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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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2007-10-17 17:32:58, Hit : 788)
전시 10.17



PAPER BOAT

김혜옥 회화展

2007_1024 ▶ 2007_1030



김혜옥_종이배 띄우고_캔버스에 유채_41×53cm_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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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1024_수요일_06:00pm




인사아트센터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Tel. 02_736_1020
www.ganaartgallery.com






종이배 - 여기와 저기와의 관계를 넘다 ● 미술사학자 곰브리치는 ‘보는 자의 몫’이 있다고 했다. 김혜옥의 종이배 그림들에는 보는 자들이 이미지를 읽어내어야 할 몫이 있다. 눈 이외의 다른 감각에 호소하는 김혜옥의 종이배는 “미술은 눈에 보이는 것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눈에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라는 클레의 말을 생각나게 한다. 눈에 보이는 것들은 보는 사람들의 다양한 관심과 욕망에 의해, 그리고 사회적 관계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그림 속에 있는 종이배는 우리가 경험했던 과거의 이미지 일 수도 있고, 작가를 비롯해 ‘여러 관계’들이 제공하는 정보에 따라 ‘읽어내는’ 방식이 변할 수도 있다. 관객들은 작가의 그림 앞에서 종이배와 물결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지만 마치 종이배와 함께 서있는 느낌을 받게 된다. 촬영 중인 카메라의 렌즈처럼 종이배와 시냇물을 따라 흘러내려가고 마침내 어딘가 가고 싶은, 또 만나고 싶은 사람에게로 다가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이렇듯 그녀의 그림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몸 전체가 개입되어지고 마침내 우리의 깊이 감추어진 이야기에게 다가가는 것이다.




김혜옥_종이배 띄우고_캔버스에 유채_80×130cm_2003



김혜옥_종이배 띄우고_캔버스에 유채_53×72.7cm_2007



김혜옥_종이배 띄우고_캔버스에 유채_50×72.7cm_2006


종이배 연작들은 사실적으로 그려졌지만 현실감을 지니고 있지는 않다. 아마 강력한 현실감을 가지는 것은 회화에서의 가공의 세계나 상상적인 시각을 제약할 수도 있으리라. 작가는 관객들에게 종이배를 현실적으로 바라보게 할 의도는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작가는 눈 이외에 다른 감각에 호소하고 있다. 조각 작품이 시각을 통해 촉각을 불러내듯이, 김혜옥의 종이배는 시각적 사실성 이외에 공간을 함께 가로지르는 세월(시간)이 포함되어있다. 종이배는 의도적인 커뮤니케이션으로서의 존재, 또한 무언가의 표상으로서의 존재이다. 작가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표상하는 시각적 수단으로 종이배를 찾아냈다는 의미이다. 오랫동안 정물화와 누드 크로키라는 소재에 천착하던 그녀가 새로운 고민을 하게 된 것은 우연 속의 필연이라 할 수 있다. “결정적으로 이야기가 있는 그림, 시적인 그림, 메시지를 주는 그림을 그리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했습니다.(중략) 물결만의 세계, 구상과 비구상의 사이에 던져질 물체가 바로 종이배라는 영감이 떠오른 순간 제 자신도 놀랄 정도로 ‘바로 이거다’ 하며 소리 지르며 흥분하게 되었답니다.”이렇게 작가는 종이배를 어떤 관계를 이어주는 하나의 메신저로 채택했다고 스스로 발언한다. 그것은 자신이 의식하지 못했더라도 잃어버린 가족들과의 끈 일 수도 있으며, 물결이라는 비구상적 형상과 자신이 천착했던 구상의 세계에 대한 가교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여기에서 종이배의 이미지는 작가와 관객의 감정을 건드리는 도화선이다. 즉 비시각적 차원을 표상하는 시각적 수단이며, 사람들에게 그들 자신의 경험이라는, 과거를 만나게 하기 위한 시간여행의 표상인 것이다. 우리가 어떤 대상을 바라보면 감각 전체가 깨어나 그것을 평가한다. 우리는 종이배를 바라본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보는 것은 눈에서 일어나는 일만은 아니다. 뇌는 눈앞의 것들을 볼 뿐 아니라, 몇 년 전의 광경이나 상상 속의 일을 생생히 그려낸다. 마음으로 본다는 말을 흔히 하듯 종이배는 그렇게 우리의 마음을 깨워서 보이게 하는 메신저이다. 떠나보냄은 다시 돌아와 재회함을 기다리는 일의 시작이다. 작가의 종이배 띄우기가 세상에 말하고 있는 것은 그것이 끝이 아니라 시작임을 말한다. 작가 김혜옥은 종이배를 세파(世波)에 띄우고 사람들에게 다시 시작하자고 재촉하고 있다. 이제 그것은 우리가 볼 몫이다. ■ 전승보




