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에서 만화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장르들을 다루면서 ‘고정된 이미지 (l’image fixe)’라는 특정한 주제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해 오고 있는 피에르 프레스노-드뤼엘 (Pierre Fresnault-Deruelle) 기호학자를 그의 연구실에서 만나 보았다.

1943년 프랑스 출생으로 파리와 투르를 오가며 활동, 현재 파리 1대학 빵떼옹-소르본 (Panthéon-Sorbonne) 조형예술대학의 DESS Multimedia 박사과정 (Postgraduate Professional Degree in Multimedia) 전공 디렉터로 재직 중이다. 미술사, 조형예술학, 미학, 시각 커뮤니케이션 이론에 관한 과목을 담당, 강의하고 있으며 이미지의 기호학적 분석이라는 일관된 주제를 가지고 많은 저서를 출판하였다.
미국 작가 에드워드 호퍼 (Edward Hopper)에서 에르제 (Herge,‘땡땡의 모험(L’Aventure de TinTin)’으로 유명한 벨기에 출신 만화가)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독자들에게 흥미로운 시각을 제공하고 있다.
인터뷰 : 방자영 기자(오픈아트 해외기자 / 파리)
(이하 피: 피에르 프레스노-드뤼엘, 방: 방자영)
방 : 선생님께서는 철학자이시자, 현재 파리 1대학 빵테옹-소르본 (Panthéon-Sorbonne) 조형예술대학의 교수로 재직 중이십니다. 특히 DESS Multimedia 박사과정의 책임지도교수로서 어떤 부분을 담당하고 있습니까?
피 : 네, 그렇습니다. 물론 저는 조형예술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철학자라기 보다는 오히려 기호학자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현재 DESS Multimedia 과정을 책임지고 있는 두 명의 디렉터 중 한 사람으로서 이론적인 부분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DESS 박사과정의 수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우선 큰 비중을 차지하는 기술적인 수업에 관하여 말씀 드리자면, 이 수업들은 실무와 직결된 것으로 인터넷, 시디롬, 텍스트, 이미지 생산에 주안점을 두고 이루어 진다고 할 수 있지요. 학생들은 그룹으로 이루어져 어떤 오브제를 컴퓨터 랩실 수업을 통해 생산하게 되는데 그것은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주문을 받은 인터넷 사이트 혹은 시디롬 타이틀 제작과 같은 과제들입니다.
방 : 그렇다면 개인의 작업이 아니라 공동으로 이루어지는 프로젝트성 형식의 수업이 이루어진다는 말씀이군요. 예를 든다면 어떤 작업들이 구체적으로 이루어 지는 것입니까?
피 : 작년엔 프랑스 우체국에서 주문을 받아 회화 작품이 디자인된 우표를 제작하고, 또 시디롬으로도 찍어 내었습니다. 3000점 정도의 회화 작품을 우표에 담았고 공동의 시간과 노력이 집약된 결과물이었습니다. 그 우표들은 대중에게 판매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일종의 우체국 기념우표로 제작된 것입니다.
그리고 조금 전의 질문에 대한 답을 이어서 하자면, DESS 과정의 다른 한 부분은 역시 이론적인 수업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론 수업을 맡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저의 수업은 실무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론은 특히 저의 경우에는, 학생들이 실무와 관련된 작업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뒷받침 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건 프로젝트는 모두 수업과 연관하여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미지를 어떤 방식으로 언급하는지, 우리가 보는 모든 시각적인 사물에서 어떻게 그 이미지들을 선택하고 추출해 내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세요. 그 이미지들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점이 무엇일까요? 즉, 저는 기호학자로서 학생들에게 일종의 ‘이미지 다루기’에 대한 강의를 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학생들이 궁극적으로 만들어 내는 작업들은 목적이 뚜렷한 것이기 때문에 저의 강의와 직접적인 관계는 없으나 이론 수업에서는 모든 고정된 이미지 — 우리가 항상 말하는 회화, 사진, 광고, 정치적인 프로퍼갠더, 만화 등- 모든 시각적 이미지에 대한 연구들이 이루어 집니다.
방 : 선생님께서는 오랫동안 ‘이미지 다루기’에 대한 연구를 지속해 오셨습니까?
피 : 아니오.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제가 대학에서 연구할 때는 이미지와 관련한 수업들이 없었고, 물론 그런 수업들이 존재했다고 해도 몇몇 협소한 주제에 지나지 않았지요.
이미지를 기호학적인 시각에서 연구한 예는 굉장히 드문 경우들이었습니다. 대학 강단에 서면서부터 이미지에 대한 강의와 연구를 집중적으로 시작해 왔습니다. 한 30년 가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봐도 오늘날 그렇게 다양한 연구는 많지 않다고 봅니다.
방 :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선생님께서 연구해 오신 주제와 수업의 내용은 어떤 것들입니까?
