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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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abel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2004-05-08 01:22:13, Hit : 319)
west
끝은 없다. 하지만. 지겨움은 있다.
gq에서 퍼왔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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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증을 보여 주십시오.” 알파벳 두 글자가 돋을새김되어있는, 오대양 육대주 어디에서도 내밀면 어떤 의미로든 내민 사람의 얼굴을 다시 보게 하던 그것이었어도, 거기에서 ‘명함’은 ‘증’이 아니기에 무효였다. 그들은 사진이 있어 얼굴이 확인되는 기자증을 원했다. 월간지 기자들은 거의 100% 기자증이 없으며, 기자증은 아니지만 이 명함은 명백한 내 것이고 원한다면 이 이름과 사진이 있는 내 사원증을 보여줄 수도 있고, 이 관전은 제작진으로부터 허락받은 것이므로 서태지의 경호원이 내게 그런 명령은 할 수 없다고 딱따구리 목소리로 말하려다 말았다.

공연 리허설 중에는 제작진과 서태지 컴퍼니말고는 어느 누구도 관전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서태지 측의 원칙이라고 했다. 그 원칙을 전하는 말에 틈은 없었다. 원칙이 그런데도 내게 기자증을 보여달라고 한 것은 리허설 관전 여부 때문이 아니라, 어떻게 리허설 이전의 스튜디오에 들어온 것인가에 대한 확인 때문이라니 리허설 취재의 취지 등은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경호원의 수신호에 따라 스튜디오 밖으로 밀려나가며 돌아보니 최소한의 인원만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멀리서 핑크색의 티셔츠를 입은 서태지가 마이크를 툭툭 쳐보고 있었다. 서태지의 최초 토크쇼 출연, <최수종 쇼>를 밀착 마크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복도로 나온 나는 서태지의 팬들과 일반 방청객이 따로 줄을 서 있는 곳,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우두망찰이었다. 리허설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것은 답답했다. 모든 것을 총감독처럼 스스로 꼼꼼히 챙긴다는 서태지의 모습을 반드시 담아내고 싶었다. 그가 가장 공을 들인다는 음향은 물론 자신을 비출 조명, 무대 장치 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그것을 어떻게 발의하는지 꼭 보고 싶었다. 서태지 컴퍼니의 대매체홍보 담당이사와의 통화는 무대 밖의 서태지 모습을 담는 데 힘이 되어 줄 것 같았다. 그러나 원칙 수호에 관한 한 그 역시 해병대였다. 그들의 원칙은 합리적이되 매몰차지 않고 단호했지만 억압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화가 나지는 않았다.

팬은 팬대로 방청객은 또 방청객대로 따로 무리진 곳에서 뚝 떨어져 조용히 짧지 않은 대기 시간을 지내자니 무료했다. 그 무료함은 결국 서태지의 팬들에 대한 생각을 바꾸는 데 엄청난 실마리가 되어주었다. 그 사이 보고할 곳에 보고하고, 의견을 구할 곳에 구하고, 잡담을 할 곳에 잡담을 나누는 몇 통의 통화를 끝냈다. 통화 내용 중에 특기할 만한 것은 녹화 전날 방송되었던 KBS의 개국 77주년 서태지 특집쇼의 시청률이 평일 오전 11시 수준으로 집계되었다는 것이었다. 수억원을 들인 서태지의 특집쇼가 거의 전파 낭비 - 방송 제작진들은 자신들만의 언어로 4% 이하의 시청률은 낭비 수준이라고 한단다 - 수준의 시청률이 나온 것은 충격이었다. 서태지에게 열광하는 사람들이 그토록 많은데, 그 많은 사람들과, 또 그렇게 열광하진 않지만 젊은 날을 서태지의 음악과 함께 보내며 현재진행형인 향수를 깊이 느끼는 사람들이 참 많은데, 그 시청률은 쉽게 믿어지지 않았다.

