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란 갤러리(02-737-0057)
2006-05-10 ~ 2006-05-16
홍균의 무덤, 혹은 죽음의 욕망
홍균은 수년간에 걸쳐
전국의 무덤을 찾았다. 그런데 그가 찾은 무덤들은 너무나 흔하고, 너무나 평범한 우리 증조모, 할아버지의 묘들이었다. 지관들이 말하는 좌청룡
우백호의 명당자리도, 죽은 자의 권력과 자손의 부를 과시하는 호사스런 무덤들이 아니라, 그저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죽어간 사람들의 무덤이었다.
설령 애절한, 통곡할만한 죽음이었다 할지라도, 홍균의 사진이 보여주는 무덤의 형상에는 어떤 통렬한 비극도, 어떤 부조리한 죽음도 없다. 한식에
찾아보는 조상의 무덤처럼, 혹은 친구 어머니의 장지처럼 그저 그런 묏자리에, 그렇고 그런 묘비와 분토로 이루어진 무덤들뿐이다. 한 마디로 별
볼거리 없는, 누구나 찾아보고 스쳐 지나간 평범한 묘지들이다. 그렇다면 작가는 스펙터클이 없는 그 죽음의 자리들에 왜 그토록 집요하게 찾아
갔을까? 일반인이 보기에 사진 찍을 거리가 별로 없는 주검들의 장소에 왜 그렇게 집착했을까? 필자가 ‘집착 obsession’이라는
용어를 쓴 것은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한 개인이 몰두하는 집착은, 특히 한 작가가 집요하게 반복하는 주제, 한 없이 매달리는 소재는 그의
‘무의식적 강박관념’, 혹은 ‘무의지적 의도’로서, 작품에 그 의미가 액면 그대로 드러나는 것도, 관람객이 직접적으로 감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작가가 어느 누구보다도 그것의 원인과 의미작용을 잘 아는 것도 아니다. 흔히 작가 자신도 몰랐을 수도 있는 것이다. 작업의
동기, 작품에 대한 욕망은 작가의 자발적 의도, 개인적 의미를 지닌 행위이지만, 우리들 내부에서는 그 의미에 대한 명백한 지각, 의식을 포함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한 마디로 작가가 집착하는 주제, 소재는 의지적이거나, 반성적인 범주에 속하기 보다는 분명치 않게 부유하는 의식상태, 혹은 더
나아가 무의식의 승화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까 홍균의 강박관념적 주제 혹은 소재인 무덤은 의도적으로 확립하고, 개념적으로 반성한
대상이라기보다는 그의 무의식적 욕망, 불수의적 (不隨意的) 상상력에서 비롯된 듯하다. 무덤을 찾는 행위는 무엇보다도 망자(亡者) 숭배와
관련된다. 죽은 자의 생전의 삶을 기리고 그를 기억하면서, 죽은 자와의 정신적, 피의 유대감을 확인하는 행위다. 영혼불멸을 믿는다면, 삶을 떠난
자의 절망과 육체적 고독을 달래고 죽은 영혼의 안식을 비는 행위다. 그렇다면 홍균은 죽은 자를 추념하고, 망자의 정신적, 육체적 안락을 위해 그
수많은 묘소들을 사진으로 담았는가? 아닐 것이다. 저 알지 못하는 수많은 망자들의 비석들과 눈에 덮인 묘지들은 사진작가와는 아무런 친분 관계가
없는 자들의 무덤임을 암시한다. 홍균이 무덤들을 찾아간 것은 장례, 제사의식과는 아무런 관련 없이, 무덤의 알 수 없는 인력에 끌렸음에
틀림없다. 그를 수많은 무덤으로 인도한 것은 주검의 장소들이 발산하는 기이한 유혹 때문이었을 것이다. 무덤의 알 수 없는 인력이 죽음의
유혹이라면, 그 심경을 프랑스 낭만주의 시인, 라마르틴느 Lamartine (1790-1869)의 시, <계곡>을 통해 알아보자.
나의 가슴, 모든 것에, 희망에도 지쳐 진정으로 운명을 거스르지 않으리. 오직, 어린 시절의 계곡, 죽음을 기다릴
하룻날의 안식처만을 나에게 빌려다오.
‘희망에도 지친’ 영혼에게, 죽음은 ‘어린 시절의 계곡처럼 안식처’이다. 지상의 삶이
고통인 한에서는, 죽음은 두려움이 아니라 평안이다. ‘모든 것에 지친 가슴’에게 이곳의 삶은 고난이며, 고난이 끝나는 죽음은 영원한 휴식의
잠이다. 아마도 50대 중반에 접어든 작가에게 저며 드는 자괴감, 지난 삶에 대한 회한, 가족에 대한 죄의식 등이 그를 뫼터에서 편안한 휴식을
맛보게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따라서 그가 대형 카메라에 담은 무덤들은 고요하고 편안하다. 작가가 관조하는 묘지는 여인의 젖무덤처럼 부드럽고,
눈이 덮인 엄동설한의 무덤조차 포근하고 아늑하다. 홀로 묘지를 찾은 작가처럼, 홀로 떨어진 무덤은 번잡한 삶을 떠나 고독을 용인하는 듯하며,
멀리 아파트 단지를 바라보는 무덤은 치열한 삶의 번뇌에서 벗어난 평온한 안식처럼 보인다. 작가가 담은 무덤의 형상은 작가가 묘소에서 경험하는
심적 상태에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죽음에의 유혹, 그것은 다른 한편으로 주검처럼 굳어버린 삶, 생명을 잃어버린 죽음 같은 삶에 대한
고통스런 거부일 수도 있다. 서서히 시들어만 가는 삶에 종지부를 찢고, 새로운 삶, 의미로 충만한 삶을 욕망하는 의식과 상관관계를 맺을 수
있다. ‘황무지 waste land’처럼 불모지가 된 삶에 대한 통렬한 반성, 그러나 생명이 움트는 ‘잔인한 4월’을 받아들일 용기의 부재가
죽음에 대한 애착, 주검의 휴식에 대한 집착일 수도 있다. 홍균은 작가노트에서 엘리어트 T.sS. Eliot의 <황무지>를
인도하는 서시를 되 뇌이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 시구는 로마 네로 황제 때의 궁정시인이었던 가이우스 페트로니우스 Gaius Petronius의
글로 향연을 주최하는 벼락부자 트리말키오가 초대한 아가멤논에게 한 이야기이다. 쿠마의 무녀(巫女)는 아폴로의 총애를 받아 예언의 힘을 얻었고,
영생의 은총을 받았다. 그러나 그녀는 어리석게도 영원한 젊음을 부탁하길 잊었다. 그리하여 무녀는 먼지같이 수많은 나날을 살아 몸이 오그라들어
결국에는 조롱에 넣어져 구경거리가 되었다.
“나는 정말 쿠마에서 한 무녀가 조롱 속에 갇혀 있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아이들이
무녀에게 물었다. ‘무녀야, 넌 뭘 원하니?’ 무녀가 대답했다. ‘정말로 죽고 싶구나’.”
홍균은 자신의 삶이 무녀의 삶과 닮아
있는듯하다고 고백했고, 생명과 의미를 잃어버리고 늙은 무녀처럼 점차 오그라드는 자신의 삶을 질책했다. 작가의 무덤에의 애착, 주검의 자리를
부드러운 시선으로 감싸는 그의 프레이밍은 새로운 삶에 대한 ‘잔인한’ 시도의 어려움과 죽음에의 욕망과 분명한 상관이 있다. 작가가 수년간
집착하는 대상은 이렇게 작가의 고통스런 내면성을 지시하고 있는 것이다.
글 / 최봉림 (사진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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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iginal und Reproduction
캐테 콜비츠 판화展
2006_0510 ▶ 2006_0606