김혜옥_종이배 띄우고_캔버스에 유채_41×60.6cm_2006



김혜옥_종이배 띄우고_캔버스에 유채_41×60.6cm_2005



김혜옥_종이배 띄우고_캔버스에 유채_130×97cm_2006


PAPER BOAT - Transcending a relationship between here and there ● Ernest H. J. Gombrich, an English art historian stated that there is a 'viewer's lot' in art. In Hyeok, Kim's paintings of a paper boat include the viewer's lot to interpret images. Kim's paper boat appeals to different senses other than our visual sense and reminds us of a statement of Paul Klee, a Swiss artist, saying 'Art does not replicate what is seen. On the contrary, it makes the invisible to be seen.' The visible can be influenced by the viewer's various interests, desires and social relationships. In that sense, the paper boat in Kim's work might be of past images that we may have experienced. 'How to interpret' Kim's work can also vary according to information provided by 'various relationships' including the artist. ● When the audience is facing the paper boat and waves in front of one of Kim's paintings, they feel as if they are standing in parallel with the paper boat. As if looking through a camera lens shooting a scene, the audience comes to experience a sense of floating with the paper boat along the stream and of going somewhere to meet somebody they want to meet. We should not try to understand Kim's work with our vision, but appreciate it by involving our whole body to discover stories that have been hidden deep inside ourselves. ● The series, Kim's paper boat, is realistically depicted but does not convey realistic sense. Paintings with strong realistic expression can impose a constraint on the imaginary viewpoint of the interpretation. Kim does not intend to make the viewers look at the paper boat from the realistic perspective. On the contrary, Kim attempts to appeal to different senses other than vision. As a sculpture brings about tactile sensation through vision, Kim's paper boat includes time that exists across space apart from the visual realism. Kim's paper boat exists as an intentional communication and as a symbol. That means that the artist chose a paper boat as a visual means of symbolizing something invisible. Kim has explored the area of still life and nude croquis for a long time, but she came to a new phase of her art life through the means of a paper boat. Kim says "I really wanted to tell stories, poems, and messages through my paintings..... When I discovered that a paper boat can be thrown to the world of waves, which is the space between the figurative and the non-figurative, I was so excited, screaming 'Eureka!' ". Kim told that she chose a paper boat as a messenger connecting some relationships. It could be a clue to find your estranged family even though you might not have been aware of or an imaginary bridge that connects 'waves', a non-figurative form, to the figurative world that the artist has explored before. Above all, however, the image of a paper boat is a fuse to touch the emotion of the artist and audience. In other words, it is a visual means of symbolizing the invisible domain and a symbol of a time travel that lets the audience meet their past experiences. ● When we watch a certain object, every available sense is awakening to evaluate it. We are watching the paper boat. However, the evaluation is not occurring only in the area of vision. Our brain lets us watch things in front of us but also allows us to visualize scenes experienced a few years ago or things in our imagination. We often hear that we can see with our mind, the paper boat is a messenger that awakens our mind to let us see. ● Letting something off is the beginning of waiting for reunion. By letting the paper boat off to the waves of the stream, Kim attempts to say to the world that it is not the end but the beginning. She tries to persuade the people to start again by floating the paper boat off to the waves of adversity. Now, it is left to us as the viewer's lot. ■ Jun, Seung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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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brid-photography & photography

2007_1018 ▶ 2007_1118



Hybrid - photography & photography_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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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1018_목요일_06:00pm

강영민_권정준_배준성_베른트 할베허_양연화_유타카 이나가와_케이스케 시로타

관람시간_11:00am ~ 07:00pm





갤러리 잔다리
서울 마포구 서교동 370-12
Tel. 02_323_4155
www.zandari.com






하이브리드(Hybrid)의 의미를 아는가? 생물학에서 이종(異種)교배에 의한 이종, 혼혈, 혼성, 변종(잡종)을 의미하는 이 용어는 경영은 물론, 가전, 스포츠, 문화에 이르기까지 우리네 삶의 많은 부분에서 접하게 된다. 인기를 끌고 있는 MP3 기능이 내장된 카메라 폰은 모바일 폰과 카메라, 오디오 기능이 혼성된 것이며 토스터기에 라디오, 냉장고에 컴퓨터 기능이 부가된 가전제품은 일상에서 접하는 하이브리드 제품의 좋은 예이다. 또한 연예계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다니엘 헤니, 데니스 오와 같은 혼혈 탤런트, 금융에서 주식과 채권의 중간 성격인 하이브리드 채권, 보험과 은행의 영역을 허문 방카슈랑스 등 이 하이브리드라는 코드는 어느새 우리의 일상에서 폭 넓게 수용되고 있다. 유독 순혈주의가 강한 예술장르도 이미 각 장르 간 경계를 넘나들며 서로 혼융되었고, 이러한 이종교배는 새로운 결과를 태생시키며 이에 따른 전통적 개념 정의에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P&P-사진 같은 회화, 회화 같은 사진 展(2006년)에서는 현대미술에서 사진이라는 매체가 회화적 표현기법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또한 회화는 사진적 표현방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함에 따른 표현으로 야기된 사진과 회화 각 장르 정체성의 혼란함과 모호함의 원인을 고찰하여 사진과 회화 각각의 확대되는 정의의 가능성을 살펴보고자 했었다면, 본 전시 P&P Ⅱ-Hybrid 展(2007년)에서는 사진의 하이브리드는 어떠한 것일까? 라는 질문으로 사진이 다양한 방법론으로 확대되는 현상을 통해 사진이 또 다른 사진으로 확대되어질 수 있는 가능성과 다양한 표정을 보여주고자 함이다. 사진은 현재에 있어서 너무나 다양하게 변주되고 있으며, 미술의 역사를 보더라도 간헐적이나마 끊임없이 이러한 시도가 있어왔다. 하지만 현대에 있어 사진은 다양한 이종교합에 의해 보다 적극적이고 새로운 발상으로 표현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이러한 시도들이 형식적, 재료적, 의미론적 확대 가능성과 새로운 예술적 완성미를 제시하고 있다고 여겨지기에 본 전시를 통해 사진을 이용하여 다양하게 변주하고 있는 7명의 작가들을 선별하여 사진이라는 매체가 이종교합에 의해 독자적으로 구축하는 다양한 예술성과 확대되는 그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 사진과 회화의 하이브리드 ● 사진의 변용범주는 다양하지만 여기에 제시된 배준성, 양연화, 유타카 이나가와(Yutaka Inagawa), 케이스케 시로타(Keisuke Shirota)는 모두 사진이라는 매체를 기본으로 사용하며 평면성에 근간하여 사진과 회와의 이종교합을 꾀한다. 새로운 기술과 재료의 발전으로 이들의 작업은 과거 시도되어진 작업들과는 또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이들은 렌티큘러(Lenticular) 기술의 이용, 스냅사진과 이를 확장한 그림, 인화지 위에 재현된 이미지와 엮은 그림 작업 등 재치 있는 시도와 함께 다양한 실험적 결과를 도출하고 있다. 이로 파생된 표현이 주는 시각적 즐거움은 실로 대단하다. 미술의 역사에서 추상회화를 탄생시킬 만큼 재현능력의 우수성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환상(상상)이 개입될 수 있는 여지의 부족과 재현에만 근거한다는 사진의 약점을 회화와 결부시킨 이들의 이종교합은 양쪽의 단점은 최소화하고 강점을 부각시킬 수 있는 선택이라고 보여 진다.




