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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urker(2005-11-16 03:38:53, Hit : 1690, Vote : 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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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글] 1. 상호작용(Interactivity)의 전략들

디터 다니엘스라는 독일 매체예술 이론가의 글을 번역 한 것입니다. 물론 루커의 본업이 번역이 아니라 많이 조악하나 관심 있는 분들과 대화하며 수정 하고 싶군요. 일단 맞춤법과 띄어쓰기는 누가 한번 손좀 봐 주셨으면 합니다. 한글 키보드와 워드가 없는 핑계로..총 10장의 글중의 첫 장입니다.
시간 나는대로 계속 번역하겠슴~
원본은 --->> 나를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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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터 다니엘스 (Dieter Daniels)

상호작용(Interactivity)의 전략들

참여로서의 감수(感受) - 모더니즘의 라이트모티프(動機)

마르셀 뒤샹은 그의 시간을 초월하는 문장들 속에서 이렇게 썼다: >>개인적인  >art-coefficient< (예술-계수)는 마치 [표현 되지않은-그러나-의도된 것] 그리고 [의도 되지않은-표현된 것] 사이의 산술적 관계이다.<< 그러므로 어떤한 예술작품도 관람자에겐 작가가 의도한것을 정확히 전달할 수 가 없다. 말하자면, 더 많은 오해가 있을 수록 개인의 예술-계수는 커진다. 모든 미학적 경험들을 하는 관람자에겐 스스로 하나의 구성적 역활이 지워지는데 그것은 관람자가 >>그의 기여를 창조적 행위로 추가함으로써<< 라고 뒤샹은 확언한다. 그는 다른 글에서 더욱 극단적으로 이렇게 표현을 했다. >>하나의 작품은 그것을 감상하는 혹은 읽는 그리고 기여를 혹은 거부를 통하여 살아남게 하는 관람자들에 의해서 비로서 완성되어진다<<.

예술작품의 감수(感受)는 관람자의 참여를 요구한다는 것이 모더니즘의 라이트모티브로 실제로 보여지었고 그것은 이미 보들레르에게서 나타났다.  '현대적인 삶의 화가들' 의 그림 앞에서 >>관람자는 하나의 번역의 번역가가 된다<<. 보들레르는 그의 바그너(wagner)의 설명속에서 더욱더 나가 표현을 하는데: >>음악 안에서, 마찬가지로 회화도 그리고 씌여진 단어도,  틀림없이 예술의 가장 긍정적인 면은 관객의 상상력으로 체워져야할 틈이 남아 있을 때이다.<<  이러한 귀결로 스테판 말라르메(Stéphane Mallarmés)의 창조적 강연의 개념을 명확히 표현했다. 19세기 말 그는 이미 조합과 우연의 요소를 통해 나중, 20세기 중반 >>열린 예술작품<<으로 아방가르들의 계획이 되어진 Process 예술의 아이디어를 선취한다.

모더니즘이라는 깃발아래 가해진 영원, 무변화의 미(美)의 이상(理想)으로의 공격은 결국 인터랙티브한 매체예술(media art) 개념 안에서 하나의 새로운 기술적 기반을 얻기전에 이미 백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인식, 즉 예술작품의 감수(感受)는 항상 작품의 구성에 하나의 참여 요소를 요구한다는 것이, 보들레르에게는 사진을 거부하는 하나의 이유가 된다. 왜냐하면 그는 사진을 상상력의 공간을 없애는 실제의 순수한 기술적 재생산으로 이해 했기 때문이다. 그럼 어디에 기술 매체의 기능이 관람자의 참여를 위하여 놓여 있을 수 있을까?

보들레르가 오인한 기술매체는 실제의 재생 속에서 뒤샹의 >예술-계수<로 보여질 수 있는 하나의 부가효과를 생산한다. 인간으로 부터 기록을 위해 혹은 그림 혹은 소리의 중계를 위해 만들어지고 사용 되어지는 모든 장치는 완벽한 사용에 있어서도 인간의 의도가 그 순간 장치의 사용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절대로 파악할 수 없다.*  사진이 우리가 미리본 경험보다  많이 혹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또는 원하지 않았지만 녹음되어진 비디오 속의 소리들을 누가 모르는가. 이러한 더 >>많은<< 정보들(부가효과)은 매체채널의 감수(感受)에 있어서 다소 정보 생산자의 의도와는 다른 하나의 읽기를 허용한다. 이러한 부가효과는 채널의 증가를 통해 더욱 높아진다. 이 부가효과는 tv-zapper(광고가 나올 때마다 Channel을 바꾸는 시청자)와 또는 인터넷서퍼 들에겐 이 부가효과의 경험이 실제 >>내용<<으로 되어진다.      

