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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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2008-08-14 21:34:34, Hit : 971)
전시 8.14



Mellow

김주원展 / KIMJUWON / 金柱沅 / photography

2008_0813 ▶ 2008_0819



김주원_Mellow#08_디지털 프린트_52.5×70cm_2007




초대일시_2008_0813_수요일_06:00pm

갤러리 룩스 2008신진작가 지원展

관람시간 / 10:00am~07:00pm / 토~일_11:00am~07:00pm / 화_10:00am~12:00pm





갤러리 룩스_GALLERY LUX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5번지 인덕빌딩 3층
Tel. +82.2.720.8488
www.gallerylux.net






「Mellow Series」는 오브제화된 신체와 기존의 여러 오브제 자체를 이용하여 일상적 느낌과 탈색된 섹슈얼리티를 표현한 스틸 라이프 시리즈이다. ● 섹슈얼리티는 개개인의 감정 상태나 환경 등에 의해 여러 가지 모습으로 재현되며 해석된다. 나에게 섹슈얼리티는 밤, 욕망, 긴장감, 화려함, 관능 등의 디오니소스적 이미지와 대립되어 존재한다. 내가 지닌 섹슈얼리티는 한낮의 나른함과 일상성으로 재현된다. 에로스는 우리 일상의 수면 아래 언제나 잠재되어 산재해 있으며 우리는 언제라도 그것을 느낄 수 있다. 일요일 오후, 잠에서 깨어나면 섹슈얼리티는 방금 잠에서 깨어난 나의 모습과 마찬가지로 나른한 모습으로 공간에 존재한다. 공간 안에 오브제로써의 신체가 있고 오브제로써의 사물들이 있다.




김주원_Mellow#01_디지털 프린트_52.5×70cm_2007



김주원_Mellow#05_디지털 프린트_52.5×70cm_2007



김주원_Mellow#06_디지털 프린트_52.5×70cm_2007


이 오브제들은 섹슈얼리티를 재현하는 수단으로 방 안의 부드럽고 말랑한(Mellow) 기운을 만들어낸다. 어떤 사물들은 특정한 메타포를 담고 있기도 하며 특정한 취향과 기호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것들 자체가 아닌 이것들로 이루어진 방 안이 지닌 나른하고 일상적인 기운이다.




김주원_Mellow#12_디지털 프린트_75×100cm_2007



김주원_Mellow#14_디지털 프린트_26×35cm_2007


문학적 코드나 고전 회화와 현대 회화의 제스처를 모티브로 삼기도 하나 특별히 가공하지 않은 일상적(Daily) 누드는 대중문화의 아이콘들, 과일, 거울, 꽃과 같은 섹슈얼리티를 상징하는 메타포들과 오브제 화 한 신체와 함께 공간에 녹아 부드러운 기운을 만들어내며 이것이 작업을 통해 내가 보여주고자 하는 내밀한 순간의 감정이다. ■ 김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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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ORGE CONDO

조지 콘도展 / GEORGE CONDO / painting

2008_0813 ▶ 2008_0903 / 일요일 휴관



George Condo_Young Girl_캔버스에 유채_50.8×40.65cm_2004




별도의 초대일시는 없습니다.

시온 갤러리 개관展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요일 휴관





시온 갤러리
ZION FINE ART NEW YORK & SEOUL
서울 종로구 평창동 331번지
Tel. +82.2.379.0355






뉴욕에서 데뷔한 뒤 한 사람의 작가로 Pat Hearn과 Babara Gladstone 갤러리에서 동시에 1983년 전시회를 가졌습니다. 콘도는 지난 20여 년 동안 지극히 전통적인 방법과 그만의 독특한 방법의 초상화의 영역을 개척해 나가고 있습니다. 80년대 초반의 우스꽝스러운 그림을 시작으로 콘도는 기초나 적합한 인물에 반대되는 상상과 기억에 근거한 형식에 억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접근으로 초상화의 장르를 만들어갔습니다. 이 콘도의 눈을 통한 상상의 초상화는 초상화의 새로운 언어로 발달해 나가는 발판이 되었습니다. 유화의 전통적인 테크닉을 동시에 가져오는 동안 심리학적 복합성을 그의 주제로 불어넣고 독특한 초상화의 영역을 만들었습니다. ■ 시온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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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 이미지: 거울 시선

2008_0813 ▶ 2008_1005 / 월요일 휴관



자아 이미지 : 거울 시선展_2008




초대일시_2008_0812_화요일_05:00pm

고희동_권여현_권옥연_김승영_김우임_김인승_김종영
김홍주_김환기_박형근_변웅필_서동진_송영방_유근택
이소연_이인성_이준_이중섭_이쾌대_이훈_천경자
천성명_최욱경_최지만_하인두_황주리(총 26명)

주최_서울시립미술관

관람시간 / 화~금요일_10:00am~08:00pm / 주말,공휴일_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분관
NAM SEOUL ANNEX BUILDING OF THE SEOUL MUSEUM OF ART
서울 관악구 남부순환로 2082(남현동 1059-13번지)
Tel. +82.2.2124.8800
www.seoulmoa.org






『자아 이미지 : 거울시선』展은 거울을 통한 전통적인 방식으로부터 사진술, 매체의 발달과 함께 변화되어 온 자화상의 다양한 양상과 의미를 고찰하는 전시이다. 원본을 모방하면서도 새로운 세계를 유추시키며 외면뿐 아니라 내면을 돌아보게 하는 ‘거울’을 모티브로 미술가와 그의 자아, 그리고 자아가 표현된 작품들의 관계와 의미를 조명한다. 우리가 어떤 존재, 양상을 비추어볼 때 무엇의 ‘거울 이미지’라 칭하곤 한다. 대상을 그대로 비추면서도 거꾸로 보여주는 거울 이미지의 양면성 안에서 대상에 대한 성찰과 고민을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 라캉에 따르면 거울은 하나의 주체로서의 자기를 처음으로 깨닫게 하는 대상이며, 한때 인간을 ‘호모 스페쿨룸’으로 부르던 시기가 있었는데 스페쿨룸(speculum)은 라틴어로 ‘거울’이라는 뜻으로 스페쿨레이션(speculation:사색)의 어원이기도 하다. 이처럼 이미지를 그대로 비춤과 동시에 내면적인 모습까지 돌아보게 하는 ‘거울’이라는 존재는 작가의 내면적 성찰이 드러나는 자화상을 주제로 한 이번 전시에서 중요한 모티브로 작용한다. ● 자화상(self-portrait)은 화가가 '자신(self)'을 재현의 대상으로 삼아 '그리는(portray)' 초상화의 한 장르이다. 'portray'는 '발견하다', '끄집어내다'라는 뜻의 라틴어 'protrahere'에 어원을 가지고 있으므로, 자화상은 자신의 초상을 그리는 것을 넘어 또 하나의 자신을 발견하고 내적인 자신을 끄집어내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자화상 작품들을 통해 작가의 심리상태와 자기애, 자기 과시, 자기 확인, 자기 연민 등의 다양한 내적 인식을 읽어낼 수 있다. ● 이 세계를 바라보는 각자의 태도를 작품으로 풀어내는 예술가들에게 자신의 내면에 대한 성찰과 고민은 중요한 명제일 수밖에 없다. 작가의 내면적 본질,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작품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로서의 사유 대상인 것이다. 그것이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난다고 볼 수 있는 자화상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다양한 주제와 기법으로 꾸준히 연구되어 왔다. 화가가 자신의 모습을 작품으로 그려 인정받게 된 것은 서명(signature)과 작가의 개념이 생겨난 르네상스에 이르러서이다. 전통적인 자화상은 거울에 비친 화가의 얼굴을 재현한 것이었고, 사진술의 발명 이후로는 순간포착을 통한 새로운 자아 이미지의 묘사가 가능해졌다. 그리고 현 시대에는 디지털 카메라의 등장에 따라, 타자나 삼각대에 의한 포착을 넘어 자신의 시선 앞에 스스로가 자유로운 객체로 기능하면서 한 차원 다른 느낌의 자아가 포착, 표현되게 되었다. 나아가 매체의 발달로 타 존재와의 합성, 또는 변장을 통한 새로운 자신의 모습을 창조하기에 이르렀으며, 또한 일부의 작가들은 본인과는 전혀 다른 객체에 자신을 이입하여 각자의 심리상태를 상징화하기도 한다. ● 근대 이후 우리 미술가들의 자화상 작업의 양상, 그리고 그 안에 내재된 의미들을 조망하는 본 전시는 있는 그대로의 얼굴을 비추는 거울 이미지로서의 자화상 작품들을 모은 ‘얼굴에 담긴 소우주’, 거울의 또 다른 특성인 왜곡과 굴절이 반영된 일종의 ‘가면 이미지’로 해석되는 작품들로 구성된 ‘내면의 거울, 가면 이미지’의 두 섹션으로 나누어 전시된다.

