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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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2006-12-04 03:05:07, Hit : 671)
전시 12.4
이정진 사진전

갤러리 하나(02-395-2110)
2006-11-24 ~ 2007-01-23

이정진展 - 한국을 대표하는 사진가 “ On Road, Ocean, Thing ˝ 을 보여주는 전시

첫번째 전시는 한국을 대표하는 사진가 이정진의 작품을 보여주는 기획전이다. 국내에서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이정진은 1989년 뉴욕을 필두로 샌프란시스코, 산타페, 시카고 등 미국의 각 지역의 유수한 갤러리에서 25회가 넘는 개인전을 하였으며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휘트니 미술관, L.A. 카운티 미술관, 휴스턴 근대 미술관, 뉴 올리언즈 미술관, 뉴 멕시코 근대 미술관, 포틀랜드 근대미술관, 파리 FNAC 등 해외의 유명 미술관과 국립 현대미술관, 서울 시립미술관을 비롯해 많은 국내 미술관등에서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국내외 유명한 미술관들이 작품을 소장하고 예술적 가치를 인정하고 있는 이유는 작품의 형식이 낯선 장소인 한지위에 인화를 하고 익숙한 사물과의 소통을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가 이정진은 주변의 흰 여백과 함께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담아 한지에 아름다움을 표현

100호가 넘는 커다란 화면에 그림자 없이 확대된 그녀의 오브제들은 주변의 흰 여백과 함께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그녀의 작업은 사진을 바탕으로 하지만 한지에 표현된 질감이나 결과물은 회화나 드로잉에 가깝고 작품을 통해 표현되는 그녀의 은유는 한편의 시에 가깝다.

이정진의 사진 `Thing`, `On Road`, `Ocean` 에 나오는 일상적 사물, 풍경들은 그 사물의 배경으로부터 떼어내진 공간 안에서 신비롭게 재현하고 있다. 한지 안으로 녹아 버린 듯한 사물, 풍경들의 독립적인 형상들은 적막한 고요를 발산해 내고 있다. 사진들은 작가 본인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어떤 ˝마음의 본질˝. ˝생각을 지우는˝ 것에 대한 작업들이라고 이정진은 말한다. 이러한 이정진의 작품을 “갤러리 하나”에서 만나 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아트마켓에서 컬렉터들에게 다각적인 서비스 진행으로 현대사진의 흐름을 보여줄 계획

글로벌 아트마켓에서 기존의 무거운 회화를 주로 구입하던 컬렉터들은 현대식 건축물에 어울리는 현대 예술의 사진 작품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이에 발맞춰 이정진展은 은행고객, 컬렉터들에게 보다 가까이 문화를 접할 수 있도록 보다 부가적이고 차별화 된 고객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번 전시는 사진 예술품 투자에 관한 특강, 작가와의 대화, 아트 컨설팅 등 전문적이고 다각적인 서비스로 고객들에게 아트마켓에 대한 이해를 도우며 전문가적 시선으로 작품 컬렉션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디지털 액자에 전시작품 이외의 다양한 이정진 작품들을 편집하여 고객들에게 볼거리 제공(sk 텔레콤)
-11월 24일 오후 2시 오프닝 리셉션과 함께 작가와의 대화를 진행
-아트재테크 강좌와 사진 전문가가 은행의 전시장 내에서 일정시간을 정하고(월, 금요일 오후 2:00~4:30) 사전 예약시 원하는 시간에 1:1로 작품 설명과 더불어 아트 컨설팅을 함께 진행 (작품가격 400~150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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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조각 : 실재의 미학

노주환 조각展

2006_1201 ▶ 2006_1214



노주환_꽃_활자_20×40cm_2006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갤러리 쿤스트독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6_1201_금요일_06:00pm




갤러리 쿤스트독, 미술연구소
서울 종로구 창성동 122-9
Tel. 02_722_8897
www.kunstdoc.com






노주환의 단어조각(word sculpture): 실재의 미학(Aesthetics of the Real) ● 작가 노주환은 언어와 조각이 만나는 지점을 집요하게 추적한다. 조각의 가능성에서 출발한 그의 노정은 건축과 영상 그리고 활자이미지에 담기며 확장된다. 그의 조각과 언어에 대한 끈질긴 추진력이 지금에 와서는 단어조각(world sculpture)이라는 신조어가 탄생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 단어조각은 현대미술문맥을 꼼꼼하고 철저하게 분석하여 얻어진 것으로 언어가 시각예술에서 하나의 작품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시작된다. 1969년 최초로 베니스에서 언어를 테마로 하는 전시가 개최되어 언어는 미술작품의 주요한 테마로 등장하게 되었고, 현재는 세계 여러 곳에 박물관에 소장되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 단어조각이 함께 한다는 것에는 이의가 없을 것이다. ● 노주환의 단어조각은 반(反)서사적이다. 평면과 입체의 경계를 넘나들고 건축과 조각의 간극을 왕래하는 그의 조각에는 현대미술과 한글 조각(Hangul Sculpture)이 어떠한 방식으로 만나는지에 대한 작가의 고민이 반영된다. 무거운 납으로 만들어진 활자체들은 육중한 건물들의 무리를 형성하고 서울시의 지도를 만들어낸다. 단어가 가지는 시각적 요소 그 자체가 작품의 핵심요소가 되고 있으며, 그로 인해 평면과 입체의 경계가 모호해진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은 반서사적이다. 이러한 반서사성을 통하여 한국미술과 현대미술, 전통과 현대, 형태조각과 단어입체는 상호 작용한다. 또한 활판인쇄술의 방식을 따라 배열된 그의 활자들은 좌측에서 우측으로, 위에서 아래로 글을 읽는 우리의 관습을 뒤집는다. 이렇게 활자를 차용한 그의 글자들은 본연의 형태를 띠면서도 정상적인 언어의 기능을 상실하고 있다는 점에서 순수한 시각적 요소들로 환원된다. 한편 그의 작품에서 서울시를 구성하는 건축물들은 읽을 수도 있으며 만질 수도 있는 대상이 되며, 이러한 맥락에서 건물의 실제적 기능 또한 상실된다. 종로구에 있는 건물들이 다양한 높이와 형태로 시민들의 눈을 자극하는 만큼이나, 그의 작품의 기본단위가 되고 있는 활자들이 가진 부드러움과 날카로움, 딱딱하고 은은함, 차가움과 유연함, 오목과 볼록의 느낌에서도 우리는 입체의 환영을 보게 된다. 이렇게 압도적인 미적경험 속에 있는 관객은 노주환의 작품이 시각적인지 촉각적인지, 건축인지 조각인지, 입체인지 평면인지, 아니면 사물인지 예술작품인지를 판단할 수 없게 된다.




