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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zabel(2005-03-28 17:47:19, Hit : 4953, Vote :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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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 4.1




조립식 생활

노현정 회화展

2005_0328 ▶ 2005_0403



노현정_냉장고_캔버스에 아크릴 채색_89×145cm_2005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다빈치 갤러리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5_0328_월요일_06:00pm




다빈치 갤러리
서울 마포구 서교동 375-23 카사 플로라 지하
Tel. 02_6409_1701
http://blog.naver.com/64091701.do target=ad>blog.naver.com/64091701






하루가 한주가 1년이 항상 똑같다고 생각하고 벗어나지 못한다. 그리고 점점 지루해 한다. 언제나 새로운 것을 원하고 가지고 싫증내고 버린다. 이렇게 반복하는 것에 일정한 룰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속에서 조금씩 예상 밖의 일이 벌어진다.




노현정_계단_캔버스에 아크릴 채색_117x90cm_2004



노현정_화장실_캔버스에 아크릴 채색_60×72.5cm_2005


내가 사용하는 물건들은 구겨지고 더럽혀지면서 익숙해진다. 점차 흥미를 잃어가지만 잊는 것은 아니다. 평범해 보이는 생활을 조립하면서 평소에 지나치고 느끼지 못했던 부분들을 배치한다.




노현정_종이컵_캔버스에 아크릴 채색_193×130cm_2005



노현정_현관_캔버스에 아크릴 채색_145×110cm_2002


조립식 물건들은 설명서가 붙어있다. 설명서를 잘 숙지한 후 조립해야 물건이 제 역할을 충실히 해내기 때문이다. 간혹 장난감 중에 변신할 수 있는 것과 마음대로 조립해서 원하는 것을 만들 수 있는 종류가 있다. 일단 설명서에 나온 것처럼 만들게 되면 처음엔 재밌지만 다시 건드리기 싫어진다. 하지만 생각해서 조립한 것들은 부수고 만들고 붙이기를 반복할 수 있는 힘을 준다. 이런 점을 착안하여 생활을 조립해서 새로운 느낌을 얻어 보려고 한다.




노현정_혜화역_캔버스에 아크릴 채색_145×110cm_2003



노현정_오토바이_캔버스에 아크릴 채색_28×45cm_2003


생활 속엔 어색한 느낌을 주는 공간이 많지만 지나칠 때가 많다. 어떤 것들은 왠지 여기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인상을 주지만 언제나 보고 있는 것이라 딱히 꼬집어서 말할 수 없는 것들을 화면 위에 표현한다. 이 외에도 매일 보던 것에서 느끼지 못했던 다른 부분들을 찾아서 펼친다. ■ 노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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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五)·감(感)·도(島)'

충무갤러리 개관기념展

2005_0325 ▶ 2005_0430



오감도_2005




초대일시_2005_0325_금요일_02:00pm

초대작가_강애란_권종환_박은선_심대원_이한수




충무갤러리
서울 중구 흥인동 131 충무아트홀
02_2230_6629






개관기념으로 기획된 ‘오(五)·감(感)·도(島)’전은 제목에서 보여지 듯 다섯 가지 색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사진·영상·설치분야의 작가들이 미술과 공간의 합일(合一)을 통해 구성되어, 다섯가지의 감흥을 한자리에서 느낄 수 있다. ‘오감도(烏瞰圖)’란 단어는, 일반적으로 이상(李箱)의 연작시를 먼저 떠오르게 한다. 이 시는 반복의 어구로 구체적 의미파악이 불가능하며, 전체적인 인상에서 얻어지는 불안감·공포감·혼란감만 막연히 전달된다. 반면 이번에 기획된 ‘오·감·도(五感島)’전에서는, 구체적으로 보여지는 조형적 이미지를 통해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드러내어, 이상의 시에서 느끼는 막연함과는 표면적으로는 다르게 보여진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인터넷의 속도만큼 빠르게 변화하고 적응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속에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익숙해진 불안감·공포감·혼란감은 어쩌면 이상의 연작시 오감도와 일치하는 정신세계 일 것이다. ● 다섯공간(島) ● 이러한 정신적 혼돈의 상황에서 현대를 사는 우리는 ‘공간’에서 얼마만큼 자유로울 수 있을까? 여기서의 공간은 유·무형의 공간을 의미한다. 우리는 물리적인 유형공간 안에서는 나름대로 활동의 영역을 확보할 수 있으나, 본인의 의지와는 다르게 배치되어 상상의 공간을 동경하며 살게 된다. 이러한 공간의 부자연스러움이 혼돈의 근저를 이루고 있는지도 모른다. 반면 무형적 공간은 유희를 꿈꿀 수 있을 만큼 자유로운 사고의 틀을 가질 수 있다. 이와 같은 무형의 공간은 작가에게 늘 새로운 소재가 되어, 관념적 이미지를 매체와의 결합을 통해 유형의 공간 안에 구체화시킨다. 이번전시에서 공간은 ‘섬(島)’으로 대변된다. 뭍사람이 섬사람들 속에 포함되려면 삼대가 지난 뒤라야 자연스레 스며들 수 있다고 하는 말처럼, 일반적으로 ‘섬’이란 배타적 이미지로 뭍사람들은 느낄 수 없는 정신적·물리적 고립감을 내포하는 의미로 사용되는 단어다. ● 현대를 사는 우리는 개개인이 고유의 섬을 만들어가며 살고 있다. 주거공간 안에서 만들어 지는 섬, 사회생활 안에서 만들어지는 섬과 같은 유형적인 섬과, 모니터 안에서 만들어 가고 있는 섬, 자유의지로 상상 속에 다양하게 만들어지는 무형적인 섬과 같이 실재와 가상의 섬이 일상생활에 공존하고 있다. 이렇게 현대사회에 부유하는 섬들은 고정되기보다는 환경과 상호반응하며 변화의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다.. 개인에 따라 외부와의 적극적인 소통공간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자아의 어두운 이면 강조되어 외부와 소통이 불가능해지기도 한다. ● 다섯가지 이야기(感) ● 조형예술가들은 주어진 물리적인 공간 안에 자신의 상상의 섬을 어떤 매체로 구체화 시킬 수 있을까?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들도 역시 자신의 매력을 전시장안의 다섯 공간으로 구획된 개개인의 섬 안에서 조형적으로 극대화시킨다. 사진과 영상의 혼합매체를 효과적으로 자기작업화 시키는 강애란, 솜이라는 독특한 재료의 설치작품을 보이는 권종환, 현란한 형광물체의 빛을 통해 흥미로운 작업으로 유도하는 이한수, 평면적인 작업을 무한한 공간으로 극대화시켜 착시현상을 불러일으키는 작가 박은선, 마지막으로 심대원은 사진을 통해 어느 한 시점의 정지된 시간을 화면안의 모호해진 이미지로 보여주게 된다.




강애란_디지털 북으로 만든 섬


‘책은 유목민적 방랑의 시작이며 지속’이라고 말하는 작가는, 책 고유의 역할을 상실한 영상매체와의 결합을 통해 기계와 인간의 상호교류가 가능한 신개념의 책(Digital Book Project)을 만든다. 일반적으로 종이에 인쇄된 책을 읽는 우리의 눈은 문자에 고정되어 있지만, 머릿속에 그리는 가상의 이미지는 무한한 공간의 이곳저곳에 배치되어 조립되지 않은 구조물처럼 진공상태를 부유하듯 떠다닌다. 이렇듯 책은 공간과 시간의 개념을 갖고 있는 매력적인 대상이다. 이는 종이책과 가상공간 안의 경계를 자유롭게 이동하며 정보와 지식을 재편집하고 분류하는 디지털북의 공통적인 특징이다. ● 강애란은 여러나라의 서점을 돌아다니며 촬영한 영상이미지를 다양한 형태의 투영방식을 통해, 시각적으로는 매력적이지만 감성적으로는 성질이 약화 된 디지털 북으로 보는 이들에게 다양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권종환_너무나 가벼운 섬


지극히 현실적인 공간과 그 안의 사물들을 솜이라는 매체를 통해 재현하여 현실속의 꿈같은 3차원의 공간을 만든다. 여기서의 재현은 이형적인 공간과 사물이 아닌 실제의 사물 그대로를 모방하는 작업으로서의 재현이다. 이렇게 작가의 작업은 실재의 공간과 재현된 공간의 ‘사이’에 위치하게 하여, 우리의 기억은 한 없이 과거의 어딘가로 되돌아간다. 자전거, 오르간, 첼로, 의자, 책상 등 솜으로 만든 모든 사물은 눈으로는 얼마든지 즐길 수 있지만, 그 자체의 기능은 이미 상실한 채 공명하듯 뜬 구름처럼 우리들의 눈앞에 펼쳐진다. 전시장이라는 공간적인 제약에서 벗어나 작가가 꿈꾸는 재현의 공간을 눈앞에 펼쳐놓는다.




박은선_평면 안에 3차원의 입체로 떠도는 섬


박은선 작업의 건축적 요소들은 전시공간과 결합되면서, 우리를 한없이 작가가 평면에 만든 환영 속으로 인도하며 시각적 인식의 틀을 변화시킨다. 다양한 시점에서 바라 본 공간은 한 화면에 배치되어, 시간을 정지시키면서 우리는 미묘한 감정의 이입과 충돌을 느끼며 이곳저곳을 둘러보게 된다. 그리고 어쩌다 화면 안에서 마주치게 인물들은 스틸사진처럼 정지해 있다. 이처럼 조형예술에 있어서 평면회화를 통해 표현할 수 없던 입체적 공간영역을 작가는 무대처럼 무한히 확장시켜 표현한다.




심대원_인간의 숲에서 흔들리는 섬


우리는 사진을 통해 기억해 두고 싶은 순간을 기록하고, 언제나 꺼내보며 기억을 더듬을 수 있는 매체이기에 애써 흔들림 없는 고정된 상을 담고자 한다. 이는 공간의 기록은 기억을 만들며 기억은 인간의 감성을 풍요롭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심대원의 방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은 모든 물체가 고정되어 있기보다는 흔들린다는 것이다. 숲에서 비와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처럼, 인간은 도시라는 인위적인 공간에 타인에 의해 때로는 자의에 의해 이리저리 이동하며 불안전한 심리상태를 내제한 채 흔들린다. 도시의 한 공간의 상을 흔들어 버리는 작가에게 있어 도시와 숲은 동일한 존재론적 위상을 갖게 된다.




