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사과
이응종 사진展
2007_0509 ▶ 2007_0516
이응종_사과_젤라틴 실버
프린트_112×55cm_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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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509_수요일_06:00pm
가나아트 스페이스 3층 서울 종로구 관훈동
119번지 Tel. 02_734_1333 www.ganaartgallery.com
사진가 이응종의
개인전이 인사동 가나 아트 스페이스(734-1333) 3층에서 오는 5월 9~16일에 열린다. 이번 사진전은 디지털 시대의 정통 아날로그
사진이라는 데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정통 방식에 대한 작가의 고집으로 만들어진 은염인화 방식으로 제작된 흑백사진들은 디지털사진과는 다른
아날로그만의 멋스러움이 고스란히 배어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분야이다.

이응종_사과_젤라틴 실버
프린트_84×55cm_2007

이응종_사과_젤라틴 실버
프린트_34×34cm_2007

이응종_사과_젤라틴 실버
프린트_34×34cm_2007

이응종_사과_젤라틴 실버
프린트_34×34cm_2007

이응종_사과_젤라틴 실버
프린트_34×34cm_2007
한편 ‘네 번째 사과’라는 제목이 말하듯 작가는 사과를 주된 피사체로 삼았다는 점도
이 전시회가 주목받는 이유다. ‘아담과 이브의 사과’, ‘프로메테우스의 사과’, ‘뉴턴의 사과’ 라는 주제로 삶과 우주를 고찰하는 철학적인
발견을 시도하고 있다. 이 작품전을 위해 작가는 지난 97년부터 전국 각지에서 개성 있고 특이한 사과들을 모아 촬영했다고 하며, 사과들은 각
섹션의 소주제에 맞도록 현미경적 관찰부터 자연 속에 어우러진 사과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앵글로 표현되고 있다. 세상을 보는 눈이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는 요즘, 사과라는 재미있는 관점으로 본 세상은 어떨지 집적 만나보는 것도 필요한 일이겠다. ■ 김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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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lection
이창원 개인展
2007_0509 ▶ 2007_0527
이창원_Erotik Messe_MDF, 아크릴, UV 코팅,
조명_111×221×8.5cm_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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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509_수요일_05:00pm
두아트 갤러리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5번지 Tel. 02_738_2522 www.doart.co.kr
작가 이창원(b. 1972)은
1997년 서울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한 뒤 독일 뮌스터 쿤스트 아카데미에서 수학하였다. 독일을 중심으로 유럽에서 활동하면서 꾸준히 개인전과
그룹전을 가져왔으며, 최근에는 독일에서 유명한 아트페어인〈Art Cologn 2007〉의 'New Talents'에 참가하는 등 현지에서
역량있는 젊은 작가로서의 입지를 다져가고 있다.

이창원_Pril_MDF, 아크릴, UV 코팅,
조명_108×61×8.5_2006

이창원_Holiday_MDF, 아크릴, UV
코팅, 조명_121×97.5×8.5cm_2007
이창원은 층층이 쌓아올린 좁은 흰 판자의 윗면에 자신 주변의 사물과
지인들의 사진, 옛날 포스터나 광고 사진을 길게 조각 내어 붙이거나 판자 위에 직접 아크릴 물감으로 그린다. 이 이미지들은 반사광을 통해 작품과
멀리 떨어진 위치에서 바라보면 하나의 구체적인 형상을 이룬다. 마치 블라인드 사이로 비치는 어렴풋한 흔적과 같은 조각난 이미지들이 빛이라는
매개물을 통해서 하나의 구체적인 형상으로 통합되어 보이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창원_Nicole Kidman_MDF, 잉크젯
프린트, UV 코팅, 조명_71.5X71.5X8.5cm_2007