캐테 콜비츠_임산부_석판화_56×42cm_1920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갤러리 고도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6_0510_수요일_05:00pm
갤러리 고도
서울 종로구 수송동 12번지
Tel. 02_720_2223_4
www.gallerygodo.com
이인칭의 관람자: 캐테 콜비츠의 직설 ● 캐테 콜비츠(Kaethe Kollwiz, 1867~1945)의 이름을 말하는 것만으로도 코앞에 이 미술가를 만난 것처럼 눈에 빛을 내던 나의 동료 몇몇을 기억한다. 그 중 하나는 보안사범으로 복역한 이력과 함께 몇 해 전에 발간된 서적에 미중미술가의 한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다. 문학에 종사하는 다른 친구는 1986년에 발간된 콜비츠에 관한 저작의 내용을 꿰찼다. 이들은 대개 그녀의 그래픽에 표현된 인물과 장면에서 억압에 대한 저항의 메시지를 주목했고 그 뜻을 들으려했다. 이들의 관심은 1980년대 이 땅의 다른 관람자와 별반차이가 없었던듯하다. 1980년대의 의식이 자생하는 내부의 현실적 각성을 토대로 생겨난 것이라면 성숙되기 위해 더 많은 시기동안 지속되든지 아니면 이후의 시기에도 연속될 뚜렷한 암시가 되었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 콜비츠를 마주한 지금 나는 일말의 시장기를 느낀다. 뭣보다 콜비츠의 창작물에서 발견되는 분명한 시각적 징표에도 불구하고 왜 들으려고만 했을까? 늦었지만 나는 이제 콜비츠를 보려고 한다. …

캐테 콜비츠_Junges paar(젊은부부)_동판화_30×32cm_1904

캐테 콜비츠_'Eltern'(aus der Folge Krieg)부모_석판화_56×42.5cm_1920
아방가르드에 대한 반응 ● 콜비츠의 생애는 새로운 전통을 선도하는 아방가르드가 극단적 실험으로 미술의 환경을 주도한 때와 일치된다. 그녀는 아방가르드를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오히려 단호히 반대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현대미술의 주변부로 밀려나지 않은 채 냉전체제의 독일 양 진영, 이 모두로부터 추앙받았다. 심지어 극동의 중국에서 마저 환영받았고 1980년대 한국에서는 미술이 소통될 것과 뜻이 미술을 통해 현실에 이루어질 것이란 믿음에 강한 암시가 되었다. 몇몇 섬세한 아방가드의 시각과 형식주의적 진화론자들은 콜비츠의 미술이 쉽게 받아드려지고 그만큼 대중적 접근이 용이함에도 그녀를 신랄하게 비난했다. 콜비츠의 매체가 서술에 종속되어 있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녀와 거의 동시대인 키르히너(Ludwig Kirchner, 1880~1938)나 후배 벌인 놀데(Emil Nolde, 1867~1956)의 변형된 형태와 칠(painting)을 그녀보다 훨씬 새로운 전통에 더 가까운 것으로 봤고 매체의 순수한 본질로 향한 개척자로 이들을 대우했다. 하지만 쉽게 이해되는 콜비츠의 형식적 특성과 인도주의적 주제는 본토뿐만 아니라 그녀의 미술이 소개되는 곳곳에서 대중적 공감을 유발해오고 있다. 뭣보다 판화와 드로잉에서 주제의 깊이와 창의적 기법간의 통합은 이들 비난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현대미술사의 안정된 지위를 보장하고 있다.

캐테 콜비츠_Selbstbildnis_석판화_36×30.5cm_1920
동판화에서 석판화로 ● 콜비츠는 칠로 화가의 길에 접어들었으나 근본적으로 그녀를 대리하는 매체는 선묘(draft)와 조각, 그리고 판화이다. 그녀가 처음 그래픽을 시도한 것은 동판화(etching)를 통해서이다. 그 결과 잘 알려진 「농민전쟁」연작(1903~08)을 비롯한 「젊은 부부」(1904)그리고 「죽은 아이를 안고 있는 여인」(1903)과 같은 특출한 동판화들을 보이게 되었다. 이들 판화는 표면의 조직(texture), 대비, 잉크, 그리고 종이에 대한 그녀의 집중된 관심이 잘 드러난다. 1910년대를 포함하는 그녀의 초기 작 대부분은 16세기 농민전쟁과 19세기 실러지안(Silesian) 지방 직조공들의 소요를 다룬 문학작품이나 역사적 사건을 주로 주제로 삼고 있다. 1919년 경 콜비츠는 지나치게 세밀한 동판화의 제작을 그만 두고 그것보다 더 단순한 표현수단을 위해 목판화와 석판화(lithography)를 자신의 매체로 선택했다. 이로써 그녀의 제작은 개념적 목적에 이전보다 훨씬 부합하게 되었다. 그녀는 석판에 직접 그려서 판에 이미지가 생겨나게 했고 그 결과 특유의 소묘 양식인 「손길을 기록하는 특질」에 도달했다. 석판화의 단순화된 속성은 그녀가 품은 사회적 문제에 잘 맞았다. 전장에서 아들을 잃은 1차 대전을 분수령으로 1918년 이후 콜피츠는 상당수의 개별 이미지들을 제작했다. 이들은 낙태, 알코올 중독, 전쟁, 도회지 생활의 여건 등과 같은 사회적 문제에 관한 것들이다.

