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fly’의 관한 詩想
남빛 수묵展
2007_0519 ▶ 2007_0525
남빛_날개짓하다_한지에 먹_73×73cm_2007
초대일?2007_0519_토요일_05:00pm2007 갤러리 NV 공모선정展
갤러리 NV 서울 종로구 인사동 186번지 3층 Tel.
02_736_8802
서문중에서-…작가 남빛의 작업은 새로운 수묵 표현의 한 전형을
보여주는 것이다. 강하고 짙은 먹색과 유현한 분위기는 분명 수묵의 전통적인 조형 양태를 견지하고 있지만, 그 이해와 수용에 있어서는 수묵이
지니고 있는 물질적인 성질과 그 특성의 발현에 그 관심이 모아지는 경우라 할 것이다. 번지고 스미는 수묵의 성질을 고스란히 수용한 진한 먹빛의
화면 바탕은 분명 그윽하고 유현한 수묵의 세계임에 분명하다. 작가는 이러한 삼투의 성질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뒷면에서 거꾸로 먹을 번져
올라오게 하는 보다 적극적인 수묵의 물성 발현도 서슴없이 시도하고 있다. 필정(筆情)과 묵취(墨趣)로 대변되는 전통적인 수묵의 심미관은 묵색의
조합과 축적에 의한 조형적 내용들로 대체되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강한 묵색의 면들로 이루어진 조합들은 그것 자체가 일정한 심미적
요소들을 내재하고 있는 것이지만, 그 본연의 기능은 드러내고자 하는 사물의 바탕으로서의 물리적인 기능이 더욱 두드러지는 것이다. 즉 수묵 자체의
심미적 요소들과 조형적 특성들은 차용하지만 반드시 그것을 추종하기 보다는 보다 적극적인 해석과 응용에 의한 수묵의 새로운 표정과 기능적인 운용이
작가의 관심사인 셈이다…….

남빛_날개짓하다_한지에
먹_64×48cm_2005

남빛_날개짓하다_한지에
먹_73×73cm_2007

남빛_날개짓하다_한지에
먹_73×73cm_2007

남빛_날개짓하다_한지에
먹_127×67cm_2005

남빛_날개짓하다_한지에
먹_44×33.5cm_2007

남빛_날개짓하다_한지에
먹_44×33.5cm_2007
수묵에 대한 이해가 정신적인 것이든, 혹은 물질적인 것이든 수묵은 여전히 동양회화의
보편적인 재료로 수용되고 있음이 사실이다. 이는 전통이 지니는 일종의 관성일수도 있겠지만, 수묵 자체가 전해주는 독특한 물성이 우리의 심미
의식과 일정부분 부합되기 때문에 생겨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작가의 작업은 바로 이러한 선상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모색과 추구의 결과물인 것이다. 작가의 작업이 전통적인 심미관과 반드시 일치하는 것이라 강변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그의 작업을 통하여 새롭지만
낯설지 않은 수묵의 새로운 표정을 발견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새롭다함은 작가의 작업들이 이미 익숙한 전통적인 양태를 고수하거나 답습하지 않고
있음을 말하며, 낯설지 않음은 작가의 작업이 그만큼 안정적인 토대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결국 이는 수묵의 재발견이자 전통적인
수묵의 정형화된 심미 체계에 또 하나의 조형적 경험을 더하는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이는 바로 비단 작가뿐만 아니라 근자에 나타나고 있는
수묵의 새로운 표현 방식을 눈여겨보아야 할 이유인 것이다…. ■ 김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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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mediate release
송용홍 회화展
2007_0523 ▶ 2007_0625 / 일요일 휴관
송용홍_Midnight_limited edition print_80×100cm_2006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웨이방 갤러리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7_0523_수요일_06:00pm관람시간_01:00pm ~
07:00pm
웨이방 갤러리에서는
중국 현대 작가 송용홍의 작품을 소개하게 되어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특별히 이번 전시는 당대의 가장 주목받고 있는 중국 작가 중의 한 명인
송용홍의 가장 최근 작품을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한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습니다.

송용홍_Bath of
Consolation_limited edition print_80×100cm_2006
송용홍은 1966년 중국
허베이에서 출생하였으며, 1988년 제지앙(Zhejiang) 예술대학교에서 학사학위를 받은 후, 같은 해 북경으로 상경하여 1997년까지 베이징
Crafts and Arts school에서 가르치며 작업해 왔습니다. 그의 작품은 국제적으로 이미 잘 알려져 있을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2005년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중국 현대 미술 특별 기획 전시 에서 전시한바 있으며, 현재는 2008년 북경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앞두고
준비중에 있습니다. 그는 현재 베이징에서 거주하며, 작업하고 있습니다.

송용홍_Moon Light_oil on
canvas_46×65cm_2007
송용홍은 평론가 수 계원 (Shu Kewen)과의 fate in Waiting
Origin of painting 이라는 주제의 인터뷰에서 그의 작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송용홍_Bath of Consolation_oil
on canvas_46×65cm_2007
나의 작품은 나의 이성이 아닌 본능에 바탕을 둔다. 나는 시대적인
의무감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따라서, 나는 계획적으로 구도를 생각하지 않는다. 설사 구도적인 측면이 보일 지라도 상징성은 피하려고 노력한다.
대신, 나는 나의 작품 안에서 물이나 인물의 형상, 혹은 다른 부수적인 요소들로부터 어떠한 이질감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송용홍_Bath of Consolation_oil
on canvas_46×65cm_2007
나는 철학이나, 관념으로부터 작업을 시작하는 예술가가 아니며, 그것들은
나의 힘이 되지 못할뿐더러, 내 작업 방식에는 맞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안다. 작가는 어느 정도 피상적일 필요가 있다고 본다. 가벼우면서도,
기동력 있는 요소들을 사용하는 것이 작가를 자유롭게 날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송용홍_Broken Pieces_oil on
canvas_80×100cm_2007
나의 작업 방식은 의미를 먼저 생각하기보다는, 우선 구조적인 면을 이해하고,
손가락이나, 다리 등과 같은 부분적인 요소로부터 시작이 된다. 이는 작품이 완성되었을 때 어떻게 보여질까를 알지 못한 채 하는 작업이다. 구도와
인물의 근육배열들도 스스로 재 생성된다. 이러한 왜곡된 표현 의 결과는 매우 놀라우며, 의식의 흐름을 잘 이야기해준다. 한 작품에서 소요되는
시간과 공간은 운명적으로 결정지어지는 것 같다.

