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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2008-11-14 19:02:44, Hit : 923)
전시 11.14



징후와 궤적-Syndromes and Traces

최해리展 / CHOIHAERI / 崔解梨 / painting.installation

2008_1110 ▶ 2008_1127 / 일요일, 공휴일 휴관



최해리_송환_2겹의 인조견에 채색, 조명설치_64×139×2cm_2008




초대일시_2008_1110_월요일_06:00pm

이 전시는 2008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예진흥기금 신진예술가 뉴스타트 프로그램에 선정되었습니다.

관람시간 / 09:00am~06:30pm / 일요일, 공휴일 휴관





송은갤러리_SONGEUN GALLERY
서울 강남구 대치동 947-7번지 삼탄빌딩 1층
Tel. +82.2.527.6282
www.songeun.or.kr






세상의 이면을 비추는 다중의 틀 ● 스스로 ‘겹 그림’이라 설명하는 최해리의 그림에는 이승과 저승, 삶과 죽음, 자연과 인공, 생명과 박제, 무덤의 위와 아래, 바다 위와 해저, 우주의 이쪽과 저쪽이 동시에 암시되거나, 연이은 화면으로 연결되어 있다. 작가는 각각의 화면을 일정한 두께가 있는 사각의 틀 위에 반투명의 인조견을 두 세 겹 겹쳐서 구성하는데, 이러한 다중의 화면 위에는 각각 여기저기서 촬영한 이미지들을 콜라주하여 전체 그림을 재조합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 최해리는 사진에서 오려낸 동식물이나, 자연풍경, 일상의 도구들을 전혀 새로운 배경 위에 재조합하는데, 이러한 방식은 사진작업은 물론 인조견 겹 그림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작가는 전통 동양화 채색법으로 이미지를 재현하는 인조견 그림도 컴퓨터상에서 디지털 이미지를 여러 겹 중첩하는 방식으로 전체적인 밑그림을 그려본다고 밝히고 있다. 화면에는 사람을 제외한 동식물과 자연, 일상용품들이나 생활의 단면들이 넓은 공간 위에 드문드문 나열된다. 다른 점이 있다면 사진작업에서는 이러한 모티브들이 전혀 맥락이 닿지 않는 낯선 공간 위에 재배열되고, 인조견 그림에서는 배경이 완전히 삭제된 빈 공간 위에 널찍널찍 거리를 두고 배열된다는 점이다. 상대적으로 작은 비율로 드러나는 각각의 모티브들은 화면 위의 공간을 무한대의 드넓은 시공간으로 느끼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 이번 개인전에서 최해리는 우리의 육안으로 볼 수는 없지만 세상의 이면에 존재하는 또 다른 세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전시장은 달의 안내를 받아 대립적인 쌍을 이루는 몇 점의 겹 그림을 거쳐 다시 달의 형상으로 마무리된다. 항상 한쪽 면만 볼 수 있는 달의 이면으로 시작하는 최해리의 전시는 위상을 달리하여 존재하는 또 다른 세계의 존재를 입증하는 징후이며, 일정한 주기로 공전하여 다시 원래의 위치로 돌아오는 반복적인 순환의 궤적을 일깨우는 방식으로 구성되었다.




최해리_추방_2겹의 인조견에 채색, 조명설치_64×139×2cm_2008



최해리_초혼(招魂)하는 영토_3겹의 인조견에 채색, 조명설치_각 105×175×2.5cm_2008


두 점 연작 「초혼하는 영토」에서는 우리가 사는 우주와 평행으로 존재하는 또 다른 외계의 시공간을 암시하고 있으며 「추방」과 「송환」에서는 삶의 경계를 넘어 죽음의 세계로 이행하는 공간을 그리고 있다. 두 폭 병풍 「통로」에는 수면 위의 일식과 돌풍의 장면이 그 근원인 해저 폭풍과 나란히 대비를 이룬다. 달에서 시작해서 달로 끝나는 영상작업은 전시장 자체의 순환적인 구조를 닮았는데, 그림 곳곳에 등장하는 단편적인 모티브들이 연속적인 동영상으로 전개된다. ● 최해리의 그림이 차원을 달리하는 이미지들의 중첩으로 우리를 매혹하는 연유는 드문드문 단편적인 이미지들을 늘어놓는 방식과 전혀 맥락이 닿지 않는 초현실적인 이미지들의 병치, 동서양화의 재료는 물론 인조견과 조명을 이용한 설치기법의 혼용, 전통 동양화의 채색법과 사진 콜라주의 재현적인 기법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구사하는 혼성적인 태도에서 찾을 수 있다. ● 우선, 최해리의 그림에는 주변 정황이나 관람자의 시선에 아랑곳 하지 않는 동물들의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느긋하고 한가로운 몸짓으로 무한의 공간 위를 어슬렁거리는 동물들은 주로 옆모습이나 뒷모습으로 나타나 우리의 시선을 그림의 안쪽, 중성적인 배경의 이면으로 향하게 한다. 주변적인 정황이 삭제된 배경에 빙벽과 화산, 얼어붙은 물줄기와 열대 야자수가 나란히 존재하는 황당한 상황을 목격하게 된다. 원색의 열대 조류 옆으로 해파리와 비단잉어가 유유자적하게 헤엄쳐간다. ● 배경이 삭제된 최해리의 그림은 이곳이 현실인지 가상인지, 이승인지 저승인지, 현시점과 공존하는 또 다른 우주의 시공간인지 그 경계를 알 수 없다.