캐테 콜비츠_Nachdenkende Frau 1(숙고하는 여인) Fassung_석판화_45.5×37.5cm_1920
선의 생기와 형태의 견고함 ● 「직조공의 봉기」(1893~1896)를 비롯한 「농민전쟁」 연작을 포함하는 초기 동판화들에서 콜비츠는 손놀림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강인하고 긴 선들을 통해 자신의 주제를 그렸다. 이 선들은 각각의 가닥과 결이 선명하고 얽혀있지 않다. 그것들은 색면의 덩어리를 완성하지 않음에도 명암의 대비, 인물의 윤곽, 그리고 화면의 분위기를 창출한다. 그녀에 의하면 「단순하고 제한되지 않은 방법은」 대상들의 「삶에 생기를 불어 넣는다」고 한다. 이는 잘 계획된 무대의 한정된 조명 아래에서 배우들의 무리 진 움직임을 스케치할 때 곧잘 발견된다. 즉 조명에 반사되는 형태와 반짝임이 망막에 감지되는 간헐적이고 순간적인 시지각에 관한 것이라 하겠다. 콜비츠는 상상이나 연상과 같은 기억에 의존해서 완성된 형태를 그대로 복원하기 위해서보다 오히려 곧장 목격되는 생기를 기록하는 과정에서 그의 독특한 선을 채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독일 사실주의의 전통을 전적으로 따르지 않은 방법에서 그녀가 자신의 경력을 출발시키고 있음을 확인시킨다. 뒤러(Albrecht D?rer, 1471~1528) 이래로 계승되어 온 독일의 사실주의는 자연 대상의 온전한 환각을 위해 제작의 방법이나 재료의 노출을 어떻게 하면 적극적으로 감추느냐에 승부를 걸었다. 그것들이 드러나는 것은 미완성으로 여겨왔다. 격정적 행동과 우울은 전형적 독일식 사실주의와 동일한 주제이지만 그녀는 자신의 제작 공정과 재료의 생기를 노출 시키는 지점에서 선배나 거장과 구별되는 출발을 한 것 같다. 대상을 태연하게 그리고 온전히 관조하기 위한 환각의 전통을 따르지 않는 점에서 콜비츠의 뚜렷한 혁신은 스스로 살아 있음을 확인하고 또한 본 것을 그대로 기록하겠다는 의지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캐테 콜비츠_Verbruederung(의형제를 맺다)_석판화_32×22cm_1924
한편 그녀의 실천은 이웃한 표현주의자 동료들이 주제를 설명하기 위한 환각과 재현을 상당히 포기하고 대신에 광폭한 몸짓과 재료의 분출로 독백에 도달한 것과 대비된다. 콜비츠의 주제는 이들에 비해 여전히 전통적 형상에 의존해 있고 심지어 서술적 삽화를 벗어나지 못하는 외관으로 비쳤기 때문이다. 1차 대전 이후 그녀의 세밀한 선들을 단색조로 채워진 면으로 대체되고 형상과 배경간의 경계를 견고히 하는 윤곽에 집중함으로써 재현된 형상을 더욱 강화하기까지 했다. 이러한 그녀의 구상성(figurative)이 곧장 형식주의자의 비평적 표적이 되어왔다. 그렇다고 그녀의 판화와 소묘(drawing)가 전통에서 아방가르드로 향한 한 지점이거나 그 양자간의 절충적 위치에 있는 것으로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관람자에게 단숨에 받아드려지고 극명하게 단순하고 절제된 형태의 직설(literality)을 보임으로써 그 때까지 미술이 시각적 진실을 추구해온 경로를 요약해 보였다.

캐테 콜비츠_Hunger(배고픔)_녹판화_55×34.5cm_1923
관람자를 창출하는 알레고리 ● 1920년 일기에서 콜비츠는 자신이 그리고 있는 아이가 공포에 저려 홀로 울고 있음에도 그 아이를 그렸다고 한다. 그 때 그녀는 그러한 아이에 대한 「옹호자로서의 책임을 회피할 권리가 없음을」 깨닫게 되었고 그 책임이란 곧 끊임없이 쌓인 사람들의 고통을 표현하는 일이라고 기록했다. 이는 콜비츠가 자신의 매체를 단순한 감상물이 아닌, 그와 같은 인본주의를 실천하는 방식으로 간주함을 암시한다. 하지만 그녀의 화면에는 핍박의 구체적 대상은 재현되어 있지 않다. 억압하는 주체의 분명한 부재를 통해 억압 받는 대상의 통증을 증폭시킨다. 콜비츠의 매체를 마주한 관람자는 자신의 등 뒤로부터 그 통증을 야기하는 힘을 의식하게 된다. 즉 눈앞에 펼쳐진 생생한 통증의 현장은 가까운 시간 혹은 당장 지금 막 벌어진 참상에 관한 것이다. 관람자는 곧 인근에 그것을 가능케 한 힘을 의식하게 된다. 이러한 관람자의 창출은 미술의 역사에서 아주 특이하다. 콜비츠의 선배들이 제작한 매체는 관람자에게 친절하게 재현된 장면을 관조할 안정된 장소를 제공한다. 이때 관람자는 그 매체를 삼인칭의 시점에서 조망한다. 따라서 그 선배들의 화면에 재현된 통증이나 우울함은 관람자에게 태무심하게 그것을 바라볼 수 있게 한다. 반면 그녀를 이웃하는 표현주의자들의 독백은 일인칭의 관람자를 생산한다. 그래서 표현주의의 화면 앞의 관람자는 항상 불안하거나 그대로 분노한다. 하지만 콜비츠가 생산하는 이인칭의 관람자는 통증에 억눌린 인물들에게 뭔가 직접적 행동을 해주어야 함을 각성한다. 그 실천은 곧 위로, 포용, 혹은 치유와 같은 인도주의적 책임에 관한 것이다. 콜비츠의 화면에서 인물들의 극적 역할이 얼핏 공연을 앞 둔 연극을 설명하거나 무대에 올려진 공연물을 그린 것처럼 보일 염려에도 불구하고 그가 대상의 재현을 버리지 않은 것은 바로 여기에 있다. 더욱이 연작이든 개별 단위의 작품에서든 하나의 장면은 그녀의 이웃하는 다른 작품과의 연관에서 인도적 책임의 수행에 관한 각성을 암시하는 뚜렷한 알레고리를 형성한다. 그것은 제작의 공정과 매체의 물리적 생기를 유지하면도 주제의 서술을 가능케 한다. 미술가의 몸짓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선이나 윤곽이 서술하는 사건의 현장이 다른 곳, 지난 때의 일이 아니라 바로 「그대」(you)의 일임을 각성시키는 한편 그 억압의 힘과 주체가 추상적 권력이나 시대의 탓이 아니라 바로 「그대」임을 깨우친다. 따라서 콜비츠의 매체 앞에 서 있는 관람자는 치유 받아야 할 대상임과 동시에 상처를 야기한 원이 된다. …