송용홍_Green Field_oil on
canvas_80×100cm_2007
전시는 서울시 종로구 화동 127-3 번지에 소재하고 있는 웨이방 갤러리에서
관람하실 수 있으며, 관람시간은 월요일부터 토요일, 오후 1시부터 7시입니다. (일요일 휴관) 5월 23일 수요일 저녁 6시부터 8시까지
opening reception이 있으며, 작가 송용홍과 직접 만나 실수 있는 기회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자세한 문의 사항을
02-720-8222로 연락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웨이방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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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 channel
김학량_정재호
2007_0519 ▶ 2007_0601
김학량_나무가 추는 어느 춤_장지에 수묵, 아크릴채색_105×70.5cm_2007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갤러리 도올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7_0519_토요일_05:00pm
갤러리 도올 서울 종로구 팔판동
27-6번지 Tel. 02_739_1405/6 www.gallerydoll.com
이번에 ‘채널’이라는
제목으로 열리는 김학량 정재호의 2인전(지필묵그림)에서, 두 작가는 우리 삶을 바라보는 틀로서 ‘기계’라는 주제어를 가설하고, 이 기계를
조직하고 작동시키는 내적 원리로서 ‘채널(channel)’이라는 개념을 도출하였다. 채널이라는 단어는 흔히 방송채널과 같은 뜻으로 쓰이나,
해협, 수로, 액체가 흐르는 관, 사상의 방향, 정보 흐름의 통로와 같은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는 단어이다. 현대사회를 하나의 복잡하고 거대한
기계로 본다면 인간은 그 기계의 작은 부품과도 같은 모습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의 기계 속에서 작은 부품들은 서로 결합하여 하나의
단위를 이루고 이 단위들이 서로 관계하며 각기 다른 조직들을 이루며 이 조직들은 서로 유기적 관계 속에 하나의 작동하는 기계로서 결합한다.
‘채널’이라는 개념은 개별적으로는 무의미한 단위들이 서로 결합하는 관계망이며 유기체적 성격을 갖기 위한 필수 조건인 것이다. ● 김학량,
정재호의 작업은 기계로 이루어진 세상에 속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두 작가의 작업에서 기계는 세계에 대한 은유로서 다루어진다. 인간은
기계로서의 세계 속에서 배우의 역할을 하고 또한 기계로서의 삶을 산다. 그렇다면 우리의 세계를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기계, 기계인
세계, 살아가는 기계, 살기 위한 기계, 기계처럼 경영되는 삶, 기계 같은 삶, 기계처럼 움직이는 삶. 과장된 듯도 하지만 여기서 우리의
살림살이는 기계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사람들뿐만 아니라 흔한 식물이나 야생동물에게조차 그들의 자연적 범주를 생계 차원에서 짓누르는 기계적
프로그램이 아주 ‘실질적으로’ 작동하고 있지 않은가. ● 김학량은 퇴역한 구축함(‘전북함’)의 복잡한 내부를 답사하면서 수백 장의 사진을 찍고
이를 바탕으로 수많은 관과 배선, 계기, 장비, 도구들로 이루어진 풍경화를 그리고 있는데, 이는 하나의 ‘장치apparatus’로서 다른
장치들과 연계되어 있는 인간의 모습에 대한 은유로서 읽힐 수 있을 것이다. ● 정재호는 현대사회의 강력한 스펙터클인 전쟁기계의 이미지들을
만화/문인화의 틀로서 새롭게 해석해낸 작업을 보여준다. 부채 속 전통회화의 공간을 불사르는 군용헬기, 핵폭발, 에어쇼의 광경 등을 수묵으로
표현함으로서 전쟁-기계의 이미지가 현대인에게 소비되는 모습을 드러내는 작업을 선보일 것이다. ● 두 사람의 작업은 그동안 지필묵그림의 소재로는
잘 다루어지지 않았던 기계의 이미지들을 적극적으로 화면에 수용함으로써 지필묵그림의 주제 영역을 넓히고 있으며, 매체의 특성을 어떻게 삶에
관여시킬지에 대한 실험의 의미도 크다고 할 것이다.

김학량_채널展_갤러리
도올_전시광경
길, 몸, 채널 ● 지난 설, 사흘을 속초 본가에서 놀고, 귀경하는 길에 우리 가족은
곧장 서울로 향하지 않고 남쪽으로 내빼, 그 저명한 장소, 정동진에서 하루 까먹으며 해 돋는 광경도 오랜만에 구경하자고 꾀를 내었다. 계획대로
하룻밤 잘 놀고 이튿날, 강릉 쪽으로 거슬러 오르는데 저기 어디쯤, 난데없이, 커~다란 군함 한 척이 상륙해 있었다. 놀다 가기로 하고 보니 그
옆에 새끼배 한 척도 같이 상륙해 있는데, 그 놈은 1997년에 침투하다 박살난 북한 잠수정이라고 했다. 커~다란 군함은 1997년엔가 언젠가
퇴역한 ‘전북함,’ 3700톤짜리, 길이 150여 미터, 승선인원 이백 오십여 명. 크다. 매우 크다. 들어가 구경하니 과연 크고 우람하고
복잡하다. 복잡하기를 사람 몸보다 덜하잖다. 오묘하고 신비하고 장엄하고 화려하다. 매우 섬세하고 예민한 갖은 기계 장치와 회로와 장비, 계기,
가구, 무기, 도구, 각종 설비들이 어쩌면 저닿하게도 정교할 수 있는지. 그 자체로 매혹적이고 관능적이다. ● 헌데 이 거대하고 정교한 육신은
어떤 존재인가. 무기. ... 무기. 특정 제도의 이데올로기를 실현하는 ‘장치apparatus.’ 경찰 정복이 그렇듯이 그 자체로서 권위라든가
폭력적 위엄, 대화 대신 강요, 소통 말고 억압으로서 ‘스스로,’ 진짜 ‘자유롭게’ 존재하는 것. 그가 누리는 자유 앞에서 나는, 진짜로, 이
‘세계’에 셋방살이하거나 기생하는 존재임을 새삼 인정한다.

