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신제가_修身齊家
이단展 / YIDAHN / 夷丹 / mixed media
2008_0509 ▶ 2008_0525

이단_수신제가(修身齊家)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 목탄_130.3×162.2cm_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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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8_0509_금요일_06:00pm
예술공간 헛 2008 전시공모 개인전
오프닝 퍼포먼스_2008_0509_금요일_06:00pm~09:00pm
관람시간_01:00pm~09:00pm
누가 가족을 신성하다고 했나 ● ‘가족’, 누군가에게는 꿈이며, 누군가에게는 희망이자 위안이고, 누군가에게는 지독한 악몽이기도 하며, 또 누군가에게는 이 모든 것을 합쳐 놓은 것일 수도 있다. 이 ‘가족’의 특질을 백과사전(두산백과사전 엔사이버, http://www.encyber.com)에서는 “1차적 집단이고, 공동사회 집단이며, 폐쇄적 집단이고, 형식적·제도적 집단이면서 그 안에서의 인간관계는 비형식적·비제도적인 점”을 들고 있으며, “성(姓)과 혈연의 공동체, 거주의 공동체, 가계(家計)의 공동체, 애정의 결합체, 운명의 공동체”라 지칭한다. 위의 정의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행간에서 가족은 형식적인 동시에 비형식적이라는 모순을 보이는 독특한 구조를 지니며, 게다가 재화와 애정 등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망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단_배신은 불법1, 2_캔버스에 목탄, 유채_71.7×91cm, 60.6×72.7cm_2007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모순’과 ‘욕망’이라는 단어는, 가정이라는 집단이 보여주는 극단적인 양면성의 단초를 제시하고 있다. 아주 단순화시키면 이 ‘기본적인 단위’에서 개인의 욕망이 흡족하게 구현되지 않았을 때, ‘제도적’으로 구현된 가족 구성원들은 ‘개인적’으로 이 문제를 해소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뒤집어 말하면, 가족이라는 것은 개인적인 욕망을 합리화하며 충족시킬 수 있도록, 제도를 가장하여 구성원들간의 관계를 의무적으로 고착화시켜 개인의 의지와 선호를 마비시키는 장치가 아닌가 의심되는 것이다.

이단_정교한 일상_혼합재료_232×543cm, 가변설치_2005
그런데 더욱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어버리는 것은, 이 욕망, 말하자면 ‘이상적이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려는 의지에 ‘사회적으로 이상적이라고 여겨지는 가치’가 더해져 버린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사회적으로 명망 있고 존경스러운 아버지, 온화하게 가정을 지키는 어머니, 가정의 기둥이 될 듬직한 아들, 애교 있고 상냥하며 아름다운 딸, 그리고 이 모든 그림을 완성시켜줄만한 품위 있는 가구와 정결한 집안, 그리고 또 한번 이 모든 것을 구비할 수 있는 아버지의 경제력과 이를 완벽하게 관리할 수 있는 어머니의 헌신 등. 이렇듯 현기증이 날 만큼 이상적인 가족을 묘사하는 데 쓰인 ‘애매한’ 형용사에는 사실 각종 윤리적·이념적 기준들이 엄격하게 적용되어, 그 사회의 단면이 가장 적나라하게 투영되고 있다.

이단_일요일 오전 : 노력중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 목탄_112×145.5cm_2008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100% 이상적인 가족이란 존재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러한 가치 기준은 특히 대한민국처럼 ‘보편성’을 중요시 여기는 사회에서 일종의 집단적 강박으로 다가오기 쉬우며, 자아의 실현을 다른 가족 구성원의 사회적 성취로 대치시켜버리는 비극을 낳기도 한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구성원들은 자신의 개인적·사회적 욕망을 가족에 투영시키는 과정에서 ‘가까운 사이’이기 때문에 강제적으로 상대방에게서 무엇을 요구하는, 어쩔 수 없는 감정의 일그러짐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이단_가장의 왕국_캔버스에 유채, 금분, 목탄_117×91cm×2_2008
이는 또 한번 개인으로 환원되는 상황으로 치닫기 쉬운데, 일반적으로 가족의 갈등은 무엇이 문제인가를 분석하기 이전에 ‘(의무적이며 무조건적인) 사랑’이라는 매개로 뭉뚱그려져 희석되어 구성원간을 접합시키려 하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부터, 말하자면 ‘만인에 대한 만인의 억압’이 시작된다. ‘행복한 가정’에의 ‘당위성’은 타인을, 그리고 스스로를 세뇌시키며 개인의 욕망을 때로는 공격적으로 노출시키고, 역으로 또한 자신도 상처받는다. 이상이 조금씩 뒤틀릴수록 가족은 악몽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마음이 떠날수록 제도는 뒷덜미를 잡고, 욕망은 소유와 집착으로 돌변하여 맹목적이며 폭력적으로 다가오게 된다. 도망갈 구석은 없으며 끊어낼 수도 없다.

이단_우로보로스의 모녀 : 어머니는 욕망으로 나를 낳으시고 나는 집착으로 그를 착취하니
절망적인 위대한 모성이여 영원하라_나무판넬에 목탄, 아크릴채색_지름 175×9cm_2007
나는 나의 가족을 그린다. 이것은 위에서 언급한, 가족 구성원의 욕망과 갈등이 어떻게 억압되고 해소되는가 하는 지점을, 다름 아닌 나와 나의 가족을 ‘그린다’는 직접적인 행위를 통해 보여주려 하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나는 처음으로, 타인이 아닌, 바로 내 자신의 두려움과, 억압과, 피해의식의 근원 중 하나를 솔직하게 들여다보며 파헤치려 하고 있는 것이다. 목탄 분말은 부스러지고 흘러내리며 지워지고 날아가, 화면 위에 불안정하게 얹히면서도 그 강렬함을 유지한다. 그것은 인물들의 - 혹은 인물들을 향한 나의 - 감정과 관계, 그것의 격렬하면서도 원초적이며 불안정하고도 나약한 모습을 닮았다.
● 그러나 이를 화면 안에서 구현하기란 쉽지 않은 과정이다. 무엇보다 30여년을 같이 지냈던, 그리고 이미 화해한 가족들을 냉정하게, 때로는 ‘짐승스럽고 적나라하게’ 그린다는 것은, 묻어두었던 과거의 악몽을 끊임없이 재생하고 그 속에 얽힌 온갖 생각과 감정을 계속 끄집어내며 자신 역시 객관적으로 질책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나는 앞으로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다. 이것은 나의 가족을 이해하고 객관화시켜 오래된 트라우마를 해소함으로서 나 자신을 치유하려는 노력의 첫 단계이며, 작업을 발전시켜나감에 따라 유사한 경험을 가진 타인 역시 간접적으로 더불어 치유하고 싶다는 바람의 발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이것은 자신의 의지로 구성한 새 가족에서 그러한 비극을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 이단

