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2008 대안공간 미끌 작가 공모
공모마감 / 2007_0501 ▶ 2007_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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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공간 미끌 서울 마포구 합정동 360-17 우남빌딩 2층 Tel. 02_325_6504 www.miccle.com
대안공간 미끌이 2007년 5월
1일부터 5월 15일까지 작가 공모 신청을 받습니다. 2005년 12월, It’s not magic 전과 함께 오픈한 대안공간 미끌은 마포구
서교동 로데오 거리에서 2007년 2월까지 삼십여 차례의 전시를 꾸준히 진행한 바 있으며, 2007년 3월 28일 안강현 개인전 The
Show, Mixed Media and Video Camera 전을 시작으로 마포구 합정동 당인리 발전소 근방에서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재개관
하였습니다. 이에 2007년 하반기부터 2008년 하반기까지의 전시 일정에 대한 정기 작가 공모 신청을 공지합니다.


대안공간 미끌은 기성의 예술
시스템 안팎을 끊임없이 미끄러지며 새로운 대안을 지속적으로 마련하고, 다양한 움직임을 시도하고 또 보여주려 합니다. 또한 실험성과 열정을 지닌
신진 작가 및 독립 기획자를 지원하여 이들의 폭넓은 활동이 제도 내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수용되고, 동시대 미술계에 진정한 대안적 담론을 창출하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뜻 있는 작가 및 독립 기획자분들의 많은 응모 바랍니다. ■ 대안공간 미끌
■ 2007-2008 대안공간 미끌 작가 공모
● 공모 자격_국적 및 연령, 장르
및 주제에 제한 없음 ● 공모 기간_2007년 5월 1일(화) ▶ 200년 5월 15일(화) ● 지원
사항_전시공간 지원, 각종 홍보지원 ● 제출 서류_전시지원 신청서 (다운로드 ▶
hwp)
포트폴리오(파워포인트 혹은 JPG파일 양식
10MB이내)
직접방문 및 우편접수 시엔 CD로 제출
● 제출 방법_www.kthard.com 사이트 내 “전시지원신청서”폴더에
업로드
(id : spacemiccle / pw :
kthard.com)
_부득이한 경우 직접 방문 및 우편 접수도
됩니다.
(121-884 / 서울 마포구 합정동 360-17 우남빌딩 2층)
* 서류 업로드 후에는 반드시 아래 이메일로 알려
주십시오. email_micclegirl@gmail.com 큐레이터 신지선
■ 발표_2007년 6월 8일 이후
개별통보 ■ 문의_micclegirl@gmail.com / 02-325-6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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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계 프로젝트
이선민 사진展
2007_0425 ▶ 2007_0501
이선민_김인수의 집-유신사택. 강원도 도계_디지털 프린트_120×150cm_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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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425_수요일_06:00pm
학고재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0-5번지 Tel. 02_739_4937 www.hakgojae.com
특히 〈도계 프로젝트〉에서
주의 깊게 볼 점은 한 화면 안에서 자율적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빛들의 내러티브’이다. 이선민의 ‘빛’은 공간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확산광(자연광)과 카메라 뒤에 위치한 강한 인공광이 만나 화면 안에서 역동적으로 움직이면서 인물들 사이를 조심스럽게 타고 다닌다. 뿐만 아니라
이 빛들은 시간성과 공간성이 잘 드러나도록 인물과 배경의 구석구석을 섬세하게 발견해내고 의미를 확장시켜 나간다.

이선민_남진선의 집1-벌초풍경. 강원도 도계
공동묘지_디지털 프린트_120×150cm_2006

이선민_신이종의 집1-성묘풍경. 강원도
도계_디지털 프린트_120×150cm_2005
화면의 가장 밝은 곳이나 전면에 어김없이 위치한 한 집안의 가장을
중심으로, 죽음의 공간인 무덤주변에 점점 퍼져나가고 멀리 사라져가는 후손들의 모습 속에서 흘러가버린 시간과 살아 있는 세상을 자르고 화석화하는,
죽음을 배태한‘사진찍기의 성찰’을 보여주기도 하고, 죽은 남편의 묘지 앞에 지팡이를 짚고 당당하게 중심에 서 있는 여자의 모습을 통해 사진 찍는
행위의 제식(한때‘존재했던’, 지금은‘부재하는’)인 부재와 현존의 실상을 드러내며 가족의 의미를 환기시킨다.