양연화_예술가의 작업실 Artist Studio_사진에 아크릴채색_136×100cm_2006



배준성_The costume of painter-Whistler 051101_렌티큘러_183×120cm_2006


양연화는 연출된 인물을 사진으로 촬영하고, 이것이 인화된 대형 인화지 표면에 풍경을 그려 넣는 방식으로 사진과 회화를 접목한 형태의 작업을 선보인다. 더 나아가 배준성은 누드의 인물을 촬영한 사진, 의상을 그린 비닐만 촬영한 사진, 이 둘을 서로 겹쳐서 착의가 이루어진 사진까지 총 3개의 사진을 이용한 렌티큘러 작업을 보여주는데 관람객의 위치변동에 따라 변하는(화면의 인물이 누드가 되기도 하고 의상을 입기도 함) 효과는 사진과 회화가 가지는 고정된 순간적 스틸 이미지를 한 평면 위에서 움직이게 하는데 있다. 두 작가 모두 사진으로 기록된 대상과 사진을 바탕으로 회화를 덧붙임으로 재현을 넘어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새로운 표현이 담긴 결과물을 도출해 내는데 이것이 그들이 빚어낸 이종교합의 효과라 할 수 있다.




케이스케 시로타_A Sense of Distance #11_사진, 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2.7×103cm_2004



유타카 이나가와_Opaqueomnivore_사진 변형, 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00×70cm_2005


일본작가 케이스케 시로타는 도시풍경의 한 단면을 어떠한 의도함 없이 찍어서 사진을 빈 캔버스에 자유롭게 배치하고, 여기서 확장되는 이미지를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구성하는 작업을 선보인다. 때로는 두 개의 각기 다른 공간이 한 화면에 배치하여 회화의 개입을 통해 이를 자연스러운 하나의 공간으로 기록화한다. 각각 이질적인 공간을 품은 사진에서 확장된 화면은 하나의 공간의 기록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유타카 이나가와는 사진, 회화, 드로잉을 혼성하여 화면의 전면과 측면을 넘나들며 이미지 자체도 기계와 생명체가 이종 교배된 생명공학(Bio-Mechatronics)으로 탄생한 듯한 생명체를 보여준다. 사진을 오리고 집합적으로 덧붙이며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유타카의 작업에서 사진의 이미지들이 보여주는 대상의 정보는 작가의 의도에 따라 해체되어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의 한 부분으로 새롭게 탄생된다. 즉 기계생명체의 팔다리로 사용된 스푼과 포크의 사진 이미지는 그의 화면 안에서 더 이상 본래의 정보 전달은 의미가 없이 새로운 정보로 탄생되는 것이다. 이러한 다양한 시도는 사진만으로는 풀 수 없는 문제이며, 회화만으로도 획득되어질 수 없는 부분이다. 사진이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며 환상을 갖는 그 무엇인가가 되면서도 원래의 다큐멘터리적 정보를 가진 사진으로도 존재한다는 점은 사진과 회화의 이종교합의 좋은 결과일 것이다. ● 사진과 입체의 하이브리드 ● 사진은 모든 입체적인 사물을 평면화 시킨다. 동그란 사과도 사진에서는 평면일 뿐이다. 그러나 이를 다시 입체화 하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 본 전시에 제시되지는 않았지만 권오상은 각각의 시점에서 제시한 수 백장의 스냅사진을 촬영된 대상의 입체 형태로 이어 붙여 다시 그 대상을 입체화 했었다. 이러한 기본적 구성의 결합과 함께 입체적 변용이 제시하는 사진의 확대가능성은 무한하다. 본 전시에서 권정준, 강영민, 베른트 할브헤어(Bernd Halbherr)는 사진과 입체의 이종교합을 시도하며, 이를 통해 또 다른 사진의 의미와 정의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




권정준_Space Overturning- 귤 Orange_아크릴 박스, 디지털 프린트_7×7×7cm_2004



베른트 할베허_Tonhalle_사진 콜라쥬, 플라스틱, 혼합재료_지름 30cm_2006


권정준의 작업은 사진과 회화가 입체적 세계를 평면에 재현하는 것이라면, 이 평면화 된 사진을 다시 입체화 하되 각각의 방향에서 촬영한 대상을 육면체로 제시하여 오히려 사진의 평면성을 강조하는 작업을 선보이며 사진의 평면성과 기록성을 오히려 입체를 통해 강조하고 있다. 베른트 할브헤어 또한 한옥이나 대나무 숲과 같은 일반적 풍경사진을 동그란 구 형태로 입체화하여 마치 물고기의 눈으로 본 어안렌즈와 같은 풍경을 보여준다. 평면의 사진이 구 형태로 입체화 되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시점은 새로운 공간감을 선사함은 물론 촬영된 공간에 위치하고 있는 듯 현장감과 실재감을 평면으로 재현된 사진보다 더 강하게 느끼게 한다.




