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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zabel(2002-12-22 16:54:55, Hit : 1202, Vote : 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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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 마케르

사진, 문학, 영화의 삼위일체
    - 크리스 마케르의 <승강장La Jeteé>을 이야기하며

     박 신 의(미술평론가)

 

시네로망 혹은 텍스트로서의 영화

크리스 마케르의 <승강장La Jeteé>(주1)은 사진을 가지고 만든 단편영화다. 1962년에 만든 이 영화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마치 이집트 상형문자처럼 해독해야 할 코드로 읽히는 영화다. 그것이 코드처럼 보이는 이유 중 하나는 사진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었기 때문이라 할 것이다. 사진이라는 매체의 속성이 영화의 흐름을 바꾸어 영화를 읽어야 할 대상으로 만들어버린다고 할 수 있다. 정지된 이미지라는 것이 움직임의 흐름을 단절시키면서 우리의 시선은 의미를 만들어내는 구조로 빠져들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하나는 연속 사진을 드문드문 배치해놓아 나레이터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보게 되는 이 작품이 지극히 문학적이라는 점이다. <승강장>은 사진으로 구성된 영화이지만 그 문학적 측면으로 인해 한편의 그림소설을 보는 듯하여 시네로망이라는 장르로 구분할 수 있다. 시네로망은 1970년대 초반 영화와 문학적 요소의 결합을 축으로 거론되었으며, 일종의 '텍스트로서의 영화'라는 맥락에서 파생되는 기호론적이고 의미론적인 효과를 주목하게 만들었던 장르다. 결국 <승강장>은 사진을 기반으로 문학적 요소와 영화적 속성을 결합한 선구적 사례로서 이제는 고전처럼 여겨지는 작품이 된 것이다.

  기본적으로 영화란 시간의 흐름을 타고 이어지는 이미지와 이야기의 구성이다. 하지만 사진은 정적인 이미지와 비연속적인 시간으로 인해 영화와는 이미 다른 차원을 갖는다. 사진에서의 시간은 순간을 잘라낸 것이고, 그것은 이미 연속성을 상실한 '떠낸 시간'인 것이다. 사진의 '잘라낸 시간'과 영화의 '흐르는 시간'의 차이는 여러 국면에서 드러난다. 일단 의미의 발생구조라는 측면에서 보면, 영화는 흐르는 시간 속에서 이야기를 '구성'하는 것이고 사진은 멈춰선 시간 속에서 의미가 '생성'되는 것이다. 멈춰선 시간 속에서 의미는 연상작용에 의존하여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사진은 영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시적(詩的)'인 맛을 가질 수 있다.

  <승강장>이 시적인 것은 바로 이런 이치에 의한 것이다. 시적인 요소는 일상적 시간 개념을 벗어날 때 가능한 것이다. 혹은 사진에서 사진으로 연결되면서 드러나는 간극과 공백이 연상작용을 불러일으키면서 만들어내는 것이다. 또한 사진이 단절된 시간 속에서의 '독백'에 가까운 것이라면, 영화는 지속적인 시간의 흐름 속에서의 '대화'에 가깝다. 그리고 현실 재현이라는 점에서 영화가 '거울'의 개념이라면 사진은 '텍스트'의 개념이다. 독백의 성격에 의미의 중층적 구조를 담는 텍스트로서의 영화, 이것이 바로 <승강장>이 갖는 위상이라 할 것이다.

