 진행했던 몇분의 입김 맴버들이 있습니다. ^^ <아방궁>은 범정소송까지 가서 이겼다고 하는데...그분들의 경험을 경청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싶네요.... 05-19 *

이명훈
  두분의 정의 잘 들었습니다.
김현숙 씨의 '함께 꾸는 꿈'은 문학적이고 낭만적인 비유라면 김윤환씨는 좀더 직설적이면서 구체적인것 같은데요...문제는 흘들기의 '강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미동'이 아니라 '강렬한 흘들림'이 목표일 것은 분명할 것 같은데요...그런 측면에서 현재까지 <오아시스>는 (제 나름대로 평가해본다면) 강도가 상당히 약하고 아직은 예술가들의 낭만적인 유토피아(이상적 공동체)로 다가오는데요....물론 아직 시작단계라서 그렇다라고 하면 더 이상 할 말은 없습니다. 하지만 당장 진행중인 목동 예술인회관 점거계획을 살펴보면...의문은 이렇습니다. 현재의 전술은 치고 빠지는 게릴라식이라는 것이죠..치는 것까진 좋은데..빠진다면 그건 점거가 아니겠죠? 쫓겨나더라도 치고 들어가 '게기는' 배짱이 필요한데...아직 그 배짱이 안느껴집니다. 뭔가 주춤 주춤 망설이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제가 좀 쎈 질문을 하는 지도 모르겠는데요...<오아시스>는 분명 신기류를 만드는것이 아니라면 어떤 공간이든 점거해서 그 내부에서 예술가들이 자신들이 꿈꾸는 꿈-즉 오아시스를 만들고 그 지역사회로 부터 지지와 후원을 얻는 것까지가 목표라 할 수있겠지요...의문은 바로 이 부분입니다. 그 오아시스를 건설하기까지의 과정에서 예상되는 문제들...일테면 공공력의 투입(강제연행이나 철거), 법적인 문제(소송), 지역사회와의 커뮤니테이션 문제(민원) 등등에 대한 어떤 대응책들이 있는지...의문이 생깁니다. 굉장히 민감하고 중요한 문제들인데요....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 질문이 좀 앞서나간 것 같은데요^^ 혹시 프랑스의 스쾃의 사례를 이야기 해주실수 있나요? 프랑스에서는 이런 민감한 문제가 없나요...있다면 어떻게 해결을 하는지요?) 05-19 *

김마담
  오아시스 프로젝트는 예술가들의 자율적인 공간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 할수 있겠습니다.

시스템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을 만들어 보고자 하는 것이 맞겠지요. 그렇다면 전략과 전술이 있어야 할것이고요. 그래서 많은 고민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서, 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아직 주춤 주춤하고 있는 것으로 비춰질수 있겠지요. 그치만 그것도 전략?이라면.....
성질 급한 사람들의 마음에 불을 질러보려는... 하하하..

한번 점거하고 쫒겨나서, 힘들어 하는 것 보다는 천천히 가더라도 그런 공간을 만들어 보는 것이 목표라서 좀 신중하게 하는 편이라는 것이 맞겠지요. 또한 제가 현재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는 개인적 사정이 있어서, 김윤환씨랑 화...악 어딘가를 쳐들어가서 개길수 있는 상황이 못되기도 하고요...

구체적인 공간 점거시에 예상되는 공권력 투입이라던지 뭐 그런 법적인 문제들은 변호사 선임을 통해서 진행하려 합니다.

제가 지난 여름 저의 친구들인 프랑스 스쾃작가들에게 한국에 가서 스쾃을 하고 올것이다라고 큰소리 치고 한국엘 갔었어요. 이곳에서도 한국에서 과연 스쾃이 가능할지에 대한 관심이 큽니다. 근데 ,이번에 만났더니 처음에 하는 말이 '너 경찰에 안 잡혀갔니? 우린 니가
감옥에 간줄 알았어.... 근데 아니라니... 너무 반갑다...' 라고 하더군요.

프랑스에서의 스쾃은 철저히 법적인 문제가 따라다닙니다. 왜냐? 불법이니까요.
그래서, 이친구들은 변호사를 선임하고 법정투쟁도 함께 해 나갑니다. 그 과정에서 사회적인 합의를 이끌어 내기도 하고요....