강영민_George_디지털 프린트_370×740cm_2004


보다 적극적인 방법으로 접근하는 강영민은 사진 이미지를 모아 의도된 목적에 의한 형태로 사진의 입체화를 이루고 이를 통해 일루젼에 가려진 대상의 본질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는 이번 전시에서 140여개 이상의 조지 부시라는 동일 인물을 각각의 다른 시공간과 다른 각도에서 촬영한 얼굴사진 이미지 중에서 각 사진마다 얼굴의 한 부분을 선택하여 각 부분 부분을 연결하여 각기 다른 시공간의 대상기록이 모여 한 시공간에 존재하는 대상 기록물, 즉 조지 부시의 거대한 얼굴을 재현한다. 이는 사진이 가지고 있는 사진의 기록적 측면에 대한 부분에 회의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볼 수 있으며, 사실적 재현의 조작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이라 여겨진다. 대상의 본질이나 문제의 중심보다는, 이러한 교란에 의해 오히려 그러한 문제들이 운영되고 지지되는 시스템(방송/언론매체) 자체의 조작되고 재단되는 속성을 제시하고 있음이다. 또한 포르노그라피에서 성적욕망 충족의 대상이었던 생명력이 충만한 여체사진을 모아 해골형태로 입체화한 사진 이미지들은 죽음의 과정에서 발생되는 부패과정의 부산물이나 벌레들처럼 정반대의 의미로 존재하게 된다. 의도를 가지고 구성된 형태에 따라 사진으로 기록되어진 대상이 가지고 있던 정보와 의미가 극과 극을 치닫는 측면을 제시하는 그의 작업은 사진의 가장 강력한 힘이었던 사실의 재현이라는 우리의 강력한 믿음을 붕괴시키기에 충분하다. 그의 이러한 시도는 의도와 시각에 의해 그 정보와 의미가 완전히 바뀔 수 있음을 이야기하며 사진의 조작되고 확대된 일루젼을 비판함과 동시에 새로운 해석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들의 시도는 사진이 입체화함과 동시에 더욱더 사진의 속성을 강조하는 측면으로 나아가는가 하면, 보다 더 실제적이고 효율적인 재현을 보여주기도 하고, 재현된 대상의 본래적 의미를 해체하고 의도된 구성에 의해 정반대적 의미, 또는 새로운 의미를 파생시키는 부분에 주목하고 있다. 이러한 시도들을 통해 사진이 가진 성격과 정의, 의미에 대해 심도 있는 분석과 비판, 강조와 왜곡을 실행하며 이종교합에 의한 확대되는 사진의 정의를 시도하고 있다고 보여 진다.




갤러리 잔다리_2007


Hybrid 너머 그 무엇은? ● 다양하게 표현되어지고 있는 작업들 중에서 사진의 확대 가능성을 보여주는 작업들을 통해 흥미로운 현상을 제시하여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사진과 회화 사이에서 그 경계의 모호성에 의구심을 가지고 각각의 확대되는 정의가 무엇인지 시도해보고자 하는 시각이 2006년 P&P 展을 기획하게 된 출발이었다면, 본 전시는 이러한 의문을 넘어 사진이 가진 다양한 확장의 면면을 보이고 있는 현재의 현상을 짚어보는 것에 의의를 두고 있다. 현대 미술 속에서 사진의 다양한 확장 가능성을 감지할 수 있고, 이는 사진이‘입체사진, ‘설치사진’또는 그 무엇으로 제시될 수 있는 사진 너머 사진의 미래형을 규정할 수 있는 중요한 단초이기 때문에 이러한 현재 진행형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보여 진다. ■ 이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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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o Drawing 2

권자연_류승환_홍윤정

2007_1018 ▶ 2007_1125 / 월요일 휴관



권자연_fragments : fragments 97-07_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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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1018_목요일_05:00pm

소마드로잉센터 공모展

2007_0601 ▶ 2007_0704 Into Drawing 1_김현숙_윤유진_이윤미
2007_1018 ▶ 2007_1125 Into Drawing 2_권자연_류승환_홍윤정
2007_1129 ▶ 2008_0106 Into Drawing 3_송호은_이영빈_임태규

주최_국민체육진흥공단
주관_소마미술관

관람시간_평일, 주말 및 공휴일_10:00am~06:00pm
               _매주 목요일(야간 개관)_10:00am~09:00pm
관람료_소마미술관 메인전시 관람 시 무료(별도 관람 불가)





소마드로잉센터
서울 송파구 방이동 88-2번지
Tel. 02_425_1077
www.somamuseum.org






권자연은 작업의 과정에 주목한다. 지나간 시간의 편린들을 차곡차곡 박스에 담아두었다가 어느 날 불현듯 꺼내들고 먼지를 쓸어내며 기억의 켜를 벗겨내는 것 자체를 오브제 작업의 근간으로 삼고 있다. 다양한 작업재료는 대부분 나긋나긋한 성질의 것들로 작가의 의지에 의해 변형이 용이한 재질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가 내내 그리워하는 ‘생명력’, ‘정리되지 않았으나 살아있는 에너지’는 그러한 재료의 성질로부터 오는 것이 아닌가 한다. 머리 속에 그려지는 작업의 구상을 마무리 짓기보다는 그 과정 자체를 날것으로 던져놓는 것, 그래서 권자연의 작품은 언제나 미완성이며 결과적으로 드로잉 개념의 정수를 담고 있다.