캐테 콜비츠_Abscide(이별)_브론즈_17.5×11.5×3.8cm_1940
사건의 서술적 진술로 비쳐지는 콜비츠의 그래픽은 추상회화와 같은 매체의 순수성을 향한 진화론의 기대에서 받아드려지지 못한 한편, 세기말과 대전으로 말살되는 인간성에 대한 표현주의식의 진솔한 독백이 되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대상에 순간적으로 반응하는 손놀림의 기록과 소묘로 재료의 생기와 제작의 공정을 자신의 화면에 남기는 직접성을 획득했다. 이를 통해 그는 아방가르드에 반응했고 심지어 윤곽의 형태를 견고히 함으로써 시각의 직설을 실현했다. 콜비츠는 이러한 시각의 형식과 현실에 실재하는 문제를 연속되는 장면의 변화와 알레고리로 종합했다. 이는 재현을 점차 버리고 순수성으로 전개해가는 것으로 보는 현대미술의 한 흐름과 전적으로 일치하지 않는다. 재현은 인간의 기억과 경험에 의존한다. 반면 형식의 순수성은 기억이나 경험과 같은 과거를 개선하려 한다. 이 양자간의 선택국면은 콜비츠 당대의 예술가들이 처했던 난점이었다. 그녀는 이 선택국면에서 그 흐름이 요구한 순수성을 이미 출발에서 시각적 직설을 통해 드러냄과 동시에 기억과 같은 개념성을 재현으로 구성된 알레고리를 통해 실현함으로써 이 양자를 통합했다. 여기서 나는 선택국면에서 물리적 순수성으로 선택해간 미국 미술이 몇몇 절충주의를 정당화한 사례를 기억한다. 재현을 했으되 사물이 된 죤스(Jasper Johns, 1930~)의 절충주의적 애매함이 미술의 새로운 의미를 탄생하게 했다는 지적이 그 사례 중 하나이다. 콜비츠는 시각의 분명한 형태와 개념의 작용인 기억의 연상을 종합함으로써 훨씬 앞서서 이미 그 새로움을 획득했거나 예고한 것이 된다. 지금 여기는 1980년대의 희망과 기대가 단절된 채 그 애매함의 변형물들이 모방되고 난무하고 있다. 어쩌면 그와 같은 절충주의를 보지 못하고 오히려 그 너머에 들려오는 메시지에 지나치게 귀 기우리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나의 시장기는 각성의 기회가 지속되지 못한 것에서 생겨난 듯하다. ■ 이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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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읏한 공
노순택 사진展
2006_0512 ▶ 2006_0523 / 일요일, 공휴일 휴관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이미지 속닥속닥 Vol.040817a | 노순택 사진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6_0512_금요일_05:00pm
신한갤러리(구 조흥갤러리)
서울 중구 태평로 1가 62-12 신한은행 광화문지점 4층
Tel. 02_722_8493
www.chohungmuseum.co.kr
“그러니께, 한 7-8년 됐을꺼여요. 우리가 뭔 줄 아남? 그냥 둥그런 걸 높은데다 세워 놓으니께 물탱크나 되는갑다 생각했제. 낭중에는 사람들이 기름탱크라고도 하고, 뭔 안테나라고도 하더만. 우리가 그런 걸 알아서 뭣한데. 그냥 큰 공이다 생각하믄 맴 편한 것 아녀? 멀리서도 이 공만 보면 저그가 우리 동넨갑다 생각하고 반가운 맴이 들기도 하더라니께.” ● 공의 나이는 어림잡아 여덟 살쯤이다. 30미터의 거구. 누구냐 넌. ○ 이 작업은 경기도 평택 팽성읍 대추리 황새울 들녘에 우뚝 선 야릇한 공과 그 공 주위에서 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잇고 있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1. 공 ● 크다. 이 공은 반경 15km 밖에서도 쉽게 눈에 들어온다. 도시의 마천루를 생각하면 30미터 정도의 구조물은 대단치 않은 것이지만, 높은 산이 없고 논과 밭이 드넓게 펼쳐진 평택 팽성읍의 지리환경에서 30미터 높이의 흰 공은 단연코 눈에 띄는 물건이 아닐 수 없다. 멀리서 보았을 때, 이 공은 그저 그런 물탱크가 아닐까 하는 추측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저렇게 반듯한 공 모양의 물탱크는 어딘지 낯설다. 유류, 특히 액화가스를 저장하는 탱크가 저런 공 모양을 하고 있는 경우는 많다. 공 모양의 탱크는 고압을 견딜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폭발 가능성이 높은 유류나 가스탱크는 지상에 최대한 가깝게 설치하거나 지하에 매설하는 것이 원칙이다. 희다. 공은 마치 스스로 빛을 내는 것처럼 밝게 보인다. 인공적인 반사물체가 많지 않은 농촌의 들녘에서 이 공은 봄여름의 짙은 초록 위로, 가을겨울의 어두운 갈색 위로 한껏 도드라져 스스로를 뽐내고 있다. 크고, 희다. 너른 들녘을 전경으로 우뚝 솟은 크고 흰 공. 멀리 안중읍에서도 관측할 수 있는 너. 대수롭지 않게 다가와, 야릇하고도 특별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너. 너는 대체 누구냐.

2. 구글 어스 ● 최근에 네티즌의 관심을 모았던 구글 어스(Google Earth)를 통해 이 공을 찾아보았다. 승용차까지도 판독할 수 있을 정도의 해상력을 자랑하는 미국의 인공위성은 경이로움과 두려움을 동시에 안겨준다. 지구 밖의 시선에서 시작해 우리집을 들여다보고, 친구와 부모님집을 찾아다니는 여정은 재미있다. 내친김에 평양과 청와대, 이집트의 피라미드도 단 몇 분 안에 넘나들 수 있다. 경이로움 그 자체다. 허나 우리에게 공개된 장면이 이 정도라면, 팬타곤의 군사위성이 찍어대는 장면의 해상도는 어떨까. 두려운 일이다. 기술은 경이롭지만, 기술을 휘둘러대는 자들은 두렵다. 하여튼. 팽성읍 대추리, 도두리의 너른 들녘이 한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공이 위치한 지역은 결정적으로 뿌옇게 흐려져 있었다. 해당지역은 군사시설 지역이었다. 나는 이미 그 공이 주한미군 ‘캠프 험프리’ 소유의 장비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구글 어스를 통해 내가 얻은 것은 선명하게 보이는 마을의 일부와 들녘, 뿌옇게 흐려진 캠프 험프리의 윤곽을 어림잡아 콕 찍은 흰 공의 좌표뿐이었다. 17개의 디지털 숫자였다.

3. 없던 정도 싹트는 법 ● 나는 지난 3년 동안 수시로 대추리를 드나들었다. 미군기지 철조망 옆으로 다닥다닥 붙어 있는 살림집들은 낯선 풍경이었다. 마을은 거대한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대추리를 가면서, 그 너른 황새울 들녘을 보지 않는다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다. 황새울 들녘에 서 보았으면서 저 흰 공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저게 뭘까.... 호기심이 들었지만 굳이 묻지는 않았다. 미군기지 안에 있으니, 응당 군사시설물일 것이고, 생긴 모양을 보니 대단한 물건이라기보다는 물이나 기름 따위를 저장하는 탱크이리라. 저게 뭘까.... 강한 호기심이 발동한 것은 저 구조물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재차 확인하면서부터였다. 저 공을 바라보며 수년간 생활해 온 마을 주민들도, 오랫동안 미군기지철수 운동을 해왔다는 활동가도 흰 공의 정체에 대해 뚜렷하게 아는 바가 없었다. 오래 보면, 없던 정도 싹트는 법이던가. 보면 볼수록 공은 내게 야릇하고도 특별한 느낌을 쏘아댔다. 점차 흰 공을 담은 필름양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흰 공과 사람들, 곡식, 새, 꽃, 나무, 풀, 기러기, 가창오리, 똥개, 황소, 고양이, 물, 철조망, 집, 트랙터, 자동차, 달, 구름, 깃발이 함께 필름에 담겼다.