 

시간의 일탈, 기억의 파편 속으로

<승강장>은 29분의 짧은 영화로 크리스 마케르 자신이 나레이터 역을 맡고 있다. 이야기는 3차 세계대전 이후 완전히 초토화된 파리를 배경으로 시작된다. 소수의 생존자들은 방사선을 피해 지하로 숨어들고,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강구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갖은 실험을 하게 된다. 그들은 시간의 구멍을 통해 과거와 현재, 미래를 넘나들면서 어떻게 이 세상을 다시 회복시킬 수 있을지를 고심한다. 이들에게 공간은 지하에 한정되어 있어 더이상 뚫고 나갈 수 없게 되어 있기에, 그들의 구원은 단지 시간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그런 가운데 전쟁 전의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가장 또렷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한 죄수를 선택하여 과거로 보낸다. 주인공에게 부여된 임무는 과거로부터 음식과 의료품, 에너지를 찾아내는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끊임없이 자신을 사로잡는 기억이 있다. 그것은 어린 시절 파리 오를리 국제공항에서 비행기가 뜨고 내릴 때마다 사람들이 타고 내리는 것을 호기심을 가지고 보았던 자신에 관한 것이다. 어린 자신이 마지막으로 보았던 장면은 승강장 저편에 홀로 서있는 여인의 모습이다. 그런데 갑작스런 비행기의 소음과 함께 그 여인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이어서 한 남자가 고꾸라지고 결국 어린 자신은 그 남자가 죽었음을 알게된다.

  이 모호하고도 의문스런 상황은 영화의 코드로 작동한다. 주인공에게 이 기억은 뚜렷한 것이 아니라 마치 강박관념처럼 자신의 의식을 둘러싸고 맴도는 것으로 나타나, 그가 지하에서 실험의 대상이 되어 과거와 미래를 오가며 시간여행을 하는 동안 쉬지 않고 반복되고 또 스스로 강하게 집착하여 추적하게 되는 기억인 것이다. 그 기억은 분명 과거의 것이지만 자신에게 벌어질 미래의 일처럼 여겨지면서 주인공은 시간의 혼선을 체험하게 된다. 과거가 미래와 중첩되면서 오히려 현재는 실감나지 않는 공백과도 같은 것이 된다. 현재란 기껏 지하공간에서 주사를 맞고 심문을 당하는 어두운 현실에 지나지 않는다. 기억할 어떠한 새로운 체험도 없이 단지 실험되는 자신의 몸만이 무의미하게 존재할 뿐이다.

  그래서 시간이란 늘 상실감의 의미로 드러나 있다. 그 상실감은 채워지지 않는 존재에 대한 일체감과도 같은 것이다. 어린 시절 승강장 저편에 서있던 여인의 모습은 주인공의 생각과 마음에 맴도는 실재하지 않는 기억이자 이미지이다. 그럼에도 주인공은 과거로 돌아가 그녀를 만난다.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한가로이 공원을 거닐고 박물관을 함께 관람하지만 그 시간은 현존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이 서로에 대한 신뢰와 애정을 갖게 되는 순간이 모든 시간 개념을 앞질러 가게 만드는 힘이 된다. 영원을 꿈꾸는 이들의 염원 속에는 아예 시간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공간으로부터의 탈출, 그리고 시간으로부터의 탈출이 이 영화에서 말하는 불가능한 사랑과 희망, 상실감과 죽음의 변증법을 말하는 코드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주인공은 더욱 자신의 기억에 강하게 집착하게 되는 것이다.

 

시적이고 철학적인 시간에 대한 사유

주인공은 그 기억과 기억의 시간 사이를 오가면서 결국 지하의 과학자들이 원하는 바를 성취하게 된다. 미래의 시간대로 도달하여 미래의 존재로부터 이 현세를 치유하게 될 에너지를 받아오게 된다. 임무는 완수되었다. 그리고 주인공은 어린 시절의 오를리 공항 승강장으로 간다. 승장강 저편에 서있는 그녀를 즉각 발견한다. 주인공은 그녀를 향해 달려가게 되고 상황은 영화 처음과 똑같이 묘한 긴장감과 미스테리, 신비하고도 공포감을 주는 분위기로 되돌아간다. 하지만 그녀 가까이로 접근하자 그는 지하에서 줄곧 그를 감시하던 요원과 마주친다. 그와 마주치는 순간 주인공은 '시간을 피해갈 방도는 없다'라는 진실을 깨닫게 되고, 그 지하요원이 쏘는 총탄을 맞고 쓰러진다. 어린 시절 보았던 한 남자의 피살이 곧 자신의 죽음이 되고 말았다. 이렇듯 영화의 끝은 시작과 하나의 고리로 이어지면서 시간의 개념이 지워져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주인공은 어린 시절의 시간과 공간으로 들어가는 순간, 그리고 그 실체감을 확인하려는 순간 죽음을 맞이한다. 어쩌면 처형을 당한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도 모른다. 과연 인간에게 공간으로부터, 시간으로부터의 탈출은 허용되지 않는 것일까. 시간과 공간으로부터 벗어남으로써 시간의 질서를 바꿀 수는 없는 것일까. 하나의 시간 단위에 하나의 공간만이 존재하는 것일까.

