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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명훈(2002-10-26 02:05:10, Hit : 1213, Vote : 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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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ext]워커 에반스

사진가 이영욱과 함께하는 세계사진가 탐구

워커 에반스 (Walker Evans 1903-1975)



지금 내 앞에는 워커 에반스 (Walker Evans)의 사진 작품집 배고픈 눈(The Hungry Eye)이 있다. 이 책의 표지에 그의 눈동자가 나를 응시한다. 뒤표지 또한 말년의 에반스가 나를 응시한다. 책제목이 주는 강력한 지시적 기능 때문일까?  난 좀처럼 그의 눈동자에서 벗어날 수 가 없다. 

워커 에반스는 1930년대 FSA(Farm Security Administration)의 일원으로서 완성도 높은 다큐멘터리 사진들로, 사진의 새로운 예술적 가능성을 보여 준 중요한 미국의 사진가로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필자는 그의 사진을 보면서 단순히 미국의 기록사진으로만 보이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 기간 중 농업안정국에서는 당시 어려운 현실에 처해 있던 소작인이나 소작농, 황폐해진 대평원 지역의 이주민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 알림으로써 미국이 처한 농업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해결해 보려는 계획을 세웠다.

1930년대, 미국은 뉴딜정책의 일환으로 농업 안정국의 후원 아래 미국의 사진가들을 초빙하여 농촌지역의 생활상과 그 시기의 어려운 상황들을 본격적으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워커 에반스 이다. 

이 계획은 곧 실행되어 1935년부터 1942년까지 워커 에반스, 도로디어 랭, 벤 샨, 아서 로드스타인등의 사진가들이 대거 참가해 2만 7천점이 넘는 사진을 수집하였고, 또 당초에 홍보를 목적으로 계획되었던 것처럼 적절한 홍보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사진들은 그 목적을 훨씬 뛰어넘어 사진의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가 될만한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그것은 농업 안정국 사진들이 당시의 사회 비평가들뿐만 아니라 문예인 들에게도 영향을 미쳐 결국 그것은 발흥하고 있는 포토저널리즘과 시각적 의사소통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지금도, 서적과 잡지, 영화, 텔레비전 등에서 제한 없이 널리 이용되고 있으며, 여전히 우리에게 충격과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현재에도 프린트를 원할 경우에는 워싱턴 미국 의회도서관 등 공공기관에 컬렉션 되어있어 소정의 비용만 내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Billboards and frame houses, 1936]

[Garage, Atlanta, GA, 1936.]
그는 약 1년6개월에 걸쳐 FSA를 위해 활동하였다.  FSA에서 커다란 활약을 했던 남부를 여행하면서 토지의 조건을 기록했고 소작인의 곤궁한 처지와 그들의 가옥과 소유물, 그들이 일하는 방법, 수확한 농작물과 그들이 다니는 학교, 교회 그리고 가계들을 위주로 기록하였다. 

에반스가 찍은 대부분의 대상은 누추한 빈민들 이었다. 그는 주로 직접적인 정면시각으로 사진을 찍어 솔직하고 리얼리티한 방식으로 보이도록 하였는데 에반스는 궁핍한 농민들의 생활상을 파악하고자 인물위주보다 그들이 생활상이 반영된 공간을 위주로 촬영에 들어갔다. 


[Subway Portrait, New York, 1938-41]

[Hale County, Alabama, 1936.]
에반스는 8×10판의 대형 사진기를 이용했다는 점이 특이 하다. 이런 사진기로 농민들을 스냅촬영 하기는 어려웠겠지만 그가 삼각대를 세우고 피사체를 정면에서 마주 대하면서 정지된 상태에서 촬영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대상에 접근하는 이런 방법을 고집한 것은 작가의 주관을 가능하면 개입 시키지 않고 일정한 거리에서 사실적으로 섬세하게 묘사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제작된 일련의 사진들은 1938년 뉴욕의 현대미술관에서『미국의 사진(American Photographs)』이라는 사진전과 아울러 사진집을 출판하였다.  1936년에 에반스는 잠시 휴가를 얻어서 [포춘]지를 위해, 문학가인 제임스 애지와 함께 앨라배마 주 카운트 헤일 내의 소작농들의 참상을 취재하러 떠났다. 

이 작업은 수많은 난관 끝에 1941년에『이제 잘 아려진 사람에게 찬사를 보냅시다(Let us Now Praise Famous Men)』라는 책으로 묶여나와 하나의 고전이 된다. 