얼굴에 담긴 소우주 The Microcosm Captured in the Face ● 흔히 자화상이라 하면, 작가의 얼굴을 그린 그림을 떠올린다. 얼굴은 그 사람의 정신세계와 얼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표상으로, 동양에서도 “초상화에서 얼굴을 묘사하는 것은 곧 그 사람의 정신을 묘사하는 것”이라 하여 이를 전신사조(傳神寫照)라 하였다. 얼굴은 영혼의 거울이기도 한 것이다. 사람이라는 한 우주, 각자의 생각과 인생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그릇이자, 사람이 묘사할 수 있는 가장 복잡하고 미묘한 대상 중 하나라 할 수 있겠다. 이 섹션에서는 근대 자화상의 시작으로 전해지는 우리나라의 첫 서양화가 고희동의 ‘자화상(1915)’과 화가로서의 자의식이 보여지는 서동진의 ‘팔레트 속의 자화상(1930)’으로부터 최근의 작가들에 이르기까지, 거울과 카메라, 디지털카메라 등에 의하여 본인의 얼굴들을 사실적으로 인식하고 표현해 낸 다양한 회화 작품들이 전시된다.




고희동_부채를 든 자화상_캔버스에 유채_61×46cm_1915_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이쾌대_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_캔버스에 유채_72×60cm_1948-49_이한우 소장



이중섭_자화상_종이에 연필_48.5×31cm_1955_개인소장
최욱경_푸른 모자를 쓰고_종이에 파스텔_61×46cm_1967_개인소장



△유근택_자화상_목판_28×20cm×2_1987-2002
▽변웅필_한 사람으로서의 자화상-61_캔버스에 유채_90×75cm, 180×150cm_2008


내면의 거울, 가면 이미지 Mental Mirror, Mask Image ● 이 섹션은 작가 모습의 왜곡, 혹은 변장이나 연출, 나아가 타 존재에의 이입을 보여주는 작품들로 구성된다. 다양한 변주와 설정으로 인해 실제 자신의 얼굴을 유추할 수 없는 작품들도 있지만 오히려 이러한 간극이 오히려 작가의 내면세계와 잠재된 자아를 보다 깊이 있게 가늠하도록 이끌기도 한다. 첫 번째 섹션의 작품들을 있는 그대로의 얼굴을 비추는 거울 이미지로 본다면, 이 섹션의 작품들은 거울의 또 다른 특성인 왜곡과 굴절이 반영된 일종의 ‘가면 이미지’로 해석할 수 있겠다. 자기 노출과 은폐가 교묘하게 공존하는 이 섹션에서 작가들이 제시하는 가면 이미지들을 통해 그들의 내면을 보다 폭넓게 성찰하고, 그 뒤에 숨어 있는 맨 얼굴인 작가들의 내적 자아를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준_도화(Pierrot)_캔버스에 유채_44×34cm_1960



김승영_자화상_단채널 비디오_가변크기_1999



이소연_with two dogs_ 캔버스에 유채_200×145cm_2007



천성명_그림자를 삼키다_F.R.P에 아크릴채색_58×76×55cm_2007



박형근_A Voyage-5_Daytime Moon_C 프린트_103×130cm_2008



이훈_Self Camera_혼합재료_가변설치_2007


본 전시는 미술가들에게 ‘자아’라는 대상은 어떠한 존재이며, 어떤 영감을 주고, 혹은 어떠한 영감으로부터 자화상이 제작되는가, 작품 안에서 어떻게 표현되고 이해되고 있는가를 근대 이후로부터 동시대 미술가들까지의 작품에 걸쳐 폭넓게 살펴보려는 시도이다. 이를 통해 현대미술에서 작품의 소재로서의 ‘작가 자신’의 의미를 되묻고, 작가 정체성 표출의 다양한 변화 양상을 고찰하며 우리 시대 작가의 모습과 우리의 모습을 사색하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 ■ 최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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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각과 충동

관훈갤러리 개관 30주년 기념展

2008_0813 ▶ 2008_0826



Perception & Impulse展_2008




초대일시_2008_0813_수요일_06:00pm

기획_관훈갤러리
공동 커미셔너_윤진섭_권도형

참여작가
기대용_김계완_김병호_김소희_김윤정_노자영_다이아
박상희_박은하_연기백_윤지웅_이동조_이베르_이이남
이지원_이지현_이태경_인효진_전정은_정현용_홍지윤
정경미_강성민_김성수_ 박병일_이귀영_더

관람시간 / 10:30am~06:30pm





관훈갤러리_KWANHOON gallery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5번지 본관,신관
Tel. +82.2.733.6469
www.kwanhoongallery.com






새로운 도약을 위한 실험 무대-『지각과 충동』展의 의미 ● 관훈갤러리가 어느덧 개관 30주년을 맞이하였다. 1979년 8월 6일부터 15일까지 열린 『개관기념 신예작가12인』展이 첫 번째 전시회였다. 개관 당시는 관훈미술관이었는데, 90년대 초반에 개정된 ‘미술관 및 박물관 등록법’의 규정에 따라 관훈갤러리로 개칭하게 된 것이다. 개관기념전은 그 이름에서 나타나듯이, 젊은 작가들의 창작 분위기를 진작하기 위해 마련한 것이다. 당시 이 전시는 관훈갤러리의 성격이 잘 드러난 진취적이고 실험적인 성격의 전시회였다. ● 당시의 인사동은 고미술과 골동품을 취급하는 화랑과 표구점들이 즐비한 고미술의 거리였으며, 현대미술을 취급하는 화랑은 명동화랑을 비롯하여 십 여 곳에 지나지 않았다. 인사동 거리는 오늘날 보는 것처럼 복잡하지도 않았고 현대식 빌딩이 많지도 않았다. 그림을 감상하거나 전시 때문에 들른 미술관계자들이 분주히 오가는 것은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았으나, 고색이 창연한 거리의 식당에서 술과 음식을 앞에 두고 정담을 나누는 사람들로 붐비는 모습은 지금과는 사뭇 다른 광경이었다.