이한수_우주공간을 유영하듯 떠도는 섬


‘무아춤’, ‘나는 UFO를 믿고 싶다’등과 같은 제목과, 암실공간 안의 형광발색 조형물에 레이저를 비롯한 기술적 매체들은 보는 이들에게 정신을 집중시키기보다는 교란시킨다. 스크린에 투영된 춤추는 여인은 상하 대칭이 되어 한 몸처럼 보이고, 곰 인형과 상반신이 접합된 변종 비너스 등 이한수의 공간에서 보이는 모든 것은, 어떤 것이 진짜이고 또 어떤 것이 가짜인지 혼돈스럽다. 그리고 허구적인 현시대의 상황을 대변하듯 매혹적인 장면으로 눈앞에 펼쳐진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작가는 ‘우리 시대의 꿈과 희망, 욕망이나 갈등, 모든 것이 뒤섞인 혼성문화적인 양상을 동양과 서양, 과거와 현재, 현실세계와 환상세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공상 과학적이고 미래적인 상상력을 통해 미래지향적인 문화비전을 제시하고자한다’ ■ 오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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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shion in love

Style Cube Zandari 개관 1주년 기념 기획展

2005_0325 ▶ 2005_0430



노정하_design-by-루비나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스타일 큐브 잔다리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5_0325_금요일_06:00pm

오프닝 퍼포먼스_김백기


작가와의 대화 / 2005_0330_수요일_02:00pm / 작가_노정하_김현성(시간은 변경될 수 있음)

강연회 / 2005_0415_금요일_10:00am(시간은 변경될 수 있음)
주제_Fashion & Art (패션 디자이너들의 예술적 영감에 대하여) / 강사_허준


1부_2005_0325 ▶ 2005_0411
사진 김중만_김현성_노정하 / 패션 이상봉_임현희_임선옥

2부_2005_0413 ▶ 2005_0430
설치 정경연_김진경_강선미_이송_이지연 / 영상 김혜경_강영민 / 회화 강영민 / 패션 루비나_한승수





스타일 큐브 잔다리
서울 마포구 서교동 358-121 2층
Tel. 02_323_4155






복합 문화공간을 추구하는 스타일큐브 잔다리는 어렵고 난해한 미술이 아닌 편안하면서도 재미있는 전시를 통해 예술의 다양한 분야를 조명하고, 이를 대중에게 소개하고자 노력해 왔다. 스타일큐브 잔다리가 개관 1주년을 맞이하여 기획한 “Fashion in love”는 가장 대중화 되어 있으면서도 한편 예술분야로서는 소외되어 온 패션의 또 다른 측면을 대중들에게 소개하는 전시이다. 본 전시는 그간 국내 전시 공간에서는 등한시 되어온 패션이라는 키워드 안에서 패션 트랜드를 주도하는 디자이너들과 순수 작가들의 새로운 만남을 시도하여, 관람객에게는 새로운 볼거리를, 패션 관계자들에게는 새로운 담론을 제공하고자 한다.




김중만_design-by-임현희_110×150cm_2005



김진경_Sil_80×140cm


인간에게 의식주(衣食住)는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특히 의복은 과거의 1차원적인 기능에서 벗어나 다양한 문화와 인간내면의 본질을 담아 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옷이라는 개념이 과거에는 추위, 더위와 같은 기후요건과 여러 가지 외부 요인들로부터 우리의 몸을 보호하는 동시에 신분과 부를 상징하는 기능적인 수단으로 사용되었다면, 오늘날에는 개인적 취향과 미적 기능이 확대된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도 불구하고 의상분야를 실용적인 시각에서만 바라본 것은 다른 조형예술과 달리 오랜 시간 동안 의복의 유용성과 기능적인 측면이 우선시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근래 들어 이러한 시각의 변화를 유도하는 다양한 시도들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사실 이러한 움직임은 이미1960년대부터 시작되었는데, 순수예술을 지향하는 추상 미술과의 교류 가운데 일어난 60년대 아트웨어(Art to wear)운동이 그것이다. 이는 복식에도 현대미술 작품이 시사하는 예술적 가치가 내포되어 있음을 일깨워준 운동으로, 의상이라는 장르의 예술적 가치를 다시 한번 각인 시켜주었다고 하겠다.




김현성_model-임선옥_110×150cm_2005



강선미_myself_라인테입


이와 같은 맥락에서 기획된 “Fashion in Love”전은 패션과 순수예술의 만남을 통해 그간 예술장르 내부에서는 배태되어 왔던 패션의 예술성을 재확인 하는 자리를 마련한다. 관객은 패션 쇼나 TV가 아닌 전시공간에서 패션을 만나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며, 인류의 보편적 감정인 사랑이라는 주제로 제작된 의상 작품들과 순수조형예술작품의 조화를 통해 예술적 아름다움이라는 개념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게 될 것이다. 이는 각 예술장르 사이의 벽 허물기, 대중에게 다가가기 라는, 현 시대 예술이 안고 있는 과제를 풀어가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겠다.




강영민_gentle heart_캔버스에 아크릴 채색_2,210×175cm_2005



이송_색맹_200×200cm



이지연_a-feeling-of-warmth


이번 전시는 의상 디자이너들이 제작한 아트웨어와 이를 각각의 개성적 시선으로 연출하여 촬영한 사진작가들의 작품으로 구성된 1부 전시, 의상디자이너들과 순수조형예술 작가들이 ‘Fashion in Love’라는 주제로 작업한 작품들로 구성된 2부 전시, 두개의 섹션으로 나뉘어 진다. 1부에서는 사진작가 김중만, 노정하가 이번 전시에 참여한 다섯 명의 패션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각각의 시선으로 연출하여 촬영한 사진들이 독특한 디스플레이 방식으로 소개된다. 또 김현성은 패션을 업으로 삼고 살아온 다섯 디자이너들의 패션에 대한 열정과 사랑을 표현한 사진작품을 선보이며, 디자이너 이상봉, 임선옥, 임현희는 사랑을 주제로 한 아트 웨어들을 제작해 공개한다. 2부는 의상과 순수 예술의 만남과 조화가 보여지는 파트로, 패션계를 주도해온 디자이너 루비나, 한승수의 작품들과 정경연, 김진경의 아트 웨어들이 전시된다. 김혜경은 패션을 주제로 한 영상작품을, 강영민은 패션 인 러브라는 주제에 걸 맞는 회화작품을 선보인다. 또 강선미, 이송, 이지연은 패션을 테마로 하여 전시 공간을 꾸미게 되며, 1·2부를 아우르는 강영민의 영상이 보는 재미를 더해 줄 것이다. 예술은 보는 이들이 어떻게 느끼느냐에 따라 달라 질 수 있다. 스타일큐브가 준비한 이번 “Fashion in Love”전을 통해 일상과 동떨어진 예술이 아니라, 대중들이 자류롭게 호흡할 수 있는 예술로 나아가는 작업들이 활발히 진행되는 풍토가 마련되길 바란다. ■ 잔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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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성곡미술관 선정 내일의 작가Ⅰ

정혜련 설치展

2005_0311 ▶ 2005_0410



정혜련_광대B_가죽에 채색_210×60cm_2005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이미지 속닥속닥 Vol.041027b | 정혜련 개인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5_0311_금요일_05:00pm




성곡미술관 별관 전시실
서울 종로구 신문로 2가 1-101번지
Tel. 02_737_7650
www.sungkokmuseum.com






성곡미술관은 신진작가를 발굴, 지원하기 위해서 시행하고 있는 2005년 내일의 작가로 정혜련 전을 준비하였습니다. 작가가 가지고 있는 관념적인 생각을 재해석하여 작품으로 보여주는 이번 전시는 크게 세가지의 주제로 나눠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인물들을 대상으로 보여지는 이미지를 재해석하는 작업과, 둘째는 교과속 이미지를, 셋째는 스스로를 찾아가는 작업으로 작가의 삶속에서는 '악' 이란 비판하지 않고, 습관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성을 다해 준비한 이번 전시회에 여러분의 많은 참여와 격려를 부탁드립니다. ■ 박문순




정혜련_강강 수월레, 소년 소녀 그리고 양_나무에 채색_가변설치_2005



정혜련_아가야!_가죽에 채색_가변설치_2004


정혜련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동화 ● 이번에 전시된 작품들은 작가가 모색해 온 변화의 폭을 보다 확대해서 보여줌과 동시에 지속된 작가의 관심사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작가는 끊임없이 자신의 성장과정에 영향을 미쳤던 이야기나 이미지를 재해석 혹은 재구성하기를 즐겨왔다. 예를들어 로봇태권 V, 피터팬, 피노키오, 장화홍련 등 어린아이도 알만한 동화나 배철수와 같은 대중적인 스타들에 관심을 보여왔다. 극복이 만만치 않은 나무나 가죽 그리고 고무와 같은 재료를 자르고 붙이고 채색하는 엄청난 수공을 통해 완성된 그녀의 작품들은 재료들이 주는 독특한 텍스츄어로 인해 풍부한 감정을 전달하고 있다.




정혜련_광대J_가죽에 채색_220×90cm_2005



정혜련_광대S_가죽에 채색_200×90cm_2005


이번 전시는 크게 3가지의 테마로 구성되어있다. 누구나 어렸을적 한번쯤 탐닉했던 만화영화나 동화의 세계를 그린 작품들이 한 축을 이루고 있고, 교과서에 제시된 영희나 철수와 같은 상투적인 인물들이 등장하는 작품군, 그리고 마지막으로 TV매체에 등장하는 대중적인 스타들을 희화한 작품들이 층별로 전시되어있다. 작가의 작업은 어린시절의 충동적인 기제들속에 숨겨져 있는 이데올로기가 우리들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다는 의구심에서부터 시작된다. 선과 악, 성실함과 게으름, 진실과 거짓 등 가치판단의 기준을 끊임없이 제시해준 고마운 지침서들을 이제 새롭게 읽고자 한다. 작가는 이들 동화들이 들려주었던 아포리즘속에서 새로운 담론을 끌어내려 하는데 가령 늠늠하고 튼튼한 태권 V가 혀를 길게 늘어뜨리고 있거나 배철수와 윤종신을 광대로 희화한 작품들은 내면속에 자리잡고 있는 우리들의 우상들을 해체하고 있다. 또한 교과서에 실렸던 즐거운 명절은 어스름한 달빛아래서 감동없이 치러지는 형식적인 축제로 제시되고있다.