김학량_어느
세상으로 건너가는 문, 또는 독특한 대화술_장지에 수묵, 아크릴채색_105×70.5cm_2007
내가 홀딱 벗고
서서 망연히 바래다가 발목서부터 무릎을 거쳐 서서히 몸 가라앉히고 잠입하며 육신으로 교접하는 그 바다를, 저 거대한 제도적 장치―전북함은 다른
방식으로 체험한다. 그는 내 육신이 바다를 사는 꼴과는 다른 방식으로 바다를 보고 겪고 산다. 나는 천변만화하는 생명의 동태와 생리를 가장
극적으로 표현해주는 철학적 상징으로서 바다를 겪고 그의 삶에 경의를 표하지만, 전북함에게 바다는 하나의 길이요 때로 늪이다. ● 그 근처 산
중턱에는 ‘통일전시관’이 있어서 거기, 침투하다 몰살된 간첩들의 유류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거기 가 구경하면 눈물이 절로 난다. 참아도 난다.
이를 꽉 깨물어도 눈물은 난다. 참다 참다 안돼서 밖으로 서둘러 나와 그 앞마당 끄트머리에 서서, 동해, 그 시퍼런 바다를 바래면 또 눈물이
난다. ... 그 산기슭에 널려있는 해당화 나무를 만나도 눈물이 난다. 낭만의 싸이트, 정동진, 거기 가면 눈물의 바다를 만날 수 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새삼.

김학량_바다
I: 어떤 채널_장지에 수묵, 아크릴채색_70.5×105cm_2007
군함을 비롯한 군사적 제도, 군사적 장치,
군사적 채널들에게는 독특한 시선과 귀, 감수성, 취향, 서정, 논리, 신념, 철학, 그리고 주파수가 있다. 그런 것이 그의 됨됨이를 이루고 나는
그의 됨됨이의 레이더에 포착되어 있다. 우리가 그를 사용한다는 것은 거의 농담이고, 실은 그가 우리를 사용한다. ● 어쨌든 나는 지난 설, 그
거의 맹목적인 낭만의 싸이트―정동진 근처, 어느 거대한 주검, 거대한 무덤, 거대한 제도 앞에서 그 육신에 대하여 맹목적인 매혹을 느끼면서,
한편, 그 육신이 작동하는 ‘인문주의적 섭리’ 앞에서 한없이 서글프고 나약한 자화상을 그릴 수밖에 없었던 것. 내가 그들―전북함과 북한
잠수정―을 그리고 있는 까닭이 이렇다. 어쨌든 두 양반은 지금 죽었지만 더더욱 생기를 띠고서 내 앞에 근엄하게 살고 계신다(왜 저것이 우리
아버지보다 쎈가). 두 개의 죽음, 두 개의 삶. 죽음이자 삶인, 죽음살이이자 삶살이인 두 육신. 저 찬란한 죽음, 저 찬란한 삶. ● 앞으로
한동안 저 ‘무덤’에 갇혀 살 것 같다. 저 무덤은 나를 비웃고 꼬시고 쥐어박고 어루만지고 각성시키고 좌절시킬 것이다. 그러다 끝내, 어쩌면
고맙게도, 나를 무언가로부터 해방시켜줄지도 모른다. 모르겠다. 박진화 투로 말하면, “가자, 가 보자.” ■ 김학량

정재호_논화마(論火魔)-기계(機械)_한지에
먹_39×69cm_2007
화마도(火魔圖) ● 어린시절 서울 변두리에 살던 나는 종종 전투기가 하늘을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 그것이 지나가면 천둥소리 같은 것이 들렸는데 그때마다 창문이 부르르 떨었던 것이 기억난다 국군의 날이 되면 전투기가
편대를 이루어 날아가곤 했는데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은빛으로 빛나던 그것들은 유년기의 소년에게는 어떤 넘볼 수 없는 저 끝의 세계에 대한 환상
같은 것을 자극했다. ● 프라모델을 접하게 되면서 전투기 모델은 어느새 나의 가장 큰 욕망의 대상이 되어 있었다. 프라모델을 사기 위해 동전을
모았고 용돈을 벌기위해 어머니 앞에 앉아 문제집을 풀었다. 결국 전투기를 수집해서 에나멜로 칠하고 방 여기저기에 주렁주렁 매달아 놓는 지경까지
갔었는데 이 취미는 거의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정재호_논화마(論火魔)-합군기(合軍機)_한지에
먹_39×69cm_2007
대학 2학년때 걸프전이 발발했다. F-15 전투기가 이라크의 표적물을 정확히 타격하는
장면이 TV뉴스에 나오고 있었다. 그것은 프라모델의 조립 설명서에 기입된 제원과 성능이 육신을 얻은 격이었고, 고백하건대 사건에 대한 정치적
입장과는 상관없이 매우 흥분되는 장면이었다. 음속의 2배가 넘는 속도, 한꺼번에 파괴할 수 있는 목표물의 수, 건물의 한 귀퉁이를 정확히 타격할
수 있는 폭격 시스템의 정교함. 그것은 차라리 미학적인 어떤 경지였고 거부할 수 없는 기계의 아름다움이었다.

정재호_논화마(論火魔)-화마(火魔)_한지에
먹_39×69cm_2007
전투기에 대한 흥미는 어느새 삶의 뒤쪽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책상서랍을 정리하면서
오랫동안 묵혀두었던 도장용 에나멜을 쓰레기통에 버린 건 2년 전의 일이다. 그러다가 얼마 전 자주 들르던 인터넷 게시판에서 앞 다투어 전투기
사진들을 올리는 것을 보았다. 고해상도로 스캔된 이미지들을 찬찬히 보면서 나는 그것들의 아름다움에 다시한번 눈을 빼앗기면서 한편으로는 전쟁기계인
그것들이 가지는 아름다움이 매우 복잡한 성격의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프라모델로 만드는 대신 그림으로 그렸다.