최해리_초혼(招魂)하는 영토_3겹의 인조견에 채색, 조명설치_각 105×175×2.5cm_2008_부분


층위를 달리하는 반투명의 인조견 위에 그려진 각각의 이미지들은 사진처럼 선명하고 명료한 외곽선을 자랑하지만 그 선명도는 인조견의 층위에 따라 달라지면서, 이들이 실제로 어떤 위상에 존재하는지 더욱 모호하게 만든다. 우리를 유혹하듯 그림의 안쪽 공간, 그림 뒤편의 세계로 인도하는 의뭉스런 동물들의 자태는 그림 뒤편에서 뿜어져 나오는 조명에 반사되어 부유하는 듯한 가상의 공간감이 배가된다. ● 이들은 도대체 어디에 있으며, 어디를 향하고 있는 것인가? 다중의 화폭으로 펼쳐진 이 세계는 어떤 시공간을 보여주는가? 그림 속에 유독 인간의 형상이 없는 것은 그것을 바라보는 관람자의 위치를 더욱 부각시킨다. 그렇다면 이 가상의 공간을 보고 있는 우리는 어떤 시공간에 발을 딛고 있는가? 우리가 존재하는 이 공간은 최해리가 공들여 구축한 다중의 시공간의 또 다른 버전은 아닌가? 그의 그림을 보면서 우리의 상념은 저 먼 우주 공간, 또는 이 세상 너머 저편의 세계로 공간 이동하듯 떠돌게 된다. ● 최해리가 이런 시공간의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데, 양자역학에 입각한 다중우주론과 삶과 죽음, 이승과 저승의 세계를 연계하는 장례의식에서 착안하고 있는 점은 그리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초혼하는 영토」에서는 빅뱅의 행성 충돌을 연상시키는 모티브가 두 화면을 연결하는 가운데 좌측에는 얼어붙은 화산이 우측에는 폭발하는 화산이 대립적인 쌍을 이룬다. 사람이 떠나버린 빈 침대와 수면을 바라보는 얼룩소는 각각 거울 또는 수면 위에 반사된 또 다른 양태로 다른 차원의 우주를 환기시킨다. 폭발하는 화산 옆으로 날아가는 옷은 죽은 사람의 영혼을 다시 불러들이는 초혼의 의식을 상기시킨다. 이에 비해 「추방」과 「송환」은 일종의 실내 공간을 연상시키는데, 역시 사람이 소거된 빈 공간 위에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또 다른 환생을 기원하는 물건들이 점점이 흩어져 있다.




최해리_통로_장지에 채색, 먹_74×230cm_2008


「추방」의 하단부에는 성상화의 중앙에 다윈의 얼굴이 그려져 있고, 주변에는 가톨릭교회의 성물들이 펼쳐져 있다. 뭉게뭉게 안쪽으로 스며드는 연기는 쓰러진 수직 거울로 연결되고 거울 표면에는 쏟아질 듯 흩날리는 대나무 가지를 볼 수 있다. 「송환」 곳곳에는 장례의식에 관련된 물품들이 나열되어 있다. 관을 연상시키는 나무 상자 위로 삽으로 뜬 흙을 볼 수 있고, 그 주변으로 망자를 위한 노잣돈인 동전들, 저승에서도 삶을 계속하기 위한 식기들과 제기들, 쌀과 소금, 편안한 저승길을 염원하는 끈 없는 신발, 시신을 감싸기 위한 염포, 초혼의 저고리 등을 볼 수 있다. 죽음의 짙은 그림자를 암시하는 이와 같은 장례도구들이 궁극적인 종결점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일 수 있음이 그림 안쪽으로 폭포수 같은 물줄기를 쏟아놓는 창틀이나 검은 연기를 내뿜는 붉은 행성의 존재에서 암시되어 있다. 삶에서 추방된 존재는 곧 죽음으로 송환되는데, 이 모든 것이 궁극적인 어둠으로 응축되는 죽음의 순간에 새로운 창조의 탄생으로 이어질 것을 기원하고 있다. ● 최해리의 그림에서 다중의 공간 구성을 암시하는 방식은 두 세 겹의 인조견으로 이미지를 중첩시키는 것은 물론 그림의 전면에서 틀 위로 쓸려 내려오는 오로라의 흐름과 두 화면을 연결하는 빅뱅의 폭발, 그림의 전면에서 밀려들어오는 연기 또는 구름의 존재로 배가된다. 그리고 그림의 이면에서 투사되는 조명의 효과로 그림 앞뒤로 겹겹이 이어지는 공간에 대한 인식은 더욱 증폭된다.




최해리_두 개의 달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각 지름 50.5cm_2008



최해리_달, 겨울, 여름 다시 겨울_단채널 영상_00:07:11_2008


최해리는 이질적인 공간과 시간, 이미지의 병합에 능통하다. 동물원에서 찍은 사진이미지들을 바탕으로 가상의 외계 공간을 창출하기도 하고, 을씨년스런 장례의 도구들로 시간의 전후를 모호케 하는 삶의 순간을 포착하기도 한다. 사진처럼 선명한 이미지들은 실제처럼 살아 있으되 얼어붙은 주검처럼 보이기도 한다. 진공처럼 보이는 시공간에는 불현듯 생명의 기운이 침투하기도 하고 가공할만한 대폭발로 새로운 우주의 탄생을 예견하기도 한다. ● 넓은 공간에 부유하는 선명한 이미지들, 반투명한 막 뒤에서 유령처럼 흐릿해진 이미지들이 서로 앞서거나 뒤서거니 우리를 이 공간의 이면, 화면 저편의 세상으로 유인한다. 투명한 공간 위에 단편들로 병치되는 이러한 이미지들은 블랙홀의 웜홀을 통과하여 다른 우주로 시간여행을 감행하는 사람의 눈에 포착되는 이미지를 닮은 것은 아닐까? 혹은 육신을 떠나 초혼의 부름을 뒤로 하고 저 세상으로 이행하는 망자의 눈에 스쳐가는 이미지는 아닐까? 삶의 경계에서 또는 죽음의 문턱에서 주마등처럼 펼쳐지는 생의 순간들이 사진으로 찍듯 선명하게 가위로 오려내듯 명확하게 포착되고 기억된다. 최해리의 그림에서 불가해하고 비현실적인 이미지들의 낯선 조합은 드넓은 공간 위에 초시간적인 상념처럼 존재하지만 그를 통해 삶과 죽음, 창조와 종말의 대서사를 시적인 도약과 초월적인 환시로 체험하기에는 충분한 시각적 통로를 제공하고 있다. ■ 권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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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현주 展

'존재에 대한 齊物論적 물음'

 

공존  / 도침장지에 수간채색/ 66*53 / 2008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작가상세정보를 보실 수 있습니다)

 

 

2008년 11월 19일 ~ 12월 6일

빛갤러리 [약도보기] 

서울시 종로구 소격동 76 인곡빌딩 B1 Tel.02-720-2250

www.vitgallery.com

 

(일요일 휴관)

 

 

 

근대보기/ 도침장지에 수간채색/ 73*61/ 2008

 

남현주- 존재에 대한 齊物論적 물음

장정란(미술사. 문학박사)

  남현주의 그림은 과거에 대한 분석과 현재에 대한 실존적 물음, 미래에 대한 의문부호로 이루어진 종합적 질문들에 대한 회화적 탐색이다. 남현주의 화면에 등장하는 지나간 민화의 시대나 책거리 그림은, 우리의 역사 속에서 신분과 관계없이 희망했던, 풍성한 현실을 열망했던 흔적들이며, 서양名畵속의 풍경과 인물들은 근현대에 우리가 만났던 새로움이고, 화려하게 날고 있는 나비들은 미래에 대한 조망적 시선이다.