정혜련_Festival_가죽에 채색_380×210cm_2005



정혜련_prisonerⅠⅡ _steel_60×210,210×110cm_2004


정혜련의 작품은 뚜렷한 답이 내정되어있는 기제들 속에서 또다른 의미들을 성찰하게 해준다. 이는 하나의 해석으로 일관했던 우리들의 상투적인 버릇을 반성하게할 뿐 아니라 이분법적인 가치판단의 전형들을 해체하여 다층적이고 수평적인 사유체계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시도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부산시립미술관의 신인전과 대안공간 반디의 신진작가공모에 당선되기도 하였는데 이번 전시에서 그녀가 보여준 작품의 밀도와 완성도는 작가로써 더 큰 성장의 잠재력을 확인시켜 주었다. ■ 이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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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2동 토끼

류지선 회화展

2005_0331 ▶ 2005_0409 / 일요일 휴관



류지선_502동 토끼_캔버스에 아크릴 채색_117×91cm_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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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0331_목요일_05:00pm




아트포럼 뉴게이트
서울 종로구 신문로2가 1-38번지 내자빌딩 1층
Tel. 02_737_9011






어느 눈 감은 토끼의 ‘일반적인’ 자화상 : “눈 감은 토끼야. 그냥 앞으로 내달려라!” ● 더러 이런 엉뚱한 상념에 젖을 때가 있다. 세속적인 견지에서 성공한 미술인이 되기에는 작업 방식의 다원화가 허용된 지금보다, 순수 대 참여라는 선명하고 간결한 대립구도 속에 갇혔던, 하물며 정치적 외압마저 엄존했던 80년대가 전업 작가를 꿈꾸던 미술학도에겐 ‘좋은 시절’이었을 지도 모른다는. 당시 정황 속에 몸을 담근 바 없는 나의 이 같은 끔찍한 추측이 마냥 터무니없는 공상일까? 작금의 미술인이 사회와 맺고 있는 느슨하기 짝이 없는 긴장관계를 감안할 때 그 짐작이 몹시 부당한 수준인 건 아닌 것 같다. 당시 미술계를 양분한 두 고지(高地) 위의 전사들은 이제는 교직을 얻어 정착했거나, 그 무렵의 미술 지형도를 회고하는 숱 하디 숱한 기획전들마다 모셔지는 노병 대접을 받는다. 그때와 하나 달라진 점은 한때 고지를 달리했던 그들이 이제는 더 이상 ‘따로 놀지’ 않는다는 점. 알쏭달쏭한 전시타이틀 아래, 한때의 적과 아군이 한 공간에서 아무 대립 없이 출품자로 참여하는 것이 더 이상 어색한 장면이 아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게 뭘까? 노장들의 빛바랜 현주소가 오늘의 미술 지형, 아니 좀 더 논의의 폭을 좁혀 이번 전시(류지선)와 대체 무슨 연관이 있다는 걸까?




류지선_사랑이 끝난 후_캔버스에 아크릴과 볼펜_130×162cm_2005



류지선_내가 지켜야 할 것_캔버스에 아크릴 채색_162×130cm_2005


이 바닥에서 지금 순수주의로 대변되는 ‘추상’을 지향하는 것은 결코 트렌드가 될 수 없다. 물론 그것의 반대급부에 해당하는, 프로파간다를 전면에 내세운 80년대 발 ‘리얼리즘’은 더더군다나 발붙이기 힘들다. 둘 다 정세(政勢)의 패러다임이 바뀐 오늘날, 일반인은 물론이거니와 미술계의 정서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하는 탓이다. 한국의 미술사에서 유서 깊은 계보를 지녔음에도 순수와 선동적 리얼리즘의 후예들은 다만 노회한 선배 격인, (유행과는 담을 싼) 그들의 지도교수들로부터 간신히 교감을 나눌 뿐, 교문을 벗어나는 순간 그들의 작품은 ‘철지나고 진부한’ 습작 취급받기 딱 좋다. 그래서 택한 것이 주제로서의 ‘일상’에 대한 지겨울 정도의 천착과, 방법론으로 매체미술을 통해 캔버스를 저버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포착된 일상에 대한 자의식으로 요약되곤 하는 일기체 성격의 작업은 침묵을 신앙으로 굳게 믿어온 순수주의자의 눈에는 리얼리즘의 서자 정도로 보였을 테고, 미디어 기반 매체작업 역시 방법적 다원주의를 관철시킨 공은 인정되었지만 정적(靜的) 이미지에 오랫동안 단련된 노장들과 미술계의 정서에 딱 부합하는 것만은 아니어서, 관람 내내 “대체 언제 즈음 끝나지?”를 생각해야 하는, 소박하나 간과할 수 없는 문제점을 내장하고 있었고 영상미학은 아무래도 영화라는 별개의 장르에서 이미 원활히 수행되는 것만 같았다. 그렇다면 쟁점은 노병 간의 미학 전쟁이 어정쩡하게 휴전한 지점으로 되돌아오고 만다. 여전히 ‘순수’가 제일이다, ‘참여’가 우선이다 라는 소신을 굽히지 않으면서도 어정쩡하게 휴전을 그어버린 선배들의 봉합 지점으로 후배들이 귀환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과격한 미학적 쌈박질은 종적을 감췄고 후배들의 김빠진 계승 혹은 주제로서의 일상과, 방법론으로서의 미디어가 잠시 지형에 끼어들었었다는 얘기다. 그렇지만 그 정도 발버둥으로는 이 바닥의 큰 변화를 촉진시키기엔 세상이 너무 바뀌어있었다. 이 경우 해법은 다음과 같은 것이 될 터이다. 프레임을 포기하지 않고서(오해는 없길! 미디어 아트도 동일한 요구가 기대된다. 다만 이글의 대상인 류지선이 평면 작가이기에 논점을 프레임 작업에만 맞춰 기술한다.), 순수주의의 도그마와 리얼리즘의 단순함을 동시에 극복하는 길을 찾는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 이것을 미술인의 지상과제로 설정하고 있는, 류지선을 포함한 적지 않은 작가들은 전략의 이데올로기를 아도르노나 부르디외로 부터 지원받곤 한다. 쉽게 얘기해서 예술의 자율성과 현실과의 긴장감을 동시에 견지하겠다는 포부다. 말이 쉽지, 이걸 어떻게 한 평 안팎 흰 네모 칸 속에 구현한단 말인가? 지면도 한정되었으니 내가 그간 관찰한 바를 곧바로 털어놓을까 한다. 선배 작가들의 교전이 멈춰버린 90년대 이후, 미디어와 사진이라는 복병과 순수미술 전반의 침체라는 정서적 위축 속에서, 일부 후배들의 처세술은 그들이 극복하고자 했던 두 극단적 선배들이 방법론을 하나 씩 가져와 조합해버렸다. 어떻게? 이렇게!




류지선_살진 소파_캔버스에 아크릴 채색_162×130cm_2005



류지선_오늘도 무사히_캔버스에 아크릴 채색_112×145cm_2004


첫째 캔버스는 구상과 비구상, 어느 한쪽으로 크게 치우침 없이 단조롭고 장식적으로 간다. 보기에 좋아야 하며, 명상과 동의어로 간주되었던 단색조 혹은 그와 정반대로, 시각적 부담이 되었던 난삽한 채색 모두로부터 비껴가야 한다. 이 두 부류는 과거를 상기시키는 색채 이원론이므로. 둘째 무거운 형이상학적 주제에 함몰되거나 현실에 대한 직설법을 표명해선 안된다. 둘 다 노회한 선배 냄새가 나니까. 그렇다면 무슨 수로 선배의 그늘을 피해가지? 알레고리를 빌어 화면의 단조로움도 피하고 그 특유의 간접화법에 편승해 현실에 대한 작가의 자의식을 증거 하면 된다. 류지선도 바로 이런 케이스이다. 1회부터 6회까지의 개인전 연보는, 그리기에 대한 작가의 한계와 고민을 담은 9년간의 고해성사다. 그동안 그가 만들어 낸 화면은 시끌벅적하지 않았고 이야기를 담되 동물(원)을 대동해 알레고리로 현대인의 난처한 입장에 관해 빗대어왔다. ‘동물’은 사람의 정서를 투영하기에 부족함 없는 적자였을 것이다. 거대한 소파에 무력하게 앉은 인물상의 머리통만큼은 토끼의 몫으로 남겨둬야 했고, 그로인해 신체의 균형미는 간발의 차로 무너진다(토끼의 머리가 인체보다 작기 때문에). 균형미의 붕괴는 두말할 나위 없이 인간 실존의 붕괴까지 함의한다. 잠든 (팝콘) 애인을 뒤로 하고 담배를 입에 문 남자의 얼굴도 토끼의 몫이다. 그 효과는 앞의 작품과 동일하다. 자 그런데 좀 꼼꼼히 얼굴을 뜯어보자. 어깨 위에 ‘올려진’ 토끼의 머리통은 이미 죽어있다! 숨이 끊어진 포유류의 눈과 표정을 우리는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일련의 토끼 연작이 보여주는 부조리는 소파에 앉은 문약한 사내의 어깨 위에, 그리고 방금 정사를 마치고 담배를 입에 가져가는 사내의 몸통 위에 토끼 머리가 부조리하게 ‘얹혀있어서’이기보다는, 그 토끼 머리마저 이미 ‘죽은’ 채이기 때문이다. 힘을 꽉 주고 질끈 감은 눈의 토끼는 이미 인체라는 유기체와는 동떨어진 독자적인 무기체에 가까워 보인다. 하지만 그 무기물을 응시하며 관객은 인간이 놓인 아슬아슬한 처지에 관해 감정이입을 해야 마땅하며, 그 같은 관객의 시선을 통해 비로소 토끼 연작은 ‘조리에 맞춰’ 간다. 소위 ‘토끼 머리 연작’을 그 맹아로 하는 이후의 이미지 병치 작업들 역시 무관한 이미지를 결합하여 주제의식을 변증하려는 방법인데 이런 이미지 조합법이 미술판에서는 새로운 것은 아니다. 따라서 흑백으로 뭉개진 진압 전경들 사이로, 혹은 총천연색 화훼 사이로 솟아오른 뜬금없는 토끼 귀는 결국 나약한 현대인의 알레고리로 토끼를 통해 매개된다는 점에서 ‘죽은 토끼 머리’ 연작의 변형태일진대, 비주얼은 전자보다 우세할지 몰라도 메시지 전달력은 떨어진다. 직설법을 피하라는 아도르노의 주문은 무관해 보이는 이미지들 간의 병치로 이어졌고 다만 그 위로 토끼 귀 한 짝만 공허하게 올려졌지만, 작품을 마주한 관객은 그 의미를 찾기 위해 작가의 설명을 기다려야할 지도 모른다. 이런 견지에서 류지선의 고민은 5회 개인전 혹은 바로 지금 현재 수행 중인 동물 머리 연작에 조금 더 천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작업 모티프의 시작과 끝을 토끼에 올인 할 개연성은 현재로선 선명하지 않지만, 그래도 여전히 동물과 인간 사이의 결합이 만들어내는 효과는 류지선에게 실보다 득이 많은 배팅이다. 마두인(馬頭人), 미노타우루스라는 아주 오래된 전례부터 근자에 이르러 거미와 인간을 결합한 초인에 이르기까지, 동물적 속성과 인체미를 결합하려는 갖가지 상상력이 가져온 미학적 효과와 파생 의미는 연고가 깊다.