정재호_논화마(論火魔)-논기류(論機類)_한지에
먹_39×69cm_2007
그려진 전투기 그림들은 지. 필. 묵으로 이루어진 매우 고전적인 기법이 사용되었다.
묵화(墨畵)라는 고전적 형식속에서 첨단의 전투기들은 마치 문인화의 소재들인 양 천연덕스럽게 널부러져 있다. 전혀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고전과
현대를 이어 붙인다는 쾌감에서 그랬거니와 불편한, 또는 어울리지 않는 어법이 전투기의 숨겨진 속내를 엉뚱한 모양으로 드러낼지도 모른다는 기대
때문이기도 했다. 특별히 문인화적 화면을 구성하기도 했는데 각종의 전투기를 그리고 글을 쓰고 낙관을 덧붙이면서 어떤 서사를 만들고자 했다. 글의
내용은 한문고전의 문장형식을 빌었다. 종종 대구(對句)와 반어(反語)법으로 이루어진 고전(古典) 문장은 전투기를 서술함에 있어 그 껍질속에
감추어진 속내에 대해 사고할 수 있는 유용한 틀을 제공해 준다. ■ 정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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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니 - 묵화(墨畵)와 백자(白磁)
기획_오광수
2007_0523 ▶
2007_0609
김익영_비대칭기_자기소지, 실투유_53×33×34cm_2007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아트포럼 뉴게이트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7_0523_수요일_06:00pm김익영_이철량_오숙환_조순호_김희영_이기조_조환
아트포럼 뉴게이트 서울 종로구 신문로2가 1-38번지 내자빌딩 1층 Tel. 02_737_9011 www.forumnewgate.co.kr
안녕하십니까?
아트포럼뉴게이트의 염혜정입니다. 저희 아트포럼뉴게이트는 오광수 전 국립현대미술관장님께 기획을 의뢰하여 중견작가들로 이루어진 특별기획전 “이화에
월백하니”를 5월 23일부터 6월 9일까지 엽니다. 미술계에 새로운 메시지를 전달함과 동시에 방향을 제시해주는 이번 전시는 두 분의 도자
작가들(김익영, 이기조)의 순백의 백자작품들과 경력있는 수묵작가들의 묵화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 최근의 미술계는 젊은 작가들에게 무한한
전시기회를 제공하고 있고 또한 그들에 의해 매우 활발한 예술 활동이 이루어져 가고 있음이 주지의 사실입니다. 오히려 중견작가들의 활동이 위축을
느낄 정도에 이르기까지 했습니다. 숙달된 예술의 장인(匠人)들이 뿜어주는 작품의 완성도와 깊이에 대해 어떤 갈증을 느끼기도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작가들과 갤러리, 미술관 들이 함께 고심하고 진지한 모색을 해야 하는 시점에 이르렀음입니다.

김희영_무제_142×23.5cm×2개_2005

오숙환_빛과 시공간_한지에
먹_70×70cm_2007
아트포럼뉴게이트는 그간 신진작가들의 발굴과 전시라는 첫째 목표와 중견작가들의 작품
발표와 토론의 장소라는 둘째 과제를 성실히 수행하고 있어온 바, 이번에 오관장님께 특별히 기획을 의뢰하여 이들 중견작가들을 어렵게 모셨습니다.
이들이 심혈을 기울여 “이화에 월백하니”라는 詩的인 전시 제목에 부합하는, 무게와 깊이가 있는 좋은 작품을 출품해주시기도 했지만 21세기도
수년에 이른 지금, 다시 한 번 미술계에 종사하는 관계자들에게 잠시 머물러 뒤를 돌아보게 하고, 작가들에게는 진지한 정진을 부탁하는 전시가 될
것을 의심치 않습니다. ■ 염혜정

이기조_백자화병_백자점토_10×29×31cm_2007

이철량_신시_한지에
먹_151×106cm_2007
梨花에 月百하니 ● 묵화와 백자
“이화에 월백 하고 은한이 삼경일 제일지 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 다정도 병인 양 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이조년 달밤에 배꽃을
보면서 잠 못 이루는 선비의 고즈넉한 심회를 떠올려 본다. 자연은 언제나 인간과의 상대적인 거리에 있기 때문에 감정이입의 대상이 된다. 자연을
앞에 하고도 아무런 감동을 지니지 못하는 사람에겐 감정이입을 바랄 수 없다. 배꽃에 달빛이 비치니 배꽃은 더욱 차고 희게 반영된다. 봄밤은 아직
서늘함이 남아있다. 인간의 다정한 감정이 봄밤의 유정함에 뒤척인다. ● 묵화와 백자는 전혀 다른 장르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같은 공간에
놓임으로서 더욱 우아함과 격조를 고양시킨다. 옛 선비의 문방에 먹의 향기와 더불어 그윽한 매무새로 놓여 있는 백자는 고요한 가운데 깊은 정신적
울림을 동반했다. 묵화는 담백한 먹의 번짐과 날카로운 운필로 인해 더욱 은은한 향기로 감싸고 백자는 아무런 장식도 없이 단지 그 형태와
윤택만으로 스스로 가득 차는 모습으로 우리 앞에 놓인다. 묵화와 백자를 곁들인 것은 단순한 회고취미에서가 아니다. 산업화와 문명화에 떠밀려가는
우리의 모습을 잠시나마 가다듬자는 예지와 자각의 충동에 의해서이다.