짧게 말하자면, 뒤샹의 심리적 현상으로 묘사된 >>예술-계수<<는 그림을 그리고 있는 글을 쓰고 있는 손과는 다르게 직접적으로 사용자의 의도와 연결된체 모든 매체장치의 기술적 원리 속에서 그것의 대응들을 찾는다. 기술매체에 있어서 더욱 뚜렷해지는 극단적으론 소음으로 끝날 수 있는 이러한 효과는 이미 자신의 순수한 도구적 성격을 지시하는 물질적 속성을 인식할 수 있게하는 연필에서 출발한다.  

뒤샹은 그의 >>예술-계수<< 개념을 소개하는 강의의 시작으로 예술가를 하나의 >>매개체(medium)<<로 혹은 >>매개적 존재<<로 표현한다. 그는 19세기에 있어서 심령능력을 가진자, 예를 들자면 초현실주의자들이 생각한 텔리파시의 능력이라는 의미로 시작되어진 개념(즉, 매개체라는 말)을 사용 하였다. 이러한 뒤샹이 1957년 미국에서 사용한 용어는 물론 20세기의 파리에선 다른 암시를 가지고 있었다.  뒤샹이 기술매체와의 관련된 어떠한 의미를 갖지 않았다고 이해하지 않고는 마치 최근의 것처럼 보여지는 그의 텍스트 >>The Creative Act<<또한 시간을 초월하지 못할것이다. 왜냐하면 그와 절친한 존 케이지(john cage)는 그 당시 이미 위에 서술된 기술매체의 부가효과를 음악의 주제로 작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중심 숙고 즉 예술의 지향성 문제는 뒤샹이 실험한 >>예술-계수<<옆에 서있다. 케이지의 성향은 종종 오랜 유럽의 창조적인 천재문화에 공격을 가한것으로 이해되어 지지만 그는 스스로 어떠한 꺼리낌 없이 자신의 무작위 과정(randomprocess)의 소개에서 뒤샹을 하나의 모범으로 항상 강조했다.

50년대초 케이지는 라디오기기를 위한 그의 작곡에서 아마도 최초로 완전한 >>열린 예술작품<<을 기술매체의 투입으로 실현시켰다. - 어쨌던 움베르토 에코(umbert eco)가 그 개념을 명확히하기 이전에 말이다. 1951년 12대의 라디오와 24명의 행위자를 위한 Imaginary Landscape No.4 라는 작품속에서 케이지는 우연성을 이중으로 작품에 도입한다: 하나는 주역(周易)의 변수에 의해 결정되어진 라디오를 조작하는 지시가 적혀있는 악보에 의해 결정되며, 다른 하나는 송신된 수신기의 음향을 우연적으로 그러나 실시간 여기와 지금의 관계 속에서 연주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위에 서술된 기술매체의 부가효과가 점점 더 많아지는 정보의 전달을 관람자의 의도안에 참여와 구성의 역활을 주는것을 작품의 중심 작업방법으로 삼으며 새로운 창조의 형식과 새로운 작품개념을 만드는 것이다.

이 모더니즘의 역사로의 강연은 기술매체가 예술에서 사용되기 이전에 예술속에 관람자가 참여하냐는 질문을 설명한다. 기술을 통해 예술은 하나의 새로운 차원을 획득한다. 왜냐하면 매체예술(media art, medien kunst)에선 위에 서술된 두개의 [의도 되지 않은] 정보들의 발생이 서로 간섭하고 있기 때문이다. >>매개체(medium)<<로의 예술가의 심리적 역활과 매체기기의 기술적 기능는 여기서 하나의 연결로 이어진다. 이 두개의 장(場) 사이에서  이 장(章)의 중심 주제로 삼고있는 지난 삼십년 간의 다양하고 애매모호한 상호작용(Interactivity)의 의미는 전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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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zabel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6-01-17 21:10)



