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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abel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2005-06-13 20:48:53, Hit : 432)
조르주 페렉, <사물들>
출처 : 열대로간초능력소녀
(허가전)-_-







   그들은 책들로 가득한 이 벽들 사이에서, 그들이 언제나 유일한 사용자로 창조했다고 믿을 만큼 완벽하게 길들여진 아름다운 사물들 속에서, 영원히 아름답고 단순하며 부드러우며 반짝이는 이 모든 사물들 속에서 앞으로의 삶도 평안하게 흘러갈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결코 어떠한 구속감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어떤 때는 모험을 감행할지도 모른다. 어떤 계획도 그들에게 불가능하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원한과 쓰라림을 혹은 갈망조차 느끼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수단과 욕망은 모든 면에서 언제나 일치하기 때문일 것이므로. 그들은 이러한 균형을 행복이라고 부를 테고 자유와 지혜에 의해, 또는 문화의 힘으로 그 행복을 지킬 것이며 그들 모든 삶의 매순간마다 그것을 발견할 것이다.

   그들은 늘 흥분해 있거나 경직되어 있든지, 아니면 탐욕스럽거나 질투심에 차 있었다. 더 풍족하고 화려한 삶에 대한 그들의 욕망은 매우 자주 어리석은 정열로 변질했다. 그들은 오랜동안 친구들과 독특한 모양의 담배 파이프, 혹은 낮은 테이블에 대해 논쟁을 벌이고 그것들을 박물관의 예술작품으로 만들곤했다.

   손가방 하나에도 -마들렌느 거리의 상점 어디에나 진열되어 있는 유난히 납작한 오톨도돌한 검정색 가죽가방-열을 올리며, 뉴욕, 런던행 여행이 의미하는 온갖 상상을 펼치곤 했다. 그들은 마음에 만족할 만한 소파를 찾기 위해 파리 시내를 샅샅이 뒤졌다. 심지어 다른 누군가가 이미 세 번 이상 입었다는 사실이 품질을 보증하거나 한 것처럼 새옷 입기를 꺼려할 정도였다. 그러나 양복점이나 액세서리가게, 구두가게의 진열대 앞에서 감탄하며 머뭇거리는, 다소 거룩해보이기까지 한 그들의 몸짓은 흔히 우스꽝스럽게 끝나곤 했다.

   제름은 스물넷이었고 실비는 스물두 살이었다. 그들은 둘 다 사회심리조사자였다. 엄밀히 말해서 전문직업이라고 할 수는 없는 그 직업은 다양한 주제에 관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인터뷰를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적어도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예민한 일이었고, 흥미가 없지 않은 편인 데다 상대적으로 보수도 괜찮고, 시간적으로도 상당한 여유가 있는 일이었다.

   그들은 오랜 동안 익명성 속에 살았다. 그들은 학생 차림으로, 말하자면 되는 대로 입고 다녔다. 실비는 늘상 똑같은 스커트, 지저분한 샌들, 비로드 바지 차림이었고, 제롬은 때묻은 털외투, 기성복 양복 정장에 넥타이는 구겨져 있었다. 그들은 영국식 복장에 늘 감탄에 찬 얼굴로 매료되었다.

   그들의 꿈은 런던여행이었다. 국제 화랑과 세빌 로우를 방문하고, 제롬이 아직까지 감동적인 추억을 가지고 있는 처치가의 몇몇 카페를 들를 수 있기를 꿈꾸었다.

    그들의 삶은 친구들과 있으면 소용돌이 그 자체였다.

   그들은 떼를 지어 다니는 하나의 세련된 팀이었다. 그들은 서로를 너무 잘 알았다. 서로에게 영향을 주면서 습관, 취미, 추억을 공유했다. 그들은 그들만의 어휘와 기호, 화제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서로를 완전히 닮기에는 너무 조숙한, 그렇다고 의식적으로 서로를 모방하지 않을 만큼 성숙하지는 않은 그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서로의 사귐 속에 보냈다.

   그러므로 그들은 시대에 걸맞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느긋했다. 그리고 자신들이 적어도 어리숙한 사람들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적당히 거리를 줄 줄 알았다. 여유를 가졌으며, 아니 적어도 그렇게 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유머도 없지 않았다. 요컨대 멍청이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들의 가장 큰 즐거움은 함께 망각하는 것, 즉 긴장을 푸는 것이었다. 우선 술 마시기를 무척 좋아했으므로 함께 자주 술을 마셨다. 그들은 다누가의 <해리스 뉴욕 바>, 팔레 로얄에 위치한 <발자르> 카페, <립> 들을 자주 드나들었다. 그들은 뮌헨의 맥주와 진, 거품나는 펀치, 과일주를 좋아했다.

