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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abel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2003-03-11 14:59:09, Hit : 605)
[펌]위스키 캬라멜
앗제에 대한 이경률씨의 글입니다.    마실가에서 펐습니다.    푼크툼에 대한 이야길 여서 또 들어야 하는 것이 매우  슬픕니만. 쨌든.



출현과 부재 그리고 멜랑콜리

  
  전통과 진보의 길목


으젠 앗제의 사진 작업은 20세기의 새로운 여명과 함께 시작된다. 전통과 진보의 교차점에서 앗제는 고전적인 규칙이나 화음을 버리고 불협화음의 오케스트라를 울리는 진보주의자들과 함께 있었다. 당시 규칙에서 불규칙으로 혹은 정형에서 비정형으로 지나는 길목으로 간주되는 이러한 예술적 혁명은 두 가지 원칙의 길에서 진행된다 : 한편으로 그리스의 고전적이고 총합적인 “"형상(forme)"을 부정하고 파괴하여 결과적으로 그 절대적인 "형상"을 초월하려는 예술가들, 대표적으로 랭보, 말라르메, 피카소, 숀베르그 같은 선구자들의 불연속적 길이다. 다른 한편으로, 전통과 진보가 서로 겹쳐 일어나는 형태로 일종의 상호 침투에 의하여 전통적 형상의 중심에서 벗어나는 경우이다. 그러나 이러한 "형상의 이탈"은 전통과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연속적 길로 볼 수 있는데, 이러한 부류의 사람들은 보나르, 드뷔시, 프루스트, 발레리, 베르그송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사진 예술에서 앗제는 스테이그리츠와 같이 이러한 두 번째 길에 있었다.


앗제의 예술적 계보는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와 초현실주의 계열 이전에 이미 1885년부터 구체화된 유럽 상징주의의 중심 개념인 "초인상(surimpressions)"에 관계하고 있다. 정렬적이고 강렬한 그러나 규명할 수 없는 어떤 과거적 회상에 관계하는 이러한 초월성은 새로운 20세기를 여는 중요한 지류들 중 하나로 간주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앗제의 세계와 거의 정확히 일치하는 것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À la recherche du temps perdu)"에서 시종 일관되게 나오는 형이상학적 특징들이다 : 작품 구성에 있어 우중충하게 흐려진 음향들, 의식과 무의식의 유동적이고 은밀한 상호 침투 그리고 그것에 의한 지속(durée) 즉 시공간의 총합(또한 이것은 베르그송적인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오래된 길, 오솔길, 공원 혹은 정문과 창, 수레, 건축물 장식 등 그의 사진적 대상들은 공통적으로 두 가지 의미 심장한 문제를 제시하고 있는데 한편으로는 출현이고 또 한편으로는 부재이다. 현재와 과거, 의식과 무의식, 의미와 무의미 혹은 확실과 불확실, 이러한 대립적 요소들은 언제나 상호 침투되어 동시에 일어난다. "사진은 기억의 은유다"라는 정의를 받아 들일 때, 마치 프루스트의 소설에서 마들렌 향기와 자갈 도로 위를 달리는 마차 바퀴의 덜커덩 거리는 소리 혹은 달랑 거리며 열리는 문 소리 등에 의하여 과거로 침수된 수많은 기억 장면들(souvenirs-écrans)이 사진적 장치에 의해 다시 재현되듯이 앗제의 사진들은 그때 수 많은 기억들을 은닉한 하나의 존재론적 징후(index)로서 출현한 것이다. 그의 사진에서 마치 달무리나 성인의 후광(aura 혹은 halo)과 같이 발하는 "멜랑콜리(mélancolie)"는 여기서 가장 확실한 징후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거기서 그 어떤 분명하고 영원한 것도 없으며, 그 어떤 것도 돌출하지도 분할 되지도 또한 집중 되지도 않는다. 그처럼 모든 것은 국부적이고 순간적이고 균등하고 평범하게 만들어지고 또한 분해된 상태로 버려져 있다. 보다 정확히 말해 모든 것은 "극단적인 진부(trivialité)"의 형태로만 출현하고 있다. 사실상 그것은 단지 만물의 “생성-진화(devenir-forme)” 과정에 놓여 있을 뿐이다.