이런 저런 통화를 끝내고 폴더를 닫자마자 어떤 여자의 목소리가 내 귀에 들어왔다.“어린 사람도 아닌데 존칭을 쓰는 게 옳지 않나요?”난 내게 하는 말이 아닌 줄 알았다. 난 그곳에서 누구와 말한 적도 없었고 내 통화 내용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라고 해도 그것은 상식에서 벗어난 일이었다. 게다가 상대는 내 앞에 버티고 나타나 직설적으로 말한 것도 아니고 스치듯, 하지만 견고한 발음에 성난 심정을 담아 말한 것이었다. “저요? 무슨 존칭을 말씀하시…”오버랩의 느낌으로 바로 대답은 돌아왔다. “서태지가 아니라 서태지 씨라고요.” 그녀는 낮고 조용하게 말하고는 다시 사라졌다. 사라지는 그녀의 뒷모습에 실소했지만 모골은 송연했다. 보고를 했거나 잡담을 했거나 현재의 내 상태를 말하면서 나는 통화 상대에게 거침없이, 아니 그럴 필요 없으니 ‘서태지가 리허설 중이다’, ‘ 멀리서 마이크 점검하는 서태지를 0.3초 봤다’고 말했는데 존칭 없는 호명이 서태지 팬의 마음에 거슬린 모양이었다. 모골이 송연해진 느낌은 말의 내용이 아니라 그 내용을 생각하게 된, 그 생각을 말할 수 있는 그녀의 대단한 열정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어떻게 생면부지의 타인에게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을까? 분노보다 더 큰 의구심은 대답을 잃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비굴하게도 다행이라는 생각도 바로 이어서 생겨났다. 만약, 그녀가 팬의 무리 속에서 날 선 목소리로 내게 그런 말을 했다면, 그곳에 서태지가 아니라 서태지 씨를 기다리는 그 많은 팬들이 모두 그녀와 같은 생각을 한다면….

입장 시간은 길었다. <최수종 쇼> 사상 가장 많은 방청객이라고 했다. 방청객들은 무대를 중심으로 빼곡하게 반원형으로 앉혀졌다. 일반 방청객과 서태지 팬들은 서로 섞여 앉도록 조정됐다. 공교롭게도 내 자리의 양쪽은 서태지의 열렬한 팬인 듯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그것은 바로 증명되었다. 무대 위 한쪽에 1m 높이로 서 있는 서태지의 캐릭터를 보며 그녀들은 열광했고 빈 무대를 폰카메라에 담기도 했으며 약 3m 앞에 자리한 무대에 서태지가 손에 잡힐 듯 나타난다는 생각에 눈물이 날 것 같은 심정임을 서로 뜨겁게 토로하고 있었다. 미리 준비하고 있던 최수종 역시 그 열렬한 반응에 긴장되는 듯했다.

서태지보다도 먼저 나타난 것은 서태지의 집을 방문한 최수종과 하희라의 화면이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트러커 캡을 쓴 서태지가 문을 열고 그의 일상 속으로 카메라가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는 장면에서 찬물을 빨리 들이켰을 때처럼 머리 안쪽이 ‘쩡’했다. 서태지의 일상이 낱낱이 공개되는 것, 그 상황과 그 방식에 대해 놀라는 무리 중에 팬들은 없었다. 그들은 이미 서태지가 자신의 팬 사이트에 올렸던 셀프 카메라를 통해 거드름 없고 이물감 없는 우상의 모습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러나 ‘신비주의’라는 말을 처음 쓰게 했던 - 그것이 자발적이었든, 언론이 이름 붙인 것이었든 상관없이 - 서태지의 모습에 익숙하지 않는 일반 관객에게 반갑고도 놀라운 일이었다.

서태지는 화면에서 서태지가 아니라 연예인이었고 아이돌스타였다. 그는 능숙한 솜씨로 커리를 요리했고 리모트 컨트롤 카를 즐기는 모습을 보여줬다. 노래를 하기도 했고 심지어 하희라가 만든 피칸 파이를 먹기까지 했다. 또 충격이었다. 서태지가 무엇을 먹는 장면을 촬영하다니. 과거 ‘서태지와 아이들’의 양현석이 아닌 양군기획의 대표인 양현석을 만났을 때, 그는 가수 혹은 뮤지션이 식당에서 밥을 먹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아주 오래, 인상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양현석은 ‘존재감’이라는 단어를 써서 말하진 않았지만, 일상의 모습이 무대 위의 모습을 해치고, 그 뮤지션이 하는 음악의 범위를 매우 일상적인 범위로 제한하게 된다는 이유로 그것을 설명했었다. 나는 양현석이 “밥 먹고 화장실도 가야지 음악을 할 수 있지만 밥 먹고 화장실 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음악을 하는 데 꼭 필요한 건 아니잖아요”라고 말했던 것을 명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서태지는 파티에서 왕왕 볼 수 있는 미소년의 모습으로 “음, 맛있어!”라고 말하기도 했다. 넘치는 애정과 호감 때문에 안타까운 환호가 스튜디오를 가득 메웠다. 화면보기가 끝나자 주인공이 나타났다. 그렇게 순간적으로 치솟는 데시빌 속에 있었던 적이 있었을까?