 

 

여인  / 도침장지에 수간채색/ 66*53 / 2008

 

작가의 사유는 이런 다양한 세계를 넘나들지만 그 사이를 연결하는 매개체로 의자를 설정하고 있는데 이 부분이 남현주 그림의 메인주제로 주목할 점으로 여겨진다. 모든 그림에 의자가 등장하는데 하나, 두 개, 혹은 세 개나 여러 개로 다양한 형태와 색채를 가지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의자를 중심으로 화면에 펼쳐진 이름다운 꽃들이나 신비한 동양적 병풍들, 서양의 명화액자등은 그 섬세한 필치나 화려함에도 불구하고 당당히 서있는 의자의 주변에서 보조적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존  / 도침장지에 수간채색/ 66*53 / 2008

 

그렇다면 남현주 그림에서 가장 중요한 사항은 의자들일 것이며 이것은 모든 시대에 존재했던 것들에 대한 물음표의 표상임을 알 수 있다.

 남현주 그림에서 의자는 항상 비어있다. 즉 “비움”에 대한 철학적 물음이 남현주가 추구하는 회화적 본질이다.

빈 의자는 언제가 누가 앉았던 것이며 누구도 앉을 수 있는 것이며 누군가가 앉을 공간이다. 의자 후경이나 주변에 배치되는 민화적 소재나 크고 탐스런 꽃들, 명화 속 남녀들은 그 의자 속의 시대적 상징물들이다. 그러나 언제나 비어있다는 것은 누구든, 어느 시대의 인물들이나, 언제든지 그 의자에 앉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존  / 도침장지에 수간채색/ 66*53 / 2008

 

그러므로 남현주 그림에서 과거나 미래는 곧 현재적 시간이며 화려하나 정적인 꽃들이나  움직이는 동물들은 모두 동등하게 취급된다.

이것은 남현주가 “ 일체의 사물은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는 莊子의 齊物論적 관점에 동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핑크빛 꿈을 꾸다/ 도침장지에 수간채색/ 116*91/ 2008

 

道는 구별이 없는데 인간이 구별한 것이며 사물의 이름은 그렇게 생겨났고 그러므로 인간의 습관과 편견으로 세상의 구별들이 정해지게 되었다.

남현주의 그림에서 의자는 비어있음으로 그 시대마다 변하였던 다양한 가치들에 대하여 본질적 물음을 던지고자 한다.

과거에 의자를 점령했던 유일한 사람, 같이 나란히 앉았던 그들, 여럿이 모여있었던 군중들에게 빈 의자를 제시함으로서 여전히 그 사실이 유효한 근거가 있는지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세상속으로 / 도침장지에 수간채색/ 116* 91/ 2008

 

그러나 이런 철학적 질문을 강렬하고 화려한 색채로 구사함으로서 감상자들에게 날카로운 설득이 아닌 몽롱한 신비함으로 유도하면서 대화를 거는 것이 남현주 그림의 회화적 강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남현주의 색채는 신비하고 아름다운데 동양화의 전통적 채색법인 수간채색을 치열하게 연구해서 나온 결과물이다. 수간채색의 기본성질인 수분과 부드러움이, 화면 가득 강렬한 색채를 풀어내는대도 그 적정함의 투명도를 유지시키도록 공헌하고 있다. 그러므로 서양화의 채색재료와는 차별되는 독특한 감성의 남현주식 채색을 성취하고 있다.

 

 

낙원을 꿈꾸며Ⅱ/ 도침장지에 수간채색/ 162*81/ 2008

 

또 하나 주목되는 장치가 門이라는 오브제의 사용인데, 소품들의 작품에서 주로 사용되는 것으로 열고 닫는 방식으로 표구하여, 門을 열어야 그림을 볼 수 있는 형식으로 유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남현주 그림에서 등장했던 모든 시대의 이야기들이 門 을 열어야 볼 수 있다는 상징적 표현이다.

즉 앞서 서술한 모든 사물에 대한 동등한 가치는 門을 열 수 있는 사람, 門 을 열고자 하는 사람들만이 볼 수 있는 세계이다. 남현주의 그림은 門을 열어야 볼 수 있다. 이것은 한편 새로운 가치들을 향해서 가고자 하는 작가의 열망을 읽을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낙원을 꿈꾸며Ⅲ/도침장지에 수간채색/ 162*81/ 2008

 

  즉 남현주의 그림세계는 東西와 고전과 정보화가 혼재한 이 시대에, 모든 것은 가치와 의미를 구별할 수 없다는 齊物論적 물음의 현재형이다.

화면상공을 가득히 떠다니는 나비들은 莊子의 胡蝶之夢에 대한 현재적 표상이며, 그 나비들은 또한 우리들의 고정된 현실이자, 미래의 자유로운 날개들이다.

남현주 그림에서 胡蝶之夢의 나비는 새로운 가치들에 대한 통로로 전환되며 그러므로 이 시대의 또다른 눈부신 현상으로 태어나고 있다.

남현주의 이런 사유태도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공간이 공존하는 다양한 회화적 境界를 형성하면서 감상자들에게 독특한 美的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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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SH SAVES...