노주환_다라니_활자_6.5×20cm×9_2004



노주환_지혜의 기둥_활자_400×22×22cm_2006


이번 쿤스트독KunstDoc에서 전시되는 노주환의 단어조각 특징으로 다음 두 가지를 지적할 수 있다. 첫째, 인쇄글자와 입체성: 글자의 형태가 단어의 의미를 담고는 있지만 나열방식과 배치방식으로 인하여 의미의 구조가 파편화 되며 문장해석이 불가능해진다. 단어의 알레고리가 시각세계의 약호가 된다. 글자는 읽을 수 있는 동시에 관찰 가능한 대상이 되며 단어는 기호가 되고 기호는 작품을 지시한다. 결국 활자와 단어의 내용으로부터 자유로워진 미적 감상의 주체는 다양한 상상의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현대미술문맥에서 구리, 동, 철, 돌, 종이로 제작된 책 조각(Book Sculpture)이 등장하여 출판된 책의 시간적인 구조와 기능에 대하여 의문을 던졌다면, 이번에 선 보일 노주환의 책 작품은 평면에서는 촉각의 세계가 드러나고 입체는 책의 형태에서 읽혀져 차이가 있다. 책의 기능은 가지고 있지만 일회성이라는 예술의 특징을 살려낸 북아트(Book-Art) 그리고 인공적인 방식으로만 제작 가능한 대형 돌 조각, 나아가서는 사진의 이미지가 텍스트와 조합하여 생성된 텍스트사진이나 혹은 평면성에 단어가 삽입된 70-90년도의 네러티브적인 작품과는 사뭇 다르다. 둘째, 인쇄글자와 건축: 노주환의 기둥조각은 육중한 무게감에 비하여 세밀한 관찰을 요구한다. 그의 작품은 고대 로마시대에 제작된 돌기둥(Column of Trajan, A.D. 106-13)이나 혹은 프랑스 스트라스부르그의 고딕성당에 세워진 조각 기둥을 연상시키지만, 과거의 작품들이 신화와 성서의 내용을 각인하여 내러티브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노주환의 작품에서 단어는 약호화 되며 건축이 조각의 영역에 수렴된 결과 그 반서사성이 강조된다. 한국과 서양이 기둥이라는 형태에서는 맥을 같이 하지만, 이야기 전달의 지시체가 건축적인 요소로 번역되어 내용의 시작과 끝이 사라져 건축형태의 표면으로 스며든다. 건축가가 바라본 서울시와 조각가가 해석한 시울시의 지도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다르게 말하면 유기적인 서울시가 조각으로 번역되어 부분과 전체의 관계가 비유기적인 관계로 변하여 단지 지정학적인 측면에서만 상호간 서로 만날 뿐이다. 관찰자의 도보를 유도한 칼 앙드레와 대지를 조형적인 언어로 번역한 대지미술, 도시공간을 재해석한 수많은 현대작품들과 노주환 작품의 차이는 바로 건축의 약호화에서 비롯되는 비유기성에 있다. 바닥에 촘촘히 수놓은 입체언어는 서울시의 건축과 지형을 그려낸다. 이렇듯 사각의 공간에서 단어의 의미론은 형상으로 나타난다. 여기에 보는 즐거움과 찾아가는 행보가 함께 한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가 아닌가 한다.




노주환_한강의 지혜_활자_가변크기_2003



노주환_활자도시-서울_활자_80×160cm_2003



노주환_활자들의 노래_활자_210×120cm_2005


노주환의 실재의 미학은 우리에게 두 가지 과제를 던져준다. 하나는 단어와 조각이 조우하여 생겨난 작품의 존재방식을 인식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관객이 그 존재방식의 정당성이 어디까지 가능한지에 대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과제이다. 따라서 관객은 수많은 상상력을 유발하여 스스로 작품의 범위를 찾아야 하고, 그 범위에서 한국현대미술과 서양미술이 서로 융합하는 지점을 탐구하여야 한다. 단어조각은 비유기적인 특성으로 유기적인 작품과는 다르게 미적경험의 세계를 반영하고 있다. 바로 여기에서 관객은 형태와 단어조각을 해석할 수 있는 실마리를 발견하게 된다. 이렇듯 노주환의 단어조각은 관객에게 ‘실재’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할뿐만 아니라 관객에게 가깝게 다가가고 있다. 시각과 촉각 그리고 사유가 함께하는 실재의 미학이 이제는 국제무대에서 확인되는 길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 김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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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眩 · 미迷 · 경景』- 길이 보전하세

안수영 사진展

2006_1206 ▶ 2006_1212



안수영_소양강 처녀의 탄생_디지털 프린트_50×60″_2006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학고재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6_1206_수요일_06:00pm




학고재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0-5번지
Tel. 02_739_4937
www.hakgojae.com






안수영의 행적 ● 바로 몇 해 전의 작업에서 작가는 시골 사진관들을 촬영했다. 그는 문자 그대로 “촌스러운” 그 사진관 입구는 너무 다른 요소들이 뒤섞여 있어 예컨대 보통의 교양 있는 도시인이라면 당혹해 할만한 그 건물의 정면을 제시했다. 정면에서 바라본 사진관은 그 건물의 얼굴이자 또 그 유리창에 진열된 초상사진이라는 얼굴을 동시에 보여주었다. 그 곁에서 목판의 붓글씨와 창과 벽에 붙인 필름을 오려내어 붙인 글씨는 해묵은 전통이 오늘의 거칠고 야한 감각과 기묘하게 어울리는 장면을 연출하였다. 대형 판, 원색사진으로 찍힌 그 장면에서는 특히 어린이의 포즈와 복장이 눈에 띠였다. 기념사진을 위해 포즈를 취한 아이들은 미래의 상징이지만, 대체로 한복차림이었다. 이렇게 어른들은 다음 세대에게 미래를 맡기면서도 그들에게 여전히 과거의 전통을 잊지 말라고 당부했다. 여기에는 물론 사진관사진사의 무심한 관행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꼬까옷”이나 “때때옷”이나 “동궁”의 복장을 아이들에게 입히면서, 구세대는 신세대에게 곧 자신이 물려받은 전통적 가치를 이어갈 수호성자가 되기를 염원하는 것일는지 모른다. 이는 결국 아이의 명절이나 생일을 핑계로 기존의 가치를 재확인하고, 부모 자신을 기념하려는 또다른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사진관들은 쨍쨍하고 강렬한 볕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아무튼 진열장에서 햇빛에 노출되어 빛이 바랜 원색사진이 보여주듯이, 사진관사진사의 직사광선을 무시하는 야만성에 다시 한 번 놀라게 된다. 사진이 빛에 극도로 예민하다는 것을 모르지 않을 사람이 어떻게 그토록 변질되기 쉬운 뜨거운 온실 같은 진열창에 사진을 내놓을 수 있을까? 자신의 사진을 그렇게 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똑같은 사람이 촬영한 사진을 두고서도 어떤 것은 작품으로 암상자 속에 모셔두지만, 이 또한 자신의 작업의 결과인데도 상품이라고 간주하고서 완전히 백안시하는 이중적 태도야말로 대중문화를 언제나 저급하고 상스러운 것으로 만드는 중요한 요인일 것이다. 이런 사진들이 감상적인 추억을 환기시키고, 애틋한 지난날의 미소를 떠올리게 해준다 하더라도, 비전문적이며, 가장 아껴야 할 것을 가장 경시하는 태평한 사진사의 이와 같은 행태만큼 인상적인 것은 아니다.