한동안 그의 팬들의 몸에서 폭발적으로 분비된 아드레날린으로 스튜디오는 불 붙을 듯 후끈해졌다. 최수종과 단독으로 나눈 토크 중에도 서태지보다도 더 서태지를 잘 아는 팬들은 미리 그 답을 말하며 서태지의 분신이자 대변인인 채 최수종과 대화했다. 팬들은 서태지가 말하는 내용이 궁금한 것이 아니었다. 이미 서태지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팬들은 서태지의 실체감, 손을 뻗으면 만질 수도 있는 그 자리, 눈앞에서 실재하며 눈을 깜박이고 다리를 포개고 발을 까닥이고 박수를 치는 서태지를 보며 삶의 희열을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화면이 나가느라 카메라가 서태지를 잠시 놓았을 때, 그는 립 밤을 주머니에서 꺼내 입술에 발랐다. 그때의 반응은 거의 현실 수준 이상이었다.

서태지를 위한 특별한 게스트가 호명되고 김제동과 송은이가 나타났다. 송은이의 악수에 이어진 섬광 같은 짧은 포옹에 공개홀은 광포한 소음으로 순간 팽창했다. 그리고 이어진 ‘굉장한’ 토크. 그것이 서태지가 아니었다면 아무렇지도 않았을 얘기가 서태지의 입에서 그 말끝을 끄는 말투에 묻어나오는 것으로 ‘굉장한’수준의 얘기가 되고 있었다. 서태지는 음란물을 안 볼 것이다, 짠돌이다, 미남이다, 여자 때문에 울어 본 적이 있다는 등의 평범한 궁금증에 서태지라는 평범하지 않은 인물의 대답은 모두 비범할 수밖에 없었다. 전인권의 모창까지 했을 때, 더 이상은 ‘굉장’하고 엄청난 변화가 아니라 재미있는 서태지로 편하게 수용되는 단계에 이르렀다. 서태지가 음악 외적인 것으로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준 자리라는 확신이 생겼다. 쇼는 바로 기존의 ‘대화야 놀자’코너로 접어들었다. 물론 사전에 협의된 상황이겠지만 그 순서야말로 서태지가 전폭적으로 오락 프로그램에 출연한 엔터테이너가 되는 순간이었다. 입장할 때의 짧은 포옹, 긴 비명을 경험한 송은이는 그 장면에서 그녀 특유의 명민한 재치를 발휘하지 못하고 수줍은 소녀팬처럼 주저앉고 말았다. “하기만 해!”하는 말로 낮은 으름장을 놓던 어떤 팬은 안도했다. 지금까지 그가 그토록 많은 얘기를 자분자분하게 털어놓은 적은 없었다. 앞으로 이렇게 전면적으로 ‘오락’프로물에서 소위 ‘망가질’기회는 그 스스로도 갖지 않을 것이고, 그에게 주어지지도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녹화 중간, 세 시간이 넘도록 이어지는 녹화 끝에 테이프를 교환하느라 방송은 중단되었다. 잠시 서태지는 무대 뒤로 들어가고 김제동과 최수종은 무대에서 목을 축였다. 잠깐 자리를 떠났던 송은이가 다시 들어오자 관객 중 한 사람이 그녀를 불러 선물을 서태지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김제동도 가세해 자발적인 메신저로 나서 많은 선물을 수습해갔다.

테이프는 교환되었고 일상의 서태지 모습은 가감없고 여과없이 테이프의 릴에 각화되고 있었다. 그리고 서태지의 노래방 순서도 있었다. 그것은 서태지의 팬들이 가장 걱정했다는 구성이었다. 기존의 것처럼 연예인과 도전자의 대결 양상 구도로 꾸며져 서태지가 노래방 속에 들어가 노래를 부르게 될까봐 서태지의 팬들은 과민 반응을 팬 페이지에 쏟아냈었다. 자신의 노래를 재구성해서 열정적으로 노래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서태지의 눈빛은 집중력의 정수였다. 자신의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쉬지 않고 발장단을 맞추었고, 박수부터 파안대소까지 감정을 드러내는 동안에도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고 그들의 모습에 몰두했다. 장면이 끝나자 그는 그간 팬 페이지 동영상에 담긴 모습으로 얼굴이 익은 팬의 모습이 여럿 보인다고 말했다. 팬들의 반응은 깊고 뜨거웠다. 서태지가 그들의 얼굴을 모두 외우고 있었다는 것에 팬들은 감동했다. 어느덧 토크 쇼는 끝이 났다. 제작진과 출연진 모두 만족스러운 얼굴이었다. 작가는 엄지 손가락을 세우며 그의 적극적이었던 말과 행동에 대해 인사를 전했다. 서태지는 웃었다. 20여 분의 공백이 지나가고 무대는 음악을 위해 다시 마련됐다. 어쿠스틱 반주로 서태지가 <헤피 엔드>와 <로보트>를 부르는 것으로 ‘역사적인’ 서태지 토크 쇼 출연은 끝이났다. 서태지가 “내가 오늘 너무 말 많이 했지?”했다. 그의 특별한 팬들은 “그렇다”나 “아니다”가 아니라 “좋았다”라고 대답했다.