이단_오프닝 퍼포먼스를 위한 메뉴판_혼합재료_42.5×23.5cm_2008
이 전시는 작가의 가족에 대한 개인적인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나아가 한국 사회 안의 한 가족이라는 응축된 관계를 매개로 개인의 마음과 사회적 구조가 ‘관계’라는 지점에서 어떻게 작용하는가에 관해 풀어나가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작품들은 주로 가족 구성원간의 애정과 집착, 그리고 욕망에 관해 다루고 있는데, 이러한 감정들이 마음의 벽을 넘지 못하거나, 소위 대한민국의 ‘가족주의’로 대변되는 ‘행복한 가정에의 강박’과 혼합되어, 뒤틀리고 폭력적으로 변하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작품에 빈번히 등장하거나 사용되는 (그러나 미적 취향이나 신념, 또는 국적을 짐작할 수 없는), 이른바 ‘유럽풍 부르주아 중산층’ 취향의 가구나 물건 및 패턴들은, 허무함과 나약함의 대리만족 및 욕망이나 의무의 강요에 대한 공포를 상징한다.
● 전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1층은 부부와 자식들의 공간으로, 주로 구조와 감정으로 인해 뒤틀린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2층은 작가의 자아로 대변되는 ‘딸’의 공간으로, 은밀한 욕망과 억압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게 된다. 전시는 페인팅과 설치가 혼합되어 있으며, 가정집을 개조한 공간이라는 점을 최대한 살려, 가족과 가정을 담은 페인팅과 일상적인 물건 및 가구들을 변형한 설치를 곳곳에 혼재시켜 기묘한 ‘집’의 느낌을 연출한다.
● 또한 오픈 당일 리셉션에는 전시 주제와 관련된 메뉴명으로 만든 음식을 판매·서빙하는 퍼포먼스가 열린다. 메뉴는 음식의 구성을 짐작할 수 없는 제목으로 되어 있으며, 각 메뉴는 제목에 어울리는 음식으로 구성되고, ‘메이드(중세풍 하녀)’ 복장을 한 ‘착한 아이’들이 서빙할 예정이다. 이 퍼포먼스는 우리 사회가 보편적으로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편안하고 따뜻한 가정’에 대한 환상이 권위적이고 인위적이며 폭력적일 수 있다는 것을 환기시키려는 의도이며, 동시에 '사교와 친목의 장‘으로 일부 변질된 미술계의 전시 오프닝 및 뒷풀이를 유쾌하고 작업 연장선상의 행사로 만들어보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 예술공간 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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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은 사진전 / 이기적 풍경
갤러리 와 청담(02-516-9898)
2008-05-09 ~ 2008-05-18
2008-05-09 오후 6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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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호 사진전 / 가족
노암갤러리(02-720-2235)
2008-05-09 ~ 2008-05-18
2008-05-09 오후 6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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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부문 사진전 / On the Clouds
박영덕 화랑(02-544-8481)
2008-05-09 ~ 2008-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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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 놀이
손혜진展 / SONHYEJIN / 孫惠瑱 / sculpture.installation
2008_0506 ▶ 2008_0527
2008_0604 ▶ 2008_0613

손혜진_조율_스테인레스 스틸, 자석, 와이어_180×90×90cm_2008
초대일시_2008_0517_토요일_03:00pm
관람시간_평일_09:00am~06:30pm / 휴일_11:00am~06:30pm
KT아트홀_KT ARTHALL
서울 종로구 세종로 100번지1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2번출구
Tel. +82.2.1577.5599
www.ktarthall.com
어릴 적 친구들과 아무 걱정이나 근심 없이 뛰놀던 추억을 되새겨 보며 그때 그 당시처럼, 지금의 나른한 일상 속에서, 언제든 새롭고 신나는 ‘놀이’에 몰두해 보고자 한다. 작품〈쏘다〉는 본능과도 같은 몰입을 보여 준다. 사각과 마름모 형태의 프레임은 말각조정문의 형상을 차용하며 현시대의 사람들이 바라는 꿈을 쫓는다. 그리고 그 안에서 과연 당신이 꾸는 것이 진정 원하는 꿈인지를 묻는다. 이는 자신 스스로에 대한 끝없는 정체성의 모색이다.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 본능과도 같이 생각하기도 전에 흐르는 힘. 이번 전시에서는 그 힘을 ‘놀이’처럼 찾아보고자 한다.

손혜진_울림_스테인레스 스틸, 자석, 와이어, 바늘_130×15×130cm_2008

손혜진_쏘다_아크릴, 자석, 줄, 바늘_70×200×140cm_2007
「보이지 않는 흐름의 힘」을 인간 내부의 심리적 상황 하에서의 변화로 표현한다. 크고 작은 사건들을 겪으며 삶을 영속해가는 동안 사람들은 매순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미묘한 감정적 교류를 한다. 또한 극단적 감정의 표출이 아닌 비시각화 된 모호한 갈등 상황이 야기된다. 감정의 동화와 조절 그리고 평형을 이루며 자신 스스로 또는, 자신과 남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손혜진_높이의 차이_자석, 줄, 바늘, 나무_80×80×25cm_2007
이러한 관계 유지에 있어서 소통의 문제에 당면하게 되는데, 그것은 어떤 방식의 어떤 코드를 선택하는가와 시기성, 공간성을 동시에 고려하며 또한 무의식적 반영까지도 포함하게 된다.

손혜진_공간 밖으로 향하다 Ⅱ_가변설치_2007
자신과 남 또는, 자신 내부의 분산된 자신들은 상호 교류함에 있어서 다른 코드를 가지며 모순되기도, 일치하기도 한다. 즉, 이해와 타협, 배척 등을 수반하게 되는데 서로 간의 또는 자기 스스로의 기대와 바람의 도달 여부로 인해 이러한 과정이 형성된다. 이러한 흐름은 끝이 정점에 달하거나, 확산되어 뻗어가는 양상으로 진행된다.

손혜진_공간 밖으로 향하다 Ⅲ_캔버스, 자석, 줄_91×65×75cm_2007
나의 작업은 이러한 감정 교류의 시간적 ‘순간’을 공간적 ‘사이’로 대치(代置)하여 시각화하는 것이다. 또한 ‘사이’의 관계를 설정하기 위하여, 자석의 보이지 않는 양극 간의 힘을 이용하고자 한다.

