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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권여현은 1988년 개인전 이래 지금까지 23회의 개인전을 통해서 회화, 드로잉, 사진 등의 작품을 발표하였다. 초기의 완성도 높은 회화 작업은 그에게 주요 미술대전들의 수상경력을 안겨주었다. 무척 화려하게 화단에 데뷔했던 그가 최근 수년 간 잠적한 듯이(?) 여겨졌는데, 그는 여전히 해마다 1-3회의 개인전을 열어왔고 지난 6월에는 국민아트갤러리(국민대)에서 ‘부유자아(浮遊自我)’라는 제목으로 개인전을 가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활동이 뜸하다고 느낀 것은 우리의 관심이 영상 매체 쪽으로 치우쳐 있어서 회화 분야는 관심 밖이 되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간 권여현의 작업에서 가장 돋보이는 점은 자신에 대한 각성 및 탐구와 이의 거침없는 표현이다. 그의 드로잉, 사진, 회화 등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하면서도 폭넓은 표현들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용기 있게 세상에 내던진 작가의 외침과 다름없다고 여겨진다.
몹시 더운 날, 김포에 위치한 권여현의 작업실을 방문하였다. 그의 작업실에 들어서니 그의 이번 개인전 퍼포먼스에 등장했던 진돗개, 각(覺)과 또 다른 개들이 짖고 있었다.
김유숙 : 안녕하세요? 작업실이 무척 좋습니다.
권여현 :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디자인하고 건축과 선생님이 설계해 주셨습니다.
김유숙 : 작업실을 작년 9월에 지으셨다고 들었는데, 그 이전에는 어디서 작업하셨습니까?
권여현 : 사당동에 작업실이 있었습니다. 30평짜리 였는데… 거의 수장고 였습니다. 큰 작업을 하려고 해도 안되니까 고충이 많았죠.
김유숙 : 작업실에 빼곡히 쌓여있는 작품들을 보니 과연 그랬을 것 같습니다. 여기는 높이도 높고, 넓고 큰 작업 하시기에는 제격이네요.
권여현 : 이번에 작업실을 지으면서 재미있었던 것은 디자인해서 건축해서 올리는 모든 과정을 8시간 분량 정도 비디오로 찍었어요. 그리고 이것을 편집해서 비디오 작업해서 이번 전시에 발표했지요. 공사하시는 분들이 공사 잘못하나 하고 제가 감시하는 줄 알더라고요.. (웃음)
김유숙 : 하하. 그러셨겠습니다. 작업실 제작 다큐멘터리군요.
선생님 작업에서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장점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은요… 거침없이 표현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용기라고 해야할까요.. 솔직함이라고 해야할까요..
권여현 : 뭐 특별히 딴 생각이 아니라 이 한 작품을 하고 그만둔다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이것을 하고 또 할꺼라고 생각하니까 완성도가 떨어지거나 거친 것이 나오더라도 100점 중 한 점이다라고 생각하고 거침없이 합니다. 실제 작품 제작할 때도 한번에 다섯 작품 정도 펼쳐놓고 하지요. 역으로 제가 어떤 생각으로 작업을 했는가를 보려면 같은 시기의 작업을 수십 점 같이 봐야 합니다.
김유숙 : 선생님께서 처음 등단하실 때는 가장 눈에 띄게 보였던 점이 완성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3,4년 전 드로잉 작업에서부터 작품에 변화가 있었던 것 아닌가요?
권여현 : 그 전에 93년도에 미국에 유학간 적이 있었어요. 한 3년 정도 생각하고 갔다가 1년 만에 돌아왔지만. 그 때 생각이 굉장히 많이 바뀐 것 같아요. 그 전에는 평면을 고집한다고 해야 되나.. 평면 안에서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밀도 있게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이후에는 작가가 보여줄 수 있는 총체적이고 다각적인 것에 대해서 생각을 했고 작품 내의 밀도 보다는 생각의 밀도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김유숙 : 그 때는 유화재료를 주로 사용하셨죠?
권여현 : 네, 그 때는 아크릴 물감을 쓰는 것만 해도 가볍다라고 생각했지요.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지고 붓으로 그려진 두터운 마띠에르의 유화 작품이야말로 페인팅이다. 그렇게 생각한 것 같아요. 아직도 거기에 대한 향수는 있어요.