   때에 따라 하나로 붙인 두 개의 테이블 주위에 둘러앉아 끊임없이 앞으로의 삶에 대해, 언젠가는 쓰리라고 마음먹은 소설, 기꺼이 하고 싶은 일, 또한 이전에 관람했던, 혹은 보고 싶은 영화에 대해, 그리고 인류의 미래와 정치적 상황, 앞으로 있을, 혹은 지나가버린 바캉스, 시골 나들이와 브뤼지, 알베르, 베일로의 단기여행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는 깨어날 생각은 꿈에도 없는 집단적인 몽상에 젖어들어 점점 더욱 끊임없이 은밀한 공감대 속에서 현실과의 모든 접촉을 상실하고 마는 것이었다.

   특별한 것이 있다면 영화가 있었다. 그것은 분명 그들의 감수성이 가장 활발하게 작용하는 유일한 영역이었고, 어떤 모범이 필요치 않은 분야이기도 했다. 그들의 나이와 교육 수준으로 볼 때 그들은 영화가 예술의 경지를 넘어서 하나의 증거가 되었던 첫번째 세대에 속했다. 그들은 영화를 너무도 잘 알았는데 모색단계의 형태가 아닌 위대한 걸작을 낳은 신화로서 체험했다. 영화와 함께 컸으며 그전의 어떤 세대들보다 더 영화를 이해했다.

   공간과 시간의 탐험을 사랑했고 뉴욕가의 소용돌이, 적도지방의 나른함, 빈민가 술집의 폭력을 사랑했다.

   그들은 점차 임시적인 것에 길들여졌다. 그들은 학생들이 공부하는 것처럼 일을 했다. 하루의 일과를 스스로 선택했고 게으른 학생처럼 거리를 어슬렁거렸다.

   그러나 도처에서 위험이 그들을 엿보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야기가 행복의 이야기가 되기를 원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흔히 위협받는 행복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은 아직 젊었으나 시간은 빨리 지나갔다. 늙은 학생, 그것은 무언가 불길한 것이다. 낙오자, 별 볼일 없는 인간, 그것은 더욱 불길한 것이다, 그들은 두려웠다.

    그들에게는 자유로운 시간들이 있었다. 그러나 시간은 그들을 반대하는 쪽으로 돌아갔다. 달마다 가스비와 전기, 전화요금을 지불해야 했다. 매일 먹어야만 했고, 옷을 입고, 벽을 새로 칠하며, 침대시트를 갈아야만 했다.

   이따금 경제적인 것이 그들 모두를 삼켜버렸다. 그들은 돈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그들의 감정적인 생활은 상당 부분 경제적인 것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다. 매순간 좀더 부자라면, 조금만 앞질러 있다면 그들의 행복은 가히 천하무적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돈만 있다면 어떠한 구속도 그들의 사랑을 제한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의 취향과 환상, 창의력과 욕망은 자유로운 생활 가운데 용해될 수 있으리라고....그러나 이러한 벅찬 기쁨의 순간보다 더 자주 싸움이 일어났다.

   제롬과 실비는 이러한 역할 속에서 자신들의 모습을 발견하고 싶어했다. 그들의 책상서랍 안에는 3막으로 구성된 극복이 있을 것이다. 그들의 정원에는 석유과 우라늄이 묻혀 있을 것이다. 그들은  오랜동안 빈곤과 시련, 불안정한 생활 가운데 살 것이다. 어느 날 번개처럼 갑자기 예고도 없이 지상을 울리는 천둥소리를 들을 것이다. 부자가 된다! 그들의 극복이 채택되고 광맥이 발견되며 천재적인 재능이 세상에 알려질 것이다, 수많은 계약이 이루어질 것이고 천불짜리 수표를 말아 엽궐련을 파울 것이다.

   그들은 도망가기로 마음먹었다.

   사람은 광기 속에서 너무 오랜 기간 동안 살 수는 없는 법이다. 모든 것을 허용하지만 아무 것도 주지 않는 세계에서 긴장은 너무 컸다. 그들의 인내도 한계에 이른 듯했다. 어느 날 그들은 피난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시골로의 탈출에 대한 상상은 빈번하게 일어났지만 현실적인 실행에 옮겨지는 일은 거의 드물었다. 두세 번인가 그들은 시골에서도 할 수 있는 직업을 문의했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1962년 9월 중순, 폭우와 경비 부족으로 엉망이 돼버린 바캉스에서 돌아오면서 그들은 단호한 결정을 내렸다. 10월 첫주 <르 몽드>에는 튀니지에서의 교사 모집에 대한 공고가 실렸다. 그들은 망설였다 이상적인 경우는 아니었기 때문이다.-그들은 오히려 인도나 미국, 멕시코를 원했다.

   그들은 스팍스에 도착했다.

   실비는 쓰기를 못하는, 그녀보다 훨씬 키가 큰 학생들에게 교과과정에 맞추어 말레르브와 라신느의 시 속에 숨겨진 아름다움을 이해시키느라 녹초가 되었다. 제롬은 되는 대로 시간을 보냈다. 그는 다양한 계획을 세웠지만-사회학 시험을 분비하거나 영화에 관한 그의 생각들을 정리해보는 것 등-한번도 끝까지 밀고 나가지 못했다.