이선민_천순랑의 집. 강원도 도계 전두리_디지털
프린트_120×150cm_2007

이선민_최명순의 집1-추석풍경. 강원도 도계
전두리_디지털 프린트_120×150cm_2006
이렇듯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명절에 모인 사람들은 이선민의 사진
속에서 서로 인정하면서도 살짝 비틀고, 때로 낯설고 이질적으로 보이면서도 따뜻한 향수가 드러나는 다양한 포즈들을 통해 새롭게 관계를 형성한다.
-〈부재와 현존의 공간〉 도계 프로젝트 전시 서문 중 ■ 최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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秘 園 My Secret Garden : The Dwarfed Trees
권순평 사진展
2007_0425 ▶
2007_0508
권순평_秘 園 My
Secret Garden : The Dwarfed Trees_디지털 프린트_120×100cm_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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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425_수요일_05:00pm
화이트월 갤러리 서울 강남구 청담동 101-5 Tel. 02_548-7520 www.whitewall.co.kr
존재론적
유영(遊泳)의 정원 ● 생명, 혹은 존재에 대한 통찰은 역설적으로 죽음이나 상실의 경험을 통해 얻어진다. 깨달음은 누구에게나 견딜 만큼
쓴 약이 되며, 그래서 관대함 혹은 적응적 수용은 시간이 우리에게 주는 과제이자 선물이다. 분재는 자연의 축소판으로, 놀랄 만큼 짧은 시간동안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변화를 보여줄 수 있다고 한다. 온도나 습도에 민감하게 반응해서 순식간에 피고 지는 지극히 짧은 생명주기를 지녔기
때문인데, 그 덕에 이 작은 식물이 보여주는 외형적 변모에서 장대한 시간에의 경외를 논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 분재를 유심히 관찰한 적이 없다
해도 분재를 소재로 한 권순평의 사진에서 그러한 신비감을 읽어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권순평_秘
園 My Secret Garden : The Dwarfed Trees_디지털 프린트_120×100cm_2006

권순평_秘 園 My Secret Garden :
The Dwarfed Trees_디지털 프린트_120×100cm_2006
권순평의 분재는 생물과 무생물, 그리고
소유와 존재의 경계를 상징한다. 철사로 치감아 만든 인공적인 모양새의 나무들은 이상적 자연의 재현을 목표로 꾸며진 것이지만, 생명과 자연에 대한
소유는 인간이 온전히 도달할 수 없는 이상일 뿐임을 환기시껜? 묶였던 철사로부터 풀려나 자유를 얻고 생명의 근원인 뿌리를 고스란히 드러낸 사진
속 나무들은 놀랍게도 흙을 벗어남으로써 곧 죽음을 맞게 될 극적인 순간을 보여주는 것이다. 극과 극의 상반되는 가치가 서로 통하는 것처럼 작가
권순평이 찾아낸 그 순간은 생과 사, 실체와 허상, 이상과 현실의 교차점이다.

권순평_秘
園 My Secret Garden : The Dwarfed Trees_디지털 프린트_120×100cm_2006

권순평_秘 園 My Secret Garden :
The Dwarfed Trees_디지털 프린트_120×100cm_2006
분재로 꾸며진 그의 비밀의 정원은
원근감이나 그림자와 같은 현실의 잔재가 소멸되어 그곳을 노니는 사람에게 무중력의 공간을 유영(遊泳)하는 것과 같은 자유로움을 선사한다. 이는
단순한 배경으로 실제 크기를 짐작할 만한 단서들을 최소화함으로써 사진의 운명인 선 원근법을 무력하게 만든 결과이다. 분재된 나무들과 함께
등장하는 박제된 곤충은 독립된 개체로서 익숙한 상대적 크기감각을 전도시키는 역할을 담당했으며, 화면 전체를 고르게 비추는 확산된 빛은 공간을
압축시켜서 현실을 벗어나는 듯 한 탈공간성을 도출하였다. 탁월한 스타일리스트인 사진가 권순평의 섬세한 시각은 이번 작업의 전체적인 톤에서도
발견된다. 컬러는 현실의 호흡이 사라지면서 남겨진 창백함처럼 유채색과 무채색 사이에서 정교하게 매만져진 상태로 고정되었으며, 흑백 사진에서
선택된 회색조는 세밀한 전경과 단조로운 배경 간의 미묘한 대비를 만들어냈다. 이렇게 그는, 그만의 방식으로, 존재에 대한 사유(思惟)의 정원을
꾸며 놓은 것이다.