4. 레이돔 ● 사진을 찍은 양이 피사체에 관한 지식의 질과 양에 비례한다면, 아마도 세상의 사진가들은 셔터를 더 많이 누르리라. 허나 사진의 양과 피사체에 관한 지식의 양은 상관은 있을지언정 비례하지는 않는다. 나는 여전히 흰 공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나는 한미연합사 공보실에 협조문을 띄웠고, 지식검색을 지원하는 포털 사이트에 여러 장의 사진과 함께 이 구조물이 무엇인지를 문의했다.
한미연합사 공보실에서는 답신이 오지 않았다. 다행히 지식검색창에서 누군가 쪽지를 보내왔다. “이건 공이 아니라.... 혹시 사진촬영지 부근에 공군비행장이 없던가요? 공군비행장 부근이라면 레이더입니다.” 뒤늦은 얘기지만, 이 정도는 나도 추측하고 있었다. 흰 공의 정확한 명칭과 재질, 용도를 알고 싶었던 나는 그 누군가에게 재차 물었다. “미안합니다만 성능이나 재질은 군 보안사항으로 공개하지 않으니까 모르겠고요, 더더욱 미군들이 사용하는 장비들은 더 공개되어 있지 않습니다. 직사각형의 파리채 모양으로 생겨가지고 돌아가는 레이더보다는 이 원형의 레이더가 탐지능력이 훨씬 뛰어나다는 정도만 알고 있으며, 규모가 큰 미공군기지에서 사용하는 레이더들은 대부분 이런 원형의 레이더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미공군기지에서 카투사 레이더병으로 복무하다 전역한 사람들은 이런 레이더의 성능이나 재질을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되오니 한번 이런 사람들을 한번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여기까지였다. 전문가의 협조를 구하는 수밖에 없었다. 과거 공군에 근무했던 군사전문가와 오랫동안 분단 관련 다큐멘터리 작업을 해왔던 사진가 이시우 씨의 도움을 통해 흰 공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레이돔. radar + dome = radome. 뭐든 이름이 중요한 법이다. 이름을 알고 나자, 얻을 수 있는 정보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여러 의문이 해소되는 동시에, 이것의 다양한 용도와 제기되었던 문제들도 알게 되었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레이더는 접시모양의 안테나가 회전하는 모양새를 띠고 있다. 레이돔은 이러한 레이더를 보호하기 위해 유리섬유 등의 특수 절연재질로 만들어진 막을 둥글게 씌운 것이다. 가스저장 탱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원형은 내부의 압력을 지탱하는 데에도 훌륭한 역할을 하지만, 외부의 압력을 막아내는 데도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형태다. 레이돔의 보호막은 레이더의 성능을 저하시키지 않으면서도, 비와 눈과 바람 등으로부터 레이더를 보호할 수 있는 특수 재료를 사용하고 있다. 레이더의 성능은 탐색거리와 정확성으로 가늠되는데, 이는 레이더의 크기와 직결된다. 따라서 동일한 기술 수준을 적용한 레이더라면, 레이돔의 지름이 클수록 고성능 레이더가 된다.

레이돔은 지상레이더뿐만 아니라, 항공기와 선박에서도 사용된다. 특히 정보 기술력이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현대전의 전투기에서 레이돔은 빠질 수 없는 요소다. 일반적인 전투기에는 앞머리에 레이돔을 장착하고 있으며, 가공할 파괴력을 가진 미군의 공격용 헬기 AH-64 롱보우 아파치의 경우 주날개 위에 둥그런 레이돔을 달고 있다. 특히 공중경보통제시스템(Airborne Warning And Control System, AWACS)이라 불리는 조기경보통제기 E-3는 지상 10,000m 고도에서 공중지휘 통제소의 역할을 하는데, 이를 뒷받침하는 핵심 장비가 기체 위에 탑재된 지름 9.14m의 원반모양 레이돔이다. E-3의 수색거리는 400km로 알려져 있으며, 탐지 범위 안에 있는 600개의 목표물을 분석해 그 중 200개의 목표물을 식별, 추적할 수 있다. 참고로, 서울에서 평양까지 거리는 230km에 불과하다. 나는 엽서에 인쇄된 흰 공의 사진을 여러 사람에게 보여줬다. 우거진 잡풀 사이로 흰 공이 작게 보이는 사진이었다. 사람들은 대게 물탱크가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지만, 사진만 보고 대뜸 골프공 아니냐는 대답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모 갤러리 대표의 첫마디는 “아니 요즘은, 골프에 관한 작업도 하시나 보죠?”라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이 사진은 마치 티샷을 날리기 위해 티펙 위에 올려둔 골프공과 꼭 닮았다.

5. 골프공을 해체하라 ● 지금 이 순간, 당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누군가 감시하고 있다. 공포영화에나 나올 법한 얘기가 20세기의 마지막 순간, 월드뉴스가 되어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화제의 주인공은 에셜론(Echelon Project).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비밀암호체계를 해독하기 위해 미국과 영국의 주도로 체결한 협정을 바탕으로 오늘날까지 운영되고 있는 거대 첩보조직이다. 에셜론의 정체는 1988년 영국 언론인 던컨 캠벨에 의해 폭로된 이후, 1997년 영국 텔레그라프, 1999년 BBC의 심층 취재를 통해 베일을 벗기 시작했다. 지난해 EBS는 프랑스 카레레(CARRERE)사가 제작한 다큐멘터리물 ‘비밀은 없다, 통신감청망 에셜론’을 방영하기도 했다.

요점은 이렇다. 에셜론 프로젝트는 미 국가안보국(NSA)의 주도로 영국의 통신본부(GHCQ), 호주 방위통신대(DSD), 뉴질랜드 통신안보국(GCSB), 캐나다 통신안보부(CSE) 등 앵글로색슨 5개국의 정보기관과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있다. 에셜론은 지상 기지와 통신위성, 고성능 신호인식 컴퓨터를 연결, 시간당 200만건, 매달 1억 건의 전화, 팩스, 이메일의 내용을 검색한다. 감시 범위는 지구 전역이다. 에셜론은 음성인식장치와 ‘딕셔너리’로 불리는 정보검색 시스템을 통해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키워드가 들어가는 모든 정보를 수집한다. 5개국 정보기관의 에셜론이 수집한 자료는 미국 국가안보국(NSA)에서 통합, 목적에 따라 분류돼 각국으로 전송된다. 이들 5개국 이외에도 미국을 도우며 감청망에 참여하는 국가들이 존재하는데, 한국도 여기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1년 5월, 유럽연합(EU) 의회는 보고서를 통해 에셜론을 ‘미국이 세계적인 차원에서 은밀하게 운영을 주도하는 전자스파이시스템’으로 공식 언급했다. EU보고서는 기업간 계약 등 사업비밀을 전달하는데 전화 팩스 인터넷을 사용하지 말 것을 권고하고 있다.

1987년부터 1993년까지 통신센터에서 메시지 송수신과 자료수신 업무를 맡았다는 캐나다 통신보안국 전직 요원 프레드 스톡은 당시 국제적십자사, 그린피스, 국제사면위원회 등과 대인지뢰금지운동을 하는 다이애나 전 영국 황태자비, 교황까지 감시했다고 언론에 털어놨다. 에셜론의 정체를 다룬 수많은 매체들이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등장하는 빅 브라더를 비유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영국 북요크셔의 멘위드 힐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미군 도청기지가 있는데, 이 기지는 걸프전 당시 중동 지역의 통신내용을 신속 입수해 미국의 승리에 기여한 공로로 ‘올해의 기지’상을 받은 바 있다. 이 기지에는 골프공 모양의 레이돔 22개가 있다. 한편 미국의 동맹국인 호주의 중부 사막지대에도 맨위드 힐 기지와 같은 최첨단 미군기지가 있다. 파인 갭(Pine Gap)이라는 이름의 이 기지는 미국의 중앙정보국(CIA), 국가안보국(NSA), 국가정찰국(NRO) 등이 합동 운영하며, 첩보위성을 통해 전 세계의 모든 전파를 감시하고 있다. 이 기지에도 골프공 모양의 레이돔 12개가 있다. 언론에 따르면, 미국은 파인 갭 기지에 레이돔을 추가 건설해 미사일방어(MD) 체제의 인공위성 감시시스템(SBIS)을 구축할 예정이다. 영국과 호주의 평화운동가들은 골프공 모양의 기지를 그려 넣은 피켓을 들고, 기지해체 운동을 벌여왔다.