   실비의 시간표가 그들의 생활에 일정한 리듬을 주었다. 그들의 일주일은 좋은 날과 나쁜 날로 이루어져 있었다. 길일은, 오전이 자유롭고 영화관 프로그램이 바뀌는 월요일, 오후시간이 비는 수요일, 그리고 하루종일 수업이 없는데다 영화 프로가 다시 바뀌는 금요일이며 그 나머지는 흉일이었다.

   이런식으로 한 주가 지나갔고 다시 기계적인 규칙성으로 이어졌다. 4주가 모여 한 달이 되었고 매달은 서로서로 비슷했다. 낮이 점점 더 짧아지다가 점점 더 길어지는 날이 반복됐다. 겨울은 추우면서도 습기가 많았고 그들의 삶도 그렇게 흘러갔다.

   그들의 고독은 완전했다.

   그들의 삶은 마치 너무도 지루한 습관과도, 평화로운 권태와도 같았다. 무위의 삶 그 자체였다.

   4월부터 그들은 짧은 여행을 다녀오곤 했다. 가끔 3,4일씩 수업이 없는 날에는 차를 빌려 남쪽으로 떠났다.

   그들은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 사는 방법을 모르거나 흥정하는 것이 겁났기 때문일 테지만 사고 싶은 매력을 느끼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이러한 여행에서 오직 공허함과 무미건조함의 이미지만을 얻을 뿐이었다. 그것은 덤불이 무성한 황량한 땅과 들판, 개펄, 어느것도 자랄 수 없는 광물성의 세계, 고유한 고독과 열기만이 깃들인 세계였다.

   추억이 없는 세계, 기억이 남겨지지 않은 세계, 시간은 여전히 지나갔지만 황량한 날들과 시간들은 언제나 동일했다. 그들은 이제 더이상 어떠한 욕망도 느끼지 않았다. 절대적인 무관심의 세계 속에서..

   그들은 몽유병자와 같았다. 더이상 자신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몰았다. 그들은 완전한 이방인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무엇을 했는가?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몹시 부드러운, 그러나 장엄한 비극을 닮은 듯한 무엇인가가 그들의 지루한 삶 중심부에 자리잡았다. 그들은 매우 오래된 꿈의 잔해 속에, 형태없는 파편 속에 길을 잃은 것 같았다.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들은 이제 장거리 달리기의 끝지점에, 6년 동안 그들의 삶이었던 모호한 궤적의 마지막에, 어느 곳으로도 이끌지 못하고, 어느것도 가르쳐주지 않는 불확실한 모험의 끄트머리에 놓여 있었다.

   그들은 저녁 11시에 도착할 것이다. 그들의 친구들이 역에 나와 있을 것이다. 친구들은 그들의 밝은 얼굴을 보고 기뻐서 소리지를 것이다. 제롬과 실비가 위대한 모험가들처럼 보기 좋게 그을린 얼굴에 커다란 밀짚모자를 쓰고 있을 테니까. 그들은 스팍스에 관해, 광대한 사막과 웅장한 폐허, 저렴한 물가, 푸른 바다에 관해 쉬지 않고 이야기 할 것이다.

   그들은 전처럼 살고 싶어할 것이다. 이전에 다니던 회사에 다시 연락을 취할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어디 한군데 끌리는 구석이 없을 것이다. 그들은 다시 숨이 막힐 것이다. 협소함과 빈궁함 때문에 금방이라도 죽을 것만 같을 것이다.

   그들은 다시 행운을 꿈꿀 것이다. 혹은 다시 시골로 도망갈 생각도 해볼 것이다. 그리고 스팍스를 다시 그리워할지도 모른다.

   그들은 그리 오래 견디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9월 초에 파리를 떠날 것이다. 그들은 일등석 기차칸에 탑승할 것이다. 그러면 기차가 금방 출발할 것이다. 그들은 떠날 것이다, 모든 것을 버릴 것이다. 그들은 도망할 것이다.  

   어느것도 그들을 다시 붙잡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들은 가벼운 옷차림 속에 편안할 것이다. 그들은 한적한 기차 안에서 휴식을 취할 것이다. 프랑스의 전원이 눈앞에 펼쳐질 것이다. 그들은 잠자코 넓은 밀밭과 고압력의 시멘트 기둥을 바라볼 것이다.

   여행은 오랜 동안 쾌적할 것이다. 그들은 점심쯤 느릿느릿 식당칸을 향해 걸어갈 것이다.

   그들은 마지막으로 또 한번 공범의 미소를 지으며 서로를 쳐다볼 것이다. 서늘한 감촉의 냅킨, 식당칸이라는 도장이 찍힌 묵중한 나이프와 포크, 방패꼴 무늬가 그려진 두꺼운 접시가 화려한 만찬의 전주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그들에게 제공된 음식은 맛이 없을 것이다.





                                                      수단은 결과와 마찬가지로 진실에 속한다.

                                                      따라서 진실의 추구란 그 자체가 참되어야만 한다.

                                                      참된 추구는 각 부분이 결과 안에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도록 전개된 진실이다.

                                                                                                           - 칼 마르크스




('.역시, 통찰력과 좋은 글은 이음동의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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