이 책에서 기록과 예술과의 문제를 핵심으로 다루면서 에반스는 그의 생각을 이렇게 정리한다. 

“경찰사진과 같이 기록하는 스타일이 있다. 여기에서 예술은 아무 쓸모가 없고 기록만이 유용하다. 따라서 예술은 하나의 기록이 아니라, 기록에서 스타일을 취할 수 있는 것이다. 내 작업이 바로 이것이다.” 

에반스의 사진세계는 초기에 다분히 추상적인 조형적인 공간성미를 추구하였다. 화면을 우선 시각적으로 단순화시킴과 동시에 공간적화면 구성을 이루는 것이다. 그는 사진의 화면 속에 현실을 재현시킬 때, 현실세계를 있는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 아니라 시각적인 조형의 틀 속에서 재구성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복잡한 현실세계는 사진 공간 내에서 비현실적인 통일을 이루게 되어 추상적인 형태미를 가지게 된다. 그의 초기의 사진의 영향은 다분히 1920년대에 유럽으로 건너가서 당시 초현실주의 운동에 경도되어 있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미국 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에서 태어난 에반스는 일리노이즈 주 케닐워쓰(Kenilworth)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미국에서 대학 생활을 한 뒤 잠시 뉴욕 시립 도서관에서 근무한 하다가, 파리로 여행을 하게 되는데 거기서 소르본느 대학의 강의를 청강하며 플로베르(Flaubert-구스타프 플로베르, 프랑스의 소설가 '보바리 부인'과 '부바르와 페퀴세'같은 작품으로 현대 소설의 선구자로 평가됨 )와 보들레르(Baudelaire, Charles- 샤를르 보들레르, '악의 꽃' 과 산문 시집 '파리의 우울'로 유명한 프랑스 시인)의 글들을 읽게 된다. 

[City Lunch Counter, 1929.]
그 후 뉴욕으로 돌아온 뒤 (1927년) 사진에 전념하기 시작한다. 처음엔 그의 친구 하트 크레인(Hart Crane)의 작품 '다리'에 쓸 목적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는데 그 후 다른 친구 링컨 키르스텐(Lincoln Kriesten)의 제안으로 초기 빅토리아 시대의 건물 사진을 찍기 시작했고, 이 사진들은 33년에 MoMA에서 전시회를 갖게 된다. 

에반스의 초기 사진은 키르스텐이 운영하던 잡지 '하운드 & 호른' 사에서 출판된다. 젊었을 적 꿈인 화가와 작가의 꿈을 포기한 뒤 , 에반스는 사진을 찍게 되었고 가장 단순한 형태만을 제시하는 건조하고 경제적이며 꾸밈없는 스타일을 보여준 것은 당시의 시대적인 배경에 연유한다. 

에반스는 처음부터 알프레드 스티글리츠의 사진을 "예술인척 하는 작품"(articraftsiness)이라고 부르거나 에드워드 스타이켄의 사진을 "상업주의"라고 비판했다. 에반스는 30년대 'American Photographys'를 발표함으로써 기존의 다큐멘터리 사진과는 다른 주관적 다큐멘터리 사진을 창출하면서 이 분야의 선구자 역할을 했다. 그의 사진들은1950년대를 넘어가면서 여러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을 통해서 새롭게 인식되고 전개되어 나갔다. 

그 중에서 로버트 프랭크는 워커 에반스의 사진적 전통을 계승하여 더욱 발전된 사진세계를 이룩하였으며, 1970년대의 사회적 다큐멘터리 사진가인 리 프리들랜더와 위노그랜드, 다이안 아버스에 이르는 새로운 변화의 사진세계를 열어주는 시발점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에반스 사진의 특징 중 하나는 정지된 조형적인 공간 속에 시적(詩的)인 감성을 투영시키는 것이다. 시적인 특징은 일반적으로 사건을 기록하는 다큐멘터리 사진에서는 소홀하게 취급하거나 또는 부수적인 요소로 돌려버리게 쉽다.왜냐하면, 보도사진은 기록으로써 가치를 획득하기 위해서 명백히 그 의미가 분명하게 전달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보도사진이 시적인 분이기를 띄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적어도 “의미”의 전달기능으로서 시적인 방법은 “다의미성”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A miner s home.]

