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희생"은 부끄럽지만. 사실 나도 봤다.
졸다졸다 허리가 아파 깨어서 멍하니 스크린을 보다 잠이 들만하면, 길디긴 테이크 속에서 배우들 주름이나 세어보고 그러다가 다시 벽지 색깔과 커텐이 어울리는 가를 생각했던 기억.
명료하게 남아있는 것은 마지막 즈음에 나온 불난 집의 씬이었다. 남자배우가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며 절대 끊어지지 않는 테이크에, 점점 타오르는 집을 망연히 보던 느낌. 대체 왜 눈에 물기가 잡히는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었단.
모든 것은 변하기 마련이지만, 오롯이 아픈 감촉은 피부 깊숙이 침전된다. 코아,키노,동숭,백두같은 단어에 단 한줌 기억이 남아있는 사람이라면, 근자의 이런 일들이 조금은 시큰할 것이다.
.'
)
+ + +
필름 2.0 2005-01-06
그 많던 예술영화는 어디로 갔는가? 오늘날의 예술영화
예술영화가 사라지고 있다. 입맛에 맞는 오락 영화는 몸집을 불리고 있지만 영화를 통해 사유하려는 관객은 점점 줄어든다. 그들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뭐야 이게?” 극장 안이 웅성거렸다. 화면이 암전되고 크레딧이 채 올라가기도 전 벌떡 일어나는 이가 여럿이었다. 관객들의 목소리는 분노에 가까웠다. 극장 문을 벌컥 여는 표정은 날이 서 있었다. 한쪽의 손에 이끌려 온 것이 분명한 연인들은 탓하는 이와 반성하는 쪽으로 나뉘었고 아무 정보 없이 영화를 보러 온 관객들은 아직 잠에 취해 있었다. 지난 2월, 벨기에에서 날아온 낯선 영화 <아들>이 상영되고 있던 서울 대학로의 예술영화 전용관 하이퍼텍 나다. 평론가들이 영화의 진정성을 보여 주는 걸작이라며 거품을 물었던 작품이었다. 올해 최고의 영화로 남을 것 같다는 기대를 안고 두 번째 감상에 나섰던 처지가 무안해졌다. <아들>의 최종 관객 수는 786명이었다(영화진흥위원회 집계 기준).
이런 황망한 경험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피터 그리너웨이의 <차례로 익사시키기>를 상영하던 6월에도, 거스 반 산트의 <엘리펀트>가 개봉된 9월에도 비슷한 광경을 목격했다. 하이퍼텍 나다에서만도 아니다. 서울의 다른 예술 영화관 뤼미에르극장과 THEATER2.0을 기웃거려도 관객이 차는 모양을 본 적이 없었다. 이른바 ‘예술영화’가 상영되고 있는 극장이란 언제 찾아가든 일관성 있게 한산했다. 지방의 경우엔 사정이 더 참혹하다는 풍문이 들렸다. 영화에 따라 때론 관객 수가 1천 명을 넘기기도 했고 드물게는 서울 관객 1만 명까지 달성하는 나름의 흥행작도 드물게 나왔지만 손익 분기점을 넘기지 못하고 잊혀지기는 마찬가지였다. ‘예술영화 전용관’이라는 간판은 '주홍 글씨'였다. 어떤 극장들은 주말마다 표를 구하기 힘들 만큼 전쟁을 치렀지만 이곳에선 예매가 필요 없었다. 영화를 예술로 보는 태도는 시대에 뒤떨어진 구습 같았다.
화양연화는 가고
좋은 시절이 없었던 건 아니다. 지금은 박제된 역사로 남은 1995년이 시작이었다. 입으로만 또는 질 낮은 카피본 비디오로만 전해지던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희생>이 그 해 개봉했다. <희생>은 시작하자마자 정점에 올랐다. 3만5천 명, 5만 명, 심지어는 10만 명까지, 추산 관객 수는 차이가 있었지만 어느 쪽이든 <희생>의 개봉 성적으론 기네스북에 오를 만한 성적이었다. 영화사에 길이 남은 위대한 걸작이라는 찬사에 <희생>을 보기 위해 극장을 찾았던 기억이 있다. 논현동의 뤼미에르극장과 종로의 코아아트홀은 당시에도 이미 작고 허름한 극장이었지만 <희생>은 매진 사례가 이어졌다. 롱테이크니 미장센이니, 당시만 해도 저널에서 좀처럼 사용되지 않던 용어들이 이 영화를 설명하기 위한 수식어로 떠올랐다. 언론들은 듣도 보도 못한 이 영화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영화 한 편 덕분에 무지한 대중들은 예술의 세례를 받았다. 감격의 순간이었다.