안수영_다섯 개의 현수막_디지털 프린트_50×60″_2005



안수영_영덕 vs 울진_디지털 프린트_50×60″_2005


최근에도 작가는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주로 지방의 중소도시들이다. 도시라고는 하지만 행정구역의 편의상 그런 것이지, 사실상 농촌 지역이다. 그곳에 대도시의 요란한 구경거리가 있을 리 없다. 그러나 교차로나 마을 어귀는 그 어느 때보다도 활달하게 모습이 바뀌고 있다. 이미 사진이 기록하기도 전에, 마을 초입을 지키던 우람한 나무들이나, 조촐한 모정이나 평상 같은 것도 급속하게 사라져 버렸다. 이렇게 사라져 버리는 것은 전원 생활이나 향촌의 그윽한 정취를 생각하며 농촌을 찾는 사람의 머릿속에나 남아 있을 것이다. 더구나 작가가 그렇게 촬영하느라고 발길을 멈추었듯이, 그런 길이 걸어 다니는 사람을 위한 길인지도 의문이다. 거의 모든 농촌 마을에서도 이제 길은 우선 자동차를 위해 포장한 것이니까, 그냥 스쳐 지나버리는 자리가 되었다. ● 마을의 초입은 언제나 중요했다. 마을이 아니라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와 도시와 나라에서 그 첫발을 들여놓는 입구를 중시하는 태도는 어느 고장, 어느 문화권에서나 한결 같은 일이다. 사람들은 늘 정성을 기울여 꽃과 장대한 나무를 심고, 장승과 입석을 배치했다. 또 공덕비를 세워 마을의 면모와 체면과 위신을 잃지 않으려 했다. 거기에는 우리의 삶과 이상과 염원 같은 것들이 한데 녹아들어 있었다. 마을지킴이 같은 것이 아무리 소박하더라도, 그것들은 그 안쪽 깊은 곳에 모여 사는 사람들의 안전과 자부심을 지켜줄 수호신이었다. 어지간히 숭고한 함의를 지녔고 또 그곳을 찾는 사람의 발길을 잠시 멈추게 했던 과거의 당산나무와 입석을 제거한 자리에 이제는 현수막이 나붙고, 지방자치단체에서 제작한 조형물이 눈길을 끈다. 잠시 걸리게 될 현수막에서부터 상당 기간 지속될 조형물에 이르기까지, 작가는 급조되었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게, 이제 막 전국적으로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한 것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는 이런 것들을 사진으로 “길이 보존”해서 우리 농촌 사회의 현기증 나는 변화를 차분히 들여다보게 하려는 듯하다.




안수영_낚시터 물고기_디지털 프린트_50×60″_2006



안수영_...송이버섯_디지털 프린트_50×60″_2005


작가가 노트에서 고백하듯이, 그는 “그림 같은” 사진에는 관심이 없는 만큼, 이 사진 속에는 읽을거리가 많다. 사진을 보는 재미는 굳이 그 속의 이미지를 해석해야 하는 현학적인 놀이나 수고를 하지 않고서도, 즉시 알아볼 수 있는 그 손쉬운 직설법에 있을 것이다. 고개를 갸우뚱거리지 않고, 전문가의 해설을 따라서 그 도상을 풀이하면서 이해와 감상의 세계로 접어들고자 애써야 하는 그림의 간접화법과 다른, 명쾌하고 기분 좋은 직설법이다. 이를테면, 그림의 세계가 접속법이나 조건법 같은 표현으로 충만하다면, 사진의 세계는 감탄사와 의문사로 넘친다. 작가는 그 밝은 한낮의 광경처럼 자명하고 빤해 보이는 것을 주시하고 사진을 찍어 거기에 의문부호를 붙여본다. 우리는 이렇게 그가 한 번 잘 들여다보라고 보여준 사진 앞에서 그가 무엇을 의아해했는지 함께 짚어볼 수 있다. ● 농촌 사회의 변화는 위기일까 다행스런 전조일까? 그 얼굴의 이와 같은 변화와 그 표정의 이와 같은 관리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어째서 우리 농촌의 입구는 그토록 격심하게 다른 모습이 되었을까? 쟁기 끌던 황소가 없어진 자리에 주물이나 신소재로 빚은 그 이미지는 향촌에 대한 예찬에도 불구하고, 향촌에 대한 진정한 애정의 발로일까, 아니면 단지 한우의 맛을 선전하기 위한 안쓰러운 홍보물일까? 거창하게 수십 배 크기로 확대된 과일과 야채와 특산물은 그 마을 주민의 수확물에 대한 즐거운 익살과 해학의 표현일까, 아니면 필사적으로 생존해야 하기 때문에 시장 논리에 발을 맞추려고 황급히 준비한 방패요 가문(가문)일까? 농작물과 생필품이, 전설 속의 인물들이 가벼운 “하이 터치 디자인”을 거쳐 우상으로 다시 태어나 우리를 반기는 이 광경에서 우리는 우리네 삶이 이 새로운 세기초에 더욱 명랑하고 낙천적인 것이 되었다고 인정해야 할까? 알록달록 채색되고, 야한 페인트칠로 눈을 부시게 하고, 가장 감각적인 색조로서 마무리된 이 상품들이 우리 농가의 수입을 훌쩍 키워주고, 그렇게 해서 우리 농가의 생활을 더욱 윤택하고 행복하게 해줄 것을 기원하기만 하면 될까? ● 현수막을 보자. 탄생과 합격과 당선을 축하하고 격려하는 찬사는 그와 다른 더 큰 세력에 대해 격렬하게 성토하는 결사반대의 항의와 극단적으로 대조된다. 따스하게 햇살이 비치는 그 고요함이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로 폭력적이며 후끈한 함성이 플래카드에 실려 바람에 나부낀다. 이렇게 성취의 기쁨과 박탈의 억울함이 한 자리에서 터져 나온다. 지위의 획득이 알려주는 출세와, 경쟁에서의 승리에 대한 갈채와 또 여권신장에 위배되는 사고방식이 그 주민들의 지지를 얻고 찬양되고 있다. 자존심에 넘치고 배타적이며, 승승장구하는 것만을 찬미하는 플래카드 속의 언어만큼 파시스트의 언어도 없을 것이다.... 언어는 여기에서 대화의 수단이 아니다. 언어는 오직 나와 자신을 내세우기 위한, 그리고 타자에게 귀를 기울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일방적인 외침이다. 어쩌면 그 외침을 듣는 사람이 없어도 좋다는 태도일지 모른다. 그것은 극단적인 자기도취의 언어이다. 아무튼 마을 입구의 표정은 느긋하고 평화롭지 못하다. 그것은 고함을 지르려고 힘을 쓰고 핏대를 올리는 날카로운 모습이다. 그 입구에서부터 차분하고 정다운 이야기를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좋은 이야기이든 나쁜 이야기이든 눈에 띄게 함축된 거창한 발언이 우리를 기다린다. 우리의 일상과 그 감정이 이렇게 둔탁하고 난폭한 것이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되레 이상할 것이다. 이것들보다 더 공격적이고 야비한 어조의 광고판들은 우리의 낯을 간지럽힐 뿐이다. 거의 아무런 인물도, 인기척도 없이 텅 빈 광장과 거리를 촬영하면서, 작가는 사진관을 촬영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움직임이 없이 그 재현된 이미지가 반영하는 여러 가지 어법과 수사학을 주목하게 한다.