권순평_秘
園 My Secret Garden : The Dwarfed Trees_잉크젯 프린트_120×100cm_2006

권순평_秘 園 My Secret Garden :
The Dwarfed Trees_잉크젯 프린트_120×100cm_2006
이번에 선보이는 〈비원〉 시리즈 중에는
실물 공간에 분재를 배치함으로써 현실과 이상화된 자연의 상징이 부딪히도록 하는 작품과 특유의 세련된 감각으로 민화의 형식을 재해석하는 작품도
일부 포함되어 있다. 이들은 모두 권순평이 일관되게 추구해온 작가적 관심사, 즉 모방된 인공물과 실체적 진실의 대립에 대한 탐구의 결과이다.
이러한 측면은 미니어쳐로 제작된 과거의 역사적 사건들이 박물관에서 전시되는 장면을 담았던 그의 이전 작업 〈Photogenic
Episode〉와도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될 분재를 이용한 일련의 작업에서 그의 시각적 사유가 들려줄 다양한 변주를 기대해
본다. ■ 신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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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dge
류호 사진展
2007_0425 ▶ 2007_0508
류호_The
Edge_흑백인화_45×45cm_2007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이미지 속닥속닥
Vol.030324b | 류호 사진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7_0425_수요일_06:00pm
학고재 B1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0-5번지 Tel. 02_739_4937 www.hakgojae.com
사막의 선인장을 보며
사물에 대해 겸손해지기 ● 사진전시 서문이 시작하는 패턴은 세 가지가 있다. 첫째, '1839년 다게르가 사진을 발명한 이래로...
'하면서 사진의 기원을 들먹이는 것이다. 2007년 대한민국에서 만들어진 사진을 논하면서 1839년의 프랑스를 왜 얘기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진이란 것이 깊은 뿌리를 가지고 있음을 강조하고 싶은 심정은 이해는 한다. 하지만 번쩍이는 것이 모두 금이 아니듯이, 1839 프랑스와
2007 한국 사이에는 거의 아무 관계가 없다. 혹시 두 다른 시간대 사이에 어떤 비약이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역사적 상상력을 아무리 팽창시켜도
말이다.

류호_The
Edge_흑백인화_45×45cm_2006
두 번째 패턴은 '사진은 단순히 사물의 모사가 아니라...'로 시작하는
형이상학적 고담준론형이다. 사진은 천박하게 사물의 외관을 베끼는 복사기가 아니라 사물의 깊은 속에 숨어 있는 고매하고 비물질적이며 초월적인 어떤
본질을 찾아 헤매는 구도자의 지팡이란 얘기다. 유감스럽게도, 그런 글을 쓴 분은 사진으로 깡통이나 연필 같은 아주 단순한 사물을 베끼는 것을 한
번도 시도해 보지 않은 분이다. 더군다나 사물이라는 것이 복잡한 문화와 역사, 개인과 집단의 사이에서 부단히 변전을 겪으며 안팎으로 보이는/
보이지 않는 면모들을 갖춘 변화무쌍한 것일진대, 단순한 사물이라니. 참으로 괘씸한 노릇이다. 자고로 사물을 얕본 사람 치고 크게 된 사람이
없었으니, 이 세상 만물의 이치를 작은 사물 속에서 꿰뚫어 본 자만이 학문의 진리를 깨우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진은 그런 진리에 도달할 수
있는가? 인간의 잔머리를 초과해 있는 사물들의 질서를 파악하고 묘사하면 사진도 진리에 이를 수 있다.

