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로 어제 한국에서 돌아온 형에게서 듣는 한국은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희망의 터전이었다.
희망에서 지녀온 소주를 마시고, 희망식의 알코올과 희망의 시간대에서 잠들어버린 형의 곁에서
희망에서 가져와 쓰레기처럼 남은 골뱅이를 바라보며 나는, 그 희망들이 과연 나에겐 어떤 약속들인가를 묻곤하다가, 피곤을 느끼고, 알 수 없는 먼 미래와 죽은 시간으로 항상 멈춰서 있는 한국에 대한 기억들과 명훈형의 사진들과, 내 행복에 대한 갈망들과 사랑이라고 하기에는 이제는 너무나 어려워져버린 나의 사진들과 모든 것들이 가로막힌 듯 느껴졌던 죽은시간의 저편에 머물러있는 절망적인 한국들과 이 최근판의 모호희망과의 화해점과 우리들의 신명들과 그로인한 희망들과 바보같은 밤길에서 택시잡기와 여관에서 쏟아버린 수많은 어느 배위의 정액들과 거짓들과 허무들과 갈등들과 따뜻한 입김불어오는 내 귀의 달콤함들과 노고지리의 노래들과 미선이의 목소리와 언니네이발관의 박자들과 용섭형의 눈물들과 관광버스안의 강원도와 지쳐가는 송의 목소리와 그저 흐르는 한강의 침묵들과 사라져버리는 사람들과 나의 세월에 대한 인정들과 내 미래에 대한, 여전히 두려운 전망들과 부끄러운 분노의 아지랭이들과 여전히 대답같은 고독들사이를 떠돌다. 나는 쾰른의 어느 구석 이제는 거의 차가 다니지 않는 일요일의 밤길을 바라보다가 다시 희망에서 가져온 담배를 피다가 희망적으로 타올랐던 잿더미들을 보다가 쓸쓸하게 남은 희망의 김부스러기를 보다가, 형은 돌아가 이번에 희망에서 모델하우스를 찍은 아내의 곁에 잠들었고 나는 다시 내 잔에 채워져 있는 죽은 희망들과 텅 빈 팩 희망들과 그리고 대답같은 고독에 다시 산다.
여름학기가 시작되었고, 디지털출력기는 돌아갈 것이고, 다시 많은 나쁜 프로그램도 가동될 것이다.
그러나 끊임없이 나는 어느날, 텅 빈 무대를 바라보며 홀로 서있을 것이며 기막힌 징후와 운명같은 가벼움과 포장으로 도용되버린 철학들의 부스러기와 많은 담배연기로 가득찰 시장같은 세미나장에서 팔장을 낀 채 내 작업들의 운명을 생각하며 한숨을 짓고 있을 것이며 약속이란 먼 미래에나 있는 것이라고 나도 담배를 필 것이며 희망의 담배는 며칠있으면 끊어질 것이며 프랑스산 담배를 물고 있을 것이며 유월달에 다가올 항상 우울했으나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없는 생일날의 고독을 준비하기 보다는 가난과의 그 끔찍한 대면에 태연을 가장하지만 모든 내 내면을 흔드는 두려움에 시달리게 될 것이며 다시 나의 환상들은 허망으로 낙인찍힐 것이며 다시 나의 모든 예술들은 중지되거나 파괴될 것이며 내 입은 모든 말을 잃게 될 것이다. 내 표정에서 없어질 것들을 대신하는 것은 사실은 없으며 내 중지될 예술을 변호하는 것 역시 사실은 없다.
모든 것이 적요로운, 비 내렸던 길들, 걸었던 발자국들 모두 잠들었지만 내 우주는 깨어있다.
절망하지도 말고 결단하지도 말자. 약속하지도 말고, 갈등하지도 말자. 사색이 포화되니,
차가움이 생긴다. 고독하지만 휘말리지 않으니 거기엔 관조가 생긴다. 기다리고, 참으로 치열하게 기다렸더니 거기엔 안목이 생긴다. 내 사랑은 박자를 기억해냈고 내 마음은 생명을 되찾았다. 분노로 각졌던 내 사진의 구성은 봄바람으로 허물어졌고 코드를 모르면 코드를 건설해버리자.던 내 계획은 성공적으로 저 아직까지는 나만의 것으로 머물러 있는 사진들에서 발성연습을 하고 있다.