류지선_촛불_캔버스에 유채_96×154cm_2005



류지선_흔들리다_캔버스에 콘테와 실_91×117cm_2004


나의 요구는 간단하다 이미지 병치보다 알레고리에 보다 몰두하라는 것이다. 나의 요구가 없더라도, 그가 ‘동물’로부터 벗어나진 못할 것이다. 왜일까? 류지선의 인품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전무한 내가 한 가지 겁 없는 ‘추측성 폭로’ 하나를 여기서 터트릴까 한다. 그것은 바로, “류지선은 이미 스스로 토끼이다!”라는 사실이다. 짐작컨대 그는 서울대에 적을 둔 근 10여 년간 교수 눈에 가시 같은 존재였던 적은 없었을 ‘것이다.’ 나처럼 교수와 각을 세운 앙숙관계는 당연히 아니었을 테고, 보수적인 교수들의 정서에 비교적 발 맞춰간 학생이었을 ‘것이다.’ 교수와 의견이 분명 달랐지만 나처럼 정면에다 직격탄을 날리는 무모한 후레자식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서울미대처럼 보수주의가 만연한 학풍 속에서 10여년을 무난하게 버텨온 걸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설령 자신의 미적 취향이 “회화 고유의 존재성이나 평면성에 대한 환원적 관심보다는 예술은 시대의 반영이라는 입장에 동조하며”, “예술의 영역을 사회를 구성하는 하나의 특수한 영역으로 규정하고 있는 부르디외의 입장과 유사”(이상 류지선의 대학원 세미나 발표문 발췌)할 지라도 자신과 견해를 달리 하는 교수들과 그럴듯한 불화에 이르지 조차 못했을 ‘것이다.’ 그는 거대한 아버지의 그늘 아래 있다. 그늘 속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바로 소심한 토끼가 되는 일이다. 그리고 그 토끼는 마땅히 눈을 감고 있어야 한다. 엄한 아버지와 맞짱 뜰 수 없었던 토끼는 그저 눈을 질끈 감고 알레고리를 향해 내달릴 뿐이다. 완고한 유태인 아버지를 평생 두려워했던 카프카가 바로 그 아버지로부터 인정을 받으려 노심초사 했다는 역설을 우리는 잘 기억한다. 끝내 아버지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도, 대들 용기도 없었던 카프카는 소설 속 주인공으로 분하여 자신을 결국 딱정벌레로 격하시킨 「변신」을 발표했다. 류지선의 토끼를 필두로 한 동물 연작은 현대성의 가속도와 마주한 도시인의 무력한 휴머니티를 고발하기 보다는 스스로 ‘토끼’인 자신과 그를 둘러싼 미술계에 관한 알레고리다. (* 내 짐작의 진위 여부는 류지선이 자신의 모교 교수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면밀한 내적 관찰을 통해 판명될 거라 확신한다. 이건 작가의 몫~!) 글이 좀 길어진 관계로 시간이 지체됐다. 이제 글을 잠시 접어두고 내달릴 시간이다. 앞을 향해 분주히 내달리는 것 말이다. 여기서 잠깐! 내달릴 때에는 모두들 눈을 질끈 감아야 한다. 잊지 말자. ■ 반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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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전

한일교류展

2005_0327 ▶ 2005_0407



홍성민_곰과 모티터_영상 설치_2004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대안공간 루프 홈페이지로 갑니다.




이벤트_2005_0325_04:00pm ▶ 2005_0326_04:00pm / 24시간 연속 개최
장소_Alternative space Loop, Latino




참여작가_한국 / 김소라_김홍석_최정화_정서영_홍성민_이종명_이미경
일본 / 오자와 츠요시_아리마 스미토시_파르코 키노시타_도사 마사미치
오오이와 오스칼 사치오_아이다 마코토_마츠가게 히로우키





대안공간 루프
서울 마포구 서교동 333-3 지하
Tel. 02_3141_1377
www.galleryloop.com






기획의도 ● 한일 교류 40주년을 맞아 일본국제교류재단 주관으로 열리는 한일 교류전 <40>展은 한국과 일본의 40세 작가들이 함께하는 특별한 전시다. 양국 간의 문화교류와 상호이해를 통해 새로운 미학적 관계를 모색하고자 하는 기획의도 외에도 이 전시는 여러 가지 면에서 기존 한일교류전과 차별화된 시도를 보여준다. 기존의 국제 교류전과 그룹전은 각기 다른 정체성을 지닌 참여 작가들이 창조한 시각이미지들의 조화, 조합, 구성이라는 물리적 형태를 병치하는 형태였다. ● 그러나 이번 전시는 단지 다른 미술작품들의 물리적 형태를 병치하는 형식의 공동 작업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형태의 탈공간적 3차원 릴레이 전시를 지향한다. 즉 가장 친숙한 일상의 공간중 하나인 주점과 전시공간을 14명의 한일 작가들이 24시간동안 릴레이식으로 오고가며 대화와 행위, 작업을 공유함으로써 국가나 지역을 초월하여 각기 다른 미적 가치관과 관점들을 가진 작가들 사이, 또한 일상과 미술 공간이라는 두 가지의 다른 영역 사이의 화학적 합성이라는 새로운 실험적 그룹전시를 시도한다.




오자와 츠요시_VegetableWeapon_NAMPURI_2004



마츠가게 히로우키_PONY_컬러프린트_1999


일본의 60년대생 ● 일본의 전후 정치적 사회적 혼란은 1955년 이후 사회당과 자유민주당, 좌와 우의 안정적 양당 구도와 함께 자유민주당의 장기집권이 시작되면서 비로소 사회적 정치적으로 안정된다. 이후 빠른 시간 안에 미국으로부터의 탈식민지와 경제성장을 일구어 내야한다는 국민적 공감대와 함께 55년 체제가 시작된다. 이 체제는 일본이라는 국가 조직 또는 개인이 속한 사회 조직이 우선시 되었고, 개인들은 조직의 한 기능을 담당하는 구성원으로서 인정받기 위해 자신의 정체성과 자율성의 일부분을 희생할 수밖에 없었다. 전후 일본 경제성장의 원동력이었던 규격 대량 생산 체제를 사회전체가 실현하는 과정에서 비롯된 조직 우선의 집단주의를 일부 학자들은 조직의 미학이라는 신조어로 지칭하기도 한다. 55년 체제는 종신고용제, 연공서열제, 등 부가적 산물들과 함께 일본이라는 배를 가장 효율적이고, 능률적으로 빠른 시간에 그들이 원하는 목적지까지 도달시켰다.




김소라_캐피털플러스 신용금고-동경/일본_2002



김홍석_Literal Reality_폴리에스테르 레진_가변설치_2004



정서영_The New Pillar_스티로폼, 콘크리트_485×130×130cm_2003


60년대 초반, 일본은 올림픽이라는 상징적 행사와 함께 세계경제의 주요한 리더 국가로 부상하며 이른바 모우래츠 시대(맹렬시대)라는 60년대 고도성장기를 연다. 80년대 후반 버블경제가 무너지기까지 55년 체제는 올림픽 이후 베이비 붐 세대에게 경제뿐만이 아닌 문화적으로도 상당한 자신감을 주며 그 전 세대들과는 또 다른 우월감을 만끽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일본은 고도의 소비성장사회에서 이룩한 경제발전을 바탕으로 종적 문화가 아닌 횡적 문화의 종착점에 다다르며 차별과 우월성이 없는 문화의 안정적인 다양성을 만들어 냈다. 80년대 초반 신인류라 불렸던 63년 이후 세대들은 55년 체제와 60년대 세계경제 리더 이후 버블 경제, 90년대 장기 경제 불황까지 다양한 환경적 변화를 겪었다. 이러한 변화과정 속에서도 이들은 현대 일본 문화의 리더 역할을 해왔고 21세기 디지털시대의 새로운 시각생산자로 확대되고 있다.




도사 마사미치_깃발 흔드는 로봇 Peke_2003



파르코 키노시타_Toka-machi 방위대에서_비디오 30분



아이다 마코토_공룡의-똥_컬러프린트_2003


일탈적 요소 - 오타쿠 ● 80년대 이후 고도소비사회에 접어들면서 사회의 근간을 이루어온 집단주의의 범람에 대한 반발이 자연스럽게 표출되었다. 오타쿠는 80년대 이후 일본에 등장한 젊은이들의 새로운 문화현상이었다. 오타쿠는 사회에서 일탈되어 자신만의 관심 영역 안에서 자위적 독창세계에 몰입되어있는 매니아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윌리엄 모리스의 공예부흥운동이 근대 디자인개념 형성에 중요한 역할이 했듯이, 한국에서 표현과 자유에 대한 억압이 오히려 민중미술 태동의 단초가 되었듯이 오타쿠들은 일본식 집단주의의 또 다른 얼굴이라고 볼 수 있다. 획일적 조직안의 삶을 강조하는 일본사회 분위기에서는 벗어난 이들은 그들의 나름대로의 가치관과 삶의 방식을 통해 새롭고 다양한 문화 스타일들을 제시하였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의 의식 기저에 일본 전래의 직인정신과 천하제일주의가 깔려있다는 것이다. 오타쿠들의 관심 이 대체로 지극히 미시적이고 주관적인 영역에 있으며 이에 집요할 정도로 파고든다는 특징과 닿아있는 것이다. 일본의 오타쿠 문화는 집단을 우선시 하는 문화에 가장 중요한 대척점으로서 기성화 된 문화생산력에 창조적 반작용으로 성장하였으며 일본사회 안에서 선도적인 창조력과 함께 가장 중요한 창조적 문화의 출구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개인의 주체성 혹은 개성이 성장하는 장소로서의 오타쿠의 문화적 의미가 강조된다.