한석현展 / HANSEOKHYUN / 韓碩鉉 / installation

2008_1030 ▶ 2008_1115 / 월요일 휴관



한석현_FRESH SAVES..._네온, 포맥스, 나무_300×65×65cm_2008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이미지 속닥속닥 Vol.071107h | 한석현展 으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8_1030_목요일_06:00pm

대안공간 아트포럼 리 기획 신진작가 초대전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대안공간 아트포럼 리
ALTERNATIVE SPACE ARTFORUM RHEE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상동 567-9번지
Tel. +82.32.666.5858
www.artforum.co.kr






숭고를 위한, 숭고에 의한, 숭고놀이. ● 상추의 신선함, 싱싱함, fresh. 새로운 것에 대한 하이에나들의 코들이 전 세계에, 남한미술세계에 난무하는 시점에서 그것에 대한 놀이를 할 수 있는 작가가 존재하여야 하는 것이 합법칙적인 과정이리라. 1회 개인전시를 준비하는 작가에게 “상추가 뭐예용……?” “하도 새로운 것을 달라고 해서요” 라는 말을 들으며 설치중인 작업이 한 번에 너무 쉽게 읽힌다는 점이 그 쉬움의 깊이와 읽히는 속도만큼 뒤통수를 가격해 오는 무게감으로 다가왔다. 1년이 흐른 지금까지 그 작업의 효용성이 다하지 않은 것은 다행일까? ●현시대에서 최고의 숭고미란 공히 창의성(creativity)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2000년 밀레니엄이 시작되면서 창발된 영국과 미국의 크리에이티브 국가정책과 발맞춰 진행된 대한민국의 창의한국 정책시행은 뭔가 미심적은 부분이 있다고 느껴진다. 한국의 사회구성체에 걸맞지 않은, 불완전한 단계에 새로운 것을 이식시켜 머리만 큰 비대칭적인 외관을 꾸리려 노력(?) 하는 모습, 이것은 근대 사회에서 탈출을 꾀하고자 국가정책으로 채택된 후 낯선 형태로 온, 국가의 필요에 의한, 경제발전의 도구적 측면으로 텍스트화 된 신상이라 할 수 있다. ● 기실 창의력은 어느 시대나 시스템에서든 필요한 만능 품성이라 하지만 ‘논의만 되는 창조’라는 텍스트로서만 적용되는 근대적 형태. 이것이 남한사회에서 보여 지는 표상이라 느끼는 것은 나만은 아닐 것이라 여겨진다. 일진을 이루는 서구사회를 차치하고 대한민국에서는 경제발전의 속도만큼 비어있었던 인문학에 대한 갈증해소와 근대성(아직 본인은 남한사회를 근대국가가 명하지만)에 관한 성찰의 과정을 반드시, 그리고 빠르게 진행하여야 할 것이다. 작가 한석현이 가지고 있는 유머러스는 작업이 지닌 패러독스에 의해 유발된다.




한석현_Growing FRESH_폴리프로필렌에 아크릴채색, 혼합재료_320×60×70cm_2008


「FRESH SAVES...」는 근대로 대체되는 도시계획 속에 내몰린 상가지역에 첨탑들의 향연을 네온 상추로 목적화하고 그것을 트리니티(trinity-삼위일체의 삼상구조)의 컴퍼지션으로 근대를 대변하는 상징적 체계로서 우상화시켜 그 목적의 허무성을, 그 자체(신상)를 물성화 시킨다.




한석현_와상-臥像_폴리프로필렌에 아크릴채색, 방석_25×60×50cm_2008


「와상-臥像-ie-down statue」은 서양적 구조의 트리니티와 같은 맥락으로 동양적 구조그것이다. 누구나 어디서인가 당연히 보았던 신상에 대한 숭배, 근대의 전형을 통시적 관찰을 통한 해석이 가능한 「FRESH SAVES...」와 동일한 내용이다.




한석현_Golden FRESH_폴리프로필렌에 아크릴채색_60×45×17cm_2008


「Golden FRESH」의 디스플레이 높이는 「FRESH SAVES...」와 동일 선상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경기가 좋아지면 작품의 높이가 낮아지고 경기가 안 좋으면 작품의 높이가 올라간다는 속설이 생각은 나긴하지만? 그 옛날 공공기관에 고 박정희대통령의 사진이 놓여 있었던 던 것과 같은 의미라 할까? 상추의 골드라는 상징과 전시공간에 디스플레이 일반적 격식을 역 이용한 배치로 인해 유발된 내용의 빈틈없는 채움은 근대이성의 계획도를 보는듯하다.




한석현_극한신선경험기_폴리프로필렌에 아크릴채색, 나무_220×30×40cm_2008


「극한신선경험기-Extreme Experimental FRESH」에서 작가는 인터렉티브를 강요하고 있다. 내용적 측면에서 향유자로 하여금 근대적 상징성을 직접 위치지우며 실제 이야기를 공유하고 동시에 상징성 파괴를 유도하는, 전시 전체를 아우르는 귀결작업이라 읽힌다. ● 이번 전시에서 보여지는 한석현의 작업은 충분히 내제화되고 공용한 근대미와 이 시점 이후에 보여 질 비주얼이 함께 공존한다. 여타 작가들이 갖고 있는 미술사로 포착되지 않고 미술 시장의 원리로 읽히는 과도한 포지션닝과는 달리 현시점에서 반드시 존재해야하는, 즉자적 반응하는 작업이기에 그 읽는 재미가 더 하다. ■ 비오 R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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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지카이展 / LIJIKAI / painting.sculpture

2008_1118 ▶ 2009_0124 / 월요일 휴관



리지카이_A world that exists because of you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48×185cm_2004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입장료_일반 3,000원 / 학생_2,000원

관람시간 / 화~일요일_11:00am~07:00pm / 월요일 휴관





아라리오 천안_ARARIO CHEONAN
충남 천안시 동남구 신부동 354-1번지
Tel. +82.41.551.5100, 5101
www.arariogallery.co.kr






아라리오 갤러리 천안은 오는 11월 18일부터 2009년 1월 24일까지 중국의 떠오르는 젊은 작가 리지카이의 첫 개인전을 개최한다. 2007년 두산 아트센터에서의 중국작가 그룹 전을 통하여 이미 국내 미술 애호가들의 관심을 얻은 리지카이의 작품은 최근 홍콩 소더비에서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으며, 2008년 초 베이징 금일미술관에서의 첫 개인전을 성공적으로 마치는 등 중국의 새로운 블루칩 작가로서의 확실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리지카이_暗夜-光流逝_혼합재료_120×80×20cm_2008