모든 친구들이 저마다의 고향에서 돌아왔고 그들도 한국에서 돌아왔다. 그들이 전하는 모든 묘사들속에서 나는 재미도 느끼고 웃기도 했지만 나에게는 그런 묘사따위가 부러운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편안한 가정과, 편안한 부모가 있으며, 안정된 비행기표가 있었다는 것 뿐이다. 하지만 그들은 거기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이 본 세계와 신기와 놀라움과 변화들을 얘기하지만 나는 그 구경을 지탱했던 누군가에들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나 내게는 너무나 특별한 것인 그러한 젖은 땅들이 그저 부러울 뿐이다. 이런 느낌들의 오늘 밤 나는, 감상적인 것일까. 아니면 바보같은 것일까. 내게 빈 것이 많나 보다. 거기는 역사로 채워지는 것이 아닌가보다. 그런데도 나는 왜 미련을 가질까.
술은 역시 소주가 최고다.
+++++++++++++++++++++++++++++++++++++++++++++++++++++++++++++++++++++++++++++++++++++++++
라인강변은 휴일을 맞아 사람들로 붐볐다.
나는 돈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 준 나쁜 짝사랑의 기억으로 고독을 앓다가,
음유시인이 되버린 오페라의 집에서 나와, 압구정동에서 반지체인점으로 떼돈을 벌고 있는 남자와
결혼을 준비하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케이와 걸었고, 케이는 지나치게 돈에 물들어가고 있는
미래의 자기남자를 비판하다가, 예술에서의 자유로운 정신의 필요성을 말하는 내 모습을
조금 한심하다는 식으로 바라보았고 끝없이 돈이 쏟아져 나오는 은행카드로 모난 것도,
아픔도 없이 만들어가는 이 독일에서의 재미있는 소비생활의 행복들을 내게 보도해 주었다.
그리고 나는 화창하지만 불길한 유월의 빛속에서 보여주는 풍경들을 보고 있었고
제트의 사진들을 기억하고 있었고, 때로는 마음속으로 울고 있었다.
이 대화에 복무하는 두 남녀는 도저히 화해할 수 없을 것 같은 정치적 주제는 모조리 제외시키고,
다양하지만 허무한 주제를 각자의 말솜씨와 재치로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렇지만 케이는 가끔씩 말없이,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가끔씩 말없이,눈빛으로 케이를 바라보았다.
우리들의 눈빛은 어쩌면, 이 거짓말같이 허망한 발라드를 계속 지탱해나가는 것에 대한
피로를 고백하고 있었고 어쩌면 어떤 지독하게 깊은 단잠을 향수하고 있었다.
나는 내게 결핍된, 지하계곡의 희극들이 얼마나 비참한 자기패배로 전락해 버릴 것인가.를 깨닫고 있었다.
나는 흔들리는 내 영혼을 위로하며 무지개를 붙잡기 위해 많은 기만과 유린의 자기전투를 벌인
내 허무한 역사들을 기억하고 있었고 거기를 지난, 멍든 메아리들을 향수하고 있었다,
나는 자기대면과 망각에 대한 애처로운 역사에 승선한 그들 무리속에서, 내 모습을 발견했고
거기서 내면적인 전투로 말을 잃고 있는 그의 아픈 침묵을 동정하고 있었다.
케이는 쾰른으로 돌아가는 기차에 올라타는 내게 손을 흔들었고
나는 뒤셀도르프에 머무르는 케이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 두개의 손, 그 두개의 손바닥,
그리고 그런 흔들림의 의미. 우리는 공간적으로는 작별과 시간적으로는 기약을 의미하는,
역사적인 언어를 주고받고 있었지만, 나는 이미 그 역사의 그림자 아래로 피해, 휴식같은 고독을 미칠듯이 사랑하고 있었다.
기차가 움직이고, 나는 기차가 전하는 그 모든 것이 가버리는 풍경들속에서 잠에 빠져들었다.
거기에서 사랑은, 단순히 그 사람때문에 갑자기 모든 세상이 아름답게 변해버린 마음의 마법을 의미했다.
거기에서는 밤하늘의 별같은 다이아몬드를 찾느라, 삶을 허비하는 사람은 없었고 잔디풀이라도 정성스럽게 엮어, 사랑을 보태면 그것은 지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반지가 되었다.
거기에서는 값비싼 자동차따위는 필요가 없었고, 거기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붙잡고,
시간가는 줄 모르는 이야기속에 빠져있으면 어느덧, 목적지가 그들 앞으로 다가오곤 했고
거기에서는 휘황찬란한 하늘의 노을보다도,
돌멩이로 땅바닥에 그린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이 더 아름다웠다.