학교 다닐 때도 선생님들께 그림을 굉장히 답답하게 그린다..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만든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감각 없이 작품을 쌓아가는 학생 중에 하나였던 것 같아요. 우리가 생각하는 선생님의 감각이라는 것 자체도 … 노력에 의해서 배울 수도 있고 얻어진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같아요. 소질은 없었어요.
김유숙: 그렇지만 선생님은 일찍이 두각을 나타내시지 않았습니까?
권여현 : 감각이나 재주 면에서는 전혀 아니죠. (웃음)
김유숙: 글쎄요.. (웃음) 그렇다면 미국에 가셨을 때는 학교를 다니지 않으셨는데 주로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권여현 : 소호에서 김차섭 선생님 작업실에 제가 들어갔지요. 하루 종일 그 근처 갤러리, 미술관에 다녔어요. 많이 보던 중에 방법적인 측면에서 문화적인 쇼크를 조금 받았던 것 같아요. 그 이후로 매체 다루는 것, 표현 방식이라든지.. 그런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김유숙 : 다양한 매체를 다루시는 계기가 되었다는 말씀이시군요. 제가 보기에는 재료적인 부분 뿐 아니라 내용에 있어서도 상당히 달라지셨다고 느낍니다.
권여현 : 사실은 내용에 있어서 유화라는 재료 때문에 재료 안에 내용이 많이 갇혀 있었는데, 매체를 다루고 공간을 다루면서 그간 가지고 있던 여러 생각들이 밖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김유숙 : 네에, 작가의 의도나 생각이 재료를 국한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재료가 생각을 한정짓기도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음.. 한국에 오셔서 원광대 교직에는 얼마동안 계셨습니까?
권여현 : 95년부터 만 5년 있었지요.
김유숙 : 우리나라에서 작가 분들이 교직을 겸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가르치는 일 하고 작업하시는 일하고 병행하시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권여현 : 저는 가르치는 일이 작업에 굉장히 활력소를 줍니다. 작업을 신선한 쪽으로 나가려고 애를 많이 쓰거든요. 생각을 깊이 있게 만들어가는 것 보다는 새롭고 신선하고.. 그런 식으로 방법을 널리 사용하려고 하다 보니까 학생들하고 같이 하는 것이 도움이 많이 됩니다. 가르친다고 하지만 실은 배우는 것이 더 많지요.
김유숙 : 그렇게 즐겁게 교직에 임하셔서인지 작년에 국민대학교에서 Best Teacher상을 받으셨다고 들었습니다. 그것은 어떤 상인가요? (웃음)
권여현 : (웃음) 교양 과목에서 학생들 교양 평가가 좋았나 봅니다. '현대미술의 이해'라는 과목이었는데요… 현대미술을 중학생 정도 수준에서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라는 입장에서 수업했는데… 일반 학생인들에게도 실기를 시켰다는 것이 특이한 점이었을 겁니다. 글씨를 잘 쓰는 사람보다 문장력이 좋은 사람이 글을 잘 쓰는 사람이라고 이야기 했지요.
김유숙 : 농담입니다만, 학점을 잘 주셔서 그런 것 아닌가요? 하하… 요즘은 퍼센트가 나뉘어져 있어서 학점 분포가 모두 일괄적이란 것은 알고 있습니다.
화제를 바꿔서 일전에 선생님 사진 작업이 한 때 사회적으로 논란이 된 적이 있었는데요..(웃음)
권여현 : 말씀도 마십시오. 그것 때문에 곤욕을 치른 것을 생각하면…
지금이야 아무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 당시에는 제가 여장한 사진을 가지고 젠더의 문제로 풀어서 굉장히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저는 그런 의미로 한 것이 아니었거든요. 기독교인인 제가 다분히 도가적인 의미로 여성적 이미지를 차용한 것 뿐인데요…
지금은 아무도 그런 것에 대해서 생각 안하지요. 당시에는 그 작품이 노장 사상을 표현하는 것이었다는 것을 이해를 잘 못했죠.