예를 들면, 건물주가 이들은 고소를 하지요. 그러면 벌금 0000 이 때려집니다. 이벌금은 스쾃의 작가들이 낼수가 없는 정도의 엄청난 액수지요. 저의 친구말이 이 벌금은 상징적인 의미라고 합니다. 낼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벌금을 매기는... 그러면서 벌금을 내지 않고 이러한 상황을 계속 시민사회에 알려나가는 거지요. 일종의 언론플레이가 이들의 강력한 무기 중 하나입니다.

그러다가 파리시의 로베르의 집 과 알터나씨옹의 경우에는 파리시가 그러한 소송의 과정중에 그 건물을 매입해서 작가들에게 양도? 한 경우라고 할수 있습니다. 물론, 로베르의 집 같은 경우 파리시와의 관계가 없었을 때는 콘서트 장이 있어서 엘렉트론 뮤직공연을
했었다면, 파리시와 협의를 거쳐서 현재는 콘서트장 운영을 안 하고 있습니다. 로베르의 집이 위치한 곳이 파리시의 중심적인 상업지역이어서, 소음문제등때문에 취해진 조처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 다음은 지역주민의 민원(소송)의 문제 같은 경우에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스쾃의 예술가들이 지역사회와 엄청나게 많은 예술적 소통을 시도하고 있고, 좋은 사례들도 많습니다. 예를 들면, 프랑스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반 시민들은 1년에 전시장 한번 갈까 말까한 실정입니다.
그러한 때에, 자기 지역에 위치한 스쾃에서 열리는 전시회 및 공연등은 이들에게 일상적으로 예술을 만날수 있게 하는 기회가 되겠지요. 또한 오픈스튜디오 기간에는 지역주민들과 함께 하는 '음식나누기' ** 등도 진행하면서, 비교적 지역 주민들과 사이가 좋은 편입니다.
** 5월 14일-17일 까지 파리시의 벨빌 지역에서 오픈스튜디오가 열렸는데, 그중의 '폐허와 우리, 평화'라는 스쾃 아뜰리에의 주최로 음식 나누기가 열렸습니다. 지역의 레스토랑 및 지역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가 이루어 졌었지요.

또하나는, 법적인 문제들로 인해서 파리의 스쾃은 쫒겨납니다. 실제로 하나의 스쾃이 3년이상 오래 한자리에 머무는 것은 어렵습니다. 소송을 진행하다가 - 소송의 진행시간이 짧지는 않겟죠.- 그 그간 만큼 머물고 있다가, 최종적으로 법정에서 강제 철거 명령이 떨어지면 작가들이 자발적으로 철거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쾃 아뜰리에는 전체적인 통칭으로 불리우는 의미가 강하지 하나의 장소를 의미하지는 않는 다고 할수 있습니다.

실례로 2000년에 '가라쥬 오 벨르' 라는 스쾃의 경우 강제철거의 명령을 받고 경찰이 등장했었고요, 작가들은 자발적으로 철수 하면서 작은 카니발을 했습니다. 거리에서 음악을 연주하고, 퍼포먼스를 하면서 철수를 했었고요, 그 철수의 군단? 들은 구청에 가서 항의 시위를 하고는 철수했습니다.

스쾃아뜰리에 운동의 점거와 강제철거의 과정중에서 맞아서 죽은 작가들도 있습니다. 또한 강제철거 도중에 경찰로 부터 작품 및 카메라 등의 물품을 도난 받은 사례들도 있고요....

여하간 우리가 겉으로 보는 것처럼 낭만으로만 시작되고, 진행된 스쾃의 역사가 아니라고 할수 있습니다.

남미에서 망명한 작가인 루나 파시나가 빨레드 도쿄에서의 토론회에서 한 발언중에 '스쾃의 역사는 역사로 씌여질수 없다. 역사라는 것은 승리한 자가 잃은 자들의 것을 갈취해서 적은 것이 역사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스쾃의 역사는 역사 History 로 씌어 질 것이 아니라, 시와 노래. 예술로 씌여져야 한다. ' 고 했습니다.