1871년, 마독스(Maddox)는 당시 오래 동안 사용된 유리판 콜로디온 습식방식에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젤라틴 건판을 대치하고 1880년 미국의 신문은 아주 싼 값에 무제한 생산할 수 있는 사진 인쇄를 시작한다. 또 1888년에는 당시 35세인 이스트만(Eastman)이 100장의 두루 말이 필름이 장착된 첫 코닥 카메라를 만들어 상업화 하는데 그 원리는 1884년에 이미 알려졌다. 코닥이라는 말은 원래 셔터와 동시에 그대로 통으로 둔다는 것을 말하며 “셔터만 눌러 주세요, 그 외 모든 것은 우리가 합니다”라는 문구처럼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또 어떤 각도에서라도 사진 촬영이 가능하게 된다. 당시 인상주의자들이 그들의 그림에 도입한 사진적 시각에서 보듯이 사진은 일상적이고 내부적인 삶을 조준하기 시작하였고 또 에드웨드 뮈브리지(Eadweard Muybridge)의 동물 움직임 연구나 에티엔느 줄 마레이(Étienne Jules Marey)의 왕복운동 연구에서는 사진이 과학적인 투자 방법으로 이용된다. 그러나 이러한 과학적 연구의 도구로서 이용된 사진과는 달리 기록과 보존의 수단으로도 활용 되는데 이는 사진 발명 초창기의 사진의 단순한 기록적 활용이 아닌 산업 혁명과 현대화에 의해 변화되는 도시와 사라지는 풍물에 대한 지형적인 조사 목록을 위해 사진이 동원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당시 프랑스 정부는 특별히 보존할 가치가 있는 파리의 건축물과 문화재에 대한 총체적인 사진 목록을 기획하였는데 앗제는 1897년 경부터 그가 죽는 1927년까지 일반적인 건물 뿐만 아니라 이러한 정부의 주문에 따른 사진 작업을 했다. 외관적으로 보아 그는 1851년 프랑스 문화재 보호 위원회가 바이야(H. Bayard), 발뒤스(E. Baldus), 르 그레(G. Le Gray), 르 섹(H. Le Secq), 그리고 메스트랄(O. Mestral)의 5명의 사진가들을 각 지방에 보내 그들에게 120군데의 서로 다른 문화재를 찍게 한 공식적인 사진 작업(La mission héliographique)을 다시 추적하고 연장하고 또 개선하여 반 세기 후 그 일을 완성했다고 평가된다. 또한 파리의 기념물, 건축물, 거리의 작은 직업과 풍물 등을 찍은 샤를르 네그르(Charles Nègre)의 사진 작업에 이어 앗제 역시 그와 같은 파리의 거리와 기념물을 찍었다. 그러나 사실상 그의 작업은 더 이상 그의 선배들의 작업을 보충하지도 계속 추적하지도 않았고 또 그들과 같은 예술적 행위의 연장선 상에 있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의 작업은 차후에 그의 가장 확실한 선구자인 샤를르 마르빌(Charles Marville)의 작품을 보충하고 추적했다. 마르빌은 1858에서 1878년 사이에 파리를 촬영하여 네 개의 큰 사진 시리즈를 만들었는데, 테마로 볼 때 길, 광장, 공원 등 앗제와 거의 같은 테마별 시리즈를 실행했지만, 주제로는 정면성, 불연속, 분명함, 대조, 대칭, 거울적 복사성을 추구한 단순한 자료 사진들로 앗제의 은밀한 사진들과는 아주 다른 측면을 가지고 있었다.