안수영_한우 복숭아_디지털 프린트_50×60″_2005



안수영_생활 속의 오랜 벗_디지털 프린트_50×60″_2002


거대한 황금빛 물고기 형상으로 둔갑한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널 때, 우리의 관광산업이 겨냥하는, 눈길을 끌기 위해 휘황하게 분장한 물고기가 우리의 눈앞을 유유히 지난다. 숭고하고 경이로운 자연을 그저 심심풀이나 볼거리로 분장시키는 이 분주한 사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관광을 통해서 자연만이 훼손되거나 그 신비함을 잃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향토가 우스꽝스런 가상의 체험관이나 놀이동산 같은 것으로 바뀌고 있다. 이렇게 우리를 안내하는 친절한 이미지 때문에 향토와 자연은 더욱 희극적인 장소가 되는 것은 아닐까? 향토 이미지의 개발은 그 땅에 집을 짓고 거대한 생산단지로 만들고자 가해지는 개발 못지 않게 파괴적이고 반자연적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구전을 통해서 전해지던 전설의 고향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각자의 상상 속에서 그 이미지의 날개를 펼 때 더욱 풍부하고 재미있게 생동하는 것이 아닐까? 어떤 전형과 상투형에 따라 빚어진 사물과 인물들이 이렇게 동구 밖까지 나와 우리를 영접할 때, 우리의 기대와 공상은 그 마을 속으로 들어서기도 전에 벌써 바람이 빠지고 시큰둥해지는 것은 아닐까? 구전되는 것을 눈에 보이는 것으로 만드는 것은 구전의 생명력을 떨어뜨리는 것은 아닐까? 오래 된 가옥과 절과 공공 건물에서 그 현판에 새겨진 글자를 음미하면서 한 시대와 한 지역의 풍취를 되새겨보는 대신, 이런 이야기를 눈에 보이는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이 기이한 조급증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각박해진 인심과, 해체되는 공동체와, 잃어버린 풍속의 자리를 대신 채우자면 이렇게 요란하고 안심해도 좋을 정도로 눈앞에 확신을 주는 우상들이 필요하다는 말일까? 오직 눈에 보이지 않는 것으로서만 고유한 가치를 지니는 것을 외면하고서, 오직 눈에 띄는 구경거리 속에서만 확증을 얻고 싶어하는 이러한 조형물의 과잉과 과장은 여론과 인기와 대중매체처럼 왕왕 대고, 과시하고 시위하는, 크고 많은 것에만 가치를 두고 싶어하는 우리네 민심의 반영일 것이다. 소박하고 조촐하며, 작지만 진솔하고, 나직하지만 진지한 것에 대한 사랑은 이제 정녕 되찾기 힘든 일일까? ● 사진관 앞에서나, 마을 어귀에서나 작가는 환하게 드러난 우리 이미지 문화의 현주소를 점검하는 일종의 통제사 같은 임무를 수행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악몽까지는 아니더라도 백일몽처럼 빨리 깨어나고 싶고, 스쳐 지나도록 내버려두고 싶은 그 장면을 그는 사진 속에 “길이 보전”함으로써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새로운 이미지 숭배의 한 연대기를 쓰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 정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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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ettlement

김보민 회화展

2006_1206 ▶ 2006_1224



김보민_독립문_모시에 수묵담채, 테이프_68×210cm_2006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두아트 갤러리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6_1206_수요일_06:00pm




두아트 갤러리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5번지
Tel. 02_738_2522
www.doart.co.kr






실력 있는 젊은 작가들의 전시를 꾸준히 기획하고 있는 두아트 갤러리에서는 올해의 마지막 전시로 김보민의 첫 개인전을 선보입니다. 전통적인 세필로 그린 산수 배경에 라인테이프를 이용한 현대적인 풍경을 덧붙인 동양화를 선보이는 김보민은 2005년 중앙미술대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하고, 인사미술공간의 〈열〉전, 2006년 대안공간 풀의 〈새로운 시각〉 등 여러 그룹전에 참여하면서 차세대 동양화 작가로 알려졌습니다. 이번 전시는 그의 첫 개인전이면서도 그 동안 보여온 작업 방식에 변화를 시도한 신작들을 소개하는 기회로서 의미가 큽니다. ● 김보민의 작업은 기본적으로 동양화 방식을 따르지만 모시 위에 라인테이프를 붙여 형상을 만들어 가는 방법이 이색적입니다. 긴 가로 포맷의 화면을 사용하는 것은 작품의 물리적인 크기를 결정할 뿐만 아니라, 동양화에서 수평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을 구현하는 장치입니다. 그가 즐겨 그리는 한강과 건물들이 늘어선 서울 풍경은 긴 화면에서 보여주기에 적절한 소재였습니다. 종이와 모시를 캔버스용 나무틀에 먼저 배접하는데, 채색을 한 종이를 모시 밑에 깔아 그 색이 모시 위로 서서히 스며 올라오면서 특유의 은근한 빛깔이 배경에 감돌게 합니다. 그리고 라인 테이프로 선을 표현하고 세필로 나무, 동물, 사람 등의 형상을 먹과 채색으로 그립니다.




김보민_공원_모시에 수묵담채, 테이프_55×200cm_2006



김보민_이주단지_모시에 수묵담채, 테이프_55×190cm_2006


김보민의 작품은 라인테이프와 채색, 무채색과 유채색, 직선과 곡선, 붙이기와 그리기, 현재 서울의 풍경과 과거 명화 속의 풍경 등, 서로 대비되는 요소들이 부각되어 있습니다. 검은 라인테이프가 만들어 내는 곧은 선들로 이루어진 현대 풍경과 수묵담채의 부드러운 선으로 그려진 과거 풍경이 빚어내는 충돌은 작품 속에 에너지로 작용합니다. 이 때, 〈몽유도원도〉나 〈고사관수도〉와 같은 고전 명화의 차용은 작가의 그림 속에서 또 하나의 그림으로 작용하는데, 특히 겸재 정선의 작품들은 김보민의 작품 속에서 매우 적극적으로 차용되어 정선이 그린 조선 후기의 서울 풍경과 김보민이 그린 현재의 서울 풍경이 서로 뒤섞여 제 3의 풍경을 창출합니다. ● 신작에서는 라인테이프로 처리한 현재와 수묵담채의 세필로 처리한 과거 사이의 간격이 더 벌어져 있습니다. 한강 위에 떠다니는 옛 나룻배, 혹은 우뚝 서있는 아파트들을 잡아먹기라도 하듯 강변으로 쏟아져 나온 과거의 산기슭이 신작에서는 보이지 않습니다. 이제 과거는 화면 안에서 간단한 모티브나 자취로만 남아 있습니다. 과거로 대변되던 자연의 모습은 관상용 분재나 화분으로, 혹은 길가의 작은 화단으로만 남아있을 뿐입니다. 대신 라인테이프로 처리한 사실적이고 보다 복잡해진 현재의 풍경은 화면의 중심에 크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마치 볼록렌즈로 들여다 본 듯 전면으로 튀어나와 있는 유선형의 건물들과 고가도로 및 육교, 화면 깊이 안쪽으로 파고드는 도로와 집들 사이로 구비구비 이어지는 골목길의 극단적인 원근감은 역동적인 화면을 연출합니다.




김보민_고양이_모시에 수묵담채,테이프_45×110cm_2006



김보민_정류소_모시에 수묵담채,테이프_22×180cm_2006



김보민_주방_모시에 수묵담채, 테이프_50×180cm_2006


한편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실내풍경은 입체감과 깊이감을 적극적으로 보여주는 실외풍경에 비해서 정적이고 평면적이지만, 옛날 책거리 그림처럼 의도적으로 사물의 측면이 보이도록 배치한 점과 문과 서랍들을 열어 놓아 그 안의 모습까지 표현하여 재미와 공간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집안 내부의 가구와 물건들이 거의 일렬로 배치되고, 하나같이 비스듬히 측면으로 놓여있고, 문과 창문, 서랍들이 모두 열려있는 공간은 다소 비현실적인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 김보민은 라인테이프와 수묵담채로 표현되는 현재와 과거가 공존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세상을 보려고 합니다. 변화를 거듭하는 김보민의 첫 개인전을 통해 그의 앞으로의 가능성을 발견해 보시기 바랍니다. ■ 두아트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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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워요

더 잭 사진·애니매이션展

2006_1201 ▶ 2006_1228



더 잭_가난 sisters와 Loser Jack_디지털 프린트_50×75cm_2006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더잭 블로그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6_1201_금요일_05:00pm




스페이스 바바
서울 강남구 신사동 514-1 5층(포토피아 5층)
Tel. 02_3442_0096
spacevava.net






헬로, 더 잭! ● 더 잭의 탄생설화를 비롯해 선사시대부터 고대를 지나 현대에 이르기까지 애꾸눈 토끼인간의 모험은 지속되었다. 황당무계한 우주인과의 조우와 피실험자로서의 피학적 여행의 흥미진진함과 어처구니없는 에피소드들. 올해 더 잭은 참으로 많은 전시와 퍼포먼스에 참여하여 이제는 만화가, 캐릭터로서의 더 잭보다 미술계의 더 잭으로 거듭난 시기였다. 광주에서 만났을 때 또 부산비엔날레에서 더 잭은 미술계에 말없이 개입하는 퍼포먼스를 통해 정체불명의 사건을 만들어 갔다(10월호 아트인 컬쳐誌를 보시라). 많은 이들이 궁금해 하는 동안 더 잭은 점차 무의미와 의미 사이를 스스로 교차편집하며 왕복하는 퍼포먼스를 지속하고 있다.




