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의 글은 강익중님의 홈피에서 퍼온 것들입니다. 얼마전에 백남준과 같이 전시를 했던 작가인데...정확한 인포메이션은 없습니다만, 외국에서 활동하는 탓으로 한국을 바라보는 시각이 안에서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기도 .....합니다. 여행이 필요한 이유중 하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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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식 세계화 1997-07-02
『복제인간이 20여년 전 일본에 있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몇 해전 뉴욕의 소호 구겐하임미술관에서 있었던 2차 대전 이후의 일본 현대미술전(Scream Against the Sky)을 보고 던진 한 미국인 친구의 얘기였다. 60∼70년대에 벌어졌던 일본의 세계화 운동이 급기야 일본 미술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를 은근히 비꼬아 한 말이었다. 미국 유명 작가들의 작품과 거의 흡사한 것들이 작가의 이름만 바뀐 채 미술관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들은 「동경뉴욕 동시패션」 이라는 구호 아래 일본의 미술이 뉴욕의 미술과 함께 한다는 강한 자부심을 느끼며 그들의 정신적인 운동을 서구의 것과 교묘히 연결 지으려 했다. 먹지도 않은 햄버거가 오물 통에서 발견됐다고 떠드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친구의 얘기를 들으며 90년대 중반에 들어와 우리는 20여년 전 일본이 부르짖었던 세계화운동을 어떠한 여과 없이 모범학생 같이 받아들이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세계화는 결코 겉모양을 닮아 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깨우친 철학 아래 우리가 서있는 곳과 이웃이 서있는 곳을 연결시켜 세계라는 큰 원을 이루게 하는 것인데….
세계화는 이웃과 나누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남을 착취하고, 오직 자식들에게 버터와 빵 먹이기에 온 힘을 기울인 사람은 주위 사람들을 이끌어갈 수 있는 그릇은 결코 못 된다. 수나라, 당나라의 화려했던 중국문화는 만리장성이라는 자신의 방어벽으로 쇠퇴하기 시작했고, 철통 같은 보호무역정책이라는 벽으로 인해 영국은 2차 대전 후 급속히 퇴보의 길을 걷게 됐다. 다가오는 21세기에는 정보 고속도로의 발달로 누구나 컴퓨터 단추 하나면 정보의 강에 뛰어들 수 있다. 더 이상 정보는 어느 누구의 소유가 아니다. 일본의 동경뉴욕 동시패션이 정보의 갈증에서 나온 부끄러운 산물이었다면, 일본식의 수동적 사고가 아니라 정보를 담고 항해할 수 있는 큰 배를 능동적으로 움직여서 변화와 발전의 항구에 닿게 하는 것이 우리 젊은이들의 몫이고 세계화를 외치는 우리의 책임이다. 그러나 우리가 일본식의 세계화를 모방하기에는 다행스럽게도 김치냄새가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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