[Penny Picture Display, Birmingham, 1936.]
1966년에 [아메리칸 모뉴먼트]지의 편집장인 레슬리 카스는 에반스의 “내면의 메시지”를 편집해서 수록했다. 그에 말에 의하면, “에반스의 사진은 사진으로 찍히는 것을 미리 염두에 둔다. 그러나 그 사진들이 어떤 모습으로 보여야 한다는 계산된 생각에 따르지는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사진에 찍히는 것들이 어떻게 촬영 중에 달라지는지도, 그리고 그것들이 한 장의 사진으로 존재하는 방식까지도 보여준다.”라고 말했다. 에반스에 따르면 뛰어난 사진 속에는 “항상 신비의 앙금 같은 것이 가라앉아 있고, 그것은 또 작가가 선택하는 의미가 화면에 구성되고 엄격한 사회적인 논리로 읽혀진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사진그자체가 허술한 의망 망으로 짜여있다는 점에서 문제시 된다.”고 말한다. 

[Parked Car, Small Town, Main Street, 1932..]
그의 이러한 생각은 특히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 빈집이나 건축물의 사진에서 잘 드러난다. 그의 사진은 빈 생활공간 속에서, 그곳을 보금자리로 살아온 집주인의 성격을 궁금하게 만들어준다. 우리는 다만 집안의 분위기와 이러 저러한 살림살이를 통해서 집의 분위기를 형성한 집주인의 체취와 생활수준을 짐작하지만, 도대체 그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는 것이다. 

그의 사진에서 사진의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화면은 단순한 배경으로서가 아니라 그들이 생존하고 있는 현실상황으로 파악된다. 이러한 구성은 인간이 생존하고 있는 삶의 현장으로서의 입체적 공간을 의미한다. 그러나 동시에 이 사진들은 이상하게도 왜 이러한 환경이 만들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는다. 


[Portraits, various locations, 1974..]
즉 어떤 정황적 사정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에반스의 사진은 그 당시의 문화적인 역사적 증거자료로 인식되지만, 그것이 어떤 문맥에서 이루어 졌는지 알 수 없다. 즉 앞 뒤 문맥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가 더 필요한 것인데, 여기에는 흔히 사진 밑에 텍스트를 첨부해서 설명하거나 지시하는 기능이 있기 전에는 사진 그 자체로 확실한 “의미”로 고정시키기 어렵다는 것이다. 

[Gas Station, 1936.]
그러나 이것은 동시에 상징적으로 읽혀지기 보다는 어딘가 불확실한 어떤 알 수 없는 영역으로 우리의 시선을 잡아끈다. 그것은 사진 그 자체가 이미 어떤 사실에 대한 부인할 수 없는 증거이기는 하나, 고정된 “의미”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쇼 윈도우나 길거리 풍경 등으로 명료하게 정면으로 시선을 던지는 그리고 작가의 주관적 요소가 배제된 채로 중립적인 입장에서 잡아낸 미국에서의 삶의 모습은, 에반스 이후 세대의 사진작가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빅터 버긴에 따르면 “이제까지 사진가들은 숲 속에서 토끼를 겨냥해서 잡아들고 귀가하는 사냥꾼처럼 의미 있는 순간을 좇는 사냥꾼을 자처했다고 한다. 

그러나 에반스의 사진에 영향을 받은 로버트 프랭크 이후 현대의 많은 사진가들은 의미 있는 순간들은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들 자신이 의미를 만들 뿐이며, 사진의 행운은 우리의 사고방식과 일치하는 순간적인 세계가 아니라 그 자체로서 부조리한 세계를 있는 그대로 포착할 수 있는 데에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즉 사고와 의미 이전의 세계가 그것이다. 이제 사진은 우리가 기대하거나 말하는 것을 언제나 넘어서는 존재, 사고의 바깥으로 거품을 쏟아내는 존재를 보여주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는 더욱 강조해서 사진의 “사실”은 더 이상 “의미”를 일으키지 않으며 더욱이 “사실”이라는 것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고 말하면서 결국 같은 이야기이겠지만, 있을 수 있는 의미, 즉 의미의 가능성은 너무나 많고 다양해서 선택한다는 것조차가 허사이다. 

여기에서 로베르 드아노의 표현을 빌린다면, “닫힌”사진의 뒤를 이어 “열린”사진이 찾아온 것이다. 

아무런 의미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는 의미까지도 포함해서 말이다. 가능한 모든 의미에 대해 열려 있는 그런 사진이 오는 것이다. 






672   정영혁 사진  zabel 2002/10/22 1075 257
  [text]워커 에반스  장명훈 2002/10/26 1213 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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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6   [숙박부와 동일]킴키버 사진  zabel 2003/03/02 1061 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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