새로운 영화 저널이 생겨난 것도 그 즈음이다. 그 선두는 '키노'였다. 영화사 100주년이 되던 해, ‘지난 100년을 돌아보며 새로운 101년을 열겠다’는 각오부터 야심만만했다. '스크린'이나 '로드쇼' 등의 영화 월간지가 없던 것은 아니었으나 '키노'는 ‘전문적인 영화 비평과 분석’을 표면에 내세웠다는 점에서 확연히 달랐다. 인터넷이 대중화되기 이전, 미개봉작이나 비할리우드권 영화에 대한 정보를 구하기 어렵던 때 '키노'는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감독들과 세계의 영화들을 발굴하고 소개했다. 낯선 감독의 이름과 보기 힘든 작품, 현학적인 영화 용어들이 가뜩이나 빽빽한 페이지를 더 비좁게 채웠지만 난수표를 연상시키는 '키노'의 글에 열광하는 독자들이 있었다. 대학가를 중심으로 '키노'는 '스크린'의 판매 부수를 앞질렀다. 일회성 소비재가 아니라 밑줄 그어가며 한달 내내 읽는 책으로 위상을 굳혔다. '코스모폴리탄'을 바이블로 삼는 2000년대 <섹스 앤 더 시티>의 언니들에겐 믿기지 않는 이야기겠지만, 예술영화에 눈을 뜨기 시작한 당시의 영화 관객들에게 '키노'는 경전이자 단비였다.
여기에 힘입어 타르코프스키의 다른 작품 <노스탤지어>도 극장에서 개봉했다. 뒤이어 영화 관련 전문 서적들이 출간됐다. 키에슬롭스키의 <십계>를 비디오 대여점에서 빌려다 볼 수 있는 시절이었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크쥐시토프 키에슬롭스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테오 앙겔로풀로스, 발음만 해도 혀가 꼬이는 이런 이름을 외우는 건 영화광들의 취미였다. <희생>을 수입했던 백두대간은 이어 <올리브 나무 사이로> <안개 속의 풍경> <율리시스의 시선> <화니와 알렉산더> 등의 작품들을 소개했다. 장 뤽 고다르나 프랑수아 트뤼포 등의 영화도 정식 개봉했다. 백두대간과 동숭아트센터가 손잡고 시작한 대학로의 동숭시네마텍은 최초의 예술영화 전용 상영관으로 문을 열었다. 1995년 11월, 첫 작품은 짐 자무시의 <천국보다 낯선>이었다.
영화가 사라진 극장
<천국보다 낯선>을 개봉했던 동숭시네마텍은 지금 없다. 2000년, 동숭시네마텍을 운영하던 동숭아트센터는 또 다른 예술영화 전용관 ‘하이퍼텍 나다’를 개관했다. 이후로 동숭시네마텍은 일반 개봉관과 크게 다르지 않은 형태로 운영됐다. 개관 이래 변하지 않은 시설은 새로운 것을 요구하는 관객을 끌어들이지 못했다. 좁은 좌석에서 무릎을 끌어안고 버티는 고통은 더 이상 감내하기 힘들었다. 2관으로 운영되던 극장은 재작년 8월 1개관을 외부에 넘기면서 문을 닫았고, 작년 10월엔 남아 있던 1개관마저 공연장으로 바뀌었다. 좋은 시절이 끝난 후 문을 연 하이퍼텍 나다도 올 한 해 보기 드물게 저조한 성적을 올리며 한숨을 내쉬고 있다. 종로를 대표하는 예술영화 극장으로 꼽히던 코아아트홀도 지난 11월 26일 자로 폐관하며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졌다. 수익은 예나 지금이나 대단치 않지만 앞으로도 별다른 전망이 없다는 내부 판단의 결과였다. 왕가위, 레오스 카락스, 빔 벤더스의 영화를 볼 수 있던 극장이다. 그 자리에는 영어 학원이 들어설 예정이다.