현존하는 동시대 작가들의 프로파간다 아트, 정치적 팝과 냉소적 리얼리즘과 달리 리지카이는 인간의 존재성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탐구하며, 현대사회의 고립되고 외로운 우리들의 모습을 표현해낸다. 리지카이의 작품 속에는 정치, 사회적 이슈들이 지배하는 중국현대미술의 전형적인 토픽 대신 작가 자신의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있다. 나는 누구인가? 어디에서 왔는가? 어디로 가야 하는가? 등 존재성의 근본이 되는 질문들을 던지며 자신의 어린 시절 추억들 속에서 그 해답을 찾고자 한다. 영원히 늙지 않는 피터팬의 모습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리지카이는 어린아이의 순수한 마음을 향한 동경심을 지닌 채 작업에 임한다. 어른이 되어가며 이미 상실한 그 순결의 시대를 그리려 할 때 작가가 느끼는 고립감, 외로움, 상처, 두려움, 긴장감, 그리고 현실을 도피할 수 없는 무력함이 그의 작품 속에 고스란히 나타난다.




리지카이_Break out of Soil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80×150cm_2006


마치 폐허와도 같은 리지카이의 화면 속에는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나무조각과 흙더미, 아무 연관성 없어 보이는 지구본과 작은 동물 모형들, 작가의 자화상일지도 모르는 어린 소년의 모습들이 있다. 커다란 캔버스 안에 비율적으로 훨씬 작은 인물과 사물을 묘사함으로써 빈 공간의 공허함을 두드러지게 하고, 전체적으로 띄엄띄엄 그려진 대상들은 다른 요소들과 소통하지 못한 채 고독하다. 이러한 비연관적이고 비논리적인 배치는 리지카이의 또 다른 관심사인 꿈의 모습과도 닮아있다. 집단적 정치의식이 주된 초점이 되는 21세기 컨템포러리 중국미술의 트렌드를 떠나 리지카이는 이러한 방식으로 자기 자신의 역사를 돌아보는 것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예술적 언어로 풀어낸 그의 작업은 부드러우면서도 폭력적이고 고요하면서도 마음에 요동을 치게 하는 힘이 있다.




리지카이_Broken Woods_캔버스에 유채_200×145cm_2006



리지카이_Eggs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00×148cm_2006


방콕, 도쿄, 뉴욕, 홍콩, 암스테르담, 듀셀도르프, 그리고 최근 개인적으로 주목 받았던 베이징 금일 미술관 (Today Art Museum)에서의 개인전 “Clear (2008)” 등 전 세계를 무대로 열정적인 작품활동을 보이고 있는 리지카이의 국내 첫 개인전에서는 그의 수작 30여 점 정도를 감상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 아라리오 천안




리지카이_Dirt8_캔버스에 유채_50×40cm_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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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miniscence

최미림展 / CHOIMILIM / 崔美林 / painting

2008_1119 ▶ 2008_1125



최미림_Remain-Ⅰ_종이에 수채_112×162.9cm_2008




초대일시_2008_1119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모로갤러리_GALLERY MORO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8-16번지 남도빌딩 1층
Tel. +82.2.739.1666
www.morogallery.com






폐허 속 너머의 따스한 햇살 속으로... ● 작가 최미림의 폐허 속 너머의 기억 공간들은 따뜻하다. 때론 고풍스럽고 잔잔하며 고즈넉하다. 최미림은 비구상 작업과 판화를 넘어 다시 우리에게 수채 그림을 들고 다가왔다. 수채화는 그 자체로서 솔직하다. 맘속 깊은 정서들을 중단 없이 이끌어내기 좋고, 그 표현의 즉흥성이 우리의 정서와 닮았다. 그래서인지 수채화는 어려서부터 늘 우리 곁을 지켜왔다. ● 그러나 우리는 가장 가까운 벗의 깊이를 잊고 지내듯, 수채화를 자연 풍경이나 한가로운 일상적 풍경으로 대신하는데 만족해왔다. 그러나 최미림의 수채작업은 일상의 보충물 정도로서의 수채의 상식을 벗어나 화려하고 강렬한 색채감으로 현재의 시간을 망각시킨다.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을 날아다니는 동화적 세계 안으로 이끌기도 하고, 터너의 불타오르는 바다 너머의 신천지를 꿈꾸게 하기도 하고, 견고한 질감으로 좁은 터널 끝의 희망을 노래하게도 한다. ● 최미림의 ‘Reminiscence’ 시리즈는 추억이라 할만한 과거의 시공간 속으로 우리를 순식간에 이동시킨다. 시선이 머물러 있는 동안, 우리는 멈춰버린 지금의 시간을 뒤로 한 채 그녀가 이끄는 기억 속 풍경들로 빠져든다.




최미림_Remain-Ⅱ_종이에 수채_112×162.9cm_2008



최미림_Remain-Ⅲ_종이에 수채_112×162.9cm_2008


그리곤 한참을 멈춰 있다. ● 강렬한 색채가 내뿜는 이미지들은 감각의 향연이라 할 만한 황홀한 포획의 순간을 경험하게 하고는, 곧 꽁꽁 묶어 접어두었던 기억의 저편 속으로 젖어들게 한다. 기억과 관념의 모습은 흔히들 빛바랜 사진과도 닮았다고 생각한다. 그것들은 테두리가 없는 흐릿한 영상 속에 쉽게 잡히지 않은 신기루 같은 이미지를 대신해왔다. 그러나 최미림의 이미지들은 몽환적이면서도 생동하고 화려하다. 동네 코흘리개 애들의 순진 난만한 웃음과 구수한 동네 아저씨가 이끄는 손수레 목마는 그녀의 기억 속에 그 위풍과 위용을 지닌 채 화려하게 비상하고 있다. 어쩌면 아이들은 그 수레안의 말을 타고 하늘을 날았을 지도 모른다. 뭉실뭉실 솟아오르는 구름 위에 말 탄 소녀를 응시하는 그녀의 시선은 우리를 유년의 순구함으로 이끈다.