류호_The
Edge_흑백인화_80×80cm_2006
세 번째 패턴은 사진의 본질을 논하는 식이다. 두 번째 패턴과 비슷하게,
'사진의 본질은 ~한 것이 아니라 ~한 것이다'는 식이다. 그 짧은 전시서문에서 설파할 수 있는 것이라면 사진의 본질이 아주 간단하고 명료해야
할 것인데,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다면 이론이고 평론이고 필요 없을 것이다. 그냥 곧바로 사진의 본질로 파고 들어가면 되니 말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세상의 본질은 직관적으로 날로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수도 없는 성찰을 통해 절벽에서 떨어져 깨우친 듯한 통각을 통해서만
도달될 수 있는 것이니, 전시서문에서 다룰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그것은 마치 엔진오일 바꾸러 온 손님에게 자동차의 본질을 설파하는 것과
비슷한 일이다.

류호_The
Edge_흑백인화_45×45cm_2007
그런 세 가지 패턴을 피하면서 사진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이미지가 생겨난
맥락들의 교차지점을 설명하여, 막연하고 말도 안 되는, 허위의 보편성으로 가득 찬 뜬구름 잡는 엉터리 도사 같은 식이 아니라, 특수하고도
개별적인 사정들을 파헤쳐 봐야 할 것이다. 류호가 사진 찍은 미국 서부의 바위와 선인장들이 검은 실루엣 속에서도 디테일을 잃지 않고 있는 것도
다 이유가 있어서이기 때문이다. 가장 큰 이유는 기본적으로 바위와 선인장이 인간보다 위대하고, 그 위대한 사물들은 욕망과 잔꾀가 미처 스며들지
못한 장엄한 땅에 영감 어린 빛 속에 고고하게 서 있기 때문이다. 그 사물들의 외관을 그대로 베끼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너무나
복잡한 천지신명의 조화로 태어난 사물들이니 말이다. 이런 것들을 사진 찍을 때는 포착한다거나(take, capture) 묘사(render,
describe)라는 건방진 말을 쓸 것이 아니라, 사물들에 대해 경배한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안셀 애담스가 요세미티의 자연에 대해 경배하는
태도로 사진을 찍었듯이 말이다.

류호_The
Edge_흑백인화_45×45cm_2007
류호도 사막 저 끝에서부터 새어나오는 빛에 온 몸을 씻기우고 있는 바위와
선인장을 사진 찍기 위해 한없이 자신을 낮추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고서야 선인장의 윤곽을 감싸고 있는 빛의 줄기가 그렇게 청정하게 빛나
보일 수가 없는 것이다. 앞서 사진의 특수하고 개별적인 사정이라는 말을 썼는데, 류호의 사진이 나오게 된 역사적 배경을 거슬러 올라가면 안셀
애담스 같이 자연에 대한 경배로 사진을 찍은 이가 나오고, 그의 대선배이며, 자연에 도전하는 인간의 숭고함을 빛과 그림자의 조화로 그려낸 칼톤
왓킨스도 있으며, 사진이 아닌 회화로 당시 미국사람들이 꿈속에 그리던 이상향을 그려낸 화가 알버트 비어스타트 등이 있다. 물론 자연의 사물을
추상적인 실루엣으로 표현한 폴 스트랜드와 마크 클렛 등 더 많은 근대의 사진가들이 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류호의 사진이
개인의 기호나 정서의 표현이 아니라, 자연을 대하는 수많은 맥락들이 만나는 교차점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게 해서 선인장의 가시 하나하나가
역광 속에서 빛나는 모습을 우리가 볼 수나마 있게 된 것이다.

류호_The
Edge_흑백인화_45×45cm_2005
여기에 작용하고 있는 것은 사진의 본질이나 초월적인 형이상학적 가치가
아니라, 선인장이라는 사물이 가진 특징이 사진가 류호가 카메라를 들이댄 어느 시점, 어느 햇살을 받아서 온전히 드러난 모습인 것이다. 만일 다른
시점에서 카메라를 들이대면 전혀 다른 사진이 된다는 것은 빛에 민감한 사진가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즉, 같은 사진은 절대로 두 번
찍을 수 없는 것이다. 사물의 본질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빛 속에 모습을 드러낸 그 충실하고 치열한 순간이 있을 뿐이다. 아마도 류호가 사진
찍은 선인장은 선인장의 가장 솔직한 모습인지도 모른다. 대기를 채우고 있는 뿌연 안개나 먼지가 개입하기도 전에 순수한 빛을 받고 서 있으니
말이다.