◁윤지웅_Untitled_캔버스에 아크릴,에나멜 스프레이채색_58×46cm_2008
△홍지윤_인생은_장지에 수묵채색_80×117cm_2008
▽김소희_Untitled_종이에 디지털 프린트_2007


관훈갤러리가 한국 현대미술에 끼친 공적은 실험미술의 산실이었다는 사실에 집약돼 나타난다. 1979년 개관이후 80년대와 90년대를 거치는 동안 『에꼴 드 서울』을 비롯하여 『레알리떼 서울』, 『로고스와 파토스』 등 한국 현대미술에 견인차 역할을 한 그룹들이 이곳에서 전시를 하였으며, 『삶의 미술』 등 한국 현대미술의 전환기에 새로운 현상을 보여준 역사적인 전시들이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다시 말하자면 70년대의 소위 다원화적 양상을 보이는 단색화, 하이퍼리얼리즘, 입체, 설치, 비디오 등 다양한 경향의 작가들이 개인이나 혹은 집단의 이름으로 이곳에서 전시를 했고, 이러한 양상은 80년대의 소위 민중미술과 90년대의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이어지며 관훈갤러리는 ‘집단적 미술운동’의 산실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한 여건이 가능했던 것은 그 당시만 하더라도 관훈갤러리만큼 큰 공간을 가진 화랑이 인사동 지역에 드물었을 뿐 아니라, 이 갤러리가 상업화랑을 표방하지 않고 일종의 대안공간과 같이 의미가 있는 전시회에는 선뜻 후원을 아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 미술평론가 김복영의 한 글에는 이러한 사실이 뚜렷이 명기돼 있다. “이러한 실험과 정열의 진원지가 명실상부하게 최초로 그리고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곳이 바로 관훈미술관이었다. 권대옥 관장은 가난한 현대작가들, 특히 젊은 작가들이 그들의 작업을 실험하고 정열을 뿜어낼 수 있는 절호의 공간을 마련해 준 셈이다. 그들의 경제 사정을 고려하여 대관료를 절감해 주거나 어려운 처지의 젊은 작가들의 호소에 무상으로 응답하는, 독지적 온정을 베푸는 일이 비일비재하였다.”(김복영,「현대미술」, 저 인사동 시대의 성시-관훈미술관 개관 10주년의 의미)




◁이동조_그 때, 나와 당신의 방에서_유채_162.2×112.1cm_2008
▷정경미_99개의 창_아크릴채색, 사진복사_193.9×130.3cm_2007



◁강성민_seen and unseen_피그먼트 프린트, 라이트박스_40×30cm_2007
▷박병일_a breath_화선지에 수묵_130×80cm_2008


그러나 문화예술의 후원자로서 설립자가 보인 이러한 열정도 미술계에 다가온 판도의 변화 앞에서는 세월의 무상함을 생각하게 한다. 강남지역 개발에 따른 신흥 화랑가의 형성과 집단운동의 퇴색, 상업주의 대두, 국제화 시대의 도래가 맞물린 90년대 미술계의 판도 변화는 대관을 위주로 했던 당시의 갤러리들에게 일침을 가하며 시대의 변화를 요구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특히 이천년대에 들어서면서 더욱 심화되었다. 무한 경쟁 체제에 돌입하며 화랑계는 국제적인 경영 감각을 필요로 하였으며, 현대화된 갤러리 시설과 해외 진출 등을 통해 젊고 신선한 작가들의 비중이 커지며 빠르게 미술계의 신풍속도를 만들어 갔다. 이와 함께 인사동 지역뿐만 아니라 많은 화랑들이 사간동과 팔판동 등으로 지역적인 확장을 시도하기도 하였다.




위◁김계완_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no.6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2.7×60.6cm_2008
위▷김성수_Interface_흑백 피그먼트 프린트_25×25cm_2007
아래◁이지원_도시에서의 삶 no.1_캔버스에 유채_130.3×162.2cm_2008
아래▷전정은_Landscape of Egoism_잉크젯 프린트_96×120cm_2008


이처럼 관훈갤러리의 개관 이후 30년에 걸친 기간은 인사동 화랑가를 넘어서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 속에서도 격동의 역사 그 자체였음을 알 수 있다. 그 변천과 함께한 관훈갤러리는 지금도 그 자리에 변함없이 묵묵히 서 있다. 일제시대에 병원으로 사용되었으며 사료적 으로도 높은 가치가 있는 이 건물이 설치와 영상이 주를 이루는 오늘의 전시 양태와 과연 어떠한 조화를 이룰 수 있을지는 주목되는 부분이다.




◁이베르_Venus_나무판에 연필, 아크릴채색, 프린트_200×100cm_2008
▷이태경_taeseok0801_캔버스에 유채_195×97cm_2008



위◁인효진_High School Lovers_ Romance#101_디지털 프린트_80×120cm_2007
위▷THE_PRADA_캔버스에 유채, 아크릴채색_45.5×53cm_2008
아래◁이귀영_Virtual Space_도시, 자연, 인간_혼합재료_228×364cm_2006
아래▷김윤정_Untitled_캔버스에 유채_160×160cm_2008


관훈갤러리가 이번에 개관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한 『지각과 충동』展에는 청년세대 작가들의 최근 경향이 잘 나타나 있다. 20대 후반에서 30대 후반에 이르는 작가 27명을 초대한 이번 기획전은 회화, 설치, 사진, 영상 등을 망라하고 있다. 개관 30주년을 맞이하여 그 기념전으로 기획의 초점을 신세대에 맞추었다고 하는 사실은 초창기 개관기념전의 성격을 다시 표방하겠다는 의지를 거듭 확인하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어느덧 2세 경영체제로 넘어가고 있는 화랑가의 현 추세와도 맞물려 있다. 관훈갤러리 역시 1세대 권대옥 관장 체제에서 2세대 권도형 대표 체제로 넘어가면서 새로운 경영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는 매우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관훈갤러리는 새로운 도약의 시기를 맞이하여 몇 가지 중요한 구상을 하고 있다. 그 내용이 무엇인가는 시간이 지나면서 밝혀지겠거니와 이번 기획전은 그 변화를 화단에 알리는 첫 신호탄이 될 것이다.




김병호_Silent Monument_brass, buzzer, DTMF generator, wiring_26×169×28cm_2008
이이남_크로스 오버 앙상블_media installation_00:12:00_2008
다이아_어찌나 끔찍했던지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_디지털 프린트_80×200cm_2008



박상희_머라이언_캔버스에 유채_97×162.2cm_2007
연기백_Yuon, Kibaik01_실크_200×230×10cm_2008


관훈갤러리는 변화의 시기를 맞이하여 그 동안 조용히 몇몇의 중요한 전시를 기획한 바 있다. 해외의 유망 작가들을 초대하여 몇 차례 기획전시를 선보인 바 있고, 젊고 능력 있는 국내의 청년작가들을 소개하는 기획전을 연 적도 여러 차례 있다. 이 전시회들이 화단에 과대 포장돼 알려지지 않은 것은 그 진로에 관한 신중하며 진지한 태도를 바탕에 깔고 있기 때문이다.




◁기대용_생의 근원_캔버스에 유채_162×130cm_2007
▷노자영_데미안 허스트가 겸재를 만나다_한지에 실크스크린_130×93cm_2007



이지현_Blossoming Arcadia_패널에 아크릴, 에나멜채색, 라미네이트 디지털 프린트,
포토콜라쥬_82×122cm_2005
박은하_bytecellar-process_부분


『지각과 충동』展은 사물에 대한 인식과 이를 내면에서 녹여내 예술의 창조적 충동으로 전환시키는 창작의 메카니즘에 대한 은유로 붙인 것이다. 따라서 예술이 작가 개인의 창조적 소산이라면 이번 기획전에 참가하는 작가들이 발산하는 작업의 스펙트럼은 모두 27개의 서로 다른 색채로 이루어진다. ● 그것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또 향후 관훈갤러리의 기획에 반영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우리가 관훈갤러리에 기대하는 한 축을 이룬다. 말하자면 관훈갤러리의 제2의 도약을 위한 실험대 위에 이 전시가 놓여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 윤진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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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ng Day's Journey

오상택_차소림展

2008_0814 ▶ 2008_0910 / 일요일 휴관



Long Day's Journey展




초대일시_2008_0814_목요일_06:00pm

참여작가_오상택_차소림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요일 휴관





리씨갤러리_LEEC GALLERY
서울 종로구 삼청동 35-240번지 1~3층
Tel. +82.2.3210.0467~8
www.leecgallery.com