김유숙 : (웃음) 그 시기 평문들도 그런 식으로 나왔기 때문에 더욱 한 방향으로 이해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권여현 : 그랬던 것 같아요. 그 작품이 의외로 미국 잡지에도 많이 나왔어요. 젠더에 대한 강한 호기심, 관심 등의 카피로 수록되었고 그것을 우리나라에서 역으로 번역을 해서 나온 것들이 있고… 게다가 제가 또 싱글이니까 이상하게 된 거지요.
또 때로는 차용과 표절의 한계를 명확히 이해를 잘 못하시는 분들 때문에 애를 먹기도 하죠. 작품 안에 영어, 한자 등이 같이 들어가 있으니까 작품이 아니다라고 이야기 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래요.
김유숙 : 그러셨군요. 불과 몇 년 전 일인데 정말 그 사이에 인식이 많이 변화되었다는 것을 느낍니다. 지난 6월 국민대학 내의 국민아트갤러리에서의 개인전에 관해서 좀 이야기 하겠습니다. 이 전시도 그렇고 전에는 선생님 작업에서 테크닉이 두드러졌는데 최근에는 거기서 벗어나신 듯한 느낌입니다. 보다 내면적인 부분을 강조하시는 것인가요? 생각의 표출을 강조하시기 위한 것인가요?
권여현 : 프로젝트라고 해야 하나요. 공동작업이라고 해야 하나요. 여러 사람이 참여하는 작품에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저하고 학생들하고 같이 참여해서 작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단계에서 변화가 가능하고… 전혀 엉뚱한 것이 나올 수도 있고.. 그러다 보니까 전하고는 다른 표현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김유숙 : 그러면 이번의 퍼포먼스, <표상의 시대>의 각본도 학생들과 같이 짜셨나요?
권여현 : 처음에는 제가 1, 2, 3 장을 짰습니다. 주된 컨셉이 주인공이 여러 경로를 거쳐서 득도에 이르게 되고 자신의 자리를 떠나는데 거기서 남겨진 사람들은 여기서 헤어나지 못하고 그의 실체가 아닌 표상을 만들어 모시게 된다는 것입니다. 실제가 아닌 표상에 매료되는 현대 사회의 특성을 생각했습니다. 기본 컨셉은 제가 책정을 했으나 그것을 시행하기 (사진을 클릭하시면 동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위한 방법들은 학생들과 함께 토론을 거쳐서 했습니다. 제가 생각한 것 이외에 여러 가지가 공동으로 했기에 가능했습니다.
김유숙 : 처음의 컨셉은 어떻게 나오게 되었습니까?
권여현 : 환경의 변화에 의한 영향도 있었지요. 사당동 작업실의 아주 작은 공간에서 작업하다가 김포 작업실에 와서 너른 공간의 들도 보고 개도 키우면서 나무도 키우고 잔디도 가꾸고… 저는 제가 굉장히 도시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제가 자연을 굉장히 좋아한다는 것을 처음 알았어요.
이러한 과정에서 보다 폭넓게 통합적인 퍼포먼스를 꾸몄는데 상당히 설명적인 퍼포먼스였다고 생각해요. 공부하는 대학생들이나 그런 사람들을 겨냥한 작업이었으니까요.
김유숙 : 그렇다면 학생들을 비롯해서 선생님 작업을 많은 사람들이 가볍게 가까이 하기를 원하시나요?
권여현 : 그렇습니다. 저는 제 작업이 굉장히 쉽다고 생각하는데, 제 관심이 넓게 퍼져 있으니까요 ..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어렵게 생각하더군요. 물론 시각적인 장치나 그런 것들이 있기는 하지만, 보는 방법은 아주 쉬워요. 내 자화상 대신 자신의 얼굴을 집어 넣으면 되거든요.
김유숙 : 음.. 요즘 영상매체의 발달과 이에 대한 관심이 커져서 상대적으로 고전적인 회화라는 매체가 위기를 맞았다고 여겨지기도 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권여현 : 경제적인 상황하고 사회 문화적인 측면하고 굉장히 밀접하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세기말의 혼돈 상태에서는 회화보다는 매체, 영상 등이 더 잘 맞았습니다. 그러나 향후에는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에 대한 향수가 복원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사람의 손으로 그려졌다는 것, 수공적인 측면에서 회화는 또 다시 커다란 포션으로 미술의 고유한 영역으로 자리잡을 것입니다. 향후 경제 상황이 좋아지면 소장을 한다든지 하는 것도 다시 활성화 될테고요.