이미경_Korean-magazine-October-Iss



이종명_SEOUL COLLECTION 2005_혼합재료, 사진인화_2005



최정화_Happy Together_2004


한국의 60년대생(386) ● 이웃 일본이 집단주의라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고도성장을 향하여 박차를 가한 반면 냉전시대의 최전선에 위치한 한국은 급격한 경제 발전과 정치 사회적 혼란은 물론 좌우 이데올로기 대립이라는 굴레까지 짊어지고 가야만 했다. 지난 1세기 동안 한국은 오백년 왕조가 타의에 의해 종언을 고하고 식민지배와 분단 등 삶의 환경을 스스로 선택하기 보다는 역사와 시대의 결과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변화 또한 돌발적, 충격적으로 다가와 변화의 의미와 대응을 위한 정체성 확보를 위한, 스스로 변화를 정리할 수 있는 시간조차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치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오늘이 가기 전 또 다른 오늘이 다가왔다.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빠른 환경변화로 경제와 문화는 물론 이데올로기와 이념의 급격한 변화까지 개인들에게 무작위로 두서없이 전달되었다. 개인은 빠른 변화의 물결 속에서 미처 적응하지 못하거나 때로는 대상에 대한 스스로의 가치관을 정립할 기회조차 가지지 못하고 과거 또는 역사 속으로 흘려보내고 새로운 변화를 다시 맞아야 했다. 이러한 사회 문화의 혼돈적 환경은 구성원들에게 역동적 에너지와 다양한 활동을 요구하였으며 이에 따라 한국에서의 개인은 변화 자체에 강한 적응력 또는 내성을 지닌 존재로 담금질되었다. 인식의 치환을 통한 혼돈적 사회에 대한 자위적 안전성 확보는 한국에서의 생존 조건이었다. 한국 사회는 시간과 공간, 이념과 사상적으로 다양한 시각과 결과물이 존재한다. 혼돈 자체가 정체성을 이루는 중요 요소가 된 것이다. 전근대적 토양에서 태어나 근대에서 교육받고 현대에서 살며 미래를 준비해야하는 한국의 40대는 문화적 창의력 또한 즉각적이며 순간적인 강한 폭발력과 확산 속에서 오히려 존재성을 확보하고 일체감을 얻는다.




아리마 스미토시_arch



오오이와 오스칼 사치오


한국과 일본은 단지 지리적 이웃성에 의한 문화 경제적 교류 뿐 아니라 심지어 특정부분에서는 혈연적 동질성조차 언급되어지곤 한다. 서로가 매우 다른 특성, 그러나 때로는 매우 비슷하기도 한 모순적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는 양국 작가들은 이번 전시를 통해 과거의 역사에서 비롯된 부정적인 선입견을 넘어서서 자국의 압축된 정체성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양국 간의 통시대적 문화 통찰과 아울러 문화, 미술 영역에 있어서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는 새로운 아시아적 비전을 제시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 서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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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237 -주거환경개량사업:

충격과 당혹의 도큐멘트

쌈지스페이스 연례기획 Pick and Pick 5_이영준 Picks…展

2005_0408 ▶ 2005_0522



박지은_Romantic Healing_설치_3mx5m_2004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쌈지스페이스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5_0408_금요일_06:00pm

김상길_박지은_윤사비_전지인_조춘만_최원준
책임 기획_이영준

오프닝 이벤트
윤사비스튜디오 레지던스프로그램 입주작가 권병준과 윤사비의 퍼포먼스

특별 대담_직업의 세계
2005_0517일_화요일_05:30pm~07:00pm
장소_쌈지스페이스 2층 미디어 씨어터 바람
이영준_김상길_박지은_윤사비_전지인_조춘만_최원준





쌈지스페이스 갤러리
서울 마포구 창전동 5-129번지
Tel. 02_3142_1693
www.ssamziespace.com






이제는 산업도 많이 유연해져서 우리들이 먹는 조리퐁의 낱알이나 베개에 들어가는 충전제 같이 말랑하고 부정형인 것들까지도 다 산업화됐을 정도다. 다만 산업화되지 않은 것은 그것들에 대해 사고하는 우리들의 대뇌피질뿐이다. 아마도 인간의 의식은 가장 마지막으로 산업화되지 않을까 싶다. 일찍이 계몽의 변증법에서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의식산업'이라는 말을 썼지만, 당시 그들은 오늘날의 첨단과학이 어느 정도까지나 인간의 두뇌 속으로 파고 들을 수 있는지 상상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왜냐면 인간의 의식은 1781년 이래로 가장 산업화되지 않고 남은 마지막 섬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흑산도나 백령도 같은 섬에도 광케이블이 깔려 민박집 마다 홈페이지가 있는 시대에 의식이 산업화되지 않고 남아 있다는 것은 수치는 될망정 자랑은 되지 않는다. 굳이 의식이 산업화되지 않은 것을 자랑하려면 산업화에 맞서거나 그것을 살짝 빗겨 나 있는 어떤 패러다임을 개발해야 하는데, 그걸 하려면 인류가 탄생한 이래 나타난 모든 발명품들의 역사와, 그 배후에 있는 천지를 꿰뚫는 원리를 체득해야 하나, 그것을 할 수 있는 인간은 거의 없다고 본다. 따라서 할 수 있는 것은 미래에 우리의 의식을 산업화하려는 모든 기도들이 내거는 치사하고 달짜근한 유혹에 자신을 내맡기는 수밖에 없는 것으로 보인다. 마치 미용실에 가면 모든 것을 미용사에게 맡기고 자신의 실존은 잡지책을 보고 있듯이 말이다.




조춘만_Construction_컬러인화_2004


이런 말들이 마치 산업화를 축복으로 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산업화는 우리에게 축복이자 저주라는 두 가지 얼굴로 다가왔다. 우리는 두 얼굴을 동시에 보기에 바쁘니까 한쪽 얼굴만 보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시간적으로 바쁜 것 만이 아니라 공간적으로 바쁜 것과도 상관이 있다. 오늘날 우리들의 주거구조는 하도 복잡한 나머지 사상과 감각의 온전성이라든가 전체성 같은 말들은 오늘날의 주거구조에서는 가능하지가 않다. 우리의 주거구조는 1930년에 발터 벤야민이 말한 감각의 파편화에 걸맞게, 미로화, 파편화, 밀실화, 그러면서도 귀족화, 세련화, 웰빙화, 생태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주거구조의 산업화는 가장 바쁜 과업을 수행하고 있는 중인데, 이는 인간과 공간이 얽혀서 짜내는 컨텍스트의 직조(동어반복, 그러나 할 수 없다. 인생은 어차피 동어반복)를 매우 다차원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시뮬레이션의 절차를 고지식하게 다 밟고 있기 때문이다.




최원준_Texas Project-향기네_사진, saitec_2004


중국 허난성 사람들은 거짓말과 사기 잘 치기로 유명한데, 만약 그들이 한국의 주거구조의 착잡함을 관찰할 기회가 생긴다면 아마 숨이 막혀 죽을 것이다. 거기에는 귀족, 웰빙, 홈스위트홈, 낭만, 첨단 등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차라리 주거를 포기하고 예술을 택하는 것이 속 편하지 않을까. 물론 주거와 예술은 서로 비교하거나 갈등을 일으킬 수 있는 항목들이 아니지만 진정한 예술가는 자신의 안락한 주거를 포기하고 노매드의 길을 가기로 한 사람이므로, 그에게 주거란 마치 새로 산 텔레비전을 포장 박스도 뜯지 않은 채 거실에 들여다 놓고 보고 앉아 있는 것 만큼이나 거추장스럽고 촌스런 일인 것이다. 그래서 예술과 산업은 새로운 차원에서 만나게 된다. 그 차원은 흔히 상상하듯이 쎄련되고 멋진 첨단 기술과 우아하고 고상한 예술이 만나서 루브르에서 전시를 하는 것과는 차원이 아주 많이 다르다.




전지인_동방방문기_싱글채널 비디오_약 10분_2003


예술이 곧 산업이라는 것은 가장 원초적인 의미에서 가능한데, 예술은 본디 가리봉동에서 파는 회전톱날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거기 가까이 가면 살을 벤다. 물론 살을 베지 않는 예술도 있으나 그건 예술이 아니다. 가리봉동 회전톱날은 그 본성상 살을 베는 것이다. 대중을 위하여, 눈높이에서, 쉬운, 누구나 알 수 있는 예술은 살을 베지 않는다. 뚱뚱하게 할 뿐이다. 예술의 회전톱날에 살을 베는 예술가들은 좀 미련한 사람들이다. 약삭빠른 사람들은 대체로 살을 베는데서 오는 손실을 미리 예감하고 멀찌기 피하거나 합성고무나 실리콘으로 된 톱날을 택한다. 그들은 단지 거짓 비명을 지르며 살이 베는 시늉을 하고 있을 뿐이다. 반면, 미련한 예술가들은 가리봉동 회전톱날에 살을 베며 아까운 피를 흘리고 폐인이 되어 간다. (물론 모든 폐인들이 서울역 앞 노숙자들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겉으로 보기에 멀쩡한 예술가도 있다)




이영준_Melee(*난투, 혼잡, 혼란)_플래쉬 애니메이션 중 몇 장면_약 5분_2005


탄소함유량이 많은 텅스텐합금으로 된 회전톱날 옆에 살면서도 살을 베지 않으려면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수 밖에 없다. 왜냐면 회전톱날의 회전수가 2700rpm이상이면서도 그 소음은 56db이하로 낮추고, 톱날에 반사되는 빛을 순한 것으로 만들어서 봄날에 고양이의 콧잔등에 비치는 따뜻한 빛으로 만들어줄 주거의 재료와 품성을 가지려면 고도의 위장술을 쓰던가 고도의 솔직술을 쓰던가 모순되는 길 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안한 얘기지만, 이런 틈바구니에서 착한 주거는 살아나갈 방도가 없다. 악화는 양화를 구축한다고, 못되고 성질 나쁜 주거들은 착한 주거의 약점을 속속들이 파악하여 내몰아버리거나 무시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가 오늘날 한국의 주거환경의 동맥이자 혈소판이다.




