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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훈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2002-11-14 01:41:30, Hit : 573)
[펌]진작(眞作)과 위작(僞作)
차 대전이 끝난 즈음인 45년 5월 29일 네덜란드 경찰이 한 화가를 긴급 체포했다. 반·메헤렌이라는 무명에 가까운 화가였다. 체포이유는 전쟁 중 대독 협력자로 국가 주요 미술작품을 국외에 유출시켰다는 혐의였다. 베르메르의 국보급 작품을 나치의 고관인 케링 원수에게 팔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취조 중 메헤렌이 격분해서 “바보같은 소리하지 마시오! 내가 국가적 미술재를 적에게 팔았다고! 천만에 말씀, 그것은 내가 그린 것이오.”라고 외친 것이다. 정말 충격이었다. 이로서 그동안 새로 발굴된 베르메르의 걸작들이 한 무명화가의 위작이었음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메헤렌은 나치의 고관을 통쾌하게 우롱했다는 것으로 일약 영웅으로 대접받았지만 그동안 그가 그린 위작들이 유명 컬렉션에 유입된 것은 유감이 아닐 수 없었다. 그가 그린 대표적인 위작만 꼽아보아도 <그리스도와 그 제자들>, <엠마오의 그리스도와 그 제자들>, <최후의 만찬>, 그리고 케링의 소장으로 들어간 <그리스도와 간음한 여인> 등이다. 유명한 화상은 물론이고 뛰어난 감식가들까지 베르메르의 위대한 발견이라고 입에 침을 말렸던 작품들이 한 무명화가의 위작으로 밝혀지면서 작품의 진위를 밝히는 일이 얼마나 까다롭고도 신중을 기해야 되는 것인가를 교훈으로 보여주었다.
위작 시비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최근 우리 미술계에서는 유독 위작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형편이다. 위작의 제작조직은 날로 더욱 치밀해지고 유통망은 더욱 간교해지고 있으며 상대적으로 이를 가려내는 감식의 눈과 과학적인 대처방식은 턱없이 미약하기 때문이다. 현대작품을 대상으로한 위작이 유통되기 시작한 것은 그렇게 오래지 않다. 일부 동양화를 제외한 서양화와 기타 장르의 작품의 위작은 대개 80년대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위작은 현존작가보다는 작고작가의 경우가 많고 이른바 인기작가에 집중되어 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현재 가장 많은 위작의 분포는 이중섭, 박수근, 김환기 같은 현대의 가장 대표적인 작가에 집중되어 있는 편이고 이인성, 나혜석 등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편이다. 한국화에서는 단연 김기창이 가장 많은 위작이 유통되고 있다. 이렇게 몇몇 작고 작가에 편중되어 있는 것은 이들 작품이 고가인데다 다른 작품에 비해 손쉽게 거래된다는 이점 때문이다. 아무리 화랑가가 위축되어 있다고 해도 이들 작품은 없어서 못 판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외풍을 타지 않는 것으로 인식되어 있는 터이다.

80년대만 하더라도 진위의 판별이 비교적 쉬웠다. 그만큼 위작의 실력(?)이 높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90년대를 지나면서 사정은 달라지고 있다. 웬만해선 진위를 가려낼 수 없을 정도로 가짜 제조의 실력이 향상된 것이다. 한다하는 감식가들도 번번히 속아넘어가는 현실이 되었다.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대게 뛰어난 감식가는 직감에 의해 진위 여부를 판별해낸다고 한다. 직감이란 첫 인상이 가장 중요하다. 첫 인상에 무언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있으면 영낙없이 위작으로 밝혀진다는 것이다. 물론, 이 경우의 직감이란 오랜 경험과 눈의 훈련이라는 바탕에서 나오는 것이지 결코 즉흥적인 판단이 아니다. 때문에 반드시 이론에 밝은 비평가나 미술사가라고 해서 높은 감식안을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없다. 오히려 이 분야의 작품을 오랫동안 취급한 화상이 더욱 놀라운 감식안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직감은 경험의 산물이지 지식의 산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직감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고도의 위작기술 앞에서는 뛰어난 직감도 맥을 못 출 때가 있다. 이 경우에는 역시 과학적인 대치방법이 강구되어야 한다. 안료, 캔버스의 분석은 물론이고 작가 특유의 터치와 색채배합 같은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재가 동원되어야 하고 이를 분석할 수 있는 데이터의 보완이 뒤따라야 한다. 