더 잭_굴욕 Loser Jack_디지털 프린트_50×75cm_2006


더 잭과 나의 조우는 웹 또는 넷미디어아티스트로 활약하는 양아치를 통해서이다. 두 양아치의 의기투합에 내가 옵저버로 참가하여 멀리서 바라보던 더 잭의 에피소드를 좀 더 근접관찰할 기회가 되었고 이를 계기로 헤이리의 기획전에서 공동 작업할 사건을 만들기도 하였다. 여하튼 더 잭과의 만남이 내게는 소위 캐릭터작업과 퍼포먼스가 결합한 형식에 대해 생각하게 하였다.




더 잭_방랑자 Loser Jack2_디지털 프린트_50×75cm_2006


90년대 중반부터 점차 우리 미술계에 나타나기 시작한 캐릭터이미지는 2000년을 전후로하여 20, 30대의 젊은 화가와 만화가들이 특정의 창작 캐릭터를 중심으로 회전하며 씨리즈물들을 만들어낸다. 이동기의 「아토마우스」, 권기수의 「동구리」, 전민수의 「아무」, 이기섭의 「마우미마음」등과 일본의 경우 나라 요시토모(Yoshitomo Nara)의 <라모나>, 무라카미 다카시(Takashi Murakami)의 만화캐릭터 등 만화와 애니메이션과 대중시각문화에서 자연스럽게 성장하였다.




더 잭_cubic The Jack_혼합재료_29.7×21.4cm_2006


더 잭은 하얀 아저씨 속살이 드러나 흰 내의 차림에 청바지 복장을 하고 보따리를 둘러 맨, 어찌보면 산업예비군이나 한여름 할 일 없이 서성이는 동네 양아치 복색이다. 그러니까 사회의 어디에도 정식으로 소속되지 않은 참 많은 시간을 소유한 자로 보인다. 대체로 한가한 사람들은 성적 환타지 즉 이성애에 빠지기 십상이나 더 잭은 그만 현대미술이라는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과 마주한 모험에 뛰어들었다. 그러기를 몇 년 현대미술은 참으로 그 폭이 넓어 더 잭의 생뚱맞은 퍼포먼스와 미장쉔 마저 품어주는 형국으로 비쳐졌다. 이제 더 잭은 한 장르의 즐거운 캐릭터에서 다장르가 혼재하는 현대미술의 캐릭터로 진화하려 하고 있다. 더 잭을 비롯해 많은 젊은 시각미술가들이 인터넷문화라는 이미지 또는 문맥의 백과사전을 공유하면서 끊임없는 상호참조의 예들을 제공하면서, 다양한 캐릭터이미지의 나선적 진화進化를 보여준다. 현대미술에 나타나는 캐릭터들은 지적이거나 도덕적이지 않다. 대체로 비윤리적, 비규범적, 비현실적, 문화비판적, 냉소적, 내성적, 자기성찰적 혹은 무뢰한적 특징들을 보여주기도 한다. 비도덕적인 면이나 감성적인 면이 강조되고 보다 팝(POP)적이고 탈모던적 의미를 지니며, 또한 '슈퍼맨'과 같은 모던한 히어로와는 다른 반영웅의 문맥에 서있거나 더 나아가 반미학적이기까지 하다. 이러한 문맥에서 더 잭의 캐릭터 씨리즈를 바라보게 된다.




더 잭_Loser Jack과 애완견SAMSUNG1_디지털 프린트_75×50cm_2006


다른 한편으로 더 잭의 퍼포먼스는 고승욱, 조습, 강영민, 낸시랭, 문성원, 장우석 등 아주 왕성한 창의력과 생산력의 젊은 퍼포머와 퍼포먼스 기획자들의 보다 개방된 퍼모먼스 담론과 형식에 대한 논의와 더불어 지속적으로 생산되었다. 이는 더 잭의 작업을 이해하는 과정에 한국의 현대미술의 풍경에서 가장 전복적이며 가장 상상적이며 생산적인 논의와 비전을 제공할 영역으로 퍼포먼스가 주목받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게 한다.




더 잭_Loser Jack과 SAMSUNG_디지털 프린트_50×75cm_2006


우리는 이렇게 현대미술의 여러 지점들이 교차하는 곳에서 더 잭의 작업을 대한다. 더 잭은 매우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던 캐릭터의 요소와 씨리즈적 특징과 함께 개성적인 퍼포먼스의 결합으로 대중문화시대의 예술이 어떻게 후기모더니즘 미적 태도를 견지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를 제시한다고 하겠다. ■ 김노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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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를루프 정원

장 뒤뷔페 회고展

2006_1110 ▶ 2007_0128



장 뒤뷔페_모자를 써 보는 여인_캔버스에 유채_73×60cm_1943
ⓒ Jean Dubuffet / ADAGP, Paris - SACK, Seoul, 2006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미술관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6_1109_목요일_05:00pm

주최_국립현대미술관, MBC
협력_파리 뒤뷔페 재단, 프랑스 대사관
협찬_ 르노삼성자동차, 농협중앙회, 크레디 아그리콜, 대한항공
주요 소장처_ 파리 뒤뷔페 재단, 퐁피두센터, 파리장식미술관, 도요타시 미술관 등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미술관 전관
서울 중구 정동 5-1
Tel. 02_779_5310
www.moca.go.kr/Modern/modern1/deoksugung/index.html






한불 수교 120주년을 기념한 다양한 행사들이 한국과 프랑스에서 각각 열리고 있다. 한국 문화를 알리는 사인물이 현재 파리의 지하철을 장식하고 있다면, 한국에서도 지금 프랑스에서 온 미술작품들로 넘쳐나고 있다. ● 그 중에서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리는 『장 뒤뷔페(Jean Dubuffet, 1901-1985)』의 대규모 회고전은, 어떤 점에서 올해 한불 수교 120주년의 가장 의미 있는 하이라이트가 될 만하다. 그 ‘의미’라면 무엇보다, 뒤뷔페가 프랑스에서는 가장 사랑받는 소위 ‘국민작가’로 프랑스 미술 교과서의 등장 순위 1위를 놓치지 않고 있는 작가라면, 한국에서 뒤뷔페는 대중적으로 거의 잘 알려져 있지 않다는 사실에 있다. 이왕 자국 문화를 알리고자 한다면, 상대방이 모르는 자신의 가장 자랑할만한 작가를 내세우는 것이 좋지 않을까! ● 이렇게 해서 주한 프랑스 대사관이 적극 후원하고, 한국 국립현대미술관과 파리 뒤뷔페 재단의 긴밀한 협력 하에, 약 1년 반의 준비과정을 거쳐, 3개국 16개 소장처의 작품 235점으로 구성된 장 뒤뷔페의 대규모 회고전이, 한국 서울의 가장 아름다운 미술관 중 하나인 덕수궁미술관을 가득 메우게 된다. 총 3대의 비행기에 나누어 무려 70개의 운송 크레이트에 보관되어 운반된, 작품 가액 수백억에 달하는 작품의 출품은 덕수궁미술관의 전시 역사에 있어서도 가장 대규모의 예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장 뒤뷔페_데스누두스_캔버스에 유채_60×73cm_1945
ⓒ Jean Dubuffet / ADAGP, Paris - SACK, Seoul, 2006