김상길_still life- display 01_흑백 인화_180×220cm_2004


따라서 진정한 예술가라면 위장술과 솔직술 사이에서 째째하게 고민할 것이 아니라 과감하게 주거 자체를 포기하고 노매드가 되야 할 것이다. 그것만이 그가 노-매드(no-mad: 정신이 돌지 않고 온전함)로 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날 예술가에게 가장 어려운 과업은 주거를 포기하고 어떻게 살아남느냐, 그리고 그 다음에는 무엇을 하느냐 하는 것이다. 주거를 포기하는 것은 쉽지만 삶을 포기하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독심술(마음을 독하게 먹는 기술) 대신 착심술(마음을 착하게 먹는 기술)을 택하는 것이 그 대안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착심술이 만연해 있는 우리들의 주거공간은 무척이나 포근하고 지루한 곳이 될 것이다. 그 지루함과 권태를 이길 수 있는 길은 예술의 불안함으로 실존의 단단함에 금을 내는 것이다. 예술은 등 뒤에서 우리를 습격하여, 불쾌하고 잔인한 하루를 만들어줄 것이 틀림없다. ■ 이영준

전시개요 및 취지 ● 본 전시는 쌈지스페이스의 연례기획전인 『Pick & Pick』의 일환으로 1회 『홍성민 picks... 불가능한 미디어』전(2001), 2회 『문주 picks… 無造/open code』전(2002), 3회 『조덕현picks… Pick & Pick & Pick…』전(2003), 4회『안상수 picks…. 한글다다』전(2004)에 이어 5번째로 열리는 전시회이다. ● 이전의 Pick & Pick 전시가 중견작가/교수를 기획자로 초대했던 것에 비해 이번 5회전은 비평가, 기획자로 활동하는 이영준 교수를 초대하여 전시자체 뿐 아니라 전시 이전과 이후의 문제들, 나아가 전시관행, 전시담론에 대해 숙고해 보고자 마련되었다. ● 이영준 자신이 기획자이자 작가로 참여한 이번 전시는 총 7명의 순수예술가들을 포함하고 있다. 한국사회의 산업화에 따른 사회적, 병리적 결과에 대한 작가들 각각의 해석을 건축물, 공공장소, 주거환경과 관련된 소재를 선택하여 제작된 사진, 플래쉬 애니메이션, 배너 작업, 설치, 비디오 작업으로 보여줄 예정이다.

초대 기획자 소개 ● 이영준(1961년생)_이미지비평가, 계원조형예술대학 사진과 교수 ● 미국의 빙햄튼 뉴욕주립대에서 미술사 박사학위 받았으며 문화이론, 사진이론 등을 위주로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다. 최근 저서로는"이미지 비평 - 깻잎머리에서 인공위성까지"가 있으며 기획자로서의 활동 또한 활발하다. 기획한 전시로는 시립미술관에서 선보인 『사진 아카이브의 지형도전(2004)』과 『Photograph Looks at US』전(1999)이 있다. ● 최근에는 산업화에 따르는 암울함과 생계수단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학자와 엔지니어링, 기술을 통합하는 지식의 형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는 궁극적으로 비행과 지도작성법을 연결하고자 한다.

전시 구성전시장 외벽_박지은은 주거환경에 따라 급격하게 변하는 알러지 증상(특히 집먼지 진드기)의 관계를 도표화한 큰 배너를 제작, 쌈지스페이스 건물 전면에 설치한다. ● 옥상_윤사비는 자신이 2003년부터 운영해오던 윤사비스튜디오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쌈지스페이스에서 운영한다. 이동이 가능하도록 제작된 레지던스 시설을 옥상과 주차장, 계단에 설치하고 레지던스 작가에게 사용하도록 할 예정이다. 오프닝에서는 윤사비스튜디오 레지던스 3회 입주작가인 권병준과 함께 퍼포먼스를 진행한다. ● 3층_Main Gallery_최원준은 한국의 대표적 집창촌인 미아리 텍사스가 사회적, 정치적인 이유로 점차 변화하는 모습을 업소내부의 공간기록사진으로 표현한다. ● 조춘만은 현대중공업에서 용접공으로 일했던 사진작가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가 일했던 울산의 공장지대를 기록한 사진이 소개된다. 경제개발계획이 시작된 지 30년이 지난 지금은 그때 지어진 공장들의 사용 만기가 다해가고 있으며, 대규모 공장건축은 신설부지는 동남아시아로 이주해가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기록되는 공업단지의 모습은 공장지대의 실존적 가치를 부여한다. ● 2층_Project Gallery_전지인은 도시생태에 대한 3개의 싱글채널 비디오 작업을 선보일 예정이다. 그 중 동방방문기는 서교동에 위치한 동방사우나에서 수십명의 손님들이 마치 운석처럼 자리잡고 드러누워 있는 장면을 촬영한 비디오로 찜질방이라는 새로운 문화 공간을 포착, 탐사하는 작업이다. ● 1층_Garage Gallery_김상길은 인터넷에서 다운로드 받아 제작한 전세계의 돔(dome)형식의 경기장 사진을 발표한다. 이 작업은 그의 『Like a still Life』와 『Landscape』시리즈의 후속 작업으로 경기장의 건축구조와 인간의 관계를 드러내고자 한다. ● 이영준은 충격적이고 혼몽한 도시이미지를 플래쉬 애니메이션을 이용해 선보인다. 형식상 장영혜 중공업의 아류이자 확대라고 작가 자신이 해석하는 본 작업은 빠른 화면 전환으로 보여지는 산업화된 도시의 장면을 통해 이미지 구축의 논리를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 쌈지스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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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Senses-헤이리 5개의 공간, 9개의 시선

주관 기획_구름 프로젝트

2005_0401 ▶ 2005_0420



권순평-photogenic episode chapter Ⅱ_historical memorial_디지털 람다 프린트_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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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0402_토요일

9 Senses전 갤러리 투어_갤러리 이비뎀에서 출발_03:00pm
오프닝 리셉션과 음악회_북하우스_05:00pm


북하우스_권순평 / MOA 갤러리_김형준_김영길 / 갤러리 이비뎀_김소현_조성연_이혜진
정한숙 기념홀_이경민_박상남 / HASIII_최민호

주최_헤이리_북하우스_MOA 갤러리_갤러리 이비뎀_정한숙 기념홀_HAS III


후원_사단법인 헤이리 / 협찬_한길사_포토피아





예술마을 헤이리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 1652 (통일동산 내)
02_3442_0096
http://www.heyri.net






9 Senses-다섯 개의 공간, 아홉 명의 시선 ● 우리는 스스로를 언제나 바라보지만 우리는 우리를 잘 알지 못한다. 일상 속에 보이는 수많은 사물들은 그저 스쳐 지나 갈 뿐 우리의 가슴을 울리지 못한다. ● 여기 다섯 개 공간 속에 있는 작품들은 그런 무심한 현대사회 속 우리의 시선을 잡아끈다. 사실 시각매체가 감성을 자극하는 일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리얼리티를 그대로 재현해내는 사진 매체는 더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여기 모인 작가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아름답고 가끔은 냉철하게 표현하고 있다. 작가들은 사물에 대한 요즘의 무심한 시선을 그들만의 시선으로 다르게 바라본다. 여기에서 사진의 또 다른 힘은 생겨난다. 차갑고 또 건조한 매체인 사진이 따뜻하고 감동적인 힘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 여기 모인 작품들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그들을 하나로 묶는 끈은 무엇일까? 그것은 세상을 향한 태도가 매우 서정적이라는 것이다. 물론 작가마다 시선의 차이를 갖지만 그들을 이어주는 하나의 성향은 한국적 고요함과 은은함이 아닐까 한다. 현대의 사회는 무척이나 소란스럽고 어수선하며 빠른 속도감이 지배한다. 하지만 그 속 어딘가에 존재하고 시선을 멈추게 하는 대상을 작가들은 찾아내고 자신만의 시선으로 담아내고 있다. 그 대상들을 미처 바라보지 못하고 있는 우리 앞에 그것을 불러내는 것이다. 빠른 속도감 속의 우리를 한 템포 쉬게 하고 또 마음을 정화하게 하는 작업들과 이렇게 마주한다. ● 예술마을 헤이리는 다양한 장르의 예술인들이 서로 뜻을 모아 형성하고 있는 공동체 마을이다. 파주라는 남북의 경계, 공원묘지 건너편, 최첨단 LCD공단과 최신식교육 경기도 영어마을이 근접한 소리 없이 시끄러운 지점. 머릿속까지 시원해지는 바람을 맞고자 도심을 떠나 아름다운 마을을 꿈꾸고 찾은 이들이 또 다른 혼란과 마주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오늘을 사는 문화 예술인 개개인의 다른 성향이 헤이리에서 새롭고 특별한 것을 모색하고 있다면 그 속에 어떤 설렘이 어떻게 꿈틀거리는지 궁금해진다. 여기 모인 아홉명의 작가들이 보여주는 사색과 꿈은 이 마을에서 어떤 모습으로 융합하고 발현될지 또한 기대된다.




김소현_Untitled_디지털 람다 프린트_2004



조성연_화경花景_디지털 람다 프린트_2004



이혜진_연상게임-달콤,쌉싸름한_필름위에 디지털 람다 프린트_2004


헤이리 연합전에 참여하는 5개의 공간 중 갤러리 이비뎀은 30년간 일간지 기자를 거친 정중헌 헤이리회원이 운영하는 갤러리이다. 정중헌 회원은 오랜 기간 동안 자연스럽게 영화, 음악, 미술 등에 관련된 집필 활동을 통해 논설위원 뿐 아니라 문화평론가로서 꾸준한 활동을 해왔다. 이비뎀은 그가 그동안 함께 해온 예술계 지식인들과 참신한 작가들이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을 지향하고자 한다. 이번에 이비뎀에서는 김소현, 조성연, 이혜진의 세작가가 조화를 만든다. ● 세명의 여성작가들은 아름다운 컬러로 세상을 본다. 조성연 “화경_花景“의 정물들은 중후한 한국의 미를 색과 분위기로 보여준다. 그녀가 선택한 대상들은 작가의 재해석을 통해 사물들이 갖고 있는 동양적인 은은함을 드러낸다. 김소현의 “untitled"는 여성 특유의 은밀함이 깃든 소품들을 재해석한다. 그 소품들은 회화적 느낌의 폴라로이드 전사를 통해 부드럽고 가라앉은 컬러를 보여준다. 이혜진 “연상게임_달콤,쌉싸름한”의 필름작업들은 유리창으로 들어오는 빛과 함께 우리에게 비춰진다. 그녀의 작품들은 젊은이들의 희망, 꿈, 아련함 같은 조금은 감추어진 모호함들로 우리를 환상의 세계로 끌어들인다. 세 작가들은 따듯한 시각과 아름다운 컬러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이경민_Doing Nothing_젤라틴 실버 프린트_2004



박상남_식물, 빛으로 보다_젤라틴 실버 프린트_2002


정한숙기념홀은 97년 타계한 소설가 고 정한숙 선생을 기리며 그의 아들 정지태 회원이 설립한 건물이다. 반사 유리속에 하늘이 담긴 듯 빛이 가득한 공간에서 그 빛과 어울리는 이경민과 박상남의 2인전이 있다. ● 이경민의 "Doing Nothing"은 무위개념을 통해 바람을 형상화한다. 보여지는, 존재하는 대상만을 찍어낼 수 있는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이라는 대상을 찍어낸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노자의 무위를 대입하여 바람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 안의 여백은 비어있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기운으로 가득 찬 동양정신을 구현하는 것이다. ● 박상남의 작업은 어린 시절을 떠오르게 한다. 이 작업은 그녀의 어린 시절의 경험들이 시각화 된 것인데 사실 이러한 감성은 많은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가을이 오고 찬바람이 불면 우리의 어머니들은 낙엽을 모아 문풍지에 담았고 그 아름다운 기억은 박상남의 사진을 통해 다시 재현된다. 그녀의 작업은 서정적이며 감성적인 부분을 자극한다.