최미림_Reminiscence-버려지다_종이에 수채_91×116.7cm_2008



최미림_Reminiscence-소녀의 꿈_종이에 수채_116.7×80.3cm_2008


이 목마시리즈들은 굳어버려 화석이 되어가는 지친 우리 어깨에 따사로운 한줌의 빛줄기를 쏟아내고 있다. ● 구체적인 형상이나 이미지를 표현하는 조형예술로 자리 잡아 온 회화는, 자신이 지닌 모순적 특성, 2차원의 평면에 3,4차원의 시공간과 그 너머의 세계를 담아내야만 하는 숙명에 몸부림 쳐왔다.때론 과학에 대한 소박한 신뢰로 버텨보기도 하고, 재현을 거부하고 형상을 해체하여 자기반성과 자기소멸을 자기존립의 근거로 삼는, 회화의 변증법으로 지탱해오기도 했다. ● 그러나 인류의 말과 글 이전에 소통의 선좌를 지켜왔던 회화는, 스스로 굳건하다. 그녀의 그림이 우리에게 말걸 듯, 우리의 현재 의식의 순간을 과거 기억의 흐름 속에 유유히 이어 흐르게 하는 최미림의 붓터치들은 우리의 시야를 가득 메운다. ■ 김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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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st Summer-LYRIC & VERNACULAR

김진호展 / KIMJINHO / 金珍鎬 / photography

2008_1119 ▶ 2008_1125



김진호_Lost Summer#19_플랙시글라스에 C 프린트_70×82cm_2008




초대일시_2008_1119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가나아트 스페이스_GANAART SPACE
서울 종로구 관훈동 119번지 3층
Tel. +82.2.734.1333
www.ganaart.com






상처난 풍경을 향한 진솔한 고백 ● 짧지 않은 시간동안 그가 발췌해온 우리 땅의 모습이 로스트 썸머(잃어버린 여름)라는 이름으로 전시가 됩니다. 작가의 비유가 흥미롭습니다. 올곧게 거쳐야했을 여름이란 계절을, 지금 우리가 그리고 우리 땅이 잃어버렸다고 하는 비유일 것입니다. 개발이라는 ‘성장통’成長痛을 ‘상실한 여름’에 빗대고 있는 것이죠. ● 자연의 여름은 어떠했습니까. 나무의 큰 그늘과 녹색의 호수, 풋풋한 흙냄새와 밤하늘에 울려 퍼졌던 숲 벌레들의 소리. 모두가 성장하고 발산하는 계절이지만, 그 곳엔 엄연한 질서가 있었고 저마다의 속도와 영역을 약속합니다. 동시에 자기의 모양을 자기의 것에 똑 맞추어가며 조용한 가을을 준비했습니다. 그간 한국 땅위에 넘치던 변화의 열기가 얼마나 뜨거웠는지, 그 속도가 얼마나 아찔했는지, 지금 우리는 가을과 화해하고 있지 못합니다. 풀들의 자람보다 웃자라 버린 사람들의 울렁한 숲, 그늘의 시원함과 녹색의 여유로움보다는 숨 막히는 열기와 가파른 감성들이 여기저기서 발견됩니다.




김진호_Lost Summer#8_플랙시글라스에 C 프린트_70×96cm_2008


작가가 사진 속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들은 우리의 이기적인 거친 욕망과 다름 아닙니다. 난폭하게 흙을 덮고 있는 콘크리트, 하늘을 제멋대로 가로지르는 무거운 전선들, 어질어질한 전신주, 바람에 쓸려 다니는 쓰레기더미, 시끌벅적한 간판과 이정표의 소리들, 주위 것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현란한 색, 그 가운데 간신히 버티고 있는 볼품없는 한 건물. 그의 지적처럼 욕망의 속도가 자연의 그것을 한참이나 멀리 지나쳐 왔습니다. 여름이 푸욱 하고 식은 지금(겨울)에, 한차례 개발의 홍수가 쓸고 간 지금 시간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반성보다 먼저 상실에 대한 정직한 고백입니다. ● 누군가 서울 한강다리의 화려한 조명들과 현대식 건물들의 잘난 외양, 청계천 공사물의 도시 신화를 강조할 때, 작가는 그 반대편에서 모두의 아픈 곳을 찌르고 있습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죠. 국토의 상당부분이 저토록 방치되어온 이유는 그것들이 어떻게 존재해야 되는 지에 관한 철학의 부재에서 비롯합니다. 굳은살을 개발의 끌로 깊게 밀어낼 때에는, 과연 무엇을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지켜나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그러자면 시간도 필요할 것이고 속도도 생각해 봐야겠죠. 그동안 고민의 두께가 얼마나 습자지 같았으면, 개발이라고 만들어놓은 것들이 마치 땅위의 습자지처럼 위태롭게 불안불안 펄럭입니다. 도시가 되었든 지방이 되었든 사정은 마찬가지죠. 산업의 입지, 물류의 효율, 주거의 획일이 우선하는 공간에서는 사람 역시 또 하나의 소모품이요, 부속일 뿐입니다.