이창원_Paris Hilton_MDF, 잉크젯
프린트, UV 코팅, 조명_71.5×71.5×8.5cm_2007

이창원_Queen Elisabeth II_MDF,
잉크젯 프린트, UV 코팅, 조명_121.5×102×8.5cm_2007

이창원_Passersby_MDF, 아크릴, UV
코팅, 조명, 찻잎_252×400×5cm×8_2007
특히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유명인의 사진이나 광고 사진을
이미지의 소재로 사용하였다. 이들은 일반인들에게 환상을 부여하는 선망의 대상으로 대중매체를 통해 일상과 매우 가깝게 자리하고 있지만, 실체에
다가갈수록 잔상 혹은 환영으로만 남는다. 실제 우리가 보는 이미지들은 대중 매체에 의해 반영된 이미지이고, 이것을 다시 한번 얇게 잘라 쌓아올린
후 작품에는 빛에 반영한 이미지만 남게 하는 것이다. 사진, 조각, 회화와 같은 형식을 동원하여 움켜쥐고 싶은 이미지들은 오히려 서서히 뒤로
물러나서야만 보이고 좀더 자세히 보려면 얇게 조각난 나무 판자로, 구멍난 망점으로, 형태를 알 수 없는 물감으로만 남는다. 이 조각난 이미지들을
채우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 두아트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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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성의 풍경
한기창 개인展
2007_0509 ▶ 2007_0522
한기창_혼성의
정원_라이트박스LED, 혼합재료_300×480cm_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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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닥속닥 Vol.041024c | 한기창 개인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7_0509_수요일_05:00pm
학고재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0-5번지 Tel. 02_739_4937 www.hakgojae.com
齊物論적 관점으로 본
존재의 세계 ● 한기창의 작품은 동양적 감성과 현대적 질료로 조합된 독특함으로 이 시대 새로운 한국화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폐기된 엑스선 필름을 화면으로 삼고, 금속성 스테이플을 붓으로, 라이트조명이나 비디오카메라 영상을 채색의 도구로 삼는다. ● 한기창은 손상된
뼈들이 드러난 엑스선 필름을 오려서 꽃과 새를 만들고 그것을 라이트박스 안에서 화사하게 부활하는 화조화의 형상으로, 섬뜻하면서도 기이한
아름다움으로 감상자들과 화단의 주목을 받아왔다.

한기창_일필사의도 一筆寫意圖_캔버스에 스테이플,
영상비디오_195×400cm_2007
이번 전시에도 2층 전실에 엑스선필름으로 만들어진 라이트박스가 설치되었다.
이전과 다른 것은 화조의 범위를 넘어 산수, 인물, 빌딩 등 다양한 소재로 확장된 것이다. 한기창의 엑스선필름작업은 절단되고 손상된 뼈들의
필름을 오려서 또 다른 형상을 만들어 새로운 생명체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방식이다. 이것은 작가가 손상된 뼈들도 하나의 생명체였음을 주장하고 그
소멸이나 생성의 가치가 동일함을 발언하는 것이다. 또한 엑스선 필름을 그림의 창조적 재료로 사용함으로서 필름의 독자적 생명성을 주장하고 있다.
● 이런 작가의 사유태도는 莊子의 齊物論적 관점에 동의하고 있음을 볼 수 있는데 흥미로운 것은 “ 일체의 사물이 동동한 가치를 지닌다”는 장자의
관점을 과학적도구들에게 확장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폐기된 엑스선필름들은 작가의 손을 통해 당당히 나비나 꽃 ,다양한 풀들이나 산과 나무, 숨쉬는
인물들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다.

한기창_혼성의 풍경_캔버스에 X-선필름,
Shee_100×100cm_2007
그의 화면에서 생명체와 무생명체는 모두 동등한 가치를 지니며 과학의 눈부신
성과나 들판의 가냘픈 풀한 포기의 존재성이 동일하게 존재한다. 3층은 스테이플로 제작된 작품들이다. 스테이플로 정교하게 조각하듯 찍어서 산수나
풀발들을 그리고 비디오카메라 영상을 통하여 움직이는 나비가 날아다니는 화면을 연출하고 있다. 胡蝶之夢의 境界를 회화적으로 새롭게 구현한
작품이다. 내가 꿈속에서 나비가 되고 깨어보니 나라는 존재로 돌아왔듯이, 인간과 나비는 만물의 세계에서는 동등한 가치의 존재로서 내가 나비이며,
나비가 곧 나인 것이 이 우주의 이치인 것이다. ● 금속성의 스테이플로 이루어진 산수나 풀밭들은 영상 속의 허상의 나비의 움직임처럼 실제의
생명체는 아니나, 우리의 시각과 감성에서 그것은 자연의 형상으로 읽힌다. 그러므로 이 작품들에서 스테이플은 단지 금속재료가 아니라 산이나
나무들을 숨쉬게 하는 바람이거나, 수분이거나, 미세한 미생물인 자연의 재료들이다. 여기서 스테이플은 엑스선필름처럼 또 다른 생명체를 발아할 수
있는 동등한 위치의 무생물이다.