아이들을 빼고 나타난 서태지의 첫 음반에 대해 그 전의 깊은 호감을 느끼지 못했던 팬 아닌 팬인 나는 이제 그의 컴백에 들뜨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에피소드 몇 가지는 그의 컴백 부근을 자잘한 화제로 여전히 들썩이고 있었다. 서태지가 입국 편명과 시간을 미리 밝혔다는 등의 화제가 그런 종류였다.

그는 자신이 미리 말한 그 시간에 팬들이 열광하는 그 해사한 웃음으로 나타났다. 환호 인파까지도 조직적인 서태지의 팬들은 ‘환영’수준의 피켓뿐만이 아니라 기자들에게 서태지의 가장 잘 나온 사진을 실어달라는 부탁의 내용까지도 써 들고 그를 맞이한 사진이 일간지에 보도되기도 했다. 마중 나간 카메라를 향해 서태지는“… TV를 통해 자주 찾아뵐 계획이니까요, 많이 기다려주세요…”라고 말했다. MBC에선 서태지의 일본 집 부근에 잠복 비슷한 것을 해 그를 맞이하는 구성으로 그의 일상적인 모습을 대대적으로 공개했다. 서태지가 혼자 잘 해 먹고 살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정확하게 말해 그간 서태지가 어떻게 먹고 자는지에 대해 궁금할 여지를 스스로 주지 않았지만, 텅 빈 냉장고에 소스 몇 가지만 덩그라니 있는 장면까지 보여준 것은 안 그러려고 해도 그 기저에 무엇이 깔려 있는지가 자꾸만 궁금해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필름에서 역시 그는 “자주 찾아뵐테니까요~”라고 말했다. 그가 지금까지의 대매체 전략을 바꿔 자주, 많이, 직접 찾아주려는 까닭은 정말 무얼까? 그 까닭을 궁금해하는 것은 괜한 딴지일까?

그는 귀국으로 시작된 이번 앨범 활동을 예전과 다른 양상으로 진행하는 것처럼 보였다. 여전히 개별적 인터뷰 잠정적 불가 방침과 사진촬영 불가 원칙은 고수하고 있지만 지난번하고는 그 궤가 아예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비록 합동 기자회견 후 조금씩 차이가 있는 사진과 기사로 보도되긴 했지만 대표적 스포츠지 몇몇이 그의 기사를 실었고, 콘서트와 상관없이 텔레비전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들만의 잔치처럼 보이는 콘서트와 그 주변의 소식을 알리는 연예정보 프로그램에서 성의 있어 보이긴 했지만 정작 출연은 인색하기만 했던 그가 이번엔 노출의 양을 늘리고 그 질을 조밀하게 해 송출하기로 결정한 듯했다.

그의 이런 행보에 의견은 분분했다. 한 칼럼니스트는 서태지를 트렌드세터라고 명명하면서 이제는 자신이 예전같지 않다는 것을 알고 그 흐르는 시간을 막는 시계로 ‘겸손함’을 꺼내들었다고 말했다. 전에 없이 귀국 시간과 편명을 밝힌 것으로 인기에 대한 자의식을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예상이 오가는 상황에서 전략을 바꾼 대매체 전술은 평론가들을 당겼다. 또다른 쪽에서는 감성적인 정서까지 훌륭하게 뽑아내온 서태지가 음반의 성격에 맞는 활동으로 음반의 완성도를 높이고 있는 시대의 창조자라는 평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이 시기에 그가 <최수종 쇼>의 출연을 결정했다는 소식을 듣는 것은 이상하고도 반가웠다. 특집 쇼도 아닌 토크 쇼에 그것도 완전한 오락 프로그램에 그 모습을 드러내기로 한 것은 이상했고, 이렇게 열린 물꼬는 더 다양한 노출이 가능할 것 같다는 에디터의 직업 정신으로 훨씬 반가웠다.