손혜진_사이 Ⅱ_철판, 자석, 나무_16×100×45cm_2007
자연 광물질인 자석이라는 매체는 인력과 척력을 지니며, 이러한 자력 사이에서 발생하는 힘은 자석과 인간과의 공통된 속성인 ‘보이지 않는 힘’을 단편적으로나마 나타낼 수 있다. 이 작업을 통해 갈등에 대한 끝이 아닌 ‘연속’으로서의 인간사를 담아내며, 순간 잊고 지나가는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고자 한다. ■ 손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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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oming Soul, Blooming Spirit
신영미展 / SHINYOUNGMI / 申英美 / painting
2008_0508 ▶ 2008_0525 / 월요일 휴관

신영미_Blooming Pond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94×390cm_2008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이미지 속닥속닥 Vol.041118a | 신영미 회화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8_0508_목요일_05:00pm
관람시간_10:00am~06:3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선컨템포러리
GALLERY SUN CONTEMPORARY
서울 종로구 소격동 66번지
Tel. +82.2.720.5789
suncontemporary.com
2004년 아트스페이스 휴에서 열린 개인전 『아...나르시소스씨』에 이어 대학원 재학생의 신분으로는 이례적으로 2004년 브레인펙토리 기획공모전에 선정되어 『hidden dreams』전을 열게 된 것을 계기로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신영미 작가의 3번째 개인전이 2008년 5월 8일부터 5월 25일까지 갤러리 선 컨템포러리에서 열립니다.
2004년 『아...나르시소스씨』전과 『Hidden Dreams』 전을 통해 여성 이미지 - 작가 자신 - 를 반복적으로 보여 줌으로써 자아와 정체성의 문제, 여성으로서 그리고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서 성장해가는 이야기를 보여주었던 신영미 작가가 2004년 2번째 개인전 이후 4년 만에 4년만큼 성장하고 변화된 자신의 모습을 선보입니다.
나르시소스 신화를 연상케 하는 자화상 작업을 중심으로 본인을 들여다보기에 집중하였던 1회 전시『아...나르시소스씨』와 자신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숨겨져 있으나 밖으로 분출되지 못한 채 웅크리고 있는 꿈과 희망, 욕구 등 뿌리 깊은 내면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었던 2회 전시 『Hidden Dreams』에 이어 3회 전시 『Blooming Soul, Blooming Spirit』에서는 자신의 외면과 내면의 탐구를 거쳐 작가 본연의 모습이 조심스레 꽃망울을 이루며 피어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신영미_Blooming Soul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3×82cm_2008
작업의 키워드-자화상 ● 신영미 작가의 작업의 키워드는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다. 미술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자화상이라는 테마는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신영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의 얼굴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작가의 이름과 작품은 알아도 얼굴을 직접 마주하기란 쉽지 않은 일반 관람자라 할지라도 우연히 마주친 신영미 작가를 단번에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그 만큼 그림 속의 인물과 작가의 모습은 닮아 있다. 여기까지는 흔히 보아왔던 자화상들과 신영미의 그것이 공통점을 갖는 부분이다.
이야기가 있는 자화상 ● 그러나 그녀의 자화상이 반복되는 기존의 ‘자신의 얼굴 그리기’와 차이점을 이루는 부분이 분명히 존재하는 데, 그것은 바로 내러티브의 삽입에 있다. 신영미의 자화상은 그저 그때그때의 작가가 처한 상황과 그것으로 인한 감정의 변화 등을 표정의 변화나 다양한 제스츄어를 통해 표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화면 속 자신을 둘러싼 여러 오브제나 동물, 배경 등을 등장시키거나, ‘자신’을 형상화한 인물을 반복적으로 그리고 동시에 여러 명을 함께 등장시키는 등의 방법으로 이야기를 그려내는 특징을 갖는다. 이때 작가의 모습과 함께 등장하는 모든 것들은 모두 현실 속에 존재하는 것들이지만 신영미 특유의 파스텔톤 색채의 사용, 입체 보다는 평면이 느낌을 강조한 표현, 현실 속에서는 이루어지기 힘든 상황의 설정과 조합을 통해 동화 속 이야기 같기도 하고 꿈을 꾸는 듯 하기도 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신영미_Blooming Soul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4×98cm_2008
빈번히 등장하는 이미지들이 만드는 이야기 ● 1. 동물 이미지 ● 신영미의 작품에는 유독 동물의 등장이 빈번하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사람과 가장 가깝다는 강아지나 고양이와 같이 애완으로 키울 법한 것들이 아닌 양, 부엉이, 오리가 자주 등장하여 하필이면 왜? 라는 의문을 갖게 한다. 이때 동물들은 우연히 취사선택된 것이 아닌 작가와 특별한 인연으로 만나게 된 동물들이다. 양은 단짝 친구와 떠난 인도 사막지역 여행 중 잠시 잠이 든 사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양떼 사이에서 깨어난 순간 꿈인지 생시인지, 현실인지 환상의 세계인지 구분이 되지 않고 몽롱했던 기억에서 비롯되었다. 또한 부엉이는 자아의 투영이 아주 강하게 나타는 동물인데, 지인이 찍은 사진을 보고 강한 끌림에 이끌려 그 부엉이가 사는 동물원을 찾아가 실제로 만나 부엉이의 모습과 자신을 동일시 할 수 있게 된 듯한 느낌에서 비롯된다. 화면 속에서 동물들은 개나 고양이 등을 대신한 애완동물처럼 등장하기도 하고 - 강아지를 안고 자듯 양과 한 침대를 쓰며 자는 모습(「self-portrait 3」, 2003), 강아지나 고양이에게 목줄을 걸어 데리고 다니듯이 부엉이를 데리고 다니는 듯한 모습 (「My pet」, 2004) - 본인의 자아가 투영된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이자 본인을 들여다보는 타자의 시선이 되기도 한다. 이렇듯 동물 이미지는 작가에게 때로는 친구로 내지는 작가가 바라보는 대상으로 때로는 본인 자신의 다른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렇게 흔히 현대 도시 생활에서 가까이 보기 힘든 동물의 화면 속 등장은 작품의 분위기를 현실의 그것과는 다른 것으로 만들어 그녀의 작품이 현실과 꿈 내지는 현실이 아닌 어떤 곳의 경계에 머물게 하는 것에 한 몫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2. 나무와 물 이미지 ● 2회 개인전 『Hidden Dreams』전에서 핵심적으로 보인 이미지는 나무와 함께 등장하는 인물들의 모습이었다. 잎이 무성한 푸른 나무숲에서 한가로운 한 때를 지내는 낭만적인 숲과 인물의 모습과는 달리 마치 투시화면으로 보듯 뿌리 부분까지 드러난 나무는 뿌리와 인물의 머리카락이 뒤엉켜 신영미의 자아들을 꽁꽁 묶어 꼼짝 못하게 만들고 있고, 기다란 머리카락에 발이 묶인 부엉이의 날아오르려는 날갯짓은 안타까운 몸부림에 그치고 있었다. (「hidden dreams」, 2004) 『Hidden Dreams』전이 전혀 펼쳐지지 못하고 있는 내재된 꿈과 욕망들이 잔뜩 웅크리고 있는 이야기였던 반면 이번 4회 전시 『Blooming Soul, Blooming Spirit』전에도 역시 나무와 숲이 등장하지만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Hidden Dreams」에서 보았던 숲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화사한 색채의 사용으로 훨씬 밝아진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또한 호수 한 중간에 드리워진 키 큰 나무와 여러 명의 신영미는 나무 위에 한가로이 앉거나 물에 몸을 담그고 여유로운 한 때를 즐기는 듯하다. 꽁꽁 묶여있던 것들의 자유로운 몸짓을 짐작할 수 있다. 「The Pond」, 2007 에서 보여주었던 호수의 이미지가 이번 전시작에서 반복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등장인물의 표정의 변화가 주목할 만하다. 무언가 아직은 불안하고 살피는 듯한 표정이었던 인물들이 이제는 편안한 모습으로 자신의 상황을 즐기는 듯하다.