이말에는 이들이 스쾃운동의 과정중에 겪은 패배의 아픔과 작은 승리의 경험에 대한 예술적 확신이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실제로 점거를 할 만한 공간을 물색하게 되면, 연행 및 구속등의 법적인 문제까지 고려하고 있습니다. 우리끼리 우스개 소리로 나마 '벌금형'이 제일 무섭다 라고 하지요. 05-20 *

김마담
  주제와 관련없는 저의 글은 일단 삭제를 했고요, 저는 내일 독일에 가야 하기 때문에 당분간 인터뷰에 참여할수 없습니다. 김윤환씨와 즐거운 이야기를 많이 나눌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독일에서의 퍼포먼스 페스티벌 참여후에 다음주 중순쯤에 파리에 오니까 그때 다시 들어와서 뵙지요.
근데, 이거 언제까지 할 껀가요? 기간이 궁금하네요... 글구, 이런 인터뷰가 참 재미있네요.. 그럼 안녕 05-20 *

이명훈
  아..이 인터뷰를 시작한지 벌써 1주일이 되었군요.. 마라톤 인터뷰가 뭔지를 아셨죠?ㅋㅋ
마음같아선 한달이고 두달이고... 오아시스프로젝트가 일을 벌일 때마다 인터뷰를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그건 거의 고문에 가깝죠? ㅎ 인터뷰 기간요? 제 생각으로는 김윤환씨의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인터뷰를 마칠까합니다. 그 전에 저의 의문에 대해 구체적으로 대답해주신 김현숙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프랑스의 사례들은 한국에서의 예술점거운동이 앞으로 어떤 난관에 부딪히고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할지에 대해서 생각의 꺼리를 던져주는 것 같습니다. 그 꺼리들이 막연한 것이 아니라 좀더 구체적이란 점에서 이 인터뷰의 성과가 있는 것 같습니다.
"스쾃의 역사는 시와 노래, 예술로 씌여져여 한다"는 발언은 정말 감동적입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들이 진행하고 있는 인터뷰의 방식도 한국에서의 스쾃에 대한 역사기술의 한 방법이 아니겠나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아닌가요? ^^ 05-24 *

이명훈
  김윤환씨! 요즘 바쁘신 것 같던데요...계획하신 5월 26일도 곧 다가올 거구요... 또 문화연대에서 <문화운동으로서의 예술행동주의>라는 주제포럼에서 발제를 맡으셨더군요...아무튼 이러 저러한 바쁜 움직임을 통해 한국에서 예술점거운동이 자리를 잡아나가기를 기대합니다. 자....자 인터뷰를 이쯤해서 정리를 해야죠...미리 두분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인터뷰를 위해 시간을 내주신 두분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구요....마지막 질문이 될지도 모르겠는데요....
아주 식상한, 하지만 많은 이들이 궁금할 마지막 질문을 드리죠...앞으로 오아시스 프로젝트의 방향에 대해서 어떻게 전망하시는지 이야기를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언제쯤 오아시스 다운 오아시스를 구경(?)할 수 있을까요? 그럼...마무리를 김윤환씨께 넘깁니다. 혹시 이자리에서 못하신 이야기가 있다면...^^ 05-24 *

김윤환
  음- 몇가지 일들이 겹쳐서 바쁘군요.
저는 좀더 쓸게 있었는데요...
근데 그게 3일 쯤 후에 정리 글을 올리고 싶은데요.
마무리를 약간 늦추면 안될까요? 05-24 *

이명훈
  기다리는 일은 전혀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그럼 마무리를 부탁드립니다. 05-24 *

김윤환
  인터뷰란 역시, 리듬을 타면서 해야 제맛! 인 것 같습니다.
막상 지금 쓰려니 좀 어색하네요^^
마치 응축과 긴장으로 모아둔 방구가 발사될 시기를 약간 놓치면서 처지는것 같은거요. 헐...

암튼 오아시스의 전망을 몇자 적고 기왕의 5월 26일 숨박꼭질 후기를 끝에 매다는 걸로 정리 하렵니다.

오늘 어느 선배님과 이야기 중에 점거예술로 예술가 공동체 건설을 준비할거라고 하면서 이래저래 걱정입니다. 했더니, 그 선배 왈- 주체의 문제를 지적하더군요. 즉, 준비하는 주체들이 확고하고도 진정성있게 추진하면 '공간'은 마련된다고요.