리씨 갤러리에서 자신의 작업 안에서 삶의 긴 여정과, 삶에 대한 애착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는 두 작가의 전시를 준비하였습니다. 거대한 구조, 혹은 사회 안에서 겪게 되는 소외나 상실감을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의 매듭을 풀어나가는 두 작가는 다른 성별, 다른 매체, 다른 사고, 다른 색깔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만 같은 방식으로 소통하며 삶의 과정을 그려내는 공통점을 보여줍니다. ● 오상택은 최근 가장 주목 받는 사진작가입니다. 사진이란 최첨단 매체를 미디엄으로 삼지만 고단한 작업과정과 풍부한 감성을 통해 드라마틱한 삶의 과정을 은유적으로 담아내는 작업을 보여줍니다. ● 차소림은 초월적 메시지에 힘겹게 다가가는 자신의 모습을 페르소나인 작은 개미로 표현합니다. 텍스트의 이미지로 나타나는 바늘땀 혹은 기호 이미지는 작가가 찾아가는 공통코드의 모습이 은유적으로 표현된 것이며 이를 통해 작가는 삶 안에서의 소통과 부재를 이야기합니다. 젊은 두 작가가 차분한 목소리로 삶과 꿈에 대해, 그 고단함과 애처로움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번 전시는 젊은 두 작가가 잠시 걸음을 멈추고서 우리에게 들려주는 삶이라는 긴 여정의 중간 과정이 될 것입니다. ■ 리씨갤러리




오상택_PRS2-001 Jump_컬러인화_100×130cm_2008


본인의 작업은 현대사회에서의 물질적 가치의 비대, 거대한 사회의 시스템 안에서 겪을 수밖에 없는 인간적 소외, 상실감. 그러나 그 와중에서도 느껴지는 삶에의 애착. 이러한 인간 삶의 이중적인 모순을 가지고 진행되고 있다. 본인이 작업에서 표현하는 대부분의 소재들은 이러한 우리 현대인의 삶의 모습들을 수긍하며 그 삶에 대한 애착을 형상화 하는데 있다. 작업 「PROCESS」는 현대인들의 삶의 과정 안에 묻어있는 그들의 현실적 삶과 그 안에서 파생 될 수밖에 없는 이상에 대한 동경, 자연에 대한 동경을 본인의 직접적, 혹은 간접적 경험과 직관에 의해 상징화한 것이다. ■ 오상택




오상택_PRS2-002 BAND_컬러인화_138×110cm_2008


"본인의 작업은 현대사회에서의 물질적 가치의 비대, 거대한 사회의 시스템 안에서 겪을 수밖에 없는 인간적 소외, 상실감. 그러나 그 와중에서도 느껴지는 삶에의 애착. 이러한 인간 삶의 이중적인 모순을 가지고 진행되고 있다. 본인이 작업에서 표현하는 대부분의 소재들은 이러한 우리 현대인의 삶의 모습들을 수긍하며 그 삶에 대한 애착을 형상화하는데 있다. 작업 「PROCESS」는 현대인들의 삶의 과정 안에 묻어있는 그들의 현실적 삶과 그 안에서 파생될 수밖에 없는 이상에 대한 동경, 자연에 대한 동경을 본인의 직접적, 혹은 간접적 경험과 직관에 의해 상징화한 것이다." ● 일반적으로 21세기 경제, 문화 발전의 정점에 다다른 사회는 구성원들의 삶의 방식에 대해 과거와는 달리 상호 공유적인 요소를 크게 강요하지 않는다. 즉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사회에서는 개인의 선택이 큰 폭으로 확대되며 덕분에 현실과 다소 유리되거나 때로는 이성적이지 않는 삶의 문화도 누릴 수 있게 된다. 이처럼 개인의 독자성과 개성이 현실의 삶에 정제되지 않은 채 이상적이고 감성적인 순수성이 그대로 보존되는 추세는 사회 구성원들의 사적 영역을 보장시키며 우리의 사회를 개인화, 다분화 사회로의 변화시켜간다. 전 지구적 공통체 사회에 대한 반작용이라 할 수 개인화 현상은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다. 그러나 사진작가 오상택은 이러한 개인화 흐름을 향유하며 스스로의 독립된 자아 안에 머무르고 싶어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회의 일원으로서 강요되는 회색의 현실과 자신만의 자위적 영역 경계에서 영유하고 있다. 오상택은 자신과 현실 사회와의 관계를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만의 영역이 보장되지는 개인화, 다분화 사회로의 변화를 두려워하며 끊임없이 자신의 이상적 자유를 사회의 구성 안에서 찾으려하고 있다. 그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공동체적 사회에서의 완전한 독립이나 자유를 망설이고 있다. 인간이 가질 수밖에 없는 현실의 한계정세를 넘어서기보다는 사회와 어울림을 통한 이상적 자유를, 나 스스로가 아닌 타자에 의해 인정받고 찾아가려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오상택_PRS-017 Voyage_컬러인화_110×138cm_2007


그의 다양한 작업 스타일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는 배경 속 등장인물로서 자신이 직접 출현한다거나 또는 다수의 주변인들을 등장 시키고 그가 의도하는 인위적 행위들을 그들에게 요구하는 것이다. 그 행위들은 배경과는 다소 이질적이고 어색한 상황으로 연출되어짐으로서 작품 안에서 다층적 구도로 나타난다. 이러한 시도는 사회조직과 인간 사이의 모순점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로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연 배경과 등장인물 사이의 상대적 차이를 극소화시키며 사회로부터 자아의 완전 독립을 거부하고 자기 스스로를 사회에 대한 구성원으로서 부각시킨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이상향을 바라보는 인물이나 그곳을 향해 나아가는 긴 여정의 등장인물들은 그들이 떠나고자하는 배경 즉 어두운 동굴이나 하얀 빙판, 호수 등 그가 설정한 배경들과 부조화 속에서 기묘한 어울림을 만들어내며 이상향으로 떠나고 싶지만 또한 현실에 안주하고 싶은 상황을 너무나도 아름답고 자연스럽게 만들어낸다. 그는 항상 자연이라는 이상적 세계를 자신의 사진 속 배경으로 그려낸다. 그 이상향들은 항상 어려운 노동적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며 그가 찾아낸 자연들은 무수히 걷고 헤매는 육체적 어려움의 결과적 산물들이다. 비트 이미지들이 난무하고 디지털 기술이 발달한 시대에 보다 쉬운 방법으로 그가 원하는 이미지들을 만들어 낼 수도 있지만 그는 그러한 방법들을 선호하지 않는다. 그에게 육체적 소모과정은 작업의 일부이며 인내를 통해서 자신만이 공유할 수 있는 정신적 자유로움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 오상택의 작업 「PROCESS」는 현대인들의 현실적 삶 그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은 이상에 대한 동경, 자연에 대한 동경이기도 하지만 그 이상들은 현실에서 파생되어진 것이다. 적어도 그에게 있어서 소외, 상실감. 허무 이러한 사회의 모순들로부터의 자유는 그가 말하는 삶에의 애착에서부터 찾아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 서진석




차소림_Decod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스티치_53×45.5cm_2008


"나에게 다가온 글의 이미지 그것은 우리가 찾아가는 공통 코드의 모습이기도 하며 그것은 신의 메시지와도 닮아 있었다. 나는 그 안에서 종종 눈에 띄는 자신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으며 그것은 대상에 투영되기도 하고 때로는 투사되어 보여 지기도 하였다.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만들며 행위를 지속하는 자신의 모습을 작은 개미에 비유하여 글의 이미지를 만들어 가고는 하였다. 그것은 거대한 메시지와 소통을 원하는 인간의 모습을 추상적인 형태와 구체적인 형상, 복잡성과 단순성 등의 모양으로 한 화면 안에 자리하기도 한다.” ● 바벨탑이 무너지면서 사람들은 서로 다른 언어로 사방에 흩어져 이처럼 살아가게 되었다고 말하여지기도 한다. 서로 다른 언어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때로는 서로의 소통할 수 없음에 난감해 하기도 하고 의사전달의 소통 이상의 공감을 기대하기도 한다. 텍스트의 이미지로 나타나는 바늘땀 혹은 기호 이미지는 우리가 찾아가는 공통코드의 모습이 은유적으로 표현된 것이다. 나에게 다가오는 글의 이미지는 신의 메시지를 닮아 있었고 메시지의 내용을 찾아가는 나의 모습을 개미에 비유하여 한 화면에 그려나간다. 끊임없는 개미의 움직임은 기호를 쌓기도 하고 옮기기도 하며 또 다른 의미체계를 만들기도 하고 열려있는 문처럼 보여 지는 커다란 텍스트의 이미지로 들어가는 듯한 움직임을 보여주기도 한다. 움직임의 흔적들이 남아 시간을 이야기해주기도 하고 산처럼 혹은 계단처럼 쌓아지고 흩어지는 기호들은 신의 메시지에 접근을 시도하는 일련의 행위를 의미하지만 때로 그것은 일련의 행위 이상을 넘어서지 못하기도 한다. 화면 위에 분절음처럼 자리하는 기호들은 또 다른 형상을 만들기도 하면서 신의 메시지를 향한 여정을 지속한다. ■ 차소림