거기에서는 돈 때문에 저주받기 시작한 어떤 인간세계의 역사를 기억조차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거기에서는 진실하고, 아름답기만 하면 사랑은 이루어졌고
거기에서는 수줍음이 많아 자기 방 속에 같혀 그 사람을 그리워하기만 하는 바보들에게는
말보다, 눈빛보다도 강한 향기가 흘러나오게 되어 사랑하는 사람을 마취시켜버리는
마법적인 섭리가 허락되었다.
거기에서는 무거운 대리석으로 지은 사치스런 가옥보다 마구간이라도, 거기서 추억을 가지게 되면
남자들은 마구간을 수리해 집으로 개조했고 그 터전에서 여자는 아이를 낳았고
그 아이의 아이들은 그 부모의 부모들에게 그 사랑의 역사를 전해듣게 되었다.
거기서는 성질나쁜 새들이 켜는 비싼 현악기의 소리는 시끄럽지만 감동적이지 못했고,
거기서는 사랑하는 사람이 그리워서 부르는 애절한 사랑노래들이 가장 크고,
모두를 울리는 노래가 되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비둘기 껍데기같은 옷들을 벗어내며 어느날 옷장에 붙여 놓은 러시아 병사들의 다음과 같은 격언을 보았다.
러시아는 나의 고향, 독일은 나의 천국이다.
그리고 나는 거기 아래에 덧붙여놓은 독일은 나의 고향, 그리고 한국은 나의 꿈
이다.라는
나의 패러디를 보며 내 미래에게, 애처롭게 말을 걸었다.
하지만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거의 모든 것에 의욕을 잃어버린 채, 내 생일을 지났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했지만, 이제는 정말, 내 사람이 필요한 것 같다.
그래서 밤에는 내가 정말로 바람같았다.
2003년 6월12일, 쾰른
+++++++++++++++++++++++++++++++++++++++++++++++++++++++++++++++++++++++++++++++++++++++++++=
내가 그를 만나고 나서 기운 빠진 눈으로 하늘을, 노란 눈으로 봤던 까닭은
그가 내 사진을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가 이제는 너무나 멀리, 너무나 멀리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 사진들을 들고, 바깥을 나오면서 내가 하늘을 보았던 까닭은
저 멀리 서 있는 것이 결코 그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저 멀리 서 있었다도 상관없지만,
여기에 서 있는 내가, 감수하고, 익숙해져야 할 기다림동안의 고독이 될 세월이
어쩌면 저 하늘같이 넓고,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의 감정의 골을 풀어보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긴 시간동안
다양한 측면으로 노력해보았지만
허사였다.
그는 내가, 제도에서 전시할 수 없는 사진들을 만들어 내고 있으며
포스트 모던 시대에 부합되지 않는 사진들을 만들어 내고 있으며
제도가 반기는 한 계절의 표정들이, 어떤 얼굴들에 미소를 짓는가를 말하며,
끊임없이 한숨을 쉬었다.
말하는 그의 얼굴, 그의 눈빛을 보며
아, 난 그의 얼굴과 눈빛에서 나보다 100년은 어린 한 어린아이의 그 무엇을 보았다.
나는 안타까웠으며 그가 보여주는 제프 월과 구르스키, 베허부부등의 사진을 보며
그 우상들을 바라보며,
저 어린날부터 나에게 천국을 빼앗아가고, 지옥을 던져놓은 표상,
그 부처들을 떠올렸다.
지금까지 나는 휘청거렸으되, 무너지지 않았다.
가끔 나는 혼란스러웠으되, 지금부터는 분명하게 갈 것이다.
그들을 믿지 않게 된 것은 벌써 오래전부터였지만,
그들의 그림자에서라도 내가 무엇을 보았다는 것이,
부끄럽다.
이제부터의 적들이 더 크고 무섭다.
그저, 나는 카메라를 처음 든 날에, 내 가슴속에 내 카메라를 안고
집까지 엉엉 울면서 그 밤길에, 저 하늘에 다짐했던 불멸에 대한 결코,
켤코 작지 않은 꿈을 조용히, 천천히, 그러나 거대하게 완성할 것이다.
나는 저들에게 상대적으로 살아남을 것이 아니라, 내 손으로, 내 것으로
내 뜻의 우주를 건설해 낼 것이다.
지혜와, 용기와, 인내를 위해 기도한다.
2003년 6월20일, 독일 쾰른에서 psyvenus.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