앞으로,,, 전망은 서울에 예술가 공동체를 하나 혹은 여러군데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잘 운영해보는 거고요. 아주 심플하고도 앗싸리한 목표이기 땜에 에돌아 갈 길이 별로 없습니다. 그냥 밀어붙이는 수밖에는...


인터뷰를 준비해 주신 '미술인'과 이명훈씨에게 감사드립니다.



<5월 26일 숨박꼭질 후기>-------------------------------------------------------

5월 26일 숨박꼭질 잘 다녀? 왔습니다.

참가자 : 김윤환, 노순택, 송수연, 시락, 왕희정, 이병한, 이원재, 조영아, 최연정, 허엽 (이상 10명)

[진행과정]
2시30분에 집결 > 장소이동 > 예술인회관 개구멍으로 진입(음~ 사실은 개구멍이 없는 관계로 약간의 연장과 힘을 씀) > 이렇게 크고 훌륭한 건물을 5년 이상 방치해 뒀다는 사실에 모두 기가 막혀함. > 1층부터 탐색하며 올라가기로 함 > 2층에 관리실 컨테이너 발견, 안에 불켜져 있음 > 모두 긴장, 발끝을 들고 3층으로 올라감 > 앗! 우리보다 먼저 건물을 점거한 비둘기들 발견! 여러마리... > 얘네들은 각층의 계단 끝부분을 공동화장실로 쓰고 있었다. 계단을 통로로 사용하는 사람들의 인식과 달리 비둘기한테는 그게 화장실로 보였나보다. 각설~ > 거기서부터 각각 준비해온 촬영도구로 본격적으로 촬영 >


각자 준비해 온 재료로 영역표시에 들어감.

-왕희정은 준비해 온 밀가루를 뿌리며 지나간 흔적을 남김.
-시락과 송수연은 준비해 온 분필로 벽에 자기 몸의 테두리를 그리거나 벽에 낙서그림 등.
-노순택 자기전문 분야답게 능숙하게 사진을 찍음.
-이병한 카메라폰으로 주변을 찍음.
-김윤환 20층 한쪽구석을 작업실로 찜 함, 준비해 온 메모지에 싸인을 남겨서 벽돌 속에 숨김.
-이원재 공사장 위험표지판을 떼어와 부실행정, 비리, 예총을 믿지마세요 등 낙서하여 꼭대기 층에 전시함.
-조영아, 비디오 촬영.
-다른 멤버들 낙서 등 각각 숨어서 무슨 짓? 을 했는지 알 수 없음.(건물이 너무 큰 관계로...)

드디어 옥상도착, 기념촬영- 찰칵!

잠시 회의, 여기까지 오는 동안 수위아저씨와 만나지 못한 관계로 내려가서 이 도인과 숨박꼭질을 할지 말지를 숙의, 결론은 '도'를 방해하지 말자로 결정, 조용히 내려옴 > 2층에 내려오니 아까 켜져 있었던 불이 꺼져있고 우리가 지나간 흔적만 남아있다. 역시 그 도인은 우리에게 관심 없나보다. 무~ 심~ 도~ 사~ 잘 계시오.
우리가 다시 올때까지 우리 작업실 잘 지키시오 ^^

숨박꼭질 멤버들 1층으로 내려와서 그냥 나가기 섭섭했던지 마무리 낙서까지 한다.
"여기는 오아시스, 외부인 출입금지! 예총 출입금지!"

전리품으로 관리책임자 현판을 가져옴.
가져온 전리품을 들고 찍은 사진으로 명찰을 만들기로 함.

인근 공원에 도착, 이후 계획논의 > 6월 중 작업실 공개분양하기로 결정.

끝.


*5월 26일 숨박꼭질 자료사진은
http://www.squartist.org
에서 볼 수 있습니다. 05-30 *

장충동
  우, 우와, 재밌겠다. 06-16 *





zabel (2004-06-19 15:35:02)  
예술점거는 무엇인가

글/김현숙(작가)

「점거」는 사전적 의미로는 어떤 곳을 차지하여 삶, 강제로 차지하여 자리를 잡는 것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점거(스쾃Squat)의 어원은 1835년경의 오스트리아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목동들이 양을 먹이기 위해, 자신의 초지가 아닌 곳에 들어가서 양을 먹이는 행위에서 비롯된 단어로써, 허가받지 않은 곳(장소)을 침범하는 것을 squat이라 일컫는다.