조순호_나무와새_한지에
수묵_131×86cm_2007

조환_淸韻_화선지에
먹_36.5×69cm_2007
여기 여섯 작가는 새삼 소개할 나위도 없이 우리 미술에서 뛰어난 역량을 지닌
이들이다. 김익영은 현대 도자의 대표적인 작가의 한 사람이다. 특히 그는 백자만을 오랫동안 다루어 오고 있다. 전통적인 자기가 지닌 소박한
내면과 간결한 형태를 바탕으로 하면서 현대적 감각을 반영하는 세련된 조형미를 구현하고 있다. 순백의 백자가 주는 맛은 그 어디에도 비길 수 없는
당당함과 더불어 여유로움을 안겨준다. 무엇을 담는다는 자기 본래의 기능을 벗어나서도 하나의 조각으로서의 위상에 이르고 있다. 이기조의 백자에서도
조형적인 구성미가 돋보인다. 견고한 형태가 주는 단단함과 윤택의 조화로움은 오랜 백자의 전통을 세삼 떠올리게 한다. 백자의 전통이 오랜 우리의
경우 의외롭게도 현대적인 백자 작가가 많지 않은 것은 이상한 일이다. 옛 것을 모방할 뿐이지 전통을 바탕으로 하면서 현대적 도자의 창조적 방향을
열어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 점에 비하면 김익영, 이기조의 백자가 주는 조형성은 귀중한 하나의 모범이 되기에 충분하다. ● 묵화는
40대에서 50대에 이르는 중견 작가들 가운데서 다섯 사람을 초대하였다. 수묵을 주로 하는 작가가 이들만은 아니지만 오랫동안 수묵에 경주해온
편력에 있어 단연 돋보인다는 공통점에 기인한 것이다. 이철량의 수묵의 연륜은 30년을 상회한다. 80년대 초에 전개된 수묵화 운동의 중심에서
활동해온 그는 대상을 묘사하는 구상적 발상에서 점차 순수한 먹의 자율성에 내맡기는 과정으로 진척되었다. 최근 그의 작품은 중간 톤에 의한
전면화로 일관되고 있다. 아늑한 먹의 기운 속에 잠겨가는 무 표정 또는 무 표현의 독특한 세계를 지향한다. 조순호는 자유분방한 먹의 구성을 통해
자연을 은유화하는 독자적인 세계를 가다듬고 있다. 육중한 무게를 내장한 붓의 거침없음과 해학적 설정은 그만이 지니는 개성적인 면모이다. 먹은
살아 숨 쉬듯이 임리한 기운에 젖어있고 작가의 상상력은 바탕의 소지 위에 간단없이 꿈틀거리고 있다. ● 김희영의 필선은 날카로우면서도 은은한
여운을 남긴다. 그가 보여준 필선의 반복은 수묵 드로잉으로서 독특한 영역을 확보해가고 있다. 때로 대상으로서 화조를 다루면서도 운필의 자율적인
힘이 능히 대상을 앞질러 순수한 추상적 기운을 반영한다. 오숙환은 빛과 그림자의 세계라는 특이한 발상으로 일관해오고 있다. 안으로 잠겨드는
먹빛과 흐릿하게 떠오르는 빛의 결이 어우러지면서 아늑한 공간의 구성에 도달하고 있다. 조환은 도시 풍경에 심취된 작품을 오랫동안 다루었다.
수묵으로 도시 풍경을 다룬다는 자체가 특이한 면모를 부여주고 있다. 도시 풍경이 아닌 자연 대상에서도 도시풍경에서 보여준 구성미와 먹의 그윽한
기운이 돋보인다. ■ 오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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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幻影)의 거인
한·중 현대미술展
2007_0518 ▶ 2007_0604
좌_유에민준_무제 NO.7_캔버스에 유채_40.5×39.5cm_1996_중국 우_고영훈_Stone
book_캔버스에 혼합재료_83×118.5cm_1988_한국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세종문화회관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7_0518_금요일_03:00pm참여작가 중국작가_리루밍_리우샤오동_양샤오빈_인짜오양_유에민준_쟝샤오강_지다춘_치즈롱_평정지에 짜오능즈_쪼우춘야_쩡판즈_쪼우티에하이 한국작가_고영훈_강홍구_김보중_김준_공성훈_권기수_성태훈_이부록_이희중 양아치_정복수_정연두_홍성도
주최_재단법인
세종문화회관_북경 공화랑 협찬_G·F
Art&Exihibitions 후원_주한중국문화원_동아일보
입장료_3,000원(10명 이상 단체 20% 할인, 36개월
미만, 장애우, 65세 이상 무료) 도슨트 설명회_1일 2회(11:00 / 15:00_1시간 소요)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본관 서울 종로구 세종로 81-3번지 Tel. 02_399_1153/4 www.sejongpac.or.kr
전시취지 ●
한국과 중국은 가까운 거리의 인접국이면서 여러 가지 닮은 면이 많기도 하고 또 아주 다르기도 한 모습을 동시에 갖고 있다. 두 나라의 시각문화
특히 현대미술분야에 있어서 그러하다. 한국과 중국은 서로 다른 정치체제와 역사를 갖고 있으며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서구문화 전통에 따른 현대미술의
수용에 있어서도 매우 다른 특수성을 보여준다. 한국과 중국의 현대미술이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미적 태도와 표현양식에 있어서도 지난 시기
국제사회로의 진입과 시민사회의 성장, 민주화 경험을 둘러싼 격변기의 체험의 과정이 그 중심에 녹아들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좌_쟝샤오강_동지 시리즈_캔버스에
유채_100×85cm_2003 우_지다춘_늑대인간_캔버스에 유채_110×110cm_2002

좌_인짜오양_현(眩) 1_캔버스에
유채_200×200cm_2007 우_쩡판즈_가면시리즈_캔버스에 유채_60×50cm_1998

좌_짜오능즈_MM표정 No.10_캔버스에
유채_230×180cm_2006 우_리루밍_구름위의 날들-테이프 커팅_캔버스에
유채_150×150cm_2004
현대미술이라는 동시대성과 각기 다른 역사적 경험이라는 종·횡축으로 가로지르는 문화적
특이성을 보여주는 자리가 될 이번 전시는 그동안 많은 한·중 교류展들과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게 될 것이다.