불가능한 테마의 재현


앗제 사진의 테마는 사진 그 자체에 의한 어떠한 해석학적인 가치를 가지지 않는 해석 불가능한 테마 즉 인덱스의 출현 그 자체이다 : 사진에 나온 테마는 그가 발견한 주제 이상의 과도한 주제이다. 엄밀히 말해 순수하게 참조적이고 자료적인 테마들는 마치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기억 화면(souvenirs-écrans)"과 같은 일종의 기억 오브제들로서 오히려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동기(動機) 화면(motifs-écrans)"이라고 말하는 것이 적합하다. 이는 심리학적으로 어떤 연상을 유도하는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인 원인이 되는 기억의 "유도체(conducteur)”"역할을 한다. 반면 사진의 자료적인 출현은 단지 현실의 지극히 평범한 코드로서만 나타난다. "앗제가 그의 사진에 적용시킨 코드화의 체계는 그가 작업한 도서목록과 지형학적인 수집 카탈로그에서 유래한다. ( )그리고 보다 분명하게 앗제의 작업은 사진가가 창안 하지 않은 카탈로그의 생산물이고 또 그 카탈로그를 위해 작가의 개념은 대상을 가지지 않는다."1) ”앗제의 작품은 근본적으로 비 개성적이다. 왜냐하면 그의 사진들은 엄청난 자료적인 규범을 따르고 쉽게 알아볼 수 있고 언제라도 사용할 수 있는 기술적인 신호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는 사인이 없다.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앗제는 일종의 전통과 진보의 전환점에서 단순한 사진 기록자로서 역할을 한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그의 사진은 오늘날 다큐멘트리 사진의 기록적 출현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자신의 직관(直觀)과 시적 음색(tonalité)2) 에 의한 "불가능한 현실의 포착"으로 나타난다. 보여주는 사진과 감추는 사진은 진술과 암시, 묘사와 상상 혹은 소설과 시의 관계에서 이해될 수 있다. 사진으로 진술한다는 것, 그것은 마치 "너가 보지 못 했던 것, 그리고 더 이상 보지 못 하고 또 앞으로도 보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이는 세계를 보다 더 잘 보이도록 하기 위하여 자기 과시적이고 장관적인 진술 행위로 간주된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필연적인 것이 아니다. 흔히 사진가는 그의 필름에 예외적인 것, 드문 것, 예견치 않은 것, 더 이상 돌아 오지 않을 기적적인 순간, 결코 재현되지 않을 사건 즉 "외관 세계에서 가장 좋은 유일한 사진"을 포착하기 위해 그 자리에 그 순간에 있었다고 믿고 또 사람들로 하여금 그렇게 믿게 한다. 마치 좋은 사진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H. Cartier-Bresson)같은 사진가가 숨어서 길목을 지키는 "좋은 만남(시공간의 통합)”"속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 반대로 진정한 사진은 또한 겸허한 예술로서 평범하게 시행된 사진 다시 말해 감추는 사진일 수도 있다.