서구사회의 경우, 18세기 산업 혁명이후 자본주의와 근대화를 통한 공간의 지나친 사유화와 불평등 구조는 공간점거운동, 빈집점거운동, 주택점거운동 등으로 불리는 "스쾃(squat) 운동"을 탄생시켰다. 공간을 둘러싼 사회적 약자들의 생존권 투쟁으로 시작된 스쾃운동은 도시 노동자들의 계급적 각성에 힘입어, 사회적 불평등과 새로이 대두된 계급의 문제에 대한 투쟁의 온실이 되기도 하였다.

신흥 귀족인 부르주와와 과거 대귀족들이 소유한 방대한 규모의 공간이 사용되지 않는 형태로 몇 년간이나 방치되어 있기도 하였지만, 그 옆에서는 생존을 위한 작은 공간도 허락 받지 못한 가난한 도시노동자들이 추위에 동사하기도 하였다.
프랑스의 스쾃운동의 대표자라 할 수 있는 삐에르 신부는 "아비가 자기 자식이 굶어 죽는 것을 보다 못해 빵을 훔치는 것은 불법이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자식이 굶어 죽어 가게 만드는 사회의 구조가 불법이다" 라 선언하며, 불평등의 구조에 대한 사회적 문제제기와 함께 사회적인 책임감과 연대감을 강조해 왔다. 이러한 삶의 터전을 둘러싼 문제들은 사회적 공공성과 인간생존의 권리에 관한 근본적 문제제기가 내포되어 있다.

생존권을 둘러싼 점거와 계급투쟁의 산실로써의 스쾃운동은 68혁명을 지나면서 대안의 삶을 만드는 공간으로 전환되게 된다. "다르게 사는 것이 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지식인들과 예술가, 혁명가들의 요람이 된 것이다. 기존의 질서가 요구하는 삶의 형태로는 우리 미래에 아무런 대안이 없다고 판단한 이들은 스쾃 이라는 작은 사회에 모여서 대안적 삶에 대한 실험들을 꾸준히 해왔던 것이다.

이후 1980년대에 들어오면서 점거 장소와 점거 행위 자체에 커다란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여러 나라 정부가"공간점거운동"의 사회적 보상으로써 도시 근교에 저렴한 임대주택을 지어 이들을 그곳으로 이주시켰기 때문이다.
또 같은 시기에 정부의 도시계획에 따라 자본가들은 도심 속의 대규모 사업장이나 공장을 시 외곽으로 이전시켰고, 도심에 남아있던 공간들을 방치하게 되는데, 이곳을 예술가들이 점거하기 시작한 것이다.

스쾃의 예술가들은 “생존권에 근거한 단순 점거 행위”를 넘어 점거 행위의 사회적 근거와 의미를 제시하며 법률적·사회적 정당성을 확보해 가기 시작했다. 예술가들은 “몇십년 동안 비어있는 건물을 살아 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행위는 경제적인 가치를 창조하는 일인 동시에 정치적·문화적으로도 올바른 일”이라는 입장을 제시하였고, 이는 각종 언론과 시민사회를 통해 긍정적인 평가와 지지를 이끌어냈다.

최근에 이르러 스쾃 아티스트의 활동은 프랑스 주류미술계에서도 주목하기 시작하였다. 그러한 예로 "미술관의 성격에 스쾃의 색깔"을 지닌 공간이라고 얘기되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현대예술공간인 빨레 드 도쿄는 2002년 "예술과 스쾃"이라는 주제로 파리시와 그 외곽도시의 스쾃 26군데와 함께 현대예술과 스쾃운동을 접목, 조망해 보는 페스티벌을 열었다. 이 페스티벌 기간동안 각 스쾃은 오픈 스튜디오를 열었으며, 빨레 드 도쿄에서는 전시회와 다큐멘터리 상영회, 토론회 등을 개최하며 20
년 간의 스쾃 아티스트들의 활동과 미학적 성과에 대해 재조명하기 시작했다.