  크리스 마케르의 <승강장>은 매우 시적이고도 독백같은 무게와 함께 시간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1995년 테리 길리엄이 공상과학영화로 각색하기도 했다. <12몽키즈>라는 제목의 이 영화는 상황과 주인공의 설정, 시간여행의 개념 등을 차용하여 또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크리스 마케르의 시간과 공간 개념을 되씹어보면, 비단 <12몽키즈>만이 아니라 80년대 이후 쏟아져 나온 많은 SF 영화에서도 그 동일한 차용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게다가 현재라는 시간과 공간에 머물면서 과거와 미래를 오가는 '공간을 초월한 시간 체험'은 이미 버추얼 리얼리티의 '탈육화' 개념의 예시이기도 하다. 이런 주제에 대해 1962년에 이미 시적이며 철학적인 방법으로 접근했다는 사실은 새삼 놀랍기까지 하다. 그리고 사진이 갖는 언어적 측면을 활용하여 메타포와 시적 깊이를 갖는 문학적 영화를 만들었다는 사실 또한 재삼 사진의 언어적 측면을 더욱 풍부하게 바라보도록 하는 계기가 된다.

  그런 풍부한 면모가 본질적으로 이미지를 통해 세계를 바라보고 해석하는 작가의 역량에서 기인한다는 사실이 결코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하지만 한국에 크리스 마케르가 잘 알려지지 않은 가운데 <승강장>을 말하게 되는 기쁨이 바로 이 점에 있다고 말하고 싶다. 참고로 한국에서 번역된 《북녘 사람들》 사진집을 보면, 그는 <승강장>과 같은 사진과 텍스트의 결합을 통한 시네-로망의 요소를 1959년에 이미 실험하지 않았나 하는 추측을 하게 된다. 《북녘사람들》은 그가 1957년에 평양에 들어가 이제 한창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해가는 북한에 따뜻한 애정과 국제주의적 연대감을 보이면서 한국문화의 전통과 역사를 기술한 사진집으로서, 이 역시도 <승강장>과 같이 반세기가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새롭게' 느껴지는 작품인 것이다. 또 <승강장> 이후 같은 사진소설의 형식으로 만든 영화가 <내게 네 마리의 단봉낙타가 있다면Si j'avais quatre dromadaires>(1966)이다. 이 영화 역시 1955년에서 1965년까지 십년 동안 26개국(주로 사회주의 국가)을 돌아다니며 찍은 스틸 사진을 나레이터의 대사와 함께 구성한 작품이다.

 

주)

1) 이 제목을 적절히 한국말로 바꾸는 일은 쉽지 않다. 이미 잘못된 번역을 많이 사용하고 있는 형편인데, 그나마 가장 근접한 의미를 갖는 것이 승강장이라 하겠다. '라 즈테'는 원래 선착장이라는 의미로 배가 정박할 수 있는 시설물이다. 이를 배가 아닌 비행기로 옮긴다면, 그것은 비행기를 탑승객들이 타고내리도록 준비해놓은 시설물을 말한다. 비행기가 대기한다는 의미에서는 '기항장'도 가능하지만 궁극에는 타고 내린다는 의미를 강조하여 '승강장'으로 한다.