장 뒤뷔페, 그는 1901년 프랑스 남부 아브르에서 태어나 1919년 파리의 아카데미 줄리앙에서 단 6개월을 수학한 것이 정규 미술교육의 전부였다. 아카데믹한 교육에서는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선언한 그는, 1942년 41세의 나이까지 가업을 이어 포도주 상인으로 반평생을 살았다. 그리고는 불현듯 그의 문학, 미술, 음악 등 다양한 분야의 재능을 결국 ‘미술’로 귀결시키기로 마음먹었고, 이후 그는 1985년 84세의 나이로 죽기 전까지 수천 점의 작품을 쉼 없이 그려냈다. ● 처음부터 어떠한 전통적인 관습과 규준도 거부했던 그에게는 더 이상 반드시 따라야 할 미술사적 전통도, 문화계의 관습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의 관심은, 서구 문명이 너무나 맹목적으로 좇던 가치에 의문을 표하고, 반대로 너무나 오랫동안 무시되어왔던 것들의 가치를 회복하는 일이었다. 서구 문명의 끝자락에 서서 그는, "이성과 논리의 불완전함을 깨닫고", "본능, 열정, 변덕, 격렬함, 광기"의 가치를 존중하는 예술을 지향했다. 그를 감동시켜 화가의 길을 가게 한 것은 결코 조화로운 균형잡힌 그리스 조각이 아니라 어린 아이의 서툰 그림이나 정신병자의 솔직한 그림들이었다. 규준에 맞추어져 아름답다고 믿는 것보다, 우리와 항상 함께 하는 쓰레기와 때, 찌꺼기 같은 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에서 오히려 삶과 예술의 진실을 발견하는 것이 그의 목표다. "사상이란 이성과 논리의 과정과 접촉했을 때는 물로 변화하고 마는 증기와도 같다"고 믿었던 뒤뷔페는 "단지 즐거움을 위해 스펙터클을 만들고 축제를 벌이는" 광대와도 같이 작업하며 한평생을 살았고, 1985년 84세의 나이에 생을 마감할 때까지 수많은 작품을 제작하여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 이를 남겼다. ● "문화적 예술보다 더 좋은 원초적 예술(Art Brut)"을 주창했고, 비록 스스로는 어떠한 카테고리에도 묶이기를 원하지 않았지만, 많은 한국, 일본의 작가들에게 ‘앵포르멜(Informel, '비정형'을 의미함)의 선구자로 칭송되었으며, 2차 대전 이후 현대 미술의 기능과 진로에 결정적인 이정표를 제시한 세계적 작가 장 뒤뷔페, 이번 전시는 그의 진면목을 맛볼 수 있는 다시 없는 기회가 될 것이다.




장 뒤뷔페_작은 정원사_캔버스에 유채_73×92cm_1955
ⓒ Jean Dubuffet / ADAGP, Paris - SACK, Seoul, 2006


이번 전시는 1919년-1984년까지 뒤뷔페의 전 시기 작품을 모두 조망할 수 있도록 회고전 형식으로 구성되었다. 어떠한 카테고리에도 묶이기를 원하지 않았던 만큼 뒤뷔페는 언제나 자신의 양식을 스스로 변화시켜 나갔고, 늘 스스로를 ‘새로운 세계’로 이끌어갔다. 한편, 엄청난 분량의 원고를 남긴 문학가, 사상가로서의 뒤뷔페를 부각하기 위해, 도록에 뒤뷔페의 중요 원고를 선별 발췌하여 한국어로 번역 출간하였으며, 아스거 요른과 함께 음반을 낼만큼 열정적이었던 음악적 재능을 보여주기 위해 미술관 한켠에 그의 음반을 감상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했다. 이 전시는 문학가, 사상가, 음악가, 미술가, 무엇보다 너무나도 유쾌하게 인생을 즐겼던 한 사내의 여러 다양한 측면을 모두 보여주기 위해 고심했다. 전시는 크게는 시기별로 다음과 같이 구성되었다. 바닥 예찬-1951∼1960 ● 1950년대 뒤뷔페는 파리를 떠나 프랑스 남부의 방스 지역으로 작업실을 옮겨간다. 도시의 인물들을 그리기보다, 이제 주변의 기이한 자연물, 광물 심지어 오물까지도 등이 만들어내는 재료 자체의 직접적인 표현에 관심을 두기 시작하면서, 그의 작품은 다시 한번 변화를 맞게 된다. 작가의 손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대신 물질 자체가 만들어내는 효과를 최대한 온전히 드러내기 위해, 그의 작품은 '지형학', '재질학', '재료학'의 과정을 통과하며 전개된다. '불확실한 것', '흔들리는 것들을 그대로 남겨 둔 채' 생명의 존재, 뇌의 풍경, 우주적 원리를 환기시키는 그의 이 시기 작품은, 20세기 미술사에 있어 뒤뷔페의 가장 빛나는 업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장 뒤뷔페_우를루프 정원_캔버스에 비닐물감_130×97cm_1966
ⓒ Jean Dubuffet / ADAGP, Paris - SACK, Seoul, 2006



장 뒤뷔페_앉아있는 남자가 있는 풍경_캔버스에 비닐물감_140×178cm_1974
ⓒ Jean Dubuffet / ADAGP, Paris - SACK, Seoul, 2006



장 뒤뷔페_잡담하는 사람 II_폴리우레탄 수지에 에폭시페인트_85×114×85cm_1969-70
ⓒ Jean Dubuffet / ADAGP, Paris - SACK, Seoul, 2006


우를루프-1961∼1974 ● 1961년 뒤뷔페는 방스에서 파리로 돌아와 또다시 도시의 소음, 활력, 북적거림, 부질없음으로 복귀한다. 소위 '파리의 서커스'라 불리는 이 시기의 연작(1961-1962)에서부터 시작하여, 제 3 전시실은 이후 뒤뷔페의 가장 유명한 연작이 된 '우를루프(1962-1974)' 작품들로 가득 차 있다. '우를루프(L'Hourloupe)'는 프랑스어로 '소리지르다(hurler), 새가 지저귀다(hululer), 늑대(loup), 곱슬머리 리케(Riquet a la Houppe), 혹은 정신적 방황을 그린 모파상의 소설 오를라(Le Horla)' 등을 연상시키지만, 사실 어떠한 규정된 의미도 가지지 않는, 뒤뷔페가 지어낸 단어이다. 그는 자신이 창안한 우를루프의 세계 안에 집과 사람, 탁자와 의자, 침대와 가재도구들을 꼼꼼하게 챙겨 넣는다. 그리고는 우리의 세계와 나란히 가고 있는지도 모르는 '새로운 세계'에 대해 불현듯 깨닫게 하고, 그럼으로써 우리를 낯선 인식과 뜻밖의 시각적 경험으로 문득 인도한다.