신영미_Blooming Soul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130cm_2008

신영미_Blooming Soul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130cm_2008
Blooming Soul, Blooming Spirit ● 나무 뿌리에 묶여 있거나 뭔가 불만에 쌓인 듯 머리에 가시 돋은 선인장이 불쑥불쑥 쏟아있던 모습(「Cactus」, 2006)은 이번 전시에서 바람결에 하늘하늘 흩날리는 꽃잎으로 치장한 모습으로 대체되었고, 여럿이 함께 있어도 늘 다른 방향을 바라보며 서로 쑥덕거리기도 하고 따로 노는 듯했던 인물들은 이제 서로의 손을 맞잡고 둥글게 앉아있다. 마치 본인과의 화해라도 이룬 듯이 환하게 피어나는 모습이다.
2008년 개인전을 통해 선보이는 작품들의 스케치는 이미 2~3년 전에 마친 것이라고 한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자신은 스케치를 해 놓고도 그 작품을 그릴 수 있는 순간이 와야 그리게 된다고 한다. 자신의 작품을 ‘아가들’이라고도 표현하는 작가는 아기가 엄마의 몸속에 서 달이 차고 때가 되었을 때 세상에 나오는 것처럼, 이미 오래 전부터 마음속에 품고 있던 자신의 이야기들을 자신이 느끼는 그 “때”가 되었을 때 하나하나 피어나게 하고 있는 것이다. 마침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품들 중에는 아기를 임신한 인물이 등장하여 호기심을 부추긴다. 아기를 임신한 여인이면서도 여전히 엄마의 모습을 따라 하기에 안달 난 어린 소녀처럼 속옷 차림에 굽이 높은 어른 구두를 신은 화면 속 신영미가 이번 전시를 통해 품게 된 이야기가 무엇이며 앞으로 그 이야기는 언제 탄생하여 어떤 모습으로 우리 앞에서 나타날지 벌써 기대가 된다. ■ 김재도

신영미_Deep Attachment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95×97cm_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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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하정개인전
'TAEBAEK'

검은산_견위에 채색_석탄_자연염색_170×110cm_2007
2008년
5월 7일 ~ 5월 30일
GALLERY
CHA
110-040 서울시 종로구 통의동 35-97 T 02-730-1700
오프닝 5월 7일 6:00 PM

검은산_견위에 채색_석탄_자연염색_170×110cm_2008
저기 어린아이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소녀가 있다. 서울에서 바라본 기억속의
태백은 검지만 정겹고 푸근한 무언가가 있었다. 그러나 매해 서너번 이상은 가는
그곳이 내가 살고 내 향취를 맘껏 뿜을수 잇는 곳이 아니라 어느날 낯선, 그리고
너무나 어색해져버린 곳으로 다가왔다. 사람이 많이 살거나 복잡하지도 않은데 여기저기
소방도로가 생기고 사택이 사라지고 아파트가 생기고 검은 물도 맑게 변해버렸다.
검은끼가 사라진 도시아닌 도시라 불리는 그곳은 광산의 부흥이었을 때는 진정 풍족한
느낌이었다. 시내로 가는 길가에 늘어선 상가들이며, 많은 광업소가 폐광이 된 그곳에서는
관광레저 산업의 기대도시로 부흥하여 과거 광산의 기술과 인력은 아주 미미한 존재가
되어있었다. 아직 그곳의 산은 검고 검은데 말이다.

검은산_견위에 채색_석탄_자연염색_170×110cm_2008
잠깐의 동네 놀이에도 얼굴이 까맣게 되어 버리던, 방금 페인트칠한
우리집이 며칠 안되어 다시 까맣게 변해버리던 그 공기를 생각한다. 무릎까지 푹푹
들어가 발자국이 남을 정도로 많은 눈이 내리던 그곳에서 눈위에 살포시 내려앉은
석탄의 알갱이를 기억한다. 되돌아 가기를 바라는것이 아니다 다만 그곳의 환경이
우리에게 줬던 풍요로움을 간직하고 화석이 되어버린 우리의 생활터에 관한 정체성의
부재에 말을 건네고 싶다.

움틈_견위에 채색_석탄_자연염색_125×96cm_2008
나는 여기에 태백의 정취를 풀어놓고, 터를 잡고 검은 산을 보며
사는 우리 어머니의 감성을 이야기하고 나의 붓놀림과 나뭇가지에서 떨어지는 석탄의
덩어리들은 그야말로 갱에서 굴을 파듯 시간을 거슬러 깊숙한 산골에서 메아리치는
아버지의 숨소리를 전해준다. 지금 광산의 가루를 콧끝으로 깊이 들이마신다. 태백의
공기를... ‘크고도 밝은 이름 태백 산맥의 산림과 검은 황금 멧뿌리 삼고서, 하늘아래
첫 동네’라던 어릴적 불렀던 노래를 읖조리며...
- 신하정

검은풍경_견위에 채색_석탄_자연염색_95×70cm_2008
There is a girl inside, whispering on the cusp of adulthood…I vividly remember
Taebaek enveloped in coal, wrapping the population like a warm blanket. I used
to visit the city from time to time. On one of these occasions, it dawned on
me that the place had changed. For the first time, Taebaek stood awkward and
unfamiliar. The miners’ housing had been bulldozed into a bygone era, making
way for broad, new roads and sparkling apartment blocks. However, the population
remains.
Taking a stroll by a once-polluted stream, the water flowed fresh and clear.
This blanket of black had somehow been pulled back off the riverbed, gone without
a trace. However, the charm of the city had been stripped, too. It had emigrated
along with the hustle and bustle of the mining industry, its richness replaced
by a somewhat more sterile modernity.
Taebaek is now well-established on the Korean tourist map, the streets thronged
with shoppers, eager to part with their hard-earned cash. It is an entirely
different world from that of the miners. Their world is a thing of the past,
history pure and simple. That said, the surrounding mountains may tell a different
story- a story of all things pitch black, buried and silent.

태백_견위에 채색_자연염색_80×80cm_2008
As I walk down memory lane, I recall the air we all breathed. It seems so
long ago now. Kids would happily smudge one another with sooty fingers on mock-tanned
faces, after a mere half an hour outside. The idea of giving your outside wall
a lick of paint seemed pointless, given the relentless tide of coal dust. In
the heart of winter, as we waded through the snowdrifts, the flakes were permanently
peppered, having hurtled through the haze.
No one can turn back the clock, I know. However, Taebaek has lost something
rich and gritty, while assuming a new identity. In this sense, it is a living
fossil. My work attempts to express my feelings of identity lost, of the fondest
childhood memories. I aim to convey something of the lives of its residents
back in the days when it was a thriving mining community. As each brushstroke
connected with canvas, I envisaged my father breathing huskily, filling the
valley with an asthmatic echo. And so I inhale, before whispering the songs
from my childhood days. Taebaek, big and bright, and forever bl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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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the Blue Territory
금혜원展 / KEUMHYEWON / 琴惠元 / photography
2008_0507 ▶ 2008_0520