「스쾃의 예술 20년을 돌아본다」라는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 참여한 사회학자, 예술비평가, 예술가 등은 스쾃 아티스트들의 실험정신에 새로운 예술의 가능성을 예견했으며, 이들이 만들어 가는 공간과 삶의 방식에 대해서 프랑스 예술계와 많은 관객들은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서구 유럽사회의 200여 년이 넘는 생존권을 위한 스쾃운동과 예술생존권과 예술실험권을 위한 스쾃아티스트의 운동을 보면서, 한국사회에서도 예술자율지대를 위한 예술점거가 가능한 지에 대한 진지한 실험과 문제제기를 위해 OASIS PROJECT는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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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예술점거인가?

한국사회에서의 점거는 사전적 의미의 점거형식보다는 “일시적 점거”의 형식을 빌어서 사회적 발언(농성)을 하는 형태가 많았다. 군부독재와 분단된 현실에 대한 저항의 표현으로 시작된 점거 농성은 사회의 민주화를 위한 과정에도 많은 사례를 남기고 있다.

대학생들의 등록금 인상에 반대하는 투쟁으로써의 점거농성은 학원자율화의 단초를 마련하기도 하였다. 학교라는 공간이 거대한 자본과 권력독재가 판치는 사회의 축소판으로 되어갈 때 학생들도 학교의 주인이다라는 인식에 근거해서, 학사행정의 부조리한 모습에 대해 폭로하고 저항하기 위해 총장실 점거 등을 선택하였다.
환경운동 단체들은 자연의 과도한 파괴를 통해 개발이익을 차지하려는 개발 업자와 정부의 반 환경적 정책에 반기를 들며, 자연과 인간이 조화롭게 살아가는 우리 사회와 삶의 가치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위하여 점거 농성을 하기도 하였다.
잘못된 정부정책이나 국회의원들의 정책에 대해 시민사회가 문제제기를 하기 위한 형식으로 당사를 점거하기도 하였으며, 노동자들은 사회적 불평등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한 골리앗 투쟁 등도 시도하였다.

또한 농촌의 붕괴로 도시로 내몰려서는 또다시 도시빈민으로 전락하게 된 철거민들은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을 사회로부터 보장받기 위해 점거를 선택하였다. 사회의 민주화세력들은 가두점거 시위, 명동성당 점거 농성 등을 통해 질곡의 현대사 속에서 사회의 민주화와 불평등 해소, 조국의 통일에 대한 염원을 표출하기 위해 점거의 형식을 빌어 표현하였다고 할 수 있다.

최근의 노대통령의 탄핵으로 인해 도심에서의 촛불 시위 또한 거리 점거의 형태로 집단적 의사를 표현한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인이 가지는 적극적 사회의식의 발현이 점거농성이라는 형식을 띠면서 우리 사회의 민주화와 사회적 불평등의 제도를 개선해 나갔다고 볼 수 있다.

최근 들어 예술계에서도, 점거 혹은 점유의 형식을 띈 시도와 전시회를 찾아 볼 수 있는데 폐광된 탄광촌에의 빈 공간에 예술가들이 전시회를 했었던 “탄광촌 미술관”이나 샘표간장 공장부지를 활용한 “공장예술제”, 철거 촌의 아파트에 찾아간 전시회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시도는 전시공간에 대한 새로운 접근에도 불구하고, 미술관이라는 전시장을 벗어난 전시회의 성격을 띄었을 뿐 그 공간을 십분 활용한 유기적이고 일상적인 예술공간으로 변화시켜내는 “예술점거”의 개념으로 나아가지는 못하였다. 2003년부터 시작된 청주의 점거 프로젝트의 경우에도 현재 구체적으로 점거를 시도하지는 못했다.

프랑스의 예를 들면 파리의 중심부에 위치한 점거 아틀리에 “로베르의 집” (Chez Robert)의 경우에는 일상적으로 시민들에게 그 문을 개방하여 연간 방문객의 숫자가 4만 명을 넘어섰으며 프랑스 문화부의 추산으로는 파리에 속한 현대 예술공간들 중 세 번째로 많은 관람객을 가졌다고 한다. 12구에 위치한 알터나씨옹의 경우에는 지방과 외국에서 오는 작가들을 위한 무료 숙박시설과 전시장, 공연장, 연습장 등을 갖추어서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의 작품이 언제나 넘쳐나며 지역 주민들의 모임과 회합을 위한 공간으로의 기능도 담당하고 있다. 이렇듯 지역주민들의 문화 향수 권을 기존의 권위 높은 미술관 같은 곳이 아닌 시민들의 일상적 공간에서 제공하는 스쾃이 ‘재생된 문화공간’으로 발전해 감에 따라 파리 시는 이 두 곳의 건물을 사들여서 이곳을 점거하고 있는 예술가들이 강제 철거당하는 위험으로부터 보호해 주고 있다.