차소림_Decod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스티치_117×91cm_2008


신의 죽음과 초월성의 소멸 속에서, 그러니까 (시어도어 로작 Theodore Roszac의 표현을 빌자면) 세계의 코카콜라 식민지화, 또는 '과학적 세계관의 밀실 공포증과 온갖 종류의 환원론적 오만'이 범람한 이후, 당연하게도 인간의 영혼은 오갈 곳이 없어졌다. 객관적 과학이 성취한 물질로 가득한 세계는 인간의 영혼이 머물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존 스토트, John Stotte) ● 그 결과 이 시대는 놀라울 정도로 초월성의 회복에 집착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렇지 않다면, 환각을 일으키는 약물과 뉴에이지(new age)의 소위 고차원적 의식이라는 것들이 그 어느 시대보다 널리 퍼져나가는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공상과학과 요가, 극단적인 예술의 지류들, 그리고 말콤 머거리지가 유물론자의 유일한 신비라고 부른 섹스 등, 온갖 종류의 수단을 동원해 절박하게 초월성을 갈망하는 시대가 바로 이 시대인 것이다. 사회학자 피터 버거(Peter Berger)를 따르면, 현대사회에 나타나는 온갖 종류의 신비주의적 경향은 근대의식이 초월성을 억압한 결과에 다름 아니다.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초월성을 향한 열망과 모색은 차소림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 있어 중핵적인 단초다. 기호, 문자, 텍스트들-대부분은 성경으로부터 기인한 것들인-을 추구하고 따르는 과정으로 시각화된다. ● "나에게 다가오는 글의 이미지는 신의 메시지를 닮아있었고, 메시지의 내용을 찾아가는 나의 모습을 개미에 비유하여 한 화면에 그려나간다."




차소림_Decode - first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스티치_117×91cm_2008


차소림은 이미 2002년 예컨대 「creation-code」같은 매력적인 작품을 통해, 에폭시의 여러 레이어 속에서 어렴풋 드러나는 텍스트를 보여주었는데, 그것은 마치 오랜 시간의 벽을 뚫고 막 현재에 모습을 드러낸 어떤 통시적인 계시 같아보였다. 작가에게 시간은 하나의 경로로서 예나 지금이나 중요한 의미다. 그것이 역사를 초월하고, 시간을 넘나드는 범우주적 진리, 주어진 하나의 역사적 상황하에서는 결코 인식되거나 규정될 수 없는 초월적 진리가 존재에게 다가오는 통로가 되기 때문이다. 이 역사성, 통시성은 바느질을 통해 캔버스에 텍스트를 요철 형태를 남기는 현재의 작업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하나의 계시에서 이웃하는 계시로 연이어지는 이 과정은 작가가 신의 메시지를 향해 지속해 가는 여정이다. 이것은 완성을 향하면서, 그 자체로 완성이기도 한 매우 신비로운 과정이다. 계시의 이 순환적이고 변증적인 과정이 지속되는 동안, 화면에는 의미의 심오성이 피상성을 결정적으로 넘어선-넘어서고 있는- 흔적인 깊고 오목한 함몰들이 만들어진다. 이 심오함의 출구를 중심으로 텍스들의 응집과 산포가 만들어내는 모노크롬의 변주는 인상적이다. 그것은 마치 고대문명기의 두루마리에서 발굴된 텍스트와 흡사한 인상을 준다. 텍스트의 활자에 해당하는 요소는 지퍼의 서로 맞물리는 잇 날들이 수없이 반복된 조밀한 자국들이다. 이 계시의 심오한 함몰들로 인해 차소림의 회화는 3차원의 깊이를 향해 열려 있는 것이 된다. 형식적으로 이 깊은 함몰은 2차원성이라는 고전적인 지평이 무너질 때의 긴장감을 화면에 남긴다. 규칙적으로 반복되면서, 화면 전체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기도 한 이 함몰들은 계시의 기호학적 응집일 수도 있고, 심오한 초월성으로 나아가는 출구일 수도 있다. 그래서 그 주변에서 개미로 변신한 작가의 갈망이 그토록 분주해지는 것이리라. ● 작가가 자신을 개미에 비유하는 것은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이 초월적인 여정에서 한 인간의 위상이 결코 과장되거나 포장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개미로의 변신을 단순한 문학적 레토릭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곤란할 것이다. 이 성실하고 극소한 곤충이야말로 절대 진리를 향한 초월적 여정에서 자신이 받아들여야 할 정당한 위치이기 때문이다. 화면에서 이 개미들은 지나치게 작아, 가까이 다가서기 전까지는 하나의 얼룩처럼 보일 지경이다. 이 지나치게 작은 것들은 분명 미물로서, 그들이 살고, 노동하고 이동하는 세계에 대해서조차 거의 아는 것이 없다. 이 절대 무지의 고백이야말로 작가를 포함해 우리 모두가 이 광대한 우주 앞에서 견지해야 할 진정한 태도일 것이다. 우리는 문화적, 시대적, 지형적 제약 속에서 살 뿐이며, 그 차원을 넘어서는 어떤 것에 대해서도 거의 아는 바 없다. 하지만 개미들은 그들의 무지 속에서 더욱 열심히 노동한다. 끊임없이 기호들을 옮기거나 축적하면서, 그리고 음미하고 탐닉하면서 운명적으로 그것들을 동반하는 삶에서 분주하게 생을 꾸려나간다. 그러면서, 앞서 말한 계시의 심오한 응집인 함몰들의 주변으로 부단히 모여드는 그것들에서 우리는 우리의 진정한 내적 갈망의 방향을 새삼 독해하게 된다. ● 오늘날 구조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의 범람하는 담론들 안에서 언어는 다만 존재의 한계를 확증하는데 유효한 담론으로 취급되고 있다. 그 같은 종류의 담론들을 따르자면, 존재는 사회와 문명의 감옥에 갇힌 것처럼, 언어의 철장에 동일하게 갇혀있다. 언어는 우리를 옴짝달싹하지도 못하게 하는 체계와 권력의 하수인인 것이다. 반면, 차소림에게 언어와 기호는 너무나도 소중한 계시의 신체이자, 드넓고 심오한 초월의 세계로 나아가는 은혜로운 이정표다. 그의 텍스트는 모든 인간 존재가 도달하고자 하는 공통된 갈망의 기록들이다. 이 게시의 보편성을 제한하지 않기 위해 작가는 한 지역의 구체적인 언어를 택하지 않음으로써 그 문자와 텍스트가 한 지역의 방언과는 다른 것이 되도록 했다. ● 차소림은 우리의 운명적인 제한인 바로 그 언어가 동시에 기회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있다. 텍스트가 자신으로만 가득 채우는 동안에는 족쇄지만, 자신을 비우는 순간 하나님의 계시를 담는 순결한 용기가 될 수 있음을 밝히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그의 향후의 작업들이, 그에게 점점 더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낼 초월과 계시로부터의 메시지를 전하는 성격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작가 자신보다 앞서, 벌써부터 그의 다음과 다음다음의 여정에 함께하고 싶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 모두는 우리를 훨씬 넘어서는 절대로부터 오는 소리를 희미하게나마 듣고 싶기 때문이다. ■ 심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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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M, 그들