 


크리스 마케르Chris Marker(1921- )

프랑스의 문필가, 사진가, 영화 감독으로 영화사상 가장 불가해하고 포착하기 어려운 인물로 알려져있다. 고전적 지식인의 면모와 좌파적 '문화혁명'의 전통을 동시에 구현하는 그는 이미지를 통해 세계를 이해하고 해석하며 그 신화의 구조를 해체하는 최고의 다큐멘터리스트라 할 만하다. 1950년 알랭 레스네 감독과의 협업으로 처음 영화를 찍었고(<조각상도 죽는다>), 1952년 헬싱키 올림픽을 비판적인 시선으로 담아낸 최초의 단독 작품 <올림피아 52>를 찍었다. 이 시기에 그는 사진과 텍스트를 결합한 사진집을 발간했다. 크리스 마케르는 스스로 텍스트를 작성하고 시적인 내용과 철학적인 성찰이 담긴 제안을 통해 영화가 갖는 언어적 성격을 강화하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위들리는 <승강장>을 최고의 SF영화 가운데 하나라고 칭송하고 있다. 또한 같은 해 제작된 <아름다운 5월>은 '시네마 베리테'(영화의 진실논쟁을 제안하는 개념)로 거론되는 작품이다. 잊혀진 인물이 되어버린 러시아 혁명기 시절의 영웅적인 감독 알렉산더 메드베드킨은 그에게 매우 중요한 소재가 되기도 했다. 1971년에는 그를 기리는 <기차는 달린다>를 찍었고, 1992년에는 같은 인물을 놓고 영국 정부가 크리스 마케르에게 제작을 요청해 만든 <최후의 볼셰비키>가 있다. 이외에 전 지구를 돌아다니며 거대한 사유의 틀을 제공하는 <태양 없이>(1982), 국제적인 지식인과 문인을 인터뷰하여 그리스 문명사를 기록한 <부엉이의 전설>(1989), 초창기 영화의 흐름을 마치 기억을 더듬는 듯한 방식으로 이미지를 조합하여 만든 <무성영화>(1995)가 있다. 이브 몽땅과 아키라 구로자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등의 예술가를 새롭게 조명하는 영화도 제작한 바 있으며, 보스니아의 보도 현실에 대해 통렬히 비난하는 내용의 비디오 작품으로 <프라임 타임>이 있다. 컴퓨터와 역사에 대한 기억을 주제로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화 <레벨 파이브>(1997)는 실제로 파리의 개봉관에서 상영하여 많은 관객을 동원한 작품이며, 또 <승강장> 역시 파리의 극장에서 상영되고 있다.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아침

 

 


평화로운 침대, 진짜 침대 

 

 

 

 


 진짜 어린 아이

 

 


진짜 새

 

 

 

 


진짜 고양이

 

 


진짜 무덤

 

 

 


 


16일째가 되는 날 그는 오를리 공황의 승강장에 있다, 텅 비어 있는       

 

 


 때때로 그는 행복한 날을 회상한다. 비록 다르긴 하지만

 

 

 


 


 행복의 얼굴, 비록 다르긴 하지만

 

 


 폐허

 

 

 



그가 찾던 여인, 그는 승강장에서 그녀를 지나친다                             

 

 


 그녀는 자동차 안에서 그에게 미소를 보낸다.

 

 

 

 

 

 

 

 

 

 

 


크리스 마케르 사진집 <북녁 사람들> 중에서

 






672   정영혁 사진  zabel 2002/10/22 1230 296
671   [text]워커 에반스  장명훈 2002/10/26 1358 473
670   박수정 사진  장명훈 2002/10/30 1398 299
669   김명훈 사진  장명훈 2002/10/30 1258 441
668   [필독]양철모 사진  장명훈 2002/11/03 1387 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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