앗제가 로보트 프랭크(Robert Frank)나 혹은 레이몽드 드파르동(Raymond Depardon) 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분명한 모더니즘을 갖는 이유는 정확히 말해 거의 언제나 초라하게 축소된 그의 사진 속에 내재된 극단적인 "현대성(modernité)"때문이다. 흔히 그를 19세기 최후의 위대한 사진가로 간주하고 또 그의 사진들을 그 세피아 색이 말해주듯이 향수적인 위선과 허무의 집합소나 피난처로 보기도 한다. 또한 그를 재개발과 재건축으로 곧 사라지는 파리의 거리나 건물을 찍었다는 명목으로 시대의 기록자 혹은 거리의 사진가로 간주하기도 한다. 실질적으로 앗제는 그의 사진 작업을 통해 도시적이고 사회적인 현실에 대한 마지막 증인으로 남고 싶었고 게다가 그는 당시 거의 모든 사진가들이 관심을 둔 프랑스 혁명, 과학의 급진적 성장, 산업혁명으로 이어지는 모든 진보적인 현상에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사진에는 과거 지향적이고 기록적인 측면과는 정 반대로 현실의 은밀한 파괴와 전복이 잠재하고 있는데, 그것은 역으로 그의 사진적 실행에 실존적인 낙천주의와 존재적인 충만함을 부여하는 작가의 의도를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진가는 현실의 불가능한 포획을 체계적이고 그리고 반복적 방법으로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그의 멜랑콜리한 모든 작품은 진술로서의 기록이 아닌 바로 이러한 포착 불가능한 음색에 대한 사진적 재현인 것이다. 그래서 으젠 앗제의 사진은 쉽게 어떤 기록을 위한 다큐멘트리나 혹은 피토레스크(pittoresque)적인 측면에서 읽혀지지 않는다. 물론 그는 회화적인 것으로부터 내려온 피토레스크적인 측면을 전적으로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그를 "그의 정신은 루소의 정신과 같았다"3) 라고 화가에 비유하여 말하듯이 그는 순수한 사진가이다. 결국 앗제의 사진은 "예술의 원시"일 것이다. 로잘린 클라우스(Rosalind Krauss)가 그것을 잘 언급하였듯이 그의 사진을 그림의 기준에서 평가하는 것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하고 논리를 벗어난 현실의 존재론적 재현(인덱스화 된 자국)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않고서 앗제의 사진을 어떤 특정한 예술적 유파나 경향에 분류할 수 없을 것이다. 그때 사람들은 흔히 앗제의 예술을 "초-회화적"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탈-회화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흔히 앗제의 초월적 시각을 조르지오 키리코(Giorgio Chirico)의 형이상학적인 사실주의에 접근 시킨다. 도시의 불안한 고독(viduité)은 이 두 화가 사이에 공통된 음색으로 나타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재현적 차이점은 분명하다 : 키리코의 도시들은 그들의 색과 공간적 구성에서 이상한 도시 그 자체들이다. 르네상스 이후 평면 예술의 공간 구성에서 모든 다각형이 하나의 소실점으로 수렴하는 엄격한 원근법에 의해 조직되는 반면 1910에서 1915년 사이에 제작된 그의 대부분의 그림에서 작가는 이러한 소실점을 다양화 시키면서 카트로첸토(Quattrocento)의 원근법적인 공간을 분해하고 있다. 그 결과 관객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도상적인 코드와 시각적으로 안정되고 완벽한 그 공간을 더 이상 알아볼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앗제는 반대로 도시에 대한 나름대로의 이해에서 우리들의 원근법적인 익숙함과 확실성을 동요 시키는 그 어떤 것도 행하지 않는다. 그는 마치 에밀 졸라(Émile. Zola)가 에펠 탑 중간 층에서 잡은 왜곡된 사진들의 경우나 귀스타브 카이유보트(Gustave Caillebotte)가 짧은 초점거리를 갖는 렌즈에 의해 나타나는 광각적 왜곡을 그의 화폭에 도입한 경우처럼 특별히 예견치 않았던 원근법조차 우리에게 보여 주지 않는다. 앗제는 이미지에 있어 원근법에 의한 왜곡과 변형을 시도한 사람은 분명히 아니다. 그의 사진에서 일어나는 비현실적인 감정은 우리를 질식시키는 화면의 고독에 기인하지만 그 고독조차도 우리들의 일상적인 체제를 동요시키지 않는 지극히 "정상적인"사진 공간에서 발산된다. 그래서 그러한 감정을 지나치게 또 즉각적으로 단지 초현실적인 맥락에서만 읽는다면 그때 사진은 이미 회화의 환상에 동화된 하나의 의미적 번역이 될 뿐이다. 앗제는 결코 대상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부재와 멜랑콜리


앗제는 그의 사진적 작업에서 예술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사실상 동 시대의 인물이 아니었다. 19세기 말 사진의 활용과 그 대상에 있어 대부분의 경우가 당시 사진의 기술적 발전 덕분으로 이미 인간의 동작이나 움직이는 대상에 대한 시각적 포착에 관계할 때, 전혀 기술적 진보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앗제의 경우는 엉뚱하게도 재현의 부동성과 고착성에 묶인다. 그리고 당시 사진가들 특히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활동성과 움직임이라는 큰 명제 속에서 하나의 지배적인 시대적 경향을 형성할 때 앗제의 예술은 점점 사진적인 부동성에 고착되어 갔다. 그의 사진은 사진이 강조하는 출현보다는 오히려 어떤 부재(不在)를 표명한다 : 마부도 승객도 없는 텅 빈 합승마차, 버려진 무게 화차, 손님도 점원도 없는 가게, 아무도 없는 길, 비여 있는 호화스러운 계단, 아무도 없는 카페의 테라스 그리고 정원과 뜰 그와 같이 앗제의 사진은 마치 인간이 빠진 연극 무대처럼 어떠한 생물도 없고 어떠한 분위기도 없다. “황량한 도시 공간은 마치 아직 새로운 세입자를 찾지 못해 비여 있는 집처럼 텅 비여 있다.”라고 말하듯이 언제나 뭔가 빠져 있다.