lurker (2005-11-17 02:26:06)  
다시읽어보니 완전 외계어 수준의 번역이군요. 이곳이 [날것]이니 만큼 일단은 올려 넣고 본.. 슬슬 문맥과 글을 부드럽게 만들어 보겠음..
psyvenus (2005-11-17 10:36:33)
전 번역이 수술실의 신체로부터 뜯어내겨진 혈액(내용)을 -interval- 타 신체에 재부여되하는 냉동(얼리고)팩(방어시키는)에 밀폐시킨 혈성의 플롯위에서 놔 둘 것이 아니라 오히려 팩과 신체로부터 찢겨내어진 그 혈성과 질료를 해부대위에서 살갑게 조우하는 채 신화의 창유리를 낯설게 직면해 볼 수 있는 영감의 여건이라는 생각이 듬니다. 위의 텍스트에선 한국말의 단어와 표현선택에 있어 루커님의 고심이곳곳 발견되는 데-루커님 고맙습니다- 말의 의미란 말의 사용에서 나타나기 때문이며(wittgenstein) 고심되어진 단어가 오히려 의미의 파악을 제약하는 경우도 있기에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는 오직 우리들 사이의 다양한 실제 의사소통과 활발하게 교류함과 소통함을 통해서만 싹트고 발견되어질 수 있는 것이라 하더군요 때문에 번역, 새로운 글쓰기> 라는 작업은 관객들의 언어문화의 문맥을 참고하고 또한 차용하기 위해서 대질을 요구하고, 상호이해를 통한 새로운 언어의 개발 개념의 발견 의미의 재합의의 과정을 요구하기 때문에 루커님의 머리글과 자기답글은 강요하는 닫힌 텍스트로서 또 방어적 자기해명을 양산하는 주로 텍스트들과 구별되서 상큼하게 읽게 되었습니다. 이는 중요한 자세라 생각하게 합니다

번역에대해말하기.이건 위생적일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긴장감있게 중요한 부위와 뿌리를 건드릴수 있고 진단할 수 있는 실천일 거라는 기대에서
혈액의 비유를 들었는데 나는 내 몸에서 구멍나 빠져나가죽을 피를 본 적있지만 학습받은 피에 대한 개념으로부터 여행나와 내피에 내몸을 실컷 굴려본적은 없습니다. 암튼 저도 겨울무르익으며 텍스트를 정독해보겠습니다.집이 붕 떠 있으니 사고가 잡히지 않는군요 실로 우리는 관전을 할 뿐 내 스스로가 언어 의 발견하며 창작하는자라는 것을 의식함을 의식하는 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문득바르트형이 그러는 데 딱 하나 주어진 게 있는 데 그건 붙잡는 방식뿐이래요
lurker (2005-11-17 21:33:18)  
위의 글중 예술-계수라는 뒤샹의 개념 즉, 어떤 문장도 작품도 전달자의 의미를 온전히 전달 할 수 없다는 것. 그렇다면 신의 말씀을 전한 천사들 혹은 망자의 넋을 전하는 무당은 인간에게 그 말씀과 영혼의 넋을 전하기 이전에 천사와 무당이 스스로 신과 망자의 언어를 완전히 이해 하냐는 것이다. 아니면 천사와 무당은 실은 아무것도 모르는 혹은, 게이치 않는 단지 기계적 전달자 인가? 즉, 언어 사용(비트겐슈타인)과 의미 전달은 결국 별개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정보학의 출발임.. 그러기에 일상일수록 non-verbal(비언어적 소통, 몸짓등등)이 많아지고 관청일 수록 verbal(언어적 소통)이 많아진 다는... 몸과 신음 만으로 나를 달구는 포르노는 바로 반정보과 반언어의 대표적인 기술매체의 실천임..

우리의 숙고는 언어의 사용뿐이 아닌 그 언어의 숙명 [의도되지 않은 표현된 것]과 [표현되지 않은 의도된 것]의 메울수 없는간극을 숙고 해야 된다는 바로 그 것이 언어가 아닌 기술매체에서도 유효하다는 것이 위의 텍스트의 요지라고 생각됨.