금혜원_floating islands_디지털 프린트_70×210cm_2007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금혜원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8_0507_수요일_05:00pm
후원_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시간_10:00am~06:00pm
덕원갤러리 3층
DUKWON GALLERY
서울 종로구 인사동 15번지
Tel. +82.2.723.7771~2
www.dukwongallery.co.kr
파란 너울, 사진으로 추상하기 ● 모든 예술이 인간의 현존에 의지함에 비해 오직 사진에서만이 그것의 부재를 향유할 수 있는 것이다._앙드레 바쟁
일찍이 앙드레 바쟁은 사진에서 인류의 오랜 꿈이 완성됐다고 생각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담고 싶어 했던 몽상이 실현됐다는 얘기다. 그랬던 바쟁이 소련의 몽타주영화를 극도로 비판했던 것은 이유가 있었다. 인공적인 손질을 거치며 현실성이 부서진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바쟁만 그렇게 믿었던 것은 아니다. 바르트 역시 사진을 ‘약호 없는 전언’으로 간주하며, (나중에 복잡하게 철회되지만) 약호에 끼어든 인간의 흔적이 제거된다고 보았다. 사진-기계의 중립성은 그렇게 작가의 ‘손길’을 없애버렸고, 나중에 가서 작가마저 살해한 것은 (그렇게 보였던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겠다. 진실성의 신화는 그렇게 탄생했고, 뒤이어 현실의 지문, 시네마 베리테, 스트레이트 포토 등등, 당시에 매력적이며 현실적인 ‘운동’으로 이어졌다. 사진-형식의 진실성과 사진-내용의 현장성의 짝패는 안성맞춤일 수밖에 없었겠다.

금혜원_blue afternoon_디지털 프린트_70×262cm_2007
그러나, 그것은 순진한 꿈이다. 오늘날 사진의 진실성 운운해 봤자, 믿을 사람은 많지 않다. 기록의 신화는 조작의 ‘오명’으로 오래전에 얼룩졌기 때문이다. 물론, 현재까지 여러 현장을 누비며 기록하는 행위를 폄훼해선 안 되겠다. 다만, 믿음의 토대가 흔들린 것만은, 돌이킬 수 없게 됐다는 것은 분명하다. 어쩌면 ‘사진-기계’는 마치 생산수단처럼 죽은 노동이 ‘물화된 장치’일 지도 모른다. 노동을 대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다른 형식의 노동일뿐이다. 질적인 ‘감가상각’이라고 하면 정확할지 모르겠다. 게다가, 시간이 흐르자 사진을 둘러싼 문화적 지형 또한 달라지기 시작했다. 사진이 그림을 물리치고 왕좌에 오르고, 사진과 그림의 경계가 조금씩 없어지자, 이제는 조작의 여부는 문제도 아니게 됐기 때문이다. 마치 그림 그리듯 사진을 찍고 자르고 붙이고 하는 것이다. 금혜원의 경우가 바로 그렇다. 그녀의 작업에서 사진은 사진으로 기능하지 못한다. 사진의 효과를 이용하고, 사진의 가면을 썼을 뿐으로, 오히려 속임수에 가깝다. 사진을 속이고, 관객을 속이고, 어쩌면 자신까지 속이는 알리바이일지 모른다.

금혜원_blue territory_디지털 프린트_70×319cm_2007
금혜원이 응시한 곳은 재개발 풍경이다. 서울에서 흔히 볼만한 풍경이고, 사진에서 자주 다뤄지는 질료이다. 대체로 스트레이트포토로 고발하거나 기록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작업은 질료자체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별다른 ‘손질’이 필요 없다. 그것만으로 충분한 강도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눈에 봐도 금혜원의 사진은 그것과 달라 보인다. 훤한 공터, 이곳저곳 부서진 잔해들, 배경을 이루듯 늘어선 아파트 등등, 여느 재개발 풍경이 똑같이 출현해 있지만, 어딘지 모르게 재개발 특유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인지, 확인하기란 어렵지 않다. 몇 가지 특징을 꼽으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전경의 모습이 왜곡될 정도로 화면 한가득 나타난다. 파랑색 비닐(우장막)이 등장하기도 하고, 건물의 잔해가 나타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작품에서 색감이 형태(세부)를 압도하는 효과가 발생하며, 사진에 특유한 기록의 성격이 약화된다. 어떻게 보면 색면추상의 느낌까지 들 정도다. 둘째 마치 원통을 잘라서 평면에 펼치듯, 주변의 모습을 파노라마로 활짝 펼쳐놓는다. 동일한 장소를 시각을 달리해 찍은 다음에, 이음매 없이 붙이는 방식이다.

금혜원_blue territory_디지털 프린트_70×210cm_2007
이 결과, 여러 시점이 등장하여, 평면은 평면이되 시점의 굴곡이 고스란히 나타난다. 심하게 말해서, 눈이 여러 개 달린 괴물 같은 모습이다. 여기에 과잉된 파랑색이 난무하여, 평면의 효과를 더욱 강화한다. 마치 파랑을 보여주기 위해서, 재개발 풍경을 찍은 것은 아닐까 생각할 정도다. 그녀가 파랑에 집착하는 까닭을 사진에서 찾기란 쉽지 않다. 그녀의 어릴 적 기억 때문일 수도 있고, 우연히 발견한 파랑에 눈길이 잡혔을 수도 있다. 정신분석학에 의거해 그녀의 진술을 스무고개 놀이하듯 분석하는 것이 필요할까.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내부와 외부가 만나는 접점이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물어야 한다. 사진-형식과 사진-내용의 이중적 진실성을 희생시키고 무엇을 얻었는가. 재개발 풍경을 뒤로하고 무엇이 나타났는가. 대가는 ‘자기 자신’이다.

금혜원_blue territory_디지털 프린트_70×350cm_2007
‘작가의 현존’은 금혜원의 세 번째 특징을 이룬다. 풍경의 모습은 그대로되, 복판에 있거나 좌우에 자신을 노출한다. 거기서 그녀는 어딘가 먼 것을 응시한다. 시선은 재개발 풍경의 ‘너머’에 있다. 마치 폐허 위에 딛고 서는 ‘그림’이 중요한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태도는 우장막의 파랑색을 전면에 내세운 것과 다르지 않다. 그렇다. 그녀는 세상에 관심이 없다. 재개발 풍경을 사회과학적 칼날로 해부하지 않는다. 흥미로운 지점은 바로 여기다. 그녀는 무엇 때문에 사진-형식과 사진-내용의 이중적 우회로를 거쳐서, 결국은 자신에게 모호하게 되돌아 왔을까. 눈여겨볼 점은 ‘이중의 분열’이다. 우선 전체작품의 분열이다. 앞서 지적했듯, 그녀의 작업은 재개발 풍경이되 자신이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분열된다. 시점으로 설명한다면, (자신을 바라보는) 3인칭 시점과 (자신이 바라보는) 1인칭 시점이 공존하는 셈이다. 이것은 고스란히 두 번째 분열로 이어진다. 작가자신의 분열로서, 내면과 풍경이 뒤섞인다. 왜냐하면 그녀의 작업에서 풍경 또한 내면의 외화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장막의 사회적 함축을 제거하고, 색면추상의 효과를 추구한 점에서 입증된다. 결국, 자신이 가둬둔 (내면의) 풍경에 자신을 던져놓고, 자신을 응시하는 것이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내부와 외부가 교묘히 얽히는 셈인데, 이 가운데 외부는 자연스레 실종되고, 내부의 폐쇄회로만 형성된다. 인간의 부재는커녕, 그녀의 작업은 그녀의 현존만 가득하다.