이번 서태지의 출연으로 깊숙이 오랫동안 그를 만났던 <최수종 쇼>의 작가는 일련의 서태지의 행동이 다른 어떤 의미라기보다는 이번 음반이 ‘감성 코어’이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감성을 보다 많이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것으로 활동 방향을 잡은 것 같다고 했다. 서태지가 그와의 사전 제작회의에서 밝힌 심경 중에 하나가 그것을 증거했다. 그는 스스로 변했다라는 말을 쓰는 것에 신경증적이지 않은 반론을 제기했다. 신비주의 등의 용어는 서태지가 한 번도 쓴 적이 없는 신문의 용어이며 ‘서태지’라는 임의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놓고 그것에 벗어나니, 왜 변했냐고 묻는 것은 서태지 자신은 의도하지 않은 일, 모르는 일에 대해 추궁받는 것과 다를 게 없다고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토크 쇼 출연은 서태지가 희망했다고 한다. 현재 편성되어 있는 토크 쇼 중에 오전 시간대가 아닌 것은 <최수종 쇼>가 유일했고 <최수종 쇼> 제작진의 반응도 최고의 예우를 할 수 있는 대환영 분위기였다. 게다가 서태지의 최수종과 하희라 부부에 대한 호감으로 출연 결정은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출연이 결정되자 <최수종 쇼> 출범 이후는 물론 그동안 <이승연의 세이세이세이>, <김혜수 플러스 유>등을 제작한 작가 역시 처음 보는 문건을 하나 보게 되었다. 출연에 관련한 계약서였다. 배포와 제작 방법, 출연료, 재방송 여부, 방송 횟수 제한과 뮤직 비디오 상영횟수와 방법까지도 적확하게 명시되어 있는 계약서였다. 서태지의 철저한 프로페셔널리즘을 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또, 서태지 측은 원래 100% 동원 방청객으로 채워지는 <최수종 쇼>의 방청석에 대해서도 서태지 단독의 토크 쇼에 서태지의 팬들이 방청하지 않을 수는 없다는 의견을 전해왔다. 제작진은 그것을 수용했고 대신 방청하는 팬들의 요건을 다른 방청객들과 맞춰주기를 제안했다. 서태지 팬들로만 구성되어 서태지의 팬미팅 같은 분위기는 시청자들에게 거부감을 줄 수도 있으니 오늘 아침 지하철에서 옆에 앉았던 것만 같은 평범한 팬들로 채워주기를 바란다는 것이었다. 실제 진행에 앞서 제작진은 서태지에게 사전에 대본을 만들어 보여주었다. 그것은 서태지가 원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제작진의 제안으로 시작된 일이었다. 십여 년 동안의 모든 자료를 훑어봐도 서태지의 ‘토크’를 예상할 방법이 없었던 이유 때문이었다. 말의 수는 많은지, 어떤 식의 유머를 구사하는지, 어떤 수준의 얘기까지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서로 맞추고 들어가는 것이 안전하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이런 식의 진행은 미국의 모든 토크 쇼의 형태이기도 하다. 게스트는 질문을 미리 알고 있고, 호스트는 그 대답의 세부사항은 아니더라도 수위 정도는 알고 진행하는 것이다. 사전 협의의 경우는 반응을 점칠 수 있으므로 제작진과 게스트는 기본 점수를 상정하고 안전하게 만들 수 있는 환경이 되는 장점이 있다. 제작진은 구성되어 있는 대본과 질문을 다 본 서태지에게 빼고 싶은 것과 추가하고 싶은 것에 대한 선택권을 주었다. 서태지와 <최수종 쇼>는 서로 원하는 것을 들어준 것이다. 작가는 쿨한 프로페셔널리스트라고 그를 평가했다. 예의 바르고 소탈한 그는 ‘서태지와 아이들’시절부터 보이던, 완전한 톱의 위치에 있을 때에도 거드름이나 잘난 체하고는 거리가 멀었던 그 모습을 아직도 고스란히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압도적인 리더십 발휘는 그의 또다른 모습이었다. 모든 것을 자신이 확인하고 점검하는 것, 총감독 수준의 디렉팅을 보이는 것, 음악을 할 수 있는 기본적인 요건을 필사적으로 사수하는 것 역시 서태지의 모습이다. 서태지는 자신의 특집 쇼는 스스로 편집한다. 음악에 관해서는, 특히 자신의 음악에 관해서는 자신만큼 잘 아는 사람이 없다는 자신감에 기인해 요구하는 편집권이고 그것은 때마다 수용됐다. 서태지의 집에는 방송국 수준의 기천만원짜리 편집기가 여러 대 있어 방문한 제작진을 놀라게 했다. <최수종 쇼>역시 언론에는 방송 전에 편집을 서태지가 해 오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편집본을 확인하는 것으로 그 과정을 마쳤다고 했다.