언제 제작된 캔버스인지, 어느 시기, 어느 공방에서 제조된 것인지를 밝혀내야 하고 안료가 옛날 것인지 오늘날 것인지를 분석해내야 한다. 한 작가의 전체 제작과정과 시대별 변화 양상에 입각한 대비분석이 이루어져야 하며 더욱 정확을 기하기 위해서는 제작시 옆에 있었던 유족들에게 확인하는 보조적인 수단도 동원되어야한다. 물론, 유족들의 증언을 그대로 따랐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도 종종 일어나고 있다. 유족들이 한결같이 제작을 지켜보았다고 할 수 없고 유족 중에는 타작의 경우 위작으로 낙하시켜버리는 예가 없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가 한결같이 걸작만 제작할 수는 없는 것이다.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 있는가 하면 도무지 믿기지 않을 정도의 타작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작품을 감정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 작가의 걸작이나 평균작에 기준을 맞추기 때문에 가다가 완성도가 떨어지는 작품을 대했을 때는 영낙없이 위작으로 간주해 버린다. 이렇게 진작이 위작이 되는 경우도 있다. 작가들 가운데서도 자기가 제작한 타작을 만났을 때 완강히 위작이라고 취급해 버리는 사례도 없지 않다. 자기 자신이 자기 작품을 위작으로 만드는 사례이다. 이 반대의 경우도 있다. 분명한 위작을 자기 작품으로 인정하는 일이다. 작품에 다시 한번 확인 사인까지 해서 위작이 진작으로 둔갑되는 웃지 못할 사태가 벌어지기도 한다. 작가가 자기 작품을 가장 잘 판별한다고 하지만 한 두 작품이 아닌 수많은 작품인 경우, 착오를 할 때도 있기 마련이다. 자기자식을 부모가 못 알아볼 수 있느냐고 하지만, 자식도 수백, 수천에 이르면 못 알아보는 경우가 생기게 마련이다.

어떤 작가는 작품 속에 자신만이 확인할 수 있는 트릭을 남기는 경우도 있다. 날고 뛰는 위작자라도 이를 간취할 수는 없을 것이다. 대게 사인을 보고 진위를 가려내는 경우가 많은데 작가만의 특유한 필체를 좀처럼 흉내낼 수 없을 것이라는 관념 때문이다. 그러나, 위작자가 작품보다 사인에 더욱 정교함을 발휘한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는 터이다. 사인이 없는 작품도 있게 마련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인이 없다고 해서 위작으로 간주해 버리는데 이는 대단한 잘못이다. 작가에 따라, 경우에 따라 사인을 하지 않은 작품이 나올 수 있다. 위작자가 일부러 사인을 하지 않는 경우는 드물다. 사인이 없는 작품일수록 더욱 진작의 확률이 높다는 이야기가 이렇게 해서 나온 것이다. 사인이 없기 때문에 작품의 가격이 떨어지는 사례는 무언가 잘못된 것이다.
가짜일수록 작품을 에워싼 사연이 많기 마련이다. 작가가 생시에 누구에게 어떤 경우로 해서 특별히 그려주었다느니, 작가가 아끼는 친지에게 결혼선물로 주었다느니 하는 따위가 그것이다. 작품의 이면에 작가가 친필로 누구에게 준다는 간단한 사연까지 적혀있는 것도 있다. 물론 작가가 개인적으로 그러한 선물을 할 수도 있고 그런 기록을 뒷면에 남길 수도 있으나 많은 경우 함정일 수 있다. 과거에는 미술가들이 결혼선물 같은 것을 곧장 자기 작품으로 하는 사례가 없지 않았으나 오늘날에는 거의 없는 일이다. 작품이 돈으로 환산되는 시대가 되면서 작품을 함부로 선물로 하는 사례는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그만큼 작가들이 자기 작품에 대한 관리를 철저히 한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리로 작품을 주고받는 풍속은 대단히 아름다운 일이다. 선물로 받은 작품을 시장에 들고나와 팔려고 하니까 문제가 생기지만 이를 소중히 간직한다면 서로간의 아름다운 정표로 오래 남게 될 것이다.
작품관리라는 말이 나왔으니까 하는 말이지만, 작품관리는 먼저 미술가 자신으로부터 철저하게 이루어져야한다. 이 역시 위작을 방지하는 하나의 수단이다. 먼저, 자기 작품에 대한 목록을 만들어두어야 한다. 그러한 작품목록이 있다면 자기 것이니 아니니 하는 시비가 일어날 수가 없다. 작품이 완성되는 데로 사진을 찍고 제반 기록을 첨부해서 둔다면 이와 유사한 작품이 나올 경우 비교하면 당장 진위가 밝혀질 것이다. 작품을 취급하는 화랑에서도 작품의 이동경로를 정확히 파악해두는 자료정리가 필요하다. 작품이 누군가에게 팔려나가면 행방이 묘연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화상이나 컬렉터의 작품에 대한 인식의 결여에서 오는 것이다. 작품관리는 작가만이 아니라 화상과 컬렉터가 동시에 하여야한다. 작품의 이동경로가 소상히 밝혀질 수 있도록 소장처가 바뀔 때마다 기록으로 따라다녀야 한다. 말하자면 작품의 이력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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