좌_리우샤오동_자동차_캔버스에
유채_200×200_1999 우_쪼우티에하이_낙타 시리즈_종이에 과슈_230×317cm_2005

좌_평정지에_My Parents 1_캔버스에
유채_300×300cm_2006 우_쪼우춘야_녹색개 시리즈_캔버스에 유채_150×120cm_2005

좌_양사오빈_형님께서 이미 이것이 내부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캔버스에 유채_120×63cm_2005 우_치즈롱_군모를 쓴 소녀_캔버스에
유채_162×137cm_2005
세계 미술시장에서 너무도 뜨겁게 달아올랐던 중국 대표작가를 비롯하여 앞으로 무궁한
발전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과 함께 전시되고 이에 못지 않은 깊이와 내용을 보여주는 한국작가들의 작품들이 나란히 보여 질
예정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작가들 간의 진정한 교류의 장을 마련하고 앞으로 현대미술을 통한 문화교류의 계기를 마련하고자 하는 것이 이번 전시의
취지라 할 수 있다. ■ 세종문화예술회관

좌_정연두_Wonderland Ⅰ - 여우가
재주를 넘어요_어린이 드로잉 / 컬러인화_120×100cm_2004 우_김준_don’t move_디지털
프린트_220×110cm_2007

좌_김보중_신목(神木)_장지 위에 콘테, 아크릴,
파스텔_275×200cm_2006 우_성태훈_Mosquito Ⅰ_한지에
수묵담채_147×208cm_2007
기획배경 ● 예술사를 보면 예술가들(창작자)과 예술작품 그리고
관객(수용자) 사이에 벌어진 예술현상에 대한 견해와 담론들을 관류하며 예술을 이해하는 두 가지 중심 개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실재(reality)와 환영(illusion/fantasy)이다. ● 이 전시는 무엇보다 오늘날 한국과 중국의 현대문화와 예술에 자리한 환영의
문제를 다루는 창작자들(한·중 현대미술가들)의 실험과 성과를 함께 나누고 이해하려는 것이 될 것이다.

좌_홍성도_Tourist_아크릴 알루미늄
포토_150×230cm_2007 우_정복수_몸의 초상_골판지에 검은색연필_175×220cm_1998

좌_이부록_홍익인간-Xman_렌티큘러,
백라이트_60×90cm_2007 우_양아치_robot13_디지털 프린트_37×76cm_2007
작가의 의식과
무의식에 명멸하는 수많은 환영들과 이미지들, 예술작품에 무수히 집적되고 표현되는 환영들, 그리고 이를 관조하며 감상하는 관객의 의식과 무의식에
떠오르는 생경하며 또 흥미진진한 환영들을 주제로 삼고자 하는 것이다. 얼마 전 작고한 보드리야르의 통찰을 떠올려보면 현대사회에서 환영의 문제는
실재성을 넘어서려는 그리하여 진정한 실재성(초실재 Super Reality)을 획득하려는 미술가들의 보편적인 욕망을 드러낸다. 그리하여 환영성은
미술가들 소위 이미지생산자들의 안과 밖을 포위한 거대한 거인의 메타포로 나타난다. ● 한국과 중국의 현대 미술가들의 마음속에는 모두 이러한
거인들이 숨어있어 우리를 새로운 경지로 견인하며 고양하는 것이 아닐까.

좌_이희중_창조의 손_캔버스에
유채_200×150cm_1989~2001 우_공성훈_필리핀군참전기념비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81.8×227.3cm_2007

상_강홍구_수련자 태산압정_디지털
프린트_90×260cm_2005~2006 하_권기수_Black Forest-Seven_546×227cm
최근
중국의 현대미술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는 가운데 한국과 중국의 현대미술이 함께 만나 동아시아의 예술적 성과와 미래를 함께 이야기하는 자리가
현대미술계의 화두로 떠올랐다. 이번 세종문화회관에서 주최하는 〈환영의 거인〉전이 이러한 환경과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는 시의적절한 주제와 얼개를
갖춘 전시라 기대한다. ■ 김노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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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lieving is Seeing
천경우 사진展
2007_0517 ▶ 2007_0617
천경우_VERSUS #7_컬러인화_90×66cm_2006~2007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가인갤러리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7_0517_목요일_05:00pm전시관람_11:00am~07:00pm /
월요일 휴관
퍼포먼스 INTO: apoyo o carga, 2005-2006(지지하거나 짐이
되거나) 일시_2007_0517_목요일_05:00pm_참가자 20명과 작가
가인갤러리 서울 종로구 평창동 512-2번지 Tel. 02_394_3631 www.gaainart.com
가인갤러리에서 열리는 천경우 개인전(5.17-6.17) 오프닝 당일 오후 5시에는 참여를 신청한 20명의 관람객이 직접
참여하는 퍼포먼스 〈INTO: apoyo o carga(지지하거나 짐이 되거나)〉가 열릴 예정입니다. 여러분의 많은 참여와 관심
바랍니다.
시간의 축적과 인간의 관계를 담은 사진 ● “나는 내가 보는 것을 찍는 것이 아니라 내가
존재한다고 믿는 것을 찍는다.” 어느 인터뷰에서 밝힌 사진작가 천경우의 이 말은 사진에 대한 그의 생각을 대변해 주는 동시에 〈믿는 것이 보는
것이다(Believing is Seeing)〉는 이번 전시 제목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이는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seeing is
believing)”라는 서양의 오랜 격언에 대한 역설적 답변으로서, 시각의 명증성을 우선시하는 서구의 근대적 사고와 시각적 복제물이라는 사진의
일반적인 정의에 대해 강한 의구심을 제시하는 것이다. 사실상 천경우 사진 전반을 관통하는 고유한 매력은 이렇듯 기존의 질서를 끌어와 결국에는
전혀 다른 반대 지점에 이르는 역설적 방법론을 취하는 데 있다. 가장 기본적인 사실에서부터 시작해보자.