발 디딜 틈 없던 영화제들도 올해는 한산하기만 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비디오를 보기 위해 '문화학교서울' 같은 사설 시네마테크에 몰려들던 시네필의 열기에 힘입어 2002년 개관한 서울아트시네마. 버스터 키튼, 존 포드, 에른스트 루비치 같은 고전 거장의 회고전은 주말에도 한산했다. 크고 작은 영화제도 여럿 열렸지만 다들 매표 수입만으로는 적자를 면치 못했다. 부산, 부천, 광주국제영화제 등 큰 행사를 피해 봄과 가을, 한정된 기간에 군소 영화제들이 몰리면서 제 살 깎아 먹기 경쟁이라는 자성도 있었다. 영화제를 찾을 만한 열정적 관객의 수는 제자리에 머물러 있고 그마저 분산되고 있다. 서울아트시네마 김성욱 프로그래머는 "프랑스와 일본영화들에는 관객이 몰리는 편이지만, 나머지 기획전 대부분은 관객 점유율이 50%를 넘기기 힘들다"고 말한다. 하이퍼텍 나다도 올해 '오즈 야스지로 회고전'을 제외하고는 영화제 성적이 좋지 않다. 9월 열린 '타비아니 형제 특별전'의 경우엔 안 그래도 힘든 극장 사정에 치명타를 날렸다.
예술영화 극장이 사양길이라면 2차 시장이라도 있지 않을까. 2000년대 이후 예술영화에 대한 열기가 한풀 꺾이면서 극장과 수입 업체들은 고전했지만, 그나마 비디오를 통해 작은 영화들을 소화하던 관객층은 남아 있었다. 작년만해도 백두대간의 이광모 대표는 “비디오 시장에서 거두는 수입이 극장 수입보다 더 컸기 때문에 그나마 버틸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DVD의 시대가 오자 비디오 시장은 금세 몰락했다. 그 자리를 차지할 원대한 대안처럼 여겨졌던 DVD 업계도 최근 불황을 겪고 있다. 팔리지 않는 DVD들은 길거리에서 1만 원에도 못 미치는 헐값에 팔리고 있다. 상대적으로 제작비가 많이 드는 DVD는 이런 상황에서 계속 제작되기 힘들다. 게다가 예술영화 DVD는 덤핑으로도 팔리지 않는다. 할리우드 스튜디오에서 판권을 갖고 있는 미국의 고전영화들엔 드문드문 출시 기회가 생기기도 하지만, 유럽과 아시아 지역의 영화엔 길이 없다. 없는 살림에 구입을 조금 미루다 보면 타이틀을 찾는 것부터 산 넘어 산이다. 바쁜 살림에 시간이 지나다 보면 쉽게 포기하게 된다. 이제 예술영화 애호가들이 기댈 수 있는 건 해외 주문 정도다. 크라이테리언 컬렉션처럼 소수를 위해 발매되는 타이틀은 하나에 30달러 이상이 기본. 예술영화를 찾아다니는 건 여유 넘치는 이들의 고급 취향처럼 돼버렸다.
예술영화가 뭐길래
이쯤 되면 대체 예술영화가 뭐길래?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작은 영화, 예술영화를 살려야 한다는 구호는 당위일 뿐 예술영화의 존재 이유가 될 순 없다. 보아야 할 영화가 날마다 넘쳐나는 판국에 굳이 찾아 보기도 어려운 예술영화에 매달려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 이 질문엔 두 가지 함축이 있다. 일반 영화와 달리 ‘예술영화’라는 범주로 구분되는 영화의 정의는 대체 무언가, 그리고 그게 무엇이든 왜 예술영화를 찾고 지켜야 하는가.

예술영화를 정의하는 건 인생을 정의하는 것만큼이나 쉽지 않다. 쉽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불가능하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영화란 무엇인가, 게다가 예술영화란 무엇인가. 예술사와 영화사를 통틀어 수많은 연구자와 책들이 단정하지 못한 개념을 새삼 파고들 수는 없다. 다만 통념상 사용되는, 상업 영화의 대립항 정도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가 태생적으로 관객과의 소통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독야청청 예술가의 위대한 초상과는 다를 테지만, 높은 수익보다는 소수와의 소통을, 오락적 즐거움보다는 사색적 의지를 중심에 둔다는 점에서 예술영화는 '상품'보다는 '작품'으로 이해된다. 제작과 배급 방식의 차이에 좀 더 방점을 찍는 독립영화와는 또 다른 범주지만, 지금의 현실에서는 사실 그 경계도 뚜렷하지 않다. 관객에게 호응을 얻지 못했다고 모두가 예술영화라 불리는 것도 아니다. 올해 11월까지 185편에 이르는 국내 개봉작 중 주목을 끌지 못하고 1만 명 미만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는 79편. 그중엔 <신설국>처럼 배우의 노출로 선정적인 관심을 끌어보려다 외면당한 영화도 있고, <피구의 제왕>처럼 할리우드 배우가 주연한 코미디지만 국내 정서에 맞지 않아 흥행에 참패한 영화도 있으며, <스타쉽 트루퍼스 2>처럼 1편과는 전혀 상관없는 제목으로 반짝 개봉한 전형적인 비디오 영화도 있다.
