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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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a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2003-11-05 16:36:24, Hit : 383)
[펌] 폴 발레리, 『예술에 대한 고찰』중(가라타니 고진, 『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에서 재인용)
요컨대 예술작품이란 하나의 대상물(objet)이고, 어떤 개인들에게 어떤 종류의 노동을 하게 함으로써 만들어진, 인간에 의한 제작물입니다. 개개의 작품이란 때로는 언어의 물질적인 의미에서 물체(objet)이고, 때로는 무용이나 연극 같은 행위의 연쇄이고, 때로는―음악이 그러합니다만―마찬가지로 행위에 의해 산출되는 계기적 인상의 합계입니다. 이러한 대상물을 기점으로 삼는 분석에 의해 우리는 우리의 예술 개념을 명확히 하고자 노력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대상물이야말로 우리가 탐구할 확실한 요소가 틀림없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대상물을 고찰함으로써,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들 작자에게 거슬러올라가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들이 감동작용을 미치는 인간에게 거슬러올라감으로써, 우리는 '예술'이라는 현상이 두 가지로 완전하게 구별되어 변형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입니다.(그것은 경제학에서 생산과 소비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와 똑같은 관계입니다.)
매우 중요한 점은 이들 두 개의 변형작용―작자로부터 시작하여 완성된 물체로 끝나는 변형작용과, 그 물체, 곧 작품이 소비자에게 변화를 가져다 준다는 의미에서의 변형작용―이 서로 완전하게 독립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이 두 가지 변형작용은 따로따로 고찰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작자, 작품, 관객 또는 청중이라는 세 가지 요소를 등장시켜 명제를 세우게 됩니다. 그러나 이 세 가지 요소를 통합하는 관찰의 기회는 결코 여러분 앞에 실현되지 않을 것이라는 뜻에서, 그러한 명제는 모두 무의미한 명제입니다…….
내가 더듬어 나간 점은 이러합니다. 예술이라는 가치는(이 말을 사용하는 것은 결국 우리가 가치의 문제를 연구해 왔기 때문입니다만), 이 가치는 본질적으로 지금 펼쳐 놓은 두 가지 영역(작자와 작품, 작품과 관찰자)을 동일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다시 말해서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매개항을 두지 않으면 안된다는 저 필연성에 종속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정신으로 환원할 수 없는 어떤 것이 있고, 직접 교섭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작품이라는 이 매개체는 그것에 감동한 인간에게 작자의 인품이나 사상에 대한 어떤 개념으로 환원될 수 있는 그 무엇도 가져다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술가와 타자(독자), 이 두 사람의 내부에 각각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그것을 엄밀하게 비교하기 위한 방법 따위는 절대로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만약 어느 한쪽의 내부에서 일어난 일이 다른 쪽에게 직접 전달된다고 한다면, 예술 전체가 붕괴될 것이고 예술이 지닌 힘 전체가 소멸될 것입니다. 타자의 존재에 작용하는 새로운 불침투적인 요소의 매개가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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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케이션, 즉 소통에의 환상이 문제인거죠. 메시지나 의도 이상(혹은 이외)의 것이 그 환상에는 숨어있습니다. 예술이 아무리 설명된다고 해도 일정부분 설명될 수 없는 부분, 그것이 예술을 예술이게하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심지어 그 해설이 작가 자신의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은 여전히 설명될 수 없는 부분이 남지요. 흔히 어떤 작가가 이 작품의 의도는 뭐뭐였다~라고 말하더래도 절대 믿어서는 안됩니다. 그 역시 이미 독자로써 말하는 것이므로 그런 식의 말은 거짓말이 되기 십상이죠. 근본적으로 작가-작품과 작품-독자는 다른 층위에서 얘기되어져야 합니다. 세 개를 마치 유기적인 고리처럼 이해하면 남는 건 파국이겠죠. 작가와 소통하고 싶다면, 그것은 작가로서가 아니라 사람으로서 소통을 시도해야 할일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설혹 사람대 사람으로서라고 할지라도 '실질적인' 커뮤니케이션이란 없습니다.  <nivritti>

*

소통에의 환상이라.. 내가 고민했던 지점은 예술을 가능하게 하는 패트론이라든가 돈 따위의 물적 토대에 관한 것은 아니었거등. 명예나 부의 획득이 그가 하는 예술이 잘 할 수 있는 것이었는가,를 어느 정도 가늠케 해주는 하나의 지표일 수도 있겠지. 나는 타자와의 소통이란 점에서 접근했던 것인데.. 당대와의 소통에 실패했던 경우 시대와의 불화라는 둥 시대를 너무 앞서갔다는 둥 하며 사후에야 평가받는 예술가들이 있잖아. 그 때 그 예술가들은 왜 그것을 창작해야 했는가, 잘 할 수 있어서 였을까, 하고 싶어서 였을까, 무엇이 동력이었을까, 라는 의문이 생겼거든. 자기 만족으로 그칠 거라면 굳이 '유통'시킬 것까지는 없잖아. 그렇다고 실존이 '유아독존' 식은 아니다 싶어. 나는 그것이 관계 속에 있다고 믿는 축이지. 여튼, 좀 순박할지 모르지만 미술이든 문학이든 텍스트와의 만남은 순정한(!) '너'와의 만남이라고 생각해. 물론, 작가와 작품을 동일시하고자 할 맘은 없어. 작가와의 의도와는 다르게  시공간적 맥락에 따라서 작품은 전혀 다르게 읽히고 수용되니까. 작가는 작품에 대해선 사실, 속수무책으로 무력해. 그리고 도돌이표처럼 다시 '왜?'라는 문제에 부닥치게 되지.
아아.. 모르겠다. 이 문제는 더 생각을 해봐야 겠어. 삶에는 말해질 수 없는 것들이 무수하거늘 예술 또한 마찬가지겠지. 말해질 수 없는 것들 하니까 생각난 건데 요즘 뜨고 있는 '코드'란 단어는 별로야. 코드가 맞고 안맞고.. 하는 것. 이것 역시 잘 말해질 수 없는 것 중의 하나인데 '코드'라고 하면 굉장히 명료하고 단면적인 느낌이 들거든. 거기에는 '흐름'이 없어. 혹은 리듬. '코드의 일치'보다는 '쿵짝이 맞는다'가 더 적확하겠다 싶어.  

최재원 ▒

어차피 전쟁은 터졌다. 온갖 개잡동네에서 출전된 마구 사생아동지들이 비가오나 눈이오나 각축전을 벌이다가 그만 큰 연기에 휩싸여버리게 되었다. 폭탄이 떨어진 건지 세상이 변해서 심판이 온 건지 아무도 모른다.
그 연기가 짝 가시고, 거기 서 있는 놈들이 있을 것이다. 그 놈들이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커피를 마시며 겨울의 빛들을 바라보며 음악도 낮추고 한국의 사진판에 관해 얘기를 나누다.
쓰다

 X  2003/11/08   
sia ▒

... -_-a

 X  2003/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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