2008_0814 ▶ 2008_1005



THEM, 그들展_2008




초대일시_2008_0814_목요일_06:00pm

참여작가_김형무_오영_박건희_정유미_황민희_송영희

관람시간 / 10:30am~07:00pm





키미아트_KIMIART
서울 종로구 평창동 479-2번지
Tel. +82.2.394.6411
www.kimiart.net






일정한 형태나 양식 또는 유형으로 정의되는 패턴은 다수가 갖는 공통분모만 그리기 때문에 개인을 규정하는 기준이 되지 못한다. 단위로 움직이는 권력관계와 한정된 공간 안에서 움직이는 소소한 개인사를 갖는 인간군상은 어떤 패턴보다도 이야기로 만들기에 충분하다. 다양한 잠재력을 지닌 완전한 개인은 그 자체로도 존재 가치가 있지만, 그 존재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더 견고해지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다. 각자는 다른 사람의 존재 가치를 인정하므로 고유의 삶이 유일하고 필연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 이번 전시는 외형적으로는 패턴화된 양식을 띄고, 내재된 개별성으로 인해 일정한 양식 외에 내러티브를 형성하는 “인간”을 시각화한다. 개인은 자신으로부터 분리되기도 하고 타인들로부터 분리되기도 한다. 혹은 무리 자체로 간주돼 조형적인 요소만 표현되기도 한다. 작품들은 사람들의 심리적인 특징을 일종의 모형으로 구현하고, 이미지화하여 조직에 순응하는 모습과 한편으로 개인을 부각시키려는 반역적 성격이 어울리게 한다. 최근 정치 문화적 팝을 모티브로 셀러브리티를 형상화하는 작업들이 많이 선보여 대중의 동경과 이슈화를 자극시켰다면, 이번 전시는 더 섬세하게 접근하기로 한다. 익명으로 무장한 무리와 자신이 공유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 속에 일부가 되어 사는 자신의 모습과 얼마나 닮아있는지 느껴볼 수 있다. 나, 너, 그들, 그리고 그들의 행위와 감정 등을 아우르되 현대 사회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키워드-“소비, 대중, 가식, 이기, 익명”의 면모도 덧붙인다. ■ 키미아트




김형무_단상채집-복제된 일상_캔버스에 혼합재료_130×162cm_2007


김형무 ● 나의 화면에서 보여 지는 익명적이면서도 분열적으로 보이는 공간은 여전히 익숙치 못한 일상적 공간에 대한 단상이며 이 공간에 존재하는 여러 이미지의 인물 군상들은 독립적 자아를 지닌 개인이기도 하고 서로가 결합된 채로 또 다른 얘기들을 생산해내는 기호이기도 하다 이 기호들은 사진 꼴라쥬라는 방식을 통해 각각의 리얼리티와 정체성을 드러내 보이기도 한다.




오영_무심한 풍경3-2_유채_91×116.8cm_2008


오영 ● 그림 속 인물들은 각자 다른 모습으로 혹은 별반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지만, 마치 그림자처럼 그곳에 항상 있어온 풍경처럼 어딘지 모를 공간에 그저 함께 있을 뿐이다. 그들 속에 개개인은 없다. 한 곳을 향해 오고 가는 덩어리이거나 경계를 구분 짓는 벽처럼 나란히 서있는 무리일 따름이다. 아파트 작업은 그 인물 하나하나에게 기댈 곳을 제공하고, 현미경을 통해보듯 그들 각각의 심리적 틀을 들여다보는 작업이다. 각 공간은 각 개인의 내면 모양새를 나타낸다. 비어있는 공간, 파편화된 인체, 어떤 행동이나 자세로 심리 상태를 보여주는 사람들, 내면을 짐작하게 하는 물체나 물건들로 채워져 있다. 이런 미시적 시선은 무심하게 주변을 오고 가는 군상들에게 다가가고자 하는 조심스런 손짓이다.




박건희_접촉-터트리기_퍼포먼스 후의 오브제_2007


박건희 ● 옷은 피부의 확장이다. 우리는 매일같이 우리의 외피를 입었다 벗었다 하는 행위를 반복하고 있다. 나의 외피에 발진이 돋고 있다. 내 옷에 돋은 색색의 발진들은 내가 느껴온 감정과 정신적 아픔이 신체 각 부분에 영향을 끼쳐 불거진 결과물이다. 정신적 내상으로 인한 신체의 징후는 외피로 전이되어 치료를 필요로 한다. 몸은 우리에게 의사(意思)를 전달한다. 병(病)은 내 몸의 상태가 어떠한지 그래서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이다. 그러나 나의 발진은 차가운 의사의 손이 아닌 관심을 갖은 손길에 의해서 터지기를 바란다.




송영희_즐거울 락-가체_PVC폼, 양가죽에 손바느질_110×100cm_2008


송영희 ● 아이들의 상징적 동작, 어른의 짜증 섞인 표정, 키치적인 꽃 이렇게 세 가지가 이번 작품의 주요소재이다. 어린 아이의 순수한 동작과 꽃에 어울리지 않는 어른의 과민반응은 현대인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작고 사소한 일에도 불안해하고, 스트레스 받는 예민하고 상대를 배려할 줄 모르는 이기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현대인의 부정적 자화상을 손바느질이라는 인간적인 방식을 통해 제작 되면서 현대인의 잃어가는 인간의 따스함을 되찾아주고자 한다.




정유미_다 같이 김치~_장지에 먹, 아크릴, 채색_143×243cm_2008


정유미 ●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면 인사(人事, Greetings)를 한다. 하지만 상대방과 소통을 하기 위한 인사가 아닌, 오히려 단절된 상태로 형식만 주고받을 뿐이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은 채 친절해 보이기 위한 가면을 써보지만, 그 가면은 우리가 무의식 중 행했던 습관적인 인사 과정에서 나타나는 ‘어색하고 어정쩡한 표정’이다.




황민희_coldhearted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6×91cm_2008


황민희 ● 나는 대중스타들의 사진을 인터넷이나 잡지에서 수집한 후 재구성하여 화면에 배치한다. 그들은 대중문화를 만들어내는 문화 아이콘이자 동시에 완벽한 상품으로서 세계 각국에서 그들의 이미지가 실제와는 관계없이 소비된다. 작품 속에서 인물들은 얼굴표정이 없거나 신체의 일부가 잘린 체 등장하곤 하는데 이것은 화려함 이면의 불완전한 인간과 불안함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이처럼 대중스타를 통해 인간 역시 소비의 대상이 되는 냉혹한 현실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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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수 개인전 ˝New Landscape˝


Artspace H(02-766-5000)
2008-07-30 ~ 2008-08-20

가상풍경

처음 가보는 도시의 골목, 건물 모서리를 돌면서, 특히 두렵고 낯선 곳을 지날 때면 어김없이 만나는 데자뷰. 반가움과 놀라움을 교차시기는 이 환영의 정체가 궁금하다. 익숙하고 친숙하지 않으면 불안해 하는 인간의 불안감이 만들어낸 허상은 아닌지. 그렇다면 자신의 배설물로 낯선 환경을 자신에게 친숙한 환경으로 바꾸어 버리는 바퀴벌레의 생존본능과는 어떻게 다른지. 낯선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불안감에 사람들은 보호막을 두른다. 그리고 이 보호막을 통해 끊임 없이 데자뷰의 편린을 만들어 낸다. 그 파편들이 모여 어느새 낯선 도시는 일상이 된다.

김희수의 신작 ˝중흥기 Glory Days˝의 낯선 도시 풍경이 이러한 데자뷰를 닮았다. 작가는 직접 촬영한 사진이 아닌 미디어를 통해 매일 접하게 되는 익숙한 이미지의 조각들을 오려낸다. 광고나 잡지 등 매체를 통해 반복적으로 되풀이되는 이미지들, 그 중에서도 빌딩, 다리, 비행기, 광고판 등 수많은 미디어 이미지를 어어 붙여 한번도 본적 없는 가상의 도시가 완성된다. 익숙한 것들이 모여서 만들어내는 낯선 풍경. 실제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도시, 일루젼 혹은 신기루. 김희수 표 도시풍경의 정체이다.