그러나 정의를 내리는 위험을 피해 가더라도 예술영화가 뭐길래에 답하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다. 예술영화를 반드시 지켜져야 할 무엇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뭔가. 그것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만큼 두 시간의 쾌락을 충실히 제공해 주지 않는다. 오히려 보기 불편하고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하는 피곤함을 주기도 한다. 수십 개 스크린에서 동시 개봉하는 여느 개봉작처럼 힘들이지 않아도 손쉽게 찾을 수 있는 영화도 아니다. 지난해 개봉한 이른바 예술영화들은 대개 단관 또는 2, 3개 극장에서 개봉했다. 3주 이상 장기 상영된 경우가 없진 않지만, 대개는 1주 이상을 넘기지 않고 간판을 내렸다. 일주일에 개봉하는 영화만도 적게는 4, 5편에서 많게는 10편씩 쏟아지는 상황에서 이런 작품들은 남달리 적극적인 성격과 추진력을 지닌 관객들이 아니고서는 만나기 힘들다.
예술영화가 사라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예술영화들이 왜 사라졌는지, 예술영화 관객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지를 묻는 건 언뜻 무의미한 일처럼 느껴진다. '키노'가 폐간할 때 많은 이들이 비탄에 잠겼고 영화 지식을 과시하며 즐겼던 옛 시절을 씁쓸하게 회고했다. 코아아트홀이 문을 닫을 때도 그만큼의 관객들이 여기저기서 그곳의 영화와 낡은 시설을 추억하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자리에 앉아 추억에 잠기는 것만으로는 어떤 변화도 생기지 않는다. '키노'를 읽지 않고 예술 영화관을 더 이상 찾지 않은 것도 그들이었다.
누굴 탓하자는 게 아니다. 시절은 달라졌다. 영화 보기는 이제 행사가 아니라 일상이 됐다. 굳이 힘들여 먼 거리까지 원정을 가지 않아도 지척에 둔 멀티플렉스에서 좋은 시설로 영화를 볼 수 있다. 영화가 중요한 만큼 극장도 중요해졌다. 좋은 극장을 중시하는 게 좋은 영화를 찾는 것보다 쓸모 없는 일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외형보다 내용이 중요하다는 이유로 낡은 극장에서 지루한 영화를 보라고 누가 강권할 것인가. 더구나 영화 열풍이 반짝 들끓었던 1990년대처럼 영화를 통해 지적 허영심을 누릴 만한 기회도 이젠 없다. 정보는 사방에 넘쳐나고 누구든 영화에 대해 전문가 행세를 할 수 있다. 영화 이상의 고급한 문화 컨텐츠가 없는 것도 아니다. 지적 만족감은 다른 데서도 찾을 수 있는 반면 영화가 제공하는 즐거움은 점점 더 크고 화려한 것으로 바뀌고 있다. 굳이 극장에서 예술을 찾을 이유는 희미해졌다.
이럴 때 흔히 꼽히는 ‘불황’도 좋은 핑곗거리다. IMF 이후로 단 한번도 나아진 적이 없다는 유례없는 경기침체 속에서 누군들 시간과 노력을 들여 골치 아픈 영화를 찾겠냐는 건 편리한 변명이기도 하다. 세상이 어지러우니 극장에서만이라도 편안하고 싶다. 카드 할인이나 조조 할인 혜택도 좀처럼 제공하지 않는 극장에서 제 값을 내는 것도 점차 억울해진다.