도덕경(道德經)의 첫문장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도가 도로불려 졌을때 도는 도가 아니고 이름이 이름으로 불려 졌을때 이름이 아니다) 라는 이 비극적인 자기 부정이 실은 열린사상의 출발점이 아닐까 생각 해보는 즉, 진보로의 변증법(관점)이 아닌 회귀로의 자기부정(실천).
lurker (2005-11-18 22:16:17)  
__게리 힐(gary hill)의 1994년 싱글채널 비디오 작업
그의 딸이 비트겐슈아타인의 색에 관한 논평(remarks on color)을 읽는다. 그녀가 그 텍스트를 이해했을리는 전무하나 아주 또박 또박한 그녀의 발음은 너무도 건조하게 원텍스를 어떠한 이입없이 전달하는 메신저의 역활을 한다. 그의 대표적인 메타미디어와 메타언어작업...
여기서도 위의 글의 요지처럼 관람자가 개념적 참여를 통해 작업을 완성 시킴.


zabel (2005-11-19 16:00:16)  
아마도 관객의 영역이 확대되면서 작업자들의 양태도 다양성을 띠게 되지 않았을까란 생각입니다. 좋은 의미든 아니든이요. 일전에 프로그밍된 로봇을 이용해서 추상 페인팅 작업을 하는 프랑스 사람을 보면서, 결국 작업자가 미디어/필터로서 기능할 날이 멀지 않았겠단 예상이 되었었습니다. 혹은 미디어를 이종교매하는 브릿지로서의 역활 정도가 남지 않겠냔.
관람 의미의 확대가 결국에 작업자들을 연예인스런 행동양식/대중 아이콘으로 변화시켜버리는 측면도 없잖겠습니다만, 말씀대로 작업 발언의 방식에 있어 새로운 시점을 생성 가능케했음도 분명하겠지요. 어쩌면 이젠 관람의 영역을 작업자들이 어떻게 다루어 분파해나가느냐가 관건일 수도 있단 생각입니다. 자신 작업의 유통까지 책임져야할 시기가 언젠간 도래하지 않을까요. 그것이 자본으로의 맹진이든 저항의식의 발로이든.
윗 작업은 굉장히 인상적이네요. 내용/언어를 다루는 작업이 독일에서 많이 나오는 이유가 궁금해집니다.
psyvenus (2005-11-19 23:18:51)
<img src="http://www.medienkunstnetz.de/assets/img/data/2125/bild.jpg">
-그림이안불려지는이유를궁금중 xp독일어시스템이라서?카시미론에선불리워지는데날것에서는되지않는군요


Gary Hill,«Viewer», 1996 모마MOMA에서 본 작업.남미이주노동자들은 1:1전신으로 떼로 줄지어 서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정지한 스틸사진영사인듯 하다가 곧 미동하고 있는 떼의 멀티채널비디오임을 알게 된다 dead point에서 내러티브를 기다리던 관성은 두려운 질문이 되고 나는 떼앞에 당황처럼서있다-내가두려워하고나를미혹시키는저율동- "어두운 방'을 나간다 불편한상호응시.일상적으로 마주치지만 순간 거기, 그 장소에서 배재되어있는 떼를 발견한다 떼는 개별수의합보다크다
lurker (2005-11-19 23:35:12)  

;src="에 따옴표를 제거..끝의 따옴표도..
lurker (2005-11-20 00:55:55)  
자벨님

>>아마도 관객의 영역이 확대되면서 작업자들의 양태도 다양성을
>>띠게 되지 않았을까란 생각입니다. 좋은 의미든 아니든이요.

감상자의 참여로 작품이 완성된다는 것은 작업의 살해(작품을 거부하는)까지도 감상자의 몫에 포함된다는 얘기입니다. 즉, 작업이 열려있을 수록(예술-계수가 커질 수록) 오해의 폭은 커진다는 것이지요.(소음으로 끝날 수 있다는..)

>>일전에 프로그밍된 로봇을 이용해서 추상 페인팅 작업을 하는 프
>>랑스 사람을 보면서,

로보트에 의한 드로잉은 아마도 영국의 harold cohen을 얘기 하고 싶은듯.. 이 로보트(AARON이라고 불림)의 드로잉을 예술로 볼것이냐 아니냐의 담론은 아직도 뜨거움.. 언제 한번 집중적으로 얘기 해보지요.




1974년


>>결국 작업자가 미디어/필터로서 기능할 날이 멀지 않았겠단
>>예상이 되었었습니다. 혹은 미디어를 이종교배하는 브릿지로서의 >>역활 정도가 남지 않겠냔.