그런 의미에서 ˝중흥기˝는 인간이 만들 수 있는 현대 물질 문명의 과도한 집결체이다. 그 과도함이 생산한 묵시록적 기계 소리가 가득한 김희수의 가상도시. 그 내부를 들여다 보자. 도로가 사라진 도시, 조각보처럼 짜여진 하늘은 도시를 현실에서 더욱 멀어지게 하고, 사람이 서 있을 자리에 빽빽하게 들어선 건물. ˝중흥기˝는 인간의 소유욕이 만들어 낸 도시이다. 누구도 소유할 수 없는 도로가 화면에서 지워지고, 소유물을 함께 나눌 인간 대신 보다 많은 빌딩들이 세워졌다. 조각난 하늘 역시 여러 장소의 수 많은 하늘을 한 자리에 모아 놓은 과잉을 부렸다. 이 같은 과잉과 소유욕이 잉태한 도시풍경을 표현하는데 다양한 매체를 통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대표적인 물질문명의 아이콘이 사용되었다. 그래서인지 ˝중흥기˝의 허상이 더욱 선명해진다.

김희수 작품의 화면은 정교한 건축 구조물을 닮아 있다. 세밀하게 오려낸 마천루를 블루프린트에 따라 이어붙인 듯 구조적인 치밀함이 돋 보인다. 단순한 꼴라쥬 기법으로는 불가능한 구성이다.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의 상호 연결 구조를 두 가지 방향으로 펼쳤다. 수평적인 연결구조와 화면의 깊이를 극대화하기 위한 수직적인 연결구조를 시도해 평면 속에 물리적인 공간의 깊이를 더했다. 이미지를 한 층 한 층 쌓아 올려 두터운 화면을 만들어 내는 김희수의 작품은 이미지의 조합과 건축적 구조를 통해 환영을 구축한다. 평면 화면을 완성하기 위해 조각적인 방법을 차용한 셈이다. 가상도시 속 물성화된 이미지는 환영 속에서 비물성화되고 구조 안에서 재물성화되어 김희수의 가상풍경을 새롭게 정의하게 만든다. 그 풍경 속에는 여전히 소통의 통로를 잃어 버린 현대인, 과잉이 낳은 이미지의 남용,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드는 현실, 인간이 사라진 도시의 흔적이 숨어 있다. 구축과 재구성을 통해 실제와 다른 해석을 양상하고 있는 미디어의 허상이 투영된 가상의 풍경 속에서 유토피아를 찾을지 아니면 디스토피아를 찾을지. 김희수가 정교하게 짜놓은 이미지 퍼즐을 풀어봐야 할 것 같다.

글 / 이대형(Hzone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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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르쥬 루쓰 Georges Rousse 개인전



조현갤러리(02-3443-6364)
2008-07-25 ~ 2008-08-27

죠르쥬 루쓰 개인전

조현화랑은 프랑스 현대 사진 작가 죠르쥬 루쓰 개인전을 개최합니다.
1947년 파리 출생인 죠르쥬 루쓰는 기록적 건축 사진과 연출된 공간 사진의 경계에서 특정 장소에 대한 시각적 상상을 자극하는 작품으로 현대 사진의 다양한 전개에 기여한 국제적인 작가입니다. 의학을 공부한 그에게 사진은 어린 시절부터의 열정적 취미였으며, 병원에서 일하지 않고 생활할 수 있는 방편이었습니다. 1980년 초반, 신구상 회화 운동에 합류하여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구상회화를 시작했으며, 사용하지 않는 건물들을 찾아내 벽과 바닥에 자유롭게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리고 공간 속에 그려진 그림들을 사진으로 기록하기 시작하면서 회화적 시점과 사진적 시점의 충돌하고 교차하는 새로운 영역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사진 이미지가 본질적으로 3차원 공간을 2차원 평면으로 전환하여 보여 준다면, 루쓰는 사진에서 평면으로 보여질 형태를 공간 속에 유추하여 만들고 그립니다. 놀라운 공간 지각력을 가진 그가 가상 현실로 존재하게 하는 색면과 드로잉, 구축된 입체들은 ˝아나모르포즈˝라고 불리는 오래된 착시 테크닉의 현대적 구사를 넘어서 장소와 공간을 새롭게 바라보는 방식이 됩니다.
루쓰에게 영감의 원천은 장소와 공간 그 자체이기 때문에, 그는 새로운 공간을 찾아서 전 세계를 여행합니다. 유럽 여러 나라는 물론 북미, 일본, 네팔 등지에서 작업을 했으며 서울에서도 프로젝트를 실현한 바 있습니다(2000).

이번 서울과 부산의 조현화랑 개인전에서는 1990년대 중반부터의 다양한 작업 방식을 보여주며, 특히 부산 비엔날레에 즈음하여 열릴 부산전에서는 화랑 부속 공간에 직접 설치 작업을 하고 사진을 찍어 한국에서 제작한 새 작품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이를 위하여 작가는 8월 23일부터 9월 5일까지 부산에 체류하며 현장 제작을 합니다.

작가의 표현대로 ˝공간을 점유하는 또 다른 방식˝이자 ˝대부분 기억에서 곧 사라질 유한적인 장소를 승화시킨˝ 이미지인 그의 사진들은 프레임과 구도, 빛, 공간의 깊이, 정밀성, 대형 싸이즈 등 사진적 특성들로 우리를 매혹하지만, 그의 작업 과정을 알 때, 우리의 시선은 작품 속 장소를 상상으로 산책하며 평면과 입체, 시각과 환영의 영역을 오가는 흥미로운 경험을 하며 ˝장소의 혼˝을 발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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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컬렉션 No.1 ˝Photocollection No.1˝



리나갤러리(02-544-0286)
2008-07-28 ~ 2008-08-29
2008-07-29 오후 7시

포토컬렉션 No.1 ˝Photocollection No.1˝

이번 리나갤러리의 `포토컬렉션 NO.1` 전시는 현재 많은 이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사진작품을 소개합니다. 자신들의 독특한 기법과 색깔로 작업해 오고 있는 한국의 젊은 사진작가 9인(구성수, 박현두, 신은경, 안세권, 원성원, 이민호, 이원철, 이정록, 주도양)의 작품을 선보입니다. 이들이 선보이는 사진작업들을 살펴보면 사진 고유의 기계적 특성을 살려 시간과 공간을 기록하는 전통적인 방식과 여러 장의 사진을 합성하여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과 이야기를 담아내는 두 가지 방식로 나눌 수 있습니다. 최근 미술시장의 동향을 살펴보면 과거 회화나 조각에서 집중되었던 구매도가 매체의 발달로 점차 사진의 영역까지 확대되고 활성화되고 있습니다. 저희 리나갤러리에서 선보이는 이번 ‘포토컬렉션 No.1’ 전시는 이러한 흐름에 발맞추어 기획되었습니다. 글 / 김라희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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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in Contrast

백승우_이일우展 / photography

2008_0807 ▶ 2008_0902 / 월요일 휴관



이일우_Pierre milel_디지털 프린트_80×80cm_2006





초대일시_2008_0807_목요일_06:00pm

관람시간_11:00am~07:00pm / 월요일 휴관




트렁크갤러리_TRUNK GALLERY
서울 종로구 소격동 128-3번지
Tel. +82.2.3210.1233
www.trunkgallery






트렁크가 2007년 2월 개관기념 『다섯 프로젝트』展을 한지 1년 반이 지났다. 서울의 많은 갤러리가 다양한 사진展을 구성해 냈던 한 해였다. 트렁크에서 전시했던 작가들이 많은 갤러리에서 사진展 초대를 받게 되어 바쁘다는 소식이다. 그 소식들이 나를 미소 짓게 한다. 행복하다. 트렁크는 2008년 후반에도 중요작가들을 미술계에 Presentation 하기위해 분주할 것 같다. 2008년 8월, 백승우 와 이일우 두 작가의 『Image in Contrast』展으로 올해, 전 반을 마무리 하고 후반전에 돌입하려 한다. ● 두 작가는 중앙대 사진학과 동기동창으로 한 사람은 영국, 다른 한 사람은 독일에서 서로 다른 과정을 밟아왔지만 한 공간에서 서로를 소통 해낼 것이다. 한 사람은 공간을 통환 '긴박한 소리'를, 또 한 사람은 시각적 기호로 '소리 없는 언어'를 시각화 해내고 있다. 이 Contrast 한 그 Image들이 여러분들과의 소통을 욕망하고 있다.