김영길_목화토금수_젤라틴 실버 프린트_2002



김형준_moutain & night_디지털 람다 프린트


MOA갤러리의 건축가이면서 건물주이기도 한 우경국 회원은 이양호 관장과 실험적 전시를 꾸준히 기획해 오고 있다. 건물자체가 묵직한 갈색동판의 육면체 조형물과도 같이 보이는 MOA 갤러리에서 김형준과 김영길의 무게 감 있는 흑백의 세상이 보여진다. ● 김영길의 “목화토금수“는 자연과 생명의 원리를 내포한다. 만물의 구성원소를 제목으로 사용하며 인간의 자연지배 사고에서 벗어나 인간은 자연의 한 요소로서 하나의 부산물로서 존재한다는 사고를 통해 자신의 자연관을 드러내고 있다. ”This & That“은 풍경사진의 정확한 재현코드를 통해 우리가 보고 있는 풍경사진이 히말라야나 그 밖의 거대한 산맥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하지만 그것이 모래더미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우리는 사진의 허구성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될 것이다. ● 또한 함께 전시되는 김형준의 “mountain & night“은 그가 몇 년간 늘 함께 했던 풍경들이다. 인적이 드문 밤의 산 속은 사실 우리에게 평안함이나 따듯함을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어두운 공간 안에서 그는 서정적인 풍경들을 찾아낸다. 아무도 없는 숲 속에서 떨어지는 별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 순간 자연의 한 부분이 되는 느낌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런 풍경을 지속적으로 담고 있는 작가의 가슴은 자연과 일체감을 맛보고 있을 것이다.




최민호_Korean Style_디지털 람다 프린트


HASⅢ(Hangil Art Space 3)와 북하우스는 한길사 대표이기도한 김언호 헤이리 이사장이 운영하는 공간이다. 책이라는 매체를 통해 끊임없는 문화예술 전파와 발전에 평생을 헌신하고 있는 그의 남다른 열정은 이곳 서점과 갤러리 그리고 다목적 공간에서 벌이고 있는 다양한 공연행사에서도 빛나고 있다. ● 최민호의 “Korean Style"은 한국적 정서를 그대로 반영한다. 전통적인 대상을 찾아내고 보여주는 그의 능력은 탁월하다. 사라져가는 풍경은 우리만의 고유 풍경이지만 사실 쉽게 볼 수 있는 것들은 아니다. 도시 속에서는 그런 풍경들을 찾기 힘들며 남아있는 것들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 그래서 곧 사진이 아니면 남아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곧 박물관이나 민속마을 등 재현된 한정된 공간에서만 이런 풍경들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그의 작업들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 북하우스에서는 권순평의 "photogenic episode; chapter Ⅱ_historical memorial"이 전시되는데 이 작품은 사진의 시간성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사진의 고유성인 시간을 정지시키고 기록하는 행위를 통해 사진은 찍혀진 대상들이 그 순간 거기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곤 한다. 이러한 사실증명을 거꾸로 이용하여 사진의 그 고유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권순평의 작업이다. 박물관에 만들어져 있는 과거 전쟁장면이나 생활상이 그의 손길로 이 시대에 마치 그 시절을 증명하듯 되살아난다. 사진이 발명되기 이전의 시대를 사진을 통해 재현하는 것은 상상속에 존재하는 일들을 현실에서 실재처럼 재현하고 있는 것인데 이것은 결국 사진이 보여주는 것이 모두 사실은 아니라는 증거인 것이다. ● 이렇게 5개의 공간에서 각기 다른 성격이지만 동시에 하나의 끈으로 연결된 9명의 작가들이 자신들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각자의 개성을 보여주고 저마다의 이야기를 풀면서도 동시에 서로의 조화를 깨트리지 않고 있으며 하나로 모여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 구름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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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ng

이정진 사진展

2005_0324 ▶ 2005_0421



이정진_Thing 03-04_한지에 감광인화_140×195cm_2003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표갤러리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5_0324_목요일_05:00pm




표갤러리
서울 강남구 신사동 532-6번지
Tel. 02_543_7337






지난 날, 기다림을 참지 못하고 서둘러 길을 떠났다. 작업은 일상처럼 늘 곁에 있었지만 내 작업 대상들은 늘 먼 곳에서 왔다. 오랫동안 사막을 여행하였고 대지의 끝을 밟고 다녔다. 때로는 텅 빈 곳, 때로는 도시의 벽 과 벽 사이, 지나가는 쪽 구름도 내 현실의 한가운데는 아니었다. 그곳에서 내가 본 것들, 함께 호흡했던 순간들의 일부가 내 작업으로 옮겨졌고, 그것은 내가 풍경이나 사물과 만날 수 있는 "절대 거리"였다. 나는 작업과 함께 나의 일상을 즐겨 이탈하곤 했지만, 한편으로는 내 마음이 왜 항상 먼 곳을 향하는 가 궁금하였다. 결국은 다 내 삶의 메아리인데 말이다.




이정진_Thing 03-10_한지에 감광인화_140×195cm_2003


한때, 예술은 내 삶의 "절대" 또는 "본질"과의 악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절대는 하나가 아니고 본질은 유동적이다. 그리고 그것은 내 인식의 한계 상황일 뿐이다. 시간의 흐름 속에 나는 내가 도달한 절대의 높이만큼 다시 추락하기를 작업을 통하여 수없이 반복하고 있다. 어쩌면 "절대"란 것은 여러 개의 세로줄이 아니라 끊어지지 않은 하나의 가로줄 같은 것 일지도 모르겠다.




이정진_Thing 04-25, 2004_74×100cm_한지에 감광인화_2004


나에게 사진은 결과이기 보다는 하나의 도구로서 존재한다. 현실세계의 재현이나 시각적 아름다움의 재구성이기보다는 보다 근본적인 사색의 바탕으로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한가지로 주장하거나 강조되어질 수 없는 생각들, 흐름도 멈춤도 아닌 어떤 찰나, 무한히 열린 공간에서의 단절, 침묵하고 있지만 뜨거운, 현실의 초현실적인 단면들 등 은유의 표현 수단으로 이미지들은 선택되어왔다.




이정진_Thing 04-29, 2004_한지에 감광인화_140×195cm_2004


사물 시리즈는 나의 지난 작업들과 달리 나에게 가까이, 그리고 익숙한 대상으로부터 왔다. 그 익숙함은 기다림이고 나와의 은밀한 소통이다. 그리고 그 익숙함은 다시 생각의 비움으로 낯설음이 된다. 비움은 내 작업의 하얀 여백처럼 사물들을 꿈을 꾸게 만든다. 그리고 더불어 나도... 이정진-작가노트 중에서




이정진_Thing 04-19, 2004_한지에 감광인화_140×195cm_2004


그는 또한 특이한 조형적인 형식을 사용하고 있는데 형태만 덩그렇게 남아 있기도 하고, 질감만이 강조하여 보이기도 하고, 사물의 구조를 반복적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사물의 단편적인 도형이 전혀 새로운 이미지로 변형하기도 하고, 소재 본래의 맛과 향기가 무관한 변형된 오브제를 만들기도 하고 그리고 전혀 의외의 애착과 의도에 의해서 선택 된 오브제를 빌려오기도 한다. 그것들은 화면에 '배경 없이 떠 있는 어떤 오브제" 들이다.




이정진_Thing 04-31, 2004_한지에 감광인화_140×195cm_2004



이정진_Thing 03-02, 2003_한지에 감광인화_74×100cm_2003


그는 소재 본래의 크기를 짐작할 수 없는 시간을 흐름이나 축적을 예상할 수 없는 소재 본래의 구조나 형태를 알 수 없는 크기의 문제를 완전히 왜곡시키고 있다. 조그만 기물을 매우 커다랗게 확대하기도 하고, 묘하게 변형하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예측할 수 없는 크기로 본래 소재의 크기와 형식을 떠나서 배경 없이 부유하듯이 떠 있는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이처럼 대상이나 소재가 구속 없이 편안 할 때에 그는 자유로워진다. 이 예측할 수 없는 limit는 곧 그의 자유로움이다. ■ 김용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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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는 찾는다

곽은정 사진展

2005_0406 ▶ 2005_0412



곽은정_그리고, 나는 찾는다_컬러 인화_100×220cm_2005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갤러리 시선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5_0406_수요일_06:00pm




갤러리 시선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2-10번지
Tel. 02_732_6621
www.gallerysisun.com






낭만적 거짓과 사진적 진실 ● 때로 그런 때가 있다. 카페에서, 거리에서, 차 안에서 어떤 한 사람을 문득 주목하는 때가 있다. 차를 마시거나 책을 읽거나 휴대폰을 귀에 대고 있는 모르는 한 사람. 그때 그 사람은 대체로 혼자이고 혼자이면서도 혹은 그렇게 혼자이기 때문에 아주 편하고 아주 평안하고 아주 가벼워 보인다. 그럴 때 그 사람은 공기처럼 투명해서 빛나 보인다. 그리고 나는? 나는 눈뜨는 욕망을 발견한다. 나도 저 사람처럼 되고 싶은, 저렇게 투명하게 빛나고 싶은 욕망... ● 미믹(the mimic)은 번역하면 ‘의태’다. 미메시스(mimesis)는 ‘모방’이다. 미믹과 미메시스, 의태와 모방은 의미범주가 동일한 두 단어인 것 같지만 사실은 전혀 다른 개념들이다. 미믹의 목적은 ‘같아지기’다. 예컨대 아이가 거울 앞에서 화장 흉내를 내는 건 엄마와 똑같아지고 싶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엄마와 똑같다고 믿기 때문에 엄마처럼 거울 앞에서 화장을 한다. 하지만 미메시스의 목적은 같아지기가 아니라 ‘달라지기’다. 예컨대 젊은 예술가가 어느 명망 높은 대가를 모방하는 건 그와 같아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만의 작품세계를 발견하기 위해서이다. 때문에 같아지기가 목적인 미믹이 미성숙 상태의 행동양식이라면 달라지기인 미메시스는 성숙하는 자아의 발현이다. 미믹이 유아적 퇴행충동이라면 미메시스는 자기동일성에 대한 지적이고 합리적인 욕구인 것이다.




