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서핑 중 우연히 보게 된 글입니다.
작성자와 연락이 닿지 않아 출처를 밝히지 못했습니다.
제 목 - 김용옥은 너무 쉽게 살아 가려고 한다.(취화선에 나타난 도올)
얼마 전 취화선을 비디오로 보았다.
이 영화 서두에 각본 -도올 김용옥이라는
자막을 보고 "아니, ---" 하면서 보았다.
임권택의 영상언어는 익히 보아왔었지만
김용옥이 영화 시나리오를 집필했다는 데에서
오히려 묘한 흥미를 느꼈다.
(우연히 김용옥이 쓴 책을 많이 보았고
그가 극구 칭송해 마지 안았던 김우중과
함께 쓴 두터운 책 "대화"도 흥미롭게 읽었었다)
아니나 다를까?
취화선이란 영화엔 김옥균, 동학혁명, 원세계 등
필요 이상의 과잉 역사의식(흔히 오바했다는 표현)이
곳곳에 범벅이 되어 작품의 美學을 많이 떨어뜨려 놓았었다.
아마 한국에 대해서 잘아는 사람일수록 평범한 영화로 보여서
무슨 큰 상을 받기엔 작품의 충실도에선 너무나 역부족인 작품으로 보였다.
하지만 외국인들의 눈에는 "세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집단으로
기다란 수염을 기르고 희안한 모자(갓)를 쓰고 다니는 이상한
부족(tribe)"들이 영화를 장악하고 있는 모습이 마치 레비스토로스의
"슬픈열대" 속에 나오는 주인공들이 던지는 창날같이 투사할
문화인류학적인 생경함이 오히려 큰 상을 받는 데 단단히
한 몫 했으리라는 판단을 나 만이 하지는 않았으리라 본다.
이 영화에서 도올은 주인공인 장승업 보다는
"秋史" 김정희의 세한도를 혹평하는 모습
등의 여러 사대부 선비들의 입 속에 존재했는데,
특히 안성기가 분한 사대부 선비의 모습에 도올이 가장 많이 숨어있다.
한데 이 작품이 주인공 장승업을 끝까지 별 볼일 없는
환쟁이로 만들고야 마는 것은 이 사람(안성기 분)과 주변에 있는
시대를 비평하는 사대부들에게서 나타난 도올의 의식 과잉으로
나타나는 엘리트 의식이다. 이는 예술가 장승업을 그린 것이 아니라
그 당시 지식인으로 분장한 도올 자신이 멋대로 재단한 장승업이라는
이상한 인물을 창조하고 있다.
심지어는 장승업이 벌이는 기녀와 벌이는 과도한 섹스생활조차
"여자란 무엇인가?"에 숨어 있는 도올 자신의 생각이 과잉으로 색칠되어
관객은 위대한 예술작품이 그 가치조차 잘 모르는 후학의 붓에 의해서 과도하게
폭악적인 덧칠을 당한 모조품을 보아야 하는 듯한 고문을 당해야 했는데 이는
그가 두터운 책 한 권(아마 "동양학을 어떻게 볼 것인가?" 라는 황당한 책일 것이다)에서
거의 절반을 자신을 배반하고 동료교수 밑으로 지도교수를 옯긴 그 나름대로의
배신자를 욕설하는 데 할애하는 과감한 배짱(?)만큼이나 참기 어려운 것이었다.
왜 장승업을 미켈란젤로나 마네 모네 피카소 등을 그려낸 영화들처럼
인간적인 내면이나 위대한 예술가로 그려 낼 의식과 소양이 부족했던가는
바로 도올의 한계를 채근하는 것이라 보아진다.
도올이 얼마전 자기가 속한 재벌이 발행하는 신문에 세간에 화제가 되는
곡학아세를 하고 있는 가도 그의 쉽게 살아 가고자 하는 세속적 한계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지는 웬만하게 직관이 있는 사람이면 다 알수 있어 뒷 맛이 오랫동안
씁쓸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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