예, 멀티미디어의 아주 딱 맞는 지적이신.. 핸드폰의 기능의 추가는 아주 좋은 예입니다. 그러나 작가의 미디어(매체)의 기능으로서의 역활은 아마 요셉 보이스와 백 남준 이후 거의 사라지고 있는,, 아마 예술시장의 권력이 그렇게 작동 되게 한다고 생각함... 작가를 팔 수 는 없으니.. 한 예로 자신의 몸을 매체로 그리고 연장된 기계 기관과 이종교배(?)한 사이보그아트(cyborg art) 호주 작가 stelarc의 작업입니다. 그의 말로 [제 삼의 팔]






>>자신 작업의 유통까지 책임져야할 시기가 언젠간 도래하지 않을
>>까?요. 그것이 자본으로의 맹진이든 저항의식의 발로이든.

작가가 작업의 배포방식을 가장 명확히 한것은 아마 넷아트(net-art) 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태생이후 멀지않아 moma의 컬렉션으로 들어 가버리게 된후로 애초의 넷을 뿌리로한 정신은 없어 진 듯 합니다. 장영혜의 작업도 그렇지만 온라인이 아닌 시디롬으로 쌈지의 아트 선제의 벽에 프로젝션되었을땐 더 이상 넷아트는 아니지요. 유통의 문제 또한 엄청난 어려운 그러나 중요한 의식의 하나라고 생각됩니다. 작가가 유통에대한 의식을 갖는것 만큼 건강한 기획자들의 출현이 필요하지 않을 까요? 음악은 연주되어져야하고 영화는 상영되어져야 하는데 말입니다. 이것은 결국 어떻게 먹고 사냐의 문제 이기도 하니....님의 생각을 들어 보고 싶군요 어떤 시각으로 유통을 말씀하시는지
zabel (2005-11-20 16: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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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일전에 티비에서 봤을때 프랑스쪽에 무슨 교수라고 들었는데 잘못됐었나 보군욥. 아마도 프로그래밍으로 만들어진 저작물을 포함한 모든 것들을, 퍼포먼스의 개념으로 받아들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선사이래 로봇의 첫 그림작업이라는 면에서 어느 정도는 갤러리에서 받아들이지 않을까란 상상을.-_-a

그나저나 딘따 짱이시란, 대체 어서 자료들을 글케 바리바리 갈무리해두셨는지 존명하지 않을 수 없습니닷. b(-_-)d 참, 질문하신 것에 대해 간략하게 나마 말씀을 드리지요. 나중에 본격적으로 함 쓸 생각이 있습니다만, 물론 언제가 될지는-_-

일단 기획자의 출현은 필수적이라 봅니다. 작가 개인의 작업이 가지는 포스나 자본적 영향력은 항상 상존할테고 그에 따른 시장의 동작은 계속 일테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기획에 의해 개별작가들이 연계되어 발현되는 이미지들도 대단히 중요한 지점이 될것 같습니다. 개개인이 불가능했던 다변성이 중층된 담론/이미지가 생산 가능치않을까하는 거죠. 작금의 한국에선 이론/비평의 영역에서 작가들 줄세워서하는 기획이 많아 보이는데... 그것보단 좀더 작업자들의 섹터에서 기획이 이뤄져야지 않을까 싶고요.

유통에 대한 제 생각은, 일단 먹고 사는 방편으로서 작업은 배제하는 방식입니다. 소수의 전업작가들을 위주로 작업들이 유통되는 것보다는, 좀더 다양한 작가들의 작업이 발현되도록 비전업작가들 위주로 유통이 셋업되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이라는. 또한 만들어진 작업들이 (아직까진)갤러리를 위주로 이뤄지고 있는 것에 대해 심한 거부감이 있는 편이어서요. 그랴서 전시를 하지 않고 있는 것도 있지만, 것보단 생산된 작업들이 좀더 자본/시스템의 영역에서 벗어나 외부의 입김에서 자유로이 발언을 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이유가 더 큽니다. 그럼으로서 작업들이 일정의 권위를 획득하는(원한다면) 곳이 미술관이나 갤러리가 아니었으면 하는 것이죠.

물론 그 대안으로서 1인출판이나 인터넷을 생각하기도 했었습니다만, 그것보다는 좀더 작가들 사이의 연계가 단단히 이뤄질 수 있고 일정의 시스템으로서도 작용 가능한 구조였으면 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제 생각입니다. 일단 여기까지.
부연할 생각이 떠오르면 바로 덧깁도록 하지요.^0^ 일하러 가야해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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