한기창_혼성의 풍경_캔버스에 X-선필름,
Sheet, 아크릴_100×106cm_2007
1층의 전시작품들은 이번에 새롭게 시도된 새로운 화면들이다. 이전보다
평면을 추구하고 보다 회화적 방법을 구사하고 있다. 오리기 방법을 사용하여 형상을 만드는 독특한 방식으로 화면을 만들고 있다. 제작방법을 보면
花鳥畵의 형식 속에 다양한 그림을 배치하거나, 커다란 肖像畵안에 또 다른 그림들을 배치하였다. “그림 속에 그림”을 연출하고 있다. 동양화의
전통적분과중 하나였던 화조화양식 속에 이 시대 일상의 사건들이 들어가 있다. 남자와 여자. 현란한 고층건물, 자동차등이 그것이다. 초상화양식
속에는 온갖 자연물이나 동물들, 광화문에 우뚝 서있는 이순신 동상 등이 서있다.

한기창_혼성의 풍경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Sheet_각130×130cm_2007
전통과 현대의 차이 없는 중요한 가치들을 함께 섞어놓음으로서 문명과 진보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던진다. 여행가방이 등장하는 또 다른 오리기 작품은 동양과 서양의 소통, 전통과 현대의 소통에 대한 유목적 물음이다. 이
시대의 여행은 풀씨 하나가 우주를 떠돌면서 우연히 정착하고 생명체를 드리우는 작은 행동과 동일한 가치이다. 하나의 여행가방은 수많은 문명의
풀씨이다. 한기창의 오리기 작품은 이런 하나하나의 풀씨들이 모여 하나의 거대한 인물상을 만들고 거대한 화조화를 만든다.

한기창_뢴트겐의정원_라이트박스, LED,
X-선필름, Sheet_120×46cm_2007
이런 한기창의 오리기 작업은 형태를 오려버리면서, 그러나 버려진
공간으로 다시 형상이 만들어지는 이중의 구도로, 形象과 無形象의 동일함을 추구하는 것이데, 이것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동등함을
주장하는, 사물에 대한 그의 시각적 태도의 발현이다. 이번 전시에서 한기창은 세 가지 조형방식으로 작품을 만들고 있으나 근본적인 작가의
사유태도는 동일하다. 즉 제물론적 관점에서 세상을 읽고 그림을 제시한다. 그의 조형행위는“ 일체의 사물은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는 세계에서 모든
것의 존재를 규명한다. ● 예술작품의 조건 중 하나는 새로워야 한다는 것이다. 한기창의 작품은 새로운 시도들로 가득 차있다. 그러나 새로운
가치들이 폄하하는 지나간 것들에 대한 존중이 그의 화면에서 이 시대의 감각으로, 또 다른 새로움으로 화려하게 발아하는 것이 한기창 작품세계의
흥미로운 점이다.