그러나 거기에 역설적으로 "여기에 없는 누군가가 있다"라고 암시하는 것처럼 언제나 부재 뒤에는 어떤 비 구체적인 무언의 출현이 조직되는데 이러한 출현은 물질적 출현 그 자체보다도 더 출현적인 실체가 된다. 그것은 바로 어떠한 의미적 해석을 부정하는 이상함 혹은 불안함의 실체 즉 푼크툼(punctum)이다. 그러나 문화적 코드로서 읽혀진 앗제의 사진에는 사실상 어떠한 푼크툼도 돌출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의 사진은 문화적인 측면의 절정에서 평범과 진부의 극단성 즉 스튜디움(studium)의 포만을 표명하기 때문이다 : 외관적으로 오래된 파리의 이미지와 일상생활의 범주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모든 장면들은 언제나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극단적인 동질성을 가지고 있다. 어딜 봐도 놀랍고 이상한 특별한 출현은 없고 오히려 그러한 이미지로서 단지 텅 빈 부재가 있을 뿐이다. 현실적으로 거의 밋밋한 이러한 사진에서 앗제는 아주 은밀하게 푼크툼을 넣고 있는데 그것은 마치 베일에 가린 폭탄의 뇌관과 같이 잠정적으로 엄청난 위력을 가지고 있는 무엇이다. 바르트(R. Barthes)는 푼크툼을 "하나의 보충"이고 구체적이든 아니든 "그것은 내가 사진에 보태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이미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푼크툼은 또한 불완전함, 부족, 분명함으로 구성되어 있다. 거기에 아직 없는 것, 여하튼 거기에 결코 없는 것이다. 앗제의 사진에서 "출현"은 우묵하게 패여 있고 출현 그 자체의 부분으로 피신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동공에서 관객에게 방사되는 푼크툼은 멜랑콜리이고 결국 그 동공을 메우는 것은 의심할 바 없이 관객의 기억과 상상이다.


앗제의 소름 끼치는 정적의 장면들은 마치 원자 폭탄 이후의 황량한 세상과 같다. 거기에는 어떤 보이지 않는 수사학이 있는데 그것은 흔히 거의 모든 사진들이 표명하는 의미적인 웅변과 대립되어 있는 음울한 연극이다. 이러한 연출은 그가 사진을 시작하기 이전 초라한 화가와 무명 연극배우 시절의 약 40년 동안 그가 언젠가 한번 헛되이 환상을 꿈꾼 그림과 드라마의 재구성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화려한 장면 위에서 외치는 연극이 아니라 오히려 낡고 우울한 장식들과 함께 세속적이고 징후적인 의미들과 무의미들이 차곡차곡 쌓이는 장면 뒤에서 마치 곧 사건이 터질 것 같은 범죄 연극이다. 앗제의 사진에서 아주 특수한 분위기를 구성 시키는 것들이 있는데 그것은 위험이 임박한 불길한 징조나 천재 지변이 지난 후의 적막과 고요함 혹은 이와 유사한 사건의 직전과 직후의 징후들(aura)이다. 장소는 그 자리를 지키던 사람들에 의해 버려진 상태로 남아 있고 아마도 그들은 우리가 정확한 본질을 모르는 어떤 무시무시한 재난을 피하기 위해 달아났을 것이다. 이러한 인상은 언제나 그의 사진에 징후적으로 출현한다. 앞서 말했듯이 도시는 천재 지변 이후 혹은 그 직전의 상황이다. 상황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고 모든 것은 동요되는 지점 위에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잠시 후에 이러한 모든 안정성은 소란스럽게 될 것이고 모든 것은 분해 될 것이다. 세상과 인간들의 외관적 정적(靜寂)은 여기서 극도의 불안정에 대한 위선적인 이면으로 나타난다.