황새울 들녘의 골프공이, 에셜론이 운용하는 골프공과 같은 용도인지는 알 수 없다. 한 군사전문가는 “만약 그렇게 중요한 군사시설이라면, 누구나 쉽게 볼 수 있고, 근거리까지 접근 가능한 곳에 설치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기상관측 레이더일 가능성도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실제로 레이돔은 기상관측을 위한 목적으로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허나 기상관측 레이돔의 경우 황새울의 레이돔보다는 현저하게 작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울러, 인접한 오산 공군기지와 캠프 험프리 두 기지에서 수시로 정찰기가 뜨고 내린다는 점, 이들 미군기가 멀리 오키나와에서부터 북한지역까지 정찰활동을 벌여왔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 레이돔의 용도를 추측하기란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설령 기상관측용이라고 해도, 이것이 ‘누구와 무엇을 위한 기상관측인가’라는 문제의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 군사전문가는 “한반도에 있는 미 육군 기지 중에서 중요도를 꼽으라면 단연 평택일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왜냐하면 이곳이 통신감청의 핵심기지이기 때문이다. 미 육군은 이곳에서 통신정보수집 항공기를 운용하고 있다. 겉으로는 중요성이 없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미 육군으로서는 용산 미8군 기지보다 더 중요한 곳이 바로 평택일 것이다.”
그래서, 황새울의 골프공은 그리 단순한 물건이 아니다.

6. 유연 ● 한미 양국은 용산 미군기지와 경기 북부 일대의 2사단 등 한강 이북에 배치되어 있는 미군기지들을 평택으로 확장, 이전하기로 합의했다. 한국정부는 기지이전에 필요한 천문학적인 비용의 대부분을 떠안았으며, 그 규모는 8조 원을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기지 재배치는 미국의 세계적인 군사패권 전략의 일환이며,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이름 아래 주한미군을 아시아태평양 신속기동군화 함으로써 동아시아에 전쟁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특히 한반도는 남북한 당국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촉즉발의 전쟁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고 군사전문가들은 경고한다. 북한의 미사일 사정거리 밖으로 재배치된 미군이 첨단의 공군력을 이용해 언제든 타격을 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남북한 양측의 전면전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중국과 미국, 일본 등 이해당사국 모두가 개입하는 국제전으로 확전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펜타곤의 생각은 주한미군을 아시아태평양 신속기동군화 함으로써 기존의 붙박이형 지역방어군에서 벋어나 선제공격 능력을 갖춘 미래형 기동군으로 탈바꿈하겠다는 것이다. 전략적 유연성은 이를 뒷받침하는 개념이다. 평택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실현시켜줄 요충지로 꼽히는데, 이미 미군기지가 들어서 있는데다, 평택항과 오산공군기지를 끼고 있어 육해공군을 통합적으로 운용하고, 쉽게 군사력을 이동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전략적 유연성 개념이 현실에서 적용되는 경우로 중국과 대만의 군사적 충돌상황을 꼽고 있다. 이 때 주한미군이 대만의 편을 들어 전쟁에 개입하고, 중국은 미군을 공격하기 위해 한반도에 미사일을 쏠 것이라는 예측이다. 평화활동가들은 “평택미군기지 확장을 근간으로 하는 주한미군의 아시아태평양 신속기동군화가 필연적으로 한국군의 아시아태평양 신속기동군화를 강제할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적용 범위를 한반도에서 아시아태평양으로 넓히는 일이며, 미군의 과거를 살펴볼 때 침략동맹의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평택미군기지 확장문제가 팽성읍 농민들만의 문제로 치부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흔히 경직성은 부정적 의미로, 유연성은 좋은 의미로 소통되는데, 전략적 유연성은 단어의 호감도를 빌어 나쁜 이익을 도모하는 대표적인 사례라 하겠다.

7. 사람들 ● 다시 하얀 공으로 돌아오자. 하얀 공의 크기와 색깔, 용도 따위에 흥미를 갖지 않고도 이곳에는 사람들이 살아왔다. (대추리에서는 별 시답잖은 공에 호기심을 보이는 내가 되레 이상한 사람이다.) 이곳의 농부들은 일제 강점기 일본군의 비행장 건설로 집과 땅을 빼앗겼다. 해방을 맞아 이제 사람답게 사는가 싶었는데 전쟁이 터졌다. 1952년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미군들은 불도저로 집과 농토를 뭉개버렸다. 사람 사는 집이 그러했을진대, 죽은 조상을 모셔둔 산소가 남아날 턱이 없었다. 세간을 챙길 틈도 없었다. 노인들이 놀라서 죽고, 아이들은 추위와 배고픔에 죽었다. 산 아래 굴을 파고, 움막을 지어 초근목피를 씹어가며 목숨을 부지했다. 산 사람들은 죽지 못해 살았다. 올해 일흔두 살 잡순 홍남순 할머니는 스물네 살에 팽성으로 시집을 왔다. 남편과 바다를 메워 “죽을똥 살똥 다 싸가며” 땅을 일궜다. 오남매를 키워 시집장가 다 보내고 살아온 것도 그 땅 덕분이었다. 한낮의 땡볕 아래서 대추리 미군기지 철조망 옆 밭에 팥을 심던 홍남순 할머니는 “미군놈들 기지확장 문제 때문에 이 나이에 죽을 맛을 다 본다”며 울먹거렸다. 팽성읍 도두2리에 사는 예순아홉 살 잡순 문차분 할머니는 경북 상주에서 태어났지만 남편과 결혼해 어찌어찌 살다가 이곳으로 흘러들어왔다. 그래도 20년이나 살았으니 고향이나 진배없다. 농사지어 사는 것도 겨우겨우 사는 일인데, 집도 땅도 다 뺏기면 또 어디로 흘러들어 살아야 할 지 걱정이다. 이 말년에 말이다. 칠십 평생을 땅만 일구며 살아온 조창목 할아버지는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팽성 도두리 벌판에서 주최한 평화미사 도중 복받쳐 오르는 설움을 눈물로 토해냈다. 여든아홉 살 잡순 조선례 할머니는 해방 뒤 미군정이 들어서면서 대규모로 확장된 기지에 밀려 집과 땅을 빼앗겼다. 미군 불도저는 이주할 틈도 주지 않고 논밭을 짓이기고 담을 허물었다. 무서워서 오들오들 떨기만 했지, 한 마디 대꾸 할 줄 몰랐다. 할머니의 옛집 위에서 지금은 미군 비행기가 뜨고 내린다. 지금 대추리는 진짜 대추리가 아니다. 밀리고 밀려와 가까스로 터를 잡은 가짜 대추리다. 진짜 대추리를 그리는 할머니의 꿈은 미군을 섬기는 이 땅에서 불온하다.