서태지가 서태지이게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단련되어 있는 쿨한 프로페셔널리즘과 음악에 대한 열정 - 그것이 이미 인정받은 서구의 음악들을 먹기 편하게 포장하여 들여오는 메신저라는 평가나 새로운 시대와 문화에 딱 들어차 마음과 귀를 뚫어주는 음악의 창조자라는 평가에 상관없이 말이다 - 그리고 팬이다. 그는 팬에 관해 대단히 마음을 쏟는 뮤지션이다. 작가의 전언에 따르면 그는 팬이 좋아할 것과 그렇지 않을 것에 대한 명쾌한 기준을 가지고 있었다고 했다. 스타들은 자신의 팬에 대해 대개는 잘 안다. 그렇다고 해도 불특정 다수를 생각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서태지는 자신의 팬이 특정 다수임을 알고 있었다고 했다. “팬들이 싫어할 것 같아요”가 아니라 “팬들이 싫어해요”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그가 밝혔듯 ‘내 미약하고도 유일한 재능이 희망으로 불릴 수 있게 한, 그래서 38개월의 노력을 바치고 싶은 너’가 바로 그 팬들인 것이다.

서태지에 대한 팬들의 앙망의 수준 역시 상상을 초월했다. 녹화 도중 잠깐의 휴식 사이에 제작진에게 전해졌던, 그러나 이미 제작 준비 기간에 제작진에게 당도했다는 편지는 그 사랑의 양과 질을 예상하게 한다. 영화 <엽기적인 그녀>에서 견우가 그녀의 새 남자친구에게 그녀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말하는 장면, 바로 그것이었다. “… 우리 태지, 썰렁해요. 하지만 많이 웃어주셔야 해요. … 우리 태지, 저녁 거르지 않게 저녁 전에 끝내주세요. … 우리 태지, 탄산 음료보다 오렌지 주스를 좋아해요. … 우리 태지, 입술을 앙다무는 버릇이 있어요…” 등등의 내용이 두 장의 편지지에 빼곡히 적혀 있었다고 했다. 듣는 순간, 성격을 알 수 없는 전율이 느껴졌다. 이 공고한 관계는 종교처럼 지속될 것 같았다. 그것은 ‘빠순이’라고 호도되는 명칭의 팬클럽과는 그 궤를 달리하는 조직적인 움직임이었고, 영원 불변의 신망이 서태지의 온몸에 축적되고 있는 것이었다. 서태지의 팬들은 그들 또한 서태지와 함께 미디어에 많은 상처를 받았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그 상처들로부터 서태지를 보호하는 길은 자신들이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대한민국 대중가요사의 이른바 빅3라 불릴 나훈아, 조용필, 서태지와 긴 작업을 함께 한 대한민국 전무후무한 경험을 가진 작가 김일중은 그들의 공통점은 마음 놓고 음악을 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탄탄한 지지층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아무도 자신의 음반 판매량을 생각하며 음악을 만들지 않으며, 그러지 않아도 되는 토대가 전폭적인 지지와 사랑을 보내주는 고정 팬들의 힘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그 안정적인 피드백의 모집단은 하고 싶은 음악을 마음껏, 어떤 것도 눈치보지 않고 할 수 있는 힘을 주는 원천이 된다는 것이다.

서태지의 음반 판매량은 SG워너비에게 음반 판매량의 순위를 내 주었다. 한동안 1위를 달릴 것 같았지만 역사적이고 경이로웠던 1위 행진은 몇 주 만에 끝났다. 결국 이번 음반을 구입한 그 수가 서태지의 힘인지 그의 컴백 때마다 관심을 갖는, 그렇지만 선뜻 음반은 사지 않는 그 옛날 팬들의 힘인지는 ‘역사가 말해 줄 것이다’.

서태지의 이미지의 시대는 갔다. 하지만 서태지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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