권자연_fragments : fragments 97-07_2007


드로잉 단상 ● …드로잉/그리기/ 드로잉/만들기/변형하기/또만들기 드로잉/쌓아두기/흐트려뜨리기/모아두기/다시흐트려뜨리기/ 드로잉/더듬기/멀리내다보기/ 드로잉/헤매기/ 드로잉/넘치기/부족하기/ 드로잉/다시말하기/다시안말하기/다시생각하기/다시안생각하기/ 드로잉/…■ 권자연




류승환_人生時空시리즈(부분)_2001



류승환_人生時空시리즈(부분)_2004


류승환의 작업과정은 고도의 집중력과 만만치 않은 체력을 필요로 하며... 지친 심신을 위하여 10㎡정도의 휴식공간을 만들었는데, 그곳은 세상의 근심과 걱정이 차단되고, 고요와 침묵만이 공존하는 명상의 공간이라고 해도 좋을만한 곳이었다. 그 곳에서 류승환의 종교와 철학에 대한 관심을 느낄 수 있었는데, 그의 작품은 정말 다양한 관념들이 충돌하며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리고 제작방식은 마치 제도판 같은 책상 위에서 의식된 선들과 무의식적인 선들이 교차하면서 독특한 형상과 조형미를 나타내게 된다.
드로잉 단상 ● 하루의 삶과 정보, 지식, 깨달음 등이 기록되듯이 그려지며 거기에는 시간, 공간, 인간이라는 세 가지 항목의 내용이 변화와 흐름으로 나타난다. 가장 큰 주제는 인생, 언어, 침묵, 신화, 미래세계, 환상 등이다. 그림 자체는 서구의 원근법보다는 다른 시간, 공간 이동, 다시 점, 시각으로 형성되어 있다. ..내 작업의 특성은 소위 문명권(서구)의 세계가 밝혀온 로고스(이성) 중심, 언어, 과학 중심의 세계를 부정하진 않지만 그것이 마치 전부처럼 생각하고 말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며 밝혀지지 않은 더 큰 보이지도 감히 느낄 수도 없는 세계에 대한 많은 관심에서 비롯된다. 눈을 감아도 보이는 세계... 귀를 닫아도 들리는 세계... 있음 없이 있음. 이러한 부분이 나의 작업 밑부분(침묵의 세계)을 차지하고 있다. ■ 류승환




홍윤정_Poecilia reticulatus var. orchidopsis calathe discolor_2006



홍윤정_guppy breeding : being orchid_2006


홍윤정은 말 또는 글로 언급됨으로 인해 순간적으로 실재하게 되는(또는 실재하는 것처럼 착각하게 하는) 현상에 대해 희열을 느낀다. 책에 대한 작가의 지대한 관심은 그의 작업에서 백과사전, 목록, 주석 등의 증거자료 덧붙이는 것과 같은 조작 행위를 보다 치밀하게 수행하는데 기여한다. 이 때문에 작가가 설정한 가상의 상황은 마치 실재하는 일인 것처럼 독자(관객)를 혼란케 한다. 홍윤정의 작업들은 작가적 직관으로 발견된 사소한 요소를 하나의 논리로 설정함으로써 정교하게 짜여진 기존 사회의 논리와 구조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 낯설고 새로운 층위를 확인하게끔 유도한다.
드로잉 단상 ● 공(空)의 영역에서 상(想)의 경계에서 움직임은 어느 순간 백터의 영역으로 내달린다. 질료에서 뜯겨져 나온 형상과 구조, 조건과 장소가 다른 공간(空間)과 영역(營域)에 새로이 부유하며 정교하고 사적인 새로운 은신처가 열린다. 걸어가면 걸어갈수록 넓어지는 서재, 갇히는 동시에 열려있는 그물, 내부를 지시하면 외부가 반향(反響)하는. 어항 한 구석에 드러누워 반짝이는 물 표면과 열대어가 드리우는 그늘을 바라본다면, 이들과 몇 백억 년이라도 더 함께 진화하고 진화해서 크기도 형태도 다 달라지는 순간까지 닿는다면, 새로운 체계, 그 체계를 담을 그릇, 도감, 달리는 것, 나는 것, 말하는 것-그 영역이 흐트러지는 순간에 단지 손이 기록을 하게 두어라. 공(公)-상(狀)의 순간, 찰나적 조우의 결과로서. ■ 홍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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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도시를 유영하는 휴대용 풍경

이민호 개인展

2007_1018 ▶ 2007_1028



이민호_Portable Landscape no.3_컬러프린트_99.27×150cm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이미지 속닥속닥 Vol.060603d | 이민호 개인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7_1018_목요일_06:00pm