금혜원_blue territory_디지털 프린트_118×420_2007
일찍이 추상과 감정(이입)은 미술의 중요한 두 가지 충동으로 지적됐다. “감정이입 충동은 인간과 외부세계의 현상 간에 신뢰할 수 있는 행복한 범신론적 관계를 전제로 하지만 추상 충동은 외부세계의 현상에 의해 야기된 인간의 과도한 심리적 불안감의 산물이다. 아마 이런 상태를 공간에 대한 무한한 심리적 공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보링거) 보링거의 생각대로면, 금혜원의 작업은 역설이다. 현실에 대한 동화(사진)인 동시에 거부(추상)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행복과 불안의 (심리적인) 엇박자일까, 추상과 감정의 (예술사적) 화해일까. 무엇이든 작가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어 보이다. 스스로 결정한 것인지 세상에 결정된 것인지, 불확실한 탓이다. 그러니, 보고 싶은 눈과 거부하는 몸을 안고, 그대로 살아갈밖에. ■ 김상우

금혜원_Wanderer on the blue territory_디지털 프린트_70×300cm_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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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타임즈 II
홍승현展 / HONGSEUNGHYUN / 洪勝泫 / photography
2008_0508 ▶ 2008_0521

홍승현_모던타임즈 II_디지털 프린트_25.4×76.2cm_2007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이미지 속닥속닥 Vol.070321c | 홍승현 사진展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Boda Young Artist 지원 프로그램
주최_사진아트센터 보다
후원_서울문화재단_사진예술
관람시간_평일_09:00am~09:00pm / 토_09:00am~05:00pm / 일요일 휴관
갤러리 보다_GALLERY BODA
서울 서초구 서초동 1461-1번지 한라기산빌딩 2층
Tel. +82.2.3474.0013
www.bodaphoto.co.kr
홍승현 작가노트 - Modern Times Ⅱ ● 버스에 올라 손잡이를 잡고 주욱 늘어서 있는 사람들을 보면, 건조대에 힘없이 널려 있는 빨래들을 보는 것 같았고 지하철 무빙워크로 이동하는 사람들을 보면, 컨베어벨트 위에 실려 운반되는 공산품을 보는 것 같았다.

홍승현_모던타임즈 II_디지털 프린트_25.4×76.2cm_2007

홍승현_모던타임즈 II_디지털 프린트_25.4×76.2cm_2007
공중 소변기에 일렬로 나란히 서 있는 남자들은 기다랗게 정렬해 있는 수도꼭지 같았고, 큰 건물 로비에 있는 엘리베이터들은 마치 자판기처럼 입을 벌렸다 오므렸다 하면서 사람들을 내뱉는 것 같았으며, 강의실에 들어서서 책상에 앉아있으면 집 앞 도로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통닭구이 기계가 좌석 위로 오버랩 되었다. 길을 가다 큰 빌딩을 올려다 보면, 사람들이 물류창고 안 물건마냥 가득 쌓여 있는 듯 했다.
내가 보는 세상은 온통 사람들이 공장에서 획일적으로 생산되어 일렬로 하나씩 쏟아져 나오는 공산품처럼 여겨졌다.

홍승현_모던타임즈 II_디지털 프린트_25.4×76.2cm_2007
현대(모던타임즈)를 가득 메우고 있는 다양한 원리와 제도들(자본주의와 자유주의)은 계속해서 사람들을 물건화시키고, 우리의 삶의 공간 역시 기계화, 물성화시킨다. 공간이 기계적으로 분할되고, 일상의 경험이 경제적으로 조직 되고 조각 조각 깨어져, 기계 설계나 작동의 대상이 물체가 아니라 사람으로 대치되고 인간성마저 물성으로 타락해간다.

홍승현_모던타임즈 II_디지털 프린트_25.4×76.2cm_2007

홍승현_모던타임즈 II_디지털 프린트_25.4×76.2cm_2007
개개인의 미세한 진동들은 무시되고 현대성이란 무거운 힘으로 내리 눌리는 모던 타임즈의 풍경들을 컬러가 아닌 회색 톤의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빨래와 변기, 통닭구이로 대체해, 현대사회를 냉소적으로 표현하고자 하였다. 이 전시는 익숙해 있던 것들에 대한 반성이며, 또한 그 익숙함에 길들여져 있는 우리 자신에 대한 반성이기도 하다. ■ 홍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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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ction of the fiction
노승빈展 / NOHSEUNGBIN / 盧承彬 / painting
2008_0503 ▶ 2008_0516

노승빈_THE FICTION OF THE GRUDGE '빚은 갚는 여자야.'_한지에 수묵_105×69cm_2007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신한갤러리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8_0503_토요일_02:00pm
신한갤러리_SHINHAN MUSEUM
서울 중구 태평로 1가 62-12번지 4층
Tel. +82.2.722.8493
www.shinhanmuseum.co.kr
디지털 영상과 먹의 타협 ● 노승빈의 작품은 그가 속한 세대의 일상을 둘러싸고 있는 영상 이미지들로 가득하다. 근자에 상연된 영화의 스틸이나 몇 년 전부터 이십대 사이에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한 미(국)드(라마)의 영상, m.net 뮤직 비디오의 한 장면, 최근 인기 있는 “위닝”이란 축구 게임 장면 등등. 그는 디지털 영상 세대로서 매체에 상관없이 다양한 이미지를 집어 삼키고 되새김질 하는 왕성한 잡식성향을 감추지 않는다. 그에게는 매체 간의 경계 개념도, 우월 개념도 존재하지 않고 다만 자신이 순간적으로 느낀 인상적인 장면의 포착과 차용, 그리고 그 장면을 다시 그리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그는 포스트모던 미술의 주요 전략이었던 차용과 다시 재현하기 방법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노승빈_THE FICTION OF THE 4 BROTHERS "무슨 낯으로 누님을 만나러 왔답니까?"
_한지에 수묵_161×100cm_2007
노승빈은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그려진 이미지가 자신의 창작이 아님을 확인시키기 위해 곰플레이어나 윈도우 미디어의 틀을 의도적으로 활용한다. 미디어가 만들어 낸 허상을 비판없이 다시 재현하는 이중 허상의 전략은 가상현실과 현실의 경계를 끊임없이 넘나드는데 익숙한 영상 세대의 감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러나 그런 모조의 영상이 가볍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바로 그가 동양화의 재료인 ‘먹’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화가의 정체성을 먹을 중심으로 채색을 더하는 방법에서 찾고자 하고 있다. 영상 세대인 그에게 가상현실의 이미지와 순간적 감성, 그리고 먹은 자신이 성장해 온 문화적 배경과 예술적 훈련 과정을 타협하는 필수적인 요소들이다. 현대적 기술로 제작된 디지털 이미지를 개성이 드러나는 먹과 자연스럽게 타협시키는 것이 현재 그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이자 과제로 보인다. 신진작가로 약진하기 위해 필요한 노승빈의 예술적 열정은 이번 전시가 말해줄 것이라 생각하며, 앞으로 더욱 다양한 소재의 탐구와 기술적 연마를 통해 차세대 한국화가의 정체성을 구성하는데 일조하기 바란다. ■ 김현주