이렇게 되기까지 예술가들은 강제철거와 재 점거의 지난하고도 어려운 싸움을 벌여 왔다. 또한 초기의 사회적 편견(범죄자, 부랑자, 사회부적응 자, 위험한 자, 불량배 등)도 예술이라는 힘으로 극복해 내었다고 할 수 있다. 몇몇 소수의 스타작가들만이 대접받는 예술계의 부조리한 시스템에 정면 도전하며, 예술로써 자유로울 수 있고, 창의력이 넘치는 공간을 갖기 위한 엄청난 투쟁의 과정을 통해 현재의 프랑스 스쾃이 존재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시민사회와 매스컴 등은 새로운 시대의 예술과 예술공간의 기능을 인정하며 일정한 지지를 보내고 있다. 또한 현대예술큐레이터나 갤러리스트들은 새로운 예술가를 찾기 위해 스쾃을 방문하고 있다.

그런 반면 한국의 경우에는 몇 개의 레지던시 공간이 존재하고 있기는 하지만 예술가들의 이해와 요구를 충족시켜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80년대 말부터 시행된 정부주도의 창작지원 스튜디오는 폐교활용의 예에서 볼 수 있는데, 생활공간에서 떨어져 있는 폐교에서의 창작활동은 뚜렷한 정책적 기조와 프로그램 없이 시행된 사업으로 인해 오히려 작가를 고립된 처지에 놓이게 하였다. 그러던 것이 국립현대미술관 산하의 창동 스튜디오가 2002년 6월 문을 열었고, 고양시 창동 스튜디오가 2004년 4월 개관하게 되었다. 또한 새 예술정책에 따르면, 2006년에서 2007년까지 광주 및 부산 창작 스튜디오를 조성하는 것을 비롯하여, 지역 미술인을 대상으로 하는 지역 내 공립창작 스튜디오 조성, 개인 및 민간 창작 스튜디오 지원 등을 중장기 계획으로 정부는 설정하고 있다고 박신의 경희대 교수는 그의 글 <창작 스튜디오의 새로운 개념과 정책적 지향점>이라는 글에서 밝히고 있다.

이렇듯 정부는 나름대로 정책과 내용을 만들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긴 하지만, 이러한 시도가 그저 건물 몇 개 지어놓고 마는 식의 전시행정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창동 스튜디오에 입주했던 작가들의 경험이 반영해 준다. 공간의 권위적 운영 형태로 인해 폐교작업실처럼 ‘물리적 공간’만 제공받은 것일 뿐 자유로운 창작과 소통을 위하여 예술가 스스로가 자율적인 예술활동을 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이러한 기존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문제와 예술정책의 부조리함은 정부 정책과 프로그램의 부재에서 기인한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예술가들 스스로가 작업실과 예술공간에 대한 고민을 사회적으로 진행시키지 못하고 있는 데에도 그 이유가 있다고 하겠다. 예술가들이 작업실을 사적 공간으로 인식하기보다는 사회적 생산공간으로 인식하고, 문화를 만들어 가는 공간으로 인식을 확대시키고자 할 때 기존 공간에 대한 비평과 정책적 대안을 제시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보다 적극적인 예술공간에 대한 예술가들의 입장은 “예술점거”의 형태로 표현될 수 있다. 비어있는 공간을 작업의 대상으로써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대안공간 및 레지던시의 프로그램을 연구하고, 장르를 뛰어 넘는 예술의 교류로 새로운 예술형식을 실험하며, 개별적이고 파편화되어 있는 예술가들은 다양한 프로젝트와 프로그램을 개발함으로써 한층 진일보된 예술공간을 꿈꿀 수 있을 것이다.

예술점거는 정부 및 기타 기관이나 자본의 간섭 없이 현실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도약의 첫걸음이자 동시에 예술가 본연의 정신이 ‘자율성’에 기반해서 운영, 조직, 표현되고 새로운 예술을 실험하며 나아가 이를 시민사회의 구성부분으로 정착시키고자 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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