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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파리까지, 파리에서 서울까지. 318일간 35인승 마을버스를 집 삼아 돌아다닌 사람들이
있다. 350원 내고 마을 한 바퀴 도는 버스에 살림을 차리다니… '천 가지 풍경을 지닌 꿈의 집'이라는 루이와 미애의 버스 집 자랑을
들어본다.
프랑스
남편과 한국에서 집 얻기
항상 180cm가 넘는 큰 키가 콤플렉스였던 미애는 패션 모델이 되면서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고, 또 운 좋게(?) 루이라는 남자도 만났다. 프랑스에서 온 사진작가 루이는 여행을 무척이나 좋아했는데, 그가 아닌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졌더라면 이 훌륭한 버스 집은 아마 구경도 못했을 것이다. "오래 전부터, 루이는 버스를 사는 게 어떻겠냐는 말을 하곤 했어요. 좋은
집을 살 돈이 없어서기도 했지만, 천편일률적인 한국의 아파트에서는 정말이지 살기가 싫다고 하더라구요. 하지만 저는 싫다고 했죠.
버스라니요…" 1999년 9월, 루이와 미애는 이태원에 있는 한 당구장을 빌려 사진 스튜디오와 살림집을 겸했다. 촬영 보조와 함께 석 달
동안 인테리어 작업을 해 완성된 스튜디오는 그런대로 훌륭한 작업장이자 그들의 집이 되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한 달 안에 집을
비워달라는 집 주인의 일방적인 통보는 루이와 미애에게 시련이었다. 하지만 몇 개월에 걸친 재판 끝에 승소 판결을 받아 냈다. 자신들을 궁지에
몰아넣었던 주인은 보기 좋게 패했다. 그런데 이놈의 '집'이란 것에 이제는 질려버렸다.
8개월에 걸쳐 탄생한
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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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마치고 돌아오던 어느 날, 길가에 세워진 버스를 보고 문득 '차라리
버스를 사자'던 루이의 말이 떠올랐다는 미애. 찬찬히 살펴보니 버스에서 사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을 것 같다. 나가라는 주인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 일도 없을 테고, 움직이기까지 하니 일을 하러든 우리가 좋아하는 여행이든 그대로 떠날 수 있다. 아,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
집 사는 것보다 훨씬 돈이 적게 든다! 1,005만원을 주고 35인승 중고 버스를 구입했다. '방은 어디에, 화장실은 어떻게…' 밤새
인터넷을 뒤지며 캠핑카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공업사에 맡기기도 했다. 하지만 뚝딱뚝딱 견고하고도 실용적인 버스를 완성시킨 장본인은 바로
루이. "손재주가 좋으신가봐요"라는 질문에 미애는 루이가 아닌 '프랑스 사람들의 집'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프랑스 사람들은 집을
다 제 손으로 꾸민데요. 예술의 나라라 그런지 똑 같은 집은 매력이 없다고 생각하죠. 그래서 마트 같은데 가면 DIY용 도구들이 수두룩하답니다.
주말만 되면 아이들을 데리고 교외로 나가 직접 집을 짓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어요. 자연 속에서아이들이랑 살 집을요." 집 짓는 일은
건축가들이나 하는 한국 땅에서 직접 집을 만들려니 재료가 비싸 돈이 좀 많이 들긴 했지만, 어쨌든 루이는 8개월에 걸쳐 놀라운 집을 탄생시켰다.
35인승 버스 집 뒤집기
35인승 버스는 8평 정도 되는 거 같다. 버스 맨 뒤쪽에는 창문이 큰 침대
방이 있고, 방 문을 열고 나오면 한쪽에는 싱크대가, 그 반대편에는 화장실이 있다. 싱크대 위에는 전자레인지, 냉장고, 가스렌지 대신 핫
플레이트가 있어 완벽한 주방의 모습. 중간쯤으로 가면 의자 3개와 테이블이 놓인 거실이 있는데, 테이블을 빼고 의자들을 쭉 펴면 거실 전체가
침대로 바뀌어 식구 4명이 누워 잘 수도 있는 놀라운 공간으로 변신한다. 버스 입구쪽에는 위아래가 넉넉한 수납장이 있어 전기 사용을 위한
발전기를 넣었고, 남은 부분은 옷장으로 쓴다. 운전석 바로 뒤에는 컴퓨터도 있는데, 이동 중 심심할 때면 그곳에서 게임을 즐기기도 한다. 혹시나
해서 틀어보니 물도 잘 나온다.