천경우_VERSUS #4_컬러인화_90×66cm_2006~2007
천경우는
인물사진을 찍는다. 그의 사진 속 인물은 윤곽이 선명하지 않고 형상이 또렷하지 않다. 이러한 결과는 그가 감광도가 낮은 필름을 사용해 장시간
노출로 인물을 찍는 데서 기인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방법이 19세기 중엽 처음 등장한 초상사진의 그것과 동일하다는 것이다. 상류층 사람들이
자신의 신분을 과시하기 위해 필요로 했던 초기 초상사진은 사진 속 인물이 자신임을 확실히 드러내야 했기에 무엇보다 대상의 사실적인 재현을
최우선으로 하였다. 따라서 장시간의 노출이 불가피했던 당시의 사진 기술상, 보다 또렷한 상을 얻기 위해서 사진가는 피사체에게 오랜 시간 표정을
굳히고 동일한 자세를 취할 것을 요구해야 했다. 그러나 천경우의 인물사진은 초기 초상사진과 동일한 조건을 차용하면서도 그 과정과 목적을 전혀
달리 한다. 자신의 신분을 노출하기 위해 금장식 의자, 커튼 등의 소품들을 사용했던 당시의 초상사진과 정반대로 천경우는 의도적으로 배경을
중성적으로 처리하고, 심지어 많은 사진에서 인물들의 옷을 검은색으로 통일한다. 이는 그야말로 인물에게만 집중하기 위함이다. 장시간 노출로 배경과
옷은 묻혀버리고 우리는 오직 인물의 눈빛과 표정의 “미묘한 뉘앙스” 에만 몰입하게 된다.

천경우_BELIEVING IS SEEING
#6_컬러인화_135×104cm_2006~2007
천경우의 사진이 긴 노출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은 오직 그 시간
동안 사진을 찍히는 사람에게 일어나는 세밀한 정신적 변화의 과정, 즉 “섬세한 정신의 직물” 을 담기 위함인 것이다. 따라서 그는 실물과 닮은
또렷한 상을 얻는 데 집착할 필요가 없고, 이를 위해 피사체가 부동의 자세를 취할 필요도 없다. 오히려 그는 조리개를 열어놓는 동안 카메라 앞에
앉은 사람에게 자유로워지기를 청한다. 수십 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카메라 앞에 앉은 사람은 작가의 인도에 따라 스스로를 반성하고 숙고하며,
카메라를 사이에 두고 사진을 찍는 자와 찍히는 자 간에 수많은 대화가 오간다. 카메라가 대상이 반사하는 빛을 담는 동안 두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반응과 교감이 함께 담기게 되는 셈이다. 이렇듯 시간이 축적되는 가운데 서로의 모습을 반영함으로써 완성되는 천경우의 사진에서 더 이상 찍는 자와
찍히는 자라는 전통적인 의미의 주-객의 구분은 희미해진다. 그의 사진 속 인물은 “포즈를 취하는 동안 자신을 조직하고, 순식간에 다른 육체로
만들고, 미리 앞질러 스스로를 이미지로 변형시켜 버리는” 경직된 피사체가 아니므로, 더 이상 “과녁, 대상물, ...대상에 의해 사출(瀉出)된
환영이거나 사진의 유령”이 아닌 것이다. 나아가 그 결과물이 가져다 주는 섬세한 정서를 느끼고 반응하는 관객까지 그 관계 안으로 들어와 얽히게
된다. 그러므로 그의 사진에서 주도적 의미의 ‘촬영자’와 수동적 의미의 ‘피사체’라는 용어는 적절치 않으며, 그것을 멀찍이 바라보는
‘구경꾼으로서의 관객’도 존재치 않게 되는 것이다. “정면을 향해 오랜 시간을 나와 함께 채워나간 내 사진 속의 인물들은 나의 자화상이기도 하고
나의 사진을 바라보는 관람자의 모습일 수도 있다” 는 작가의 말은 그의 사진을 둘러싼 인간의 ‘관계성’을 축약하여 보여준다. 이렇듯 천경우의
사진은 가장 전통적인 방식의 초상사진으로부터 출발하여 인간의 관계와 시간의 축적에 기반한 사진의 본성을 탐구하는 지속적인 과정이다. 그는 사진의
본질적인 특성이 타인과의 관계를 인정하는 것에 다름 아님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사실상 내 얼굴을 보는 사람은 나 자신이 아닌 타인일 수밖에
없기에 사진을 찍어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자 하는 것이 인물사진의 가장 근본적인 목적일지 모른다. 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나 자신이 아닌
타인이듯이 우리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 안에서만 자기 존재를 증명할 수 있지 않은가.

천경우_BELIEVING IS SEEING
#4_컬러인화_135×104cm_2006~2007
이번 전시에서 천경우는 자신의 지속적인 테마인 인간의 ‘관계성’을
더욱 심화하여 보여준다. 먼저 이번 전시를 통해 한국에 처음 소개되는 그의 첫 컬러사진 연작인 〈Versus〉(2006-2007)는 그 제목대로
누군가에 ‘대하여’ 형성되는 우리의 인간관계를 집약적으로 말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카메라 앞의 두 여인에게 서로의 몸과 얼굴을 기댄 채
두 사람의 나이를 합한 숫자의 분(minutes)만큼 자세를 유지하도록 하였다. 서로의 어깨에 자신의 체중을 실은 상태에서 수십 분을 버티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아서, 이들은 서로 기대어 균형을 맞추어 가면서 중심을 유지하는 동안 그 어느 때보다 자신이 타인을 의존해 가면 살 수
밖에 없는 인간임을 깨닫게 된다. 그는 이 퍼포먼스 형식의 사진 작업에서 참가자들에게 한자의 사람 ‘인(人)’의 형태와 의미를 주지시켰다. 두
개체가 서로 지지함으로써 지탱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사람 ‘인(人)’ 자처럼 우리 인간은 독립된 존재로서 살아가는 듯하나, 동시에 타인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고 타인을 통해서만 자신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작품은 두 사람의 옷, 머리, 피부에서 반사되는 색이 수십 분간 컬러
네거티브 필름에 그대로 혹은 뒤섞여 기록되어 특별한 조작 없이도 몽환적인 아름다움을 가져온다.