장 뒤뷔페_과도기적 상황_종이에 아크릴, 캔버스에 부착_185×249cm_1978
ⓒ Jean Dubuffet / ADAGP, Paris - SACK, Seoul, 2006


뒤뷔페의 마지막 날들-1975∼1984 ● 1975년, 뒤뷔페는 12년간 지속되었던 '우를루프'의 세계에서 갑자기 미끄러져 나온다. 70, 80대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는 끊임없이 새로운 작업들을 시도하며, 「사교계」, 「파라쉬프르」, 「기억의 극장」 연작, 「심리적 장소(시코-시트)」 연작 등을 통해 예술 표현의 가능성을 계속해서 열어간다. 마지막 날들에 이르러 뒤뷔페는 「미르(Mire)」 연작, 「무공간(Non-lieux)」 연작 등을 제작하면서,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 그의 말대로 '제 2의 실재'를 찾아 경계 없는 여정을 떠난다. 더 이상 구상과 추상, 대상과 공간, 사물과 사람, 물질과 정신의 구분은 그 의미를 상실한다. 대신 뒤뷔페는 그의 말년의 작품을 통해 극도의 자유로운 사유와 무한히 가능할 창안의 세계에로 흘러 들어간다. ● 왜 ‘우를루프 정원’인가? 전시의 부제인‘우를루프 정원’은 뒤뷔페의 연작 중 가장 오랫동안 지속되고 대중적으로 사랑받았던 ‘우를루프(L'hourloupe)’연작(1962-74)의 작품 제목 중 하나이다. ‘우를루프’는 뒤뷔페가 직접 창안한 단어로, 불어 어감으로는 뭔가 환상적이면서도 어쩐지 그로데스크한 분위기의 대상이나 인물을 연상시킨다고 한다. 뒤뷔페는 스스로 만든 이 ‘우를루프’의 세계에 빠져들어 자신이 접하는 모든 주변의 사물과 대상과 사람들을 그 세계 안으로 끌어들였다. 뒤뷔페는 우리가 인식하는 실재와 나란히 존재할지도 모를 ‘그 어떤 신세계’를‘우를루프’로 표현하고자 했고, 이번 전시는 전시 그 자체가 뒤뷔페를 통해 우리가 만나는‘또 다른 신세계’일 수 있기에, 이와 같은 부제를 붙였다.




장 뒤뷔페_자화상_종이에 마커_16.5×25cm_1966
ⓒ Jean Dubuffet / ADAGP, Paris - SACK, Seoul, 2006


길들여지고 제도화된 '문화'의 이데올로기에 반기를 들고, 이성과 논리로 무장한 서구 문명의 진로에 '멈춤'을 선언하며, 대신 순수함과 광기와 원시성을 다시금 예술의 영역으로 불러들인 장 뒤뷔페는, 오늘날 한국의 문화 현실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난무하는 '문화' 라는 미명 아래 추구되는, 세련되고 다듬어진, 그래서 특별하고 사치스러운 취미인 우리의 '문화'는, 이미 반세기 전 뒤뷔페가 그토록 애써 무너뜨리고자 했던 그 견고하고 재미없는 문명화된 '문화'인 것이다. 제도화된 문화의 영역보다 훨씬 앞서 이미 존재하는 원초적(brut)인 것, 문명의 기치 아래 너무 오래 가려지고 숨겨져 있는 그것, 그러나 실은 우리가 주변으로 눈을 돌리기만 해도 언제든 문득 발견할 수 있는 바로 그것을, 예술은 온건히 드러내 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예술이야말로 인류가 '즐거이' 감상할 만한 것이다. 만약 언젠가 돌 하나가 너에게 미소 짓는 것을 본다면, 그것을 알리러 가겠니? - 기유빅Guillevic, "만약 언젠가" 전문덕수궁 미술관

■ 전시 관람 초점 정리

● 한불 수교 1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된 문화행사로, 프랑스대사관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한국 국립현대미술관과 파리 뒤뷔페 재단의 긴밀한 협력 하에 기획된 전시이다.
● 2차 대전 이전 파리에 피카소가 있었다면, 2차대전 이후 파리의 대표적인 작가는 단연 장 뒤뷔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는 프랑스의 교과서에 등장하는 화가 순위 1위를 기록하는 명실상부한 프랑스의 국민작가이다. 세계적으로도 '앵포르멜'의 선구자로, 2차 대전 후 폐허의 유럽미술의 진로를 개척한 선도적 작가로 알려져 있다. 이번 전시는 국내 최초로 개최되는 그의 대규모 회고전이다.
● 파리 뒤뷔페 재단, 퐁피두 센터, 파리 장식미술관, 일본 도요타시 미술관 등 3개국 16개 소장처에서 소장하고 있는 작품 총 235점(회화 120점, 조각 10점, 드로잉 43점, 판화 62점)이 전시되어, 작품가액만도 수백억에 달한다. 이와 같이 대규모로 뒤뷔페의 작품을 한꺼번에 많이 볼 수 있는 기회는 파리를 가도 만나기 어려울 것이다.
● 포도주 상인으로 반평생을 보낸 후 41세가 되어서야 돌연 화가가 되어, 1985년 죽기 전까지 5000여점의 작품을 남긴 작가 장 뒤뷔페, 그는 아카데믹한 미술교육을 거부하고 오히려 세계 현대미술의 새로운 흐름을 창시하였다는 점에서 한국 미술교육계의 새로운 지침서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한다.
● 어린 아이의 순수함에서 영감의 원천을 제공받고, 문명과 문화 진보의 결과보다 '원초적(brut)'인 아름다움을 주창했던 뒤뷔페의 솔직하고 친근한 작품은, 인간과 사회의 원초적인 순수가 그리운 오늘날의 현실에 시사점을 던져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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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y Warhol Graphic Works

앤디워홀 그래픽展

2006_1202 ▶ 2007_0210



앤디워홀_구두와 다리_종이에 오프셋 인쇄_23.37×20.32cm_1955년경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서울대학교 미술관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6_1202_토요일

관람시간_10:00am-6:00pm / 일요일 휴관
관람요금_3000원 / 관악구민, 단체20명 이상, 예약 필수_2000원
서울대학교 학생 및 교직원_무료 / 1202 ▶ 1209_전체 관람료 무료
도슨트 전시 설명_11:00am, 2:00pm, 3:00pm, 4:00pm
어린이 전시 감상 프로그램_매주 화요일_3:00pm-5:00pm_무료, 예약 필수
MoA 어린이 교육프로그램_“앤디워홀과 나”_아동반, 초등학생반_유료





서울대학교미술관 모아(MoA)
서울 관악구 신림동 산56-1
Tel. 02_880_9504
www.snumoa.org






MoA(서울대학교미술관, 관장 정형민)는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인 앤디 워홀전을 개최한다. 이번 “앤디워홀의 그래픽전”에서는 일상에 범람하는 사진, 그래픽 등의 이미지를 사용하여 가볍고 통쾌하면서도 묵시록적 암시를 엿보이는 워홀의 작품세계 중 대표적 판화 60여점을 선보인다. 초기에 상업미술가로 성공했던 워홀의 선 드로잉작품을 비롯, 캠벨 스프캔연작, 존 F. 케네디의 암살을 다룬 Flash, 전기의자 연작, 마릴린 먼로 등 워홀의 대표적 이미지들이 전시된다. 본 전시는 첫 번째 대학미술관간 교류전으로 미국 뉴욕시립대학(CUNY)의 부속기관인 QCCArt Gallery(관장 Faustino Quintanilla)와의 협력으로 이루어졌다.