한기창_일필사의도 一筆寫意圖_캔버스목판에
스테이플_200×122cm_2007
또한 이 시대의 복합적인 문화코드와 동양적 정체성이 어떻게 조우할 수 있는지
하나의 이상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그의 행보가 주목된다. 길은 사람이 걸어다니면서 만들어지고 사물은 사람들이 그렇게 이름 붙여서
존재의 대상이 된다. 한 포기의 이름 없는 풀들과 새나 나비들, 진화하는 문명적 도구들이 모여 동일선상에서,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빛을 발하는
한기창의 작품세계는, 이 시대의 감상자들에게 신선한 회화적 물음을 선사하고 있다. ■ 장정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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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Detail
김나음 개인展
2007_0502 ▶ 2007_0513
김나음_40×50inch_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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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502_수요일_06:00pm12:00pm ~ 06:00pm
갤러리175 서울 종로구 안국동 175-87번지 안국빌딩 B1(참여연대 옆) Tel. 02_720_9282 blog.knua.ac.kr/gallery175
김나음의
사진은 채집된 일상의 기록이다. 관찰자적인 그의 시선은 뒷골목의 풍경, 대로변의 작은 사건들을 쫒으며 마치 수사관처럼 정황 증거를 포착한다.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소소한 일들이 텍스트로 기록되고, 이는 다시 임시적인 푯말의 프레임 속에 갇힌 채 ‘현장’ 속에 세워진다. 그가
채집하는 일상들은 공기처럼 가볍다. 무단으로 대문 앞에 투기된 쓰레기봉투를 들고 짜증을 내는 아저씨,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은 채 우스꽝스럽게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는 남녀, 길거리에서 여자 친구의 엉덩이를 만지고 웃는 교복 입은 남학생의 표정, 뽑기 기계에서 인형을 뽑아들고 미소 짓는
아저씨, 어느 누구의 시선도 끌지 못하는 골목길의 다양한 풍경들이 바로 그의 관심을 촉발시키는 사건 현장들이다. 현장을 기록하는 라커
스프레이처럼, 언젠가는 폐기되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게 되겠지만, 사진 속의 임시적인 푯말은 그렇게 그 ‘사건 현장’ 속에 우뚝
세워진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기록인가?

김나음_40×50inch_2007
역설적이게도,
일상은 비정치적이라는 점에서 정치적이다. 그것은 아주 촘촘하게 우리의 삶을 채운다. 마치 안전한 배송을 위해 중요한 소포의 포장 안에 빽빽하게
채워 넣는 스티로폼처럼, 일상은 그렇게 무언가 중요한 것을 위해 기꺼이 희생되고 폐기된다. 그렇기에 작가의 시선은 더 작고, 더 소소하고, 별
볼일 없는 일상으로 향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흥미로운 것은 작가가 이러한 일상을 기록하고 기념하기 위해 텍스트를 이미지 속에 포함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사실주의적인 다큐멘터리 사진 형식으로 특정 공간을 사진 프레임 속에 가둔다. 하지만 그 속에는 인물이 제외된 채 그가 목격한 사건
현장을 증명해 주는 최소한의 물리적 배경만 존재할 뿐이다. 대신, 사진 속에 세워진 푯말과 그 안의 텍스트만이 구체적인 증거로 제시된다. 하지만
이미지 증거가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텍스트의 진실성은 불확실해지고 애매해진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서 작가의 수수께끼가 시작된다. 과연 그
시간에 여기에서 (푯말 위에 씌어진) 그 일이 정말로 일어났는가? ● 기호학자 찰스 퍼어스의 용어를 빌어 표현하자면, 사진과 현실의 관계는
인덱스적인 동시에 아이콘적이다. 사진에 언어를 첨가하는 것은 인덱스적이고 아이콘적인 것에 상징계를 더하는 것이다. 포스트모던 사진-문자 작업에서
언어와 시각의 시스템은 관객의 해석 작업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상호적이다. 그런데, 이 둘은 하나가 다른 하나의 결핍을 보충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결핍을 보충하고 환치하는 관계, 즉 데리다가 말한 ‘보환’(supplement)의 관계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작가의 사진은
텍스트/이미지의 모순적인 결합 사이를 유희한다는 점에서 다분히 포스트모던적이다. 또한 보이지 않는 곳으로부터 관객의 존재를 불러내고, 이들을
작품의 해석과정에 개입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작가의 수수께끼는 결국 관객을 작품 가까이 접근시키기 위한 하나의 장치일 수 있다.