마흔넷 먹은 ‘젊은이’ 신종원 씨는 대추리에서 태어났다. 미군기지에서 터져 나오는 총소리건, 검은 연기건, ‘태어날 때부터 보고 들었던 거니까’ 좋고 나쁘고를 모르고 여지껏 살아왔다. 젊은 시절 이런저런 방황도 했지만, 고향이 좋고 농사도 잘만 지으면 먹고 사는데 큰 걱정은 없을 것 같아 농사일에 매달렸다. 그런데 이런 제길, 땅을 내놓으란다. 자기 땅에서 쫓겨난 아버지 세대의 설움을 자식보고 이어가란다. 이런 염병할 짓이 또 있을까. 그는 요즘 농사일에 매달리지 못한다. 이 농사꾼에게 팽성대책위 조직국장이란 낯선 직책이 주어졌다. “나는 대추리에서 태어났지만,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 외지를 떠돌았어요. 그러다가 대추리 사람을 남편으로 만나 열여섯 살에 다시 대추리로 돌아온 거예요. 나는 배운 것도 하나 없어요. 겨우 내 이름만 쓸 줄 알지, 누가 주소 좀 적어달라면 진땀께나 흘려요. 그래도 여기 대추리 사람들하고 오순도순 잘 살았어요. 13년 전에 남편이 죽고, 새끼들도 출가해서 다 외지에 사니깐, 나한테 남은 건 대추리밖에 없어요. 미군 비행기 소리요? 수십년을 귀에 박히게 들어온 거니까 암시랑도 안했어요. 그런데 요즘은 무슨 소리만 나도 가슴이 벌렁벌렁 잠을 못자겠어요. 이제 쫓겨나면 어디서 살아야하나 싶고, 오만생각이 다 들어요. 새끼들이 나를 받아주기야 하겠지만, 누가 새끼들 짐이 되고 싶나요. 나는 그냥 내 평생 이웃하고 살아온 사람들하고 늙어죽도록 함께 살고 싶어요. 이게 내 소원이에요. 우리 마을사람들 진짜 너무 고생하고 살아온 사람들이에요.” 예순아홉 살 김월순 할머니는 조용하고 수줍게 살아온 이야기를 건넨다. 미군기지 철조망 바로 옆에 살면서도 미군 미운 줄 모르고 살아왔다. 그 사람들 미워한다고 지난 과거를 돌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가만있는 우리를 쫓아내겠다니....” 할머니는 길바닥에서 열린 미사에 참석해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를 올렸다. 오늘, 이 바람 부는 들녘에서도 할머니는 빌고 또 빌었다. 삶의 터전을 잃을 지경에 놓인 사람들은 흰 공에 흥미를 가질 여력이 없다. 아무리 흉측한 물건이라도, 이 땅에서 쫓아내지만 않는다면 모두 감수하고 조용히 농사지으며 살리라.

8. 얄읏한 공 ● 얄읏하다는 말은 우리말 사전에 없다. 나는 숱하게 공을 바라보면서 참 요상하고, 야릇한 물건이라는 생각을 키워왔다. 이 공이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를 알아가는 과정 속에서, 미군기지확장 문제로 세 번이나 강제이주를 해야 할 위기에 처한 대추리, 도두리 농민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과정 속에서, 나는 주한미군이 미웠다. 아주 얄미웠다. 덩달아 공도 얄미워졌다. 사람을 먹여 살려온 너른 들녘에 우뚝 솟은 흰 공은 사람 죽이는 일을 거드는 물건이었다. 이 얄미운 공을 녹여 호미를 만들고, 옷을 지어 입을 수는 없을까.

9. 에둘러 ● 나는 에둘러 갔다. 나는 여전히 위기에 몰린 이 마을 농민들의 삶과 국방부에 의해 처참하게 짓이겨진 들녘을 더 많이, 정면에서 찍고 있다. 언젠가 나는 ‘지구를 지켜라’라는 영화를 보고 울었다. 현실의 고단함 위에 상상력을 우스꽝스럽게 끼워넣은 영화였다. 어떤 친구에게 그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더니, “그런 영화는 이제 보기 싫다”는 것이다. 그 나름 비판적인 사고를 가진 친구였는데, 이제 그런 힘든 장면은 보기 싫다는 것이었다. 그런 장면들로 인해 우울한 하루를 보내기 싫다는 얘기였다. 이런, 제길. 어찌 보면 내 사진은 다 그런 작업이다. 나는 그렇고 그러며, 이렇고 이런 내 작업 스타일을 버릴 생각은 없다. 그래도 정면성에서 오는 당혹스러움과 거친 느낌을 어떻게든 요리해야 할 필요는 느낀다. 그것을 살리는 방향이건, 살짝 틀어보는 방향이건. 그래서 에둘러 간 것일까. 암튼 나는 에둘러 갔다. 애달픈 농민으로 가지 않고, 빛나는 흰 공으로 갔다. 흰 공으로 먼저 갔지만, 흰 공과 함께 고단한 삶을 살아온 황새울의 농민들에게로 이야기가 흘러가기를 바랐다.(정면에서 다룬 황새울의 농민 이야기는 따로 풀어볼 생각이다.) 따지고 보면, 황새울의 농민에게 흰 공은 아무것도 아니다. 황새울은 지금 공 타령 할 때가 아니다. 나는 다만 저 흰 공이 미군지를 상징하는 대리물이라고 상상했을 뿐이다. 나는 황새울에서 작은 사진관을 운영하며 찍었던 대추리, 도두리 농민들의 얼굴 사진 600여 장을 엮어 크고 아름다우며, 우리가 꼭 지켜야 할 둥근 공도 만들었다. 전시장을 찾은 관객들은 흰 공 모양의 뻥튀기 하나를 받는다. 천천히 작품을 관람하면서 관객들은 흰 공 하나를 먹어 없앨 수 있다. 사람 죽이는 일을 돕는 흰 공은 사라져야 하고, 사람을 먹여 살려온 황새울의 둥근 얼굴들을 이대로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관객들은 나가는 길에 너무도 맛난 평택의 쌀, 황새울의 흰 공을 보면서 자란 쌀 한 줌을 사갈 수도 있다. ■ 노순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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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 캡슐
박성민 회화展
2006_0511 ▶ 2006_0520