트렁크갤러리
서울 종로구 소격동 128-3
Tel. 02_3210_1233
www.trunkgallery.com






이민호는 문학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간결한 문체의 서사를 구사하는 사진 작업을 보여준다. 그의 내러티브는 극적인 반전이 담긴 스펙터클한 거대서사가 아니라 일상 속에서 반복되는 미세한 차이의 연쇄들이다. 이번 전시의 출품작인『휴대용 풍경』연작에서 현대도시를 자신의 직관으로 재배치하고 그 속에서 유영하려는 그의 시선은 도시의 공장굴뚝을 포착해서 산업사회의 단면을 드러내며, 어디선가 목격한 것 같은 잔잔한 풍경 속에서 세상의 이치를 발견해 낸다거나, 도드라져 보이는 사물보다는 그 아래 축축한 바닥 같이 후미지고 너저분한 곳에 머물곤 한다. 이렇듯 이민호는 전체를 보여주지 않고 부분만을 보여줌으로써 전체의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이러한 특징은 인체를 다루거나 도시를 다룬 구작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눈 아래 부분만을 클로우즈업한 무표정한 얼굴을 거대한 캔버스에 그려내는 것이 이민호의 회화작업『익명의 초상』원래의 아이디어이다. 그는 인간의 표정이나 인상을 가장 민감하게 드러내는 눈을 제외함으로써 낯선 구도의 얼굴을 끌어낼뿐더러 그것을 매우 거대한 크기의 그림으로 재현해냈다. 이것은 매우 특수한 구조의 감성표현 방법이다. 이들 연작은 꽉 다문 입술에 굳은 표정의 얼굴의 일부분을 거대한 화면으로 접했을 때의 생경함을 제공했다. 이 작업의 후기 연작들은 코와 입술만을 부각시켜 흐릿한 표면으로 처리함으로써 익명의 인물을 초상으로 드러내는 데 있어서 한층 더 깊은 맛을 냈다.




이민호_Portable Landscape no.4_컬러프린트_101.76×150cm


얼굴을 생략한 인체나 일부분을 과장한 얼굴을 그리는 회화 작업을 해오던 이민호는 그 문제의식을 사진 작업으로 확장했다. 『불확실한 증명사진』연작은 몸통을 중심으로 눈 아래쪽과 무릎 위쪽만을 담는 인체사진이다. 이 연작은 증명사진의 기본적인 어법을 어기면서 실용적인 목적과는 정반대의 길을 선택한다. 눈을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피사체가 누구인지를 뚜렷하게 드러내지 않는 증명사진이다. 이 사진은 실용적인 목적의 증명사진이 어떤 방식으로 한 인물의 정체를 증명하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나아가 결정적인 단서를 상실한 이미지가 어떻게 가려진 부분을 재구성해서 새로운 상상을 만들어내는지를 드러내기도 한다. 불충분한 단서를 가지고도 피사체의 정체를 분간해내는 데 동참하거나 또는 익명의 현대인의 모습을 매우 덤덤하게 읽어내는 데도 그의 이러한 어법은 매우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그는 사회 시스템 속에서 한 인간의 존재를 증명해내는 증명사진에 관심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불완전한 재현을 감행했다. 상호대면에 의한 소통보다는 익명의 소통에 의해서 더욱 조밀하게 구조화한 네트워크 시대의 현실을 드러내기 위해서 눈 아래 부분을 찍은 인물사진을 제시했다. 인화를 맡겼던 사진을 찾으면서 잘못 찍은 사진임을 암시하는‘영수불가(NON FACTURE)’라는 딱지가 붙여진 사실을 발견한 작가는 이 사진들을 통해서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사진적 재현과 그것을 통해서 사회적 존재로서 자리매김하는 소통 시스템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했다.




이민호_Portable Landscape no.7_컬러프린트_98.15×150cm


이민호의 시선은 도시의 풍경을 잡아내는 데 있어서도 일관성을 발휘한다. 그는 인간과 도시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었다. 그것은 온전히 정체를 드러내는 인간이 아니며 정연하게 질서를 갖춘 도시가 아니었다. 도시 프로젝트인 ‘우리는 여기 산다( We live here)’는 프랑스 파리의 보그르넬(Beaugrenelle) 지역의 빌딩과 아파트들을 담고 있다. 쌩시프리앙(SaintSyprien)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이 전시에서 그는 비대한 도시공간을 통해서 왜소한 인간의 모습을 반증하고자 했다. 작업실 창 밖으로 보이는 연기 뿜는 공장굴뚝은 역설적인 의미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는 도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민호는 작가노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사진의 앵글로 나는 또 다른 세계를 본다. 이 세계는 내가 보여주고 싶다고 선택한 곳이며, 그 속에 하나의 도시가 있고 한 지점이 있다, 그 세계는 나와 같은 보통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들은 차갑고 건조한 금속과 유리와 시멘트로 구조된 초현대식 건물들 속에서 살고 있다. 그곳은 현대식 삶의 안락함을 누리고 있지만 이웃들과의 자연스런 접촉에는 어려움이 있어 보인다. 첨단 기술의 도움으로 세계는 많이 가까워졌지만 따뜻한 체온을 나눌 수 있는 소통문화의 세계에서는 멀어져있다. 왜냐하면 이곳의 초현대식 건물에서 느낄 수 있는 보이지 않는 철옹성의 벽이 누구도 감히 넘을 생각을 못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세계는 나에게 가깝기도 하지만 또 낯설고 먼 곳으로 다가온다.” 이러한 인식과 감각은 한국의 일산과 용산 등을 담은 도시풍경 연작에서도 같은 맥락으로 드러난다. 지하철 안에서 만난 사람, 도시공간의 생소한 풍경들을 통해서 그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을 소통을 가로막는 장벽에 둘러싸인 곳으로 포착해내고 있다.