류호_The
Edge_흑백인화_45×45cm_2005
그 선인장들이 발견되기까지 많은 세월이 필요했으니, 그들의 집인 조슈아트리
국립공원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5천년 전 쯤인 것으로 추정된다. 처음 이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은 핀토, 세라노, 세메훼비, 카휠라 등의
사람들이었으며, 그 뒤를 이어 1800년대 초반에 목동들이 들어와서 가축들에 물을 먹이기 위한 저수지를 만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금광이 개발되어
땅이 파헤쳐졌으며, 20세기 들어서는 자작농장을 가진 이주민들이 들어와서 오두막을 짓고 우물을 파고 작물을 심어, 근대적인 토지로 탈바꿈하게
된다. 1994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넓이 8만 에이커의 조슈아트리 국립공원은 더 이상 순수한 처녀지의 자연은 아니며, 미국에서 가장 큰 도시
중의 하나인 로스앤젤레스에서 차로 세 시간 떨어진 곳에 있으며, 인간의 개입의 결과로 선인장의 수와 크기는 해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사진을 찍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물을 보존하기 위해서다. 사물을 얕보는 천박한 시선으로부터, 사물을 학대하는 난폭한 언변으로부터 사물을 보존하여
항상 빛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사진을 찍는 것이다. 사물의 거칠음과 아름다움을 모두 보존하는 것만이 인간이 잔머리의 감옥에서 벗어나서 광명의
세계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다. 다른 모든 것은 다 소용 없다. ■ 이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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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ce expression : the inside of a house
윤가현 개인展
2007_0426 ▶ 2007_0503
윤가현_space expression : the inside of a house_디지털
프린트_18×24inch_2007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KTF 갤러리 디 오렌지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7_0426_목요일_05:00pm전시관람_
11:00am~07:00pm 제8회 The Orange전 주최_GALLERY The Orange
갤러리 디 오렌지 서울시 중구 명동 2가 51-18번지 2층 Tel. 02_773_3434 www.ktf.com
프로이드는 공간을
하임리히Heimlich와 운하임리히Unheimlich로 나누어 대립적 개념으로 설명한다. 하임리히는 익숙하고, 포근한 전형적인 집과 같은
공간이며, 운하임리히는 낯설고, 공포스러운 외부의 공간이다. 작가 윤가현이 만들어낸 일상의 공간에는 하임리히와 운하임리히가 공존한다. 작가는
유년 시절 집 안에 침입한 강도로부터 위협을 받은 경험이 있으며, 당시 보호의 공간은 공포의 공간으로 바뀌었음을 고백했다. 윤가현의 프로젝트
일상 공간은 이처럼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으로부터 탄생했지만, 공간의 이러한 이중적인 의미는 다분히 보편적이다. 모든 인간은 자신의 공간에 보호를
요구하면서도 그 안에 갇히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윤가현_space expression : the
inside of a house_디지털 프린트_18×24inch_2007

윤가현_space expression : the
inside of a house_디지털 프린트_18×24inch_2007
윤가현의 일상 공간은 여러 개의 박스로
재현되었으며, 이 박스는 실제 사물이 아닌 사진의 피사체로 존재한다. 박스 안에는 사물만 있으며 인간은 없다. 공간의 주인 행세를 해오던
인간?감상자 신분으로 상자 밖으로 나와 공간을 들여다볼 뿐이다. 문명인은 누구나 작은 박스와 같은 직사각형 공간 안에서 일 하고, 밥 먹고,
잠자고, 싸우고, 사랑한다. 윤가현은 우리, 문명인들로 하여금 우리의 공간을 응시하도록 하며, 관찰자의 입장에서 일상으로 불리는 삶 자체를
고찰하도록 한다. 하지만 작가는 우리에게 그 공간을 조종할 만한 전지전능함을 허락하지 않는다. 관객들은 2차원의 사진으로 매체를 바꾼 공간
앞에서 그저 응시하고, 관찰하고, 반성할 뿐이다. 작가의 이러한 의도는 일상의 공간이 특별한 공간으로 바뀔 때가 아니라, 망각하고 부정된 삶의
의미를 재발견할 때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는 메시지로 해석할 수 있다.