프로이드는 "슬픔과 멜랑콜리(Deuil et mélancolie)"에서 멜랑콜리를 순수하게 임상적으로 정의하고 있다. 즉 방어적인 혹은 나르시스적인 신경증으로 분류되는 멜랑콜리한 상태는 정상적인 슬픔에 의해 조장된 상태를 극복하는데 있어 주제(자아)의 무능력에서 오는 불안정한 정신상태라고 한다. 이러한 상태는 한편으로 의기소침과 억압, 그를 둘러 싼 모든 것에 대한 무관심과 무감각의 단계와 또 한편으로 자아의 도피를 위해서 외부로 향한 열렬한 자극과 충동적인 단계가 서로 번갈아 일어나면서 어떤 심각한 심리적 긴장을 야기시키게 된다. 그 결과 번민의 무기력한 비탄과 음울한 순간들에 뒤이어 혼수 상태, 편집, 포기, 동요 등의 거의 디오니소스적인 광란 상태가 온다. 확실히, 앗제의 작품은 분실과 죽음을 예견하는 불길한 징조를 갖는다. 사진가가 우리들의 세상에 던지는 시선은 심각하게 동요된 거의 의기소침된 그 무엇이고 또한 거기에는 당시 전쟁과 동료 아들의 죽음 이후 더욱 심화되는 어떤 진중한 무관심이 있다. 앗제가 세상과 인간성을 철저히 분리하고 그 시대의 사건들과 그토록 무관심하게 단절하면서 결국 미(美)적인 신경쇠약을 가볍게 스치는 무감각한 태도를 갖는 것은 의심 할 바 없이 그 만큼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멜랑콜리의 신호들로 간주된다. 그러한 의미에서 앗제는 멜랑꼴리 그 자체이다. 그에게 있어 사진적 행위는 의미부여나 결정적 순간에 의한 현실의 기록적 포착이 아닌 자신의 직감과 충동에 의한 보이지 않는 음색의 재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현실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시찌프의 부조리처럼 오히려 현실에 대한 끝없는 추적 즉 "현실의 불가능한 포획"이다. 그는 결코 같은 대상, 같은 장소를 촬영하지 않으면서 언제나 원점에서 새로 출발한다. 멜랑꼴리는 이러한 충동과 반복적 추적 그 이상으로 지금도 그를 지배하고 있다.

주요 참조 도서

Alain Buisine, Eugène Atget, Édition Jaqueline Chambon, Paris, 1994

Jean Leroy dir., Atget Magicien du vieux Paris, Paris audiovisuel, Paris, 1992

Henri Van Lier, Histoire photographique de la photographie, Les Cahiers de la photographie, Paris, 1992

Margaret Nesbit / Françoise Reynaud, Intérieurs parisiens, Édition Carré, Paris,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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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
1) Rosalind Krauss, Le Photographique, Pour une Théorie des Écarts, Macula, Paris, 1990,p52.
2) 존재론적 관점에서 “음색(tonalité)”은 대상이나 상황에서 발하는 감각적인 “인상(impression)”을 말하는 형이상학적인 용어다(하이데그 철학). 이는 흔히 후광, 무리 혹은 안개와 같은 불확실한 분위기라는 뜻의 라틴계 어원을 갖는 “아우라(aura)”와 사실상 거의 같은 의미로 이해된다.
3) Robert Desnos, “Les spectacles de la rue Eugène Atget”, Le Soir, 11 septembre 1928, p. 5. 또한 George Waldemar, “Photographie vision du monde Atget photographe de Paris”, Arts et métiers graphiques, n°16, 15 mars 1930 에서도 앗제를 루소와의 관계를 언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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