노승빈_THE FICTION OF THE DEXTER '요새 살짝 유행하는 나쁜 아저씨란다.'
_한지에 수묵_117×91cm_2007

노승빈_THE FICTION OF THE WINNING 너가 아는 승리의 기쁨은
집념의 승리가 아닌 집착의 결과이다._한지에 수묵담채_140×160cm_2007

노승빈_THE FICTION OF THE RUNNING SCARED '말만 번드르르하게 늘어놓는 놈팡이를
만났을 때의 인상은 그야말로 최악이야.'_한지에 수묵담채_84×145cm_2008
FICTION OF THE FICTION(허구의 허구) ● "나는 수많은 픽션 속의 환경과 인물들을 동경한다. 그것들은 사각형을 띤 TV나 영화 스크린 같은 시각매체를 통해 보여진다. 매체의 틀 안에서 시각적 즐거움을 제공하는 장면은 마치 미술품 같아 보인다."
● 시각매체가 지닌 고유한 특성들 역시 이미지와 동시에 나의 머릿속에 각인된다. 나는 난무하고 있는 각종 시각매체에 길들여져 있으며, 그것들이 감동을 주는 도구라는 생각에 익숙하다. 나의 화폭 안에 표현된 브라운관이나 LCD 화면의 사각형 프레임은 이미지를 재현하고 표현할 때 발생하는 불가결한 요소로 비춰질 수 있을 것이다.
사용하는 수묵화의 단색조는 단편적인 이미지의 나열과 과거를 동경하는 회상 방식을 전달하기에 적합하다. 더불어 영상매체의 도구적 특징과 컷(cut)구성 방식에서 나타나는 딱딱한 테두리선의 긴장감은 한지에 수묵표현기법을 통해 다소 와해시키고자 하였다.

노승빈_THE FICTION OF THE L & T '바보들이 펼치는 기적적인 경연이군.'
_한지에 수묵담채_76×159cm_2008

노승빈_THE FICTION OF THE LIE 세상의 흐름이 어디로 흐르고 있는지
혁명가는 알 필요가 있다._한지에 수묵담채_98×162cm_2008
'내 그림에 등장하는 외국인들, 혹은 타인들은 나 역시 영상을 통해 접한 유사현실의 인물들이다.' 인물들의 인위적인 표정과 행동, 그리고 영상매체의 프레임을 통해 관람자는 내가 그것을 어디서 따 왔는지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나의 허구 속 세계와 현실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상호 의존적인 관계일 뿐이다. 때문에 화폭 안에 그려진 장면들은 영화 그 자체이거나 단순히 영화 스틸 컷으로 보일 수도 있다. 내 그림은, 허구 속 이미지의 재현과 영상매체의 익숙한 구성 방식의 결합에 의해 또 다른 허구적 시각이미지가 된다. 나는 이것이 바로 내가 상상하는 관객과 최소한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 노승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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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메타몰포스
Metamorphose de l’ame
2008_0424 ▶ 2008_0518
영혼의 메타몰포스_Metamorphose de l’ame展_오페라 갤러리_2008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오페라 갤러리 홈페이지로 갑니다.
VIP초대일시_2008_0424_목요일_05:00pm참여작가 쟝 프랑수와
라리유_Mauro Corda 마우로 코르다_Mauro Corda 쟝 피에르 혹후세_Jean-Pierre
Roc-Roussey
관람시간_10:00am~07:00pm / 국경일 휴관
오페라 갤러리_OPERA GALLERY 서울 강남구 청담1동 118-17 네이처포엠빌딩 1층 Tel.
+82.2.3446.0070 www.operagallery.com
오페라 갤러리
서울은 2007년 10월 31일 ‘오페라의 보물들’ 이라는 전시의 개관전 및 첫번째 기획전 ‘앤디워홀과 보테로’ (2월 28일~3월 15일) 에
이어, 세번째 기획전시로 프랑스 작가 세 분을 소개하는 ‘영혼의 메타몰포스 (Les Metamorphose de l’ame)’를 준비하였다. 쟝
프랑수와 라리유 (회화), 마우로 코르다 (조각), 쟝 피에르 혹후세이이 (회화)는 프랑스를 비롯하여 유럽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중견작가로, 미주는 물론 아시아 지역에서도 점차 주목받고 있는 오페라갤러리의 대표 전속작가이다. 이 세 작가는 서로 다른 매체와 방식을
활용하지만, 자연 (라리유), 신체 (코르다), 신화 (혹후세이) 라는 문화, 예술의 기본요소를 변형시키는 힘을 보여주고 있다.

쟝 프랑수와
라리유_거대한 범선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97cm_2007 Jean- Francoise Larrieu_Les grandes
voiles
쟝 프랑수와 라리유(Jean- Francoise Larrieu, 1957-) ● 는 주로
자연을 소재로 하여, 현실의 평범한 장면들을 꿈과 환상의 세계로 바꾸어놓는다. 1960년 피레네 산맥에서 태어난 작가는 고향산천에서 얻은
아름다운 풍경과 자연의 색채와 충만한 영감의 원천이라고 이야기한다. 환희에 넘치는 아름다운 색채와 오밀조밀한 기하학적 무늬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화면은 나무, 산, 바다 등 구체적인 이미지를 간직하면서도, 하나의 추상화면처럼 보이기도 한다. 추상과 구상의 경계를 해체하는 환상적인
이미지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꿈과 상상의 세계에 잠기게 만든다. 비밀스런 이미지로 가득한 화면을 잠시 응시하면서, 겹겹이 쌓이고 숨겨진
이미지들을 해독할 때, 마음속에 숨겨져 있는 순수함을 저절로 되찾게 되는 것 같은 경험을 하게 되는 것, 거기에 바로 라리유 작품의 힘과 매력이
있다.