박성민_Ice Capsule_캔버스에 유채_65.1×90.9cm_2006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박영덕화랑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6_0511_목요일_05:00pm
박영덕화랑
서울 강남구 청담동 79-13번지
Tel. 02_544_8481
www.galeriebhak.com
박성민의 아이스 캡슐, 물질의 삼태를 담은 기억창고 ● 한 작가가 자신의 색깔을 찾아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그 색깔을 꾸준히 지속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문제다. 우리는 이 두 가지의 과제를 이뤄나가는 작가에게 신뢰감을 얻기 마련이다. 또한 그러한 과정을 함께 지켜보는 것은 더없이 소중한 기쁨이다. ● 처음 박성민의 작품을 대하게 된 대부분의 이들은 차가운 얼음에 대한 선입견으로 ‘박성민의 작품은 차갑다’라는 오해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조금만 더 유심히 그의 작품에 애정 어린 시선을 건넨다면, 의외로 ‘박성민의 얼음엔 따뜻한 기운이 감돈다’는 사실을 깨닫는데 그리 오랜 시간을 할애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차가운 기운보다는 오히려 생명의 싱싱하고 신선함을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다는 점이 그의 매력이다. 마치 그 얼음 속엔 가장 화려하고 정점에 오른 생명력을 채집해 놓은 듯 삶의 환희와 미소가 한가득 피어오르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박성민_Ice Capsule_캔버스에 유채_65.1×90.9cm_2006
물질의 삼태를 품은 아이스캡슐 ● 박성민 작품의 트레이드마크는 얼음조각 시리즈이다. 2002년 5월부터 시작된 얼음조각과 파릇한 식물의 만남, ‘박성민의 얼음’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그 속에 품고 있는 것은 지극히 일상적인 소재지만, 종종 의외의 색다른 정경을 연출하고 있는 그것은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 박성민의 일명 「아이스캡슐(Ice Capsule)」 시리즈는 다양한 의미를 띠고 있다. 우선 작가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물질의 원성’이다. 물질은 보통 삼태(三態, 기체-액체-고체)의 순환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박성민은 이러한 물질의 고유한 성질에 우리의 행동양식을 은유적으로 암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가령 ‘액체는 유기적인 사고, 고체는 고정된 기억, 기체는 망각의 존재성’ 등으로 말이다. ● 다른 한편으론 그의 「아이스캡슐(Ice Capsule)」 시리즈는 자연을 생태적인 측면으로 바라보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기도 하다. 우리 인간이 자연의 지배자라는 과대망상적인 자세를 버리고, 최소한 지금 상태로나마 파괴를 멈추자는 역설적인 의지를 표명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박성민_Ice Capsule_캔버스에 유채_65.1×90.9cm_2006
여기에 최근엔 작품의 주인공으로 ‘박꽃’과 ‘쪽지편지’에 이어 ‘색색 과일’을 등장시키고 있다. 먼저 박꽃은 풍성함이나 풍요로움, 그리고 순수성을 함축한 매력적인 소재이다. 또한 밋밋하고 소박하면서도 순백의 화려함을 동시에 지닌 감성적인 감흥을 전한다. 반면 쪽지편지는 기억, 첫사랑, 기다림, 소중함, 서정성 등으로 잠시 잊었던 추억을 되살려 주고 있다. 또한 가장 최근에 선보이고 있는 다양한 색조를 띤 과일은 우리가 지닌 수많은 감성적 욕망의 절제된 모습일 수도 있겠다. 그래서 박성민의 얼음덩어리 속의 작은 세상은 이미 우리 인생의 한 부분이 캡쳐된 채 표본으로 남아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박성민_Ice Capsule_캔버스에 유채_112.1×162.2cm_2006
박성민 작품의 ‘고유한 스타일’이 화단에서 빛을 발하게 된 것은 2004년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하면서부터일 것이다. 또한 그 이전에 신사임당미술대전 대상이나 동아미술상 수상 등으로 이미 주목받아 온 터였다. 물론 공모전 수상이력이 작품의 질적 수준을 가늠하는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지만, 국내 현실을 감안할 때 장차 작가로서의 성장 가능성과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펼쳐나갈 비전(Vision)을 가늠하는데 어느 정도 객관적인 기준은 될 것이라 생각된다.

박성민_Three States of Matter_캔버스에 유채_50×65.1cm_2006
더불어 박성민 작품의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은 너무나 정교하게 옮겨진 화면의 대상들이 모두 ‘100% 수작업’이란 점이다. 쉽고 간편한 화법을 선호하는 현대미술의 일반적인 성향을 감안한다면 박성민의 집중력이 돋보이는 작품은 예술가로서의 장인정신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 웬만한 작품 한 점을 완성하기 위해선 하루 꼬박 10시간씩 일주일 이상 걸리는 제작과정은 수도자의 진지한 수행과정과도 진배없다. 이렇듯 작가 박성민은 세상을 얼음 속에 가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청명한 얼음 속에 자신의 체온과 열정으로 새로운 세상의 꿈을 구현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결국 박성민이 말하는 물질의 삼태(三態)는 삶의 또 다른 모습이며, 그의 ‘아이스 캡슐(Ice Capsule)’은 삶의 아름다운 기억을 보관하는 사유의 장은 아닐까. ■ 김윤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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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LAXY
최태훈 조각展
2006_0512 ▶ 2006_0709 / 월요일 휴관

최태훈_갤럭시_스텐레스스틸_∮500cm_2006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김종영미술관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6_0512_금요일_05:00pm
2006 오늘의 작가展
후원_경기문화재단
김종영미술관
서울종로구 평창동 453-2번지
Tel. 02_3217_6484
www.kimchongyung.org
김종영미술관은 후학양성에 남다른 관심을 지니셨던 조각가 김종영 선생의 뜻을 기려 2004년부터 「오늘의 작가」展을 시행하고 있다. 「오늘의 작가」展은 조각 분야에서 작업성과가 뚜렷하고 오늘의 시점에서 미술의 향방을 가늠해볼 수 있는 중견 전업작가 중 매년 2명을 선정하여 개인전을 지원하는 프로젝트이다. 2004년에 정현과 이기칠, 2005년에 김주현과 박선기를 선정한 데 이어 2005년의 전반기 오늘의 작가로 최태훈을, 후반기 오늘의 작가로 이상길을 선정하였다. ● 최태훈은 미술에서 장르 간의 경계가 사라져가고 있는 상황 속에도 끊임없는 수작업을 통해 조각의 본질을 찾아가려고 노력하는 조각가이다. 그는 프라즈마 기법을 사용해서 철 덩어리를 절단하고 용접하는 고된 노동을 반복함으로써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의 조건과 생명에 대한 성찰을 해왔다. 그래서 차갑고 딱딱한 금속은 조각가 최태훈의 손을 거치면서 온기가 흐르는 유기체로 탈바꿈한다.

최태훈_갤럭시_스텐레스스틸_∮500cm_2006_부분

최태훈_블랙홀_스텐레스스틸_∮430cm_2006

최태훈_오로라_스텐레스스틸_∮600cm_2006_부분
이번 전시에서는 그의 성찰이 우주로 확대된다. 이전에는 나뭇잎, 씨앗, 논바닥, 인체 같은 자연의 유기체를 연상시키는 형태를 다뤘다. 하지만 이번에 출품된 「오로라」, 「블랙홀」, 「갤럭시」, 「별자리 연작」 등등의 작품의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그는 자연이라는 시공간과 형태를 넘어서 무한한 우주의 생명과 그것의 순환을 다룬다. 그리고 그 형태도 입방체, 타원 그리고 자연의 유기체를 연상시키지 않는 비정형의 형상이다. 그가 지난 몇 년 동안 자연 속에 내재된 생명성을 끈질기게 다루면서 내뿜은, 생명의 신비에 대한 감탄사 속에는 생명의 유한에 대한 탄식도 함축되어 있다. 이제 그는 그 유한의 한계를 우주를 통해 극복하고 위로받으려 한다.

최태훈_둥지_스텐레스스틸_160×140×10cm_2002

최태훈_Iron Ages_철_2003
이번 전시에서 최태훈은 어둠 속에 설치된 작품의 내부로부터 실처럼 흘러나오는 무수한 빛줄기를 이용해서 전시장을 거대한 우주 공간으로 변신시켰고, 세 개로 분할된 전시 공간이 이어져서 하나의 이야기를 구성한다. 첫 번째로 만나는 작품은 「별자리 연작」이다. 프라즈마로 구멍을 뚫고 표면에 상처를 낸 철판이 어두운 전시장의 네 벽에 설치되고 그 철판벽 내부에 전구가 설치되어 있다. 철판 표면으로 흘러나오는 빛의 더미 속에는 카시오페이아와 북두칠성 같은 별자리들이 숨어있다. 네 벽의 철판에서 흘러나오는 별빛 세례를 받으며 다음 전시장으로 이동하면 「갤럭시」가 펼쳐진다. 짧은 스테인리스 스틸 봉을 프라즈마 용접으로 이어 붙여서 만든 거대한 원반이 공간 한가운데 놓여 있고 그 뒷벽에 우주의 영상이 빔프로젝터로 투사된다. 그리고 공간을 휘감듯 가로지르는 「오로라」에 이르면 관객은 긴 우주여행을 마친 듯한 연극적 경험을 하게 된다. ■ 김종영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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