곽은정_그리고, 나는 찾는다_컬러 인화_52×100cm_2005



곽은정_그리고, 나는 찾는다_컬러 인화_52×100cm_2005


곽은정의 사진은, 적어도 내게는, 메시지를 읽어내기가 상당히 어렵다. 그건 깊거나 복잡한 의미내용이 사진들 안에 오묘하게 직조되어 있어서가 아니다. 곽은정의 사진들은 오히려 명료하고 간결하다. 굳이 명명하자면 ‘더블 사진’이라고 불러도 될 이 사진들의 후레임 속 상황은 똑같다. 누군가 차를 마시거나 기도를 하고 있다. 누군가 CD를 고르거나 책을 읽고 있다. 또 누군가는 미용 팩을 하고 있거나 헬스클럽에서 다이어트 운동을 하고 있다... 곽은정의 사진들이 반복해서 보여주는 상황들은 우리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친근한 일상의 한 순간들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사적인 경험을 통해서 이 평범한 상황이 아주 ‘특별한 상황(special-state)’임을 잘 알고 있다. 평범해 보이는 그 상황들은 사실상 그 어떤 한 사람만의 그때 그곳에만 속하는 상황, 그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일회적이며 우 연적인 상황, 그래서 그 상황의 주인에게만 소속된 절대적 사유시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곽은정은 이 타자만의 그때 그곳에서 타자를 빼어버리고 그 빈자리에 슬쩍 자신을 끼워 넣는다. 나를 어렵게 만드는 건 다름아닌 이 천연덕스럽고 은밀한 ‘바꿔치기’이다. 곽은정의 병치 사진들이 내포하는 메시지가 이 바꿔치기를 통해서 드러나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이 메시지는 무엇일까?




곽은정_그리고, 나는 찾는다_컬러 인화_52×100cm_2005



곽은정_그리고, 나는 찾는다_컬러 인화_52×100cm_2005


곽은정의 은밀한 바꿔치기는 우선 미믹의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이 경우, 곽은정의 사진들은 R. 지라르가 말하는 ‘낭만적 거짓’의 좋은 예가 된다.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에서 지라르는 현대인의 욕망을 ‘삼각형의 욕망’으로 규정한다. 즉 현대인은 저마다 욕망하는 주체이지만 그 욕망은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그 누군가의 욕망을 자신의 것으로 내면화하는 낭만적 거짓 욕망이라는 것이다. 곽은정의 사진들도 그렇게 읽힐 수 있다. 곽은정은 욕망하는 주체이지만 그녀의 욕망은, 어쩌면 우리 모두의 욕망이 그렇듯, 타자의 욕망에 대한 낭만적이며 주물주의적인 미믹, 다시말해 아직 성숙하지 못한 자아의 얼굴을 드러내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곽은정의 바꿔치기가 단순히 그러한 욕망의 미믹에서 끝나는 것 같지는 않다. 그건 이 낭만적 거짓이 사진 속 인물의 바꿔치기를 통해서 객관적 사진 이미? 値?전환되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 속 인물들은 낭만적 거짓에 매몰되어 있지만 그 인물들을 객관화 하는 소설 자체는 그 낭만적 거짓을 재현함으로써 진정성의 지위를 얻는다고 지라르는 말한다. 곽은정의 사진들도 마찬가지다. 타자만의 편안한 그때 그 자리에서 그 타자를 빼버리고 자신이 슬쩍 대신 들어앉는 곽은정의 욕망은 분명히 낭만적 거짓이지만 그 욕망이 사진으로 재현되면 낭만적



zabel (2005-03-30 20:33:20)  











animal farm_展

전시기획: 갤러리 스케이프기획

전시기간: 2005년 3월 10일 ~ 4월 7일

전시장소: 갤러리 스케이프
서울 마포구 서교동 400-10 MJ 빌딩 3층 ... Tel. 02_3143_4676

전시컨셉: 동물을 소재나 주제로하여 작가의 인생관과 세계관
그리고 예술관이 적용되어 새롭게 해석한 사진이미지 전시이다.

전시작가: 강홍구, 박용식, 이혜진, 이은정, 여락, 전민수, 정은정, 최진기
target=_blank>http://www.skape.co.kr/index.html


갤러리 스케이프에서 2005년을 맞이하여 첫 번째 기획한 애니멀 팜 전은 동물을 소재 혹은 주제로 하여 작가의 인생관과 세계관 그리고 예술관이 적용되어 새롭게 해석한 사진 이미지를 전시한다. 동물과 인간 사이의 간격, 우리는 동물을 통해 은유적으로 잃어버린 자연을 추억하거나, 혹은 자연이었던 기억을 외면하는 방식, 아니 자연이라는 것을 애써 부정하는 방식을 배운다.

우리가 알고 있는‘자연’의 맨얼굴은 무엇인가? 텔레비전의 오지탐사 프로그램, 인터넷의 여행자료-모두 매개된 경험이다. 즉 우리는 어느 누구도 본래의 자연을 체감했다고 말할 수 없다. 또한 오늘날 도시는 대자연과 힘을 겨룬다. 아니 힘을 겨루던 시기도 이미 지나, 자유로이 인공자연과 인공감성을, 마침내 인공생태계를 이룬다. 요즈음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메트릭스는 미래가 아닌 현재이고 환상이 아닌 실재이다.

결국 애니멀 팜 전에서 우리는 환경과 생태의 문제, 그리고 인간중심주의의 윤리에 대한 반성을 이끌어낼 수 있다. 작가 8명의 다양한 시선의 사진을 통해 자연에 대한 반성적 시각을 포함한 생태학적 미덕, 여전히 끝나지 않은 채 정확히 파악될 수 없는 인간의 기원, 삶과 죽음의 모호한 이중성, 지구라는 커다란 공동체 안에서의 인간과 동물의 존재에 대한 겸허한 시선을 느낄 수 있다.

Skape 갤러리는 현시대의 다양하고 진취적인 작가들의 예술 작업들을 전시, 선보이는 공간이다. 적극적이면서 동시대를 대변 할 수 있는 주제와 표현 방법으로 다양한 기획전과 프로그램을 구성하며 대중으로 하여금 보다 친밀감과 다각적인 시각에서 예술의 접근과 이해력을 돕고자한다. 홍익대학교를 중심으로 도심적인 특성과 문화적인 환경과의 융화를 부각시켜 다양하면서도 자율적인 예술에 대한 요구를 충족시키고자한다. 갤러리 skape는 현시대의 다양한 예술언어를 보여주며 도시문화공간으로써의 역활과 예술가들의 창작 공간이자 숨터로의 역할을 하고자 한다. 전시장 이외에 소규모의 자료실 겸 책을 볼 수 있는 휴식공간과 작가들이 직접 제작한 소품들도 판매되어지고 있다.
zabel (2005-04-04 19:20:48)  






UKADIA



John Goto 사진展



2005_0406 ▶ 2005_0503






John Goto_Bucketman,Gilt City_가변 크기_디지털 프린트_2005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갤러리 온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5_0406_수요일_06:00pm






갤러리 온

서울 종로구 사간동 69번지 영정빌딩 지하1층

Tel. 02_733_8295


www.galleryon.co.kr









유럽의 선도적인 디지털 사진 아티스트 John Goto의 사진전 『UKADIA』 ● 영국의 뛰어난 디지털 사진 아티스트이자 중견 작가인 존 고토의 최신작 "UKADIA"는 넘쳐 나는 디지털 기술과 이미지 속에서도 디지털사진에 대한 비전과 상상력을 보여주는 전시가 빈곤한 우리 사진계가 다시금 주목할 만한 전시이다. ● 존 코토는 현재 영국 내에서 활동하는 가장 선도적인 디지털 사진 아티스트이다. 그는 기술적인 노련함과 예술적인 완결성 그리고 디지털 매체에 대한 탁월한 통찰을 통해 현실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독창적 시선을 보여주고 있다. ● 그의 작업들은 정치적이며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동시에 유머와 풍자, 위트가 있다. 존 고토의 가장 최근작 "UKADIA"를 이루는 세 시리즈 Capital Arcade , High Summer , Gilt City는 동시대 영국의 현상황을 드러내고 있다.







John Goto_eco warriors,High Summmer_가변 크기_디지털 프린트_2005





John Goto_Freedom, Force_가변 크기_디지털 프린트_2005




Capital Arcade는 영국의 신노동당이 선거에 압승하던 해인1997년에 시작된 작업으로, Capital Arcade 는 영국의Mandelson Way에 세워진 하나의 허구의 교외 쇼핑몰 세트이다. 존 고토는 아케이드의 화려한 실내에서 역사적인 회화 속에서 이상화된 장면들을 연출하여 과거의 우의적 요구과 아케이드의 자유시장 이데올로기를 빗대어 대조하고 있다.







John Goto_Living Sculpture,Gilt City_가변 크기_디지털 프린트_2005





John Goto_Naked,Gilt City_가변 크기_디지털 프린트_2005




High Summer 는 2001년 영국 시골에 수족구병이 한창 유행이던 때에 처음 발표되어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며 여러번 전시되어졌다. 작품 속 풍경은 그림같이 아름답고 목가적인 스토(Stowe), 스튜어헤드(Stourhead), 로샴(Rousham)의 영국식 정원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그 전원의 풍경 속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은 결코 이상적이지도 않으며, 우리 사회와 교외가 맺고있는 불온한 관계에 대해서 질문하고 있다.







John Goto_Unit 3, Capital Arcade_가변 크기_디지털 프린트_2005





John Goto_Unit 4, Capital Arcade_가변 크기_디지털 프린트_2005





John Goto_Unit 8, Capital Arcade_가변 크기_디지털 프린트_2005




Gilt City는 존 코토의 가장 최근의 시리즈로서 이전의 작업들 속에서 보여졌던 부유한 도시인들과는 대조적으로, 런던시의 붐비는 금융가에 고립된 일련의 인물들을 통해 사회적으로 배제되고 소외된 사람들을 들여다보고 있다. ■ 갤러리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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