김유숙 : 네, 선생님께서는 상당히 긍정적인 전망을 가지고 계시군요.. 그렇다면, 지금 현 상황에서 '그리기' 방식을 포기하고 시각적으로 보다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쟝르를 주 매체로 선택하는 후배들에게 당부하실 말씀이 있으시다면 부탁드립니다.
권여현 : 매체가 자신의 생각을 빨리 옮길 수 있는 반면에 그 쉬움이 단점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알고 했으면 생각합니다. 회화 작업은 그려나가는 과정에서 생각이 쌓여나갑니다. 그러나 매체는 보다 작업의 성격상 이 과정이 생략되거나 짧게 되는 수가 있습니다. 결국 매체를 다룰지라도 생각을 계속 쌓아나간 작업과 즉흥적이고 기법적인 것은 차이가 생기게 되지요. 그러니 어떠한 매체를 다루든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작품에 쌓아나가는 과정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저는 후배들에게 누가 봐도 예사롭지 않다라고 생각되는 작품을 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김유숙 : 선생님께서 타인의 작업에서 흥미롭게 보시는 부분은 어떤 부분입니까?
권여현 : 아무래도 조형적인 깊이를 보게 되지요. 작가의 정신이 옳다 그르다라고 할 수 없으니까요. 재료, 매체를 다루는 것이라든지,, 공간의 이용을 보는데… 좋은 작품은 많은데 감동적인 작품은 잘 없다고 생각됩니다... 저도 못하면서 이런 말 하는 것이 그렇긴 하지만요 … (웃음)
김유숙 : 올 하반기의 특별한 계획은 있으십니까?
권여현 : 미리 할 얘기는 아닌데, 가능하면 퍼포먼스 한 것을 영상작업으로 해보고 싶습니다. 내 작품이나 삶에 대해서 예전에는 컨셉이 분명했었는데 갈수록 그것이 약해지는 것 같아요. 컨셉을 확실히 할 수 있도록 스스로 날을 더 세워야 할 것 같습니다.
김유숙 : 예민해지시던 부분들이 무뎌진다는 것인가요?
권여현 : 무뎌진 것인데 다른 사람들은 둥그러졌다고 하더군요.
스스로 나 자신에게 좀 더 날카로워졌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스스로 자극을 찾아야지죠. 그런 쪽으로 반성이 돼요.
김유숙 : 네, 작가에게 평생 요구되는 것이 바로 그러한 자기 각성이겠지요. 그것 때문에 작가 생활이 고달픈 것이고요.. (웃음) 그래서 선생님의 개는 각(覺)이고, 정원의 소나무는 각아송(覺我松)이고, 작업실은 각아각(覺我閣)이군요? 그렇게 날을 세우시려는 선생님의 노력이 늘상 청년 같은 모습을 유지하시도록 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 더운 날씨에 고생 많으셨습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권여현 :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 권여현 (權汝鉉) 약력
1961 경남 합천(陜川)생
1985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졸업
1987 서울대학교 대학원 서양화과 졸업
개인전 22회
국제전, 단체전 다수
<수상>
1984 창작미술협회 공모전 대상
1986 동아미술제 동아미술상
1990 중앙미술대전 우수상
1991 석남미술상
1995 한국일보청년작가 우수상
<저서>
드로잉의 세계. 도서출판 재원. 서울. 1999
현재 국민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부 교수
* 홈페이지 http://www.arthyun.com
http://openart.co.kr/portfolio/default.asp
* 사진설명 (위로부터)
1. 작업실에서 자신의 개 각(覺)과 함께
2. 작업실 외부
3. He-My 그-나의, 180 x 180 cm, 1990, Mixed media
4. Golden wings 속물근성, 50 x 66 cm, 1999, Pastel, charcoal, acrylic on paper
5. 여자, 200x120cm, 1994, 사진
6. 표상의 시대, 205x122cm, 2002, photography performance
7. 부유자아, 180x180cm, 2002, mixed media
8. 자아각성, 2002, poly
인터뷰, 정리 : 김유숙 (오픈아트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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