이민호_Portable Landscape no.9_컬러프린트_99.66×150cm


현대인과 현대도시를 담아온 이민호는 이번 전시의 출품작인 『휴대용 풍경』연작을 통해서 우리의 삶을 직조하는 다양한 시공간을 사진이미지 속에 재배치한다. 그의 작업은 세 단계를 거친다. 우선 도시의 풍경을 비롯해서 자연과 인물의 이미지들을 찍어서 인화한다. 이어서 그는 휴대용 가방의 덮개 부분에 사진 프린트를 넣고 아래쪽에는 잔디를 설치한다. 마지막 단계에서 그는 이 가방을 도시공간이나 실내공간 곳곳에 옮겨놓고 사진을 찍는다. 그것은 사진과 설치를 혼합한 것이며, 사진을 사진 속에 담아내는 이중구조를 취하고 있다. 이야기 속에 이야기를 배치하는 액자소설처럼 사진 속에 사진을 배치하는 이민호의 의도는 시공을 초월하는 도시공간이나 현대사회의 직조방식을 보다 선명하게 드러내는 데 있다. 연작 가운데 상당수가 파리의 작업실 창 밖의 공장 굴뚝 풍경을 담고 있다. 이들 파리의 풍경은 다시 도시의 콘크리트 구조물이나 실내 공간, 버려진 땅 등의 낯선 공간과 조우한다. 그것도 파릇파릇하게 자라 오른 잔디와 함께 가방에 담긴 채 말이다. 이렇듯 한 컷의 사진 이미지 안에 이질적인 요소들을 함께 담아내는 것은 자신의 체험이 관통하고 있는 동시대의 모습을 보다 조밀한 언어로 드러내기 위한 전략이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동일율을 반복하고 있는 삶의 체험 같은 것을 이동이나 여행을 상징하는 가방 속에 담고 이것을 다시 액자소설의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민호_Portable Landscape no.11_컬러프린트_150×102.94cm


이민호의 사진이 디지털합성이 아닌 아날로그배치에 의한 이미지 속의 이미지라는 점 또한 언급할만한 요소이다. 그는 최종적인 결과물로 프린트한 사진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 있어서 가방이나 상자에 잔디를 키우고 사진을 붙이는 설치작업을 하고 다시 그것을 현장에 배치한 후에 실사촬영을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얻은 사진은 디지털합성에 의해서도 가능한 작업이다. 그러나 이민호는 찍고, 뽑고, 붙이고, 기르고, 옮기고, 놓고, 다시 찍어서 뽑는 일련의 수행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에서 그는 실재를 담은 사진이미지와 실재의 관계, 사진이미지를 담은 상자와 실재풍경과의 관계, 세 번째 단계를 거쳐서 얻은 사진이미지와 앞의 두 단계에서 사용한 실재의 관계 등에 대해 매우 섬세한 비평적 선택을 반복한다. 이 점은 그가 선택한 조합의 면면을 살펴보면 잘 알 수 있다. 가령, 고철덩어리들을 담은 사진 박스를 꽃병과 시계와 테이블이 있는 풍경 위에 얹어 둔다던지, 재활용 쓰레기와 곱게 수놓은 레이스가 있는 거실, 공장과 침대, 침대와 콘크리트 구조물, 예쁜 거실과 쓸쓸한 거리의 평상 등이 공존하는 이민호의 사진은 이질적인 요소들 사이의 대립쌍을 이룬다. 반면에 임진각 잔디밭에서 찍은 뒷모습과 실재의 잔디밭, 병실침대와 잡초밭, 아파트 숲과 거실 등과 같이 직간접적인 연상작용을 일으키는 것도 있다. 이러한 이항구조의 만남들은 신체를 매개로 한 수행과정을 통해서 예술적 직관을 드러내려는 이민호의 의도를 해독하는 단초이다.




이민호_Portable Landscape no.12_컬러프린트_150×99.03cm


구작과 신작을 통해서 드러나는 독특한 시선들, 그러니까 생략과 과정에 기초한 증명사진, 도시의 부분이나 구석을 담아내는 독특한 시선, 액자 속에 사진을 담아서 사진 찍기 등과 같은 요소들은 이민호 사진의 주요한 변별점이다. 특히 그의 신작들은 스트레이트 다큐멘터리 사진이면서 동시에 설치나 퍼포먼스의 수행성을 가미한 사진이다. 그가 회화와 사진, 설치 등을 넘나들고 있는 것은 매체 중심의 사고가 아닌 주제나 표현 중심의 사고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유동성은 그가 활동하고 있는 장이 시각언어 실험을 주요한 원천으로 꼽는 예술의 장으로 인해 그 정당성을 획득한다. 그는 증명사진의 어법을 차용하되 그것을 인간의 정체를 완전하게 증명할 수 없는 사진으로 만들어낸다. 도시의 풍경을 담아내되 도시의 지형을 읽어내는 것이 아니라 꿈틀거리며 작동하는 프로그램의 부산물인 연기를 잡아낸다. 말하자면 그가 포착하는 인물과 도시는 정직한 기록을 통해 실재를 표상하기보다는 부적절한 표현을 빌어서 실재의 이미지를 재구성한다. 이민호의 작업이 예술적 언어로서 살아있는 것은 이처럼 실용적인 기록의 맥락보다는 비실용적인 발언의 맥락에 무게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점 때문에 우리는 이민호의 사진을 보다 섬세한 분석과 해석의 관점에서 꼼꼼하게 살펴보곤 한다. 이민호 사진의 여러 요소들이 서로 어떤 연관을 가지며 새로운 이야기를 구성하는지를 파악하는 것은 작가나 비평가뿐만 아니라 각자의 체험이나 이해의 폭을 가진 수많은 독자들에게 더 넓게 열려있다. 이민호 사진의 진정한 매력은 이렇듯 생활정서에 근거를 둔 독자 다수의 공감을 얻어낼 수 있다는 데 있다. ■ 김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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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투타 - 우리들은 어디론가 가려 한다

유기룡 사진展

2007_1017 ▶ 2007_1023



유기룡_30-02_76×101cm_흑백인화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관훈갤러리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7_1017_수요일_05:00pm




관훈갤러리 신관 2층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5
Tel. 02_733_6469
www.kwanhoongallery.com