"버스 이동용으로 한 15만원, 발전기용으로 8만원 정도 기름을 넣으면 한 달 이상 돌아다니면서 전기를 쓸 수 있어요. 그
발전기에서 나오는 전기로 인터넷도 하고, 히터도 틀고, 요리도 하죠. 물이요? 버스 화물 칸에 400l짜리 물탱크를 채워서 실으면 샤워도 하고
머리도 감고 다 해요." "그럼 화장실은요? 오물도 탱크에 싣고 다니면서 버리나요?" 우리나라에서는 팔지 않는 캠핑카용 화장실 약품이
있단다. 친 환경 제품으로, 일정액을 넣으면 자연 정화가 되어 오물을 다시 변기에 내릴 물로 바꿔주는 것. 정말 완벽하다. 버스라기 보다는
움직이는 집, 그야말로 사람이 사는 집이다. 휴식이 필요할 때쯤 루이와 미애는 이 버스 한 대로 모험을 결심한다. 서울에서 파리까지,
버스 집을 타고 여행을 떠나보면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아이 둘에 개 꼬꼿까지, 다섯 식구를 실은 버스 집은 그렇게 318일간의 대장정에 올랐다.
천 가지 풍경을 가진 버스 집
 | 집
없는 설움에 만든 버스 집이 여행 길에서는 더욱 진가를 발휘했다. "어느 날 아침, 방에서 눈을 떠보니 우리가 바다에 있는 거에요. 버스
맨 뒤, 창을 봐도 양 옆 창을 봐도 온통 푸른 바다였어요. 큰 배에 우리 버스가 실린 채로 이탈리아에서 그리스로 넘어가는 중이었는데, 와~
이런 집에서 잠을 잘 수 있다니… 황홀함 그 자체였죠." 그 이후로는 매일 밤 부푼 기대를 안고 잠이 들었단다. '내일 아침 눈을 뜨면
우리집 밖에 또 어떤 풍경이 펼쳐져 있을까' 하면서 말이다. 변기에 앉는 것도 기분 좋은 일. 화장실에 난 작은 창 밖 구경에 시간가는 줄
모른다. "힘들고 불편했던 점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죠. 물을 구하지 못해 몇 일을 고생하고, 사막에서 버스가 뒤집힐 뻔한 사건도 있었고.
하지만 이 두 가지 빼고는 없어요. 여행 중에 만난 사람들의 집에 비하면 우리 버스는 오히려 사치스런 집이죠. 자기가 끄는 자전거에서
자는 인도 사람, 이불 한 장 있는 방에서 사는 위구르 사람들…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그 사람들이 바리바리 쌓아놓고 사는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훨씬 행복해보이던걸요."
여행에서 돌아온 후, 루이와 미애는 버스 집에게도 휴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이태원
월세 집에 머물며 한 층 업그레이드된 45인승 버스 집 만들기 프로젝트(?)를 준비 중인 다섯 식구. 움직일 줄 모르는 집, 물이 콸콸
나오는 것이 왠지 어색하고, 아침마다 눈을 뜨면 보이는 시멘트 벽도 맘에 안들고… 천 가지 풍경을 지닌 버스 집이 오늘도 너무나 그립지만, 그럴
땐 여행 후 돌아와 펴낸 책 <'미애와 루이, 318일간의 버스여행>(자인출판)을 보며 마음을 달랜다. '그래 조금만 참자!
한강시민공원에 잠시 세워둔 버스가 조금 더 크고 안전한 집으로 꾸며질 때까지. 그리고 개 꼬꼿을 포함한 우리 가족이 조금 더 넉넉하게 떠날 수
있는 그날까지…'

사진/보그코리아 제공, 김근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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