쟝 프랑수와
라리유_코르시카의 길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6×89cm_2007 Jean- Francoise Larrieu_Les chemins en
Corse
라리유는 방년 11세에 프랑수와 비용 회화 아카데미 (Francois Villon Painting
Academy) 대상을 수상할 정도로 일찍부터 미술에 두각을 나타냈으며, 13세때 그의 첫 스승이자 마지막 스승인, 로마미술대상 수상자 쟝
라포르그와 만남은 그의 인생을 미술로 이끌었다. 이어 18세때 포 미술관 (Musee de Pau) 큐레이터가 그의 전시회에 베아르내 미술관상을
(Musee Bearnais prix) 수여할 정도로 성공적인 출발을 보였다. 자신만의 독자적인 화풍을 만들어 낼 줄 아는 타고난 재능과, 어린
나이였지만 일찍부터 전시회까지 열었을 정도로 열정과 노력을 보인 덕분에, 라리유는 미술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독자적인 길을 걷기로 결심한다.
오늘날 그 결실은 그의 완성도높은 작품에서 뿐만 아니라, 살롱 도톤느를 비롯하여 프랑스 유수 미술협회의 회장을 연임할 정도의 활발한 대외활동에서
두루 나타나고 있다. 오늘날 프랑스 유수의 미술관을 비롯하여 유럽, 미주, 중동 및 아시아 지역에서 수 많은 개인전 및 단체전을 열은 바
있으며, 전 세계에 걸쳐 폭넓은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마우로
코르다_대단한 곡예사IV_알루미늄과 스테인리스 스틸_300×80×80cm_2007 Mauro Corda_Grande
Contorsionniste IV
마우로 코르다 (Mauro Corda, 1960-) ● 는 주로
인체를 통해 메타몰포스의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어린 아이에서부터 노인, 단단한 근육질에서부터 뼈가 앙상한 마른 인물에 이르기까지
해부학적 지식에 기반한 정확한 인체묘사를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이들은 평범하지 않은 한 순간 혹은 자세를 드러내고 있다. 달리는 사람,
곡예사, 다이빙 등 적나라한 근육과 피부 표현은 신체가 만들어낼 수 있는 곡선을 극한까지 실험하고 있으며, 농구공을 든 반인반수의 소년,
여장남자 등의 독특한 주제는 상상력을 통한 인류의 변화 마저도 시도하고 있다. 주제와 포즈에 걸맞게 세라믹, 청동, 크롬, 유리, 브론즈, 금은
도금, 알루미늄에 이르는 다양한 소재를 활용하는 적응력은 코르다의 작품에 ‘현대성’을 부여하는 요소가 된다. ● 사실적으로 표현된 인물상들은
관객들로 하여금 마치 운동선수의 마지막 기록경신을 지켜보는 것 같은 긴장감을 자아내고, 작품을 보다 자세히 보기 위해 다가갔을때 실제 사람같은
눈동자의 표현은 관객들을 압도한다. 눈을 마주보기 위해 관객 또한 조각의 인물처럼 몸을 구부려 자신의 신체를 움직여야 하고, 그 속에서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느끼는 감상을 하게 된다. 이처럼 코르다의 작품은 탄탄한 실력을 기본으로 전통 조각가들의 고전적 계보를 따르면서도
전위성 마저 겸비하고 있다.

마우로
코르다_대단한 곡예사V_브론즈와 유리_85×79×77cm_2007 Mauro Corda_Grande Contorsionniste V
1960년 루르드 출생으로, 랭스 및 파리 미술학교에서 수학한 코르다는 뛰어난 손재주로 일찍부터 기량을
인정받았다. 파리 국립미술학교에서 일등상을 수상하면서 1985년 프랑스 국가장학금을 받고 2년동안 스페인 카사 벨라즈퀘즈에서 연수를 마쳤다.
그의 조각들은 대부분 인체를 다루고 있으며, 네덜란드 거리 미술제를 비롯하여, 유럽 주요 도시에 기념조각품을 설치하였으며, 유수의 미술관,
갤러리, 아트페어를 통해 널리 명성을 날리고 있는 작가이다.

쟝 피에르
혹후세이_거대한 푸른 기모노_캔버스에 유채_195×130cm_2007 Jean-Pierre Roc-Roussey_Le grand
Kimono bleu
쟝 피에르 혹후세이 (Jean-Pierre Roc-Roussey, 1951-)
● 는 신화와 전설을 주제로 신고전주의와 르네상스가 뒤섞인듯한 신비로운 인물들을 그려내고 있다. 양감있는 근육은 단단하기보다 부드럽게 그려져있어
모델이 가진 운동감을 극대화시키고 있다. 한편 그에 대조되는 작은 얼굴과 손가락은 극도로 섬세하게 뛰어난 뎃생력을 드러내고 있어 작품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게 한다. 큰 화폭 안에 다이나믹하게 펼쳐지는 인물들의 역동적인 모습과 강렬한 색채는 관객들을 압도하며, 여느 문화권에서나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전설이나 신화를 떠올리게 한다. 혹후세이의 작품은 이처럼 한 편의 옛날 이야기, 재미있는 동화, 혹은 화려한 셋트에서 촬영된 영화를
본 듯한 아련함을 남긴다. 따라서 작품의 감상은 눈에서만 끝나지 않고 여운을 마음속에 남긴다. 그 스스로 다양한 문화권의 문화재들을 수집하는
취미를 가지고 있기도 한데, 오랜 시간동안 계속해왔던 서양 및 동유럽의 신화들을 넘어서, 최근에는 아시아 문화에 관심을 갖고 아시아 여인
시리즈를 제작하며 탐구의 영역을 확장시키고 있다. ● 또한 혹후세이는 완성된 물감을 쓰지 않고 템페라에 안료를 섞어, 자신이 원하는 채도를
얻기까지 색채를 연구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붉은 색과 푸른색, 오렌지색 등 채도높은 밝은 색채는 화면속의 이미지가 당장이라도 눈앞에 펼쳐질것처럼
생생하게 돋보이는데 일조힌다. 신선한 에너지와 자신감이 느껴지는 그의 작품들은 관객들이 그림을 보는 그 짧은 시간마저도 잊을 수 없는 기억,
살아있는 순간으로 만드는 것이다. 고전적인 색깔과 포즈를 감상하는 짧은 시간동안, 혹후세이는 관객에게 강렬하게 기억에 남을 긴 이야기를 선물하는
셈이다. ● 각종 신화와 역사, 전설을 파헤치고, 그에 걸맞는 순도높은 색채와 구성을 얻을때까지 끊임없이 손을 연마하여 얻어내는 그의 작품들은
‘전투’라고 말할 정도로 심혈을 다해 그린 결과물인 것이다. 1951년 파리 출생으로, 현재 몽마르뜨와 남프랑스의 작업실을 오가며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수 많은 세월의 인고와 훈련이 뒷받침되어 오늘날 빛을 발하고 있는 혹후세이의 작품들은 창의성과 자유로움으로 가득찬 팽팽한 긴장감을
자아내며, 범문화적으로 많은 컬렉터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쟝 피에르
혹후세이_금빛 팔을 가진 몽상 여인_캔버스에 유채_100×80cm_2007 Jean-Pierre Roc-Roussey_Reveuse aux
bras d'or
‘영혼의 메타몰포스 (Metamorphose de l’Arme)’는 이들의 작품에 나타난 예술적
상상력이 궁극적으로는 영혼을 자유롭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붙여진 제목이다. 오페라 갤러리는 본 전시회를 통해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프랑스의 미술을 소개하고, 그들만의 아름다운 색감과 자유로운 감성, 그리고 역동감 넘치는 표현력을 더 많은 관객과 함께 나누고자 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 영혼의 메타몰포스의 작가 3인은 그들의 독특한 예술세계와 함께 교감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할
예정(23-27일)이며, 이번 전시는 이들과 함께 작품 세계에 관해 이야기를 나룰 수 있는 특별한 기회가 될 것이다. ■ 오페라 갤러리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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