自 序 모호한 나의 조각들 ● 지나가는 삶이란, 삶의 세목들이 거세된 삶의 분위기다. 반성 없이 맴도는 삶의 모양은 징그럽고도 지긋지긋한 시간이다. 그 시간은 생생함과 구체성, 그리고 박진감을제거한 삶이며 삶에 가까운 삶이지, 삶 자체는 아니다. 그것은 외관뿐인 삶이며 본질이 없는 익명적 삶이다. 그 삶은 빛나는 것이 없는 세계, 혹은 희망이 없는 세계, 어둠의 세계, 사라짐의 세계로 나타난다. 밝음과 희망은 삶에 의미를 부여 하는 힘이지만 , 나의 사진에서는 그것이 힘으로 작용 하는 것이 아니라, 부서진 것, 없는 것, 막막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것이 있어야만 꿈을 꿀 수 있고 허무하지 않지만, 그러나 없는 것이다. 본질은 없고 외관만 있을 때, 모든 것은 우연히 존재 한다. 그것들은 따로따로 존재하며, 서로 깊은 관계를 맺고 있지 않다. 그 세계는 외로운 졍치다. 그 외로움은 , 세계가 의미 없다는 것을 인식한 뒤의 외로움이 아니라, 세계를 인식 할 수 없다는 데서 오는 현실부정이나 자괴감이다. 다시 말해, 그 외로움의 세계는 바라보아도 만져지지 않는 벌판과 같은 사막에서의 삶이다. 그 사막에서 일어나는 것들은 외관상 오고가는 것과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일 뿐이다. 사물들은, 공(空)으로서의 색(色)이며, 그 색의 세계는 무거워 보이나 사실은 가볍다. 나는 그 색을 텅빈 공(空)이라 여기며, 현재의 색(色)를 부정하는 비극적 세계관으로 인식 한다. 그래서 나는 일찍이 아무것도 아니며, 그 무엇도 될 수 없다고 선언 한다. 다시 말해 항상 떠나가고파 하며, 땅에 단단한 뿌리를 내리고 있지도 못하여, 그런 근거를 마련하지도 못한다. 나는 어둡지만 공처럼 가벼워 떠돌려 하며, 우연적이고, 다른 것들과는 쉬~ 관계 맺지도 못하며, 중심으로 안착하지도 못하여 생기 마저 잃었다.




유기룡_30-03_76×101cm_흑백인화



유기룡_30-04_76×101cm_흑백인화


공(空)으로서의 색(色)만 있는 세계, 본질은 없고 껍데기만 둥둥 떠다니는 세계를 함축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 떨어지는 공의 이미지이고, 유모차를 앞에 둔 그림자가 그렇고, 자는 듯 누운 남자의 모습이 그렇다. 허무함이나 무기력함으로 날려 가는 신문은 이미 내 팽개쳐진 생기며, 저쪽으로 향하는 영혼이지, 결코 이쪽으로 향하는 욕망은 아니다. 그것은 죽음의 나라저쪽으로의 정해진 떠남 같아 보인다. 그래서 여기서 꾸는 내 꿈은 이미 부서진 꿈이고, 흩어진 세계다. 그래서 일찍이 나는 아무것도 아니며 또 그 무엇도 될 수 없노라 울음 우는 것이다. 이미 꿈이 아닌 절망임을 뒷받침하는 암시들이 모호한 빛이고, 비고, 바다고, 바람이다. 그것들은 공중에서 떨어져 내릴 때에는 찬란해 보이나, 공중에서만 존재 할 뿐, 땅에 떨어지면 부서지고, 사라지는 것이 속성이고 그것이운명이다.




유기룡_30-05_76×101cm_흑백인화



유기룡_20-06_50×60cm_흑백인화


그것은 겨울 한구석 이름 없는 거리에 쌓였다 넘어지는 눈이며, 그 비는 믿을 수 없는 비고, 뱃전에 이는 바람은 허수아비 같은 바람일 것이고, 어디로 인지도 모르고 날아가는 바람인 것이다. 어디를 보아도 죽어 가는 것만 살아서, 어느 것도 내 것이 아닌 살아감이다. 그 살아나감은 희망, 밝음이 없다. 그래서 절망이다. 그 절망은 모든 것이 죽음으로 끝나는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근원적, 모태적 세계로 회귀 하고픈 지친에너지의 삶이다. 그 근원을 상실하고 헤메이는 삶은 언제나 파행과 실패를 낳는 절망 이다. 언제부터인가 이 세계는 나오는 순간부터 사물화되고, 물질화되어 돌아 가야할 근원적인 세계는 이미 잊었다. 달리 말해, 진정한 의미의 돌아가야 할 근원이란 이 자본주의의 생래적 조건에서는 이젠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돌아가려는 기저의 의지는 처음 왔던 곳으로 되돌아간다는 뜻의'돌아감'이 아니라'한자리를 뱅뱅 맴돌다 간다'는 뜻의 돌아감으로 변질된 것이다.




유기룡_16-03_40×50cm_흑백인화



유기룡_20-1_50×60cm_흑백인화


이렇게 생성과 소멸은 동시적이다. 그러나 이 비극적인 세계인식은 그 절망이 근원-모태>라는 변별적 형상을 갖고 있기에 그 지향점이 되어 준다. 그 구별된 대립은 일차적으로 흘러감/흘러가지 않음의 대립이다. 연대의식의 심화라는 윤리적 측면에서 흘러가지 않음은 비상식일 수도 있겠지만 , 종래의 상투적인 찬사에 저항할 수 있을 때만 이 엄격한 의미에서, 언어적 윤리의식의 확대가 이루어지는 거라는 인식적, 측면에서 본다면 이 사진들에서 그런 것들이 조금이라도 솔깃하지 않다면, 이 작업들조차도 예외는 아니어서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 유기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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