김진호_Lost Summer#10_플랙시글라스에 C 프린트_70×96cm_2008



김진호_Lost Summer#5_플랙시글라스에 C 프린트_70×96cm_2008


공간과 그 위에 건조, 축조, 시설되는 인공물들의 중심엔 사람의 움직임과 감성이 있어야 합니다. 고려되고 배려되어야 합니다. 그 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그냥 걷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때로는 감동스런 그러한 공간이 우리에게 얼마나 주어져있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공공의 영역이 행복하지 못하다면 사람들은 자연스레 개인의 영역 밑으로 두더지마냥 파고 들어갈 것입니다. 아파트의 평수 늘리는 것을 지상과제로 생각할 것이고, 크고 넓은 자동차 안에서 경적을 울려댈 것입니다. 그 안에서의 안락함이란 매우 달콤한 것이겠죠. 공간의 격이 올라가야 개인들의 격 또한 올라간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외면해왔습니다. 나아가, 물리적인 공공의 공간이 아름답지 못하면 공공의 정신 역시 아름답지 못할 것입니다. ● 잠깐 그곳의 젊은이들을 생각해봅시다. 그들은 사진에서 보여주는 지방에서의 황폐한 땅에서 평범한 삶을 택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빌딩 속을 헤매다 초라한 골목에서 뜨거운 눈물을 먹고 있을(조용필) 순박한 젊은이들이 몹시도 안타깝습니다. 젊은이들이 떠나고 노인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나가는 자리에서 무엇이 과연 기억될 런지요. 지역의 오랜 역사(공공의 정신)도 공간과 함께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역사와 풍경은 둘이 아닙니다. 이제 밖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때에는(디자인해야 할 때에는) 먼저 각자의 마음부터 디자인해야겠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 얼마 전 모 카메라회사의 텔레비전 광고가 생각이 납니다. “있는 그대로를 보겠다. 그리고 그들 속으로 들어가 그들이 나를 의식하지 않게 하겠다.” 그림의 분위기에 취해서, 인기 가수의 목소리에 취해서 그런 생거짓말을 진짜 말처럼 받아들이지 않길 바랍니다. 자꾸 카메라만 들면, 있는 그대로를 보겠다는 둥 객관적으로 접근하겠다는 둥 그럴싸한 말들로 분扮하는데, 카메라나 또는 그 결과물은 객관이라는 것을 담보하지 않습니다. (짧은 설명을 덧붙여) 언제 어디서나 카메라의 곁에는 기계를 조작하고 기계를 관통하는 사람의 시선이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대상을 보는 감각은 독립적이거나 자율적인 것이 되지 못합니다. 우리는 항상 우리가 보고자 하는 것만을 보기 때문이죠.(헨리 소로) 애석하게도 우리가 본 것은 우리 눈에 맺힌 것과 동일하지가 않습니다.(루돌프 에른하임) 대상이 절대적 객관으로 일관하는 것이 아니라 보는 이의 감각의 틀 안에 가둬지는 것입니다. 동시에 한사람의 언어로 이해하고, 설명하는 것입니다.(저의 인식론적 입장입니다)




김진호_Lost Summer#15_플랙시글라스에 C 프린트_70×96cm_2008


대상을 향하는 작가의 스탠스stance는 분명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곳에 있습니다. 크롭crop과 구도, 오브제들의 칼라와 짜임새가 오밀조밀, 아기자기, 예쁘게 드러나는 것은 그의 부드럽고 따뜻한 시선(또한 안정된)에서 비롯합니다. 가끔은 감상의 눈길이 대상에 안착하기도 전에 전경前景의 바람에 흔들리고, 분위기에 취해버립니다. 사진이 서정적 감성에 묶여있는 이유로, 오히려 저의 눈에는 대상의 무질서하고 거친 성격, 그리고 직설적으로 보여주고자 했던 그의 화법과 다소 엇박자를 이루는 듯합니다. 낭만적 풍경과 사실적 재현 그 중간 어디에 묘하게 걸쳐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작가의 시선이 얼마만큼 대상과 잘 호흡하고 있는지, 그리고 관객들에게 그 상처를 얼마만큼이나 잘 외시denotation하고 있는지, 자꾸 되뇌게 하는 부분입니다. ● 시각은 인간과 환경 간의 거래(에드워드 티 홀)라는 말이 있듯이 사진은 작가의 미감이 대상과 만나는 지점에서 발현합니다. 사람이 변하지 않는 한 그 지점에서의 균형은 변하지 않습니다. 유연하지 못한 시선은 때로 평범한 사진을 만들기도 하고, 주입식 보여주기로 그칠 수도 있으며, 때로는 의미의 폭력으로 나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 경계란 많은 이들에게 깊은 고민의 대상이 되어야 할 줄 압니다.




김진호_Lost Summer#16_플랙시글라스에 C 프린트_120×160cm_2008


요즘 작품들이 론論으로 포장되고 학學의 서자로 둔갑하는, 그리고 그렇게 읽어야만 할 것 같은 지적 패션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포장이 필요 없이 정직하게 보여주려고 하는 작업도 존재합니다. 그럴 때는 우리도 역시 정직해져야 합니다. 이성과 감성의 긴장을 풀고, 작품과의 대화를 시작해보십시오. 그곳에 미술의 심미적 즐거움이 있습니다. ● 김진호 작가의 작품 역시 정직하다면, 여러분은 즉시 무장해제하십시오. 전시를 통해 그의 땅에 대한 애정을 확인하고, 그의 땀 흘림을 기억할 것입니다. 최소한 로스트 썸머는 저에게 부끄러움을 선물했으며, 은근하게 반성을 부탁해왔습니다. 부끄러움이란 우리가 저질러놓은 허물이 어느 작가에 의해 사진으로 재현되고, 그것을 통해 허물을 다시 마주 봐야하는, 낯 붉혀야하는 스스로의 모습 때문입니다. 예술은 때로 부패한 법정보다 더 정의롭습니다. 함부로 죄를 사해주지 않으며, 죄는 죄의 모습 그대로 우리에게 되돌아옵니다. ■ 홍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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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生死)동시발생_Occurrence

최혜영展 / CHOIHYEYOUNG / 崔惠榮 / painting

2008_1119 ▶ 2008_1125 / 월요일 휴관



최혜영_무한 생성의 연결고리_캔버스에 면사 테이프_130×193.9cm_2008




초대일시_2008_1119_수요일_06:00pm

SeMA 신진작가 지원展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이즈_GALLERY IS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0-5번지
Tel. +82.2.736.6669
www.galleryis.com






생사(生死)동시발생 ● 최혜영은 일상에서 만난 자연의 이미지와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구조물 사이의 변화에 관심을 갖고 이것을 물리적 혹은 생태적 관점으로 접근하여 회화의 조형적 요소로 재구성하고 시각화 하려는 작가이다. 그는 사람의 인적을 느낄 수 없는 오래된 낡은 집과 주변의 다른 인공 구조물에서 이미 철거되고 버려진 건축 폐기물들을 소재로 생성과 소멸 그리고 새로운 대상의 재형성을 의미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그가 표현하고 있는 대상은 인간과 자연 그리고 인공구조물의 유사한 관계성과 상생관계를 의미하고 있으며, 작가의 일상적 만남에 대한 내러티브적 요소를 제공한다. ● 현대사회는 빠르게 새로운 환경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자연의 섭리에 의해 서서히 소멸되어가는 것이 아닌 인간의 필요에 의해 혹은 특정 목적을 위해 인위적으로 대상을 파괴하거나 해체하여 새로운 대상을 재생산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작가는 이러한 대상의 순환과정 속에서 생성과 소멸의 현상을 동시에 발견하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개념을 구조적으로 인식하여 물질의 변화와 이동을 가시적으로 드러내 보이고 있다. ● 작가는 일상에서 만난 대상의 기억과 잔상을 통해 인간이 만들어낸 인공 구조물의 성질과 형상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되는 물리적 변화현상에 주목한다. 다시 말해 대상의 생성-해체-소멸-재형성의 반복된 순환과정을 관찰한다. 즉, 일상의 보편적 원리를 자신의 작업으로 재해석하고 구조적으로 비슷한 유형의 매개와 형식적 행위의 결과를 예술의 조형원리로써 풀어나가고 있다. 또한 그는 대상을 관조하는 자세가 남다르다. 인공 구조물의 필연적 해체를 단지 소멸의 의미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재생성의 원인행위로써 인식하고, 해체과정에서 발생하는 잔여물을 진보 이전의 가치로 생각하기보다는 오히려 미래의 함축적 에너지를 표상하는 메타포 이다.