피 : 저는 학생들에게 각자 선택한 주제나 관심사를 어떻게 추출해 내었는지에 대해 질문을 유도합니다. 제가 지금까지 행해온 방법으로, 스스로 선택한 주제가 어디서부터 시작 되었는지 근원적인 물음을 던지면서 이미지 뒤에 숨은 본질적인 의미들을 끌어 내는 것이지요. 우리가 보는 모든 이미지들을 설명하는 것이 단순한 문제는 아닙니다. 제 수업의 학생들은 실무를 함과 동시에 기술을 익히고, 물론 이론적인 부분 역시 공부해야 하기 때문에 나름대로 어려움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방 : 이미지란 너무 넓은 주제인데요…
피 : 우리가 이미지를 볼 때 그것이 반드시 분석하기에 가치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미술의 영역에서도 너무 많은 이미지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우선, 각자 선택한 주제들에 대해 일반적으로 기술하는 작업이 필요하고, 또 재구성하려고 시도하는 노력들이 요구됩니다. 선택한 이미지의 맥락을 충분히 파악하고 정의하기까지 학생들로서는 참 오랜 시간 어려운 일이겠습니다만, DESS Multimedia 과정에서 요구되는 것들은 이미지의 정보화, 기술화입니다. 이것들을 체계적으로 축적해 나가기 위해서 긴 시간과 노력은 선행되어야 하는 조건입니다. 이론 수업은 학생들에게 이지적으로 작품의 맥락에 접근하여 미술사, 도상학, 기호학, 인류학, 정신분석학과 미학적 측면 등 여러 각도에서 고찰하고 해석, 정보화 시킬 수 있도록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지요.
저의 경우 30년 동안 나름대로 연구를 지속해 왔기 때문에, 앞선 경험자로서 학생들에게 보다 유용한 접근 방식을 제시하고 조언을 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가령 우리가 스크린을 통해 이미지에 대한 정보를 대중에게 제시하고자 할 때, 위와 같이 다각도에서 다루면서 매체를 통해 어떻게 이미지를 보여줄 것인지 충분히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토론과 연구가 필요한 것입니다.
방 : DESS Multimedia 과정은 조형예술대학 내에서 유일하게 미술관, 박물관, 어떤 단체나 기업 같은 곳과 연계하여 프로젝트성 작업이 이루어 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개인의 작업 보다는 많은 작업들이 공동의 과제로 이루어 지고 그 목적과 결과물도 역시 이론적이거나 학구적이기 보다는 실질적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피 : 대부분의 작업들은 주문 받은 스토리 보드로 구성원을 조직하고 작업을 구상, 착수하게 됩니다. 학생들의 작업은 멀티미디어, 즉 인터넷 사이트 상의 디자인이나 시디롬 같은 결과물로 나타나고 보통 DESS 수업이 총 이루어지는 14개월 동안 지속되는 작업들로써, 물론 보다 실무 위주라 할 수 있겠지요.
조형예술대학은 그 성격이 역시 이론적이고 상당히 지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 과정의 경우, 학생 개개인이 계약을 하고 작업이 완성되는 날까지 참여하여 목적한 바를 달성하기 때문에 작가 개인을 위한 창작 위주의 수업이나 아카데믹한 분위기의 수업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방 :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멀티미디어란 무엇입니까?
피 : 멀티미디어란 정보와 기술의 집약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술이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기술력으로 이미지, 텍스트, 사운드 등 모든 미디어들을 다루기가 용이하기 때문이지요. 비디오나 영화 뿐만 아니라 멀티미디어는 그만의 고유한 창작물을 고유한 방식으로 다루고 보여주기 때문에 흥미롭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신문에서 한국산 핸드폰의 액정으로 만화를 실시간으로 다운 받아 볼 수 있다는 기사를 접했는데 그런 방식들이 멀티미디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기술에 대해서는 아주 약간의 흥미를 가질 뿐입니다. 기술은 흥미로운 방법으로 이미지를 보여 줄 수 있으나 그 안에 어떤 내용들이 결여되어 있다면 전혀 흥미로울 수 없습니다. 기술을 위한 기술은 저에겐 아무런 가치도 없습니다. 요즘 학생들이 단지 기술을 위한 기술만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한데 그런 태도가 지나친 것에 대해 걱정입니다.
형식이 어떻든, 저는 아직도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책을 쓰고 있으며, 저에겐 그 안에 존재하는 내용의 풍요로움과 형식의 우아함, 우리가 만든 소스들이 흥미로운 것이지요.
방 : 앞으로 DESS Multimedia 과정의 성과와 발전 방향에 대해 어떻게 예측하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피 : 저는 신이 아닙니다. (웃음) 이 과정의 수업은 3년째로 접어 들었고, 현재까지 웹 사이트 디자인과 시디롬 제작 등을 지속적으로 해 왔지만 아직 별다른 성과가 있다고 하기에는 이르지요. 물론 학생들과 공동으로 작업한 웹 사이트는 아주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할 만합니다. 반면 미술관이나 공공기관의 주문에 의해 제작된 시디롬은 미적으로나 그 내용으로 보아도 손색이 없으나 대중들에게 알려지지 않아 어려움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학생들로서는 안타까운 현실이지요.