천경우_BELIEVING IS SEEING #7-1, #7-2, #7-3_컬러인화_각
135×104cm_2006~2007
〈Versus〉의 전작에 해당하는 〈Pseudonym〉(2004) 역시 개념상
같은 맥락에 있다. 이 사진 연작은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상대의 어깨에 손을 얹고 두 사람의 나이를 평균 낸 시간(minutes)만큼을 보내는
과정을 카메라가 한 방향에서 담아낸 것이다. 사람이 일종의 심리적 보호 범위에 해당하는 가까운 거리에서 타인을 마주 했을 때 느끼는 익숙하지
않은 느낌과 둘 사이의 긴장감을 의도한 작품이다. 또한 이 작품들은 한 사람은 정면이 보이고 다른 한 사람은 뒷모습만이 보이도록 카메라 앵글을
고정하여 촬영함으로써 얼굴이 보이는 사람과 마주한 사람이 다른 인물일 수도 있지만 동일인물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이는
‘익명(Pseudonym)’이라는 제목이 암시하듯, 모든 사람이 자신을 나타내고 싶은 욕구와 숨기고 싶은 욕구를 동시에 가지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이러한 자아와 타아의 동시성에 관한 작가의 생각은 이 작품에서 모노톤의 이미지가 한 장은 포지티브로 다른 한 장은 네거티브로
프린트되어 한 쌍을 이루면서 그 효과가 배가홱? 이렇듯 〈Versus〉와 〈Pseudonym〉 연작은 작가 본인이 제3자의 입장에서 거리를 두고
참가자들 사이에 일어나는 교감과 반응을 관찰하고 탐구했다는 점에서 기존의 작품들과 조금은 차별화된 퍼포먼스 형식의 사진이다. 한편 천경우는 이
두 연작과 동일한 개념의 퍼포먼스를 실제 관객들이 있는 가운데 실연(實演)하고 그것을 비디오로 담은 〈INTO: apoyoo carga(힘이
되거나 짐이 되거나)〉(2005-2006)을 이번 전시에서 함께 선보일 것이다. 이는 작가가 사진을 찍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관객들이
현장에서 함께 경험함으로써 좀 더 많은 사람들 사이에 긴장감과 관계성이 확장되기를 의도한 것이다. 익명의 관객 10~20명이 마주 앉아
〈Pseudonym〉에서처럼 서로의 어깨에 손을 얹고 다른 한 손을 마주 잡은 채 일정 시간을 보내는 이 퍼포먼스는 처음에는 모두에게 낯설고
어색했던 행위가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의 교감의 상태에 따라 짐이 되기도 하고 의지가 되기도 하는 관계의 상대적인 특징을 보여준다. 물론 이러한
전(全)과정을 바라보는 관객들 역시 이 긴장관계에 동참하게 된다. 스페인에서 행해졌던 퍼포먼스를 영상 편집한 이 비디오 작품의 상영과 더불어
전시 오프닝 당일에는 한국 관객들의 참여로 실제 퍼포먼스가 이루어질 예정이다. 이는 관객들에게 영상을 통해 보는 것과 또 다른 종류의 생생한
경험을 가져다 줄 것이다. 한편, 이처럼 유사한 개념을 가진 작품군 외에 전시의 주된 축을 이루는 또 하나의 사진 연작은 전시 제목과 동일한
〈Believing is Seeing〉(2006-2007)이다.

천경우_Pseudonym #2-1, #2-2_컬러인화_각
100×126cm_2004
이번 전시를 통해 전세계적으로 처음 선보이게 될 이 새로운 연작은 선천적 혹은 후천적으로
시각을 잃은 시각 장애 어린이와 청소년의 참여로 독일에서 제작된 작품이다. 인물군의 범위를 한정 지었다는 점에서 기존의 작품들과 차별화되지만
여전히 작가 고유의 인물에 대한 내밀한 천착이 돋보인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볼 수 없는 사람들과의 교감을 통해 그가 오랜 시간 고민해 온
‘보는 것’과 ‘본다고 믿는 것’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작가가 카메라 앞에 앉은 사람들에게 그들이 무엇을 보는지 혹은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보인다고 믿는지 등을 묻고 답하는 30~40분의 시간 동안 노출이 이루어졌다. 시간이 축적되는 동안 참가자들은 작가와 교감하면서 자신의
모습을 머리에 그리게 되고 그러한 모든 반응과 교감은 한 장의 사진에 고스란히 담긴다. “눈을 뜨면 보이는 것만 보게 되지만 감으면 더 많은
것이 보인다고 나는 믿는다”는 작가의 말처럼, 눈을 뜨고 있는 사람이 ‘보는 것’ 보다 눈을 감고 있는 사람이 ‘본다고 믿는 것’이 때로는 더
풍부할 수 있다.

천경우_INTO: apoyo o carga(지지하거나 짐이 되거나)_퍼포먼스
비디오설치_2005~2006_스틸이미지
〈Believing is Seeing〉 연작은 사진(寫眞)이 ‘실물을
베낀다’는 그 한자 뜻과 같이 오직 실물과의 닮음이나 사실의 복제와만 관련된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더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다는 작가의 오랜
생각을 우회적으로 말해주는 작품이 아닌가 한다. “물론 사진은 직접적인 사실과 관련된 것이지만, 같은 것을 바라보는 많은 다른 방법들이 있다는
믿음과도 관련된다. 진실로 믿는 것이 보는 것이다.” 1994년 첫 개인전 이후 십 수 년 넘게 지속되어 온 천경우의 사진은 이러한 동일한
의도를 기반으로 발전해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인간의 관계성에 관한 보다 심도 있는 연구와 시도를 감행했다. 또한
이제까지의 어두운 모노톤 위주의 작품 성향에서 잠시 벗어나 빛의 또 다른 모습인 색이 사진에서 보여줄 수 있는 조형적 아름다움을 시도했다.
그러나 이는 하나의 큰 강줄기 아래 흐르는 수많은 작은 시내 중 하나에 불과할 것이다. 사진작가 천경우는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믿었던
19세기 초상사진을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많을 수 있다’는 믿음에 이르는 21세기 새로운 인물사진으로 바꾸어 가는 긴 여행 길
위에 서있고, 이번 전시는 그 길 위에서 제시하는 수많은 가능성 중 하나일 것이기 때문이다. ■ 신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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