다른 경험을 위하여
예술영화가 지구상에서 사라진다 하여 인류가 멸종하는 건 아니다. 먹고살기도 힘든 세상에 영화가, 그것도 TV 드라마만큼의 즐거움도 제공하지 않는 예술영화가 다 무어냐고 묻는다면 변명할 말을 찾기 힘들다. 그런데도 굳이 예술영화가 필요하며 그것을 찾고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있다. 진부한 이야기지만, 일단 다양성의 측면에서 그렇다. 아주 단순히 얘기하면 기름 지고 달콤한 음식만 먹다 보면 오래 삭힌 향이나 담백한 맛이 그리워지게 된다. 건강에 좋고 나쁘고를 떠나 하나의 입맛만을 고집하는 건 애초부터 발견의 기쁨을 차단하는 것이다. 이건 소수의 시네필에게만 한정된 얘기가 아니다. 최소한 영화라는 매체가 다른 형식의 예술이나 오락과는 다른 독자적 재미를 갖고 있다고 믿는 영화 관객들에게, 예술영화는 드물게라도 상업 논리에서 떨어져 나와 자극을 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이건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차이의 문제다.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1천만 관객 시대라는 지금도, 예술영화가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관객 수는 2만, 3만 명 정도다.

영화는 다른 세계를 엿보기에도 가장 편리한 도구다. 켄 로치의 영화를 통해 우리는 영국 하층 노동자들의 삶을 배운다. 에밀 쿠스투리차를 통해 복잡다단한 세르비아-유고 지역의 혼란과 그 속에서 꽃피는 마술적 세계를 맛본다. 허우 샤오시엔을 통해 미처 몰랐던 대만의 현대사를 발견하고, 젊은 동시대의 영화들을 통해 다른 인종, 계층, 성 정체성, 언어를 지닌 사람들이 고민하고 있는 문제에 다가선다. 고작 2시간 남짓, 몇천 원의 돈으로 한 예술가가 바라본 세계의 단면을 시청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기회는 극장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 영화가 예술의 한 장르이기를 단념하지 않는 한, 예술이 사라져서는 안 되는 것과 같은 이유로 예술영화는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다.
이렇듯 거창한 이념을 개인의 몫으로 떠넘길 수는 없을 것이다. 냉혹한 자본의 논리를 따르는 비대해진 영화 산업과 맞설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정책적인 지원이다. 지난해 영화진흥위원회는 예술영화 전용관 '아트플러스' 사업을 시작했다. 정해진 기간 동안 예술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을 선정해 보조금을 지원해주는 정책이다. 극장의 규모와 환경에 따라 액수의 차이는 있지만 비빌 언덕을 마련해준 작은 출발인 셈이다. 지난 10월 1주년을 맞아 열린 '아트플러스 사업 보고회'에는 프랑스예술영화협회 사무국장인 콜레트 페리네가 참석해 프랑스의 사례를 소개하기도 했다. 다양하고 풍부한 영화 문화를 자랑하는 나라의 사례에는 여러모로 참조할 만한 거리가 있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철수♡영희>의 황규덕 감독은 "예술영화, 독립영화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배급과 상영뿐 아니라 제작 단계에서도 정책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자발적 개인의 노력으로 다양성을 얻을 수 있다면 최선이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상이다. 이상이 하늘에서 떨어지기를 기대하는 것보다는 현실적인 대안을 찾는 것이 빠르다.
희망이 없는 건 아니다. 전체적으로 예술 영화관들은 올 한 해 재정적 어려움을 겪었지만, 오래전부터 예술 영화관의 브랜드 이미지를 굳혀온 광화문 씨네큐브극장은 작년 말 개봉한 <아타나주아>가 뜻밖의 흥행을 거두며 장기 상영된 것을 비롯,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 <팻걸> 등으로 꾸준한 관객을 모으는 작은 성과를 거뒀다. 오히려 흥행 대작이나 코미디영화를 상영할 경우 관객이 감소하는 기현상을 보이기도 했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등의 작은 영화는 관객들의 자발적인 호응으로 두 달 가까운 기간 동안 작은 규모의 상영을 이어갔다. 비교적 직접적으로 감성에 호소하는 영화들이기는 했으나, 관객들과 접점을 찾을 수 있다면 호응을 얻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줬다. 시작은 여기서부다. 낯선 경험을 불편해 하지 않는 법, 거기에서 삶과 상식의 교훈을 얻는 법, 궁극적으로 재미를 얻는 법은 그로부터 차근차근 쌓아갈 수 있다.
김영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