윤가현_space expression : the
inside of a house_디지털 프린트_24×18inch_2007

윤가현_space expression : the
inside of a house_디지털 프린트_24×18inch_2007
플라톤은 이데아를 모방한 현실계를 또 다시
모방한 예술작품을 열등한 것으로 치부했다. 윤가현의 일상 공간은 현실을 모방하고 있다. 그러나 그 현실은 이상적인 모습이 아닌, 조금은
불안하고, 조금은 파괴된 모습으로 재현되어 있다. 침대 옆에 의자는 쓰러져 있으며, 텅 빈 공간에는 하나의 사물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또
볼록 거울로 들여다본 것 마냥 형태는 일그러져 있으며, 아예 선과 빛으로 뒤덮여 왜곡되어 있기도 하다. 우리는 여기서 이상미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묘사하고자 한 작가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즉 작가는 이데아에 대한 헛된 열망을 버리고, 주체적으로 현실을 재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의 모방 작업을 열등한 예술로 묶어 폄훼할 수 없다. 오히려 작품을 통해 삶의 본질을 들여다보게 한다는 데서 예술가로서
본연의 의무에 충실하다고 평가해야 하겠다.

윤가현_space expression : a
room_디지털 프린트_각 10×8inch_2007
인간은 끊임없이 공간에 머무르기를 바라면서도, 끊임없이 공간에서
탈출하기를 바란다. 이러한 모순적인 이중의 욕망을 가진 관객들은 윤가현의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연속적인 갇힘과 해방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제삼자가 되어 자신의 공간을 들여다봄으로써 일상의 의미를 재발견하고, 반성할 기회도 얻게 된다. 이와 같은 일상 공간의 친절한 재현은
예술의 혜택에서 소외된 - 특히 명동이라는 소비 공간에 남겨진 - 대중에게 예술을 통해 삶을 들여다보는 묘미를 제공할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
김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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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Paradise
여동헌 회화展
2007_0502 ▶ 2007_0520
여동헌_Welcome to Paradise31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2×163cm_2007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아트파크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7_0502_수요일_05:00pm
아트파크 서울 종로구 삼청동
125-1번지 Tel. 02_733_8500 www.iartpark.com
여동헌의 낙원으로의 초대
WELCOME TO PARADISE ● 크기와 비례가 무시된 색색의 꽃과 나무들, 수많은 동물들과 과일들과 꽃들 그리고 공존할 수
없는 동물들이 함께 노닐고, 상상의 나무들과 꽃이 가득 피어있는 아름다운 마을들의 모습 등 강렬하고 밝은 원색과 단순한 도상으로 나타나는 이
평화로운 낙원의 모습이 여동헌의 세계이다. ● 여동헌의 작품을 대할 때면 언제나 흥미진진하고 시각적 즐거움이 웃음과 함께 저절로 찾아온다.
이것이 그의 작품에서 지속되는 가장 큰 특징이며 그가 뚜렷이 인식하고 연구하고 있는 작품관이기도 하다. 그의 생각은 현학적이거나 애매모호하지
않다. 단순명쾌한 그의 생각에서 건강과 솔직함을 확인하며 이를 위한 미술의 기능을 생각하게 된다.

여동헌_과일산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93×97cm_2007

여동헌_Let_s fly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45×227cm_2007
여동헌은 1996년 한국판화미술진흥회의 신진작가 공모형식인 BELT'96으로
첫 개인전을 개최하게 된 후 입체판화(3D Serigraphy) 기법으로 화단에 데뷔를 했다. 판화라면 흔히 떠올릴 수 있는 목판, 동판,
석판이 주류를 이루는 아카데믹한 성격의 것과 비교해 보면 여동헌의 이 기법은 매우 독특한 것이다. 우선 세리그라피를 주 기법으로 사용한 점도
예사롭지 않지만 무엇보다도 단순한 평면작업이 아닌 점에서 구분되는 것이다. ● 그가 이 기법을 즐겨 사용하는 이유는 수없이 많이 칼라를 올릴 수
있는 장점에 착안하였기 때문이다. 그의 작업에서의 이 강렬한 색채는 깊이의 구축, 형태의 데포르메이션, 흥미진진한 소재와 함께 그의 그림을
규정하는 주요한 특징이다.