앤디워홀_빨간 구두_종이에 오프셋 인쇄와 채색_25.4×35.56cm_1955



앤디워홀_핫도그 빈 수프II_종이에 스크린프린트_88.9×58.42cm_1969



앤디워홀_재키 II_종이에 스크린프린트_60.96×76.2cm_1966


앤디 워홀은 1928년 철강도시인 미국 피츠버그에서 슬로바키아 이민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석탄광산 또는 공사현장에서 일했으며 어머니는 집에서 종이로 꽃이나 장식품을 만들어 팔아 가계를 도왔다. 8살에서 10살 사이에 정신 쇠약으로 장기간 투병생활을 했던 워홀은 침대 위에서 혼자 색칠공부를 하거나 만화책과 잡지를 읽고 도안을 오려 붙이며 노는 것으로 따분함을 달랬다. 그의 어머니는 워홀이 색칠공부 하나를 다 끝낼 때마다 허쉬 쵸콜렛을 주곤 하였으며 때로 워홀에게 만화책을 읽어주기도 하였으나 어머니의 강한 슬로바키아 액센트로 읽는 영어책을 워홀은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했다. ● 카네기 공과대학(현 카네기 멜론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1949년 직업을 찾아 뉴욕으로 상경한 워홀은 젊고 가난한 사회 초년병으로서의 짧은 세월을 보낸 후 곧 인기 삽화가로 자리 잡았으며 10년 후에는 이미 연봉 약 6만5천불을 버는 성공한 광고디자이너로 패션계에 군림했다. 그의 삽화와 광고 디자인은 보그, 하퍼스 바자, 뉴요커, 세븐틴, 타파니, 버그도프 굿맨, 본윗 테일러 등 유명 패션지를 뒤덮고 고급 패션업체들의 홍보를 전담하고 있었다. 상업미술가로서의 절정에 서있을 이 때 바로 워홀은 순수미술의 세계로의 전향을 시작한다.




앤디워홀_미키 마우스_레녹스 뮤지엄 보드에 스크린프린트_96.52×96.52cm_1981



앤디워홀_전기의자_종이에 스크린프린트_90.17×121.92cm_1971



앤디워홀_위장_레녹스 뮤지엄 보드에 스크린프린트_97.15×96.52cm_1987



앤디워홀_수프 드레스_면에 스크린프린트_99.06×55.88cm_1960


본격적인 예술가로서의 인생을 시작하기 전인 1960년 이전의 워홀의 삶에서 이미 그를 이토록 유명한 작가로 만든 원인들이 발견된다. 잡지, 만화, 대중매체, 대량생산품과 패션, 그리고 뉴욕의 광기와 예술적 갈망으로 가득찬 젊은이들, 이 와중에도 어린 시절부터 그를 따라다니던 외로움. 다작이었으며 작품을 많이 생산해 내는 것 조차가 작업의 한 방향성이었던 워홀의 작품세계를 총망라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본 전시에 제시된 캠벨 스프캔, 전기의자, 재클린 케네디 등 대표적 아이콘들을 통해 워홀의 세계를 관통하는 개념을 파악해 보려는 시도는 가능할 것이다. 마르셀 뒤샹이 워홀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 했듯 “(워홀에 있어서) 우리의 흥미를 끄는 것은 그가 한 화면 위에 50개의 스프캔을 그리고 싶어한다는 개념이다.” ■ 서울대학교미술관 모아(M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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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LAP

케이스케 시로타 회화展

2006_1130 ▶ 2006_1218 / 일요일 휴관



케이스케 시로타_Days Which Are Not Known_캔버스에 사진인화, 아크릴 채색_80.3×100_2006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갤러리 선컨템포러리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6_1130_목요일_06:00pm

갤러리 선컨템포러리 초대展




갤러리 선컨템포러리
서울 종로구 소격동 66번지
Tel. 02_720_5789
suncontemporary.com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일본의 젊은 작가 ‘케이스케 시로타 (Keisuke Shirota)’● 한국에 처음 소개되는 케이스케 시로타 (Keisuke Shirota)는 동경예대 출신이며 2004년 첫 개인전 이래 2005년 일본 동경에 우에노 로얄 뮤지엄에서 열린 기획전 ‘VOCA展(2005 현대미술의―새로운 평면의 작가들)’에 선출되어 주목 받아왔다. 일본에서는 물론, 해외 아트페어에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일본의 떠오르는 젊은 작가이다. ● 갤러리 선 컨템포러리는11월 30일부터 12월 18일까지 케이스케 시로타를 한국에 소개하는 자리를 마련하여 색다른 예술세계를 가진 동시대의 젊은 작가를 소개하고 심층적으로 들여다 볼 기회를 마련하고 더 나아가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과 한국의 문화적 교류에 기여하고자 한다.




케이스케 시로타_Platform_캔버스에 사진인화, 아크릴 채색_97×116.7_2006


순간의 기억은 ‘사진’으로 그 기억의 연장선은 ‘그림’으로? ● ‘OVERLAP’이란 이름으로 열릴 이번 전시에서는 올 해 여름 작가가 서울에 머물며 촬영한 사진과 평상시 동경에서 촬영해온 사진을 한 화면에 배치하는 작품을 중심으로 한 신작 20 여 점이 보여질 예정이다. 의도를 배제하고 찍은 사진을 캔버스에 붙여, 그 주위를 기억과 상상에 의해 붓으로 그려나가는 방법으로 우리가 당연히 여기는 ‘본다는 것’과 ‘기억하는 것’에 관해서 몇 가지 물음을 던진다. 동시에 우리들을 둘러싼 풍경의 압도적인 존재감과 아름다움을 매우 직관적으로 직시하고 있다. 전시 의도와도 잘 부합하는 ‘OVERLAP’이란 주제는 일본과 한국이 문자 그대로 겹쳐지며 합쳐져 그 안에서 새롭게 창출되는 풍경으로 인한 신비롭고 아득한 기억의 연장선상으로 우리를 안내할 것이다.




케이스케 시로타_Undergroound Passage_캔버스에 사진인화, 아크릴 채색_97×116.7_2006


새로운 시공간에서의 데자뷰(Deja vu) ● 사진은 찍는 순간부터 지금이 아닌 ‘과거’라는 시간영역에 속하게 된다. 하지만 사진을 보는 이들이 매 순간 느끼는 감정은 생생한 현재의 것이다. 현재에서 느끼는 현실이 아닌 기록과 기억들을 케이스케 시로타는 한 캔버스 안에 사진을 붙이고 연장되는 선과 면을 만들어 무채색의 회화로 표현한다. 그리고 사진의 연결선 상으로 이어지는 페인팅으로 그 사진의 형태에서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감정의 실루엣과 어렴풋한 기억을 표현하는데 집중한다.




케이스케 시로타_A Sense of Distance #19_캔버스에 사진인화, 아크릴 채색_100×80.3_2006



케이스케 시로타_Another Day #4_캔버스에 사진인화, 아크릴 채색_130.3×194_2006


이러한 작업을 해 온지 5년 정도 되는 이 작가가 누구나 한 번쯤은 봤을 만한 사진을 고르는 이유는 작가로서 사진에 담기 위해 바라보는 풍경이 아닌, 일상적이고 무심하기도 한, 단지 평범하게 쳐다보는 사람의 입장에 서기 위함이다. 캔버스에 한 개의 이미지나 혹은 서로 다른 시간, 다른 장소에서 찍은 두 장의 사진을 배치시키는데 이는 전혀 상관없는 시공간을 한 화면에 동시에 등장시키면서 새로운 공간을 연출해낸다. 두 이미지 사이의 공간이 만들어내는 간격은 서로 합쳐지기 위해 깊은 어둠으로 스며드는 블랙홀처럼 관객들에게 지금까지 접하지 못한 색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장(場)이 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케이스케 시로타의 작품은 비록 역설적인 표현이지만 어떠한 의도 없이 아무도 알길 없는 현실 속에 존재하는 한편의 픽션과도 같다. ■ 박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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