백승우_Real World 2 #056_디지털 프린트_100×127cm_2008



백승우_Real World 2 #063_디지털 프린트_100×127cm_2008



백승우_Real World 2 #068_디지털 프린트_100×127cm2008



백승우는 비현실 또는 초현실적 상항을 구성, 전쟁을 '전쟁놀이 쯤'으로 생각하는 실체들(?)에게 '심각함 과 긴박감'을 던진다. 아가들의 놀이기구인 꼬마병정들이 21세기적 실제 전쟁 상황, 그 '긴박성의 소리'를 듣게 하고 있다.





이일우_Promenade_디지털 프린트_80×80cm_2004



이일우_Shinduri_디지털 프린트_80×80cm_2008



이일우는 '지시하다'라는 행위로 오늘 같은 '무한 미디어, 무한 소통 시대'에 너무나 '아날로그적 소통'을 촉구 한다. 누구와 무엇을 소통하려 하는지 해독과 해석을 거부 하고 있는 그 이미지들... 그래도 그 이미지들 우리들과의 소통을 갈망하듯, 간곡하고, 절절한 몸짓으로 '암호적 지시'를 계속한다. ■ 트렁크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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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Beyond

김진영展 / KIMJINYOUNG / 金眞暎 / photography

2008_0808 ▶ 2008_0822 / 일요일 휴관



김진영_And Beyond_디지털 프린트_90×90cm_2007




초대일시_2008_0808_금요일_06:30pm

관람시간 / 11:00am~08:00pm / 일요일 휴관




갤러리 무이_GALLERY MUI
서울 서초구 서초동 1658-14번지 무이빌딩 1층
Tel. +82.2.587.6123
cafe.naver.com/gallarymui






And Beyond ● 자연을 극복하고자 인간은 필요에 따라 다양하고 많은 장치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그것들은 목적에 맞는 일정한 형태와 형식을 가지고 있으며 만들어진 시기와 환경에 따라 소재와 방법이 상이하게 쓰여 졌다. 인간은 자연 앞에서 가장 무력하게 느껴질 때 그것들을 필요로 하였고, 인간 능력의 한계에 비례해서 원하는 크기도 달리하였다. 인간이 가진 건축능력은 인간의 욕망에 의해 그 필요성과는 좀 다른 모습으로 표출되기도 하였다. ● 고대 바빌로니아 시대에 지구라트라 불리던 신전 중 가장 거대한 신전인 바벨탑은 종교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인간의 언어가 지금과 달리 하나로 통일되어있을 때, 노아가 만든 방주로써 대홍수로부터 벗어난 노아의 자손들은 다음에 일어날 홍수를 피하기 위하여 돌탑을 쌓았다. 그들은 작업 중에 인간의 능력은 자연의 재앙을 극복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연을 지배하는 전지전능한 존재로 탈바꿈 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당시의 인간들은 자신의 능력에 대해 오역하여서 신에게 도전하고자 끝없이 돌을 쌓다가 하늘의 노여움을 사게 되었고, 결국 그들이 쌓은 탑이 무너졌다는 이야기가 성경 속에서 전해온다. 바벨탑은 고고학적으로는 고대 최초의 통일왕국을 만들었던 느므갓왕 시절에 축조된 것으로 보이는 가장 큰 지구라트 유적으로 평가된다.





김진영_And Beyond_젤라틴 실버 프린트_27.9×35.5cm_2006



김진영_And Beyond_젤라틴 실버 프린트_27.9×35.5cm_2007



BC 500년경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투스가 이 바빌로니아의 거대한 건축물에 대해서 기록을 해놓은 것이 있었다. 건축물의 높이는 210m이상 이었으며 층간이 최소 3m정도는 되었다고 한다. 전체길이에서 층간을 나누어 보면 70층이 되는 건물로 보여지는데 지금의 63빌딩보다 더 높다고 할 수 있다. 전체적인 모습은 나선형의 모습으로 전해지는데 지금 확인할 수 있는 피라미드의 모습과 흡사하다 하겠다. ● 피라미드 역시 축조방식은 알 수 없으나 현존하는 모습만으로도 피라미드를 건설했던 주체가 얼마나 신성시되었는가를 가늠해볼 수 있다. BC 8-BC 7세기의 나파타 왕국의 것으로 보이는 것이 18개, BC 3세기 이후의 것으로 보이는 피라미드가 약 50개가 남아있는데 개당 축조기간이 최소 10년에서 20년 걸렸다고 전해지니 얼마나 오랜 기간 피라미드 문명이 번성했는가를 알 수 있다. ● 또 한편으로는 인간 욕망의 지속기간이 얼마나 긴지도 알 수 있다. 이러한 절대권력으로 탄생된 건축물이 또 하나 있는 데 바로 만리장성이다. 진시황제가 전국시대를 통일한 이후 기원전 214년에 완성되었다고 전해오는 만리장성은 진나라가 멸망한 원인중의 하나로 꼽힐 정도로 수많은 생명들을 벽돌과 같이 쌓아올린 구조물이다. 진시왕은 만리장성 못지않은 자신의 무덤으로 지하궁전을 남겼는데 이 역시 현존하는 불가사의한 건축물 중에 하나다.





김진영_And Beyond_디지털 프린트_90×90cm_2007



이렇듯 인간은 과거엔 자신의 능력을 필요(NEED)와 원함(WANT)의 순서를 뒤바꾸어 사용한 경우가 많았으나 현대에 와서는 인간의 문명생활과 직결된 자연에 대한 한계성을 극복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다. 인간의 건설능력은 도시공간을 좀 더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 사용되어진다. 포화상태의 도시에서 위성도시까지의 연결을 확대하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동영역에서 주거영역까지의 이동경로를 보다 원활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여지고 있다. 교량, 교각 등과 같은 구조물은 이 땅의 어느 한 지점에서 다른 한 지점을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인간이 만들어 놓은 여러 구조장치는 단절되고 끊어진 부분을 이어주는 준다는 것 이외에 어떠한 의미를 가지게 되는가? 단순히 인간이 운송수단으로 보다 수월하게 이동할 수 있는 경로만을 제공하는 것인가? 이러한 수많은 장치들 때문에 우리는 좁은 땅을 더욱 좁게 사용하고 있지 않은가? ● 현대사회에 대한 설명 중에 ‘자본의 규모와 시간의 조화’라는 말이 있다. 더욱 빨리 빨리 숨을 몰아쉬며 건설하는 것들이 땅 위의 도로인지 강과 바다 위의 도로인지 알 수 없을 정도이다. 온 나라가 공사판이고 온 나라가 콘크리트 구조물로 뒤덮여 차디찬 구조물 속으로 서서히 가라앉고 있다는 느낌이다. 최근 우리는 친환경을 외치고 있지만 정작 콘크리트 구조물 위에서 자연을 어설프게 흉내 내고 있지는 않은가? ● 2006년부터 시작된 나의 작은 기록들은 거대한 산업도시의 심장부에서 혈관과 같이 구석구석까지 뻗어나가는 도로와 교량에 집중되어있다. 최근 심장부에서 빠져나와 도로를 따라 국토의 1/3지점까지 그 길을 따라 정신없이 달려 왔다. 어느 가을 날 새벽 동틀 무렵에 작은 시골마을과 마을을 통하게 하는 매우 초라하고 낯익은 20미터 남짓한 다리 위에서 다시 지나온 길을 되돌아본다. ■ 김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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