방 : 기호학과 연관하여 선생님의 개인적인 작업들에 대해 소개 부탁합니다. 에드워드 호퍼에 대한 연구를 하셨는데 어떤 방법으로 접근한 것인지 간단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피 : 저는 개인적으로 화가나 회화에 대해 큰 흥미가 없습니다. 또한 많은 연구를 해오지도 못했습니다. 저에게 있어 호퍼는 아주 예외적인 경우라고 생각됩니다. 그것은 ‘왜 나의 시각엔 호퍼가 예외적인 경우로 비치는가’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하였고, 회화와 영화라는 두 주관성 (subjectivity)에서 볼 때, 호퍼의 작품들은 저의 생각을 전복시키는 것들이었습니다.
한 사람의 관찰자(spectator)로서 보기에, 호퍼가 매번 발전시킨 이미지들의 연결성에서 주목할 만한 점들을 찾았기에 오랜 기간의 연구가 지겹지는 않았습니다. 또한 호퍼의 작품들은 거대한 스토리 보드와도 연관이 있습니다. 물론 그의 작업은 분명 미국 현대 회화이지만 영화의 개념과 상당한 관련이 있고 당대 회화에서 이러한 경우는 극히 예외적인 것입니다.
미술사에서 드가는 사진과 늘 관련이 있었고 언제나 그렇게 언급되어 왔지요. 사진의 시각으로 말입니다. 호퍼의 경우는 영화적 상황이고 미국 현대 회화에서 발견되는 맥락들이지요.
방 : 호퍼에서 최근 에르제 연구에 이르기까지 정말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연구해 오셨는데요, 그 외에 어떤 저서들이 있는지요?
피 : 에르제는 30년 동안 해 와서 벌써 다 잊어 버렸습니다. (웃음) 그러나 최근에 다시 새로운 내용들을 찾았지요. 저는 언제나 그를 사랑해왔습니다. 대중들에게 만화가가 천대 받던 시기가 오랫동안 지속 되어왔습니다. 그러나 에르제의 존재는 정말 중요하다 할 수 있습니다. 3개월 전 에르제에 관한 저서 중 마지막 3권의 출판으로 그에 대한 연구를 멈춘 상태이고, 현재는 미국 만화의 선구자 원저 맥케이 (Winsor Mccay)에 대해 글을 쓰고 있는 중입니다.
방 : 끝으로 앞으로 어떤 작업을 지속해 나가실지 계획에 대해서 한 말씀 부탁 드립니다.
피 : 현재로선 앞서 언급했듯이, 윈저 맥케이에 대해 책을 계속 써 나갈 것입니다. 그는 아주 위대한 만화가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동안 그에 대한 몇몇 연구가 있었으나 현재로선 전문적인 저서들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지요. 그 외, 이와 더불어 1930년대 프랑스 포스터에 대한 연구를 동시에 진행 중에 있습니다. 작년에 이미 탈고한 18세기 프랑스 작가에 대한 책이 곧 출판되어 서점에 나오길 기다리고 있지요.
주요 경력
(생년월일 : 1943년 10월 5일, 국적 : 프랑스)
- 1970. 투르 대학에서 ‘만화의 기호학적 접근 (Approche sémiotique de la bande dessinée)’으로 박사 취득.
- 1980. 파리 10대학에서 ‘만화와 공간 (La bande dessinée et son espace)’이라는 주제로 국가 박사 명예 졸업.
- 1983. 대학 교수로 발령.
- 1984-92. 투르 대학 71번 분과 총장 역임.
- 1996. 아를르 국립 사진 학교 (L’École nationale de Photograghie, Arles) 심사위원.
- 2003, 현재. 파리 1대학 조형예술대학 DESS Multimedia 디렉터이자 박사과정 교수.
주요 저서
- 1983. L'Image Manipulée , 168 pages, Paris : Edilig.
- 1989. Les images prises aux mots , 205 pages, Paris : Edilig
- 1993. L'éloquence des images 256 pages, Paris : PUF.
- 1995. La peinture au péril de la parole, Marseille : Muntaner ed.
- 1997. L'image placardée, Nathan, collection "fac"
- 1998. Des images lentement stabilisées (sur le peintre Hopper) Paris I, Institut d'Esthétique / L'Harmattan,
- 1998. collaboration pour 13 textes de 3 pages sur 13 tableaux pour L'Annonciation dans la peinture, CDrom R.M.N / Paris/ CNED (direction Françoise Casanova)
- 2000. Petite iconologie de l’image peinte (Champs visuels, dir. B. Péquignot), l'Harmattan
사진설명 (위로부터)
- Pierre Fresnault-Deruelle 사진
- L'éloquence des images (Paris : PUF, 1993) 표지
- La peinture au péril de la parole (Marseille : Éditions Muntaner, 1995) 표지
- L'image placardée, Nathan (collection "fac", 1997) 표지
- Petite iconologie de l’image peinte (L'Harmattan, 2000) 표지
- Hergé, ou, Le secret de l'image (Éditions Moulinsart, 2000) 표지
- Hergé ou la Profondeur des images plates (Éditions Moulinsart, 2002) 표지
인터뷰 : 방자영 (오픈아트 기자)
정 리 : 윤상훈 (오픈아트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