여동헌_Tornado Tornado
Tornado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93×112cm_2007

여동헌_Welcome to
paradise-36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93×112cm_2007
먼저 입체 공간의 문제를 살펴보면 세리그라피로
여러 장의 판면을 제작한 후에 그것들을 미리 만들어 놓은 등고선 형식의 설계도를 따라 오린 후에 다시 재조합한다. 이러한 부조형식의 작업에서
겹겹히 쌓아올려진 화면들은 기존의 판화의 개념과는 전혀 새로운 장을 연 셈이 된다. 이 작업은 회화와 입체 그리고
데쿠파쥬(decoupage)기법을 차용한 멀티플의 성격을 모두 점하고 있는 것이다. ● 그는 여러 겹으로 겹쳐가며 깊이를 형성하였지만 다른
회화에서와 다른 점은 깊이를 시각적으로 재현하기 위해 착시(trompe l'oeil)를 이용한 여하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단지 면의 간격을
일정하게 띠우는 것으로 그 깊이는 다분히 촉각적이라는 점이다. ● 이 촉각적 공간은 벽면에서는 종단면의 구성으로 표현하고 이 단면들은 한 작품
안에서도 부분 부분에 따라 다른 간격과 흐름을 적용하는 변주가 가능하기 때문에 화면은 경직된 구성의 위험에서 벗어나 작가만의 독창적 공간으로
생명을 지니게 된다. 테이블 식으로 한 작품에서는 형태를 일정하게 단계별로 오려서 붙이는 방식과 달리 여기저기 임의로 위치 선정하여 이미지를
세팅하는 것으로 이 기법을 여동헌만의 고유한 표현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있어 향후 이 방식의 기법 개발이 기대된다. ● 이러한 작업 활동은 또한
'미디어시티 서울2000', '어린이 미술관 벽화제작', '아트메트로-2002 FIFA 월드컵 열차 설치(서울지하철 6호선)' 등의 작업으로
이어지며 작업 영역을 넓힌다.

여동헌_Welcome to
paradise-37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93×97cm_2007

여동헌_Welcome to
paradise-38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7×193cm_2007
수년간의 프랑스 생활 후의 2005년에
인사아트센터에서의 개인전에서는 「폭포」, 「펭귄」, 「산」의 3가지의 주제를 가지고 전시하였을 때, 큰 변화를 드러내었는데, 그것은 바로 판화가
아닌 회화작업을 선보인 것이다. ● 물론 여기에서도 여동헌의 특징인 평면적 채색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었다. 원근법이나 명암법 등을 사용하지 않고
물감도 튜브에서 짠 그대로 섞지 않고 바른 듯 채도가 높은 색상들을 구사하고 있다. 평면적으로 처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강렬한 색상은 그
웨이브의 역동적 형태와 더불어 마치 물감의 뻑뻑한 점성이 느껴지는 듯하며 고유한 물성을 드러내며 흘러내리는 듯한 강한 느낌을 갖게 됨은 경이로운
시각적 경험이 아닐 수 없다. ● 이번 전시에서는 또 다른 시도가 우리를 기다린다. 이전의 작업 WELCOME TO PARADISE 시리즈가
숲과 하늘을 바탕으로 갖가지 나무들과 동물들, 꽃들 집들을 한 화면에서 다 볼 수 있는 것들이었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그것들을 하나하나씩 해체해
보는 방식을 시도한다. 동물, 꽃들 과일 등의 소재별로 한 화면에 한 소재만을 구분하여 다룸으로써 그 소재를 치밀하게 조명해 보는 방법이다.
이러한 시도에 대하여 여동헌은 “이미 등장한 수많은 캐릭터들에게 하나의 작품으로 나름의 생명을 넣어주려는 의도도 있고 그것들의 연구를 통하여 좀
더 발전적인 낙원의 모습을 연출하려는 계획도 있다.”고 한다. 이번 전시에서 이렇게 소재별로 나누고 다시 재구성하는 과정은 반복될 것이어서
여동헌이 확신을 갖는 미술은 쉽고 밝고 즐거운 것이지만 이를 위해 작가가 걸어갈 과정은 결코 쉽거나 늘 즐겁지는 않겠다는 생각에 다시 웃게
된다. 앞으로 여동헌이 개발하는 다양한 낙원 구경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그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 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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