김나음_40×50inch_2007
텍스트의
진실성이 의심되는 순간 이미지의 진실성 또한 관객의 의심을 사게 된다. 의심을 뿌리치기 위해 사진으로부터 멀리 떨어지게 되면 프레임 속의 낯익은
공간들이 눈에 들어오게 된다. 다가감과 물러섬의 행위가 반복되면서, 이미지와 언어 사이의 충돌이 생겨나고, 그러는 사이 작가의 존재보다는 관객의
실존이 작업의 중심으로 자리하게 된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을 통해 결국 관객의 참여를 통한 소통을 추구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푯말(혹은 그
임시성과 폐기성이 푯말보다 더 강조된 '포스트잇') 위에 기록된 텍스트는 더더욱 관객을 유인하기 위한 장치일 수 있다. 결국 내용의 진실성은
그의 작업에서 중요한 것이 아니다. 적어도 그의 텍스트는 특정 시간과 공간을 치밀하게 엮어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둘 사이의
충돌을 야기하고, 관객의 해석을 유도한다. 이러한 작가의 의도적인 행위로 인해 어느새 이미지와 텍스트는 분리되고, 대신 이 사이의 간격이 관객의
상상력으로 메워진다. 다시 말해, 흔히 볼 수 있는 사진 속 공간에 우리들을 세우고, 상투적인 언어로 기록된 텍스트는 우리의 기억으로 대체된다.
즉, 언젠가 경험했을 법한, 그리고 앞으로 쉽게 부딪칠 그 사건을 위해서 우리들의 기억이 동원되고, 기념된다. ● 다시 작가가 포착하고 있는 그
현장 속으로 가보자. 그가 건져낸 사건들은 일상이라는 틀 이외에는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는 것인가? 우리가 무심코 하는 행동과 말이 작가의
작품 속에서 예술 소재로서 새롭게 인식되고 있다면, 그 작은 행위들은 분명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는 ‘그들의 이야기 1’
뿐만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 2’에서 사진, 퍼포먼스, 설치, 비디오 등의 다양한 매체를 통하여 일상을 문제시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일상에
대한 생각은 주로 신비화되어 있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다른 말로, 어떠한 이데올로기나 권력으로부터 동떨어져있는 사적인 시공간이라는 믿음이
일상이라는 언어 속에 깊이 내재되어 있다. 하지만 사적인 공간과 공적인 공간 사이의 구분은 일상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그것은 사적인 공간으로 가장하여 일상 속에서 지배하고 있는 시스템 혹은 권력의 문제를 불투명하게 가릴 수 있다.

김나음_40×50inch_2007
바로
여기에서 일상성의 문제가 드러나게 된다. 작가의 작업은 이러한 일상의 문제를 재인식하고, 이를 작품 속에서 관객과의 소통을 위한 교두보로 삼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더, 그의 시선이 더 작고, 더 소소한 일상으로 향하게 될수록 그러한 문제의식은 오히려 패러디(parody)로
전향할 수 있다는 점이다. 린다 허천은 예술의 독창성과 유일성에 대한 개념에 도전하고 이를 전복시키는 패러디의 정치성에 주목한 바 있다. 그의
작업에서는 자신에 의해 제기된 일상의 범위를 더 작은 틈새로 향할수록 패러디의 가능성이 높아진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말한다면 작가의 의도를
오독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그는 자신의 작업으로 정치적 담론을 형성하거나 행동을 촉발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으며, 사실상 그의 작업은
‘비정치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작업에서 애매한 지점은 바로 여기가 아닐까? ● 수사관으로서 작가의 시선은 분명 적절하지 못한 곳으로
향해있다. 왜냐하면 그가 포착하고 있는 사건과, 수집하고 있는 정황 증거들은 프레임 속에서 의미의 모순과 틈을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사이 관객이 해석자로 등장하게 되고, 사건 현장은 그들의 경험과 기억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퍼즐조각으로 채워지게 된다. 관객들의 해석과 참여가
활발해질수록 사진의 진정성은 의문시되지만, 그래도 작가는 개의치 않는다. 관객들의 피드백은 무대 세트만 만들어놓고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
지를 지켜보고 있는 작가에게 흥미로운 관찰과 응시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 최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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