최혜영_잠정적 풍경_캔버스에 면사 테이프_130×193.9cm_2008



최혜영_생사(生死)동시발생_캔버스에 면사 테이프_130×130cm_2008



최혜영_무한 생성의 연결고리Ⅱ_캔버스에 면사_130×193.9cm_2008


그의 최근作 「무한생성의 연결고리」시리즈 작품을 통해 내용적인 면과 형식적인 면에서 좀더 살펴보자. 이 작품은 인적이 드문 오래된 낡은 집과 인공의 다른 구조물이 이미 철거되고 해체되면서 남겨진 건축 폐기물과 각각의 버려진 잔여물들이 주요 모티브로써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이것은 현실에서 보이는 있는 그대로의 자연풍경이 아니라 작가의 손을 거쳐 개개의 이미지들을 재조합한 변형된 풍경이다. 그는 실재모습에 대한 기억과 잔상을 새로운 형상으로 재인식하고 해석하여 미래의 존재 가능성을 암시하는 이미지로써 대상을 캔버스에 재현한다. 이 과정에서 대상의 이동성과 해체, 생성과 소멸에 관한 인식을 작가는 면사테이프를 매개로하여 표현하였고, 여기에 작가적 행위마저도 작업 프로세스의 일부로 수용하여 그의 작업 의도를 뒷받침하고 있다. 캔버스 위에 색색의 면사테이프를 뜯어내고 붙여서 형상을 만들어가는 행위는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의 물질 현상과 일맥상통 한다. 즉, 작가가 의도하는 작업개념과 그가 대상을 재현해내려는 과정의 행위는 생성과 소멸, 해체와 조합의 기본적 원리와 같은 맥락으로 읽혀지고 있다. 그리고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비정형적 숫자들의 배열에는 시간성이 내재되어 있으며 과거에 대한 현재 진행형을 의미하면서 동시에 다음의 어떤 상황적 현상을 예고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 또한 그의 작품에서는 부분적으로 어딘가 모르게 다소 어색한 분위기를 감지하게 된다. 뚜렷한 형상이 아닌 과거를 회상하는 듯한 몽롱한 분위기가 연출되는데, 이것은 정지된 화면을 표현한 것이 아닌 시공간을 초월하는 유동적인 이미지 창출을 위해 작가의 의도가 개입된 부분이다. 말하자면, 서로 다른 공간의 여러 이미지들을 각각 차용하여 교묘히 중첩시키거나 배치하여 그 경계면을 제거하기도 하고, 또 면사테이프의 여러 색점들을 뒤섞어 놓음으로써 대상과 대상간의 경계를 흩뜨려 놓은 행위의 결과이기도 하다.




최혜영_무한 생성의 연결고리Ⅲ_캔버스에 면사_130×193.9cm_2008



최혜영_무제_캔버스에 면사 테이프_97×193.9cm_2008



최혜영_무제_캔버스에 면사 테이프_97×193.9cm_2008


그의 작품은 단순한 일상의 풍경이 아니다. 대상을 조직적으로 분석하고 그것의 해체로 인한 구조적 변화까지도 철저하게 계획된 작품이다. 하나의 대상물이 생성되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이면에 수많은 조직들이 얽히고설켜 구조적으로 복잡하게 형성되어 있듯이, 그의 작품은 전체적으로 볼 때와 가까이 다가가 디테일한 부분을 볼 때의 느낌은 완전히 다르다. 자세히 드려다 보면 면사테이프에서 뜯어낸 점과 선, 그리고 면의 처리효과 등은 회화의 기본 조형요소를 그대로 반영한 작품이다. 또한 작가의 인내와 노동력이 엿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작가는 대상이 파괴되고 해체되었을 때 버려지는 잔여물을 통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새로운 형상의 이미지를 창출한다. 이와 같은 원리를 작가는 그가 사용하고 있는 주 매체인 면사테이프 작업과정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에게 있어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색색의 면사테이프는 작업의 본질을 형성하는 주요 매체이다. 면사테이프를 비정형 사이즈로 뜯어 붙여 형상을 만들어 나가는 반복적인 행위는 상당히 노동 집약적이며 그의 작업개념과 연장선상에 놓여있다. 형식적으로 대상을 해체시키고 재조합하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결과물은 완전한 소멸이 아니라 또 다른 대상의 생성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자연의 순환과정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하겠다. ● 최혜영의 회화작업은 이렇듯 현대미술의 움직임에 반응한다. 최근 한국회화의 가장 큰 위기는 개념과 형식이 유사한 작가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특히 젊은 작가 층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반면 최혜영은 내용과 형식적인 면에 있어 모두 새롭다. 회화를 전공하면서도 표현적인 면에서는 전통적인 표현기법을 충실히 지켜왔고, 새로운 매체와 기법을 탐구하는데 소홀하지 않았다. 또한 대상을 바라보는 거시적인 안목을 갖고 있는 보기 드문 작가이다. 이제 막 본격적으로 미술계에 입문한 작가로써 앞으로의 그의 작업행보와 귀추가 기대된다. ■ 최관호

■ 서울시립미술관 SeMA 신진작가전시지원프로그램
본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시행중인 2008 SeMA 신진작가전시지원프로그램 선정작가 전시입니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전시장 임대료(500만원 이내), 도록, 엽서 등 인쇄물 제작, 온-오프라인 광고를 통한 홍보, 전시 컨설팅 및 도록 서문, 워크숍 개최 등 신진작가의 전시전반을 지원하는 SeMA 신진작가전시지원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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